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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감은 눈 사이로 뿌연 안개같은 것이 휘감습니다.
퀴퀴한 냄새. 손톱 끝을 물들인 검은 잿가루.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겠나요, 이스피어?
(하나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묘연한 얼굴로 어딘가에 서 있던 이스피어는 흐리멍덩한 눈을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어디지?)
익숙한 장소입니다. ... ... 아니, 처음 보는 곳입니다.
하늘은 밤인 것처럼 어두운데, 동시에 눈이 아플만치 눈부셔요.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만들어놓은 허상속
멸망
처럼 말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문장으로, 당신에게 끊임없이.
이 종잡을 수 없는 상황 속, 당신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화려한 축제가 벌어졌을 이곳은 퀴퀴한 냄새만을 풍기는 시커먼 마을로 돌변한 지 오래입니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절박한 인간은 오늘도 신에게 매달립니다.
이 무너져가는 세상은 당장 내일 멸망할까요, 오늘 멸망할까요.
새카맣게 물든 하늘 아래 서있는 당신에 대한 꿈입니다.
두렵고, 소름끼치던 그 꿈에서 무엇보다도 선명했던 것은... .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2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불확실한 감정은 빠르게 지워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고작 감정따위에 흐트러지는 것이 얼마나 당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는지.
아무튼, 이런 악몽이 당신의 꿈을 물들인지 벌써 몇 달 째 입니다.
정확히 꿈이 시작된 시점이 언제쯤이었죠, 이스피어?
이스피어 틸다:(생각하기 싫어. 눈을 질끈 감았다.)
성당의 신부님이 전염병으로 죽고 그 빈 자리를 대신하러 온 이였습니다.
이스피어 틸다:(마른 손으로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이스피어 틸다:(그럼에도 결국 아침 해가 떠오를 테니, 낡은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이스피어가 겉옷을 챙겨 입었다. 부르튼 입술을 움직여 자그맣게, 아주 작게 중얼거린다.) ……
딜라이트 신부님….
이상하게 입밖으로 내는 문장이 아주 어색해요.
... 그는 처음 본 순간부터 묘한 꺼림칙함이 느껴지는 사내였습니다.
당신은 때때로 그를 보면 손 끝이 아렸습니다.
그를 끌어안고 싶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어린 신부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리 없잖아요, 이스피어.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이 느끼는 혐오를 가라앉히기 위해선 그가 있을 성당으로 향해야만 했죠.
겸사겸사 부디 세계를 구해달라 청하기도 해야겠죠.
말세에 필멸자는 대체로 절대적인 존재를 찾기 마련입니다. 무의미하다 한들 말입니다.
이스피어 틸다:(그는 어린 아들의 손에 쥐어주었던 성당의 상징물을 손에 가득 힘주어 쥐었다. 오늘도 어딘가 흐릿해보이기만 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다, 곧 고개를 숙였다. 희미한 햇빛마저도 받지 못하는 죄인이라도 된 양.)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성당으로 향한다. 발 아래로 죽음을 닮은 그림자가 진다.)
다만,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를 하는 자의 인영이 보입니다.
아이작 딜라이트:... ...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기도를 하러 오셨습니까?
이스피어 틸다:(마주하고서 영원처럼 굳었던 것도 찰나, 희끄무레한 미소를 겨우 그리다 버티지 못하고 입꼬리를 추욱 내렸다.) 네, 신부님. (머뭇거리다 말을 잇는다.) 밤을 새셨나요?
아이작 딜라이트:(그는 어딘가 피곤한 기색이었다.) 아뇨. (거짓말인 것 같았다.) ... 단지 조금 일찍 깼을 뿐입니다. (그는 시선을 바닥에 내리고 있다가 천천히 들어올려 당신의 눈을 마주했다. 마치 당신을 천천히 훑어보려는 것처럼.) 걱정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걱정된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는데.)
이스피어 틸다:(그는 당신의 앞에 설 때마다 이따금 할 말을 잊어버리곤 했다.
무언가 잊어버린 것이 있는 것만 같은 기시감. …두통이 일어 그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짚었다.) ……지금,도… 이른 시각이기는 하지만요. (혐오감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사납게 마음을 먹어치우려 들었다. 격류 가운데 두 다리로 서 버티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훑어보는 듯한 시선에 괜히 눈을 피하게 된다.) 마을에서 일,하시는 부분이 많으신데. 잠은 제때 주무셔야 해요. (그리고 이스피어는 사무적인 대화라면 이정도로 충분하다는 양, 옆 성도석으로 향하려 몸을 움직였다.)
아이작 딜라이트:(그렇지. 누군가 방문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희망을 느끼기에는 너무 늦고, 절망을 느끼기에는 너무 빠른.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 ... 괜찮습니다. 시일이 시일인만큼, 최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니까요. (당신이 발걸음을 옮기는 걸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그가 당신의 발걸음을 억지로 붙잡아놓듯 다시 한번 화제를 던졌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 ... 시간이, 이르지 않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함께, 이겨내야죠.
이스피어 틸다:(뒤돌던 몸이 멎는다. 그리고 서서히 발목을 타고 오르는 것은 죄악을 닮은, 자그마한 죄악감. 스테인드 글라스를 타고 넘어오는 빛은 여전히 흐려,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봄에도 그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스피어는 한참 답하지 않고 있다 손에 쥔 아들의 유품을 조용히 목에 걸었다. 죄악감에 억눌린 음성이 성당 안을 울렸다.) ─신부님께서, 그리 하고싶으시다면요.
……괜찮으시다면 제 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겠어요?
아이작 딜라이트:(성당 안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서늘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휘감고 지나가는 것조차 따뜻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애매하게 숙인 고개 사이로 보이는 당신의 얼굴을 그가 빤히도 쳐다보았다. 다만, 당신이 어떤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그의 눈빛이 조금. 이상한 분위기로 가늘어지는 것 같았다.) 아드님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이스피어 틸다:(당신이 이름을 묻는 연유를 순간 이해할 수 없던 그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아니. 그래. 이름을 호명하며 곧잘 기도해주시니까, 그런 거겠지. 곧 고요한 정적을 깨트리는 목소리.) …제이드…
뮐러예요. (그는 죄인처럼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제 남편의 성,이고요. (그리고 이스피어는, 결혼을 한 지 몇 년이 흘렀음에도 남편의 성을
허락받지 못한 여자였다.)
아이작 딜라이트:제이드. (그는 한참이나 아이의 이름을 곱씹는 것처럼 보였다. 뜸을 들이는 걸까. 아니면. ... 뭔가 뱉어내고 싶기라도 했던 걸까. 초 끝에 걸린 그의 시선에 순간 불꽃이 튀었다. 아니. ... 그래. 단순히 초에 불이 붙은 것 뿐이리라.) 수 많은 죽음 앞에서 고작 이름 몇 자를 부끄러워하시는군요. 혹은. .. 아이와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될 스스로에 대한 동정이십니까?
이스피어 틸다:(……예상치 못하게 가슴을 후벼파오는 말이 있었다. 그림자만을 내려다보던 시선이 크게 요동치던 것도 그 까닭일 것이다. 그러다 수치스러운들 어찌 하겠나. 그것이 진실이고, 현실이고, 바꿀 수 없는 현재인데.) 동정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뭔데, 이스피어
틸다. 성당 안을 잔잔히 흐르는 바람에 촛불이 흔들리듯 그의 눈동자도 함께 흔들렸다.) 저는, 단지…….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어쩌면 이스피어는, 차라리 당신의 눈빛이 칼처럼. 자기를 죽여주길 바랐다.)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의 동요를 읽기라도 한 걸까.) 자매님. (그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손을 잡아온 건 그 때였다. 부러 자신의 행동을 숨기고 당신이 방심한 틈을 타기라도 한 양, 순식간이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가 초를 등지고 섰다. 일렁이는 불꽃이 그의 그림자를 종종 흐리게 만들었고,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그를 마치... . 불경하게도.
악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신께선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자매님을 괴롭히는 것은 자매님의 생각일 뿐입니다. 사사로운 것에 잡히지 마세요.
이스피어 틸다:(손 쓸 새도 없이 붙잡힌다. 탄식처럼 숨이 터져나온다.) …아……. (당신이 등져 보이지 않는 촛불 대신 새로운 불이 틔듯, 번지듯 붙잡힌 손에서부터, 무엇인가가. 떨리는 눈을 들어 당신을 본다. 흐릿한 그림자. 검은 옷. ……
악마.) …사사로운, 것이요? (그리고 불경하게도 데일 듯 뜨거워진 손을 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러나 동시에 당신의 목을 조르고픈 충동이며 혹은 당신을 끌어안고 싶은 충동에. 조용히 숨을 멈출 뿐이다. 저도 모르는 새 어깨가 덜덜 떨려온다. 악마를 앞에 둔 한낱 가녀린 인간처럼. 그리고 다시 한 번, 그가 목이 졸린 사람처럼 속닥인다.) 신부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겠어요?
당신의 요청에 딜라이트 사제는 그저 살며시 눈을 접어 웃음지을 뿐입니다.
굳이, 기도를 위해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던가요.
그런 의문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잡힌 손을 뿌리치지 않은 건 당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어린 사제는 왜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나요.
질문들은 다시 펼쳐지지 않도록 작게 접고, 또 접어 마음 속 한 쪽으로 미뤄둡니다.
기도가 끝난 뒤, 손위에 올라와있던 온기가 느리게 사라집니다.
이스피어 틸다:(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래야 했다.)
아이작 딜라이트:휴게실에 새로운 찻잎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밤잠을 설치신건 자매님 또한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이니, 한 잔 드시고 가는 건 어떠신가요?
제가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기도가 끝난 뒤에도 그는 손 위의 온기를 탐닉하듯 양 손을 붙들고 있었다. 한참을.) …차, 말인가요? (상념이 이미 죽은 자들로 향하는 것에 이스피어가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입술을 달싹이다, 희미한 미소를 그린다.) 아뇨. …저,는 괜찮을 것 같아요. (완곡한 거절이다. 상념을 다 끊어내지 못한 탓이다. 힘없이 중얼거렸다.) 오히려 제 쪽에서 신부님을 대접해드려야 할 텐데 말이에요….
아이작 딜라이트:따뜻한 차는 마음을 떨쳐내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가 느긋하게 웃고 있었다. 또.) 마음을 가라앉혀주기도 하고. ... 이런 시기에는 찻잎조차 구하기 힘드니까요. 저와 함께 새벽을 지내주신 답례로 꼭 대접해드리고자 했는데. ... . (그가 아주 잠시,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럼. 제가 대접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매님께서 저를 대접해드리는 건 어떠십니까? (완곡한 표현을 무시하기라도 하듯한 얼굴이었다. 이상하지. 당신을 깔보거나 낮잡아보는 태도는 아닌데도.)
이스피어 틸다:(당신은 이상한 부분에서 대뜸 강압적이었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비천한 존재처럼 대하지 않았다. 종종 기도라는 명목을 삼아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그때 스며드는 온기란, 아. 정말이지
나쁜 생각들을 가져오곤 해서……. 침묵하던 이스피어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만한 명목을 찾는 데에 실패한 때문일까.) 어감이 조금… 이상하긴 해도요. (스치는 미소마저도 하늘을 닮아 어두웠으나. 먼저 몸을 돌린다.)
(휴게실로 향하자.)
휴게실 안쪽은 피로를 풀 수 있는 찻잎과 간식이 놓여 있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이쪽입니다. (정말로 대접받을 생각이었는지, 직접 당신을 찻잎과 찻잔이 있는 앞에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 차를 좋아하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이스피어 틸다:(어색하고 낯선 분위기, 더더군다나 휴게실이라는 공간 안에 당신과 단 둘이 남게 되니. 뭐랄까. 뭔가가…….) 네? 아…. (반박자 느리게 어깨를 움찔 떨며 당신을 바라보다가, 숨을 흘리며 찻잔을 돌아보았다. 뒤늦게 찻잎을 우리기 위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못박힌 듯 찻잎이나 주전자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가 시간을 따라 서서히 흐려졌다. 과거를 더듬듯.) 좋아하는, 편이었던가. (숨소리처럼 웃음이 샜다.) 남편은 차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흘러가듯한 목소리.)
아이작 딜라이트:(반박자 느리게 반응하는 당신의 손끝에 그가 힐끔 시선을 던졌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둘 사이로 자리잡은 소음이 묘하게 아늑했다. 누군가는 '원래 그랬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할만큼이나. 당신의 웃음소리에 그가 슬며시 옆으로 다가섰다. 팔꿈치가 조금, 닿았다.) 자매님은, 좋아하십니까? (가까웠다. 아닌가. 당신이 예민한 걸수도.)
이스피어 틸다:(찻물이 끓기까진 그래도 시간이 걸릴 텐데, 이스피어는 제게로 더욱 붙는 그림자에 애꿎은 찻물만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한다면 물이 더 빨리 끓기라도 한다는 양.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애매한 거리에 그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고개를 숙이면 뒷목을 덮던 머리카락이 어깨 앞으로 하나 둘 흘러내린다. 서늘한 공기가 닿는다.) ……아마도요. (이번에도 역시 그는 어떤 저항도 표하지 않는다.) 신부님…께서는요?
아이작 딜라이트:저는, (텀이 조금 길었다.) ...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 시선이 어중간한 곳에 꽂혀있었다는 사실을 과연 당신이 몰랐을까?) 레몬차를 자주 마십니다. ... 그것 외로는 끓이는 법도 잘 모릅니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렇다는 건, 레몬차는 누군가가 알려줬다는 의미였을까? 가벼운 투로 대답한 뒤, 그는 뒤를 돌아 찻잔을 준비했다.)
이스피어 틸다:(……참았던 숨을 그제서야 터트렸다. 시선이, 제게로 닿았었나?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그런 다음에서야 물이 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의 흐름이 당신에게 닿는 것까지는 차마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인지,
그렇다면 레몬차는 누군가가 끓이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주전자를 들어올리려던 움직임에 머뭇거림이 인다. 그리고 그것은.) - 아. (
덜그럭.) (……욱신거림이 실수로 주전자에 닿은 손가락에 남는다. 마치 그런 생각에
또다시 빠져들고 만 이스피어를 질책하듯이.)
(손가락을 매만지다 다급하게 주전자를 들었다. 찻잔을 준비하는 당신을 돌아본다.)
그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에 언뜻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이 무언가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딜라이트 사제가 말을 걸어옵니다.
지금 확인하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가 자리를 비워야할 것 같은데 ... .
이스피어 틸다:……뭔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보였던 것 같아서요…. (하지만 눈을 깜빡여도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잘못 본 건가? 그리 생각하고 넘길 뿐이다.)
(다만 몸은 자연스럽게 높이를 낮추었고, 손은 그 '무언가'로 향했다. 중얼거린다.) 누가 흘리고 가셨나봐요….
아이작 딜라이트:예? (하고 되물었다가, 당신의 손에 들린 '무언가'를 보고선 급히 그것을 다시 제 손으로 가져왔다. ... '딜라이트 사제'가 하기엔 조금 어색한 행동이었겠지만.) ... 제가 주인을 찾아드리겠습니다. (웃음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연스러웠다.)
딜라이트 사제는 순식간에 당신의 손에 있던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그 사이로 쪽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나?)
이스피어, 짧은 순간동안 내용을 확인했던가요?
이스피어 틸다:(쪽지를 펼쳐보긴 했다. 모든 글을 확인하지는 못했고, 몇 단어를 본 것 같긴 한데….)
그 외로도, 전염... ... 겉잡을 수 없다.
성당에, 하물며 휴게실에 어째서 이런 내용의 쪽지가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요?
이스피어 틸다:(이스피어는 사제의 자연스러움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
저주? (전염? 사고는 자연스럽게 죽은 자녀로 향한다. 의자 밑 그림자만큼이나 찬 기운을 품은 눈동자가 당신을 향한다. 어쩌면, 대답을 요구하듯이.)
아이작 딜라이트:(저주. 그 단어에 그의 손이 멈짓, 움직였다.) ... ... 예?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목소리 뒤로, 어쩐지 조금 당황한 것 같은 시선이 따랐을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자매님.
이스피어 틸다:(굳은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한 걸음 당신에게 바짝 다가가는 몸짓이 있었다. 당신이 쥔 종이로 향하는 손길 또한 가감없었다.) 제가, ……읽게 해주세요. (불길 앞에 선 것처럼, 본능이 가슴을 아프게 뒤흔들었다.)
아이작 딜라이트:...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드물게 단호히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손을 내밀면 팔을 뒤로 보내며 손을 막기까지 했다. 덕분에 서로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제가 주인에게 잘 전달할테니, 자매님께선 걱정하지마세요.
이스피어 틸다:(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낯선 향이 훅 끼쳤다. 그것이 문득 당신과 제 거리를 깨닫게 만드는 것 같아서 한순간 숨이 멈췄다. 그래도 드문 반응을 보이는 당신만큼이나, 이스피어도 드물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한걸음 더 내딛는다. 몸이 맞붙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만, 내용이라도 확인해보면 안 되나요? 한 번만…. (목소리가 갈피를 잃어갔다.)
아이작 딜라이트:... ... 개인적인 기록에 어째서 집착하시는지 영문을 모르겠군요. (그는 늘 당신과 가까이 있는 걸 즐기는 것처럼 굴었고, 실제로 친해지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으나. ... ... 이상하게도, 당신이 한걸음 더 내딛으며 몸이 바짝 붙자, 눈을 피했다.) ... 피곤하네요. 이만 돌아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날이 차오르지도 않았는데 기도를 헛되이 할 순 없으니까요. (기어이 축객령이다.)
이스피어 틸다:(당신이 제 시선을 피하면 어째서인지 그는, 자그마한 배신감을 느낀다. 아릿한 통증이 심장에 남는다. 기어이 축객령이 떨어지나, 크게 뛰는 심장을 안고서도 이스피어는 굳건했다.) 저주, 저주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어요, 신부님. 만약 저주가 진짜라면,
제 아들이……. (이제 그는 마치 신께 기도하듯 당신의 한쪽 손을 붙들었다. 간절함이 떨어져내린다.) ……제, 제 아들이 그렇게 죽은 거라면, …저는 그것을 알아야 할 이유가 있어요. (어느덧 휴게실은 레몬 향으로 가득 찼는데, 이토록이나 입 안이 마를 수 없었다.)
아이작 딜라이트:(
제 아들이. 당신이 꺼낸 단어와 거의 엇비슷한 타이밍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종이가 엉망으로 구겨진 건. 그는 입을 꾹 눌러 닫았다. 마치,
화라도 참는 것처럼.) 저주라는 건 혹독한 상황에서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일입니다. 심신이 지치면 모두가 신을 찾기 시작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원망할 이를 찾죠. ... 저주라는 단어가 이런 시기에 나오는 것도 그러니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자매님. 그저 괴로운 누군가가 꺼낸 하나의 단어일 뿐이에요. (그는 당신이 잡은 손을 가볍게 끌었다. 고개가 가까웠다. 그의 손끝이 언뜻 당신의 손등을 쓰다듬듯 움직였다.) 현실을 사셔야합니다, 자매님.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이미 잃은 것이 아닌, 지금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셔야죠.
이스피어 틸다:(바스락, 정체 모를 그 소리는 그의 귀까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흐르는 정적, 그 가운데 이스피어는, 그제서야 비이성적인 감정을 인지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저주라는 건 혹독한 상황에서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일입니다. 냉정한 판결이 떨어진다. 어쩌면, 이스피어는 마땅히 화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땅히 복수할 수 있는 대상이….) ……. (우울함과 옅은 체념으로 가라앉은 얼굴이 움찔거린 순간은 손등이 언뜻 쓸린 순간이었다. …불에 데일 듯 뜨겁다. 너무나도 가까워진 거리를 인식한다. 헛숨을 들이키며 반 걸음 물러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시간이 흐르며 맹랑하게 당신을 올려다보던 이스피어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심장이 과할 정도로 크게 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슴이 찼다.) 실례했네요…. (숨을 가라앉혔다. 죽은 자들처럼.)
……물러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등에 진 죽음으로 하여금 몸이 무거웠다. 몸을 뒤로 물렸다. 자연스럽게, 손이 떨어진다.)
아이작 딜라이트:(가까이 닿았던 몸이 천천히 떨어져나간다. 당신의 몸짓 하나하나를 그가 눈꺼풀 아래에 새기기라도 하려는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 거기서 그쳤지만.) 괜찮습니다. 너무 염려치 마세요. ... ... 댁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그가 기울었던 몸을 일으켰다.)
이스피어 틸다:(끓었던 물이 식기까진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는 몸짓에 그가 어깨를 움찔 떨며 뒷걸음질쳤다. 무심코 겁이라도 집어먹은 듯. 뒤늦게 몸을 바로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신부님. (시선이 더 깊은 아래를 향했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손길.) 더 귀하신 시간을 뺏을 수 없으니까요. 이만……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깊게 몸을 숙이고, 당신이 붙잡을 새 없이 몸을 돌렸다.)
당신은 딜라이트 사제가 붙잡기 전에 서둘러 휴게실을 나섰습니다.
저주. 분명히 신경쓰이는 문장이었습니다. 이게 당신의 가엾은 아이가 죽은 원인일까요, 아니면. 딜라이트 사제의 말처럼 단순한 기류인 걸까요?
어쩐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요. 문제를 채 해결하지 않은.
이대로 집으로 돌아갔다간 분명 오늘도 잠을 설칠 것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하지만 그는
의심을 가진 순간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불태워야 했다. 만약 제이드가 어떤 이유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면? 원인을 특정할 수 있다면? 만약에, 만약에.)
(……그러고보면, 성당에는 서재가 있었지. 초조함을 애써 감추며, 이스피어가 그리로 다급하게 발을 놀렸다.)
당신은 딜라이트 사제 몰래 뒷문을 통해 성당 지하에 있는 서재로 향합니다.
몇 개의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꽤 이질적이네요.
이스피어 틸다: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64 |
판정결과: |
실패 |
이스피어 틸다:(하지만 뭔가 있을 텐데, 뭔가, 찾아볼만한 책이… 책 표지를 눈으로 읽으며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찾아본다.
누군가가 이곳에 당도할 때까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이스피어 틸다: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역시 잘 모르겠네요. 일단 탁자나 살펴볼까요?
누군가 이미 편지를 확인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스피어. 당신도 편지를 읽어볼까요?
이스피어 틸다:(분주한 손길은 결국 책장이 아닌 다른 곳까지 닿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 놓인 편지를 발견한다. ……머뭇거리다, 편지를 펼친다. 내용을 살펴보자.)
내용을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잭슨 사제. 나일세. 몇 달동안 자네에게 소식이 없어 편지를 보내네.]
[일은 되어가고 있는 겐가? 소문은 들었네만, 왜 빨리 끝을 내지 않는 거지?]
[분명 자네 입으로 그녀석을 잘 통제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이해할 수 없군. 이건 우리의 ...일세. 자네도 알지 않나.]
[이건 마지막 기회야. 그러니까 그 놈에게도 분명히 전하도록 해.]
이스피어 틸다:(잭슨? ……혼란스러움에 손을 떨었다.)
당신의 마을, 그러니까 이 성당의 수석신부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그 때, 지하실의 계단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이스피어 틸다:(이스피어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서재 안쪽으로 몸을 감췄다. 편지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했으므로, 편지는 그의 손에 고이 쥐인 상태였다.)
부디 이 방에 들어올 누군가가 편지의 부재를 알아채지 않아야 할텐데요.
잭슨 신부:일의 진척이 너무 느려. 언제까지 질질 끌 생각이지?
잭슨 신부:아이작. 내가 널 배려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알겠어? 당장 위에서 결과를 내놓으라고 말하고 있다고. 네가 이런식으로 나오면 내가 개입할수밖에 없다. 알고 있겠지.
잭슨 신부:지금 그걸 못 하고 있으니까 내가 이러는 것 아냐!!!
이스피어 틸다:(……더 숨을 죽였다. 높은 목소리는,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리 당신에게 퉁명스럽게 군다고 하더라도,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낸 적은 없습니다.
저 둘에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실랑이를 하는 걸까요?
아이작 딜라이트:시간을 더 주시죠. ... ... 제가 성공해보이겠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 모두에게 미움받고 있지 않습니까.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죠, 신부님.
하지만 일이 더 늦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뭔가 눈치챌수도 있어.
비밀스럽게 끝내도록 해.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옷무새를 정리한 뒤, 사라집니다.
이스피어 틸다:(미움받는 사람? 비밀스럽게 끝내야 할 일? ……어느덧 이스피어는 덜덜 떨리고 있는 몸을 알아차린다. 손으로 힘겹게 어깨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숨을 죽인다.
이상하리만치 저 목소리가 두렵게 들려왔다.)
…………아니라고.
(고개를 털어 목소리를 떨친다. 숨을 가라앉히고, 다시 일어난다. ……손에 들린 편지를 내려다보던 이스피어는 그것을 품 안에 잘 갈무리한다. 서재를 벗어난다. 이스피어는…….)
(딜라이트 신부의 뒤를 쫓는다. 그의 모습이 보일까?)
이스피어 틸다:(검은 형상, 그것이 순간 짙은 그림자를 떠올리게 해 이스피어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병원으로 향한다.)
이스피어 틸다:(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로 간 거지?)
병원은 환자들의 곡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생명의 숨소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곳곳을 소독하며 입구에서 기웃거리는 당신을 향해 다가와 이 이상 들어오면 안 된다고 경고하네요.
이스피어 틸다:(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몇 마디를 흘리며 그 안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은 스치듯 시체의 얼굴을 보고 말았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고개를 돌린다. 속이 울렁거린다.)
병원 입구에서 나오면, 벽에 붙은 전단지들과 함께 익숙한 수도복의 옷자락이 보입니다.
피곤하다더니만, 지금은 진심으로 병세를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은 문득 그에게 역겨움과 동시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저 가식적인 얼굴 밑에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전부터 당신이 딜라이트 사제를 향해 느꼈던 생리적 거부감은 아마 생존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이스피어 틸다:(이스피어는 아들의 죽음을 밝혀야 했다. 자신이 미움받는 자라서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설령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설사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증오받는다 해도, 진실을 밝혀내길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의사들과 대화하는 것을 엿들어볼 수 있을까?)
가까이 가면 그에게 들킬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주위 간호사와 의사들의 대화는 들리네요.
이스피어 틸다: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정말이지 다정하고 착한 분이셔. 매일 와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요즘 항상 밤을 새는 것 같으시더라고. 어쩐지 수척한 기색이던데. 바쁜 일이라도 생기신건가?"
이곳의 간호사와 의사들은 그에게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간사하게도, 모두에게 미움받는 당신과 달리 사랑받고 있기라도 한 걸까요?
