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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연성/페어리테일

[제랄엘자/모브엘자] 소개팅 썰 2

by 여우비야 2023. 3. 11.



“어-이! 엘자! 어디 있냐!”

싸우자! 길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나츠는 익숙한 머리카락을 찾으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킁, 엘자의 냄새가 안 나는데? 아이아이. 의문을 해결해주려 다가온 사람은 루시였다.

“엘자는 지금 바빠.”
“혼자 임무라도 받아서 떠난 거냐?”
“아니면 저번처럼 시말서를 쓰러 떠난 걸지도 몰라!”

어딘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어깨를 쫙 피고 있는 루시와, 뒷머리만 벅벅 긁는 나츠. 그리고 가볍게 공중을 한 바퀴 도는 해피. 오늘도 평화롭구나~. 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미라는 길드원의 부름에 총총 자리에서 사라졌다.

“임무도 시말서도 아니야! 그것보단 조금 더….”
“더?”
“…핑크빛 분위기랄까….”
“…루시. 얼굴 흐물흐물 이상해.”
“뭐? 해피, 너무한 거 아냐?”

두 손을 꽉 잡고 소녀마냥 대신 설레하는 루시에게 타박을 주는 건 해피 쪽이었다. 의외로 나츠는 루시의 말에 깊게 생각에 잠겨 아무 말이 없었다. 루시와 해피는 한참 투닥거리느라 그런 나츠를 눈치채지 못했다.
나츠는 그저 생각했다.

이상하네. 뭔가 감이 구린데.


* * *


“제-랄. 그러니까 빨리 이것 좀 사다 주래도!”
“…멜디.”

제랄은 소위 말해 땡깡을 부리는 멜디에게 난감한 눈빛을 보냈다. 못 해줄 것도 없었다만 솔직히. 솔직히? 본인이 직접 갔다 와도 되는 일 아니었나? 요는 그것이었다. 멜디는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할 사람이 아닌데, 오늘따라 과하게 집요한 구석이 있다는 것.
그 의심 짙은 생각을 듣고 있던 코브라가 드러누운 멜디를 발로 툭툭 찼다. 야. 저거 눈치채고 있는데. 헉, 진짜? 재빠른 시선 교환이 오고갔다.

멜디는 냅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어차피 그쪽으로 갈 일 있잖아. 나 간만에 쥬비아랑 약속 잡았는데 하필이면 딱 오늘만 한정판을 판다고 하잖아~.”

당연히 멜디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정 아닌 투정을 연기하는 상황이 쪽팔렸다. 길드장 님아. 너는 엘자 씨랑 이어지고 나면 나한테 진짜 한 턱 쏴야 한다. 코브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무래도 이건 크게 쏴야 하는 게 맞지.
그 사이 제랄은 멜디가 쥬비아를 만나러 간단 부분에서 흔들리는 참이었다. 내가 말이 너무 심했나? 그래, 멜디도 때로는 동성 친구와 놀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피오레 제국으로부터 내려진 은사를 받을 거니까….

망설이던 제랄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피오레 광장 근처에 있는 <라 루나>에서 한정판 디저트를 사오면 되는 거겠지?”
“정말이지, 제랄?! 한정판 ‘쁘띠 큐티 사랑의 멜로 푸딩’을 사다주면 돼.”
“그. 그래. 그. 쁘띠… 사랑… 푸딩 말이다.”

얼떨떨해하며 길드를 벗어난 제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길드원들은 문이 탁 닫히자마자 숨죽여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너 연기 잘 한다?”
“사랑! 이군요.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요.”
“잘 테니까 다 끝나면 얘기해줘….”
“하여간, 남자가 저렇게 답답해서 어디에 쓴담. 멜디도 고생이 많아? 간만에 상태나 보러 왔는데 제자리잖아.”
“근데 소여는 어딜 간 거야?”
“글쎄요….”

최근 세이버투스로 이적한 소라노가 머리를 북북 쓰다듬어주고 있는, 멜디만 제외하고 말이다.
멜디는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투정을! 제랄에게!
그저 속으로 이를 갈듯 읖조릴 뿐이었다.

안 이어지기만 해봐라….
그땐 확 그냥!


* * *


엘자와 라티오는 커피숍을 나와 광장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나와는 술자리에서 만난 거라고?”
“아, 네. 내기를 하자 하시길래, 아무리 그래도 얼마나 마실까 싶어서….”
“졌군.”
“와, 꼼짝없이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뒷목을 쓸어내리는 남자에, 엘자 또한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이 남자와 대화하는 건, …편했다. 가슴 한 켠에 쌓여져있던 책임감과 중압감을 자연스레 내려놓게 되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카나 씨에게 돈은 좀 털렸지만.”
“…돈을… 털어갔나?”

물론, 같은 길드원의 실수에는 그 엘자도 상대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흡사 고양이처럼 자신을 곁눈질하는 모습에 라티오가 키득키득 웃었다. 가벼이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 괜찮아요. 괜찮아. 덕분에 원하던 것도 얻었는데요.”
“…내기에서 졌다 하지 않았나?”

