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하인드위거:
rolling 3d6*5
=
45
용사의 사명은 사악한 마왕을 무찌르는 것이었죠.
새가 노래하듯 지저귀고 하늘은 푸른 물감이 번진 듯이 말갛게 파랗습니다.
당신은 호화로운 용사의 방 안에서 기분 좋게 몸을 일으킵니다.
비록 무시무시한 모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지만요.
뭐든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좋은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성년이 되는 오늘, 당신은 마왕성으로 떠나야 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겠지요.
축복과 기대를 함께 받으며, 의무와 권리를 함께 지면서,
당신을 보살피고 가르쳐주는 황성의 사람들과 신전의 사제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세상은
마왕, 헤르디
의 마력에 지배당해 당장 제국의 변방만 나서도 그가 부리는 괴수들로 우글거리고,
세계는 그 마력에 맞설 수 있는 성력을 가진 단 한 사람,
당신
이 꼭 필요하다고.
당신은 성년이 되는 날, 사악한 마왕을 마주해야 한다고.
그 마왕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고 돌아온다면, 세계는 당신으로 하여금 비로소 완전한 평화를 되찾을 거라고요.
어릴 적에는 당신에게만 주어지는 그 막중한 의무가 두려웠던 적도 있었지만,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 길러졌습니다.
몸을 씻고 정복을 갖춰 입고 나면 누군가가 문을 노크합니다.
열어보니 시종이 머리를 조아리며 당신에게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시종: 용사님.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출정하실 시간입니다.
니나 하인드위거:(끄으으 소리내며 기지개를 편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발끝을 먼저 땅에 디딘다. 쭉 펴진 몸으로 무기를 점검하고 망토 끝을 탁탁 턴다.) 황제폐하께 가면 되나요?
시종: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예. 황제 폐하를 알현하신 뒤, 바로 출정하실 텝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처소에서 황성 내에 있는 작은 신전을 거쳐야 하지요.
이제 마왕을 무찌르고 돌아오기 전까지는 다시 보지 못할 평화로운 풍경들을 새삼스레 눈에 담습니다. 새하얀 햇볕이 신전의 기둥 사이사이로 비칩니다.
화려한 출정식이 거행되는 날, 사제들은 분주합니다.
십중팔구 식에서 당신을 축복하기 위함일 겁니다. 벅적한 목소리들 가운데,
니나 하인드위거: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흐트러진 사제복을 가지런히 하며 그들이 중얼이듯, 혹은 속삭이듯.
“▒▒▒▒ ▒▒▒▒에 불과하시잖아. 전부 ▒▒▒ 건데.”
낮게 소리 죽여 말하던 그들이 당신을 발견하고서 얼른 고개 숙입니다.
감히 세상을 구할 운명을 지고 태어난 용사를 동정하다뇨!
니나 하인드위거:(작게 소리내어 웃는다. 세상을 구할 운명! 얼마나 로맨틱한가. 운명은 제가 꿈꾸는 같잖은 로맨스에 가장 맞닿아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나긴 운명. 자신의 삶이 운명의 위에서 조형된 거라면 기꺼이 뛰어들 자신이 있었다. 결말이 궁금한 이야기가 제 발끝에서 펼쳐질 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저들을 향해 안 좋은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더불어 이유 역시도.) 좋은 아침이죠? 황제 폐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요? (검을 잘각거리며 그들을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얼마든지 가엾게 여기라지. 저들은, 어차피 제가 구해낼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될 터다. 작고도 작은, 운명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로서.)
사제: (이전의 시종처럼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좋은, 말씀을. ……해주실 겁니다. 어서 가시죠. 모든 국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구해낼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될 자들은, 모순되게도 당신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합니다.
당신은 사지로 내몰리는 것도 아니고,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오늘따라 유난히 볕이 눈부신 대전으로 나아갑니다.
기사단이 열을 지어 각 잡힌 채 서 있고, 옥좌 위에 위엄 있게 앉아있는 존경스런 황제께서 당신을 보고 몸을 일으킵니다.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옥좌 위에서 친히 내려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
심리학
기준치: |
50/25/10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황제를 본다. 황제의 속마음같은 건 궁금하지 않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당신에게 다가오는 황제는, 누가 봐도 세상의 구세주를 아끼는 군주의 모습입니다.
당신의 손을 간절하게 맞잡은 황제는, "부디 세상을 꼭 구해주시오." 라며 고개를 살짝 숙입니다.
막중한 기대와 염원 속에, 당신은 오랫동안 하지 못할 인사를 그에게 올립니다.
기사단이 일제히 당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 출정식이 거행됩니다.
당신이 걸음하는 곳마다 평화의 기원을 담은 융단이 깔리고, 아이들이 색색깔의 꽃을 헌화하고.
이윽고 먼 여정을 떠나는 당신. 햇살이 축복처럼 눈부십니다.
여기까지는 평화롭게 제국의 사람들에게 환대받으며 왔지만, 이제부터는 다릅니다.
국경에는 마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했으니까요. 과연 저 멀리 불길한 어두운 숲이 보이고, 인적은 점점 드물어집니다.
당신은 검을 빼듭니다. 괜찮습니다. 몇 번이고 수련했으니까요.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시작부터 겁먹어선 안 되는 일이지요. 당신은 용사잖아요. 이 세계의 구세주!