하지만 당신은 그의 실체에 대해 알고있습니다.
실은 모두를 숨기며 당신을 어떤 위험에 빠트리려고 하고있어요.
이스피어, 당신은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는지 알고있어요.
이스피어 틸다:……. (곧 그가 마른 입술을 연다.)
악마?
아이작 딜라이트:(그는 친근한 미소를 덧그리며 당신에게 다가왔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자매님.
이스피어 틸다:시, 신부님…. (그는 어떤 잘못을 들켜버린 아이처럼 드물게 부끄러워하듯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크게 뛴다.
악마라기엔,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그게, (아이가 죽은 뒤 멈춰있었던 것 같은 머리를 힘겹게 돌려본다. 그가, 아이의 복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실은……. (그리하여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을 올려다본다.)
…….
신부님을 찾고 있었어요.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아까 전의 일 때문에, 너무나도 죄송스러워서…. (언뜻 엄지 손가락이 거친 당신의 손등을 쓸듯 움직였다.)
아이작 딜라이트:(그가 당신을 어떻게 보고 있던가. 딜라이트 사제는 당신이 붙잡은 제 손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는 이 흐름을 읽고 있을까.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 많은 이들 앞에서 과연. 이번엔 무엇을 떠들어댈지.) ...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는 다정하게 웃으며 당신이 매만지고 있는 손을 덮듯이 붙잡았다. 당신의 행동을 감추려는걸까. 간사하게도. 그가 당신에게 한 일이었다. 가르친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런 것을 말씀해주시기 위해 여기까지 오시다니. 감사합니다, 자매님. 하지만 이곳은 위험한 곳이기도 하니, 우선 밖으로 함께 가시죠.
이스피어 틸다:(붙잡힌 손은 곧장 얼음처럼 굳는다. 그 어색한 몸짓이 당신에게까지 느껴졌을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그는 간신히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네, 신부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장소를 옮긴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듯 그가 주위를 살핍니다.
아이작 딜라이트:... 죄송합니다. 부득이하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괜찮습니다. 자매님이 죄스러움을 느끼실 필요 또한 없죠. 하지만. (딜라이트 사제가 천천히 반걸음 다가왔다.) 그런 일을 말하기 위해 오셨다기엔 너무 먼 길인것 같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자매님께서. ... ... 제게 더 하고싶은 말이 있으신건 아닐지. 생각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걸어오는 당신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려던 것도 잠시. 이스피어가 목걸이를 붙잡은 채 입을 열었다.) ……끝까지 제가 차를 대접해드리지 못한 것도 자꾸 마음에 걸리고, 해서요. 특별한 건 아니지만…. (신부님, 어떤 일을 계획하신 건가요? 미움받는 사람은 정말 저를 지칭하던 것이었나요?) 그래서, 혹시 괜찮으시다면 신부님을…. (숨기고 계신 것이 무엇인가요?) …
저희 집에 초대해드리고, 싶어서요. (어느덧 거절이 두려운 사람처럼, 그는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다만 이어지는 말은 매끄러이 흘러나온다.) 일전에, 여쭤보고 싶었던 일도 있었고요. (당신이 처음, 이 마을에 부임했던 날의 일 말이다.)
아이작 딜라이트:댁에요? (반문했다. 보통 신부가 개인의 집에 찾아가는 일은 드물었다. 심지어 지금은 오후.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기엔 애매한 시간일텐데. 그걸 과연 눈치채고 있는 걸까? 당신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는 눈치채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다시 한 번 확실히 하기 위해서인지 은근히 거절하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내일은 일이 바빠서 방문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새벽에는 제가 늘 성당에 있으므로... . 그 때 다시 부탁드리는 건 어떠신가요?
이스피어 틸다:아… 그게, (애두른 거절에 혈색 없던 뺨이 살짝 달아오르고 말았다. 입술을 달싹이던 이스피어가 결국 창피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바, 바로 지금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신부님께서, 혹시나 시간이… 여유로우실 때…요.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감쌌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바보야! 마을에서 제일 바쁘신 신부님이 언제 여유로워 지시겠어! 스스로를 타박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이작 딜라이트:... ... ... ... 아뇨. (어쩐지 침묵이 길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당신의 말에 갑자기 힘이 쭉 빠져버린 것 같기도 하다는 착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괜찮습니다. (그가 손을 뻗어 손끝으로 살며시 당신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정리해주었다. 달아오른 뺨을 감싼 손등에 슬며시 손끝이 스쳤을까.) ... 최대한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초대해주셨으니까요. 오늘 이른 저녁 즘엔 시간이 잠시 날 것 같습니다. 저녁식사라도 함께 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이스피어 틸다:(긴 침묵에 그 또한 되려 초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데. 다만 그런 걱정이 깨진 순간은 당신의 손이 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을 때.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찔댄다. 뺨을 감쌌던 손이 떨어지고, 손의 그림자가 눈을 벗어날 때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햇살이 있었다. 한순간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던 것이 그 이유였다. ……
지금, 뭐였지? 뒤늦게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오, 오늘 바로는 아니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신부님께서 정말 괜찮으신 시간이라면…. (망설이듯 끝난 직후 이어지는 침묵이 그의 암묵적인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아이작 딜라이트:(딜라이트 사제는 과연 당신의 떨림을 목격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가 어떻게 행동했을까.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설화속 모든 악마들이 그러하듯 당신을 헤어나올 수 없는 진창으로 떠밀 것인가. 당신이 어떤 것을 예상하고 있던간에, 그는 얼굴 위로 다정한 미소를 띠었다.) ... ... 그럼 오늘 일정을 보내고, 너무 늦지 않는 시간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준비하실 것 없이 단촐하게 준비하셔도 되니 부담마세요. 모두가 힘든 시기니까요.
이스피어 틸다:(당신은 과연 악마인가, 왜, 이야기 속 악마는 현란한 말솜씨로 하여금 뭇 인간들을 홀린다고 하지 않나. 아니, 하지만 그렇다면,
이스피어가 당신에게 이따금 흔들리고 마는 순간들도…….) …바쁜 일이 생기셨다면, 저와의 약속은 뒤로 하셔도 되니. 부디 편하게… 해주세요. (공손하게 앞으로 손을 모은 채 그가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물러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망설이던 끝에 말을 덧붙인다.) 신의 가호가 있으시길…….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의 마지막 인사에 그가 응하듯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 '신의 사자'라는 이름에 걸맞는. ... ... .) 신의 가호가 있으시길. (그렇게 말하며 그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이스피어 틸다:(그리고 돌아서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이스피어는 어떻게 저녁을 준비해야할지 고심했다. 누군가를 위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모르게
무화과를 떠올리고 만다. 적어도 후식으로는 그것을 준비해야겠다. 당신이 이 마을에 오기 전까지 당신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주제에,)
(이상하리만치 당신이 그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또한 자리를 벗어났다.)
이스피어 틸다:(돌아가는 길, 메마른 눈동자가 무의식 중에 글자를 읽어내렸다.)
자세히 보니 광고물이 아닌 성서의 구절을 따온 종이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요즘따라 이런 전단지가 유독 많아지기는 했습니다.
마을 회관으로 가거나, 아니면 일찍 집으로 돌아갈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신부와 약속을 잡았다곤 하지만, '저주'가, '전염'이 실존하는지를 확신해야만하는 이스피어는 멈출 수가 없었다.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이야기라도, 아주 작은 단서라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마을 회관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날 것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중입니다. 한구석에는 꼬마 아이들이 두어 명 웅크리고 앉아있네요.
어른들의 대화를 들어보거나, 아이들에게 가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자연스럽게 어른들을 바라보았다가, 재잘대는 소리에
아이들로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 안쪽으로 크게, 무언가가 떨어지듯한 느낌. 추락감. ……몸이 살짝 비틀거렸나. 그는 커다란 재앙이라도 마주본 사람처럼 황급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동아줄이라도 붙잡듯 목걸이를 쥐었다. 그저 귀만 기울여,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이 겁에 질려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당장 떠나야만 한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어차피 갈 곳이 없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맞아요. 어차피 전염병은 이 나라 전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소란스러운 대화소리를 가르고 입을 엽니다.
"그 저주가 한 번 퍼지면 사람들을 다 죽이고, 마을을 멸망시킬 수가 있대요."
"악마야. 분명 악마가 이곳에 들어온 게야. 악마가 저주를 퍼트리는거지!"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65 |
판정결과: |
실패 |
이스피어 틸다:(그에 호응하듯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대화 소리에 더 집중한다.)
(한 켠에서 떠오르는, 검은 남자를 애써 지워내며…….)
"저쪽 마을 외곽쪽에 혼자사는 처자 있잖아... ."
"예전에 있던 일이라고 나도 들은건데 ... ... ."
이스피어 틸다:……아. (숨소리처럼 터져나온다. 뒷걸음질 쳤다.)
이스피어 틸다:(적어도 나는 아닐 거야,
악마라잖아. 나는 악마가 아니야. 나는 아니야. 나는 악마가 아니야. 나는 그런 일을,)
(……나는 아닐 거야.)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다. 소리를 듣자.)
이스피어 틸다: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들이 속닥거리며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만, 그 중 명확하게 들린 문장이 있었습니다.
악마만 사라지면,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거잖아.
거기까지 말하며 그들은 저들끼리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어떤 거대한 존재가 하늘로부터 자신을 단죄하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 땅에 내가 발 붙이고 설 곳은 없다고, 차라리 아예 자신을 미워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영영 떠나간다면 좋을 텐데. 아무도 자기를 모르고, 아무도 자신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빈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것 같다. 결국 얻어낸 소득이란 없고, 본능에 휘둘려 거짓같은 의심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어느새 이스피어는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속한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나? ……돌아가야지. 그의 집은 외곽 쪽에 따로 동떨어져 있었으니, 가는 데에도 퍽 긴 시간이 걸릴 테다.)
(마을회관을 벗어난다.)
아이들이 밖에서 뛰놀며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 아이들은 자신이 부르는 노랫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것도 모를 것입니다.
이 모든 단어가 같은 의미로 쓰인다니. 믿어지나요, 이스피어?
그런데, 아까전부터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처음엔 착각이 아닌가 싶었는데, 점점 확신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집요하게. 게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발걸음이 잠시 느려지려 했던 것도 잠시였다. 왜냐하면, 외곽에 위치한 집은 거의 자신의 집밖에 없었으니까.
자신을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확실했는데. …모르는 척 했다. 긴장하지 마. 일단은 저 골목을 돈 다음에….)
(골목을 돌자마자, 그가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숨이 단숨에 차오른다. 누구지? 누구야?)
(한순간 뒤를 돌아본다. 상대방을 확인한다.)
다른 어떠한 것 보다도 한가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있었습니다.
오늘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켜 당신을 몰아세웁니다.
이스피어 틸다:─
몰라! (악에 받치듯 내질렀다. 어느덧 현관이었고, 어느덧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주저앉아 있었다.)
(숨이 가쁘다. 진정해야 하는데. 두통이. ……온갖 악의와 살의가 제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송곳처럼. 찌르는 것 같아서. 바닥에 엎어진 이스피어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아프다. 깨질 듯이. 무엇인가가 생각이 날 것도 한데…….)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61 |
판정결과: |
실패 |
"어차피 우리를 붙잡아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당신만 있다면 난 모두 버리고 ... ... ."
사랑을 구걸하기라도 하듯 잔뜩 울음기 섞인 목소리는 당신이 단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아까 당신을 집요하게 쫓아오던 검은 그림자일까요?
이스피어 틸다:(노크 소리가 겨우 기억의 잔재 속에서 허우적대던 이스피어를 일으켰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게 아까 자신을 쫓아오던 누군가인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얼룩진 눈물로 얼굴이 더러웠다. 손등으로 훔쳐내며 힘겹게 그가 상체를 일으켰다. 걸어잠근 문을 열지는 못했다. 다만 묻는다.) ……누구세요?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52 |
판정결과: |
실패 |
하지만 돌연, 불안한 심장 밑으로 한가지 의구심이 솟구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문을 열었을 때 후회하게 될 수도 있을텐데요.
이스피어 틸다:(악마는 그인가, 아니면 자신인가. 머릿속이 새까맣게 엉켜들어갔다. 다시금 두통에 그가 신음했으나, 아. ……이 자리에 악마가 있다면, 그게 과연 누구겠어.)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망인 몰골을 채 정리할 정신머리도 없이 잠금을 풀었다. 숨을 가다듬는다. 문을 열었다.)
(노을 지는 역광이 당신의 등 뒤로부터 번져들어와 눈을 아리게 만들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매가 더욱 가늘게 잠겼다.) ……신부님. (뭔가,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했는데.)
이스피어 틸다: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역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듣지 못했을만큼 작았습니다.
진짜 그의 목소리였다면, 제법 이상한 일입니다.
그야, 그는 당신을 '자매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이름으로조차 부른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 ... 자매님. 혹 무슨 일 있으십니까? (뒤늦게 다시 당신을 살폈다.)
이스피어 틸다:(잘못 들은건가.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도……. 너무도.)
(……익숙했던 목소리였는데.)
(뒤늦게 그가 자신의 몰골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쳤다. 한쪽 팔을 감싸쥐다가, 소맷자락으로 급하게 얼굴을 훔친다. 그림자 안을 헤아리듯 당신의 얼굴을 향했던 시선도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아, 신부님. 그게. ……이를 어쩌지. (급하게 뒤돌아 서서 집안을 둘러본다.) 제가…… 준비를, 하지 못해서……. (염치 없음을 알아, 목소리가 거진 기어들어가듯 했다.)
……차, 차라도! 우선 끓여드릴게요, 아. 정말. 이걸 어째……. (황급하게 주전자를 끓이려 몸을 움직였다.)
아이작 딜라이트:아뇨, 차는 괜찮습니다. (급하게 당신을 팔로 막아세우듯 몸을 움직였다.) ... 이런 상황에 제가 대접받을 순 없죠.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요? 혹시... . (어쩐지 딜라이트 사제는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침묵했다. 하지만 더이상 말을 않고, 대신 당신을 마주보았다.) ... ... 실례하겠습니다. (손을 뻗어 볼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행여 손이 당신의 살갗에 닿을까 걱정이라도 하듯 그는 숨까지 참고 있었다.) ... 다치신 곳은 없나요?
이스피어 틸다:(또다시 막아서는 몸짓. 무심코 숨을 참아버린 것은 당신과 비슷하다면 비슷했다. 당신과 몸이 맞닿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처럼 그는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물음에 당신을 바라본다. 그리고선,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손길, 여전히 집 안을 붉게 비추는 노을과, 그 빛으로부터 제게 지는 어둠…. 간신히 입술을 움직인다.) …일,이라뇨. 아까 전만 해도 신부님과 마, 마주했었는데.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리가…….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 제게 닿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들, 그 손톱만큼 맞닿는 감촉이. 그가 한참을 잊고 살았던 그
온기가.) 제가…. (허물어지듯 굳은 마음을 녹이고,) ……. (나약함을 드러내게 만드는 순간이.)
(끝내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던 그가 참았던 숨을 뱉어내다가, 손을 뻗어 제 머리카락을 떼어주던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간절하게 붙든다. 그대로 제 뺨에, 억누른다. 천천히 들어올린 시선이 당신을 마주할 때 노을빛이 기어코 그 안에 파고들었나.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잠시만, …이러고 있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이 녹아내리듯 갑자기 눈물을 뚝 흘리고, 그의 손을 붙잡았을 때. 그의 숨은 계속해서 멈춰있었다. 반사적으로 당신의 어깨를 남은 손으로 붙잡았다. 손을 붙잡았으니 그가 느낀 당혹감은 당신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손을 빼내고 싶은 사람처럼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던 태도와 달리 그는 돌연 말을 절기까지 했다.) 그게. (어깨를 붙잡은 손이 벌벌 떨리듯 떨어져나갈 것처럼 힘이 풀어졌다가, 다시 힘을 주어 당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일련의 과정동안 그의 숨은 묘하게 가빴다.) ... ... ... 알겠습니다. (그의 얼굴이 유독 붉게 느껴지는 건 아마 착각일 것이다.) ... ... 잠깐, 이면 괜찮을테니까요. (그의 몸이 껴안아줄듯 가까워지는 것도. 노을빛은 원래 종종 사람을 착각하게 하니까.)
이스피어 틸다:(파도 치는 소리는 이곳까지 범람하지 못하였으므로, 반쯤 열린 현관문까지 포함한 이 공간은, 오롯한 둘만의 장소가 된다. 어깨가 붙잡힐 적엔 놀란 것처럼 손가락 끝이 오므라들었나. 힘이 풀어졌다가, 다시 힘을 주었다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이어졌지만, 그것에 집중할 여력은 없었다.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부터 비롯된 충동이 이스피어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누군가에게
걱정이란 걸 받아본 적이 아주, 아주 오래 전의 일만 같아서. 단순히 당신의 그 물음에 자신도 아픔을 알았던 사람이란 것을 되새겨버린 것 같아서. 무서웠다는 것을 깨달아버려서. ……그리고 돌연 그가
한 걸음을 더 디뎌 당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 아까, 돌아오는 길에…. (다급한 변명이 이어진다. 지금의 행동은 순전히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이 행동을 합리화하듯.)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만 가, 같아서……. (더듬거리듯 말을 잇는다.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더 힘을 준다. 온몸이 자그맣게 떨리고 있었다.)
아이작 딜라이트:(허리를 덥썩 끌어안는 감촉에 숨을 들이켰다. 헙. 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터져나와 그가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지는 당신이 절대로 알지 못하겠지만.) ... ... 그. ... 그렇군요. (방금 전까지 뛰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숨이 조금 가빴다. 당신이 허리를 안은 뒤, 공중에 붕 떠있던 팔을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던가.) ... ... 위로가, 필요하신 겁니까?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되물었다. 누군가에게 일종의 허락을 받는 행위처럼 느껴질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스피어 틸다:(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헤매든간, 이스피어는 그저 당신의 품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반쯤 열려 있었던 문이 서서히 닫혀갔다. 노을빛 스며들었던 집 안이 은은한 어둠으로 물들기까지도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
하아, 그가 한숨이라도 쉬듯 자그마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라도 된 양 당신의 품에 이마를 살며시 부빈다.)
…네. (무슨 생각으로.) 너무, 무서워요. 신부님…. (대체 왜….)
아이작 딜라이트:(생각해보면, 이상한 행동이었다. 딜라이트 신부는 어려보이긴 하나, 어리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 어리숙한 것은 아니었다. 마을에서의 평판이나, 평소 당신을 대하는 태도로 보건데 그가 제법 많은 수의 사람을 신부로서 대해봤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시기에,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은 위로일테고. 그러므로 당신을 안심시키고, 신께서 보우하사 당신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이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 ... . 그는 마치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한 풋내기처럼 당신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제 품에서 뱉어나오는 숨을 느끼자 어깨가 움찔 떨렸다.) ... 알겠습니다. 위로가 필요하신 거라면. ... 어쩔 수 없으니까요. (어쩔 수 없다. 대체 왜 그렇게 말한 걸까. 공중에 애매하게 멈춰있던 손이 움직여 조심스럽게 어깨를 끌어안았다. 뒷통수를 안아 살살 어루어만지는 손길이 제법 익숙해보였다.) 안심할 수 있으실 때까지 제가 함께 있겠습니다. ... 부디 밤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자매님.
이스피어 틸다:(당신의 품 안에서 그는 지독하리만치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표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이상하지, 악마일지도 모르는 당신인데. 왜 내 어깨를 끌어안아주고 뒷머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져주는 손길에서, 그 온기에서, 이 안락함에서, 나는 빌어먹게도 왜 빈 마음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지? …그리고 당신은 왜 이런 나를 거절하지 못하나. 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지금의 상황을 합리화시키나. 그가 당신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라도 하듯,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돌렸다.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 신부님은, 참 다정하시네요…. (두통은 아직도 멎지 않아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아프다. 아파. 당신이 자신을 더 힘주어 끌어안아주었으면 했다. 더 자신을 쓰다듬어주고, 더, 더, 더.)
(…그리고 그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아이작…, (하고. 본인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이작 딜라이트:(귀기울여 들은 딜라이트 신부의 심장소리는 빠르다, 고 정의하기도 애매했고 변화없다. 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다만 확실한 건 심장소리가 아주 컸다는 것. 시간이 멈춘 장소에 온 것처럼 그는 편안한 숨을 뱉어내며 더욱 당신의 몸을 팔로 단단히 엮어 안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체취를 맡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는 아무 대답 않았고, 허리를 숙여가며 더, 더 자신의 품 안쪽으로 당신을 끌어 안다가... ... ... ) 네? (물벼락을 맞기라도 한 것처럼 급하게 당신을 제 품 안에서 떼어내 얼굴을 확인했다. 당신도 아마 보았을 것이다. 당황섞인 얼굴 사이로 보이는, 아주, 작은.
환희를.) 방금. ... ... 방금, 뭐라고.
이스피어 틸다:(안타깝게도 정적을 깬 쪽은 당신이었고, 이스피어는 찰나 누렸던 안온함이 깨져나간 것에 당황하여 당신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걷힌다, 거의 저물어가는 희미한 노을빛이 창문을 타고 넘어와 집 안을 물들이고 있었고, 그는 이번에는 음영진 당신의 얼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이해 못할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그가 멍청하게 눈꼬리를 살며시 늘어뜨렸다.) 신부,님? (그리고 순간 머리를 찌르듯 하는 통증. 눈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관자놀이께를 감싼다. 그는 멍하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제가 뭐라 말했,었나요?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섬뜩한 말을 뱉는 주체의 얼굴을 당신은 확인하고야 말았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는 고작해야 2주 전에 마을에 온 풋내기 사제인데...
어쩌면, 당신은 무언가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가 당신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당신을 쫓아온 그림자의 정체와 그 사이에 지독한 상관성이 있을것만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통증에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기껏 가까워졌던 거리가 무색하게도.) ……제가, (한순간 갈라지는 음성.) 무엇,을 후회하나요, 신부님?
……아까 저를 쫓아오셨던 것도 신부님이신가요?
아이작 딜라이트:... ... 네? (하지만 간사하게도,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짝을 하고 있었다.) 무슨, ...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매님을 쫓았다고요?
이스피어 틸다:(머리를 부여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무슨 감정에서 기인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떨림을 억누르고자 양쪽 손을 마주 잡았다. 고개를 저으며 몸을 옆으로 돌린다. 당신에게서 시선을 피하듯.) ……신부님이 아니셨나요? (당신은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 너무.)
아이작 딜라이트:전혀... . (이해가 안된다는 것처럼 말을 더듬다가, 짐짓 표정이 가라앉았다.) 혹시 누가 자매님을 쫓아온 겁니까? ... 언제부터요? 아까 놀라던 것도 그럼 혹시... 누가 자매님을 쫓은 탓입니까? (커튼 뒤를 부산스럽게 살펴보다가, 안이 보이지 않도록 꼼꼼하게 커튼을 닫았다.) 망조가 드니 악한 마음이 곳곳에 퍼지려나봅니다. (딜라이트 사제는 정말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스피어 틸다:……. (커튼을 닫자 순식간에 방 안이 어두워진다. 당신의 그림자가 유독 짙게 보인 탓에 그가 어깨를 떨다가, 몸을 완전히 뒤돌아 촛불을 찾았다. 칙, 성냥에 붙은 불이 곧 초의 심지로 옮겨붙어 그나마 집 안을 밝혔다.) 신부님, 혹시….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물어보려다, 혹은
요청하려다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이 전염병의 원인을 쫓아야 하는데, 아는 것도, 접촉할 수 있는 사람도 너무나 적었던 까닭이다. 손톱을 잘근 깨물었다.) ……성당에, 혹시….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요? (눈치를 살피듯 당신을 바라본다.)
아이작 딜라이트:(촛불의 아른거리는 불빛에 비춰보이는 당신이 그의 눈에는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 아. 커튼으로 가린 창문 틈새로 석양이 여지껏 들어오고 있기라도 한듯 그의 뺨이 조금 붉은 것처럼 보였다.) ... ... 오늘 일 때문이라면, (그는 입을 잠시 벙긋거렸다. 망설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 ... ... 제 방을 내어드릴테니, 거기서 지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모쪼록 안전이 제일이니까요.
이스피어 틸다:(그의 숨이 잠시간 멈췄다. 설마하니, 당신이 바로 자신의 방을 내어줄 줄은 상상도 못한 까닭이다. ……아니, 하지만. 저렇게 순순히 말하니 의심이 갔다. 다시 생각해, 이스피어. 저 사내는 악마일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감추는 것이 수도 없이 많으며, 또, 가끔
이상한 감정을 가지게끔 만드니까…. 당신의 얼굴을 살펴볼 새도 없이 그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까지의 호의는 괜찮습니다, 신부님. 당장 오늘이 아니더래도 그저, 몇 밤만 교회에서 지새울 수 있다면 저는… 괜찮으니까요. (무슨 의도지? 경계심이 올랐다.)
아이작 딜라이트:(그리고, 딜라이트 사제가 당신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아뇨. 당장 오늘부터 머무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행여 도둑일수도 있으니까요. ... ... 조금 더 본인의 안전을 우선시 하세요, 자매님. (진심으로 속이 상하기라도 한 얼굴이었다. ... 뛰어난 연기자? 아니면... ...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식사를 마치면 곧장 짐을 챙겨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그의 어깨가 이번에는 크게 떨렸다. 보였을까? 순간적으로 손을 황급히 빼내려던 그가 숨을 가다듬으며 손가락 끝만 움찔댔다. 그제서야 당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이. (그러나 얼굴을 마주한 것이 무색하게도 그가 곧 고개를 살며시 떨군다.) 저, 저는 남편을 여읜 여자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신부님의 평판을 깎아먹기라도 할까봐…. (그런데 이스피어, 왜 정작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어?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새하얗게 질려서 입술을 닫아버릴 주제에.) 정말, ……괜찮,은데….
아이작 딜라이트:... 우리 모두 신의 자녀라는 것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딜라이트 사제는 그저 당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어쩌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어쩌면 당신을 위협하고, 또 어쩌면... ...
정말로 당신에게 깊은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 마음은 좀 진정되셨나요? 아무래도 저녁식사 준비는 제가 해야할 것 같네요. ... 댁에 재료가 어떤 게 남았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이스피어 틸다:(그리고 일전 당신이 안아주었을 때 느낀 온기와, 인간적인 위로를 통해 약해진 마음은 또다시, 술렁이고 만다. 하여 이스피어는 당신의 얼굴을 마주보길 피했다. 흔들리기에는 당신이 유독 의심스러웠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선 잠시 앉아 계세요!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마음이 편치 않으니…. (고민하던 그가 조심스레 당신의 소매깃을 붙잡고 의자로 이끌었다. 어깨를 살짝 붙잡아 앉히려는 시늉까지도.)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애써 웃어보려 했다.)
