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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연성/페어리테일

[제랄엘자/모브엘자] 소개팅 썰 1

by 여우비야 2023. 3. 11.

* 원작을 아주 조금 날조해서, 전쟁이 끝나고 크림 소르시엘에게 은사가 내려진다는 이야기가 크림 소르시엘에게 전해졌던 딱 그 시기의 이야기. 크림 소르시엘을 제외하고는 은사를 받을 예정이란 소식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 2019.09.27 재발행
 
 "소개팅이라고, ....?!"
 
 엘자는 빼액 소리를 지르며 한 쪽 밖에 보이지 않는 눈을 크게 떴다. 얼마나 놀랐는지 앉아있던 의자도 살짝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미라젠은 평상시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카나는 조금 짖궂은 웃음을 지으며 그런 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조금 붉히며 시선을 내린 엘자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나, 나는, ... 그게, 그러니까. 미라젠은 무엇이든 수용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푸근한 표정을 지었다. 다 아는 상태에서 말하는거야, 엘자. 카나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몇 번을 계속 생각해봤는데, 그놈은 확실히 멋있긴 해도, 여자에게 좋은 남자는 아니야. 엘자는 아무 말 못했다. 그래도, ... 말 끝을 흐리던 순간 누군가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상대방 남자는 누군데?"
 
 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시였다. 루시, 작게 부른 엘자가 루시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엘자 씨. 웬디도 슬쩍 옆에 서 있었다. 최근 무섭게 상승세를 보이는 신인 길드의 길드장이라나. 시골에서 살다 피오레로 상경하고 나서, 예전부터 요정여왕을 동경해왔다나. 루시의 물음에 답한 것은 카나였다.
 
 "너의, 정말 팬이래. 알바레스 전쟁 때에도 부각되진 않았지만 손을 많이 거들었다고도 하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엘자?"
 
 미라젠이 상냥히 물음을 건냈다. 자신에게로 꽂히는 여러 시선들에 담긴 감정을, 엘자는 어렴풋이는 알 수 있었지만 정확히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엘자는 홀린듯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알, ... 겠다. 그 대답에 모두가 활짝 웃으며 기쁜 기색을 티냈다. 잘 됐네, 엘자. 잡은 어깨에 저도 모르게 힘을 꾹 주며 웃는 루시의 표정에 엘자는 애써 따라 웃었다. 미라젠과 카나가 뭔지 모를 시선 교환을 하는 것은, 웬디밖에 보지 못했다.
 아, 그런 거구나! 말은 않아도 제랄이 떠올라 가슴 한 켠이 불편하던 차였던 웬디였다.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웬디도 굳은 표정을 풀고 자연스럽게 미소지었다. 정말 잘 됐네요, 엘자 씨, 제랄 씨.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건만, 확실히 이 끝은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확신이 담긴 생각이었다.
 
 
*
 
 문득 해피가 비웃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날의 일에 상처를 받았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싱숭생숭한 기분이 줄곧 들던 것은 사실이었다. 분명 이걸로 된거야.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사람 마음이 그리 쉽게 정리시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더라. 우리의 결말이 났다고 생각했다. 내 쪽은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을 뿐 너는 이미 나에 대한 생각을 잘라내었다 생각했다. 너의 다정함이라 생각했다.
 엘자는 제랄 페르난데스,라는 인물에 한해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반평생을 증오하다가도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약해진 마음을 접었다. 복수를 포기하고 기억을 잃은 그를 만났을 때, 자신이 그를 책임져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나 자신이 져야 할 죄를 감당하려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는 억지로 지워버렸던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첫사랑, 첫사랑, 사랑, 사랑, ...
 나는 너를 사랑했고, 사랑한다. 너는 나를 앞으로 사랑하기'만' 할 것이다. 지금껏 애매하게 견뎌왔던 관계였다. 미라와 카나의 제안은 이 관계를 재정립할것이냐,는 물음과도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신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종종 괴로워하는 자신에게 감정을 정리하지 않겠냐고 다정히 권유하는 것이었다. 현재 나와 제랄의 관계는 틀린 것일까? 자신이 없어졌다. 기실 원래부터 자신은 없었다. 문득 엘자는 자신이 연...애 상담을 누군가와 해본 적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처럼 약함을 증오하는 것에서부터 기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엘자 스칼렛이라는 여성이 유성애란 단어에 한해 부끄러움이 많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왔다.
 
