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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커뮤니티

[리리아] 소문

by 여우비야 2022. 2. 5.

 

 

 "그게 대체 인형과 뭐와 다를까... 웃으라면 웃고, 입맛에 맞는 대로 굴라면 구는 그 시한부 인생이요."

 "내가 자주 말하잖니. 넌 분명히 자격이 있다고."

 "이곳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보험은 우리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겠죠. 물론 순수한 이들은 이해하기 힘드려나."

 "역시 별 거 아닌 상처엔 그냥 밴드 붙이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아? 그것까지 신경쓰기엔…… 세상엔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래도 너무 염려스럽다면... 이렇게 작은 꽃을 그려보렴. 리리아."

 

 "서, 선배. ……소문 들으셨어요?"

 "아. ... 그거? 들었지. 그게 왜?"

 

 "오늘 내가 여러분과 다루어 볼 강연 주제는.... 마법 사회의 머글 멸시, 그리고 그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 * *

 

 

 '공평한 교육'이라는 모토를 앞장세운 호그와트에도 보이지 않는 서열은 존재했다. 색으로 구분할 수 없는 혈통을 따라 나뉘어진 계급에서 리리아 터너는 응당 최하위 계층을 차지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리리아는, 아플만치 고개를 젖혀야 칠판을 바라볼 수 있던 현실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누군가 그를 비웃으며 지나가도, 모른 척 어깨를 밀친대도 빗자루를 사용하지 못하는 그의 등 뒤로 멸시어린 눈빛을 던진대도. 모든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리리아는 머글 태생의 마법사였으니까, 최근 들어 후원이 끊긴-보증이 불확실한 미성년자였으니까, 또 모난 부분을 똘똘 뭉친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나 리리아는 사회가 쉽게 취급하길 원하는 인형이 아닌 사람이었던지라, 마땅한 분노를 지닌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네들의 말처럼 순수한 혈통이 더욱 우월한가? 어떤 근거로? 그 고귀한 피의 가치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지?"

 

 모자는 그가 당연히 사람이라 가지는 용기가 있어 그를 그리핀도르로 배정했다. 온몸을 터트릴듯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때문에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설령 심장 소리가 방해하지 않았더라도 실행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속으로 제 살결을 갈라 그들에게 속내를 보여주는 생각을 했다.

 보라, 새빨간 피다.

 당신들과 같은.

 

 확실한 점을 짚고 넘어가자면 호그와트에서 받는 때때로의 멸시며 불합리함을 리리아 터너 또한 좋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힘이 없고 권력이 없어서, 사회가 요구하는 '적절한' 핏줄을 타고나지 못한 까닭에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 뿐.

 

 "……그러고보면, 선배는 꼭 연기자같아요. 배우 아세요? 예전에 부, 부모님과 함께 연극이란 걸 보러 갔는데, 거기 나왔던 남자 배우가……."

 "내가. ... ... 뭐같다고? ... 재미있는 소리구나. 리리아, 근데. ... 그거 무슨 뜻이야?"

 

 정말 알아차리지 못해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었다. 그늘진 얼굴을 정말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에는 죄가 없다 하지 않던가. 리리아는 게일을, 그리고 자신이 쌓은 인연을 믿고 싶었다. 제가 마음을 내어준 것만큼 상대방 방도 진심을 내어주길 바랐다. 아주 적은 양이라도 좋았다. 제 노력과 믿음이 아예 배반당하길 원하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요즘 그 두 사람이 꽤 붙어다니지 않아? 있잖아, 키 큰 학생회장 선배랑…… 그리핀도르의 토끼 닮은 머글본."
 "아, 그 운 없는 계집애? 하핫! 진짜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
 "……누가 그러는데, 걔 후원도 끊겼다면서." 
 "정말? 이러다 쫒겨나는 거 아냐?"
 "혹시 모르지. 켄드릭스 선배의 졸업이 얼마 안 남았던데. 그 선배가 새로운 후원자로……"

 

 믿고 싶다, 상처받기 싫다, 기대하고 싶다,

 가슴 속에 응어리 진 울분을 터트리고 싶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쥐어뜯는 채 오늘도 밤이 지날 것이다. 소문은 더욱 힘을 잃어 달리기를 멈추겠지.

 머글본 마법사인 리리아 터너는 화낼 수 없다. 가진 것은 없으나 떨어질 곳은 사방에 수두룩했다. 녹안의 뱀이 속살거리던 음성을 떠올린다. 웃음으로 스스로를 가리고, 그 벌벌 떨어대는 가련한 심장으로도 이 세계에 남고 싶으면, 그래야죠. ……안 그래요? 맞아, 나는 아직 이곳에 남아야 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순수한 이들은 간절하지 않은 자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넘기면 된다. 눈을 감는 것은 쉽다. 모른 척 하는 것도.

 분노가 들끓는 것도 현실을 곱씹다보면 체념에 가라앉았다. 숨 쉬기가 다소 불편해질 뿐.  그러니 오늘도 리리아는 눈을 감았다. 몸을 웅크렸다, 스스로를 속인다, 멸시와 불합리에서 눈을 돌려,

 

 종국에 자신마저도 속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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