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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연성/페어리테일

[제랄엘자] 포지션 반전 썰 7 (完)

by 여우비야 2023. 2. 23.

개인적으론 너덜너덜해진 엘자를 제랄이 부축해서 니르바나든 오라시온 세이스의 다른 인원이 있는 곳이든 향할 것 같은데 대마투연무 때 제랄이 엘자 부축해주던 그런 자세로 갈 것 같음. 처음에는 전략적으로 어떻게 현 상황을 극복해나갈 것인가… 니르바나를 통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 것인가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침묵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또 하잘 것 없는 이야기가 나올 타이밍이 올 것. 먼저 입을 연 건 엘자.
- …미안하다.
- …뭐가?
절뚝이는 걸음에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부축해줘도 걸음걸이는 나아질 모양이 아니고, 서서히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질질 늘어지는 그림자에서 제랄은 조금씩 불길한 예감을 느꼈음.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리란 직감. 이미, 한 번 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 아직 마법을 사용하는 게 능숙하지 않아. 짐이 되었어.
- …엘자. 그거 알아? 지금 미안해야할 건 내 쪽이야. …네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널 구하러 오지 못했잖아.
제랄이 애써 장난스럽게 얘기해봐도 미묘한 분위기는 풀릴 생각을 않고.
- 적에게서 얘길 들었다.
심장이 낮게 떨어지는 감각.
- 무슨 얘기를?
부축하는 손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간다.
- 평의회가 날 쫓고 있다고.
브레인과 전투를 하며 브레인이 다른 육마장군으로부터 전해들었던 얘기를 떠올렸었기 때문. ‘그러고보면 요즘 평의회가 가열차게 쫓고 있는 마도사가 있던데.’ 성십마도사로 위장했던 울티아와 낙원의 탑 사건이 에테리온과 연관해서 드러나게 된 이후 밝혀진 탑의 주인, 엘자에 대한 수배령. 이걸 가지고 브레인이 엘자를 회유하려 하기도 했을듯 어차피 쫓기는 몸인데 기왕이면 이 편으로 함께 들어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렇다면 제랄도 넝쿨째 굴러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물론 엘자는 거절했겠지만, 덕분에 제랄이 엘자에게 숨기고 있던(숨기고 있었다!) 평의회의 추적 사실을 깨달았고. 급하게 설정 추가함. 이래서 퇴고를 해야 하는 건데? 어쩔 수가 x.

지친 채로도 선명하게, 올곧기 짝이 없는 눈이 제랄을 직시했음. 알고 있었나? 그리 묻는 음성에서, 표정과 담담한 숨소리에서부터 제랄은 어떤 거짓말도 쉬이 할 수 없었고,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음. 고개를 들어 저무는 하늘을 한 번, 또 고개를 숙여서 발 밑을 한 번 바라보다가.
- …네가 알았더라면 넌, 바로 이렇게 행동했을 거니까.
그 짐작에 다소 기분이 날카로워지는 건 엘자 쪽이었음.
- ‘이렇게’?
- …넌 곧바로 죗값을 치르고자 했을 테니까.
제랄도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겠지만 조금이라도 엘자와 있는 시간이 유예되었는데(쇼와 밀리아나, 월리를 찾으러 가는 여정 가운데), 엘자에게 이 소식이 들린다면 엘자가 무엇을 선택할지, 무게의 추가 ‘자수’하는 쪽에 기울어져서. 즉, …초조해져서.
- …그렇다 해서 네가 이 사실을 내게 숨겨도 된단 이야긴 아니었다.
- 끝까지 숨기려곤 하지 않았어. 그냥.
제랄이 머뭇거리다 말을 이음.
- ……너도 쇼와 월리, 밀리아나를 찾으려고 했었잖아.
날카로워지던 분위기가 다소 차갑게 굳음. 제랄이 엘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많은 고민을 했던 것처럼, 엘자도 그 말을 들은 이후 여지껏 그걸 생각해왔기 때문.