아이작 딜라이트:(팔을 걷어붙이려는 것처럼... 굴다가, 당신의 만류에 결국엔 마련된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 ... 알겠습니다. 대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 잠시 방을 구경해도 될까요? 실례라면, 죄송합니다.
이스피어 틸다:(당신의 모습에 그가 티가 나도록 안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저도 모르게 한순간 희미하게 웃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지.) 아, 네. 당연히요. 가만히 있으시기엔 심심하실 테니까…. (방금까지 있었던
아주 이상한 일들에 대해서는 바로 또 잊어버린 모양이다.) 가장 안쪽 방만 안 들어가시면 돼요.
아이작 딜라이트:(앉았던 몸을 일으켜 세워, 집을 가볍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전시된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 같았던가. ...) ... 가장 안쪽 방은 자매님께서 사용하시는 건가요? (느긋한 발걸음으로 걷다가, 방 한가운데에 걸려있는 가족 초상화를 보았다.) ... ... 멋지군요. (하지만 목소리는 어쩐지 묘하게 낮았다.) 가족분이십니까?
이스피어 틸다:가장 안쪽 방은…. (재료를 손질하던 손이 잠시 멈췄다. 침묵 끝에.) 남편의 방이에요. 제가 들어가는 것도 워낙… 싫어했어서. (다시 칼질 소리가 이어진다. 멋지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짐작한 뒤엔, 작은 웃음소리가 섞여들기도 했다. 당신의 목소리가 낮아진 것은 눈치채지도 못한 양.) 네…. 그래도 꽤 비싼 값을 치르고 초상화를 얻었었죠.
아이작 딜라이트:... 남편 분은 떠나셨는데도, 여전히 자매님께선 그 시간에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때로는 과거는 떨쳐버리는 것이 좋은데도요.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리곤, 이어서 초상화 쪽으로 살며시 손을 뻗는데... .) 부인께서 조금 순진한 것일수도 있고요. (무슨 소리일까. 가벼운 웃음과 함께 초상화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어쩐지, ... 경쾌해보였다.) 남편분 얼굴 쪽에 얼룩이 져 있어서요. 주제넘은 말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이스피어 틸다:(탁, 탁, 탁,
탁! 일정한 박자로 재료를 썰던 손길이, 어느 순간 큰 소리를 내며 멈춘다. 어느덧 끓고 있는 냄비에는 신경도 못 쓰고,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딱딱하게 굳은 음성이 흘러나오다.)
얼룩이 져 있다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신부님. (그리고 멈추었던 소리가 이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순간 이해를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아이작 딜라이트:... 가끔 화가들은 물감 값을 아끼기 위해 이런 일을 하기도 ...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다만 확실한 건, 내내 이 상황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굴던 그의 얼굴이 묘하게 ... .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번져버린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듯. 그러다 돌연 성큼성큼 당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더니.) 죄송합니다. 냄비가 끓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 (가스를 잠군다. ... 그러느라 훌쩍 가까워진 거리감을 당신이 자연스럽게 느꼈겠지만.)
이스피어 틸다:신부님. 저는 그 이야길 더 하고 싶지-, (건조하게 중얼거리던 때, 당신이 부쩍 가까이 다가온다.
멍한 눈동자가 당신을 올려다보다, 뒤늦게 선명한 상을 잡는다. 급하게 고개를 떨어뜨린다. 칼을 쥐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더 물러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제 정신 좀 봐. 불도 제대로 조절 못 하고…. 저 워, 원래는 안 이래요, 신부님. 정말 안 이러는데….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그가 말을 절며 당신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작 딜라이트:괜찮습니다. 오늘 놀라셨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그는 자꾸만 당신에게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마치, 당신의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주려는 신. ...
악마처럼. 당신이 어떤 죄도 지어도 된다는 듯이.) 아. 머리카락이. (그리곤 곧, 당신의 머리카락이 조금 흘러나와있는 걸 발견했는지 손을 뻗어선.) ... 실례하겠습니다. (귀 뒤로 느릿하게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래. 아주 느린 동작으로. 귓바퀴를 쓸듯이 손을 움직였다가, 귓불을 조심스럽게 쥔다.) ... 귀걸이를 하셨으면 예뻤겠네요. (이런 얘기를 대체 왜 하는건지. 그는 그저 태연한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이스피어 틸다:(등 뒤가 섬짓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오싹함이 허리를 타고 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귓가를 스치는 손가락이, 아,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귓볼을 쥐는 움직임이.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서 어깨를 잘게 떨었다. 왜 이러지? 이상할 게 하나 없는데도, 금방이라도 주저앉아버릴 것처럼 다리에서 힘이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도 당신의 손길을 거부할 의지라곤 하나도 들지 않아서, 그는 무력한 척, 어쩌면, 당신의 손길을.) ……귀, 귀걸,이요. (뒤늦게 그가 저 또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척 하며 은근히 당신의 손을 떼어낸다. 목덜미까지 열이 올랐다.) 그,러게요. 예전에는 하고 다녔던 것 같기도 했는데……. 아니, 안 했나? 뚫었었,나…. (그의 귓볼을 만진 당신은, 그의 오른쪽 귓볼에 어떤
흉이 져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과거에 정말 귀를 뚫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보다는 신부님. 곧 저녁 준비가 끝나는데… 실례가 되지 않으시다면. (다만 그는 화제를 돌렸다.) 마당에 무화과 나무가 있어요. 열매를 몇 개 따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의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걸 그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간지럽히듯 귓불을 계속 쓸기만 했다. 등 뒤에 있던 그의 다른 쪽 손에만 힘이 들어가고 있었던 건, 당신이 절대로 알지 못할 사실일 것이다.) 나중에 괜찮은 것이 보이면 한 번 선물해드려도 좋을 것 같네요. (일방적인 약속을 한다.) ... ...
무화과요? ... 무화과를 키우시나요? (손을 거둔 그가 잠시 침묵했다.) ... 좋아하시나요? (무화과를? 아니면, 다른 것을? 고작 과일 취향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는 유독 뜸을 들였다.)
이스피어 틸다:(간지러움이 너무 심했다, 그가 기어코 헛숨을 들이키며 한쪽 손으로 귀를 감싸듯 움직였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 이 감각은,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이길래.) 괘, 괜찮아요. 그런 치장에 신경을 쓰던 나이도 훌쩍 지났고…. (그러다 어딘가 묘한 음성이 들려오면, 그가 느리게 고개를 움직여 당신을 본다.) 네? ……저는,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표정이 다소 흐릿해진다.) ……그러게요. 남편은 무화과를 싫어했는데, 제가, 저는. ……왜 심었더라? 무화과를, 제가……. (눈빛까지도 어둠에 먹혀간다.)
아이작 딜라이트:그래도 때론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순간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 뭐. 자매님께선 그런 걸 걸치지 않으셔도... ... . (뭐라고? 방금 뭔가, 부적절한 언사를 뱉지 않았나? 분명히 그의 시선이 당신의 몸을 타고 흐르듯 움직였던 것 같은데... ... . 그리고 점점 어둠속으로 가라앉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 .)
자매님. (그가 당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방금 전 우리에게 있었던 일은 없는,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처럼.) 무화과는 4알정도면 괜찮을까요?
이스피어 틸다:(
피어,라고 자신을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던 것부터 시작해서 후회하게 될 것이라 말하는 말, 그리고,지금 당장의 알 수 없는 발언까지. 하지만 자신을 한 번 훑어보듯한 시선조차 눈치채지 못함은 그가 깊고 깊은 어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리라.
자매님. 호명하는 목소리에 그가 눈을 길게 감았다 뜬다.) …네?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어딘가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네,에. 네 개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신부님께서 드실 수 있으신 정도로만……. (금방 무슨 일이 있었지? 고개를 뒤흔들며 상념을 떨쳤다.)
당신 안에 자리잡던 무언가가 툭, 떨어져나갑니다.
과거? 공포? ... 그것은 그 어떤 이름으로도 정의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이걸 눈치챌 수 있는 순간이 오는 건 아마... .
아이작 딜라이트:지금은 무화과가 철인가봅니다. (언제 다녀온건지, 어느새 그가 과일을 들고 서 있었다.)
이 정체불명의 사제에게서 느끼는 불명의 감정을 정의하고 난 뒤겠죠.
미묘한 분위기의 저녁식사가 끝나고, 딜라이트 사제는 성당에서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걸 보면, 그럭저럭 맛이 있긴 했던 모양이에요.
서랍
,
책장
,
침대
,
??의 방
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식기를 다 치우고, 거실의 모습을 강박적일 정도로
원래 상태로 되돌렸다. ……그리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아, 그래. 짐을 챙겨야 했지. 아이, ……신부님의 집으로.)
(그가 무감한 표정으로 서랍을 열었다.)
간단한 사무용품과,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는 서랍입니다.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6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문득, 당신은 서랍 가장 안쪽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보통 귀걸이로 많이 사용하는 진주보다 조금 더 작은 크기입니다. 선물한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주면서 제법 창피했겠어요.
이스피어 틸다:(문득 젊은 신부가 했던 말이 귓가를 돌았다. 귓볼에 남은 감촉까지도. 그래서 왜일까? 그는 귀걸이를 들어올려, 아무 생각 없이 오른쪽 귀 위로 대 보았다. …그러다 손을 내린다.)
(…책장을 살펴보자.)
두번째 서랍을 열어보지 않고, 책장을 살펴볼까요?
이스피어 틸다:(-내 정신좀 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양손으로 뺨을 살살 때렸다. 두번째 서랍을 먼저 연다.)
어라? 정작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네요.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무래도 서랍을 여는 도중에 뭐가 걸리는 것 같아요.
서랍천장 귀퉁이에, 뭔가 붙어있는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습니다.
살살 긁어 떼어내 꺼내보자, 그건 다름아닌
열쇠
네요.
아니, 애초에 당신의 집인데 왜 모르고 있었죠?
이스피어 틸다:……. (
열쇠? 이게 왜 여기에? 등허리를 타고 소름이 쫙 끼쳤다. 너무 이상하잖아. 여긴 내 집인데.)
(어디에 사용하는 거지? 그때부터 이스피어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책장에는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 조금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책들이 잔뜩 꽂혀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어디에, 어디에 쓰는 거지.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다급하게 열쇠를 살펴보았다.)
집열쇠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서랍을 잠굴 수 있는 크기도 아닌데...
아이들이 사용할법한 손바닥만한
보물 상자
에나 맞을 것 같네요.
이스피어 틸다:(불안감일지 뭘지 모를 것이 들불처럼 번졌다. 어쩌면 선명하게 보이는 답을 무시하며, 그는 도피하기 위해 침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침대 위는 오늘 아침, 당신이 나섰던 그 모습 그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문득 당신은 침대밑도 함께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유는... 글쎄요. 하지만 보통 소중한 물건은 침대 밑에 두기도 하잖아요.
이스피어 틸다:(심장이 크게 뛰며 귀를 쿵쿵 울렸다. 그가 문득 자세를 낮춰 침대 밑을 살폈다. 왜인지는, 몰라.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먼지더미들 사이로 뭔가 툭, 하고 닿는 느낌이 들어요.
이스피어 틸다:(먼지를 더듬는 손이 무언가와 닿았다. 순간적으로 숨이 멈췄나. ……머뭇거렸으나, 그는 결국 그 무언가를 꺼냈다.)
당신의 손바닥에 올라올법한, 그리 크지 않은 크키의 상자.
이스피어 틸다:(그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하여 무릎 위에 더러운 상자를 올려놓고, 또 하염없이 그러고만 있었다.)
(열쇠를 사용해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편지입니다. ... 갈기갈기 찢겨있지만요.
반지는 조촐하고, 그 흔한 다이아몬드 하나 박혀있지 않아요.
청혼용인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어쩐지 소중한 기분이 드네요.
이스피어 틸다:(……상자에 곁에 두었던 촛불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어쩐지,
소중한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은 아주 오래 전에서나 겪어본 것 같아. 기억나지 않는, 무척이나, 옛날의.)
(찢긴 편지를 바닥에 늘어놓고 맞추기 시작했다. 읽을 수 있는 문장이라도 있나, 싶어서.)
갑자기 몸을 숙여 침대 밑을 더듬었던 것처럼, 이 행동의 이유조차 알 수 없었죠.
고작 찢어진 편지따위를 맞춰서 뭐하려고요, 이스피어?
이스피어 틸다:(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 그냥,
아주 중요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서…. 불꽃이 하염없이 일렁였다. 그는 제 숨이 다소 거칠어진 것을 그때서야 깨닫고, 두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았다.)
(어느덧 얼추 조각을 맞추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무슨 글이 적혀있었지?)
찢어진 모양에 따라 내용을 맞추다보면, 조금씩 그 내용이 드러납니다.
이스피어. 만약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나는 지금쯤
애틋한 것 같기도, 동시에 소름끼치기도 한... .
애정과 집착, 그 언저리에 있는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의 나열.
구겨지고 찢겨져 정확히 보이지 않는 내용 사이로, 유독 선명한 글씨가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그'가 누구인데? 가짜는 누구고 진짜는 누구이며, 아니, 나는.
애초에 난 무엇을 잊어버린 거지? 유독 선명한 이름만이 눈에 박힌다. 유독, 이상할만큼, 틀어박혀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름이 적힌 그 종이를 손아귀 안에서 구겨져라 쥐었다.)
…….
(마지막으로, ??의 방으로 향한다.)
이스피어 틸다:(두려움에 굳어, 그의 발길이 방문 앞에서 멈췄다.)
이 문을 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건 아니죠. 그쵸?
이스피어 틸다:(아무리 숨을 가다듬어도, 굽어지는 등허리를 피려 굴어도,) -……. (결국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떨리는 손이 문고리를 잡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문을,)
(문을.)
(문이. 이곳이.)
…….
이스피어 틸다:(그는 도망치듯 뒤를 돌았다.)
(짐을 챙겨든다. 아이의 목걸이, 구겨진, 이름이 적힌 종이와 가벼운 생필품, 옷가지, 그리고….)
(…식사 때 남은 무화과 하나.)
(촛불의 불을 등잔으로 옮겼다. 등을 들고 집을 나선다. 겉옷을 더 여몄다…. 성당으로 향하자.)
도망자 꼴이나 다름없기 때문일까요, 성당으로 향하는 내내 마을사람들의 눈길이 당신을 따라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귀가했을 때처럼... 당신이 혼자 남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성당에 점점 가까이 다다르기 시작하면, 저 멀리 딜라이트 사제가 보입니다.
이스피어 틸다:(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지?)
당신이 머물 자리를 준비하는 걸까요? 아니면 ... .
최근들어 당신이 지니고 있는
공백
이 더 커지고 있는 것만 같지 않나요?
이스피어 틸다:…….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간다. 등불을 고쳐 들며.) 사제님? (부른다.)
아이작 딜라이트:아. (그는 어쩐지 눈에 띄게 놀란 것 같았다.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 당신에겐 들키면 안 되는 행동을 하려고 했다던가.) ... 일찍 오셨군요. (그의 말 한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짐은... (하며 당신의 가방을 보았다.) 그게 전부인가요?
이스피어 틸다:(하지만 그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그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살피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너무, 일찍 왔나요?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제가 방해를….
아이작 딜라이트:... 아닙니다. (그의 시선이 어딘가 어색했다. 당신의 뒤쪽을 바라보는 것 같다가, ... 눈을 살짝 접듯이 웃으면 금방 어색한 기색이 사라지곤 했다. 그게 더 이상하지만.) 들어가시죠. 뒷문으로 들어가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까요. 오는 동안 누군가 또 쫓아오거나 하진 않았습니까?
이스피어 틸다:(그런 당신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숙이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손가락이 오른쪽 귓가를 스쳤다.) ……아까의 일도, 제가 과,민하게 반응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짐을 든 손을 잠시 꼼지락거렸다.)
(뒷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가자.)
뒷문으로 돌아가는 동안 드문드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이내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인기척은 사라집니다.
늦은 시간까지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성당에도 이렇게나 고요한 공간이 있긴 했나봐요.
딜라이트 사제는 곧 성당 내부에 마련된 방문을 열며 당신을 안내합니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데다가, 짐같은 건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사용감이 느껴지네요.
딜라이트 사제가 정말로 자신이 사용하던 방을 당신에게 양보한 걸까요?
아이작 딜라이트:열쇠는 이 것을 사용하시면 되고... (한쪽에 마련된 책상 위에 열쇠를 두었다.) 말씀드릴 땐 하룻밤이라고 했지만, 원하시는 시간만큼 지내셔도 무관하니 부디 편히 머물다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휴게실에 있을 예정이니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그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스피어 틸다:(당황 섞인 시선으로 방 안을 둘러보던 그가 화들짝 놀라 당신을 돌아보았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눈빛에 서렸나.) 저, 그게. (이곳은 정말 당신이 사용하던 방이었을까? 하지만,
한낱 신도를 살핀다기에는. 너무.) ……제가, 휴게실을 쓰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사제님? 어차피 새벽을 보내기 위해 사제님을 찾아온 것이니까…. (그리고 교회를 또, 살펴보아야 하니까.)
아이작 딜라이트:염려치 마세요. (딜라이트 사제는 이 순간만큼은 진실되게, 자애로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자매님께선 늘 새벽이나 늦은 저녁에도 성당에 오셔서 성실하게 신을 뵙고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정성어린 신도분을 허투루 모실 순 없죠. 게다가, 이 편이 제 마음에 더 편하기도 하고요.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인 휴게실보다야, 제 개인실에서 머무시는 게 자매님께서도 더 안심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스피어 틸다:하지만…. (교회를, 살펴봐야 하는데. 입을 다문 것에는 당신의 미소에 시선이 한순간 팔리고 만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품 안의 찢긴 종이 한 장 때문이 더 컸다. ISAC,이라고 적힌 단어가.) ……제가, 너무 죄스러워서 어떻게 하죠, 신부님…. (그는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소극적인 긍정을 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은 딜라이트 신부의 방부터 살펴보아야겠어. 죄책감에 뒤로 보낸 손만 주먹을 꽉 쥐고선.)
아이작 딜라이트: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라고 말하며 그는 당신의 짐을 옮겨 들어 침대 매트리스 위에 놓아주기까지 했다.) 날이 차다고 느껴지시면 시트를 더 드릴 수 있으니 얼마든지 얘기해주세요. 오시는 동안 수상한 자들이 또 쫓아오지는 않았습니까?
이스피어 틸다:어어, (하는 사이에 짐까지 빼았겼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어중간하게 서서 당신을 말리지도, 그렇다고 돕지도 못하고 있길 한참.) ……수상한, 자들이요. (어쩐지 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저, 신부님.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제 이야기를 너무 믿지 않으셔도 돼요. 그게. (불안한듯 맞잡은 손이 꼼지락댔다.) 제가… 정신적으로 많이 취약해서. (멋쩍은 웃음.) 가끔은 어제 있었던 일도 기억이 안 나더라니까요….
아이작 딜라이트:... ... (딜라이트 신부의 시선이 그 이야기를 하는 당신의 얼굴에서 살며시 빗겨갔을 때, 시린 달빛이 들어오는 방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어딘가 초라해보이는 낯을 하고 있었다.) ... 시기가, 시기니까요. (대부분의 상황을 이 문장으로 넘기곤 했다.) 그치만 겁에 질려있으셨던 것 만큼은 사실이죠. 자매님의 충고는 알겠지만, 저는 제가 본 것만을 믿도록 하겠습니다. ... 기억을 잃는 일이, 자주 있으신가요? 특정한 규칙이 있다던가... 그런거라면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요.
이스피어 틸다:(그리고 문득 당신의 그런 얼굴을 보았을 때, 그는 공기가 차갑다고 느꼈다. 조심히 한쪽 팔을 손으로 쓸어본다. 다시 고개를 바닥으로 내린다.) ……잘 모르겠어요. 남편은 언제나 제게 약한 여자라며…. (…아니. 이런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이스피어. 입술을 꾹 다물다 멋쩍게 웃었다.) 최,근 들어서는 못 볻던 물건이 집에 있기도 하더라고요. …참. 그렇게
귀걸이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의 시선이 서서히 들려 당신을 향했다. 푸른 달빛을 받아 하얀, 그러나 초라한 진주가 희미한 빛을 보였을 테다. 묘한 긴장을 감추려 들며, 그가 순진하게 웃어보이려 애썼다.)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요. (변명처럼 들렸을까.)
아이작 딜라이트:실례되는 이야기지만. 서로에게 좋은 관계는 아닌 것처럼 들리는군요. (모든 문장을 말하기까지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마치 속 안에 몇 번이고 다짐한 뒤에 뱉어내듯. 다만 당신이 내미는 물건을 보자, 어째서인지 그는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거나, 그렇군요. 하는 건조한 대답 대신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타임 캡슐 속에서 자신의 물건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의 눈은 잠깐 빛났다.) 단촐하군요. (탓하듯한 말투. 하지만 웃음기 섞인 목소리. 타인의 물건임에도 어쩐지 자신의 것인양 대하는 편한 어조였다. 당신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있는 작은 귀걸이를 그는 굳이, 손을 뻗어 집어들더니... .) 해드릴까요? (이상한 것을 물었다.) 원하신다면 말입니다. (덧붙이긴 했지만.) 이런 물건은 눈에 띄니 착용한 채 돌아다니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만... . 기분을 내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래도 귀걸이를 착용하지 않은지 제법 되신 것일테니, 도움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여긴 거울도 없고요. (순수한 선의를 드러내듯한 미소였다.)
이스피어 틸다:……. (서로에게 좋은 관계는 아닌 것처럼 들리는군요. 이스피어는 그 말에 입술을 열었지만, 끝내 닫았다. 어설픈 미소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언어로 하여금 심장이 요동친다. 당신이 손바닥에 들린 귀걸이를 가져감으로써 더,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작디 작은 무게가 사라진 손바닥을 거둘 생각도 못한 그는 다소 멍한 시선으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자신은 '지금'을 살고 있는데 기억나지도 않는 머나먼 과거를 방문한 것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향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사무치게 가슴을 두드려왔다. 중얼거렸다.) 단촐한가요? (정말, 모르겠다. 있는지도 몰랐던 작은 귀걸이 하나일 뿐인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웃는 얼굴을 바라본다. 술렁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어느덧 가까워진 거리조차 신경쓸 새 없이.)
해주세요. (마치 그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만 같았다.) …신부님의 손으로요.
아이작 딜라이트:(
실례하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마친 뒤, 그는 자연스럽게 당신의 옆으로 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신부복을 걸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의 직업을 오해하는 게 당연할 정도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저녁 노을이 우리 사이를 뜨겁게 가로질렀던 그 때처럼, 그가 다시 한 번 당신의 귓볼을 부드럽게 쓸었다. 이로써 오른 열기가 노을 탓이 아니라는 것 쯤은 당신도 알았을 것이다.) 짝이 맞지 않는 건 좀 아쉬운 일이네요. (느린 어조로 말하고, 그는 마치 귓볼에 홧홧한 기운이 감돌때까지 기다리듯 귀걸이는 다른 손에 쥔 채 한참 만지작거리고 있기나 했다.) 이외의 장신구는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 ... 시기가 시기지만, 머리카락 색이 어두운 분께는 장신구따위가 잘 어울리는 법이니까요. 제가. (그는 잠시 말을 고르듯 입을 다물었고.) 남편 분 입장이었더라면. 이런저런 악세사리를 주렁주렁 달아주려고 했을 겁니다.
이스피어 틸다:(그래, 지금은 해 질 녘도 아니니 얼굴에 붉은 기가 감돌았더라면 그것은 필시. …따라서 그는 머리카락이 귀 뒤로 넘어가고, 가죽 장갑의 감촉이 부드럽게 귓볼을 쓸었을 때 간지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힘썼다. 수 차례고 눈을 깜빡였다.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 애매한 시간이 길어질 수록 그는, 침착해야 했으므로, 조용히 치맛자락을 말아 쥐길 반복했다.) ……이외의 장신구는, 아뇨. (필사적으로 당신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 들었다.) 제가 모르는 공간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들어서는 특히, (눈을 굴렸다.)
없었을 게 분명한 기억도 진짜였던 것처럼 떠오르곤 해서….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옆에 서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상념에 빠져있다가, 뒤늦게 당신의 말을 놓친 뒤에서야 고개를 들었다. 당신을 보는 표정에 당황이 서려 있었다.) 네? …죄송해요, 신부님.
금방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이작 딜라이트:... 이쪽을 보시면 안 됩니다. (딜라이트 사제는 정확한 대답 대신, 자신을 향해 돌아보는 당신의 고개를 직접 제 손으로 돌려주며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게 만들었다. 누가 뭐래도 그건 의도적인 행동인 게 분명했으나, ... 당신의 입장에선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다칠수도 있으니까요. (대체 뭐에? 설마하니 귀걸이 핀에 말인가? 당신이 정확히 알아들은 게 맞다면, 비웃음을 살만한 말이었다.) 주로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그런 상념이 머릿속을 차지하기도 전에, 이쪽이 먼저 선수를 치기는 했지만.) 저야 그런 경험이 없지만... . 짧은 견해로 말씀드려보자면, 보통 떠오르는 기억은 가장 강렬한 것들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게 좋은 방향일수도 있고, 좋지 않은 방향일수도 있다는 것이겠지만요. (그리고 그는 잠시 침묵했다.) 기억을 온전히 찾고 싶단 생각도, 혹 하시나요?
이스피어 틸다:…. (당신이 직접 고개를 돌려주는 손길에 그가 어깨만 움찔 떨었던가. 의혹에 찬 눈동자가 당황스럽게 굴러가긴 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위험할 게 없지 않나? 되려 당신을 보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니 감각만 예민해진다. 그때 당신이 상념의 고리를 자르고 말을 걸어온다. 당황하기야 했지만, 그는 퍽 고분고분하게 답한다.) ……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기억이 이상하단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으니까…. (뒤엣말을 먼저 답한 그는 한참 침묵에 잠기며 고민했다. 말할까. 말하지 말까. 당신을 한 번 떠볼까, 아니, 그러지 말까. 미묘한 긴장감의 줄을 타고 걸어가는 가운데,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신부님이……. (당신이 아닌 앞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달빛보다 어둡게 가라앉았다.) 신부님께서, 제 기억 속에 떠오르세요….
