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이라고......?!"
엘자는 빼액 소리를 지르며 눈을 크게 떴다. 큰 소리에 미라젠이 부드러운 미소를, 카나가 조금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엘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저번엔 이상한 놈으로 소개해줘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아니, 얼굴은 그래도 반반하게 생겼던 놈이었는데. 거 참."
카나의 말에 미라젠이 바 위에 올려져있던 신문을 괜히 더 구석으로 치웠다. 1면에는 선행 길드의 충격적인 이면, 어쩌고 저쩌고, 자선 길드 팔수스 길드원의 대거 구속 기사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내 놀란 기색을 가라앉힌 엘자는 천천히 미소 짓기 시작했다.
"날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마워. 하지만 괜찮다."
"엘자."
대신, 이번에는 조금 빨개지기 시작했다.
"난, 그. 이제.... 그."
땀도 몇 방울 삐질삐질 흐르는 것 같았고.
"제, 제랄이랑...."
* * *
그날은 데이트를 약속한 날이었다. 덕분에 카나와 미라젠에게 밑천까지 정보를 털린 엘자는 다소 혼이 빠져서 장소에 도착했다. 그 녀석들. 대체 진도를 어디까지 뺐는지같은 건 왜 물어본 거지? 조금 새하얗게 색이 빠진 엘자는 저 멀리서 보이는 푸른 머리카락에 곧 상념을 내려놓았다. 손을 들어 흔든다.
"제랄."
첫 '데이트'라서 그런가. 제랄은 평상시 입는 마도복이 아닌 와이셔츠와 긴 코트, 정장 바지를 차려입고 나왔다.
색다른 모습에 새삼 만나게 된 목적이 상기되어 엘자가 빨개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건 일단 상대 쪽도 비슷비슷했다.
데이트는 평범했다. 카페를 가서 음료와 딸기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거리를 걸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손이 스치기라도 하거나 몸이 붙게되는 등 스킨십의 스 자만 나왔다 하면 퍼드득 놀라 거리를 벌리는 제랄이었다. 새빨개진 얼굴과 귓가를 보면 엘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니, 알 수는 있었는데.
데이트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이러는 건!
때는 저녁을 먹은 뒤였고, 둘은 피오레 광장 근처 상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손은 잡지 않은 상태였고. 평소였다면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제랄과 있는 시간에 집중할 엘자였건만, 데이트를 나오기 전 들은 얘기 탓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왜, 그런 말들 있지 않은가. 요즘은 사귀자마자 키스는 기본에. 으아아. 더 생각을 잇지 못하고 터진 머릿속 때문에 엘자의 걸음이 반 보 느려졌던 때였다.
"...엘자!"
확, 끌어당기는 손짓. 엘자가 멍하니 제랄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등 뒤로 훅 지나가는 기척. 엘자가 고개를 퍼뜩 들어 대상을 바라보았다.
"소, 소매치기야! 누가 좀 잡아줘요!"
첫 데이트, 기념할 만한 첫 스킨십이었으나 그것에 집중할 생각은 없었다.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 * *
다음 번엔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감사합니다! 안에 이번 달 생활비가 들어있었는데... 그런 상투적인 대화가 오고가면 어느덧 밤이었다. 쌀쌀해진 공기에 엘자가 어깨를 작게 떨었다.
"추워?"
조심스러운 물음과 함께 제랄이 코트를 벗었다. 괜찮다는 엘자의 만류에도 코트는 결국 어깨 위로 올라왔다.
뎁혀진 온기가 쌀쌀한 공기를 막는다. 엘자가 코트 깃을 만지작거렸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지."
"그런가?"
제랄이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 뿐이었다. 데려다줄게, 말하며 무심코 손을 내미는 모습에 엘자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페어리테일이 와해되었던 시절 그와 함께 다녔을 때 '이런' 행동들은 서로 하지 않았으니까. 더더군다나 오늘 하루 내내 접촉을 피해다니던 제랄이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인가?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엘자는 이걸 놔줄 생각이 없었다. 슬쩍 미소를 짓곤 손을 마주 잡았다.
"오붓하게 손도 잡아주고?"
제랄의 얼굴이 어둔 밤 아래에서도 조금 달아올랐다. 뒤늦게 손을 빼고 싶어하는 것처럼 움찔거리지만, 그렇다고 또 정말 손을 빼진 않았다.
민망한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엘자가 그에 툭 말했다.