 "안, 안녕하세요, ...!"
 "... 오, 오우, ..."
 
 소개팅에.
 
 
*
 
 
 엘자, 혹시 정말 갑옷을 입고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 설마 소개팅 자리에, ... 대낮부터 그녀의 기숙사 방으로 들어온 미라젠과 카나는 소개팅 자리를 주선해준 김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책임지겠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엘자를 꾸몄다. 요정여왕을 동경한다 했으니 갑옷을 입고 나가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며 갑옷 차림으로 소개팅에 나가려 했던 엘자는 결국 하얀 원피스를 입고 소개팅 자리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난생 처음 해본 화장이란 것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제가 처음 피오레에 올라오자마자 본 것이 대마투연무였는데 말이죠,"
 "내 경기를 본 것인가?"
 "네! 마침 판데모니엄 전의 제비뽑기를 하고 있었던 때였는데ㅡ,"
 
 엘자는 바짝 긴장한채로 애써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개팅 자리라는 말이 이렇게 무거운 말이었던가. 식은땀이 등 뒤로 비죽 흐르는 기분을 느끼며 엘자는 딱딱하게 굳은 채 앉아있었다. 상대방 또한 그 기색을 눈치챈 듯 미묘하게 웃음 지었다. 아차, 실수한건가! 엘자가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 이럴 땐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던 때였다. 스칼렛 씨는, 상대편 남자가 입을 연다.
 
 "평소에 갑옷을 주로 입고 다니는데,"
 "그, 그렇지, ..."
 "오늘은 원피스를 입고 오셨네요."
 "..."
 "이 모습도 무척 아름다우신데, 불편하신 것 같아서요."
 "..."
 "저는 갑옷을 입은 스칼렛 씨의 모습도 좋아하거든요."
 
 그리 말하며 활짝 웃는 상대편 남자의 모습은, 그래, 무척 다정하고 시원스러운 기분을 들게 했다. 마치 낙원의 탑 시절 때 우리를 이끌었던 제랄의 모습과도 같았다. 절로 편안한 기분이 들게끔 하는.
 
 "... 팔수스 길드를 이끌고 있다 했었지."
 "네, 팔수스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라티오,라 합니다."
 "... ... 그래, 라티오. 실례하마."
 
 아까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은 엘자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빛이 입은 옷 위를 감도는 듯 싶더니 어느새 두터운 갑옷이 그 위를 감쌌다. 길게 눈을 감으며 숨을 내쉬었던 엘자가 눈을 뜨며 남자, 라티오를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에 온 건 처음이라 말이야. 여태까지 무례한 점이 있었다면 용서해주길 바란다."
 "괜찮아요. 그런 점 마저 스칼렛 씨 다우니까요."
 "그리고, ... 스칼렛 씨,라고 불림받는 건 퍽 낯설군."
 "아, ... 그 말은,"
 "그래."
 
 엘자라고 불러라, 라티오. 그 말에 순간 긴장되었던 라티오의 얼굴에 기쁜 웃음이 덧그려진다. 가늘게 눈을 휘며 엘자를 바라본다.
 
 
 "네, 엘자 씨."
 
 
*
 
 
 "와, ... 이거 진짜 대박."
 "미라, 카나. 대체 무슨 남자를 데려온거야??"
 "후후, 내가 남자 하난 잘 골라왔지 뭐야."
 "엘자 씨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 제랄 씨 앞에서 말고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제랄 이외에 최초로 등장한, ... 이성 남성인가? 그러니까, 동료가 아니라 '이성'으로 취급할 수 있을만한."
 "이번만큼은 좀 위험할지도."
 "이제 이 소식을 알게 된 제랄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관건인데 말이지."
 
 "부탁해요, 멜디. 제랄에게 잘 전해주세요, ... 어떻게 되든 엘자 씨가 행복해지면 참 좋을텐데."
 
 "... 그 점은 걱정 마. 우리도 무척 큰 희소식이 있는 상황이니까."
 "맡겨만 줘, 쥬비아!"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여섯 명의 여자와 한 마리의 고양이가 모조리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