그래서일지, 충동적으로 말하길.
- 우린 언제까지고 함께할 수 없다. 제랄.
…고즈넉한 해 질 녘, 바람이 스치울 적에만 귓가를 간지럽히는 나뭇잎 소리며, 아주 저 멀리서나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는 떨어진 마음으로부터 이는 파문을 가라앉혀준다. 이상하게도.
부축하던 손길이 천천히 떨어지고, 어느덧 스스로의 힘으로 제랄을 마주 선 엘자 스칼렛은 변한 적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 우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야 해.
하필이면 강한 바람이 스치고, 흩날리는 붉은 머리카락은 붉은 태양빛을 머금어 더욱 그가 사랑하는 빛깔로 타오른다. 때때로 그는 그의 앞에 설 때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을 가졌다.
엘자 스칼렛이란 여자와 함께 있으면 간혹 이성이 무너졌다. 충동에 사로잡혔고, 한없이 나약해지다가도 필사를 다했다. 참으로 지독하고 끔찍한 그의 죄가 형상화된 것이 눈앞의 사람이었으므로, 엘자 스칼렛은 그렇기에 이 순간으로 확신했다.
남자가 자신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를.
- …….
몇 번이고 눌러 담아두던 다짐은 왜이리 쉽게 통제를 벗어나는지. 이게 옳다고 속삭이던 음성은 사그라들고 마는지. 엘자 스칼렛을 위한 길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하던 순간은 이리도 비참하게 무너진다.
- 네가, 짓지 않은 죄잖아.
이미 나누었던 대화였다. 그럼에도 다시 화제로 서게 된 것은, 그가 결국 포기하지 못했단 뜻이겠지. 엘자가 주먹을 콱 쥐었다.
- 그렇다곤 해도 ‘내’가 저지른 짓이 사라지지는 않아.
가해자는 ‘이곳’에 존재하질 않는데 피해는 크고, 선명했다.
-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늦추자는 거야. 엘자. 네가 바라던대로 쇼와 월리, 밀리아나를 찾고 나서라도…,
격양된 감정을 서로가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해가 다 저물어 어둠이 숲을 집어삼키기 시작할 때.
엘자와 제랄은 순간 저 너머로부터 끼치는 살기에 몸을 긴장시켰다.
선명한 기척, 그러나 들려오는 발소리는 없다.
상대를 확인한 제랄의 눈이 크게 뜨였다.
- 너,
- 아버지도 너무하시지.
악몽이 깨어났다.
- 당신께서 수 틀리신 걸 내게 어찌 수습하라 하시는지.
졸음기 섞인 음성에 제랄이 엘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라시온 세이스의 미드나잇, 그의 붉은 눈이 그들을 사납게 응시했다.
- …너희도 그렇게 생각할까?
저문 하늘보다 더 새카만 어둠이 휘황찬란한 별빛과 충돌했다.
* * *


말다툼을 시전하다 갑작 미드나잇과 조우하게 된 제랄&엘자… 엘자는 다친 상황이라서 뒤로 빠져있고, 제랄이 악몽이랑 싸움. 미드나잇의 굴절 마법에 좀 당하나 싶더니 엘자처럼 잘 파악하고!! 이제 완전히 제압하려는 그때!!!
미드나잇의 환영 마법이 발동되고… 제랄이 제일 마주하기 어려워하는 환영이 나올 것 같다. 원작에선 미드나잇 본인이 굉장히 강한 괴물이 되는 환영이었던가? 근데 여기선 그냥 원작 설정 무시하고(죄송합니다) 코브라에게 주워들었던 이야기를 통해(원래 자면서도 귀는 다 열려있기 마련) 엘자와 관련된 환상을 보여줬다던가… 그런 식으로.
원작에서도 알바레스 제국과 싸울 때 그. 누구였더라. 그. 베르세르크? 아닌데. 아 나인하르트?? 랑 싸울 때 시몬의 히스토리아를… 진짜 시몬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던 제랄이었으므로. 카구라의 음성을 듣고서야 시몬을 벨 수 있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엘자의 어시스트 없이는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여기서 제랄을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구해주는 건 엘자가 아님. 바로 나츠임.
엘자도 제랄을 구하기 위해 소리도 쳐보고 했을 것 같지만 미드나잇의 견제를 뚫고 갈 만한 힘이 없었을 것 같음 아직도 웬디 못 만남… 저런. 그렇게 엘자는 눈앞에서 제랄이 조금씩 미드나잇에게 당하는 걸 보고 있고, 제랄은 그게 환영인 걸 뒤늦게 깨닫고서도 벗어나는 데 힘을 못 쓰는 상황이었음. 원래라면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바로 풀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한참 엘자랑 말다툼하기도 했고, 뭔가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이었을 것 같음. 밸런스 패치 양해 부탁.
그런데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가,
불현듯, 저 멀리서 날아온 물체가 미드나잇과 충돌해 벽에 부딪혔을 것 같음.
쓰러진 채 당해가는 제랄을 바라보던 엘자는 어둔 밤을 밝히는 강렬한 불꽃을 목격했음.
- 헹, 겨우 이 정도냐,
코브라!
너무도 손쉽게 전황을 뒤엎는 힘. 절망이 내려앉던 공기를 불태우고 새 바람을 불게 만들어주는 능력. 휘날리는 머플러를 바라보던 엘자는 어쩐지,
‘주인공’이 이곳에 도착한 것 같이, 어떻게든 이 상황이 타개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됨.