고개를 기울이는 엘자를 바라보던 라티오는 잠시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금 엘자와 눈을 맞추고, 예고 없이 고개를 가까이 한다.
그가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덕분에 연이 닿아서, 엘자 씨랑 데이트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곁에서 툭,
누군가가 든 디저트 상자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에 찬 제랄의 눈동자가 엘자를 향하고 있었다.

“엘자…?”
“…제랄?”

황당한 상황 가운데, 라티오만이 의뭉스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제랄이었다. 표정을 갈무리한 그는 떨어진 디저트를 주워들었다. 생각해보니 큰일 났군. 푸딩인데… 다 부서졌을까?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그보다도.
얼굴이 가까웠다…. 누구지? 엘자에게 연인이 있었나?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니, 아니면.

…약혼자? 말도 안되는 상상이 제랄의 머리를 직격한 순간이었다.

“엘자.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군. 그런데 네가 왜 여기에….”
“아, …이거.”

제랄은 우물쭈물 자신이 든 푸딩 포장 상자를 들어보였다. 민망함에 헛기침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멜디가 부탁을 했어.”
“푸딩을?”
“응, 그런데. …옆은 누구인 거지?”

어쩌면 집요하게 엘자만을 향하던 제랄의 시선이 최초로 그 옆에 자리한 남자, 라티오에게 향했던 순간이다. 흑색 머리카락, 붉은색 눈동자를 작게 휜 그는 작게 인사했다.

“엘자 씨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상대입니다. 부족하지만 한 길드의 장을 맡고 있어요.”

묘한 어조. 그것에 엘자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눈을 다소 가늘게 뜨는 제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당신은, 엘자 씨와 아는 사이신가요?”

보란듯 엘자의 한쪽 어깨를 붙잡아 끌어안는 손길 하며, 당당히 말하는 내용 하며.
누가 봐도 라티오는 자신이 엘자와 더 ‘아는 사이’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고작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랄은 순간 어이가 없어 웃었다. 데이트라고.
설마하니 지금 자신을 견제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과 엘자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아.
찰나 끓어오르던 제랄의 감정이 차게 식었다.

“…제랄은, 내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리고 제랄, 어, 이 자는….”
“엘자 씨의 데이트 상대죠.”
“데, 데! …가 아니라. 소, 그게.”

라티오의 앞으로 한 걸음 걸어나오며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는 엘자와 그 옆에서 툭툭 말을 던지는 남자의 모습. 그것을 앞에 둔 제랄은 느리게 숨을 가라앉히며 작게 웃었다.

소개팅이라고, 엘자?”

…평소였다면 곧 죽어도 내뱉지 않을 말이었다. 빛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곁에 붙잡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은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았으므로, 그러니 엘자만 괜찮다면 축하해줘야하는 게 마땅치 않나. 상대만 괜찮은 작자라면.
제랄은 여기서 이 마지막 문장을-자신의 충동적이고 흡사 뻔뻔하기까지 한 감정 변화와 행동의 변명거리로 삼기로 했다.

“많이 심심했나보네.”

엘자의 곁에 다른 남자가 서 있다는 게 너무도 눈에 거슬렸다. 왜? 이유는 정의내릴 수 없었다. 정의내리지 않았다. 알았다. 그가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더 행동하지 않았어야 했단 것을.
그러나 엘자를 슬쩍 뒤로 보내며 그의 앞으로 걸어나오는 라티오의 모습에, 제랄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감정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사내다.
라티오는 제랄을 마주 선 채 여유롭게 웃었다.

“이제 제가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드리려고요.”
“……너.”

“그만!”

불꽃이 번쩍번쩍 튀던 둘의 사이를 가로막고 선 것은, 엘자였다.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고 제랄을 노려보는 엘자의 모습에 둘은 그때에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티타니아 아니야? 저 잘 빠진 남자들은 누구람…. 어? 저 파란 머리,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사람 같은데….
아뿔싸. 제랄의 얼굴이 난감함으로 젖어들어갔다. 은사를 받을 예정이라고는 하나 아직까지 그는 범죄자 신분에나 다름 없었다. 그 기색을 읽은 라티오가 비죽 웃으며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 했다.
엘자가 제랄의 손목을 탁 붙잡지만 않았어라도, 그리 했을 것이다.

그의 올곧은 눈이 라티오를 향했다.

“미안하다, 라티오. 잠시 제랄과 대화할 시간을 주지 않겠는가?”

…’홀린다’는 것이 이런 건가?
정신을 차려보니, 라티오는 엘자와 제랄이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서 있었다.


* * *


근처 골목길로 들어온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붙잡고 온 손목은 놓아준지 오래였다.
땅바닥 언저리를 바라보던 엘자는 애써 분위기를 풀려 웃으며 물었다.

“평소랑은… 조금 다르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제랄?”