국경에 걸친 마지막 가난한 마을을 뒤로 하고,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나무 그늘은 빽빽하고 바람 소리는 고요합니다.
순간,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가 빛납니다.
9마리의 마물이 당신에게 급작스레 달려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85 |
판정결과: |
실패 |
1
니나 - 마물 1 - 니나 - 마물 2의 순으로 진행되며, 니나의 공격이 성공하면 공격에 당한 마물의 숫자를 랜덤으로 표기합니다.
니나 하인드위거:(검을 손 안에서 가볍게 휘두르고 자세를 잡는다.) 용사 데뷔네요~ (그대로 마물의 급소를 노려 검을 찌른다.)
근접전(도검)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3마리의 마물들이 단번에 당신의 칼에 찔려 죽어나갑니다.
급작스레 동료를 잃은 늑대 형상의 마물들이 으르렁거립니다.
그 중 한 마리가 당신에게 달려들어 이빨을 쩍 벌리네요.
마물:
날카로운 이빨
기준치: |
65/32/13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1 |
니나 하인드위거:(몸을 휘어 이빨을 피하려 시도한다.)
니나,
회피
혹은
민첩
판정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4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하지만 당신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몸을 휘어 이빨을 피해냅니다.
허공만을 짓씹은 마물이 당황한 눈치로 당신을 살핍니다.
니나 하인드위거:(다시 가볍게 자세를 잡는다. 날카로운 검끝으로 마물의 급소를 한 번 더. 노리고 내지른다.)
근접전(도검)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은 시력이 나쁜 편이었습니다만, 황궁의 사람들이 만들어준 안경을 착용할 때면 평범한 사람들보다도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었죠.
과감한 칼 끝에
4마리의 마물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용사의 발 아래에는 붉은 피가 융단처럼 깔렸다. 그런 도입이 좋겠어요. 그렇죠?
날카로운 발톱
기준치: |
65/32/13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1 |
애시당초 이성이 없는 마물들은 당신을 제대로 공격하지도 못합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가죽과 피로 얼룩진 길은요. (황홀한 듯 볼을 감싸고 다시 자세를 잡아 다시 검으로 마물들의 급소를 찌른다.)
근접전(도검)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리고 그 검날에, 남은 늑대 형태의 마물들이 숨이 끊어지고 맙니다.
검날 끝으로
검은색
피가 길을 이루다 둥그렇게 모여 뚝 뚝 떨어집니다.
니나 하인드위거:(검을 내려 바닥을 향해 죽 긋는다. 그리고 그어지 그 선 위에 한 발 한 발 내딛어 걷는다.) 아무렴요. 이거 봐요. 이렇게나...
과연 당신이 앞으로 만나게 될 마왕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당신의 뒷편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어쩐지 황성에서 보았던 사제들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제들이라면 성력에 일가견이 있을 텝니다. 마물들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데에 용사인 당신만큼이나 힘쓰고 있는 이들이라 했으니까요.
이들은 용사인 당신을 알아보는 걸까요? 도와주러 온 걸까요?
니나 하인드위거:(고개만 돌려 눈을 깜박이며 사제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응시한다.)
제게 할말이라도 있으세요?
이상한 사제: 그럼요, 알다마다요. (웃는 소리를 흘린다.)
바보같은 제국의 충견이 아니십니까?
조롱에 가까운 어휘가 고막에 꽂힙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궁정의 하얀 사제복과 달리 새카만 사제복을 입고 있는,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이 광인처럼 낄낄 웃어댑니다.
그 검은색을 보아하니, 방금까지 죽인 마물들의 피 색이 떠오릅니다.
이상한 사제: 마왕을 죽이러 가는 길이십니까?
니나 하인드위거:네에. (말꼬리를 길게 늘여 답하면서도 몸을 완전히 돌려 그들을 마주하지는 않는다. 그야, 거기엔 내가 그어둔
가죽과 피로 얼룩진 길이 없는걸.) 왜요?
이상한 사제: 당신은 참 이상합니다.
마왕 또한요! (무슨 의미지? 그는 분명히 당신을 조롱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당신이 그 조롱에 반응하지 않을 것을 꿰뚫고 있었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니나 하인드위거:절 알아요? (다시 한 번 더 같은 물음을 던지며 고개만 튼 채로 눈을 깜박인다. 죽음이라. 정해진 운명의 끝은 분명 죽음이거나 혹은 예견된 승리일 것이다. 그래, 결말에는 죽음도 존재했다. 두렵냐고?) 왜 두려워야 해요? 운명으로 쓰여지는 이야기에서 죽음은 그저 작은 엔딩일 뿐이랍니다~ (배시시 웃는다.) 두려우신가요, 죽음이~?
이상한 사제: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가엾고 어리석게 여기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먼 훗날에야 알게 될진 몰라도요. 중얼거리며, 그는 멈추지 않고 웃었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다 두려워하죠,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하신 '그분들' 앞에 다만 하찮은 존재들일 뿐이니까요.