해피와 함께 코브라와 싸우다 어쩌다보니 이곳까지 날아온, 나츠였음.

덕분에 코브라에게 몸통박치기 당한 미드나잇은 환영을 풀게 되고, 벗어난 제랄은 달빛을 등지고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츠를 마주함.
자신들을 두고 혼자 뛰쳐나간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고, 그리 말하며 지탄하거나 비웃을 수 있었건만.
올곧기 짝이 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며, 나츠는 그저 담담히 말할 뿐이었음.
- 도와줄까, 제랄.
그리고 제랄은 그 순간 나츠의 눈빛이… 엘자의 눈빛과 정말이지 똑같다는 것을 깨달음.
그 순간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숨은 웃음을 닮았고, 제랄은 달빛보다도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에 홀린 사람처럼 얼굴을 쓸어내렸음.
난 대체 왜 계속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하지만 후회할 시간은 없었고, 적들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으므로.
- …응.
제랄이 나츠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음.
- 도와줘, 나츠.
그제서야 나츠가 입꼬리를 끌어당겼음.


나츠와 제랄(+해피) vs 미드나잇과 코브라… 여차저차 힘을 합쳐 쓰러뜨리기~! 왜 엘자가 아니라 나츠에 의해 제랄이 그 곤경을 빠져나오냐면, 아무래도. 그. 이게 작품이… 둘만 주역인 작품이었다면 엘자가 제랄을 구해줬겠지만 엄연히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츠고, 페어리테일은 올캐러…인 소년만화이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 삼으면 안 된다… 건강한 사랑을 지향하기 때문에 제랄은 성장을 해야 함.
그리고 이미 한 번,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기회는 있었음.
낙원의 탑에서 엘자를 구해낸 게 제랄이 아니라, 나츠였다는 점.
전투가 끝나고 어찌저찌 이쪽으로 동료들이 모여드는데 이때에서야 웬디를 다시 만난 엘자는 치료받기 시작하고… 엘자로선 처음 보는, ‘동료들 사이에 있는’ 제랄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전략회의 등등). 그런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다보니 엘자의 뜻은 다시금 확고해졌을 것 같음. 제랄이 있을 곳은 자신의 곁이 아니라 이곳이라는 걸.
그리고 비로소 뜻을 하나로 모은 연합은 가동된 니르바나를 한 번에 파괴하기 위해… 히비키였나? 블루 페가수스의 마도사의 능력을 통해 잠입할 위치를 부여받고, 포지션이 애매하긴 하지만 엘자도 이곳에 참전했을 것 같음. 대신 웬디와 함께 한 팀으로. 왜냐면 원작에서의 엘자-웬디 관계를 내가 너무너무 좋아함… 여기서 조금이라도 뭔가 커넥션을 만들어주고 싶음 따흐흑

니르바나 진입! 제랄은 어찌저찌… 나츠에게 불꽃을 넘겨주게 되고(여기도 사실 길게 풀어야하지만 간추려 적자면 나츠의 성장을 한 번 지켜보고 싶다는 제랄의 생각에서? 졸지에 그레이 분량이 없어졌네 쏘리.) 각성한 제로를 쓰러뜨리고, 또 웬디와 엘자 팀은 엘자가 핵을 부수려 하다가 결국 웬디의 성장을 일궈내는 것으로… 웬디가 천룡의 포효를 익히며 핵을 파괴하도록 스토리가 갈 것 같음. 왜냐하면 엘자는 웬디같은 사람들과 더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니까. 성장해야 하는 어린 아이의 등을 밀어주어야 하는 건 어른의 역할이닉깐….
소년만화 식으로 제랄-나츠의 관계가 회복되고 엘자는 또 다른 곳에서 웬디의 등을 밀어주고, 둘 다 앞으로 시대의 주역이 될 녀석들(나츠, 웬디)의 등을 밀어주는 느낌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연출이 될 것 같다 막. 뭐. 막 벅차오르는 그런 연출. 어쩌구.