아이작 딜라이트:(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당신의 대답에 그는 그렇군요. 하는 건조한 대답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눈으로 한참이나 당신의 귀만 만지작거리기를 몇 초.) ... 조금 따끔할수도 있습니다. (같은 소리나 하며 은근슬쩍 주제를 넘기듯이 말하고선, 귀걸이 핀을 조심스럽게 귓볼 위에 난 자리로 밀어넣었다.) ... 네? (물론, 당신의 이어지는 말에 그마저도 중간에 멈추고 말았지만.) ... ... 그건, ... 굉장히. (무슨 말을 하려는걸까. 그는 한참이나 단어를 직접 고르기라도 하듯 침묵을 지켰다.) ... 흥미롭군요. (흥미롭다? 탐구적인 사람이나 뱉어내는 문장을 구사하는 게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다.) ... 주로 저의 어떤 기억인가요? (정말 단순한 흥미? 아니면, 불안? 혹은 두려움이나... 다른 감정이었을까? 그의 말투는 곧잘 감정없이 이어졌고, 통상적으로 단조로웠기에 때때로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스피어 틸다:(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이 이어질수록 그는 초조함이 들끓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거렸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당신이 만지작거려 덥게 달아올랐던 귓볼 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닿더니. 곧 작은 통증을 일게 한다. 어깨가 움찔대는 것과 동시에, 놀란 이스피어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 (아야. 치맛자락만 말아쥐던 손이 저도 모르게 당신의 손등을 붙잡았다. 언뜻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당신을 돌아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 계속 가까이에 있었으니까.) ……흥미로우신가요? (어쨌건 당신의 그 담백-하게 받아들여지는-한 반응에 이스피어는 되려 안도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더 말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제 손목을 붙잡고, 누가,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그리고 신부님은, 제가. (말이 더듬더듬 끊겼다. 머리가 저절로 아파온다. 어느덧 귓볼에서의 통증은 잊힌다.) 편지가, 제게, (다시금 눈의 초점이 끊긴다.) 후회하실 거라고…….
아이작 딜라이트: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는 그의 말은 어쩐지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아프셨나요? (염려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담백한 언어 너머에 드러날 그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일진 아마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더듬더듬 말을 끊어 잇는 당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멍하니 시선을 공중에 던졌다가, 곧이어 초점이 흐려지는 당신의... ... .)
자매님. (그의 호명은 어쩐지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자매님은 그럼 그걸. ... ... '기억'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꿈과 기억은 엄연히 달랐다. 꿈은, 상상속의 이야기이니 어떤 내용을 포함해도 상관없지만... ... '기억'은 실존이 아니었던가. 그는 그 둘을 분명히 구분했고, 당신에게 의견을 묻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기억'속의 자매님은 어떠셨나요? (지금 그의 얼굴이 어떻지?) 떠나고 싶으셨나요? ... ...
저와. (그는 끝에서 늘 악마와 같은 형상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스피어 틸다:(이스피어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부님. 제게 함께 떠나자 말씀하셨던 게 신부님이셨나요? (확실해보이는 것은,
지금의 이스피어는 다소 정신이 이상해진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가 당신을 멍하게 바라보다 강한 힘으로 당신의 손목을 쥐었다. 아플만큼.) 편지를 보았어요, 신부님의 이름이 있었어요. 신부님은 제게 왜 후회할 거라고 말씀하셨나요? 지금 신부님은 진짜인가요? 아니면 가짜인가요?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다가가다보면 어느덧 침대에 걸린 당신의 다리가 함께 꺾여, 자연스럽게 둘의 몸이 기울어진다. 당신의 손목을 붙잡아 누른 이스피어의 얼굴이, 어땠더라. 그리고 또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지? 그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었다.) 신부님이 맞다면,
신부님은 왜 저를 데리고 가주지 않으셨나요?
아이작 딜라이트:('보통'의 신부라면, 어떤 행동이 맞았을까? 당신을 뿌리치는 것? 아니면, 얼굴을 굳히며 화를 냈을까? 아니. 보통의 신부라면 분명... . 당신에게 먼저 저녁식사를 청하지도 않았을거고,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마을회관에서 머물것이 아닌 자신의 개인실을 넘겨주지도, 우리 둘만이 남도록 문을 닫아버리지도, 당신의 귓볼을 어루어만지지도,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는 확실히
보통 신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검은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당신의 손을 뿌리치지도, 얼굴을 굳히지도 않고서 당신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라고 확신하십니까? (일반적이지 않은 질문들만 늘어놓는다.) 그게 정말 자매님의 기억이 맞다면... . 그 이유야 당장이 아니니 명확히 말씀드릴수 없겠죠. 그 시기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의 얼굴은 덤덤했다.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감정일랑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감정에 물들기 시작하는 당신이 부당하다고 느낄 만큼이나.) 하지만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건 '지금'의 당신이니, 저도 함께 묻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진짜라면, 당신이 언젠가 후회할거라고 말한 자라면. (이번엔 분명히, 눈이 마주쳤다.)
떠나고 싶으신가요? 지금이라도.
이스피어 틸다:(이성적일 수 없는 머리가 어지럽게 엉키니, 그로서는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것은 물론, '보통'의 신부가 행했을 일을 떠올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제 아래 깔린 당신을 바라보는 이스피어의 숨이 묘하게거칠었다. 왜지? 당장의 시야가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신부님은 참, 이상해요. (알 수 없는 것들로 매몰되는 표정이 고통에 일그러진다. 당신의 손목을 붙든 손에서부터 힘은 빠져나가고, 대신 떨림을 안는다. 자세로만 보았을 때 우위에 있는 것은 자신이었는데도, 꼭 당신 밑에 깔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거미의 덫에 걸려든 나비가 애처롭게 날갯짓하듯, 이스피어 또한 가녀리게 어깨를 떨고 있었다.) 왜 제가 자꾸 의심하도록 만드시나요? 왜 제가 신부님을 몰아붙이게 만들죠?
왜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미워하게 만드시나요? (툭, 투둑. …당신의 뺨으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살갗을 타고 흐르는 그것은 이상하리만큼 뜨거웠을지 모르겠다.) 신부님은 정녕 악마이신가요? 신부님께서 진짜이든 가짜이든, 제게 정말로 후회할 것이라 말씀하셨든……. (깊은 절망이 그의 등을 꺾었다. 어깨가 굽어든다. 그가 곧 흐느껴 울었다.) 보세요.
지금도 전 신부님을 찾아왔잖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니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말 뿐이었다. 순, 헛소리들.)
아이작 딜라이트:(자신을 붙들고 있는 손의 힘은 빠져나가는데, 그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긴 커녕 여전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몰아붙이듯 굴던 당신이 모래성처럼 천천히 침몰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감상이라도 하듯이. 만약 이런 감상이 진실이라면 그는 악질적인 인간이었을테고, 아니라면.) 제가 악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말 뿐인 당신의 문장들을 그는 굳이 곱씹어 말했고, 거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손뻗어 살며시 닦아주기까지 했다. 다정하게도. 잔인하게도.) 악마의 형상과 그를 묘사하는데에 사용하는 단어들은 다 제각각이지만, ... 대부분은 '현혹'하고, '유혹' 한다고들 합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는 또 왜 꺼내는 거지? 손끝으로 가볍게 쓸듯이 닦아주던 손길은 곧이어 당신의 뺨을 문대듯이 붙잡고 있었고, 어느새 다른 팔 또한, 당신의 허리 뒤로 감겨 있었다. 그것은 기꺼이 죄인인 당신을 품에 안아 달래주겠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으나... .) 그건 마치. ...
자매님께서 저를 원한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그는 확실히, '보통 신부'는 아니었으므로. 그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신의 사자를 자칭하는 옷을 입고서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그는 악마인걸까. 당신을 품에 안은 채 뺨을 어루어 만져주는 그의 얼굴에는, 비로소
'만족스럽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표정이 걸려있었다.)
이스피어 틸다:(풍랑 많은 삶이었다곤 하나 이렇게 쉽게 무너질 생은 아니었다. 그러니 변수를 꼽자면 당신이겠지. 불현듯 마을에 부임하게 된 젊은 사제. 딜라이트 신부, …
아이작.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지독하리만큼 다정하다. 혹은 잔인하다. 끌어안아오는 손길에 갑갑한 숨만을 토해내지만,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이상하게. 이 일련의 행위-아니면 상황-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모두,가. 저를 미워해요. (그리고 그는 마치 고해라도 하듯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저를 증오했고, 마을 사람들은 저를 향해 손가락질 했죠. 남편이 죽은 이후엔 남편을 죽인 여자라고, 그러다 오늘은 누군가가 저를 쫓아오기까지 하고……. (그가 천천히 몸을 당신에게 가까이 기울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당신의 목 근처를 간지럽혔을까.)
제이드를 제외하고, 그런데 신부님께서만이 제게 상냥하시더라고요……. (그는 정신이 나간 여자처럼 희미한 웃음을 그렸다. 초점이 흐렸다. 여전히.) 제게 차를 끓여주셨잖아요, 저를 보호해주시는 것처럼 행동하시고, 저녁도 같이 드셔주시고, 안아주시고, 그리고,
입도 맞춰주시고…. (잠깐, 이스피어. 그런 일은 없었는데? 잘못 생각한 거 아니야? 그러나 그의 표정은 몽롱할 뿐, '진실'을 내뱉는 사람답게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알겠어요.
신부님은 악마예요.
……그래서 저를 홀리신 거예요. 맞으시죠? (그의 얼굴이 지독한 감정으로 젖어있었다. 이를테면, 환희라든가.)
아이작 딜라이트:어리석은 이들은 모두 실수를 하기 마련이죠. 진실을 보기 버거워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법입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분명 당신의 남편과 관련된 사항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그가 겨냥하고 있는 건 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제게 기울기 시작하는 당신의 몸을 딜라이트 사제, 아니. 아이작은 당연하다시피 끌어안았고,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부드럽게 정리해주는 손길은 다정한 연인이나 할 법한 것이었다.
제이드. 그 이름에 잠시 손길이 멈추곤 했지만. 입을 맞추었다고. 사실이 아닌 것들이 포함됐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랬죠. (아니, 오히려 당신의 말을 곧장 사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볼을 매만지고,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손길은 마치 너무나 작아 힘을 주면 망가질듯한 물건을 쥐고 있는 것처럼 굴면서도, 당신의 허리를 아는 팔만큼은 단단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강렬한 집착이나, 소유욕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 그렇게 말하신다면. 그런거겠죠. (어떠한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는 늘 그랬다. 당신의 몸을 떼어내는 대신 그는 당신을 안았고, 위로의 기도 대신 그는 젖은 뺨에 제 뺨을 맞대어 부비고선 당신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럴 때마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당신은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긋한 웃음.)
악마를 만났으니 소원을 빌어야죠.
이스피어 틸다:(끌어 안아주고, 뺨을 만져주고,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손길은 분명히 낯설어야 할 것들에 틀림 없었으나, 오히려 이스피어는
마치 원래부터 이래야 했던 것처럼 당신의 손길에서 향수를 느꼈다. 더 만져줬으면 좋겠어. 더 안아주고, 더 나를. ……예뻐해줬으면 좋겠는데. 끌어안는 힘에 더운 숨만 토해냈다. 젖은 뺨이 다소 차가운 온도를 품은 당신의 뺨과 맞닿고, 그럴 때 이스피어는 당신의 목을 끌어안고. 기어코 내뱉고 마는 것이다.) ……저를… 지켜주세요. (우선하는 욕망은 그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 무서워, 날 미워하고, 날 죽이려 들어요. 신부님, 나는 그들의 칼에 허망하게 찔려 죽고 싶지 않아요. (음성이 사뭇 광기를 닮은 무언가에 물들어가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난 불타는 집에 갇히고 싶지 않아. 더 아프기 싫어…. (점점 정신을 놓아가는 사람처럼, 급기야 그는 제 나이를 잊고 당신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말하기까지 했다. 맞닿은 뺨을 부볐다. 정말이지, 당신을 몸으로 유혹하기라도 하듯.) 내가 무얼 해야 신부님께서 날 지켜줄까요? 무얼 해야……
신부님께서 내게 모든 걸 바치게 만들 수 있을까…. (천천히 그가 고개를 들어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림자가 진다.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다정했다. 혹은, 잔인했나.) 신부님은 내게 무얼 바라죠?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이 말하는 욕망과 소원은 과연 그가 예상하던 범위에 있었을까. 다만 당신에 공포에 질리듯 뱉어내는 말에, 아이작은 기어이 남은 팔로도 당신의 등을 둘러 안아주었다. 당신이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을, 그의 품 안으로.) ...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어지는 대답에서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있었다.) 대가는 단 한가지일 뿐입니다. (그는 제 뺨을 어루어 만지는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제 이름을 부르세요. (그리고 일종의 맹세, 혹은 그의 입에서 나온 '계약'이라는 단어처럼.) 그럼 나는 당신을 위해 뭐든 해드리죠. ... ... 악마와의 계약이란 원래 그런 법이니까요. (손등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내 이름은 아이작. 아이작 딜라이트입니다.
ㅡ 절대 잊어버리지 마세요.
이스피어 틸다:(누군가의 심장이 뛴다. 그는 진원지를 가늠할 수 없으므로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목도하는 사람은 차라리 날을 세우는 눈빛을 그리기도 한다. 아무 것도요? 나직히 묻는다. 손이 붙잡히자 움찔 튀는 몸, 흔들리는 숨결, 떨리는 눈동자로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이제와 내뺄 것이 있기라도 한지.) ……. (손등 위로 닿는 산 것의 숨이 오래 전부터 고장나 멈춰있던 심장을 움직이게 했다. 태엽이 감긴다. 낡아 톱니가 여럿 빠져있는 바퀴가 힘겹게 돌기 시작한다,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돌아간다. 박동한다.)
(그리고 무릇 '인간'이 그러하듯 그 또한 기꺼이 악마가 된 자의 앞에서 입을 열어 말하길.)
─그러시다면 감히 나를 겁박하는 자들의 두 눈을 뽑아주시고, 혀를 잘라주세요, 그리하여.
……나를 지켜주세요. (다소 초라한 소원을 지껄이며,)
(부르기를.)
……아이작.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뭇 신부들의 것이라 할 만큼 담백한 시선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섬기고 있음은 확실했다.) 기꺼이.
맹세하듯 당신의 손등 위에 이마를 기댄 그가 잠시의 침묵 후, 방을 나서 떠납니다.
그와 함께할 때 문득 파도처럼 기묘한 기분들이 몰려오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 의문을 안은 채 당신은 우선, 잠을 청하기로 합니다.
상대방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을까요.
흐린 안개속의 상대방이, 이번엔 당신의 손을 붙잡습니다.
분명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그가 짓고 있는 수줍은 미소 따위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이스피어 틸다:……. (손이 간지럽다. 그는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고동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이것이 새로운 만남에 대한 흥분인지, 아니면 공포인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사이, 상대가 입을 벙긋거립니다.
무슨 일이죠? 아직 방이 어두운 걸로 봐선, 새벽이 분명한데요.
이스피어 틸다:(머리가, 어지럽다. 얼마나 잠에 들었지? 분간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 그는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가쁘게 뛴다. 불안감으로, 혹은….)
(밖을 내다본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었지만, 어디론가 바삐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당신은 볼 수 있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마치 심장이 저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더 무엇도 생각하지 못하고 젊은 신부의 방을 뛰쳐나갔다. 신발을 신었나? 제 차림이 어떠했지? 하지만, 그렇지만.)
(그곳에는 제이드의……!)
…….
(곧 쓰러질 사람처럼 숨을 허덕이며 향한 바닷가, 아. 매캐한 냄새가 폐부를 사정없이 찌른다. 눈앞이 열기로 일그러진다. 광경은 어떠했나.)
멀리서 보기에도 엄청난 불길이 당신의 집을 뒤감싸고 있었습니다.
새벽녘 하늘을 붉게 물든 불길. 새카만 연기.
아마 집도, 그 속의 물건들도, 주변에 심겨져 있던 나무들도 모두 새까맣게 변해 부숴져 버리겠죠.
이스피어 틸다:(이렇게 될 줄 몰랐어,
상상조차 못했어. 변명을 덧붙인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아, 아. 흘러내리는 눈물이 얼굴을 온통 뒤덮었다.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사람처럼 더러운 바닥 위에 엎드려서 그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몰랐어, 몰랐어요.
정말 저는 아무것도……. ……그러니까 돌려줘, 제이드의 물건을. 정녕 내 잘못이라고 말하지 마, 내가 그런 게 아니잖아. 불을 태운 건 내가 아니잖아.
제이드를 죽인 것도 내가 아니잖아! 차라리 불타는 것은 집이 아닌 나인 것만 같았다, 온몸을 휘감는 격통에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럼에도 그는 불을 끄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떨어졌다. 그는 화마가 만드는 처절한 소리에 파묻히듯, 가느다란 소리만을 내어 속닥였다.)
돌려줘……. (그게 무엇이든 간에.)
……돌려줘. (제이드가 나와 함께 머물렀던 집을.)
돌려줘, 내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했던 내 아이를. 이를 악물었다. 고개를 치켜들었다. 두 눈에서 흐르는 것은 필시 눈물이 아니라 가슴을 쥐어뜯어 흐르는 피이리라.)
─돌려달란 말이야!!! (그리고 그는 어떤, 뒤이을 시간을 고려하지 못하고,)
(맨몸으로써 불타는 집 안으로 뛰어들고자 했다.)
머릿속을 휘저어놓는 상념들과 함께 당신은 화마 사이로 몸을 던질듯 발을 뻗었습니다.
애초에 당신의 집이 아니라, 숲쪽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데에나 집중하고 있던 마을사람들이 당신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는 사이 당신은 이미 불타 떨어진 판자들을 밟았고
떨어져내리는 불씨를 기꺼이 온몸으로 껴안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부러 당신을 막지 않으려는 것일수도 있어요.
마녀에겐 화형이 가장 어울리는 법이잖아요, 이스피어.
하지만 언제나 모든 이야기에는 방해꾼이 있는 법이죠.
불쌍하고 쓸모없는 백설공주를 확실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숲속으로 놓아주었던 사냥꾼처럼.
이스피어 틸다:(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몸을 허우적대고,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힘을 주었다.) 놓아주세요, 신부님. 놓아주세요. 놓아…….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온몸이 벌벌 떨렸다.)
아이작 딜라이트:거기가 지금 어디라고 들어갑니까. (뒤늦게 목소리를 낮췄다.) 중요한 물건들은 전부 꺼냈다고 했잖아요. 이런일까지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미련을 버리세요. 불이 이정도로 번졌으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마실 물도 없는데, 기꺼이 불을 끄기 위해 물동이를 나르지 않을 사람들이란 거 알잖아요.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듯 당신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었다.)
이스피어 틸다:(불규칙적인 숨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깨가 아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은,
그나마 행복하게 여겼던 시절과 함께 불타는 제 가슴일 테다. 답답함에 고개를 급하게 치켜들다가도, 그는 끝내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터트렸다.) 버릴, 버릴 수가 없어요, 신부님, 이대로, 그냥….…. 절 놓아주시면, (그래도 아직까지 그는 자신만을 죽이고자 했다.)
제발. (온 세상이라든가, 그를 마녀라 조롱하고 저주하던 마을 사람들까지가 아니라.)
아이작 딜라이트:놓아주면요? (당신의 말을 되물으며 아이작은 말을 길게 덧붙이지 않았다. 어깨를 잡은 손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떨치고 갈 수 있을만큼은 아니었으리라.) 당신이 맨몸으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죽는 꼴을 봐달라고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걸 보고 이젠 부디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길 바란다며 내가 당신에게 기도라도 하길 바라는 겁니까? (그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죽였다. 타닥, 타닥. 마치 낭만적인 분위기라도 내듯 목재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을까.) 더이상 두려워하고 싶지도, 아프고 싶지도 않다고 했잖아요. 내게 당신을 지켜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 이스피어.
이스피어 틸다:(그러나 지금같은 상황에서 숨을 가다듬었다간, 억겹의 시간동안 타오를 것 같은 제 심장이며 이성을 다시 가져왔다간. …그것은 마치 죽은 제 아들을 향한 배신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숙인 고개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떨어지는 눈물도 타들어가는 불길 소리에 잡아먹혀 휘발되니, 따라서 당신이 등진 불꽃. 그로부터 빛을 가로막아 어둠이 진 자신을 과연 누가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싶었다.
더이상 두려워하고 싶지도, 아프고 싶지도 않다고 했잖아요. 그 말에 울음 속으로 힘없이 문장만 되뇌인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두려워하고 마는군요, 나는 또다시 아프게 되네요. 얼마나 더 이 너절한 삶을 살아야……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더 그래야,)
(대체 저들이 만족을 할는지.)
(그들의표정이어떠했지?)
그들은 불을 끄려는 노력을 하긴 커녕, 그 앞에 선 당신과 아이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선이 마치. ...
관찰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랜기간 이런 시선을 견뎌왔던 당신이라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 이야기를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작 딜라이트 사제와 당신이 어떤 사이인지에 대해 논할 것이고.
당신이 얼마나
난잡한
사람인지에 대해 떠들어대겠죠.
지난 몇년간, 당신과 이야기 한 번 나눠본 적 없으면서도요.
이스피어 틸다:(아. ……
지긋지긋한 것들. 이스피어가 눈물을 뚝 멈추었다.)
(저들의 눈은 아마 죽는 날까지 트이지 않을 것 같다. 제 앞에 있는 자가 악마인지도 모르는 우매함을 보라. ……그러나 당신이 겉으로 쓴 것은 신부의 모습이니. 이스피어는 분노 위로 경멸을 덮어씌우며 조심스럽게 당신의 손을 어깨에서 떼어냈다. 뒷걸음질 쳐 부러 당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저들에게 드러낸다.)
(어쩌면 이제서야 이해한다. 저주는 저들의 입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전염병은 저들의 혓바닥이 돌아다니는 땅에서부터 퍼졌노라고. 내 아들을 죽인 것은….)
(불꽃과 함께 일렁이는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제 앞에 진 그림자에게로 말한다.) ……돌아갈래요.
아이작 딜라이트:(제 손을 떼어내는 손길을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당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내려는듯 그의 시선이 여전히 당신에게 꽂혀 있었다. 느리게 눈을 감은 다음엔, 결국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지만.) 저는 불길이 조금 사그라들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합니다. ... ... 먼저 들어가실 수 있으신가요?
이스피어 틸다:(더러워진 옷자락이며 손끝을 바라본다. 잿더미 묻은 옷깃까지도. 빛이 사방으로 일렁여 번지는 와중에도, 그는 우선 고요했다.) 남는 물건이 있다면, 혹시라도……. (손을 들어 뺨을 훔쳤다.) 가져와주실 수 있나요?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의 젖은 뺨을 마저 닦아주기라도 하려는듯 그가 잠시 손을 뻗었지만. 이번에도 손길을 거두는 것에 그쳤다.) 알겠습니다. 특별히 찾는 물건이 있으신건가요?
이스피어 틸다:……없어요. 하지만…. (중얼거렸다.)
무엇이라도 있다면요.
아이작 딜라이트:... 일단은 들어가세요. (잠시 망설였다.) 정말 모셔다드리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스피어 틸다:(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보았다. 불길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일렁임이 번져 있다. 곧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긴다.) 먼저 가겠습니다….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은 당신보단 지켜보는 눈을 의식한 까닭이다. 그렇게 그는 급작스러울지라도, 다급하게 자리를 떴다. 다만 그 가운데 생각한다. 아.
거처마저 잃어버린 마녀는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것을 저들이 정녕 몰랐는지.)
당신은 아이작 딜라이트 신부보다 먼저 자리를 떠났습니다.
여전히 당신의 등 뒤에는 피처럼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지만, 이젠 어쩌면. 정말로 떠나야하는 순간이 온 건지도 몰라요.
오늘 밤 아이작 신부의 말을 듣고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당신이 집을 떠났다는 사실이 벌써 마을에 퍼지진 않았을 겁니다.
이스피어 틸다:……. (모르겠어. 그보다는 이제
다른 감정이 들끓는 것 같기도 하다.)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은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게 무엇인지는 아마, 오래도록 정의할 수 없겠죠.
당신은 저 멀리 불타고 있는 당신의 집을 뒤로한 채 몸을 뉘이고 눈을 감습니다.
최소한 성당에 누가 불을 지를 일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무슨 기분이 들었나요, 이스피어?
새로운 결심을 시작한 하루인 만큼, 기운찬 하루가 되어야만 할 텐데요.
물론 하루 아침에 홈리스 신세가 되긴 했지만요.
이스피어 틸다:(그냥 멍하다. 모든 게 꿈만 같아서 현실감은 되려 떨어진다. 그래도 불타버렸을 집엔 다시 찾아가지 않을 거야. 인지하기 싫으니까, 그냥 도망치고만 싶으니까….)
(제 몸 상태를 돌아본다. 옷이 더러워지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한쪽 귀에 귀걸이가 달려있는지, 어떤지, 그것만큼은 신경쓰지 못하고 신부의 방을 나왔다.)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휴게실
,
성당 중앙 기도실
,
고해실
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휴게실, 이상한 쪽지를 발견했던 곳이지. …그곳을 먼저 향했다.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당신이 휴게실에서 만난 것은... ...
낯선 사람
입니다.
(멍하니 굳어 상대방을 바라본다. 누구지? 뒤늦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평범해보이는 관상에, 추레한 옷차림. 전염병을 피해 당신의 마을까지 떠내려온 외부인인 것 같습니다.
낯선 사람:아아, 안녕하세요. 아. 혹시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건데 뭔가 훔치러왔다던가 하는 건 아니예요! (그는 열심히 자신을 변호했다.) 신부님께서 여기 머물러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 어제 딜라이트 사제님과 함께 성당에 오셨던 분 맞죠?
이스피어 틸다:(어어?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그야, 일단 마을 사람들은 그를 꺼려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아, 안녕하세요. (흐릿한 웃음이 잠시 떠오르다 말았다.) 네…. 제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거처를 잃어서요. 신부님의 배려로 하룻밤만이나마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일 신부님과 제 모습을 보셨나요?
낯선 사람:아아, 네. 우연이었지만요. 뒷문으로 함께 향하시는 걸 보았거든요. 어쩐지 두분 다 심각해보이셨지만요... ... . 그러고보면, 딜라이트 신부님은 참 다정하시죠. 성실하시고요. 듣자하니, 어제 큰 화재가 났는데 새벽부터 지금까지도 현장을 살펴보시고 계시다더라고요. 정말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어딜 돌아다니든 그걸 알아챌만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일까요?
저번에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지하 서재
를 다시 한 번 살펴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낯선 사람:참. 근데 그 소식 혹시 알고 계셨나요?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하시던걸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저는 외부인이라... .
이스피어 틸다:……그럴리가요. (그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최근 들어서야, ……이 마을에 부임하신 분이시라던걸요.
설마요. 아닐 거예요. …아니에요. (그리고 그가 급하게 뒤를 돌았다.) 아닐 거야……. (도망친다.)
