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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연성/페어리테일

[제랄엘자/모브엘자] 소개팅 썰 3

by 여우비야 2023. 3. 18.

 

 

 

"……뭐냐?"

 

간만에 길드로 돌아온 뇌신중은 평소와 다른 길드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느 한 인물을 중점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 아니. 그게."

"얼굴 하나는 제법 쓸만했던 것 같은데. 마음에 안 들었어?"

"얼굴? 그, 글쎄. 잘… 생기긴 했다."

"애프터는? 잡았어? 이번 한 번으로 쫑나는 거 아니지?"

"그게…."

 

"어머, 렉서스."

 

돌아온 거야? 얼굴을 제 머리카락만큼이나 빨갛게 물든 채 여길드원에 둘러쌓여있는 엘자의 모습이라.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렉서스에게 다가온 것은 미라젠이었다.

 

"저게 대체 뭔 일이야?"

"후후, 엘자가 말이지, 최근에 카나를 주선으로 소개팅을 해서 말이야."

"소개팅? …저 녀석이?"

"진짜 의외지."

 

렉서스는 한 인물을 머릿속에 그렸다. 미스트건. 아니지, 제랄 페르난데스. 대마투연무 때 같은 팀이기도 했던 남자를 떠올린 렉서스는 미간을 좁혔다.

 

"그 녀석. 그렇게 안 봤는데 개뼈다귀 같은 녀석이었나."

 

만나본 적이 그리 없었던지라, 렉서스는 자연스럽게 제랄이 엘차를 뻥 차버린 상황을 연상하고 있었다. '엘자. 미안해.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안돼, 제랄! 날 차버리지 마!' …같은 애니메이션이 렉서스의 눈앞에 펼쳐지는 사이, 프리드와 빅스로도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에버그린은 길드 앞에서 헤어졌다-.

 

"미라. 그렇다면 엘자가 그 남자와 헤어졌다는 소리인가?"

"완전 빅 뉴스잖아!"

"아니, 아니. 헤어진 건 아니야."

"뭐? 사귀지도 않고 있었단 말이야?"

 

상념에 빠져있던 렉서스가 다시금 얼굴을 구겼다. 당연히 사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 그러면 그 자식은 아직까지 고백도 하고 있지 않았단 말이야? 여전히 제랄 쪽을 욕하는 마음은 같았지만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팔은 안쪽으로 굽는 수순이다.

넷이서 이리저리 숙덕거리는 사이, 엘자는 난생 처음 겪는 고역에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카나, 레비, 루시, 리사나며 샤를에 아닌 척 눈을 반짝이고 있는 웬디까지.

시선에 잡아먹힐 것 같군! 엘자는 뺨의 열기를 이겨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애프터는, 잡았다."

 

엘자의 표정이 다소 진중해졌다. S급 퀘스트라도 신청한 것처럼 결의 서린 표정에 카나와 레비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제랄이 의심스럽다고 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쪽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으니…. 끙. 헤어지기 전 보았던 라티오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는 기분에 엘자가 착잡하게 턱을 매만졌다.

 

"다음 번에도 함께 데이트에 어울려 달라기에…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만."

 

그저 의심을 품은 부분에 대해서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을 테다. 엘자는 슬그머니 한쪽 눈을 떠 길드원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술병을 툭 떨군 카나. 입을 떡 벌린 레비와 루시, 경악한 리사나와 날갯짓을 멈춰 서서히 하강하는 샤를. 그리고 충격받아 딱딱하게 굳은 웬디까지.

…이럴 정도의 반응인가? 엘자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렉서스는 찌푸린 미간을 풀지 않았다. 다만 굳어버린 미라젠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며 말하길.

 

"그 '질투 작전' 실패한 거 아니냐?"

"에… 엘자가… 자진해서 데이트를…."

"이대로 가다간 홀라당 다른 녀석이 채가게 생겼는데."

"엘자가……."

"…어, 어이. 미라!"

 

충격을 받아 옆으로 쓰러지는 미라젠을 렉서스가 다급히 붙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렉서스의 말에 프리드와 빅스로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미라젠이 저렇게 충격받을만도 했다. 지금까지 페어리테일 내에서 엘자가 남성을 대하는 방식이라 하면….

…음. 폭력? ……훈육? 그 결과물인 나츠와 그레이를 떠올려보는 둘이었다. 하물며 함께 목욕까지 하던 세 명을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저런' 반응을 보이던 건 그 제랄이라는 상대가 유일했었는데.

이젠 둘이 되었다. 이 말이지 않나.

프리드가 혼자 생각에 잠긴 사이 빅스로가 헤롱거리는 미라젠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티타니아를 저렇게 만든 그 상대는 누군데?"

"으으으…. 누구였더라. …분명 팔수스 길드의 길드장이었는데…."

"팔수스?"

 

팔수스 길드. 그 단어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렉서스에 프리드가 그를 불렀다. 렉서스?

팔수스, 팔수스라. 렉서스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착각인가.

 

 

* * *

 

 

"…네가 왜 여기 있냐?"

"페어리테일?"

 

페어리테일의 마도사, 그레이 풀버스터는 간만에 쥬비아 없이 홀로 일을 하던 중이었다. 듣자하니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다 했던가. 스스로 말하기에 우습긴 하지만, 쥬비아가 자신보다 우선하는 약속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레이는 뒷목을 쓸어내리며 육마장군, 아니, 크림 소르시엘의 길드원인 소여-레이서-를 바라보았다.