그리고 붕괴하는 니르바나에서 빠져나와 한 곳으로 모이는 마도사들… 어느덧 깊은 밤이 서서히 깨어날 시간이었고, 엘자는 웬디와 함께 동료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가다 문득 걸음을 멈춤.
뭐랄까. 더는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발목을 휘감아서일지. 함께 걷던 웬디만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임.
- 엘자 씨? 무슨 일이세요? …니르바나에서 빠져나오시다 어디 다치기라도 하신 건가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웬디를 보던 엘자가 느리게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음.
- …웬디. 너는 어느 곳의 마도사라 했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는 것을 느낀 웬디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답함.
- 캣쉘터의 마도사예요.
- …좋은 길드겠지?
그 말에 웬디의 얼굴이 확 밝아짐. 이것저것 길드 자랑을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엘자는 그저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고…
한참 얘기하던 웬디의 머리 위로 엘자의 손이 올라온 건 예고 없던 일이었음.
웬디가 하던 말을 멈추고 엘자를 올려다봄.
- 엘자 씨?
- 가족을 소중히 여겨라. 네가 어디에 있든지.
낯선 행동을 하듯 어색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웬디의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 아스라이 저 멀리서 밝아오는 새벽녘, 빛.
마법같은 시간에 정신을 빼앗긴 걸까. 웬디는 엘자의 손이 떨어진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하염없이 엘자만 바라봄.
신기해요, 엘자 씨. 마지막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을 발견한 모양인지 동료들의 곁을 떠나 다가오는 제랄의 모습을 본 엘자는, 멈추어 서 있다가 제랄에게 다가감.
뭐라 말하려던 제랄이 입을 다문 것은, 엘자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아왔기 때문임.
순식간에 시끄럽던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상대방만이 보이는 이상한 느낌. 엘자가 손을 내려다본 채 잠시 웃고, 그 모습을, 엘자가 기억을 되찾은 후 거진 처음 본 제랄은 순간 숨을 멈춤.