(…성당 중앙 기도실로 향한다.)
성당 중앙 기도실로 향하니, 어른들은 없고 아이들만 성당 귀퉁이에서 놀고 있네요.
이스피어 틸다:(제이드보다는, ……조금 더 어린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아이가 있었으므로, 그는 제이드가 죽은 이후 아이들을 가까이 하기가 힘들었다.)
……거기서 뭐 하니? (조심스레 말을 걸어본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들은 어쩐지 조금 다투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A:역할놀이 하고 있는데 얘가 자꾸 고집부리잖아요.
아이B:나는 마녀 역할 싫단 말이야! 너만 맨날 용사 역할 하고. 맨날 때리잖아!
아이A:마녀는 원래 그런 거야. 에잇, 에잇! (나뭇가지를 휘두른다.)
아이B:시끄러! 내 마녀는 그냥 마녀 아니고 완전 쎄거든? 용사같은건 단숨에 해치워버릴걸?
이스피어 틸다:(무심코 아이가 휘두르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붙잡았다. 곧장 본인도 당황하는 한편,) ……그래도, 친구를 때리면 안 되지. ……마녀와 용사가 아니라, 다른, 좋은 역할들로만 노는 건 어떨까?
아이B:(당신이 손을 붙잡고 있는 사이, 아이가 반격하듯 나뭇가지를 뺏어들고 이번엔 자신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죽어라, 죽어라! 용사가 다스리는 나라보다 마녀가 다스리는 나라가 훨씬 멋있거든? 이것 봐. 꼼짝도 못하는 게!
이스피어 틸다:-얘들아, 그만. (당혹감에 뒤늦게 아이들을 말린다.) 그만!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부모님들은 어딜 가신 거니?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린다.)
아이A:어디 계신지 몰라요. 이 마을까지 오다가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지금은 신부님이랑 같이 지내는 거예요.
아이B:언니, 어른들이 그러는데 어제 불난 집이 마녀 집이래요. 진짜예요?
이스피어 틸다:(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잠시 입술이 다물린다. 그랬구나.
너희들도 잃어버렸구나. 지독하고도 처절한 시대다. 손을 뻗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위로, 이스피어는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어제 불난 집은 언…. 아줌마 집이야. (보슬거리는 머리카락의 감촉.) 마녀 같니? (왜, 아이들의 눈은 제일 정확하다고들 하지 않나.)
아이B:근데, 아닌 것 같아요. 어른들이 그러는데 마녀는 되게 못되고, 영악하고, 나쁘다고 했거든요. 죄를 엄청나게 많이 지어서 우리까지 피해를 보는거라고 막 그랬는데. 언니...는 착한 사람같아요.
그 때, 저 멀리서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B:아. 저희 이제 갈게요. 기도하러 가야 해요. 안녕히 가세요!
이스피어 틸다:(어른들의 가시 돋친 말보다야, 아이들의 말은 그럼에도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이스피어는 힘없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거뒀다.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다.)
이스피어 틸다:……잘 가렴! (뒤늦게 손을 흔들어주지만, 역시 아이들은 금방 떠나버리는구나.)
(묘한 허전함으로 인해, 이스피어는 한참 그 자리에 서있어야 했다.)
(…고해실로 향한다.)
보통이라면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곳인데... 어제 사건이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통 보이질 않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3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고해실 더 안쪽, 벽 안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벽일텐데, 벽 사이로 자그마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원래는 지금보다 더 빨리 처리하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이렇게 직접 연락을 해야겠어?
잭슨 신부:죄송합니다. '그 녀석'이 요즘 통 말을 듣지 않아서... . 하지만 성실한 놈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고향이 돌아오니 생각이 복잡해지기라도 하는 모양이죠. 가족들도 전염병으로 싸그리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녀석이 더 위험한 걸세, 잭슨 신부. 사람을 잘 모르는군. 그리 오랫동안 일해놓고도 이렇게 순진하다니. ... 자고로 인간이란 마음 한 구석에 턱 막히는 것이 있어야 이용할 수 있는 법이라고. 그 놈은 잃을 게 없어. 그래서 문제인거야.
놈이 애착을 가질만한 사람을 이용해야 해. ... 놈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못 찾았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던가.
잭슨 신부:... ... . (무언가 캥기는 것이 있는 듯 침묵했다.)
???:아무튼, 중앙에는 내가 따로 보고를 할테니 하루빨리 해결하도록 하게. 알았나? 괜히 자네도 그 어린 놈에게 휘둘리거나 봐주지 말란 말이야.
우리에겐 그딴 것보다 더 큰 목표가 있다고.
그러니 만약 놈이 일을 방해한다면... ... .
그가 정말 이 마을 출신이라면, 왜 당신이 모르는 걸까요?
만약 그가 그 이름을 뒤집어 쓴
악마라면... .
불안과 절망의 시대에 이런 생각 즘이야 누구나 하잖아요.
이스피어 틸다:…아, (뒤늦게 숨소리를 뱉었다. 뒷걸음질 치며 주변을 둘러보면, 역시 향할 곳은 한 곳 뿐이라. 급하게 고해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벽의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딱딱한 대리석 바닥을 지나가는 ... ... .
이스피어 틸다:(몸이 차게 식는다. 숨이 더 가늘어지고, 되려 심장이 뛰는 소리는 온몸을 울릴 정도로 커진다…. 조심스레 고개를 빼 바깥을 내다본다. 뭐지? 왜….)
당신이 완전히 몸을 틀어 모습을 보이기 바로 직전,
이스피어 틸다:(밖을 내다보려던 몸짓이 뚝 멈추었다.)
가려진 구멍 사이로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피차 좋은 꼴은 못 볼테니.
이스피어 틸다:(상대의 목소리는 마치 죄를 단죄하는
심판자와 같아서, 죄로 얼룩진 여자가 몸을 수그리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했을진대. …입술을 달싹였다.) 신부님께서는…….
……무엇을, 목표하시나요.
잭슨 신부:... ... (그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안식. 이라고 하면 표현이 될지 모르겠군요.
잭슨 신부:불온에 땅에 선 우리는 모두 죄인이니. 언젠간 그 값을 치뤄 신께 자신의 죄를 고해야만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지요.
저는 단지... .
신의 사자로서 그것을 도울 뿐입니다.
저를. 그리고, ... 그 아이를 방해하지 마세요.
이스피어 틸다:(언젠가는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데, 나는 왜 이 땅의 악인들이 심판받은 때를 본 적이 없나. 아, 징벌은 죽음 이후이기 때문인가.)
(그저 침묵했다. '그 아이'의 새까만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보고 싶어. 무심코 그리 생각해버리고 만다.)
(잭슨의 인기척이 사라지면, 머잖아 고해실을 빠져나와 지하 서재로 향한다.)
비도 오지 않았는데, 지하는 축축하고, 어딘가 음습한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확실히 이 장소는 서 있는 것 만으로도 등골이 섬짓해질 때가 있어요.
책장에 책 몇가지가 꽂혀 있고, 책상 위에는 누가 남겨놓은 듯한 자그마한 일기장같은 것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서늘한 장소를 눈만 굴려 돌아보았다. 괜히 오싹한 기운이 끼치는 것 같아 숨을 깊게 들이쉬고, 곧 책장의 책들을 다시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스피어 틸다: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4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가만 보니, 몇 가지 책이 사라진 것 같아요.
당신의 기억에 이 장소가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열이 통째로 비어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겠죠.
이스피어 틸다:…….. (한 열이 통째로? 자세히 살펴본다.)
누군가 급하게 이 곳에 있는 책을 처리하기라도 한 걸까요?
이스피어 틸다:
자료조사
기준치: |
20/10/4 |
굴림: |
33 |
판정결과: |
실패 |
자료조사
기준치: |
20/10/4 |
굴림: |
100 |
판정결과: |
대실패 |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4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은 한참이나 곳곳을 뒤적거리고 난 다음에야, 작은 쪽지 따위 하나가 책장 밑에 떨어져있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스피어 틸다:(무릎을 굽혀 쪽지를 주웠다. 내용을 살펴본다.)
누군가 이곳에 있는 책을 가져가려다 사이에 끼워져있던 쪽지를 떨어트린 게 아닐까요?
아주 오래된 고대로부터 예언가와 마법을 다루는 이들은 진실을 이리 외치곤 했다.
마녀와 악마는 어떻게 잡을 수 있는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그들은 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발길이 닿자마자 환경이 반응한다.
그들은 간사하여 쉽게 다른 이들을 현혹시키고, 유혹하여 제 수하로 삼는다.
한 번 그 손에 들어가면, 스스로 빠져나오길 거부한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신에게 사랑받는 당신을 향한 짙은 욕망과 증오.
악마와 마녀를 죽이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 면전에 대고 '지금 내가 너를 죽이겠노라' 선언하는 것이다.
이스피어 틸다:(욕망과 증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단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되는 사람이 있고야 말아서. 눈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고?
맞아, 나도 단숨에 알 수 있었어. 그 애는 처음부터…….)
(…잠깐, 내가 뭘 하고 있더라. 고개를 휘휘 저었다.)
(돌아가려다,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를 펼쳐보았다.)
당신은 책상위에 놓여져 있는 일기장을 펼쳐봅니다.
일기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날짜 밑으로 적혀있는 거라곤 고작 한문장 뿐입니다.
일기장의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성실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도와 관련된 내용, 성서의 구절이 적힌 내용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휘갈기듯한 글씨체로 적힌 문장이 눈에 띄네요.
날짜를 따져보면... ... . 약 한 달 전이네요.
성서의 구절과 기도와 관련된 내용들만 줄을 잇다, 이 시점을 이후로 돌연 '일기장'스러운 글귀들이 시작됩니다.
이스피어 틸다:(신부님은 이만 돌아오셨으려나….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일기장을 계속 읽어내렸다. 새벽부터 겪은 일들이, 듣게 된 정보가 하도 많아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노력은 늘 결실을 맺는다. 그렇지 않다는 이들은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나를 봐. 결국엔 신과 가까워졌으니. 나를 제외한 이들은 전부 가짜가 아닌가.
내 투입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고작 그런 평판으로 내가 포기할리가 없잖아.
나를 은근히 경계하는 눈빛이 우습다. 내가 무엇을 꾀하는지 알면서도 모른척하듯한 행동도.
뒤늦게 당신이 이걸 본다면 그 순간을 후회하겠지.
만약 친구라 생각한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 든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내용이 담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알고 있는 글씨체일까? 일기장 곳곳을 주의깊게 살펴보지만, …
익숙한 기분은 드는데. 자세한 기억은 들지 않는다.)
알고있는 글씨체인지 한 번 자세히 살펴볼까요?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5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하지만 확실히
어딘가에서 봤다
는 것 만큼은 명확한 것 같네요.
글씨체를 눈에 익을 때까지 들여다보거나, 몇장 뜯어갈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당신의 목을 직접 베어주리라. 그 글귀에 하염없이 시선이 머무른다. 왜 나는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마는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 그 구절이 적힌 종이를 말끔하게 찢어 품에 넣는다.)
(더 살펴볼 것이 없다면, …이만 쉬어도 좋겠지. 돌아가도록 한다. 아니, 돌아갈 곳은. ……아이작의 방으로 향한다.)
당신은 마지막 문구를 조심스럽게 찢어 품에 넣었습니다.
이걸로 누군가의 글씨인지 대보면 알 수 있겠죠.
당신은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은밀행동
기준치: |
40/20/8 |
굴림: |
51 |
판정결과: |
실패 |
휴우. 다행인지,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딜라이트 사제의 방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그는 자리에 없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그의 방 창문에서는 바닷가가 보였을까?)
작은 창이 하나 있긴 하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바닷가가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 모든 것이 다 엉망이 되어버린 현재라 한들… 그는 붙잡아야 할 목적이 있었다. 그것을 붙들어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사제의 방을 둘러본다.)
사제의 방에서 살펴볼 수 있는 거라곤
옷장
,
책상
,
침대
가 있습니다.
애초에 사제의 방인걸요. 뭔가 많이 소유하고 있을리 없네요.
이스피어 틸다:(그리고 나를 들여왔으니,
정말 중요한 물건이라면 치웠을 테다. 적어도 이스피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 (옷장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이스피어 틸다:(별 게 없다. 오히려 너무 당연해서 기운이 빠질 정도로. …신부복을 뒤적거린다. 뭐, 특별한 점은 없나?)
이스피어 틸다:……. (멍하니 여벌의 옷을 뒤지던 중, 문득 그의 시선이 풀어졌다. 한적한 공기가 가득한 방 안에 그림자가 기운다. …그가 문득 어두컴컴한 옷장 안으로 살며시 몸을 기울인다. 소맷자락을 붙잡고, 얼굴로 가까이 가져다 댄다.
향 같은 게 났을까?)
그의 소매에서는 햇빛에 잘 마른 빨랫감 냄새와 함께, 풀내음 따위가 풍겨옵니다.
이스피어 틸다:(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움찔거리듯 하다, 머잖아 부러 경직을 안고 굳는다. 천천히 소맷자락을 놓아주었다.)
(책상 위를 본다.)
이스피어 틸다:(…어디로 숨겼을까. 그런 생각이 먼젓번에 든다.)
(침대를 살펴보자.)
이상하죠? 이 공간이 모순적일만큼이나 깨끗합니다.
분명 이 공간은 딜라이트 사제가 자고 일어난 뒤, 귀가해 잠들기 직전까지도 시간을 보내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옷장에 즐비한 사제복 외에는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성경책이라던가, 기타 사무용품따위도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필요
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이스피어 틸다:(멍하니 그대로 한참을 서 있다가, 품에 넣은 누군가의 일기장 한 페이지를 그려보다가, 불탄 집을, 얼룩진 초상화와 아들의 목걸이를, 손끝이 닳을 정도로 파내렸던 흙더미와 붉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고인 생각의 둑을 쳐 풀어야 할 때다.)
(지능 판정 가능할까요?)
이스피어 틸다: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딜라이트 사제는 분명 이 방에 있는 물건을 급하게 치워야 했을 거예요.
당신과 그가 저녁식사를 마친 후, 그의 방에 머물기로 계획하기까지는 정말 짧은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성당을 꼼꼼히 살펴보았을 때, 그가 숨겼을
개인적인
물건을 숨길만한 장소 따위는 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방 안 어딘가에 있다는 거 아닐까요?
가령 ...
옷장 위
라던가,
침대 밑
이라던가. 하는 공간에 말이죠,..
이스피어 틸다:(중요한 문서나 자료를 다른 방이나 창고에 두긴 힘들었을 것이다. 성당의 거의 모든 공간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으므로, 그러니 보아야 할 곳은….)
(옷장 위를 눈으로 훑어본다.)
당신은 옷장 위를 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했습니다.
쉽진 않았지만, 상자 귀퉁이 같은 것이 보인 것 같아요!
책상 의자를 끌어다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책상 의자를 소리 나지 않게 옮겨 그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선 잠시 누군가 이곳으로 오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가, 옷장 위의 물건을 꺼내 살펴본다.)
세상에. 당신을 의문스럽게 만들었던 물건들이 전부 여기에 있네요.
갖가지 책, 편지처럼 보이는 종이다발, 가죽지갑 등등.
이스피어 틸다:(상자를 의자 위에 올려두고 내용물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책의 제목을 눈으로 빠르게 살핀다.)
책등부터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문자가 가득 적혀있습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머리가 멍해지는게 ... ...
이스피어 틸다:
정신
기준치: |
35/17/7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이스피어 틸다:(아…. 작은 침음성이 흐른다.)
아무래도 더 살펴보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요.
이스피어 틸다:(이상한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수차례 돌렸다.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 편지를 살펴보자.)
아이작 딜라이트. 네 아비다. 저번 일은 너 답지 않고,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거기서 잘 지낸다니 다행이구나.
신부님들께 듣기론, 네가 그 중에서도 아주 성실하다고 하셨지.
네가 그 마녀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다른 편지를 읽는다.)
여긴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 네가 있는 곳은 괜찮니?
사람들은 병들어 쓰러지고 있어. 절망만이 이 곳에 가득하지.
하지만 넌 괜찮을 거란다, 내 아들. 아이작.
너는 신의 아들이니, 적어도 너만큼은 지켜주시겠지.
이스피어 틸다:(마녀와, 신의 아들. 소리 없이 중얼댔다.)
(다른 편지를 읽는다.)
매마른 땅에서 지내고 있는 가족에게 보낼만한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네가 감히 그 얘기를 꺼낼수가 있는거냐?
널 그 신학교에 보내기 위해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뤘는지 알기나 해?
어려운 형편에 여기저기 손벌려 좋은 학교에 보내놨더니 뭐?
이게 내가 너에게 하는 마지막 자비이자 기회다.
본인이 동네에서 낯짝들고 다니기 힘들다며 벌인 일을 제 탓 하지마세요.
전 분명히 제 의사를 전달드렸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스피어 틸다:(머리가 아파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음 편지를 읽어내렸다.)
네 고집을 꺾지 않겠다면 넌 더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널 그렇게 키우느라 고생한 나와 네 어미를 생각하라고.
네가 진정 지켜야하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
이스피어 틸다:(아마도 비슷한 구절이 쓰여져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읽어본다.)
당신께 편지를 보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으니,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그 사람을 이유 없이 '천박하다'고 떠들어댔던 것도.
내 마음을 먼저 눈치채고 말도 안 되는 상대와 그 사람을 엮어버린 것도.
그렇게 제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려고 한 것도 알고 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저, 누군가가 싫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으셨습니다.
그 남자의 술버릇도, 의처증 기질도 이미 알고 계셨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것은,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 최소한의 도리를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저도 제 마음대로 할게요.
하지만 그 마을엔 아직 아버지가 계시니 분명 절 뜯어말리시겠죠.
획을 그은 유려한 문체에는 어쩐지 ... 상대를 향한 짙은 혐오와 분노가 느껴집니다.
이건 정말 아이작 딜라이트 사제가 쓴 편지가 맞는 걸까요?
당신이 평소 알고 있는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는 누굴 만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한 걸까요?
그가 지독하게 사랑한 사람은 과연 누굴까요, 이스피어.
제법 늦은 시간까지도 딜라이트 사제는 방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벌써 다 타버렸을 당신의 집을 살펴보고 있다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지 않던가요?
혹시 그가 당신 몰래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닐지.
쓸모없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너무 오래 깨어있었나봅니다.
이스피어 틸다:(이 마을에서 살았다던 신부, 편지와, 천박하다 일컬어지던 여자, 그에게 맡겨진 임무, 심판의 날. 여러 단어가 머리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자리에 눕고도 그는 한참이나 고통을 떨쳐내지 못했으므로, 제법 긴 시간이 흘러서야 잠에 빠질 수 있었겠다.)
당신은 제법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잠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스피어 틸다:(누구의 목소리지? 그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계속 잠에 들고 싶어. 하지만,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
그게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아이의 음성일지 모른다면.)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는,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순 없지만...
... ... ㅏ ... ... ... 마. ... ... .
이스피어 틸다:(정확하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단지 조금이라도, 아주 적은 가능성만이라도 그는 그것을 제 아이의 목소리라 읊으며 자리에서 뛰쳐나가야만 했으니까. 그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던 것 같다.
……제이드…? 어둠 속을 손으로 헤쳐본다. 어디에 있지? 붙잡으려 손을 휘저었다. 어둡다, 사방이 온통.)
(앞으로 나아가본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당신을 밀어내는 듯 했고, 발끝부터 닿은 뜨거운 감촉이 불쾌합니다.
이대로 당신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도, 어쩌면 당연하죠.
이스피어 틸다:(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외쳤나, 모르겠다. 화마 속을 걷는 심정으로도 그는 헤메기를 멈출 수 없었다. 제이드, 제이드, 어디 있어. 엄마는 여기 있어. 여기야…. 어디 있니, 어디 있어. 엄마가 너무너무…….)
(어느 순간 눈앞은 붉었나, 여전히 어두웠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아갔다. 추위가 뼛속을 깊게 파고들더래도.)
올곧게 당신을 밀어내듯한 힘은 곧이어, 당신을 안아주려하듯 더 깊게 끌어안는 것 같았어요.
... ... ... ! ... ... !! 이스 ... !
당신이 비로소 닿고자 한 이상향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그래, 멈추지 않는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만나면 꼭 끌어안아 주어야지, 희미한 웃음이 얼굴에 맺혔다. 얼굴에 입을 몇 번이고 맞춰줄 거야,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미안하다고 말해줘야지, 그렇게 널 떠나보냈으니까…. 몇 십 번을, 몇 백 번을 반복해 말한대도 모자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야 그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거야. 기다려, 제이드.)
(엄마가 지금…….)
이스 ... ... ... ... !! ... !!!
당신의 어깨를 아프도록 잡아챈 손이 느껴집니다.
이스피어 틸다:……. (그러고서도,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이드는 어디에 있지?)
... ... ... 쏴아. ... ... ... 쏴아. ...
어지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메아리치는 파도소리.
이스피어 틸다:(그리고 어쩌면 그 파도 속에서, 그는 또다시 한 인영을 목격했던 것 같다.
이리로 와요, 이리로, 이리로, 이리로…. 분간하지 못하고 휘청대며 나아가는 몸짓이 있었다. 손을 내뻗는다.) 제이…, (그리고 그 순간 밀려오는 파도와 몸이 맞부딪혀, 순식간에 신형이 기울어진다.)
악마처럼 입을 벌리고선, 당신을 집어삼킵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이제 고통따윈 사라지겠죠.
그리고 어쩌면 정말로 바라던 그 얼굴을 ... ...
순식간에 시야가 점멸하고, 그 뒤 물을 덜컥 마시다가 뱉어내는 것처럼 기침이 몰려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정신이 듭니까? 숨 쉬어봐요.
이스피어 틸다:(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어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것조차 고작인 상태로, 그가 힘겹게 눈을 깜빡인다. 죽음을 코앞에 두었던 몸이 벌벌 떨렸다.) ……
아이작… 신부님……. (추웠다. 너무나도.)
아이작 딜라이트: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간에 바다에 들어간 겁니까? (달조차 구름 뒤로 숨어 자신의 빛을 물릴만큼 유독 새카만 어둠이 짙은 밤이었다. 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아주 실낱같은 빛만이 수면 위를 비추고 있었다. 당신이 떨고 있는 걸 안 걸까. 아니면 그저 숨을 조금이라도 쉽게 쉬게 하기 위한 행동인걸까. 그가 팔을 뻗어 당신의 어깨를 붙잡아 안았다.) ... ... 조금이라도 늦게 왔으면 큰일 났을 겁니다. 다신 그러지 마세요. ... 다신. (반드시 맹세를 받아야겠다는 듯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이스피어 틸다:(도무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여즉 혼곤한 정신은 아이의 그림자를 제멋대로 사방에 만들고, 아, 그 애가 날 부르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힘없이 눈을 툭 감으면 눈꼬리에 맺혀있던 바닷물이 눈물처럼 툭 떨어진다. 어깨를 타고 전해져오는 온기에도 사무침은 여전했다. 그가 홀린듯 중얼거렸다.) 저희… 우리 애가 저를 불렀어요…. 그래서, 내가, 아. 그 애가 울고 있다면 내가 꼭 안아주어야만 하는데……. (힘없는 몸이 툭 기울었다. 푹 젖은 몸이 당신의 품 안으로 떨어진다. 그가 고개를 당신의 품에 기댄 까닭이다.)
아이작 딜라이트:... 아무도 당신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짧은 침묵 후 뱉어냈다. 토해내듯한 문장.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잔뜩 녹아내려 그를 적시고 있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분노나 슬픔을 닮아 있었고, 동시에 누군가를 향한 멸시도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자책. 그래.
질투라는 이름을 붙이면 제법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당신을 불렀습니다. 여기서 당신을 부른 건 나 뿐이라고요. 나만! (대체 무엇에 화가 난 건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을 안고 있는 그의 손에는 계속해서 힘이 들어갈 뿐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겁니까? ...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뭐 그리 아쉽고 그립다고. ... ... (그가 욕을 중얼거린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따라잡을 시간이라도 달라고요.
이스피어 틸다:(눈꺼풀이 자꾸만 감겼다. 손가락 끝마다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사물을 분간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그가 당신의 감정을 살피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물며 얼굴조차 바라볼 수 없었는데. 그래도 절망 섞인 음성으로 외치는 음성만큼은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러게, 왜 당신만이 나를 불렀을까. 이해하기 벅찼다. 그래서 물었다.) 그러는… 신,부님께서는…. (편지에 적힌 글귀가 떠오른다, 문득.) ……왜 제게
다른 미래를 쥐어주려 하시나요? (이미 깨져버린 미래가 뭐 그리 아깝고 속이 상하느냐고.)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을 안은 팔에 움찔거리고 힘이 들어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힘이 들어간 팔이 한동안 풀리지 않고 있다가, 비로소 격정적인 숨소리가 가시고 나면. 그가 당신을 내려다보려는 듯 살며시 서로의 몸이 떨어졌을까.) 다른 미래가 아닙니다. (결의따위가 느껴지듯한 단단한 음성.) 당신이. ... ...
가졌어야 했을 미래를 나는 돌려주는 것 뿐입니다. 어긋난 일을 원래대로 돌리려는 것 뿐이에요.
이스피어 틸다:(천천히 눈을 뜬다. 마주하는 것은 현재를 담은 눈동자. …그 속으로 볼품없는 자신의 모습이 비췄다. 의지를 잃고, 상심에 빠지고, 그저 좌절한 한 여자가 있다. 과거에 발이 묶여 죽을 수 없어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어긋났는데요? (다만 그 균열을 찾으려면 하염없이 기억을 헤집어야 했으므로, 그는 엄두조차 내지 못해 물었다.)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의. (그는 '그' 단어를 꺼내기 버거워하는 것처럼 한참이나 침묵했다. 다만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고,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가벼운척 단어를 던지는 것 정도는 그도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
행복. 당신을 틀림없는 행복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누군가. 당신이 잊어버린 ... ... . (아래턱 쪽에 잠시 힘이 들어간듯 핏대가 섰지만, 역시나 잠깐일 뿐이었다.) 되찾을 수 있다면. 되찾고 싶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이스피어 틸다:(차디찬 바닷바람이 몸을 두들겼다.
행복? 그 단어에 머리가 둔해진다. 길게 눈을 감았다 뜬다. 가만히 숨을 고르다가.) 저는…. (한참 뒤에서야 말이 이어진다. 그 동안 파도가 모래를 몇 번이나 휩쓸었던지.) ……행복해질 수가, (그저 단정지었다.) …없어요. 신부님. (누가 그렇게 주입이라도 시킨 양.)
