“……안녕? 12구역이지?”
“갑자기 무슨 짓이야?”
“떨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얘, 거기서 뭐 해?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뭘, 여기서 하면 안 돼?”
“날 알아?”
“사람들이 다 네 얘기만 하던데.”
“그건 사람들이 얘기하는 나잖아.”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개인적인 관심을 가져야 해?”
“그래? ……난 네가 궁금한데.”
“넌 왜 날 Twelve라 불러?”
“……응?”
“그러는 네 이름은 Two야? 아니면 2구역?”
“아니지, Twelve. 설마하니 내가 네 이름을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럼?”
“이름을 부르면 정이 들잖아. ……넌 그것도 몰라?”
“넌, 이 밤 중에 여자애가 혼자서 남자애 방에 찾아온 이유도 모르지?”
“너. 앞으로 창은 쓰지 마.”
“별로였어?”
“……눈밭은 체온 유지가 중요한 거 알지?”
“……그래.”
“육포나 더 챙겨가.”
“……너 여기서 뭐 해?”
“……Twelve.”
“왜.”
“눈싸움해 본 적 있어?”
“나도 눈싸움해 본 적 없어. 그래서 물어본 거야.”
“그럼 너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한 아가씨는 아니었던 모양이네.”
“분명히 너도 인간이라 아플 텐데…….”
“흥.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운을 띄우는 거야?”
“아직도 네 입이 살아있는 걸 보면 누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넌 살아있을 것 같긴 하다.”
“……왜 이리 늦게 와!”
“늦었나?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기다리다 목이 빠질 정도로 늦었어.”
“그럼 넌 ‘그날 밤’에 나한테 왜 그랬는데?”
“넌 참 이상해.”
“뭐가.”
“눈 감고선, 그냥. 버리고 가면 편할 텐데도.”
“너희 아빠는 그런 건 좀 아신대? 너희 아빠가 너한테 최면 걸듯이 집어넣은 것들 말고.”
“그런 단어, 사용하지 마!”
“왜. 지금 내가 우울하고 힘들어 보여?”
“아니.”
“그래도 넌 외로워 보여. 나처럼.”
“나 안 버리고 간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럼 네가 나 좀 도와줘. 난 우승하기에 마땅한 사람이니까.”
“─너 미쳤어?”
“그러는 너는,”
“네가 뒈질 수도 있는 계획을, 나한테 하라고 해?”
“그럼 난 그때도 네 계획을 망쳐야겠네.”
“그리고 그 뒤에는. ……뭐. 별수 있나. 내가 어리다고 해서 남들이 날 봐주는 것도 아니고, 어린 취급을 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는 게 내 최대 목표야. 그것 말곤 더 없었어.”
“……어쨌거나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네. 장하다.”
“죽을 거야?”
“죽기로 결심했어?”
“안 죽어. 아직은 안 죽지. ……하지만 이젠 너랑 나밖엔 안 남았잖아, Twelve.”
“그럼 죽어줄까.”
“지금 얘기하면 네 계획에 어울려줄게.”
“언제는, 내 계획을 어그러……뜨리겠다더니.”
“……그러고 있잖아. 넌 혼자 죽을 작정이었는데, 내가 와준 거잖아.”
“……네가 있으니까 좋아.”
“그래?”
“처음으로 외롭지 않은 것 같아……. 너도 그래?”
“내 평생이 외롭지만은 않을 건가 봐.”
“……너도 그렇다면 같이 죽어줘.”
“다음 생에선 좀 제대로 살아보자.”
“잘 자, 이스피어…….”
이 꿈에서 깨어나려면 조금은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꿈은 악몽이 아니라 무척이나 안온하고, 조용하고, 또 따스해서,
지하실의 광경을 떠올리지 않고 잠에서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다음 눈을 떴을 때면 아마도 네가 보이지는 않을까…….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종내에 내가 나의 공포-FEAR-에게 읊는다.
긴 겨울 지새우니 봄의 태양이 떠오르는구나. 지난한 불행에도 끝이 오는 모양이다. 잠들어야 할 때 밤을 견뎌낸 나는 부여받은 사명도 버리고, 지나온 길을 거슬러 네게 미쳤다. 우리 사이에 승부가 있었다면 그건 네 승리다. 비로소 외로움을 떨쳐냈다.
비로소 떨쳐낸 외로움은 아마 다른 탈을 쓰고 가슴 안을 파고들겠지. 명명하자면 독일무이한 두려움이다. 사랑이다.
깨어났을 때 네가 보였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눈결 뱀 꼬리 그릴 때
20211006 ~ 20211205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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