"명색이 데이튼데.... 끝나갈 즈음에서나 손 잡기가 고작인가. 제랄?"
말하는 이쪽도 제법 빨개져 있었지만.
제랄은 고민하는 모양새다. 나 참, 생각이 깊은 녀석이라니깐. 엘자가 속으로 혼자 생각할 뿐이다.
"......도 될지 모르겠어서...."
"...뭐라 했나?"
제랄이 입술을 달싹이며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닿아있다는 것으로, 상대의 감정이 간접적으로 직결되는 기분이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손 사이로 땀이 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엘자도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제랄은 눈을 꾹 감았다 뜨고 말했다.
"어디까지 닿아도 될지 모르겠어서,"
내가 혹시라도 자제를 못할까봐....
그 말에 엘자가 터졌다.
으아아아
아아아
아아
아
.
.
.
"벌써 다 왔네. 생각보다 광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그래도 다 도착한 상황이라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삐걱삐걱 걷는 엘자를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제랄이 고생 꽤 했을 테니까.
엘자는 그제야 풀린 손을 내려다보았다.
꽉 맞잡았을 때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손. 그리고 제랄을 바라본다.
"할 말이 있어."
"...뭔데?"
엘자가 작게 미소짓는다.
"동료들과 백년 퀘스트를 떠나기로 결정했어."
백 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무도 완료하지 못했다는, 극악무도한 난이도의 퀘스트.
첫 데이트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할 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봐서.
다만 제랄이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한동안 보기 힘들겠네. ...무사히 돌아올 거지?"
"혼자가 아니니까."
엘자 스칼렛의 강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동료로부터 온다. 제랄은 그것을 잘 알았고, 곧 신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하지만 엘자가 이 얘길 꺼낸 건 다른 목적이 있었다.
'요즘 연인들은 하루만에 거기까지 다 뺀다던데?'라고 말하던 카나의 목소리. 거. 거기까진 무리지만. 역시 무리지만!
"...한동안 보기 힘들 거니까...."
그래도 손잡기보다는 좀 더.
엘자가 머뭇대며 제랄의 손목을 붙잡아왔다. 놀란 듯 그의 눈이 크게 뜨였지만 곧 그가 웃었고.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제랄의 입술이 엘자의 뺨에 맞닿았다.
"무사히, 그리고 빨리 다녀와. 엘자."
긴장으로 꾹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올린 엘자가, 붉어진 뺨을 매만지며 답했다.
"오, 오우...."
* * *
그리고 시간은 흘러 엘자 스칼렛이 백년 퀘스트를 수행하다가, 묵신룡의 보주를 깨트리려는 임무를 수행하다 세뇌당한 제랄과 마주하고. 여차저차 사건이 무사히 해결된 뒤!
제랄이 밭은 숨을 터트리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일으켰다. 헉, 허억. 흡사 굉장한 악몽에서라도 깨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좀 달랐다.
솔직히, 엘자와 사귄 이후로도 그는 엘자에게 특별한... 성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에게 있어 엘자 스칼렛이란 존재는 지켜야 할 대상이었고, 속죄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소중하고, 또 지키고 싶은 사람이다. 손이 닿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았던 기분은 그 스스로도 과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아니, 하고픈 얘기는 이게 아니다.
문제는... 요즘 꿈에서.
엘자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청심의 갑옷을 입고 양 손이 자신의 마법으로 구속되어 있는 모습이나, 유혹의 갑옷이란... 걸 입고 자신을 유혹...하는 모습이나, 또.
자신은 그 모습 앞에서 속절없이 엘자에게 넘어가버리는 모든 순간들.
꿈이지만 꿈만 같지가 않은 순간이었다. 현실에서 겪어본 적이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
엘자는 그에게 있어 지켜야 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그런 엘자를 꿈에서 마주하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른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제랄 페르난데스, 28세, 독립 길드 크림 소르시엘의 길드 마스터.
난생 처음으로 '그런 '꿈을 꿔버리다.
* 그냥... 간단한 꽁냥꽁냥과... 암튼 데이트... 이후로 벌어질 일에 대한 암시로! 마무리 짓는 걸로
* 썰 완결이에요^_^ 이제... 본업에 집중해야 해서 다시 연성 올릴 일은 없겟지만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에휴 .... 빨리 원작에서도 얘네가 결혼을 해야 하는데... 옆집 가질래비는 애까지 있는데 얘넨... 아휴...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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