아이작 딜라이트:(긴 침묵이 쓸고 지나간 뒤. 당신이 스스로를 향한 선고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어째서요? (반사적인 질문이 튀어나온다. 당신에게 형을 내린 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신이라면. 딜라이트 사제 또한 그의 대리자로서 당신의 죄를 사할 수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이스피어 틸다:(물에 젖지 않은 까끌까끌한 모래알이 입 속을 굴러다니는 것만 같았다. 입 안이 말랐다. 그는 너무나 큰 치부를 보이는 기분에 휩싸여 수치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눈이 가물가물 뜨인다. 모래알을 뱉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는 입술을 가늘게만 열었다.) ……그냥, 제가, (흐릿한 미소.) …
그렇게 태어나버린 것만 같아요. (거스를 수 없는 천성같이, 늪보다 깊고 바다보다 짙은 절망은 그를 놓아주지 못했다. 일평생을.)
아이작 딜라이트:(그의 얼굴이 어땠더라. 당신이 눈을 꿈뻑거리는 사이, 대답이 이어지고 이어지다보면. 곧이어 울기라도 할 것처럼 입을 꾹 물고 있었던가. 고개를 숙인 당신에게는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어깨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만으로도 당신은 그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테다.)
굴복하실 겁니까? 포기하실겁니까?
이스피어 틸다:(아릿한 통증이 인다. 때때로 그러한 힘은 뺨을 내리치는 것보다, 찬 물을 머리 위로 끼얹는 것보다 정신을 차리는 데 훨씬 도움을 준다. 그러니 불길이 옮겨붙듯 전염되는 감정의 이름을 미약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하나. ……
당신이. 왜? 어쩌면 그는 저항하기라도 하듯 어깨를 뒤틀며 숨을 토해냈다. 뒤로 물리려는 몸짓이 한 차례 파도처럼 인다.) 굴복,이 아니에요. 포기도 아니에요. 이건….…. (짙은 체념으로 얼룩진 목소리가 내뱉어진다. 그럼에도 수치를 아는 인간은 고개를 더욱 수그리기 마련이다.) …사람이 어떻게, 재해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
겁쟁이. 조금이라도 제정신을 차렸더라면 스스로 그리 힐난했겠지.)
아이작 딜라이트:(굴복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계속해서 물러나고 있었다.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이 굴복이고, 포기고, 체념이 아니라면 대체 뭐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뒤로 물리려는 몸짓을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팔에 힘만 더해질 뿐이었다.)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다면, 할 겁니까? (제안하듯한 목소리. 신의 전언이라도 전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신보다는 다른 것을 빼닮아 있었다.
삿된 것으로만 이루어진 어떤―) 신께선 당신에게 그런 사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끔찍한 형태의.)
이스피어 틸다:(추위나 통증이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 기인하는 오싹함이 있었다. 숨이 한순간 멎는다. 입술을 벌렸다가, 다시 다문다. 더해지는 힘에도 그는 당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겁에 질려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명이라면 받았지요.
지아비에게 순종하고, 얌전한 여자로 가정에 헌신하며…… (뿌리 깊은 굴종이 그의 발목을 붙들어놓고 있었다. 숨이 언뜻 거칠어진다.)
아이작 딜라이트:―그런 게 아닙니다. (뼈에 새기기라도 한듯 반사적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당신의 말을 막아서듯 그가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래봤자, 거대한 파도소리 앞에서 무너지고 말 음성이었지만.) 그것이 정말 '신'께서 당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신이 아닌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신께서 정해주신 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입밖으로 내지 않아도. 원래 내 것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거라고요. (자신의 어린양을 돌보려 애쓰는 이처럼 그가 다정하게 당신의 뺨 위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뺨 위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낸다.) 느껴보신 적 없나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신이 정해주신 운명'을요. 잘 생각해보세요. (그가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눈을 보면. ... 당신도 곧장 눈치챌 수 있을거예요. 이것이야말로 나의 운명이라고.
이스피어 틸다:(차게 식은 뺨 위를 스치는 손가락. 아, 뱀처럼 살결 위를 지나가는 궤적마다 간지러움이 오른다. 뜨겁다.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아려오는 감각에 그가 천천히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웃고 있었나, 당신. 어두운 밤하늘 초승달을 담은 당신의 눈이 보인다. 때마침 달도 뜨지 않은 밤이니 빛을 찾자면 당신이 유일할 텐데, 환하지 못한 빛이래도
그래도 빛은 빛이라고…. …결국 이스피어는 어떤 것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손마디를 움찔거렸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어요, 신부님. 하나도… 모르겠어요……. (제 아래 드리운 그림자를 본다. 그가 문득 중얼거렸다.) ……추워요. 그러니까 그냥.
…안아주실래요?
아이작 딜라이트:(
안아주실래요? 당신의 목소리에도 그의 몸은 쉬이 움직이질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자신이 어떻게 사양하겠냐며 두 팔을 벌려 당신을 끌어안았을텐데. 그는 지금, 두 팔을 벌리긴 커녕.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당신을 내려다본채 하. 하는 웃음을 뱉어냈다. 조소. 그것이 누굴 향한 것이었는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면 금방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 ... .) 당신은 이기적이야. (차갑게 식었다기보단 어리광, 내지는 투정부리듯한 목소리. 그의 행동도 그랬다. 춥다고 한 건 당신인데, 정작 품을 파고들듯 끌어안는 건 그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참을성이 많지 않으니까. (그는 정체모를 소리만 중얼거렸다.)
이스피어 틸다:(웃음 소리에도 그는 떨지 않고 묵묵히 당신의 품을 반겼다. 안기기보단 당신을 끌어안았다. 축축하게 젖은 몸이 기어코 온기를 찾으니, 그가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잊고 있었던 수마나 피곤함이 물 밀 듯이 눈앞을 새까맣게 만들어서, 그는 중얼거리듯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꽤 최근에 불에 타 버렸는데, 그래도 예전엔… 절벽 가에 꽃나무가 무성했거든요. (그리고 내뱉는 말이란, 참 뜬금없기 짝이 없는 말 뿐이다.) 신부님께서는… 그 언덕. ……가보셨나요? (이스피어, 그런 건 대체 왜 묻는 거야? 누군가 그렇게 묻더래도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테다. 다만
겨울에 피어나는 붉은 꽃이 오늘따라 유독 그리웠던 것 같다. 모든 과거는 불에 타 사라졌구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작 딜라이트:(자신을 마주 안아주는 손길이 그렇게나. ... ... 지독할 수 없었다. 잔인한 사람. ... 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 ... 가봤습니다. (뜬금없이 이어지는 화제에도 그는 나지막하게 대답을 이었다. 끌어안은 팔에는 여전히 단단한 힘이 가해졌다.) 좋아하는 곳입니다. ... ... 많이요.
이스피어 틸다:……무슨 꽃인지
기억하고 계신가요?
카멜리아.
이스피어 틸다:(침묵이 길었다. 그러다 물었다.) 신부님께서는……. (망설임이 묻는다.) 저를 이미 알고 계셨나요…?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피어 틸다:……. (손에서 힘을 풀었다. 어깨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살며시 떨어뜨린다. 묻고 싶은 것이야 많았지. 예전에 이 마을에 살았다던 당신, 당신의 편지에서 말하던 천박한 여자와, 마음을 전해야 할 대상과, 또……. 다만 그는 다른 것을 물었다.) 신부님께서…. 오히려 제게 무엇을 바라시는지요.
아이작 딜라이트:(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딜라이트 사제의 얼굴이 훅, 하고. 앞으로 붙어왔던 것은.) 당신이. (울컥. 쏟아져 내려오려던 말들을 주워담는다.) ...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
이스피어 틸다:(…확 끼치는 서늘한 공기에 여자가 흠칫 몸을 굳힌다. 까끌거리는 감정이 속을 찰나 어지럽히다가.) ……제가, (다물린 입술에 힘이 들어가다 만다.) …모르시는 걸, 신부님께선 알고… 계시잖아요. (항변하듯 말했다.)
아이작 딜라이트:정말로? (칙칙하고 퀘퀘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정말로 모른다고 생각합니까? 내 생각은 좀 다른데. (그의 손이 이번엔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당신의 손을 직접 끌어 자신의 얼굴 위에 올려놓았다. 빠져나가게 하지 못하려는 듯 손을 붙잡고 있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거 잖아요. '그 일'을. (분노, 슬픔, 자책과 자기혐오. 질척질척한 감정을 한 데 모은. ...
더러운 질투.)
나를 지워서라도!
이스피어 틸다:(붙잡힌다. 무심코 반대로 힘을 주어 당겨도 손은 속절없이 당신의 뺨 위로 향하고, 아. 다시금 눈이 마주친다. 그곳에 들어있는 것은 그림자같이 어두운, 부정적인 감정들. 그늘지는 안광 위로 순간 좋지 않은 기억이 겹쳐졌던 것 같기도 하다. 소리치는 남성, 아려오는 손목과
두려움.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뒷걸음질 친다.) ……'그 일'이 뭔데요, 신부님. 저는, 신부님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사자에게 쫓기는 토끼라도 된 양 수마는 단숨에 자취를 감추고, 그는 혼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숨이 떨린다.) 저희,가 알던 사이였나요? 신부님이 이 마을에 계셨다던 게, 어쩌면, 그래서 제가 이전에 신부님과
어떤 관계라도 있었다는 게…. (다만 이 문장들은 당신의 감정에 불을 더 지피기만 할 뿐이겠지.)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이 그의 눈을 바라볼 때 그의 감정을 알아차리듯, 그 또한 당신의 눈을 보며 당신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에 당신이 물러났을 때, 그는 물리려는 몸을 붙잡아 막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최소한 자신만큼은.) ... ... 당신이 잊어버리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손등이 하얗게 질렸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그는 그 어디에도 해소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한다 한들, 당신이 떠올리지 못하면! (눈시울이 붉었다. 설마 울기라도 하는 걸까.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곧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하려는듯 몸을 반쯤 돌려섰다.) ... ... ... 그러니 앞으론 주의하세요. 내가 없더라도 위험해지는 일이 없도록.
이스피어 틸다:(물러서는 당신이 보인다. 당신은 대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길래 그리 분노할까, 가슴 아파하고, 나의 죄책감을 찔러 내 가슴을 이렇게 아프게 만들며, 또.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있었다. 떨리는 손을 마주 움켜잡길 한참이었나, 손을 푼다. 반쯤 몸을 돌려 선 당신에게로 뻗었다. 스스로 떨어져나온 그 뺨 위로,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그는 다시 당신의 마른 뺨을 훑는다. 갸냘픈 음성이 무척이나 작았다.) ……
울지 마세요, 신부님…. (파도에 죄 삼켜질 정도로.)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퍼져나갔을 때, 그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무너지듯 찌푸려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어째서 당신이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마나 기다려야 당신이 날 알아줄까요. (그는 당신의 손 위에 뺨을 기대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손을 치우지도 않았다. 그저. 비로소 이 온도를 느꼈음에 감사하듯 가만히 서서 눈을 감았을 뿐이다.) 왜 나는 내게 이토록 잔인한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 ... 다른사람들이 말하듯, 그저. 당신을 내 과거라고 묶어 저 바다 밑바닥까지 가라앉힐수만 있다면... ... .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떠 당신을 바라보았다.) 내가 당신을 잊기 바라느냐는 질문에, 당신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긴 커녕 난처해질텐데도요. (어쩌면 조금,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이스피어 틸다:(이상하다, 마른 뺨을 쓸 뿐인데 마치 손가락 아래로 묻어나는 것이 있는 것만 같다. 옮겨붙은 감정의 편린은 헤묵은 기억 저편을 들쑤시기 시작한다. 눈을 감은 당신의 얼굴 위로……
무언가 떠오를 것 같기도 했는데. 이스피어는 애써 그런 울렁거림을 무시하며 침착하게 답하려 했다.) 제가, 난처해진다고요…. (그러나 기이한 감정은, 어쩌면
열망은, 입 안을 바싹 마르게 했다. 감았던 눈이 뜨일 때 빛나는 은색 눈동자 앞에서 그는 왜 이렇게 자신이 초라해지기만 했는지, 왜 자신을 과거로 묶을 수만 있다면-가정하는 말에 불안하게 심장이 뛰었는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눈가를 쓸던 손을 내려 당신의 손을 조심히 쥔다. 채 마르지 않은 물기가 옮겨붙는다.) -제가, (입 안이 타들어가듯 했다. 묘한 텁텁함이 가시처럼 안을 찔렀다. 그만 말하라고. 충동에 몸을 맡기지 말라고.) ……제가, 신부님과 가보았던 곳이나. 신부님과 했던 말이나,
행동을…. (그러나 충동을 잘라낼 수 있으면 그게 사람이던가?) …따라해본다면. (뱀 한 마리가 뱃속을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다면, 기억이 조금은…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작 딜라이트:... 말과, 행동? (당신이 뱉은 말을 되짚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제 손을 붙잡고 있는 당신의 손을 내려다보길 한참.) 당신과 내가 만나면 주로
뭘 했는지 알고 싶다는 건가요? (굳이 되물어놓고선, 취하는 행동이 되려 황당했다.) 지금으로선 감당하기 힘드실텐데.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주진 않았다. 당신이 그에게 묻는다면 기꺼이 '어떤 것이든' 알려주려 하겠지만. 그렇게 손 위에 머물러 있던 시선은, 약간의 웃음기가 담긴 채 다시 당신을 바라보았다. 분명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벙긋거리던 입은 이내 조용히 가라앉아버렸다.) 관두죠. (당신이 붙잡은 손을 느리게 빼낸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정말 당신이 원했더라면... ... 기억해냈을테니까. (
내가 당신을 잊지 않고 돌아온 것처럼. 덧붙이던 목소리는 곧 다시 등을 돌린다.) 기억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내 감정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 ... 돌아가죠.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손이 떨어진다.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던 당신이 등을 돌리면, 그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당신의 옷깃을 붙잡으려 들었다. 그리 한 이유? 글쎄, 알 수 없는 부채감일지도 모르고, 기억나지 않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단순히 그런 당신을 철저하게 이용해버리고 싶은, 악한 마음일지도 몰랐지.)
(허공에서 손을 그러쥔 채 곧 그는 뒷짐을 졌다. 말 없이 당신을 뒤따랐다. 축축한 무게가 뒤따르는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달빛은 희미한데, 아. 아직도 해가 뜨기에는 멀구나.)
(익숙한 절망과 함께 그가 당신과 함께 돌아갔다.)
당신은 여전히, 어떠한 것도 결정짓지 못한 채 돌아갑니다.
바닷물에 젖은 몸이 말라가며 소금기에 다리가 조금 따끔거리기도 했어요.
딜라이트 사제는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을 잠재웠는지,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당신을 방 안까지 안내했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주무세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볍게 목인사를 한다.)
이스피어 틸다:- 사제님. (조금은 다급하게 그런 당신을 붙잡았다. 곧장 시선이 옆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저…. (머뭇거렸다.)
아이작 딜라이트:(붙잡힌 팔을 한 번, 그리고 시선을 돌리고 있는 당신을 한 번 바라보았다.) ... 예?
무슨, 하고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스피어 틸다:(입술을 달싹거리던 그는 곧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 제가 또다시 혼자 자게 되면…. ……다시 아들의 꿈이라도 꾸게 될까봐…. (변명은 완벽했다. 양심이 사정없이 찔리기는 했어도.) ……사제님께서도, 원래 쓰시던 방이 편하실 거고요. 그러니까. 저.
……함께 잠들어주시면 안될까요?
아이작 딜라이트:... ... ... (그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 (제법...) ... ... ... (오래... ... ... .)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전에 우리끼리 하던 게 뭐였는지 대충이라도 설명드릴 걸 그랬습니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당신에게까지 들렸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자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모른척하고 싶은건지 당췌 감이 잡히질 않네요. ... 진심입니까? (청을 거절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이스피어 틸다:(……그는 전염의 근원을 알아낼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 뿐의 목적밖에 남지 않은 생이었다. 숙였던 고개가 천천히 들리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그의 한쪽 귓볼에서 희미한 빛이 반짝였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끼워준 작은 진주 귀걸이.)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셔도 돼요, 신부님. (지독히도 여상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남편이 죽은 지는 꽤 됐거든요.
아이작 딜라이트:(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참이나 깜빡거렸다. 그게 평소의 차분하고 진중한 분위기와 달라, 조금 바보같이 보이기는 했지만. 이어서, 옅은 웃음을 보이는데. 묘하게... 곤란해 보이는 얼굴이다.) 나에겐 역시 당신이란 문제가 가장 어렵네요.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는데. (나긋하게 말하며 그는 느리게 당신의 몸을 밀듯이 안으로 들어와,
탁. 하고 문을 닫았다.) 벽이 얇아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겠지만. (경고인가? 아니면, 도발일까.)
이스피어 틸다:(하지만, 이스피어로서도…당신이 저를 이해할 수 없듯, 자신 또한 당신을 이해할 수 없기 매한가지였다. 다가오는 그림자에 무심코 뒷걸음질 치기도 잠시,
탁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면….) …원하시나요? (조용히 물었다. 추상적인 질문이나,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범위가 상당히 한정되어 있었겠지. 하지만, 당신이 정녕 자신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거부했더라면. 이 방에 들어서지도 말았어야 할 것을. 그가 살며시 눈꼬리를 휘어 늘어뜨리며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속닥인다.
아이작.)
아이작 딜라이트:(그의 목울대가 잠시 울렁거렸던 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를 파악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가 한참이나 당신을 바라보았지만. ... ... . 잠시 뜸을 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은 '경험 없는 어린애'처럼 회피하듯 은근히 시선을 돌리기나 했다.) ... '잠을 자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가 당신에게 바라는 대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함께 잠드는 것 정도'는 ... ... 원한다고 해두죠.
이스피어 틸다:……. (그런 당신에게로 말없이 팔을 뻗었다. 당신의 회피를, 그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면.) 안아주세요. (막연히 긴긴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밤의 궤적이 함께 기울었다.)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이 그에게 손을 뻗어오는 것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마치 '기억'을 잃은 게 당신이 아닌 그인 것처럼, 이 상황을 어색하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딜라이트 사제였다. 사춘기 소년처럼 꾸물거리기만 하던 그는 곧, 당신에게로 손을 뻗어 등허리를 팔 안으로 끌어안았다. 마를듯한 온도. 그것이 밤중에 바다에 허우적 거린 탓이리라 생각해야만 했다.) 답답하더군요. ... 당신을 보자마자 묻고싶은 게 많았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감촉. 꿈 안을 탐색하듯 그가 눈을 감았다.)
이스피어 틸다:(반면 품에 차고 넘치는 이 감각은, 과연 익숙했던가? 이스피어는 꽤 여상스럽게 고개를 돌려 당신의 어깨에 뺨을 기댔다. 눈을 감지는 않았다. 어쩐지 입술이 건조하게 마른 것 같아 그가 괜스레 입술을 몇 번 달싹였다.) ……예를 들면요? (그의 손이 다정하게 당신의 등 뒤를 쓸었다. 의도한 걸까? 그도 아니면….)
아이작 딜라이트:... ... (멀리서부터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당신과 나. 순수했고, 잔인했고, 이기적이었던... ... .) 잘 지냈는지. 건강하긴 한지. 잘 때 웅얼거리는 습관은 고쳤는지. ... '그 사람'이 더 괴롭히진 않았는지. 내가 떠나서 외롭거나 원망스럽진 않았는지. 날 생각하긴 했고, 그리워하긴 했는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파도소리는 전부 이명일 뿐이었다. 사막에서 간신히 찾은 오아시스의 물은 결국 마시지 못하는 썩은물인 것처럼. 내 눈 앞에 있는 당신도 결국... ... '그'가 아닌 셈이다.) ... 그리워하긴 커녕 생각조차 못했을거란 선택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허리를 들어올린 그의 얼굴이 묘하게, 슬퍼보였다.) 어쨌든 당신에겐 물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스피어 틸다:(…마른 시선이 당신을 향한다. 당신이 말하는 기억 속의 '나'는 하나같이 다정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신이 나를 떠난 뒤로도 그렇게 그리워 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를 어쩌지? 지금 내가 잡을 수 있는 수단이라곤 당신밖에 없는데, 기억도 없고 다정함조차 상실된 나는 대체 무슨 수로 당신을 붙잡을 수 있을까. 확실하게.)
(그리고 그때, 미약한 통증이 인다. 무심코 신음이 샌다. 눈살을 찌푸리며, 그가 손으로 머리를 짚는다.)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6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통증과 함께 당신의 머릿속에 짧은 기억이 스칩니다.
둥글게 자라 때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이곳은 미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
이스피어 틸다:(짠 바다 향기 사이로
익숙한 향기가 몰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긴 어디지? 가늘게 뜬 눈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흐릿한 안개 사이를 헤매던 눈동자가 기어코 빛을 찾아낸다. 그가 의아함으로 눈을 더 가늘게 뜨다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
아이작?
사나운 인상을 가져 모두가 피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아이같이 웃던 그 남자애.
아이작 딜라이트:이쪽으로 와봐요! 여기. 여기서 서면 바다가 보여요. (자리에 서서 당신에게 손을 팔락거리며 종용하는 그의 얼굴은, 기껏해야 10대 후반의 어린 소년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뭐였더라?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기분이 들어 이스피어는 말 없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다가, 잠시 불안한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가 이곳에 발걸음한 걸 본 적은 없더래도, 혹시.) ……이런 곳은 어떻게 발견했어요? (그래도 당장은 당신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살며시 웃고는, 뒤따라 팔락대던 손을 익숙하게 마주 잡았다. 당신 곁에 있을 때에서야 그는 숨이 트이는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작 딜라이트:(당신이 손을 붙잡아오자, 그는 당연하다는듯이 나뭇가지 사이를 먼저 가로지르고, 당신에게 길을 터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저기 뒤적거렸죠, 당연히. 여기는 겨울이면 예쁘긴 한데 추우니까 굳이 여기까지 오는 사람도 없고. 밤이면 뭐, 음흉한 짓 하러 오는 어른들이 있다고는 하던데... (으으. 질색하듯 몸을 부르 떠는 것 같다가, 짐짓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당신을 돌아보았다.) 그, 그런 의미로 데려온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진짜로, 진짜예요! 그. 그냥 풍경이 예뻐서 누나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 (오해하면 안 돼요? 알았죠? 새빨개진 얼굴이 누가봐도 제 또래의 남자애였다.)
이스피어 틸다:(당신이 먼젓번 길을 터주기 때문일지, 나뭇가지는 고작해야 어깨를 얕게 스쳐나갈 뿐이었다. 당신의 등 뒤를 잠시 바라보다가, 곧 새빨개진 채 돌아보는 얼굴에 무심코 웃음이 터져나온다.) 음흉한 짓? (이스피어는 마을에 특별히 친구라고 부를 법한 사람이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셔 천애고아로 자라난 탓도 있겠고,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집에서 생활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겠지. 그러니 이런 사소한 대화에도 문득 행복에 젖어 웃어버리고 마는 것은, 비단
그 남자의 그늘 때문만은 아니었을 테다.) 진짜 아닌 거 맞아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정작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했던 풍경이 바로 코 앞이었는데도.)
아이작 딜라이트:지, 지, 진짜 아니라니까요! (말까지 더듬어가며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당신이 그를 놀리고자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대뜸 어느 순간부터 말을 걸어오고, 당신에게 친근하게 구는 그의 모습을 당신이 밀어내지 않았던 건 속이 다 보이는 이런 표정들 덕분일테다.) 아. 여기인데... (말하며 앞서나가던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고, 뒤따라오던 당신을 돌연 앞에 세우더니 눈을 손으로 가렸다.) 짜잔. 하고 보여줄 거니까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아. 거기 발조심하고... (꼼꼼하게 당신의 걸음걸이 따위를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이스피어 틸다:(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워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어딘가 기분 나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뭇 남자들과는 다르게, 당신은 티끌 하나 없는, 순박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날 바라보곤 했으니까. 밤하늘 가운데 제일 하얗게 빛나는 초승달의 흔적을 쫓고 마는 어둠에 갇힌 사람들의 습성이겠지.) …아이작? (갑작스레 자신을 앞에 세우고, 이어 제 눈을 손으로 가리는 행동에서야 이스피어가 당황하며 당신을 불렀다. 머뭇거리는 손이 당신의 손등을 몇 차례 더듬었을까. 괜히 가까이 맞붙는 온기가 어색했다. 하지만 크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의 울림은, 나쁘지 않았다. 입술을 잠시 우물거리던 그가 당신의 말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예쁘길래 그러는 거예요? (단지 이런
설렘이 계속될 수록 그는 동시에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어제만 해도 '그 남자'가 집 문을 두드렸으니까. …이 시간이 영원하다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작 딜라이트: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두 번째로 예뻐요.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유독 귀에 걸렸을까. 키득거리듯한 음성. 곧이어 눈 앞을 가린 그의 손틈 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하면... ) 짜잔~! (하며, 허리춤 정도 되는 울타리 뒤 넓은 바다가 멀리서 보였다.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 그리고 푸른던 시절을 잊은양 타오를듯한 빛을 뿜어내는 바다까지.) 마음에 들어요? (잔뜩 기대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에 머물렀다.)
눈 앞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한 빛이 펼쳐집니다.
방금 전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어둠이 언제 있었냐는 것처럼요.
별처럼 반짝거리는 땅, 농익은 과실처럼 타오르는 하늘.
무엇하나 마음을 채우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붙잡은 그 소년은 그 하늘과 땅을 전부 합친 만큼이나 빛나도록 웃었습니다.
당신에게 자리잡은 어둠을 모두 거둬줄 것처럼...
그 찬란함에 눈물이 조금 고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스피어 틸다:(눈을 깜빡인다. 과거의 내가 아닌 이제는
현실 위를 디딘 내가 되어, 떨어지는 눈물 방울을 닦아낼 생각조차 못하고. 몰아쉬던 숨을 애써 진정시키려 들었다. 천천히 당신을 올려다본다. ……
아이작. 제 모든 어둠을 내몰아줄 것만 같았던, 내, 빛났던….)
그 중 무엇하나 당신의 손 안에 남은 것이 있나요, 이스피어?
아이작 딜라이트:... ... 왜 그러십니까? (툭 떨어지는 눈물을 본 그는 걱정보다도 당혹스러워보였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디가... 아프세요?