니나 하인드위거:가엾게 여겨도 좋아요. 당신들이 여기는 마음은 제가 가는 길 위에 놓이지 않을 테니까요. 놓이면... (발끝을 뻗어 나아갈 길을 죽 긋는다. 이제 시선은 그들을 응시하지도 않는다. 신발코를 보며 키득키득 소리내어 웃는다. 놓이면, 이렇게 치워버리면 그만이잖아요. 말을 삼키고) 그분들은 누군데요?
이상한 사제: (섬뜩하게 느껴질 법한 상황에서 당신도, 그리고 광인처럼 실실 웃고만 있는 사제를 위시한 다른 자들도 그런 분위기를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질문을 듣고선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올려보였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요. 하지만, 우리보다야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마왕을 보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그는 당신을 기다리느라 심심함에 몸부림 치고 있을 텐데요. (키득거림.)
니나 하인드위거:(더 대꾸하지 않는다. 애초에 시선이 떠났을 때부터 관심은 한 톨도 흐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모두 귀여워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저를 가엾어하는 그 마음들도 얼마나 갸륵한가요. 생각은 말이 되어 흐르지 않는다. 키득거리는 소리에 덩달아 눈을 접어 웃고서 손을 팔락팔락 흔든다. 작은 이별의 인사를 일방적으로 건넨 후 걸음을 옮긴다.)
등 뒤로부터 나지막한 그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덧붙여서 "대륙의 끝으로 가시면 비로소 알게 되겠지요." 라는 말과 함께요.
자박자박 멀어져가는 발자국. 아무 일 없던 듯 사라집니다.
기분 탓일까요… 눈을 돌리면 숲속의 어둠은 한 겹 더 짙어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왕에게 가는 길을 필사의 각오로 막기라도 하듯 괴수들은 발길을 뗄 때마다 달려들었지만, 당신은 어렵사리, 그러나 용맹하게 그들을 처치하고 빛나는 핏물로 그득한 비린 명예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습니다.
대륙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땅은 척박해지고, 바람은 거세지고, 발걸음을 떼기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날은 결국에 다가오고야 맙니다.
눈을 들면, 저 멀리 희끗하니 보이는 검은 성채.
저것이, 마왕이 산다는 세계의 끝 죽음의 성.
숨을 삼킵니다.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지독한 중력에 짓눌리는 듯한 힘.
세상의 끝에 선다는 것은 이토록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던 걸까요.
뭇 사람들이라면 두려움이며 경험해본 적 없는 죽음이, 저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경한 공포에 주저앉고 말았을 텝니다.
니나 하인드위거:(발끝을 들었다가 다시 내린다. 숨을 크게 들이키고 웃는다.) 드디어 보이네요~ (눈썹 즈음까지 손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마왕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비록 당신 스스로 생각하는 '용사'는 어떨지 몰라도요.
문득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면,
9마리의 마물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제자리에서 가볍게 발을 구르고 그대로 돌진한다. 역시 패턴은 같다. 마물의 급소를 노려, 가벼운 검을 날카롭게 베어 넘긴다.)
근접전(도검)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4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마물:
날카로운 발톱
기준치: |
75/37/15 |
굴림: |
5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3 |
니나 하인드위거:(몸을 휘어 부드럽게 피한다.)
그러나 마왕성에 가까워지니, 마물들의 공격도 한층 예리해집니다.
니나 하인드위거: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마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당신의 어깨를 할퀴고 지나갑니다.
거의 최초로, 당신의 피가 공중에 흩뿌려집니다.
그러면 문득 건조한 바람이 당신을 휩쓸고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아릿한 고통이 올라온다. 어깨를 두어번 돌리고서 다시 한 번 더 칼날을 예리하게 겨눈다. 그리고, 관통한다.)
근접전(도검)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마물:
살기 가득한 공격
기준치: |
75/37/15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3 |
니나 하인드위거:(몸을 숙여 마물의 공격을 피한다.)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슬아슬하게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격이,
조금만 틀어졌다면 당신의 목을 꿰뚫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담긴 괴물의 눈이.
니나 하인드위거:(황홀한 듯 웃는다. 어깨의 고통은 용사의 증명이며, 정의를 속삭인다.
니나 하인드위거, 네가 정의가 될거야. 그런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란다. 들은 적 있던가? 확실치는 않다. 다만, 그 말이 반복될 수록 고통은 희열이 될 뿐이다.)
당신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용사로 자리합니다.
그러나 전투가 지속되면 지속될 수록 묘하게 어지러워지는 눈 앞이 있었던가요.
피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마침내 당신이 마물들을 다 쓰러뜨린 그 때였나요.
전부 물리친 줄 알았는데. 이제 끝이 보일 것 같았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박쥐처럼 생긴 마물들이 다시 몰아칩니다.
아까보다 더 버겁게 느껴지는 건 지친 탓의 착각일까요?
니나 하인드위거:(용사란 무엇인가.
정의이며, 세상을 구원할 빛이며, 동시에 이름을 길이 남길 운명이다. 나아가는 길은 쓰러트린 마물의 가죽과 피로 질척하고 드리우는 환한 빛 아래에 썩어가는 죽음들이 가득할 지언정. 적어도 너절한 길 위에 포기는 없을 것이다.
용사 니나 하인드위거의 길 위라면.) 하하. (가볍게 칼을 고쳐쥐고 마물들을 마주한다.)