 

"쥬비아가 멜디를 만나러 가는 것 같던데. 너도 개인 일이냐?"

 

개인 의뢰는 완료했고, 다만 그 끄트머리에 캥기는 점이 있어 홀로 꼬리를 추적하고 있던 그레이였다. 크림 소르시엘의 주된 일은 어둠의 길드를 파괴하는 것. 이 녀석들은 길드 전체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던 모양인가?

그레이가 서류 하나를 팔랑거렸다.

 

"털어낸 거 있는데. 같이 볼래?"

 

악동같은 웃음이 얼굴 위로 그려져 있었다.

 

 

* * *

 

 

"그래서 말이죠, 엘자 씨."

 

두 번째 데이트 장소는 수목원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걸어가며, 그가 지나가던 상인에게서 꽃송이 하나를 사 엘자에게 건넸다.

남자가 느리게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저는 힘 없던 자들의 복수를 대신하려 길드를 세웠어요."

 

엘자가 달리아 꽃을 손에 쥐었다.

 

"…복수?"

 

그 의아한 목소리에 라티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 나라를 가든 밑바닥은 존재하고, 대부분은 구제받지 못하죠. 스스로 그 밑으로 빠진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위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떨어진 게 아니겠어요."

 

밑바닥. 엘자 스칼렛이 절로 연상하는 것은 '아이 사냥'과 관련한 장면이었다. 불타던 마을과 혼비백산해 도망치던 사람들, 울먹이던 어린 소녀, 끝내 붙잡히고 말았던 자신.

그리고 시작되었던 긴 지옥. 엘자는 문득 아늑한 꽃밭을 걷고 있는, 갑옷으로 둘러싸인 자신을 돌아보았다. 과거는 떨쳐냈다. 악몽도 이젠,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면, 어느순간 그림자마냥 제 발 아래에 착 붙어있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티오는 계속해 말했다.

 

"그것이 어찌 떠밀린 사람의 잘못이겠나요."

 

꽃 향기가 독했다.

 

"밑바닥을 방치한 국가의 잘못이고 죄없는 자들의 등을 떠민 죄인의 과실이지…."

 

엘자가 입을 열었다.

 

"징벌자를 자처하는 건가?"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죠."

"그들이 원했나?"

"누군들 원하지 않았겠나요, 선택지가 주어진 적이 없어서 그렇지."

"너의 복수는 어디까지 향하는 거지?"

 

올곧기 짝이 없는 여자의 눈은 그 자체로 그가 빛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을 마주하다보면, 라티오는 제랄 페르난데스를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그냥 둘 수가 있겠어. 인간은 무릇 선을 동경한다. 무너지지 않는 것, 나아가는 것, 결국엔 정의를 택하는 그 모든 것을.

가진 적도 없으니 이렇게 욕심이 끓어오르는데. 라티오가 힘없이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 * *

 

 

완전한 속죄는 존재하는가?

소여가 크림 소르시엘로 가져온 서류를 바라보던 제랄은 착잡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라티오 소르티오. 28세. 징벌 길드 팔수스의 길드장.

낙원의 탑과 관련한 모든 가담자를 도륙한 비밀리의 살인자.

 

'거짓'이라는 뜻을 가진 길드의 이름답게, 팔수스Falsus는 겉으로 피오레 왕국 공인의 자선 길드였다. 갖가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길드원 전체가 자선 활동에 봉사하는, 젊은 마도사인 길드장을 중심으로 꽁꽁 얽혀있는 소수 정예 길드.

하지만 서류에선 그 뒷면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아이 사냥 당시 그 행적에 발이라도 걸친 모든 이의 정보가 이 서류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 위로 빨갛게 그어진 줄은 제거를 뜻하는 것일 테다.

짚이는 점은… 그 이름들 뿐 아니라, 이따금 옆에 사족처럼 적힌 붉은 글씨의 내용이었다.

 

[ 워덴 이트라 - 부, 모, 형(밀고자) ]

[ 투란 설리 - 남편, 아들 ]

[ 다쿠스 다아렌 - 조모(밀고자) ]

 

함께 그 내용을 읽었던 그레이가 탄식했다.

 

"가족들까지 다 죽인 것 같지."

 

한때 낙원의 탑의 주인이었던 남자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상대는 도를 지나친 복수를 원한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 * *

 

 

"방관한 자들까지도. 모두."

 

꽃 향기가 독해,

엘자 스칼렛은 눈앞의 남자를 찰나 동정했다.

 

"같은 심정을 느끼게 해줘야 그게 진짜 복수인 거죠."

 

인간은 무릇 선을 동경한다. 무너지지 않는 것, 나아가는 것, 결국엔 정의를 택하는 그 모든 것을.

그러나 그는 어둠에 자신을 처박아두길 형벌로써 택했고, 빛을 갈망하더라도 때가 늦어버린 것을 알았다.

후회할 것을 알면서 멈추지 못하는 것 또한 인간의 나쁜 특성이었으니까.

 

 

 

 


* 달리아의 꽃말에 변덕 배신 불안정 이런 게 있다네요... 근데 이런 꽃말보단 더 좋은 꽃말이 주류인듯

* 어둠의 길드 추격하다 보니 애매하게 그 사이 걸쳐있던 팔수스를 발견한 그레이와 크림 소르시엘... 팔수스는 공인된 정식 길드지만 그건 아직 살해 행각이 들키지 않아서... 라는 이유. 들켰으면 바로 블랙리스트 올라감. 그리고 그걸 그레이랑 크림 소르시엘이 알아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