이스피어 틸다:……. (더듬더듬 떨리는 손으로 뺨을 매만진다. 울고 있었나, 나. 그러는 와중에도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은 흔들림 없다가, 천천히 눈을 내려깔기 시작한다. 숨을 가다듬는다.) ……
카멜리아 언덕이……. (그러나 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아이작 딜라이트:(카멜리아 언덕? 당신의 말을 그가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소년은 여러차례 당신이 혹여나 여기까지 오면서 어디에서 넘어지거나, 쓸린 적은 없는지 당신의 옷을 여기저기 살폈으나, 수풀을 가로지르느라 치맛자락에 풀물이 든 것 말고는 눈에 띄는 점이 없었다. 정답을 모르는 문제에 그는 곧 초조해지고 말았다.) 마, 마음에 안 들었어요? 아니면. 그. 혹시 높은 데 무서워해요? 아, 아니면 아까 눈 가린 것 때문에 화나기라도 했어요? 그. 그러니까. (더듬더듬 말을 잇다가 그는 결국 손을 뻗어 당신의 눈 밑을 살짝 훑었다.) 울, 울지 마세요. ... ... 제가,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이스피어 틸다:(이곳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허상인가, 실재인가. 가늠할 수 없는 기억의 격류에 휩쓸린 인간은 무력하게 허우적댈 뿐이다. 숨구멍이나 찾는 것이 겨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뺨을 훑는 바람보다도 당신의 손길은, 다정하구나. 그저 중얼거린다.) …아이작. (두서없는 말들만 쏟아져내린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려 당신을 바라보았다. 힘없는 웃음이 덧그려지는 것은 왜인가.)
나, 그 남자와 결혼하기 싫어요. (날 것의 진심을 무책임하게 툭 내던지고선.)
아이작 딜라이트:... ... (당신이 뱉어낸 대답은 과연 그가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것이었나. 소년은 머리라도 얻어맞은 듯 멍한 시선을 보이다가, 곧이어 자신의 입술을 꾹 물었다. 그리고, 물기로 젖어있는 것도 아닌 뺨을 다시 한 번 손으로 문질렀다.)
저도요. (당신을 따라하듯, 그의 입꼬리에도 힘빠진 웃음이 스쳤다.) ... ... 저도. 누나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이 아니라 ... . (할 말이 남은 듯 보였으나, 어째서인지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고, 뺨 위에 올라와있던 손을 내렸다.) 죄송해요. ... ... . (그의 얼굴에는 자책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스피어 틸다:(뺨의 온기, 따스하다. 그러나 사뭇 현실과는 동떨어진 감각. 고개를 젓는 당신은 곧 온기를 떨어뜨리고, 이스피어는 붙잡아주는 이 없어 격류 가운데 숨이 막혔다. 진정해. 천천히 생각해보자.
이건, 진짜인가? 몇 차례 눈을 깜빡이면 채 남아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곧 흔적을 지운다.) ……궁금한 게 있어요. (다만 당신을 향하던 시선을 떨어뜨려 언덕 너머, 지긋한 수평선을 바라본다. 묻는다.)
이건…… 진짜 있었던 일인가요? (아니면 미친 여자의 정신 나간 망상일까. 조소가 맺혔다.)
아이작 딜라이트:네? (당신의 질문에 그가 잠시 얼빠진 소리를 내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에는 경쾌함이 묻어나와 있었고, 동시에 씁쓸함이 남아있었다.) 어땠으면 좋겠어요? 진짜가 아니라 꿈이길 바라요? (그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곧이어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의 앞에 섰다.) 만약 이게 정말 꿈이라면, 깨어나면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난 ... ... .
당신의 눈 앞을 시리게 만들었던 저녁 노을빛이 그의 그림자로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당신은 아주 긴 밤을 보내야 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분명 그 밤을 아주, 사랑했을 겁니다.
이스피어 틸다:……
아…. (덜컥, 멈추었던 숨이 터져나온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게 빛나던 햇살과, 별가루가 쏟아진듯 아름다웠던 바다.
숨이 막혔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던
심장소리
까지.
아이작 딜라이트:... 왜그러십니까? 어디 아프신가요? (소년이 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한 건 소년이 아니었다. 소년을 닮은. 하지만 동시에 그가 품고 있던 흘러넘치는 삶의 생기가 사라진 남자였다.)
이스피어 틸다:(비로소 현실의 당신을 마주한다. 아, …
밤이구나. 현실감은 여즉 찾아오지 않는다. 알아, 내가 미쳐있다는 거. 점점 더 심해질 거라는 사실까지도. 그래도 물었다. 무심코 당신의 팔을 붙들었다. 동앗줄마냥.) 저랑. ………카멜리아 동산에서… 당신이, 소년이……. (바다를 보여줬는데. 눈빛이 여전히 흐렸다.)
아이작 딜라이트:... ...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의아함과 동시에 당혹스러움이 공존했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화제를 곧장 정리할 수 있는 것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단 당신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떨고 있는 당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붙잡았다. 앉을 자리를 찾듯 고개를 돌리던 그는 당신의 어깨를 붙잡은 채 침대까지 데려와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앉혀주었다. 자신의 팔을 붙든 손을 부러 떨치진 않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천천히 말해보세요. 진정하고요.
이스피어 틸다:(일련의 과정이 그저 느릿느릿하게 흘러가고만 있다. 부유감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당신도 내가 미친 여자로만 보일까? 미친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왜 이런 나를 구태여 붙드나. 하지만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제는 뒤엉킨 것을 판가름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야지만, 당신을 향한 이…….) ……어린 당신이…. (그래도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나를 동산으로… 데려갔어요. 내 눈을 가렸고,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바다가 보였어요,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저는……. (점점 언어는 힘을 잃어 추락했다. 어느덧 떨어진 고개는 바닥 위로 바르작대는 낱말들을 침묵 속에 응시했다. 고저 없이 물어볼 뿐이었다.) 망상이라기엔 생생했고, 그렇다고 현실이라 믿기엔…. (입술을 다문다.)
아이작 딜라이트:(책상의 의자를 가져와 앞에 끌어다놓고 본격적으로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는 오래도록 침묵하고 있었다. 역시, 그런걸까. 당신을 그저 미친 여자로만 보고 있는 걸까. 말을 마치면, 당신에게 '헛소리 하지 말라'며 비웃을까. 당신이 어떤 최악을 상상하고 있든간에. 적어도 현실과는 달랐겠지만. ) ... 하. (웃음소리가 나왔다는 것 하나만큼은 공통점이 있었다.) ... ... (웃음을 뱉은 그의 얼굴엔 희열이나, ... ... 통증따위도 함께 있었지만.) ... 좋아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한 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문장이 이어졌다.) 당신도, 나도. ... ... 비밀장소였으니까요. ...
우리 둘만의. (순간 그의 웃음이 소년의 것과 비슷해보였다.)
이스피어 틸다:……네? (바닥을 뒹굴던 눈이 단숨에 들려 당신을 바라보았다. 둥그렇게 뜨인 눈동자, 얼핏 당황한 것 같으면서도 순간적으로 그 얼굴에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어떤 감정이 뒤엉켜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마저도 곧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갈무리 되었지만. 혼란스러움에 마주잡은 손을 움찔댔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내게 장단을 맞춰주려고… 하지만 그렇다기엔, 기억은. 손을 들어 관자놀이 부근을 매만졌다. 입술만 달싹이다가.) 제,가. (빛바랜 과거를 꺼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
결혼하기 전,에요. …당신과, 내가……. 그러니까, (시간이 혼잡하게 뒤엉키는 것은 다소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창백하던 낯이 조금 붉게 달아오르는데, 어라?) ……
그,런… 행동을, 하, 하기도… 하고……. (어?)
아이작 딜라이트:그런 ... 행동이요? (문장이 의문형으로 떨어지며 말끝도 함께 흐려졌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를 잘 못한 걸까?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것도 같았다. 하지만 당신이 뱉은 문장의 의미가 어떤지 파악하기까지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린 건 아니었다.) 네. (뭘 수긍하는 거지?) 자주 어울려 놀았습니다. ... ... 그 외 여러 복잡한 일이 있기도 했고요. (말갛고 차분한 웃음을 보이는 그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 장소에서 보낸 시간이 많으니, 정확히 어떤 장면을 떠올리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 ... 이제는 추억속에만 남은 장소가 됐지만요. (재앙과 저주가 시작되면서 땅이 불타고, 대부분의 동식물이 말라죽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자리했던 장소가 망가지는 것도 당연했고.)
이스피어 틸다:(그러나 이스피어의 사고는, 이제는 말라 비틀어지고 뿌리채 시들어 죽어버려 황량해진 언덕의 현재 모습에 미치지 못했다. 당신의 긍정에 그저 얼굴만 더 화르륵 붉히며 한쪽 손으로 조심스레 제 뺨을 감싸 가려낼 뿐이었다. 다른 손이 침대 시트를 힘있게 쥐다가.) ……저희,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남아있는 열기 탓인지 당신을 쉽게 바라보지 못했다. 아까만 해도 그렇게 당신을 도발해대더니, 그 객기는 어디로 가고.)
아이작 딜라이트:(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는 동안 그의 시선이 잠시 밑으로 내리깔렸다. 하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긴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그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함께했는데 올라간 입꼬리가 묘하게 동정심을 자극하는 모양새였다.) 제가 일방적으로 반했습니다. (내용과 달리 내용은 담백했다.) 이미 느끼고 있겠지만. ... 당신은 이 마을 출신이 아니라 외부인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같은 작은 곳들은 외부인을 적대하는 풍조가 있죠. ... 가끔은 지나칠 때가 있지만요.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동떨어져 늘 혼자 지내는 당신에게 반해, 열심히 쫓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어렸어서 요령이 없었죠. ... 우리 아버지가 마을에서 입김이 센 편이라, 대놓고 날 거절할 수 없었던 당신이 제법 곤란해했던 게 기억납니다. (신에게, 혹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그는 손을 한데 모아 가볍게 깍지를 꼈다.) 이것도 '만났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이게 우리의 시작인 셈이겠군요.
이스피어 틸다: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3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딜라이트 사제가 고해하듯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은 다시금 알 수 없는 두통을 느낍니다.
물길에 쓸려내려가는, 덧없이 먼 어딘가로 끌려가듯한 ... ... .
생생하게 피어난 풀뿌리들이 급한 발걸음 소리에 한풀 꺾이듯한 소리를 냅니다.
평소라면 당연하게도 풀이 나지 않은 길 쪽을 택했겠지만, 당신에게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지에 속했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마을 위 왼쪽 상가쪽에, 엄청 맛이 있는 빵집이 있거든요. 그래서 ―
며칠 전부터 돌연 당신을 꾸준하게 쫓아오는 소년 때문이었습니다.
길이 사나우면 귀찮아서라도 더이상은 안 쫓아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괜히 다른 길을 찾은 거였는데.
다른 사람에게 길이 사납다면, 당신에게도 길이 사나운게 당연하잖아요? 어째서 그 사실을 잊었던 걸까요?
이스피어 틸다:……. (떨떠름한 기색을 채 가릴 수 없는 얼굴로 당신을 흘끔거리다, 시선을 돌려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역시 부담스러울까. 괜히 거친 길을 택했나 싶은 후회가 든다. 치맛단 아래 드러난 발목의 살이 억센 풀잎에 따끔거린다.) ……네에, 그래서요…? (멋쩍은 대답만이 이어질 뿐.)
이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의 아들인 아이작 딜라이트라는 소년은, 어째서인지 요 며칠 새 귀찮을 정도로 당신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이 폐쇄적인 마을은 당신에게 적대적인데. 원치도 않는 혹이 하나 더 생길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를 대놓고 거절하자니, 이사회의 눈치가 보이고.
그가 마음대로 하도록 두자니, 이 마을 사람들의 눈치가 보입니다.
결국 소년이 먼저 떨어져 나가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었죠.
영 포기할 낌새가 보이지 않아 난감해지기만 하던 차였지만요.
아이작 딜라이트:거기서 선착순으로 파는 애플파이가 있는데, 타이밍이 안 맞으면 못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저. 이번에 아버지께서 선물로 받아오셨다고 해서... 좋아하시면 드리고 싶어서요! 아! 그. 집에 초대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고요! 내일이나 아니면. 직접 배달을... 아, 아니. 집에 함부로 찾아가겠다는 뜻이 아니라... (더듬더듬 말을 잇는 모습이,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그의 속내가 순수한건지, 아니면 이게 마을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선택한 또다른 수법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 그래서... 좋아하세요? ... 애플파이... .
이스피어 틸다:(그 노골적인 감정을 모를 수 있을리가. 어린 때에 부모를 잃고 자란 이스피어는 특히나, 사람의 눈초리와 시선에 민감했다. 풀물이 들지 않도록 치맛단을 살며시 그러쥘 뿐, 당신에게 시선이 향하는 일은 없었다.) ……싫어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당신이 알아서 떨어져나가길 기대하는 것은, 역시 가망이 없어보인다. 어떡하면 좋지? 당신이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내다가,
순간 아릿하게 발목을 스치는 고통이….) ─아. (어깨를 움찔 떨며 그가 걸어가던 것을 멈추었다. 급하게 시선을 내려보면, 어느새 자라나있는 엉겅퀴의 가시가 발목을 찌르고 있었다.)
아이작 딜라이트:아, 그러면... . (하면서 얼굴이 확 밝아지는 것 같다가. 당신의 통증어린 목소리에 그가 화들짝 놀라 함께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긴 치마 끝에 엉겅퀴 가시가 걸려있었고, 그 밑으로 당신의 발목이 보였다. 하얀 피부 위를 가로지르는 붉은색 액체를 바라보며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괘, 괜찮아요? 발목이... ... . (당신을 늘 졸졸 쫓아오기는 했어도, 그는 어느정도의 거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아마 당신이 그를 은연중에 거절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이미 학습되기라도 한 건지,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잠시 몸을 멈짓거리며 망설였지만.) 잠시만요. (규칙을 어기며 다가간 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덥석 엉겅퀴를 손에 쥐었다.) 실례할게요. 잠시. 여기를 이렇게... ... . (일단 치마 끝에 엉켜있는 가지를 어떻게든 정리해 떨어트린 뒤, 그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 당신의 발목에 묶어주었다. 잠시 손끝에 발목이 직접 닿았을 때 움찔거린 것 같았지만.) 됐어요. 걸을 수 있겠어요? (밝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손도 이미 가시에 여러번 긁혀 얇은 핏자국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었다.)
이스피어 틸다:(붉은 핏방울을 보고서 당황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당혹감은 당신의 몸짓을 보았을 때 더 커지고 말았지만.) 잠-, 잠깐, 무슨…. (훅 끼치는 당신의 그림자가 다친 발목을 감싼다. 주춤대며 뒷걸음질 치지도 못하고, 그는 그저 쩍 굳어선 당신의 행동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다. 맨 손으로 주저없이 치마에 걸린 엉겅퀴를 붙잡고, 떨쳐내고, 손수건을 꺼내서, 그리고… 손수건을 휘감느라
발목을 스치던 손가락.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가 몸을 크게 움찔댔다. 숨을 급하게 들이쉰다. 여전히 몸을 물리지는 못했다.) ……. (그리고 당신은 억센 풀밭 위에 한쪽 무릎을 대고 주저앉은 상태 그대로 웃음이나 그리고 자신을 바라본다.
어쩌면 처음으로 당신의 얼굴을 마주보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술렁거렸나? 알 수 없는 기분으로 하여금 그는 굳은 얼굴로 당신의 손을 살피기에 바빴다. 가느다란 실선처럼 그어진 핏방울들. ……망설이던 여자는 당신의 앞으로 천천히 몸을 낮추어 숙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당신과 비슷한 눈높이가 되면, 그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다친 손을 끌어다 쥔다. 엄지 손가락이 천천히 핏자국 위를 쓸었다. 붉은 것이 번진다. 그가 조용히 속닥였다.) 다쳤,잖아요…. (이상하게 얼굴이 홧홧거렸다. 이상하게 당신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나, 정말 왜 이러지? 우물거리듯 말했다.) …안 아파요?
아이작 딜라이트:네? 아. 아니. 이건. (당신의 손이 닿자 그는 순식간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치닫듯한 열기에 이리저리 정신없이 눈을 굴리는 게 보였지만. 그 와중에 놀라 당신의 손을 내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괘, 괘, 괜찮아요! 침 좀 바르면 나을 거예요! 하나도 안 아파요! 아, 아하하! (쑥스러운 마음에 괜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어색하고 큰 웃음소리를 냈다. 본인도 본인이 바보같은 건 아는지 그 말을 하자마자 또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미. 미안해 하실 거 없어요. 제 탓인걸요. (그리고, 정체 모를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이쪽 산길은 험하고 위험해서,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봐 따라온 거였는데... . 결국엔 다치셨잖아요. 제 잘못이에요. 죄송해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제가 불편하신거죠? (그리 바보는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오늘 안전하게 돌아가면, 내일부턴 저도... 자제할게요. 이, 이 마을이 좁아서 사람들이 외부인한테 예민하긴 한데 처음에만 그렇지 나중엔 친절해질거예요! 좋은 사람들이니까요. 저 말고도 도와줄 사람도 많을테니까. 저. 그러니까... . (어색한 침묵. 입을 꾹 다물었던 그가 결국 몸을 반쯤 돌렸다.) 그. 그럼 일단 돌아갈까요?
이스피어 틸다:(새빨개진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 그는 그제서야 천천히 당신의 손을 놓아주었다. 번진 핏자국이 여전했는데도.) 돌아가면 꼭 약 발라요. …
다음부턴 제 대신 다치지도 마시고요. (어쩌면 냉정하게 들릴 법한 발언이었다. 빨간 얼굴을 흘끗대던 시선을 그제서야 거뒀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치맛단을 털었다. …아. 손에 묻어난 핏자국이 결국은 번지고 말았다. 이스피어는 그 얼룩을 짧지 않은 시간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뱉었다.) ……아직까진 다들 날 싫어하는 것처럼 보여요. (중얼거림은 중간부터 우리 사이로 불어온 바람 소리에 먹혀들어갔던 것 같다. 얼룩을 응시하던 눈빛은 초탈함을 머금고, 이내 당신을 향한다.) 시간이 흐른다면 정말 그들이 다정해질까요? (그걸, 왜 당신에게 묻고 있는 건지. 왜 나는 그런 당신이 불편하다고, 속 시원하게 얘기하질 못했던 건지.)
아이작 딜라이트:... 대, 대신 다친 게 아닙니다. 그냥.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서... . (쓸데없는 참견이었다는 걸 당신이 애써 돌려 말한 것에 가까웠을텐데. 그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바보같이 중얼거리고 뒷머릴 긁적거리고 있기나 했다.) 그. 그렇다니까요! (당신이 돌연 말을 걸어오자 그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당황한 얼굴을 하던 것도 잠시, 타이밍을 놓칠새라 급하게 덧붙였다.) 아직은 다들 틸다 씨를 어색해해서 그래요. 원래 그렇게 쌀쌀맞은 사람들은 아닌걸요. 내가 보장할게요! 아, 아니면. ... 괜찮다면. 그. 제가 도와드릴수도 있어요... . (말하곤 슬쩍 당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스피어 틸다:(눈치를 살피는 얼굴에서도 이스피어는 쉽게 웃을 수 없었다. 그도 그렇지,
그가 애초에 이 마을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고개를 한 번 젓곤 두통이 이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길게 눈을 감았다가, 눈꺼풀을 들어올리곤 당신을 본다.) 어떻게… 도와주실 건데요? (그러다 뒤늦게 덧붙이길.) 애플파이를 같이 사러 가자거나, 아무튼 그런 것 말고요. (음.)
아이작 딜라이트:엄. (거기까지 생각한 적은 없긴 했지만. 일단 생각하기도 전에 거절당한 것 만큼은 확실했다.) 어.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생각이 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 ... 그건 왜 싫어요? (괜히 이런 궁금증에 매몰된 탓이다. 내, 내가, 뭔가 잘못했나? 날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혹시 싫어하나?! 불안감이 증폭한 얼굴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스피어 틸다:……. (일단 당신이 뭔갈 생각하기도 전에 거절해버린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잠시 꾹 다물렸던 입술이 느릿하게 열린다.)
사실……. (뭐 대단한 거라도 말하는 것처럼, 슬쩍 눈을 옆으로 피한다.) 애플파이를 싫어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줄 서서 살만큼 좋아하지도 않아서요. (……생각보다 가벼운 이유다. 두 눈 감고 입을 다물었다가, 한쪽 눈만 살짝 떠 당신의 반응을 살펴본다.)
아이작 딜라이트:... ... ... 그. (말문이 턱 막힌 사람처럼 그가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돌연 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 번 터진 웃음은 커지기 시작하더니 소년은 눈물이 고일 만큼이나 한참이나 웃고있었다.) ... 아. 죄송해요. 그렇구나. 애플파이도, 나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거네요. (내린 결론이 어쩜 그렇게 낙천적인지.) 그럼 괜찮아요. 애플파이 말고도, 그 빵집에는 맛있는 게 많은 걸요. 볼 거리도 많아요. 뒷산 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무도 있고, 저쪽 절벽에는 카멜리아 숲도 있어요. (곱게 눈을 접는 웃음은 역시나, 순수했고. 숨소리 하나에도 삶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어디든 마음대로 가도 괜찮아요.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줄게요.
이스피어 틸다:(결국은 또다시 사람을 들이고 마는구나. 당신의 웃음이 길어질 수록 멋쩍은 마음이 들어버리는 한켠에는, 예정된 절망에 벌써부터 체념한 마음이 있었다. 당신은 언제까지 날 배신하지 않을까? 깨끗한 것일수록 빠르게 더럽혀진다. 맑은 것일수록 진탕 쳐지며, 순수한 것일수록 이르게 찢긴다. 그래,
변하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도 없으므로.) ……어디로, 향한대도요? (그럼에도 나는 왜 또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마는 걸까. 주저없이 무릎 꿇고, 주저없이 맨손으로 가시를 떼어내고, 그러다 자신까지 다쳐놓고선 남의 상처에만 시선을 주던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맹목적이라서? 당신의 순수함에는 조금 다른, 기대를 품고 싶었던가? …이유를 특정할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사람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때문이겠지. 그래서 그는 당신의 웃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어차피 떠나갈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덜 주어야……
덜 아프니까.)
아이작 딜라이트:그럼요. (하지만 당신의 우려와는 달리 그의 대답은 언제나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자신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을 알듯, 혹은 맹세하듯... .) 어디로 향한대도요. (따갑게 쏟아지는 볕 아래에서 웃을 뿐이었다.)
또 다시, 물길에 쓸려내려가고, 끌려가듯한...
아이작 딜라이트:(조심스럽게 당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또 어디 안 좋은겁니까? (걱정스러운 시선이 여전히 당신을 향한다.)
이스피어 틸다:…………머리가, (겨우 입술을 열었다.) …아파요.
……저 좀… 눕혀주실래요? (시야의 상이 제대로 잡히질 않아 어지러움에 눈을 감았다.)
아이작 딜라이트:... 감기 기운이 있는 모양입니다. (하긴.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얇은 슈미즈만 입고 밤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은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그는 그걸 모르는지 당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서 당신의 몸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침대에 자리를 잡게 도와주고, 다리를 침대 위로 올려 이불보를 턱끝까지 올려주었다.) 자리를 비켜줄까요?
이스피어 틸다:(보살핌 받는 듯한 손길은 실로 오래간만이다. …아니, 처음 같기도 하다. 가느다랗게 숨을 내쉬며 베갯잎에 옆 머리를 기댄 뒤에서야 천천히 눈을 뜬다. 당신을 본다. ……문득 중얼거린다.)
변하지 않았네요. 당신은…. (왜,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었다면, 당신은 왜 나를 떠났을까. 그리고 왜 이제서야 돌아왔을까. 알 수 없는 기억으로부터 기인한 감정이 속을 어지럽혔다. 다만 그는 손을 뻗어 당신의 손목을 붙잡았다.) 더…… 얘기해주세요. …아니지. 신부님께서도… 이만 곤하신가요?
아이작 딜라이트:(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당신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그는, 곧 무너지듯한 숨소리와 같은 웃음을 보였다.) 그렇습니까? (당신의 그 말을, 그는 과연 진실이라고 믿을까. 아니면 당신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꾸며낸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 전 괜찮습니다. 원래 잠이 많지 않거든요. 또 악몽을 꾸실수도 있으니, 잘 잠드신 걸 확인한 다음에 가겠습니다.
이스피어 틸다:(흐릿하게 웃는 당신을 보며, 그 또한 흐릿하게 미소지었던 것 같다. 아니. 웃었나? 웃지 않았나? …모르겠다.) …그럼, 손… 잡아주세요. (그렇게 속닥거릴 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는다. 느릿하게 말을 꺼낸다.) 신부님의, 말을 들으니까. ……계속,
옛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신부님의 손이 다치셨는데…. (중얼댄다.)
아이작 딜라이트:(손? 당신의 제안에는 잠시 망설였던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이 기억의 편린에서 보았던 수줍은 얼굴은 아니었고, 겁먹기라도 한 것처럼 망설이는... .) ... 실례하겠습니다. (속삭이듯 말하고 나서야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붙잡았다.) 제가요? ... ... (당신이 단편의 기억을 보고있다면, 그는 연속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콕 집어 말하는 상황이 어떤 순간인지 그는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 ... . (묘하게 당신의 발언을 믿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이스피어 틸다:(여전히 그는 당신의 반응을 살필 새 없었으므로, 손을 붙잡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두통이 잦아들질 않았다. 조금 더 체력이 있었더라면 엉겅퀴가 어쩌고, 마을 빵집이 어쩌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묻고 싶지 않았다. 그는 태연한 목소리를 내었다.) 네. …신부님이….
…왜 저를 떠나게 되셨는지요.
질문을 들은 딜라이트 사제가 눈에 띄게 당황한 눈치였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 ... 내가
감히 아버지께 대들었기 때문이죠.
그것 때문에 제가… 억지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원래였다면 그의 감정이 어떤지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겠죠.
그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
이 아니라면 속내를 전혀 예상할 수 없을만큼 스스로의 감정제어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당신이라면,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스피어 틸다:
관찰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당연하죠, 방금전까지만 해도 속내를 몰라 경계심이 우선 들었던 그의 감정들이 이렇게나 훤히 보였으니까요.
딜라이트 사제가 원래 이렇게 알기 쉬운 인간이었나요?
그의 얼굴, 몸짓에 떠오르는 감정 중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단 하나.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길래 입을 꾹 다문 채 벌벌 떨고 있는 걸까요?
그에 대한 답은, 놀랍게도. 그의 입술에서 쏟아져나왔습니다.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줄 거라 하셨잖아요.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왔다. 그 스스로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이스피어는…….)
목구멍에 타오르는 불덩이라도 물고 있는 것처럼, 하염없이 침묵만 유지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너무나도 짧고 처참합니다.
죄송합니다.
초조해 떨리는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이스피어 틸다:(손끝이 떨렸다. 증오로? 분노로? 억울함으로?