- 다친 곳은?
- ……괜찮아.
- 사과는? …했나?
- …했지. 꼴사납게.
맞잡은 손. 나무를 넘어 기어오르는 새벽빛을 따라 희끄무레하게 손등 위로 번지는 빛. 밤보다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붉은 머리카락. 제랄의 시선이 어느 곳에 못박혀있는질 알 것 같은 엘자는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나 제랄, 넌 알고 있을까?  천천히 눈을 떠 사내를 바라본다.
밤보다 더욱 난만爛漫하게 빛나는 푸른 머리카락.
상냥하고 애틋한 눈.
- 그렇담 이제 헤어질 때가 온 모양이야.
그렇기에 붙잡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제랄 페르난데스의 가장 큰 두려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마도사의 유일한 약점. 역린.
남자가 오로지 사랑하는…….
- 저, 저 사람들 뭐야?
- 평의회? …사태 수습이라도 하러 온 건가? 이제서야?
영원처럼 굳어있던 시간도 흐르기 마련이나, 제랄은 맞잡은 손을 풀 수 없었다.
다만 몸을 돌렸다. 평의회의 개는 수배령까지 내린 죄인을 결코 좌시하지 않으리라.
말하고 싶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 도망쳐보기라도 하면 안 될까. 미래를 꿈꾸면 안 될까. 그런 걸까.
- 제랄.
같이 있자. 제발. 비명처럼 끓어오르는 것을 혀를 짓씹어서라도 억눌렀다.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목이 타들어간다. 메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감지 말라고, 도망치지 말라고.
끝까지도 올곧은 여자는 그의 뺨을 붙잡아 잡아당긴다.
지켜보라고.
- 가족을 소중히 여겨라.
직전, 엘자 스칼렛이 웬디 마벨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남자를 바라보았던 걸. 그가 알았을진.
- 네가 어디에 있든지. 엘자 스칼렛을 넘겨줄 수 없다며 각자 전투 태세에 들어가던 무리를 평정한 것은 모순되게도 그 원인이 되는 존재였다.
- 그만!
호령하는 목소리. 군더더기 없는 몸짓에 병사를 때려눕히던 나츠가 처음으로 멈췄다. 둘의 눈빛이 마주했다.
넘겨줄 수 없어. 넌 이미 우리 동료야.
우린 동료가 아니다. 난 갈 거다.
나츠 드래그닐이 자신을 동료라 인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제랄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니까. 자신이 없이는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위태롭게 구니까.
그 뿐인 관계다. 엘자는 나츠에게서 시선을 돌려 앞을 향했다.
- 데려가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 엘자에게로 꽂혔다. 삐뚤어진 안경을 바르게 고쳐 쓴 평의회의 사자, 라헬이 곧 입을 열었다.
- …낙원의 탑의 주인, 엘자 스칼렛.
- 그래. 내가 바로 엘자다.
- 평의회의 명입니다. 범죄자인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 …그건 잘못되었어요!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응당 웬디 마벨이 있었다.
- 엘자 씨는, 엘자 씨는 기억이 없다고 했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뛰쳐나오는 소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웬디는 기어이 라헬의 앞을 가로막기까지 하며 소리를 높였다.
- 그러니까 이건 부당해요! 엘자 씨가 책임지지 않아야 하는 죄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두 손이 소녀의 두 어깨에 얹혔다. 앞을 바라보던 시야가 옆으로 돌고, 마주보는 것은 선명한 진홍빛 뿐.
- 고맙다, 웬디.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붙잡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정하게 웃고 있으면 더 붙잡을 수가 없잖아. 서러움으로 웬디가 목놓아 울었다.
- 이별의 괴로움은 동료가 채워줄 거야. 마력을 차단하는 수갑이 채워지고, 말 그대로 죄인이 연행되는 꼴로 향하던 엘자 스칼렛을 마지막으로 붙잡은 건 역시나 남자였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도 될까.
떠나가는 자의 팔목을 붙드는 손길은 외려 건조했고, 그와 그나마 안면이 있는 라헬에게 청하는 음성은 차분하기만 했다.
못마땅한 것처럼 라헬은 안경을 고쳐 썼지만,
- …마지막이다. 제랄 페르난데스.
수많은 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고, 한 명은 마력을 거의 다 넘겨주느라 너덜너덜하고, 또 한 명은 수갑까지 차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하고싶은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제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말해야 했다.
놓친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번엔 제랄 페르난데스가 먼저 엘자 스칼렛의 손을 잡았다.
엘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고백은 단조롭다.
- 사랑해.
…천천히 여자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아주 오래 전, 아주 어렸던 시절 탑의 감옥 안에서나 보았던. 당당히 빛나던 그 웃음.
그의 손가락이 제랄의 손가락 틈을 파고 들었다. 느리게나마  마주 잡는다.
- 나에게서 해방되는 거다.
- ……응.
- 너의 과거와 슬픔은 내가 전부 데려가마.
너는 자유야.
지난한 과거를 끊고 이제는 현재를 살아가야 할 때,
마지막으로 그리는 미래에 너를 품을 수 있게 해달라 부탁한 것이었지만.
역시 넌 들어주질 않나봐. 제랄이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응.
문득 낙원의 탑에서 기억을 잃기 전의 여자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니, 여자가 일방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너를 위한 구원은 네 스스로 해라.
나를 위한 구원은,
내 스스로 한다.
가슴이 시릴 정도로 올곧은 여자라, 따라가기 벅차 곁에 있게만 해달라 간청이라도 했는데. 결국 너는 떠나간다.
나는 이번에도 실패한 걸까? 너를 막지 않는 게 맞는 선택인 것이겠지. 그래도 난,
네 마음에 내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었으면,
- …아, 그렇지.
했,어….
제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입술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온기. 가까이 맞닿는 숨.
지척에서 보이는 엘자의 얼굴.
엘자가 웃었다. 그가 말했다.
- 내 머리카락 색이었다.
찰나의 입맞춤은 애처롭다기엔 짧았고, 그렇다고 잊어버릴만 하기엔 터무니없이 무거웠다.
그래서 그는 떠나가는 손을 붙잡지 않았다.
- 건강해라.
엘자 스칼렛이 떠났다.
- 스칼렛, 네 머리카락 색이야.
- 이거라면 절대로 잊지 않아.
끝내 남자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방울 몇 개가 바닥을 적시나, 곧 말라 사라질 뿐.



