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오지 않게 된 해리엇 비바체의 편지 직전에는 여러 불행을 암시하는 문장이 적혀있었고, 그렇게 공백기를 지나 보내면서도 이샤크는, 그러나 잘 지냈다. 아침이면 동네 주변을 뛰며 잠든 몸을 깨웠고, 개도 산책시켜주고, 경기 준비를 하고, 가끔은 다이애건 앨리로 나가 쇼핑도 하는-그런 일상을 지냈다.
그럼에도 길가에 이따금 피어있는 주홍색 꽃을 보면 속절없이 생각은 그 공백으로 흘러가, 이샤크 스페치오는 당신의 자취를 더듬었다. 넌 지금 어디 있지. 살아는 있나. 무슨 상황에 처했나….
시대는 점점 잔혹해져 같은 존재를 나눠 가르며 급을 매기고, 핍박하기에 이른다. 이샤크는 역행하는 사회의 실태가 예언자 일보 첫 장에 올라올 적마다 어머니의 묘를 찾았다. 목덜미가 미친 듯이 간지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가 불사조 기사단에 들어간 것은 당연했다. 사랑하는 당신께선 머글이셨고-, 이 사회는 그런 당신을 더럽다 이야기하며, 그 피가 섞인 자들을 배척하니까.
그러니 마법 사회에서의 모든 약자는 그의 어머니였다. 그렇게 어머니를 사랑하셨던 아버지가 지팡이를 들었고, 그를 따라 이샤크 스페치오도 지팡이를 들었다. 발푸르기스 기사단과의 접전 끝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어머니를 기억하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전투는 패배할 수 없다. 설령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쓸모를 최대한 다한 다음에서야 눈을 감을 것이다.
……어쨌건 그런 그에게 있어 해리엇 비바체를 묻는다면, 첫 시작은 익히 나눈 대화와 같다. '보호해야 할 머글본 마법사'였다.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학창 시절의 이샤크 스페치오는 호그와트 안에서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차별에 제 나름 반항했었던 적이 많았다. 주로 수단은 그의 주먹이었고, 대상은 차별을 일삼는 학생들이었다. 코피 한 번 터트려주면 다음부터 알아서 설설 기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가 그러고서도 징계를 받지 않거나 함은 그의 반쪽짜리 핏줄에 있었으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사실 저학년 시절에는 해리엇같은 머글본 학생, 특히나 겁에 질려 덜덜 떠는 모습을 곧잘 보이는 학생들을 타깃으로 삼는 학생들이 많았다. 해리엇은 아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샤크가 그런 학생들을 주먹으로 손질한 것은 꽤 여러 번 있었다.
"…호, 혹시 내가 머글본이라서… 동정하는 건 아니지?"
동정하는 거 아니야, 바보야. 너같은 놈들을 지켜야 나중에 엄마 얼굴이라도 떳떳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때만 해도 치기 어린 생각을 가지고 코웃음이나 쳤건만.
"도, 동정을 이상하게 보는것도… 시, 싫게 보는 것도 아냐. 오히려 도… 도와주는 거니깐 난 조,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뭐.
"내가, 좋다고 생각한 이,유는… 친구라서 도와준다고…생각해서야."
…….
"난, 난 싫어."
기실 그때의 이샤크는 스스로 '선행'이라 여겨왔던 행동들이, 솔직히 말해 부끄러워졌었다.
"머글본…이라서 도, 도와주는 거잖아. 친구라서가… 아, 아니잖아."
맞다. 이샤크가 도와주고자 했던 것은 '머글본'인 해리엇 비바체이지, 그냥 '해리엇 비바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그런 마음이 불쑥 솟았지만 이샤크는 그 마음을 발로 즈려밟았다.
그는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고자-어머니를 위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가 있었으니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선을 그었다. 한 마디로 진심을 감춰두었다. 진심을 내보이면 정이 들고 마니까. 친해지니까. 걸림돌이 되니까.
그리고 그런 이샤크 스페치오에게 용기 내어 진심을 보인 것이 해리엇 비바체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때에 생긴 흉터가 간지러웠다. 진심을 내보인 사람을 내칠만한 매정함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다른 학생이 널 보고 '그리핀도르가 정말 맞아?' 하며 놀려댔었던 것 같은데, 그 자식은 지금 어디 있냐.
누가 해리엇에게 용기가 없다 수군거렸나.
"너 머글본이라서 도와주려 했던 거 맞아. 너 같은 애들이 다른 놈들에게 안 좋은 눈초리 받고,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 열이 뻗친단 말이지. 그런데…… 너 나랑 친구 되고 싶냐?"
"그, 그… 나, 나름 7년을 같은 기… 기숙사에서 지냈는데…치, 친구… 하고 싶, 싶으면 안 되는 거, 걸까…. 내가, 친구… 하자고 해서… 시, 싫어…?"
싫지는 않은데,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엄청 묘해.
그렇게 이샤크는 해리엇과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해리엇은 돌연 실종되었고, 이샤크는 문득 해리엇이 떠오를 적마다 잔뜩 구겨져 돌아왔던 편지를 꺼내서 살펴보곤 했다. 어디 한 곳에서라도 무탈하길 기원하며.
* * *
이샤크는 불안한 양 한시도 쉬질 않고 지팡이를 만지고, 쓸고, 긁고, 또 두드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돌고 돌아 10년이 지난 다음 해리엇과 이샤크의 관계를 정의한다면, 5년간의 공백을 딛어 흐릿해졌던 글자를 다시 적어본다면 '친구'라는 단어를 적을 수 있었다.
기이한 안도감이 든다. 여즉 해리엇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고, 서로가 앞에 두고 있는 대업은 가시밭길이라, 오늘만 해도 당장 몇 명이 죽어나갈지 모른다. 이곳에 몸 담근 이상 우리 모두는 살인자였고, 적어도 이샤크는 그 죗값을 평생토록 업고 걸어가야겠으나…….
다시 한번 짚을 점이 있다면 이샤크는 해리엇을 미워한 적 없었다. 다만 걱정했고, 사정을 들은 지금은 분노했으며, 우선적으로 당신의 생존을 바란다. 이샤크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삐딱한 자세로 서 언짢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습관처럼 치켜든 고개에서 붉은 눈빛이 이내, 옅은 미소 위로 내리 꽂힌다.
그러면 이샤크 또한 곧 익숙하지 않은-희미한 미소를 그려본다. 빈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서 오늘, 다시 편지 위로 글이 적힌다.
"시간을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니 더는 후회하지 마. 이미 일어난 일이고, 넌 괴로웠고, 난 그럼에도 잘 지냈으니까."
흉터는 더 가렵지 않다. 이 자리에 선 모두가 동등한 마법사였으니. 그가 시원하게 입꼬리 한쪽을 끌어올려 웃었다.
"그래, 약속해. 네 손 아니면 안 죽을게. …그러니까 너도 죽지 마라."
살아남자. 살아가자. 단순하고도 추상적인 단어는 때때로 극한의 상황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가졌다. 이로써 그는 더 마음을 지켜내고 지팡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밤이 어두워진다. 적막은 찾아들 것이고, 안개가 내리깔리기 시작할 것이며, 오늘도 누군가는 죽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살아는 보겠다고.
그가 해리엇에게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 아이고… 심리묘사가 길어져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한 번쯤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았는데 그게 오늘이 되네요... 항상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리엇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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