비록 당신의 곁을 지키는 건 비린내와 사체의 탑이라 할지언정!
당신을 그렇게 키워낸 건 모든, 제국의 생명이 아니었던가요.
그리고 이곳에서부턴, 사실 실력보다는 행운이라 불리우는 확률의 신이 당신을 도와주어야 하겠죠.
니나 하인드위거:
운
기준치: |
45/22/9 |
굴림: |
56 |
판정결과: |
실패 |
니나 하인드위거:
운
기준치: |
45/22/9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니나 하인드위거:
운
기준치: |
45/22/9 |
굴림: |
3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은 박쥐 마물을 상대하는 초반에 그만 목덜미를 크게 물려버리고 말아, 그 뒤로 머리를 찌르듯한 이명과 함께 검을 휘둘러야만 했습니다.
코가 마비될 정도의 비린 향과, 검을 쥔 손바닥은 끈적거릴 지경이었고, 또,
당신이 결국 마왕성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결국 마왕을 마주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핏물이 묻어도 티 나지 않을 것 같은 붉은 망토.
애초에 마왕은 머리카락이나 눈이나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새까맸습니다.
피투성이인 당신을 앞에 두고, 검을 빼들었습니다.
(눈을 감았다 떴다.)
뭐야?
헤르디 비체덴타:(그는 태연하게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당신은 그런 꼴로 내 앞에 올 생각을 해?
용사라며.
니나 하인드위거:제 꼴이 왜요? (제자리에서 한 바퀴 토다닥 돌아본다.) 용사답지 않은가요?
…….
엉망진창이잖아. (뭐가?)
그래서 나랑 싸울 수는 있구?
니나 하인드위거:싸울 수는 있어요~ 그야... 마물들이 엄청 달려들었는걸요. 마물들을 부릴 줄 아시나요? (웃으며 볼에 튀었을 지도 모를 피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는다. 안경을 피묻은 손으로 슥 올리고)
헤르디 비체덴타:왜애, 명색이 마왕이잖아? (하지만, 그는 당신을 앞에 두고서도 그리 싸우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당신이 어지간히 엉망진창인 상태라 그런걸까? 하긴, 몸에 구멍이 좀 나 있는 편이긴 했다.) 그래도 이게 말이지이,
제국의 커다란 이벤트잖아? 용사가 저런 상태에서 싸웠다간,
….
분명 내가 쉽게 이겨버릴 텐데.
니나 하인드위거:그러면~ (마왕성을 한 번 둘러본다. 용사와 마왕이 싸우는 건 제국의 번영을 위하여, 선과 악의 극렬한 대립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싸우고 싶어하는 기색이 없고, 이토록 피로한 몸이라면.) 손님 대접해주시려고요? 방을 내어주시고, 씻을 자리와 갈아입을 옷을 주시고... 무기 손질할 도구까지 제공해주는 그런 거요~
헤르디 비체덴타:(꽤 정갈하게 차려입은 모습과는 달리, 그는 상당히 교양없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바로 당신을 앞에 두고서도 당신에게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빈 방이야 많지. 씻을 곳도 있겠고, 갈아입을 옷은, 모르겠네에. 무기 손질은 필요 해?
피가 말라붙어도 날 찔러 죽이는 데엔 무리일 거라 생각되지 않는데.
(그리고 그는, 마왕은.)
(아주 예상 외의 몸짓을 보였다.)
따라와.
그는 당신에게 턱짓하며, 당장 몸을 돌립니다.
그러니까 칼로 저 심장을 꿰뚫으려면 지금이 적기일 텐데요.
니나 하인드위거:(네 말에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고 경쾌한 발걸음을 옮긴다. 후다닥 달려가 네 곁에 서서 네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안경을 올리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타고난 운명으로, 제 의지로,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것들을 사랑하여 용사를 자처했으나 동시에 지독히 외로웠던 까닭이다. 마왕이라고 해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 마물들과도 말이 통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용케 내뱉지 않은 채로 네 곁에서 발걸음을 맞춰 걷는다.) 마왕은 이름이 뭐예요? 전 니나 하인드 위거랍니다~ 어디로 안내해줄 생각이신가요?
죽음을 닮은 자와 죽음과 가까운 핏물로 흠뻑 젖은 자가 나란히 마왕성의 입구를 벗어나, 그 내부를 걸어갑니다.
바깥은 황량한 대지일 뿐이었는데 마왕성 안으로 들어오니, 내부는 하얗게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하얀 것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죠.
높게 솟은 성채의 뾰족한 지붕은 마법처럼 투명하여 눈 안에서 붉은 햇살로 반짝거리고, 성 안은 마치 거대한 온실 같습니다.
여름 햇볕 안에 들어와 있는 마냥 따스하고 안온했습니다.
가운데가 뻥 뚫려 난간에서 홀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중앙 홀은 그 가운데 꽃마저 드문드문 화려하게 피어 있습니다.
몸 곳곳이 욱신거리지만 않았더라면 더 괜찮았을 텐데 말이에요.
니나 하인드위거:저 어깨가 너무 아파요, 마왕~ (칭얼칭얼)
헤르디 비체덴타:(그는 당신의 말을 듣는듯 무시했고, 무시하는듯 듣고 있었다. 저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시선은 일단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축에 속하긴 했지만.) 내 이름, 알고 있잖아? 이번 용사는 특히나 멍청하네에. 몸 곳곳도 다쳐오구 말야~. (그는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고 걸었다. 그림자처럼.)