* * *



Epilogue.


언제나처럼 소란스러운 페어리테일의 길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본, 여유롭게 술이나 퍼마시고 있던 몇 길드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이봐, 제랄 아니야?! 인마, 너, 갑자기 몇 개월동안이나 사라져 있고 말이야…!
- 기념품 가져온 거 없냐? 멀리까지 갔다며?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난감하게 웃은 페어리테일의 S급 마도사, 제랄 페르난데스는 어깨만 으쓱였다.
- 이미 마카로프 씨에게 말씀 드렸고, 기념품같은 거 사올만한 곳은 아니었어요.
- 무슨 의뢰를 받고 온 건데?
- 맞아, 뭔 의뢰길레 네가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뭐, 100년 퀘스트는 아닐 테고. 한 50년 퀘스트라도 다녀온 건가? 서로 와하학 웃으며 헛소리를 일삼는 길드원들을 자연스럽게 지나친 제랄이 향한 곳은, 최근 페어리테일의 최강 팀으로 불린다며 소문이 자자한 인원들이었다.
목을 축이고 있던 그레이가 먼저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제랄을 바라봤다.
- 여. 왔냐?
- 다녀왔지.
자연스레 짐을 옆에 두며 의자를 빼 앉는 제랄에게로 루시와 웬디, 나츠, 해피의 시선이 몰렸다.
- 그런데 그레이. 옷은 입고 물어볼래?
- …어느 새에?!
- 근데 제랄. 영감님한테 말하고 다녀온 거면 영감님한테 보고 먼저 하러 가야하는 거 아니냐?
- 헉, 나츠가 언제 이렇게 그럴싸한 말을 할 수가 있게 된 거지!
- 아이!
- 나츠 씨, 취급이 조금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레이는 허둥지둥 옷을 입느라 바쁘고, 뭔갈 우적거리며 말하는 나츠에게 태클을 거는 역할은 루시와 해피의 것이었다. 멋쩍게 웃는 웬디를 바라보다, 턱을 괴며 잔잔히 웃은 제랄은 잠시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영감님께 보고하기 전에 너희에게 먼저 부탁해둘까 해서.
…그리고 그 말에 주변에 있던 페어리테일의 길드원 전원이 싹 조용해졌다. 상의를 걸쳐입던 그레이까지!
반응은 몇 초 뒤에 터져나왔다.
- 제랄이? 팀을 구하는 거야? 최강 팀을 흡수? 하는 건가?!
- 흡수? 합병? 뭐가 맞는 거야?
- 그 제랄이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니… 처음 봐.
길드원들이 쑥덕대는 말에 나츠가 발끈했다. 너네! 흡수랑 합병이라니 뭔 뜻이야!
마저 상의를 걸쳐 입은 그레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 그런데 진짜 어쩐 일이야? 제랄이 우리에게 ‘부탁’을 다 하고.
그리곤 어딘가 기분 나쁜 웃음을 씩 지었다. …그것을 마주보던 제랄은 끙, 소리를 내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츠와 그레이, 그리고 제랄 사이에 있던 애매모호한 분위기는 작전이 끝난 뒤 다시금 셋이 뒤엉켜 한 판 붙은 후로 싹 풀렸다. 다만 대련이 끝나고 지쳐 숨을 가쁘게 내쉴 때였나. 그가 부끄러운 대사를 몇 개 쳐버리고 말아서.
…그것과 이전 제랄의 잘못까지 합해, 그레이나 나츠로부터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이렇게 공격을 받게 되어버리곤 했다.
제랄이 헛기침을 했다.
- 너희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어떻게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의뢰 아닌 의뢰를 넣는 느낌이기도 하겠네.
- 무슨 일인데 그래.
- …아아.
다른 곳을 바라보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친 제랄이 곧 웃었다.
- ‘시간의 아크’를 쫓을 거야.
- 시간…?
제랄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가운데, 불쑥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랄을 마주했다.
- 그거, 혹시…!
웬디 마벨. 캣쉘터를 떠나 페어리테일에 입단하게 된 작은 소녀, 그러나.
- 엘자 씨에 관한 일인가요?
명실상부, 천룡의 멸룡마도사.
제랄은 답 없이 그저 웃었고, 웬디는 그에 답을 알았는지 짐을 싸겠다며 기숙사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레이는 잔을 털어내곤 제랄에게 물었다.
- 형량이 언제까지랬지.
- 감형된다면, 글쎄. 어디까지 감형받을 수 있으려나? 사방팔방 연락을 돌려보고는 있는데.
-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곧 혀를 내두른 그레이도 자리에서 떠났다.
- 야, 제랄.
- 응.
- 너. 이번엔 진짜 괜찮은 거 맞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앞에 선 나츠 드래그닐은, 영영 꺼지지 않을 불꽃처럼 반짝이더라. …그것엔 머리 위에 앉아있는 해피나, 곁에서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루시의 덕택도 컸겠지만.
그저 웃음을 흘렸다.
- 그래.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열린 문틈으로 닥쳐오는 환한 빛 사이에서, 그가 유쾌하게 속삭였다.