……과연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이에게 나쁜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어요. 사제님께선. (느릿하게 말했다.)
……맞나요?
아이작 딜라이트:(가만히 모인 손이 꿈틀거렸다.)
... ... 예.
이스피어 틸다:(당신을 보지 않았다. 손을 올려 얼굴을 덮었다. 절망인지 체념인지, 눅눅히 물들어 가라앉는 목소리가있었다.)
그렇다면 사제님은, 늦어버리신 거네요. (확정하는 투였다.)
아이작 딜라이트:(
지금이라도 당신의 곁에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 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했는지 알긴 합니까? 반항적인 목소리들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듯 한참을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결국 입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
죄송합니다. (죄를 고하는 목소리만 있었을 뿐.)
... ... ...
(다만, 딱 한 가지만큼은 물어야 했다.)
이제.
... ... 제가 싫으십니까?
이스피어 틸다:(다양한 것들로 끓어오르는 속이야, 이쪽도 마찬가지였겠다. 아니, 사실은 기억하는 한 언제나 그랬다. 남편의 그림자에 짓눌려서,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적잖은 악의에 숨이 막혀서, 그리고는 아들의 죽음으로 온통 파묻혀서. 맥아리 없는 부표라도 된 양 분명 누워있는데,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정없이 온갖 곳에서 날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모르겠어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애매한 언저리에서 어중간한 희망을 내어놓기라도 하듯.)
(그리고 이스피어는 한참 입술을 다물고만 있었다.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죄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지친 탓이겠지. 그래서 눈을 떴다. 한쪽 손을 당신에게 뻗었다. 얼핏 다정함으로 착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가 속살거렸다.) …이리 와요, 아이작. (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작 딜라이트:(
모르겠어요. 최악의 최악. 혹은 지옥의 밑바닥까지도 생각했는데. 당신의 차가운 분노에 데일까봐 무서워 몸을 떨었던 것이 무색하게, 평온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어째서 분노를 보이지 않았을까. 그런 물음도 잠깐. 당신의 호명에 숙여져있던 고개가 슬그머니 올라온다. 경계심으로 몸뚱이를 무장한 야생의 생물마냥 그는 한참이나 당신의 손에 닿길 머뭇거리다가, 곧이어 살며시 자신의 뺨을 당신의 손 위에 얹었다.) ... ... 어떠한 죄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께 용서 받을 수만 있다면요.
아니. 용서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 (그 뒤는 굳이 뱉지 않아도 당신도 알았을 것이다.)
이스피어 틸다:(알았을까, 몰랐을까. 그는 적극적으로 당신의 뺨을 쓸어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마냥 가만히 있지도 않았다. 구부러지는 손가락 끝이 그러하지 않았나.) 오늘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절로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눈이 가물가물, 감긴다.) 슬슬 자고 싶어요. …
안아주시겠어요?
아이작 딜라이트:... ... (따져묻고싶은. 당장의 결론을 바라는 얼굴을 잠시 보였다. 하지만 이런걸 요구하는 것도, 자신의 죄를 들어주는 것도 어쩌면. 이젠 당신의 역할이 아니니까... ... . ) 알겠습니다. (당신의 신자는 그저 요구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당신은 쓰린 마음을 달래 간신히 눈을 감았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탓에 당신에게 그저 새카만 암흑만을 보여줬던 걸지도 모르죠.
그렇게 묻는 낯짝이 뻔뻔하고 오만해 ... 없애버리고 싶단 생각은 안 들었어요?
이스피어 틸다:……기억나지 않으니 차라리 잊어버릴래. (중얼거렸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느 상황인지도 모르고.)
알아버려도 더 아프기만 할 뿐이잖아…
이스피어 틸다:(이상하게 목이 매였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 같아 그는 더 몸을 웅크리기만 했다.)
모르겠어…. (곁에 있는 무엇이라도, 더 품에 끌어안으려 들었다.)
순진했던 당신에게 달콤한 감정들을 알려줘놓고, 자신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 무서워 달아나버렸죠.
슬프고, 괴롭고, 끝없이 외롭기만한 하루하루…… .
머리를 어지럽히는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면, 다시금 끔찍한 아침해가 떠오른 것이 느껴집니다.
이불보를 더듬어, 옆에 있어야 할 누군가의 인기척을 찾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짚이지 않네요.
이스피어 틸다:(식은땀에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고, 가쁜 숨을 애써 가라앉힌다.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아,)
(또다시 빌어먹을 하루가 시작되고 마는구나.)
(…그래도 아직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순간 휘청여 다시 침대에 앉았다가, 또 일어난다.)
(아침부터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그는 바닷가로 향했다. 불타버린 아이의 유품이 있을…)
이른 시간인지 해가 뜨겁지는 않네요.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면, 또 당신을 빼놓고 저들끼리 수상한 짓거리라도 꾸미고 있는 건 아닐까요? ... ...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이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보금자리가 있던 작은 산등성에 다다릅니다.
누구도 돌아보거나, 돌봐주거나, 가엾게 여기는 것조차 하지 않은.
새카맣게 불타 재만 가득 쌓인 이 땅이, 어쩐지 스스로와 조금 닮아보여요.
이스피어 틸다:(한참이나 그 앞에 서있었다. 하염없이, 멀거니, 그냥, 그렇게.)
(곧 여자는 잿더미 앞에 무릎 꿇어 앉고, 맨손으로 타오른 잔재들을 헤집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 안에 무언가라도 남아있을까봐. 감히 희망을 품고.)
(그리하여… 무언가 손에 넣은 것이라도. 있었을까?)
이스피어 틸다:(공허한 시선이 그 위로 박혔다.)
이 안에 들어있던 게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나요, 이스피어?
(상자를 연다.)
그리고 편지 조각 밑에 들어있던 건... ... .
이스피어 틸다:(칼을 저 옆에 내던져놓고 아무리, 아무리 잿더미를 뒤져본들 사라진 것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주저앉은 채 소리 없이 절망하던 여자는 결국 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찢어진 편지를 맞춰 살펴보았다.)
이스피어. 만약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나는 지금쯤
그리고, 당신의 시선 끝엔 전에는 찢어진 조각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맞춰보지 못했던 작은 귀퉁이 조각 하나가 보였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여자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확실한 건 없었다. 그저 일렁이며 떠오르는 그 모든
과거를 바라보며 아연하게 신음을 흘리다가,)
(곧 그 날의 기억에서 등허리를 꺾어 잿더미에 머리를 박았다가,)
(마침내 빼앗긴 미래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죽는 것이 당신이 됐을테니까요.
아니.
코가 마비될 듯 강렬하게 풍기던 비릿한 냄새.
이스피어 틸다:(머리를 감싸듯 더욱 몸을 수그렸다. 거친 숨, 터질듯한 심장, 불온하게 뛰는 박동.)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흐느꼈다.)
생각해보면, 당신의 집이 다 타버린 것은 천운일지 모릅니다.
이 집만 없으면, 아무도 당신이
살인자
라는 걸 모를테니까요.
아이는 넘어져 머리가 깨지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도망갔다지.
제 밑에 묻힌 것 먹고 자라 새빨갛게 익었다네.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진 그 자리에 단 하나의 물건만이 그 날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쥔 칼에는 여전히 검붉은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천천히 고개를 든 여자는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듯한 눈으로 검을 바라본다. 아, 노을이 지는 때도 아닌데 왜 붉은 것만 한가득 내 눈앞에 보이는가. 짠 바닷바람 냄새가 아니라 정신을 아뜩하게 만드는 또다른 비린 것이 온몸을 잠식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는 스스로를 애처롭게도 끌어안으며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그래,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이가 먼저 제이드에게 손을 뻗었는걸.)
(하지만 기억할 수 없었어. 기억하면 내가 그이를 죽인 게 현실이 되어버리니까, 내 실수로 제이드가 죽은 악몽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와 나를 파도처럼 덮쳐버리니까!)
(시야가 어질거렸다, 숨이 벅차고 쓰러질 것처럼 현기증이 돌았다. 그렇지만 저 붉은 것은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데 어떡하지, 아무리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손바닥에 목덜미에 가슴팍에 묻어 흉터처럼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데…….)
(그러다보면 문득 새삼스럽지 않은 절망과 더불어 새삼스러운 분노가 들끓기 마련이었다. 나는 왜 기억에서 이 모든 것을 밀어내려 애썼나, 내 실수로 죽은 아이를 역병에 휘말려 죽었노라고 거짓을 뒤집어 썼나, 나는 왜,)
(내가 존재 그 자체로 죄악인 마녀인 것을 부정하려고 그렇게 악을 쓰며 살아야 했던가!)
(그리고 이스피어는 칼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청거리나 무너지지 않는다, 바닷바람 이나 혈향을 잊은 것도 아니요, 절망에 숨을 덜컥 뱉으면서도 고개를 들어올린다….)
(성당으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확인해야할 것이 있었다.)
고해소에 간다면 아이작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이니, 뭔가 솔직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이스피어 틸다:(고해하게 될 자는 따로 있겠지.)
(향한다.)
고해소에는 이전에 봤던대로, 작은 공간이 나와요.
신자가 들어가는 장소에 몸을 욱여넣으니 닫힌 고해창 너머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스피어 틸다:……
아뇨, 신부님.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잭슨 신부:... ... 개인적인 것이라면 고해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따로 찾아오시지요.
이스피어 틸다:…제가 보기엔, (고개를 기울였다.) 그랬다간 후회하게 되실 것 같아서요.
(당신이.)
잭슨 신부:(당신의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걸까. 고해창 너머로 한참이나 그가 침묵하는듯 했다.) ... ... 말씀하십시오. (한숨 섞인 목소리가 가식처럼 들렸을까.)
이스피어 틸다:……. (그러나 호기롭게 말한 것 치곤, 침묵이 길었다. 기어이 열리는 입술에서는 마른 숨만 퍼지나 싶었지만….)
저는…. (입 안이 말랐다.)
…왜 죽어야 하나요, 신부님?
(그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모든 죄는, 안식을 통해 해소될 것입니다.
당신의 죄도, 나의 죄도. 모두.
이스피어 틸다:(죄. 지긋지긋한, 언젠가부터 도무지 삶에서 떨쳐낼 수 없었던. …입술을 깨문다. 주먹 쥔 손이 파르르 떨리다 못해 손바닥에 자국을 남기기 시작한 것을, 이스피어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감히 도전하듯 물었다.) 그렇다면,
저의 '죄'는 대체 무엇인가요? ….
잭슨 신부:(창 너머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말문이 막힌듯 그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 ...
때로 신께서는 인간이 감히 품을 수 없는 뜻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한낱 피조물인 우리는 그 뜻을 거부할 수 없고, 이해할수조차 없지요.
... ...
자매님.
당신이 사라져야만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종소리만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SAN Roll
기준치: |
35/17/7 |
굴림: |
2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무릎 위에 올려둔 칼을 천천히, 쥐었다. 몸 안쪽을 불태우는 감정의 격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저는……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처절한 감정의 한 조각을 내뱉는다, 살고 싶어서, 죽기 싫어서, 당신이,)
(자신에게 어떤 죄도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주길 바라서.)
잭슨 신부:... ... 신은 때로 잔인한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 또한 당신의 죄를 씻을 … ...
멍들어가는 아이와 제 팔을 드러내고 다닌 죄?
그들이 말하는 '죄'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스피어 틸다:(머리가 아파 그는 하염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혼잡스러운 모든 것이 그를 끊임없이 과거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어, 그는 진흙밭을 구르고 또 구르고 넘어지고, 빠지고, 이제는 멍이 다 빠진 팔을 매만지게 하고….)
(그리고 어느덧 잭슨이 말을 마치고서도 한참 시간이 지난 때, 그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고해소를 벗어나려 등을 돌렸다.)
당신이 정말 마녀이고 악마이기 때문에 죄를 받아야한다면.
당신을 고립시키고, 방치한 이들은 대체 무슨 벌을 받게 되는 걸까요?
고해소를 빠져나와 걷다보면, 등 뒤로 따라오는 걸음이 들려옵니다.
당신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등 뒤로 쫓아온 자가 말합니다.
이스피어 틸다:……. (반응이 반 박자 느리다, 뒤돌아보는 때에.) 네? (단말마같은 음성만이 남는다.)
이스피어 틸다:
민첩
기준치: |
40/20/8 |
굴림: |
53 |
판정결과: |
실패 |
-신부,님?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팔 쪽에서 아찔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잭슨 신부:모든 일에는 신의 뜻이 있습니다. ... 저를 원망하지는 마십시오.
그래요, 분명합니다. 그가 손에 칼을 쥐고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팔을 감싸쥔 채
주춤, 뒤로 물러선다. 아, 비릿한 향, 막 잔상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생한, 이…….)
…. (상대를 바라본다. 휘청거렸나, 곧이어 배신감에 물드는 얼굴은 절망으로 치닫고, 또 그러다 선연한 분노에 사로잡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언제까지 저들에게 유린당해야 하지? 나는 언제까지 마녀여야 하지? 왜 미움받아야 하지? 왜 상처입어야 하지? 왜, 나는 대체 왜,)
(인간에게 죽임당해야만 하지?)
……숭고한가요? ……이것이…? (한 줄 남은 이성을 힘겹게 붙잡는다. 여러 감정들로 하여금 손이며 팔이며 어깨가,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이스피어 틸다:(그래, 어째서.) 그것이 정녕 신의 뜻인가요…?
슬픔과 함께 비틀리듯 튀어오르는 감정들이 당신이
악마
가 아닌
인간
임을 증명합니다.
이스피어 틸다:제가, 아무 죄 없는 제가 죽어야 한다는 게…. (눈앞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빨갛게, 멈추지 않고, 더욱 붉게.)
나는, 난. (제게로 달려오는 잭슨의 모습이 보인다, 손에 쥔 칼의 감촉이 시리다, 붉다, 아프다, 괴롭다, 언제나 그랬듯이─.)
난…!
하고 무언가가 힘없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행해지는 신의 마지막 축복인걸까요?
땅을 구르고 있는 건 당신이 아닌, ... 잭슨 신부.
그가 눈을 부라리며 자신에게 칼을 겨눈 아이작의 바지 끝을 붙잡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가 생에 마지막으로 남긴 행동이었습니다.
아이작 딜라이트:... ... 괜찮습니까?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 알고 있기는 한 건지, 당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몸을 살피려 했다.)
이스피어 틸다:(눈을 뜨니 그제서야 닥쳐오는, 고통. …팔을 감싸쥐며, 당신을 바라본다. 순간적으로 눈에 비친 붉은 것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남성의 그림자 때문일지, 무심코 뒷걸음질 쳤지만.)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제가. …제가…… 한 건가요? (멍청하기까지 한 질문.)
아이작 딜라이트:... ... (저를 피해 달아나는 뒷걸음질치는 당신을 사제는 막아서지 않았다. 당신의 질문에 오래도록 대답하지 않았을 뿐. 아이러니하지. 마녀라며, 악마라며 명명된 것은 당신인데 정작 손을 피로 물들인 것은 당신이 아닌 그였다.) ... 제가, 했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았으면 당신이 위험했을 거예요.
이스피어 틸다:(가볍게 뱉은 것 같은 말의 무게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시나무 떨리듯 하는 몸의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팔을 더욱 힘주어 쥐었다.) 단,지… 그것 때문에요?
아이작 딜라이트:(단지. 당신의 말에 또 한 번 침묵이 감돌았지만.) ... ... 하지만. (이번엔 그리 길지 않았다.) 그 또한 '단지' 그런 이유로 당신을 해하려 했잖아요. (너무나 단순한 문장이었다. 너무나. 너무나... ... .)
이스피어 틸다:(
단지. 고작, 그,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고작해야 그것, 때문에요. (……당신의 말에 결국 그가 무너져내렸다.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 그의 곁으로 피가 말라붙은 칼이 쇳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는 스스로를 감싸안듯 몸을 굽히며, 숨을 토해내다가, 곧이어 눈을 질끈 감고,)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울음을 내뱉길 시작했다. 애처로운 숨, 삶을 부정당한 수치스러움으로 비롯한 과거에의 회상, 그로 인한 피로와 분노, 낙망함. 철옹성같이 세울 수 밖에 없었던 등허리가 무너지고 마는 까닭은 실로 단순했다.)
(지쳐버렸다, 완전히. 그가 눈물에 젖은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연다. 신부님께도.)
…제가 죽어야 할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그리고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아이작 딜라이트:(울음을 터트리는 당신을 바라보는 딜라이트 사제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매끈거리는 대리석바닥에 우리의 모습이 새까맣게 비추고 있었다.) ... 설령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다리를 굽혀 당신의 맞은편에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앉았고,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 손에 묻은 핏자국으로 인해 미처 닿지 못하고서 머뭇거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제가. ...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겁니다. ... ... 그런 일은 한 번이면 족하니까요.
이스피어 틸다:(눈물로 얼룩진 시야가 새빨갛다. 채 닿지 않는 손, 그러나 핏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 꿇어 젖어가는 옷자락을 바라보았나. 흐린 시야에 상이 잡히지 않는다. 천천히 고개가 두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기 시작한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지는 그림자 가운데 입을 연다.) 저는… 망가진 것 같아요, 신부님. (떨림은 있으나 고저 없는 음성이, 차분히 그것이 사실이라 짚고 있었다.) 저는요, 이제 기억도 온전하지 않고요, 죄가 없는 척 굴어도 사실은 아주아주 무서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고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아들까지 보내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제 죄악으로 말미암아 마녀가 되었나봐요,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잘못으로, 아니면 그냥,
제 존재 자체 때문에….
(침묵이 떨림의 길이마냥 끝없이 늘어났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저를 포기하셔도 돼요.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러셔도 미워하지 않을게요.)
아이작 딜라이트:(저는 망가진 것 같아요. 그 말이 아프게 들렸다. 머나먼 기억, 당신의 말처럼 이제는 온전치 않은 기억들 사이. 그 속의 당신은 지금과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어쩌면 지금의 당신은 오래전 그가 알고 있는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인지도 몰랐다. 가녀린 여인으로 마을에 와 마녀가 된 사람. 하지만 그렇다면. 당신을 마녀로 만든 건 무엇인가.) 이런 시대에 어째서 성당에 사람이 몰리는지 아시나요?
시대가 병들면 사람이 함께 병들기 마련입니다. 모두가 죄인이 되어 살아가지요. 이런 때 일수록 죄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내가 살고자 하여. 그 단순한 문장이 모든 행동에 정당함을 얹어주지요. ... ... 당신이 정말 죄를 지었든 지었지 않든간에,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마녀라는 이름은 명분이 됐을 뿐. 당신이 죄를 짓기 아주 전부터 사실, 당신은 마녀였다. 줄곧 당신의 옆에서 봐왔으니 그가 모를리 없었는데. 탁한 눈빛에 어두운 그림자가 감돌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진실로 죄인이라 명명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겁니다.
(머뭇거리기야 했지만, 결국에 다시 손을 뻗어 당신의 뺨을 닦았다. 피와 만난 눈물방울이 옅게 희석되어 뺨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당신을 포기하란 말은 하지 마십시오. ... ... 정말로 그걸 바란다고 하더라도요.
이스피어 틸다:(피 묻은 손이 흐려진 시야를 치우매, 다만 그는 역겨운 향으로 인하여 지금 이 순간 감히 구원을 받기보다는… 당신과 함께 더욱 낮은 진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받는다. 하지만 차라리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그런 질문이 가슴을 아프게 두드리고 있었다. 차라리 당신을 꾀어낸 죄로 내가 강제로 그 남자의 손에 쥐어지게 된 것이라고, 결국엔 그 남편을 죽인 죄로 아들을 빼앗긴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감히 행복해지려 해서, 다시 이렇게 떨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신부님이 저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러니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다. 사랑했고, 또 지금도 사랑하나, 사랑을 품는다는 죄악을 통해 그렇게, 당신을 잃어버리게 되기라도 한다면. 어느덧 당신을 향하던 시선이 스스로 어둠에 잠긴다. 가둔다.)
그렇,지만. 제가, 제가 정말 마녀라면. 죄의 유무와 별개로, 그냥 제가, 그렇게 신부님이 원치 않은 길을 걷게 하고, 남편을, 그리고 아들을 죽게 만든 재앙이라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뿐인 삶이라면, 그렇게…. (청춘과 사랑, 젊음과 행복, 희망, 가정, 미래, 살아도 되는 삶, 그런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이스피어라는 사람에게 남은 것은 이제 당신 하나 뿐이었다. 아이작 딜라이트. 그가 과거에 지독히 사랑하고 말았던, 수 없이 몸을 맞대고 애정을 속삭이고 행복한 미래를 꿈꿨던.) ……이미 신부님이 저 때문에 불행해지셨듯이…. (사랑하는.)
그렇게 저를 떠나게 되시면 어떡하죠…. (그리고 그런 여자의 눈으로 바닥을 나뒹굴던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글자가 보인다. USE ME
.)
아이작 딜라이트:(
신부님이 저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언뜻 죄책감까지 내비치듯한 당신의 문장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활짝 휘어지듯 웃음지었다. 볼에 뛴 핏자국이 무색할 만큼이나, 순수하게.)
사랑에는 원래 이유가 없는 법입니다. (단순한 답이 또 다시 이어졌다. 계기도, 이유도 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지 않냐는듯 그에게 당장 이유를 요구한다면 당연하다 싶게 자신도 모른다. 라고 답할 것만 같았다. 당신에겐 그런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제가 당신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일은 없을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있는 걸까. 늘. 오히려 그런 태도가 불안감을 자극할 지경인데도. 잠시 침묵하던 그는 꾹 움켜쥐고 있는 당신의 한쪽 손을 끌어 쥐었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로 충분치 않으시다면. ... .
제가 당신의 이유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당신의 모든 불행, 절망. 당신이 겪는 일들에 대한 정당성. 내가 그 모든 것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원망할 사람이, 불안을 떠안아 희생되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 당신 또한 원망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면. 아니,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래야만 당신이 버틸 수 있고, 살 수 있노라면.)
내가 당신의 악마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나를 사용하라고. USE ME
. 당신의 칼은 다시 한 번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이스피어 틸다:(
나를 사용하세요. 마녀를 죽일 수 있도록! 여자가 한순간 충동에 휩쓸려 생각하고 만 것은 그것이었다. 이를테면 두 손으로 칼을 거꾸로 쥐어, 힘을 줘 배를 파고들게 만드는 것. 부정한 피로 신성한 성당의 대리석 바닥을 젖게 만들고, 그리하여 삿된 존재가 죽어 바스라져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게 만드는….)
(하지만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왜 나를 향해 웃지? 그렇게 행복하게, 불행하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보지? 손을 끌어쥐는 손길에 반항하는 것처럼 아니면 두려워하는 것처럼 팔에 힘을 주고 버틴 것도 같았다. 그러나 떨리는 팔에선 힘이 죄 빠져나가고, 그렇게 다시 마주한다. 듣는다. 듣고싶지 않아도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하여금 당신의 말을, 제안을,)
(이토록 역겹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위로를.)
…저 때문에 마을을 떠나야 했던 삶은 고독하지 않았나요? 당신을 잊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자녀를 낳고, 결국 스스로 신성한 가정을 망가뜨려버린 지독한 마녀를 바라볼 때면 어쩌면, 당신도, 당신도 날 죽이고 싶진 않았었나요? 정말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내가 당신을 홀린 악독한 여자라고 생각한 적이 정말… 없나요……? (그리고 다시금 어린애처럼,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울고 싶지 않은데, 침착하고 싶은데, 결국에는.)
(당신의 그 추악한 위로가 제 심장에 닿고 말아서. 사람들의 손가락질로 자라난 엉겅퀴를 해치고 사람들의 속닥거림으로 자라난 거대한 벽을 넘어 사람들의 원망이 향하는 이곳으로, 죽어야 한다는 욕망이 흘러내리는 자신에게까지 기어코. 입술을 짓씹었다.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에 생생한 빛이 감돌고야 말았다. 메이는 목을 가다듬어 떨리는 음성을, 욕구를 끄집어낸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면…! (불평어린 목소리를 듣기 싫다며 입을 틀어막던 남편 아래에서 그는 죄를 짓지 않았어도 죄인이었고 살아있어도 쥐죽은듯 살아야 했던 여인이었다.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 그것을 당신이 붙잡는다,)
(진창을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죽음에서 삶으로 해방되라고.)
만약, 정말 그렇다면……. 제게 약속해주실 수 있나요? (죽음이나 불행, 재앙으로 인해. 턱이 파르르 떨렸다.)
이번에는,
제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아이작 딜라이트:고독했습니다. 원망하고, 증오하고, 죽이고자 했지요. ...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언뜻, 그의 시선에 붉은 빛이 돌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이 오색으로 빛나는 창에 비춘 것인지, 혹은 그를 막고자하는 잭슨 신부의 마지막 의지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붉은 색도, 빛도, 전부 어둠에 좀먹혀갈 뿐.) 나를 괴롭게 한 것이 당신이라면, 나를 버티게 한 것 또한 당신일테니까요. (이젠 그 무엇도 그를 거스를수도, 막을수도 없다. 마침내 손에 넣었으므로. 이 순간이 경애스럽기라도 한듯 당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에 살며시 힘이 들어갔다. 그 손길은 아프지 않았지만, 당신이 손을 뺄 수 없을만큼 단단했다.)
내 마음은 '그 때'와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드러났다. 진정 그가 숭배한 것이 무엇인지. 그의 신이 누구인지.)
죽음이 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하더라도 당신의 곁일 것입니다.
(악마의 탄생.)
(이것 말고 이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스피어 틸다:(그런 당신을 바라본다, 본다, 또 본다.
지금 이 자리에 비로소 마녀 하나와, 악마 하나가 탄생하고 말았구나. 기어이 울음 위로 탄식을 닮은 웃음이 새어나왔나, 자괴감이며 자신을 향한 혐오가 뒤엉킨 숨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손을 빼지 않고, 다른 한 손으로 핏물로 더럽혀진 바닥을 짚은 그가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면 참으로 건조하게, 적막하게, 열기 품지 않으나 낯선 욕망을 가지고 그가 마른 입술을 당신의 입술 위로 겹쳤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느리게 떨어뜨린다. 끝내 울듯 웃음짓고 말았나.) 그렇다면,
안아주세요. (눈물이 떨어진다. 몸이 앞으로 기울다 못해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죽음이 우릴 찾지 못하도록……. (실상 기분과 그리 다르지 않을 진창, 우리는 언제까지 이곳을 뒹굴까.)
(아니, 하지만 이제 아무렴 상관 없는 일일까.)
(이젠 당신이 제 곁에 언제나 함께 있을 테니까…….)
머릿속에 메아리치던 목소리들은 이 순간을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아무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