니나 하인드위거:하지만, 직접 듣고 싶은걸요. 만난 건 처음이지만 우리는... 어차피 만날
운명이었으니까요. (조잘대며 네 곁에서 토닥토닥 소리내며 걸었다. 소리나지 않는 걸음 위에, 마치 혼자인 것처럼 발소리가 요란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아주 험난했어요~ 다시 소개해줘요. 네?
헤르디 비체덴타:(그의 신발 코가 살짝 튀어나온 바닥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탁 하며 아주 자그마한 소리가 울렸지만, 그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 걸어갔다.)
무슨 운명? 뭐, 마왕과 용사가 만나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한다느은? (용사의 발걸음은 점점 옅어지나 확실히 존재하는 핏자국들을 남기는데, 마왕의 발걸음은 그림자조차 남지 않았다. 그가 이 마왕성 안에서 유일한 그늘같은 존재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하물며 숨소리조차 머금고 들려주질 않는데.)
헤르디. (그럼에도 그는 입술을 열었다.) 마왕, 헤르디 비체덴타아.
니나 하인드위거: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해요, 헤르디도 차암. (말끝에 콧소리가 섞여든다. 웃는 얼굴로, 다치지 않은 팔로 네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꼭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혹은... ...처럼.) 그보다는 조금 더 로맨틱한 거죠. 어찌 되었든, 결국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요. 헤르디도 절 니나라고 불러요. 그래도 되는 사이잖아요, 그쵸? 보여줄 방은 어때요? 제게 어울리나요?
헤르디 비체덴타:(그렇담 무슨 운명인 건데? 라고 말하기 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제 어깨에 둘러오는 팔의 무게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눈썹을 까딱이고선 당신의 어깨를 무심하게 붙잡아 밀쳤다. 당신에게 관심 없어하면서 또 승부는 몸이 나아질 후로 미루자 하고, 방을 안내해주고, 그러면서 다친 몸을 망설임 없이 밀쳐내고. 종 잡을 수 없는 자였다. 혹은 이미 미친 사람이었다거나.) 그래도 되는 사이는 아니지이. 당신은 뭘갈 크게 착각하구 있는 것 같아. (밀쳐진 당신을 확실하게 내려다보던 헤르디는 순간 무엇이라도 떠오른 사람처럼 미간을 살며시 좁혔지만, 표정을 풀곤 어느새 다다른 문 앞의 문고리를 붙잡아 당겼다. 자신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옆으로 비켜선 채 턱짓했다.) 이번 대의 용사는 미쳤다고들 많이 이야기 하더라구. 어떻게 생각행? (그리고 그제서야, 그가 눈꼬리를 접어 환하게 웃음지었다. 무슨 이유로 그러하는진, 알 수 없었지만.)
니나 하인드위거:그래도 되는 사이는 뭔데요? (눈을 댕그랗게 뜨고 깜박인다.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두어번 갸웃할 때마다 곱게 땋아내린 머리카락이 풀썩거렸다. 이번 대, 그 전에도 그 전전에도 용사는 끊임없이 너와 대치했을 것이다. 일부러 그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용사는 마왕과 반드시 대치해야 하고 승리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제게 마왕과의 예견된 전투는 끝을 말하는 동시에 시작처럼 느껴졌다. 마왕은 용사를 기다렸을 거고, 용사는 마왕을 만나기 위해 기나긴 길을 걸어갔겠지. 그게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 있을까. 방을 등진 채 돌아서 너를 마주보았다. 동그란 눈이 휘어져 웃음을 그린다.) 헤르디 생각은 어떤데요? 새롭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가 헤르디에게 색다름을 주는 첫번째 사람이었으면 해요. 사실 헤르디도 절 기다렸죠? 그래서 안내해주고, 절 위한 방을 내어주는 거 아니에요? (두 손을 모아 교차해 쥐고서 행복한 듯 아랫 입술을 베어물어 웃는다.) 아니라고 하지 말아요. 애써 부정할 필요 없다는 얘기예요.
헤르디 비체덴타:(그래도 되는 사이? 적어도 용사는 아니고, 마왕은 또 아닌 사이겠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깨를 혼자 으쓱거렸는데, 그 사이로 드는 생각이란. 아. 뭐라 정확히 말하긴 어려웠겠지만 '실망'과 비슷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는 꽤 긴 침묵을 유지했다. 당신이 마왕과 용사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든, 그러다 그는 별안간 뜬금 없는 물음을 건넸다.)
용사. 너는 나를 통해 외로움을 채우고 싶은 거야? (다만 그는, 당신이 숱하게 받아왔을,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지는 않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당신과 제 사이에, 일종의 벽을 치듯 서 있었다. 두꺼운 선이 깔려 있었다. 그것에서 기인된 얼굴이겠지.) 당신은 나한테 죽을 거야. 알고는 있어?