응,
나 진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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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더 길게 끌다간…(대마투 연무나 알바레스 편까지 가다간) 정말 완결 못할 것 같아서 급 마무리
  • 그래도 쓰고 싶은건 얼추 다 썼네요… 사실 처음부터 쓰고 싶었던 건 엘자가 말하는 “내 머리카락 색이었다.” 였는데? 였는데… ㅋㅋ
  • 둘이 건강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원작도 둘의 관계가 상당히 건강하다고 느끼고 있음 서로의 목적을 존중해주고… 먼 발치에서나마 응원해주고… 좀 고구마 먹는 기분이긴 하지만()
  • 제랄과 엘자가 헤어져야 할 미래<는 처음부터 계속 언급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제랄이 왜 엘자의 곁에 있길 고집했냐!
  • 당연히 좋아하니까지~!~!~!!~!!~!!
  • 본인은 자각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엘자의 마음에도 자신이 조금이나마 들어가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고 생각함. 사람이라면 그건 어쩔 수가 없음…
  • 하지만 그래서 더 헤어지지 않고자 고집했던 거고, 엘자를 정말정말 사랑하지만 엘자도 자신이 함께하는 미래를 같이 생각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고…
  • 그래서 엘자를 존중하니까 엘자를 놓아주어야 할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구차하게나마 “사랑해.”라고 말한 건 너도 날 조금이라도 좋아해? 라는 물음과도 일맥상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엘자도 확실하게 계속 흔들렸거든…
  • “사랑해.”라는 말에 엘자는 이제 ‘네가 나에게서 해방되는 거다.’는 식의 말을 해서 실연의 아픔으로(ㅋㅋ) 좌절하던 제랄… 하지만 자신이 다 제랄의 과거를 괴로움을 가져가겠다고 말햇으면서 “내 머리카락 색이었다.”고 말하고, 건강하라는 말을 건넸단 건…
  •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 엘자 > 제랄의 감정선도 더 길게 풀고 싶긴 했는데 이거 이미 세시간동안 쓰고 있어서.. 더는 무리무리 안돼안돼
  • 그래서 제랄이 엘자에게 남아있는 시간의 아크-세뇌를 풀기 위해 울티어를 찾으려고 에필로그에서 떠나는 거고… 그 과정에서 이젠 루시랑도 슬슬 좀 친해지고… 웬디랑도 친해지고… 그레이는 울티어 좀 빨리 만나고(미안)… 인생이란 그런 거지
  • 또 무슨 할 말 있었지
  • 원작에서 제랄이 했던 대사를 최대한 가져오려고는 했는데… 딱히 티가 나지는 않는듯
  • 아무튼 이제 제랄은 페어리테일과 진정한 가족이 되고, 엘자는 나중에 울티어랑 메르디랑 함께 크림 소르시엘도 창단하고… 둘이 원작처럼 지지부진 하다가 결국 이어져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 것임
  • 길지도 짧지도 재밌지도 재미없지도 않은 애매한 썰 기다려주셔서 ㄱㅅㅎㄴㄷ
  • 진짜 완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