문득 동료가 전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놈은 확실히 멋있긴 해도, 여자에게 좋은 남자는 아니야. 고작해야 그런 말에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이 우습기도 하고, 또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칠 수밖에 없던 시간이 아프기도 했다.
약혼자가 있어. 그 말에 담긴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엘자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글쎄.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것 같네. 그냥.”

네가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진 몰라서. 놀랐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엘자는 팔짱을 끼며 가만 벽에 등을 기댔다. 난감하다. 아주 난감해.

…왜 자신이 바람을 피운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느냔 말이다!

“그, 그랬군. 나도 원래 관심은 없었는데. 미,라랑 카나가 하도 권유해서….”

변명하듯 말하게 되는 것에 창피함과 수치심이 뒤엉켰다. 제랄과 자신은 엄밀히 말해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 마음이 있다곤 해도 겉으로는….
제랄은 머뭇거리다 말을 붙였다.

“…그 상대방 말이야. 조금, 감이 안 좋던데. 괜찮은 사람 맞아?”
“…뭐?”

순간 공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엘자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의뭉스러운 눈으로 제랄을 바라보았다. 제랄이 상대를 다짜고짜 깎아내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신뢰에서부터 비롯된 행동이었다.

“아직까진. …괜찮은 사람 같아. 조금 부끄럽지만 내 팬이라고도….”
“…그래?”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한 거지?”
“그건….”

그러나 안타까운 부분은, 제랄이 이번만큼은 그 신뢰에 부응할 만큼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페어리테일이 해체되었던 이후, 단독으로 활동했던 엘자와 종종 팀업을 이루곤 했던 둘은 좋은 파트너였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 서로의 추측이나 경고엔 의심조차 않는다.
그렇기에 엘자가 제랄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어떤 것을 토대로 그런 경고를 하느냐고.

제랄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엘자는 괜히 그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실망으로 젖는 기분을 가졌다.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먼저 가겠다. 예의가 아니니까 말야. 그리고….”
“…미안. 너무 붙잡았나봐.”
“한 번 지켜보겠다. 아직까진 잘 모르겠지만 말야.”

그 말을 끝으로 엘자는 골목길을 벗어나 환한 대로로 나갔다. 그림자 지는 경계. 그 안으로 남아있는 것은 제랄 뿐이라, 새삼스럽게도 제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거칠게 마른 세수를 했다.

“머저리같이….”

자신이 먼저 그렇게 말해놓고선, 이제와 엘자에게 욕심을 내려 하다니. 결국엔 합리적인 의심조차 아니었다. 그저,
추하기 짝이 없는 질투 뿐.


* * *


“…어떻게 할까요?”
“아직은…. 더 지켜보도록 하지.”

누군가와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던 라티오가 저 멀리 보이는 붉은색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가봐. 손짓에 의문의 여인은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굳어있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떠오르고, 다가오는 엘자를 향해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대화는 다 끝났어요?”
“오, 오우. …미안하군. 다짜고짜 이렇게 혼자 두고 가다니. …소개팅 상대로 실격이야.”
“실격까지는 심하지 않아요?”

주먹을 꽉 쥐고 미안함을 표하는 엘자를 보던 라티오는 손으로 입가를 쓸었다.
그 아래로 짙은 웃음이 지나간다.

“그래도 정 미안하시면… 다음 번에도 데이트 해주지 않으실래요?”

이렇게 이용할 만한 감정을 쉽게 내보여서야. 그가 눈꼬리를 살며시 내렸다.

“저, 엘자 씨가 마음에 들거든요.”

엘자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 소개팅 썰은 길게 가진 않을 것 같은데? 좀… 짧을 것 같은데?(기획부터 사실 해프닝 수준이었음) 그래도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3-4까진 갈까 싶어요

* 뜬금없는데 엘자-나츠/그레이의 유사남매 관계가 너무 좋음…. . .. 페어리테일은 가족 아닌가? 렉서스가 맏이고 엘자 미라 장녀고… 암튼 그런거임 반박 못함 ㄹㅇ
* 사실 갠적으로 제랄-메르디도 오빠 여동생같은 느낌이 좀 있는듯,,, 걍 가좍.관계에 내가 환장한 걸까?… 그치만 길드는… <가족>이잖아? 가족이라는 소리잖아???…

* 뭔가 꿍꿍이가 있는 라티오… 그리고 머저리같은 제랄… 갠적으로 원작에서도 제랄이 엘자의 자유로움을 존중하고… 엘자의 행복을 바란다고는 했지만 정작 이런 식으로 상대방이 떡 나타났으면 자각하지 못하던(혹은 억눌러두던) 욕심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음… 솔직히 원작 엘자도 약혼자가 있다는 말을… 제랄도 엘자를 좋아하지만 엘자를 존중하고, 또 자신의 죄가 깊으니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 같음 아니면 말고(…)
* 하지만! 결말에서조차 연애까지 가지 않는 건 너무 심했어. 여기서라도 더 일찍 사귀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