니나 하인드위거:용사라고 부르지 말아요~ 니나래도. (둥글게 휘어지는 말끝은 용사와 마왕 사이의 대화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네가 긋는 선은 그림자와도 같아 깊고도 짙게 드리웠다. 넘어서려 발을 디디고, 네게 닿고자 손을 뻗으면 그마저도 음영질 것처럼 하염없이 드넓은. 허나, 니나는 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피에 절어 무딘 칼날 끝을 지닌 용사도
빛이라, 어둠을 끝낼 작은 힘이 있었던 까닭에. 그러니, 네 선도 언젠가는 제 발치에서 끝을 보일 거라는.) 알아요. (고개를 끄덕이자 콧대를 타고 안경이 흘러내렸다. 자연스레 올리고서 안경알 너머로 너를 응시한다.) 알고 있어요, 헤르디. 제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을 거고,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를 죽여야만 하겠죠. 그게 운명이잖아요. 하지만, 서로 죽일 운명이라고 해서 수다도 떨지 말라는 소리는 없었어요. 안 그래요? (말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빨리, 그러니까 도다다 튀어나왔다. 말끝에 뿌듯한 모습으로 웃는다.) 얼마든지 죽여요. 싸워요. 칼을 겨누고, 서로의 피를 탐해요. 하지만... 헤르디는 제 엉망인 상태를 봤고, 충분히 꿰뚫을 수 있었으면서 안 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죠. 그러니 우리는 지금 암묵적 휴전인 거예요. 즐겨봐요. 어때요?
헤르디 비체덴타:요옹사아. (그리고 그는 당신이 그러하듯 제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 생각해 보라. 피에 절어 무딘 칼날 끝을 지닌 용사도 빛이라면, 피 한방울 묻지 않고서도 멀끔히 존재하는 마왕은 그림자다. 그리고 그림자는, 어둠은. 빛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존재하듯 그 또한 어딘가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든지 죽이고, 싸우고, 칼을 겨누고, 피를 탐해? (다만 그는 그 말에 입꼬리를 느슨히 끌어당겼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해서 당신을 살려주었나, 어떤 연유로 휴전 기간을 두었나.) 그게 당신 생각이야?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휴전은 내일까지야. 내일, 해가 떠올라 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올 때…… 동시에 검을 들도록 하지. 어때?
니나 하인드위거:조금 더 유예기간을 두는 건 어때요? 전 헤르디를 만나서 좋은데. 헤르디도 그렇잖아요. 외롭지 않았어요?
헤르디 비체덴타:건조하단 건 항상 느끼곤 있지. 이곳은 공기가 꽤 텁텁해.
니나 하인드위거:그것도 외로움의 다른 면일 수 있어요. 외로움을 몰라요, 헤르디?
헤르디 비체덴타:그건 모르겠는데, 궁금한 건 있어.
헤르디 비체덴타:근데 그걸 당신에게 물어도, 답해줄 수 있을 것 같지이이인. (말 끝 흐리기.)
니나 하인드위거:에이, 왜요~ 한 번 물어봐요. 네?
헤르디 비체덴타:내일. 그렇담 내일 물어보지, 뭐. (하고선, 당신의 엉덩이를 뻥~! 차서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씻고, 뭐 하구, 뭐 하구우~ 다 하면 1층의 홀로 내려와서 다이닝 룸으로 와아아. 그럼 이만!
(그리고 쇽 사라졌다.)
마왕은 무정하게 당신의 엉덩이를 뻥~ 차버리고 문을 닫습니다.
사라지는 발걸음 소리는, 이 역시 들리지 않네요.
그렇게 홀로 남은 당신이 방 안을 둘러보면 천장은 희고 눈부신 빛으로 일렁입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일렁거리는 빛을 손 틈 새로 구경하며 소리내어 웃는다.)
테이블, 침대, 거울, 창문, 문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아차차, 욕실도 있네요. 먼저 씻고 오는 것도 좋겠지요.
니나 하인드위거:(욕실 가서 슉슉샥샥 씻으면서 둘러볼래요)
황성에서만큼 따스한 물로 씻을 순 없었지만, 차갑지는 않은 물이 몸 위로 쏟아질 때마다 붉은색은 옅게 물 안으로 풀립니다.
생각보다 상처가 많네요. 하지만 하루 정도 요양한다면 내일은 썩 괜찮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 찰박찰박)
슉슉쌱쌱 씻고 나와서, 당신은 테이블 위로 보이던 낡은 구급상자를 통해 상처를 치료합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아파서 호호 불면서 치료함)
테이블, 침대, 거울, 창문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나는... 가운을 입고 있나?! 아니면 잠옷?)
니나 하인드위거:(가운입고 슝 테이블 보러 가요)
정갈한 원형의 나무 테이블입니다. 어쩐지 사용감이 좀 있습니다.
이 위에 낡은 구급상자가 놓여져 있었고, 또.
반쯤 비워져있는 잉크 병과 펜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잘 살펴보면, 까만 잉크는 오래되어 병 속에서 굳어 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네요.
니나 하인드위거:이건 왜 비워져있을까요~? (잉크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밑면도 볼래요)
안경을 낀 당신은, 잉크 뚜껑 겉면에 세겨진 이니셜 하나를 발견합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제 이름도 N으로 시작하는데~ (헤헹 웃는 소리)
니나 하인드위거:아닌가요~? H? (고개 요리조리 기울여서 보다가 잉크병 내려놓고 펜을 들어서 샅샅이 살펴봅니다!)
펜촉 끝은 검은 잉크가 굳어 부스러기가 떨어집니다.
니나 하인드위거:(탁 내려놓고 침대 보러 갑니다!)
희고 푹신한 침대는, 조금 오래된 것인지 눌러볼 때 삐걱이는 나무 소리가 나요.
발치에 걸리는, 바스락거리는 종이들을 발견합니다.
니나 하인드위거:(대수롭지 않게 내려두고 일어나서 거울도 비춰볼래요!)
당신은 이런 것에 깊게 신경쓰지 않고, 거울 앞으로 향합니다.
무엇인가 오래된 듯한 이 방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며 새 것처럼 빛을 내는 물건입니다.
니나 하인드위거:뭘까요~? 절 위해서 새로 준비하기라도 했나봐요! (들여다봐요)
깨끗하게 비치는 거울 위로 니나,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문득 거울을 보는 눈길 안으로.
니나 하인드위거:익숙한? (익숙한 이 기분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감각일까?)
니나 하인드위거:
지능
기준치: |
60/30/12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하지만, 글쎼요. 몸을 씻고 난 뒤로 노곤노곤해진 기분 탓에 생각이 길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얼굴이 오늘도 아름답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문 너머를 살펴보면, 이곳은 척 봐도 지상과의 거리가 꽤 되어보이네요.
마왕성이 눈 안에 들어올 적부터 시간감각이 이상하게 흐르는 기분이에요.
니나 하인드위거:아까는 낮이었나봐요~ (혼자서도 종알종알)
니나 하인드위거:(가운 입고 다이닝룸으로 냅다 내려가요)
누가 보아도 용사답지 않은 용사는 문 바깥을 나섭니다.
층계를 내려오면,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실내 정원이 꾸며져 있습니다.
정원이라기엔 작은 규모지만, 어쨌건 무성히 핀 연분홍 장미는 천장과 수많은 창으로 들어오는 노을에 물들어 아름답네요.
니나 하인드위거:(가운끈 대충 여미고 정원 구경하며 층계 우다다 내려감)
당신은 실내 정원을 지나쳐 다이닝 룸으로 향합니다.
음식의 종류는 많지 않지만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하네요.
이 요리는 누가 한 거죠? 그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와~ 이거 다 헤르디가 한 걸까요? 절 위해서?
의자의 맞은 편에, 헤르디가 앉아서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묵묵히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 먹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절 위해서 이만큼 음식을 한거예요? 힘들었을텐데~ (헤르디 옆에 앉을 의자 탐색해요)
니나 하인드위거:(멀지만! 탈팍 앉아서 그릇을 눈반짝이며 보다가) 맛있겠어요~ 저 기다리다가 배고파서 먼저 먹기 시작한 거예요?
헤르디 비체덴타:혼자서 식사하다보며언, 시간 감각이 이상하게 되어버린단 말이지이. (우물우물.) 그래서 평소처럼 식사를 했는데, 먹고 나니까 앞에 그릇이 있더라구.
니나 하인드위거:혼자 먹지 말고 앞으로는 저랑 먹어요! (곧 싸우고, 누군가 하나는 죽어 없어질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포크를 든다. 고기를 적당히 썰어서 네게 그릇을 건네고 제 몫의 다른 고기를 집어 또다시 썰기 시작한다.) 저는 있죠~ 적당히 핏물 있는 게 좋더라고요. 비위가 상한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맛있기만 한걸~
헤르디 비체덴타:응~, 내일이면 우리 헤어질 거야~. (그리고 그는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나이프를 들어 당신이 건네준 고기 조각을 쿡 찔러 입 안에, 한 번에 삼켜 먹었다. 목이 꿀렁였다.) 뭐가아? ……피 맛이? (농담…이겠지?)
니나 하인드위거:피맛이라기보다 고기에 배어있는 그 맛이요. 헤르디는 아니에요? (말하며 우물우물 고기를 씹어 삼킨다. 곁에 놓인 샐러드를 한 움큼 찍어 야금야금 먹고) 헤르디는 용사가 찾아오기 전에 뭐하고 지내요? 혼자 있어요?
헤르디 비체덴타:글쎄. 무슨 맛인진 모르겠는데에, 난 핏물 안 나오는 고기가 더 좋아아. (그 때문인진 몰라도, 당신과 제 앞에 놓여진 고기는 확실히 레어는 아니었다.) 혼자 있지. 이곳은 꽤 지루한 곳이야아. 덕분에 잠만 늘었어. (어라? 말하는 게, 꼭
마왕성이 아닌 곳에서 지내본 경험이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니나 하인드위거:여기 말고 다른 데서 지내본 적 있어요? (네가 말한 틈새를 놓치지 않는다. 관심있는 자의 틈을 놓치지 않는 건, 니나의 특기였다.)
헤르디 비체덴타: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어. 알지?
어차피 죽을거라면, 후회 없고 싶어요.
니나 하인드위거:아마도요. 제가 헤르디를 이길 지도 모르지만요. (혀를 조금 베어물고 에헷 웃는다.)
헤르디 비체덴타:(그리고 그는 돌연 그 혓바닥을 죄 씹어 삼켜내고 싶단 생각에, 소리 나게 식기를 내려놓았다.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댔다.) 그렇다면.
맞아.
헤르디 비체덴타:마왕성이 아닌 곳에서도 살았지.
니나 하인드위거:다른 데서 살았다고 해놓구선.
마왕이 되면 기억을 잃기라도 해요?
헤르디 비체덴타:내가 이전에는 인간이었을 것 같아? (안광 없는 새까만 것이 당신을 앞에 두었다.)
니나 하인드위거:(새카만 것을 눈에 담는다.) 그럼요?
당신은 용사고.
(수수께끼같은 말들만. 자꾸.)
니나 하인드위거:저는 수수께끼를 잘 못한다구요~ (입술을 내밀고 웃는 얼굴로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흉내낸다.) 그러면 이거 하나만요. 헤르디는 이전의 삶이 생생해요?
헤르디 비체덴타:(그리고 그는 또다시 충동에 휘말렸는데, 이번의 것은 그 입술을 깨물고 싶기보단, 목을 조르고 싶단 욕망에 가까웠다. 굽어지는 손가락은 허공을 살며시 쥐다 말 뿐이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거드은.
……식사는 다 했엉?
니나 하인드위거:그러면 저한테 말해주고 싶지 않은 거에요? (어느새 접시 몇 개가 텅 비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포크를 소리나게 내려둔다.)
(말하며,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나 하인드위거:왜요? 절 죽일거라? ...너무해~ (말하며 네 옆에 쪼르르 다가가 선다.)
얼결에 이루어진 식사 시간은 알쏭달쏭한 분위기 속에 끝납니다.
당신이 옆에 서든 말든, 헤르디는 의자를 본래 자리로 집어넣고 다이닝 룸을 나오네요.
헤르디는 먼저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고 실내 정원을 지나, 계단을 올라 당신이 처음 문을 열고 나왔던 방의 복도를 걷습니다.
과연 마왕성이니만큼 크고 넓은 곳, 길게 늘어진 복도들의 방.
당신이 계단에서 제일 가까웠던 방이라면 복도 끝 방은, 글쎄요.
당신의 방을 제외하고 틈새가 다 열려있는 방들과 달리, 복도 끝 방만은 굳게 닫혀있네요.
헤르디는 그리로 걸어가고, 당신이 그 뒤를 따르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닫힌 문의 방을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됩니다.
니나 하인드위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니나 하인드위거: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순간 짙은
어둠
이 당신의 눈 앞을 가렸던 까닭에…….
언뜻, 안쪽에서 샛붉은… 색깔을 본 것도 같습니다.
문득 이곳까지 도달하기 전 자신이 흘리고 마물들이 흘렸던 피가 떠오릅니다.
자고로 마왕이라면 방 하나마다 시체라도 매달아놓았을 것 같지 않나요?
시체라도 매단 걸까요, 무언가 끔찍한 짓을 자행한 장소가 이곳은 아닐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둘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니나 하인드위거:(가운 입고 헤르디 옆에 찰싹 붙어서 올라감)
뾰족하게 솟은 탑은 이제 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는 하늘에 맞닿을 듯, 쏟아지는 별을 맞을 듯, 아득하게 높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
지능
기준치: |
60/30/12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부르르)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아까 성 안에서 볼 때에는 유리처럼 성의 천장이 투명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그 소름이 다 가라앉기도 전에, 바람이 한 차례 불었고요.
희끗하니 당신이 건너온 숲과 강이 보이고. 날씨가 아주 좋은 날에는 민가가 어렴풋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서 불어온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이고 지나갑니다.
헤르디 비체덴타:당신은 용사로 태어나서, 좋아?
니나 하인드위거:좋죠. 왜 싫겠어요? (방긋 웃는다. 가운을 여미고 아득히 보이는 숲과 강을 바라본다.) 제게 의미를 주잖아요.
헤르디 비체덴타:(그는 꽁꽁 차려입었지만, 그런 당신에게 제 망토를 둘러준다거나 할 생각을 아예 않는 듯 싶었다.) 무슨 의미인데?
니나 하인드위거:생존, 나아가는 방향. 그런 거요. (말하고 너 보란 듯 한 번 더 몸을 떨며 웃는다. 이번에는, 작위적인 티가 났다.)
누군가는 지루하지 않냐고 묻지만, 전 좋아요. 빛을 따라 걷고 모두가 절 가엾이 여기며 사랑해주니까요. (사랑, 그들은 이 치에게 사랑을 준 적이 없으나 제멋대로 해석하여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이미, 용사인 니나 하인드위거를 아껴 마지 않았다.)
헤르디 비체덴타:(그리고 그 대답은 헤르디에게 썩,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줄 수는 없었겠지만.) 그건 동정일 뿐이고, 나아가 동정에 기인된
사랑이지. 당신은 당연하게 세상을 구원할 운명을 수행하려 하니까, 배를 보이고 애교 떠는 강아지를 보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거라궁. ……알 텐데?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이봐, 말이 좀 심하지 않아? 누군가가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마 당신도, 둘 다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텐데.)
니나 하인드위거:동정이면 뭐 어떤가요? (동정, 증오, 배신, 성애... 사랑을 일컫는 단어는 수없이 많았다. 제게 있어 수많은 단어들은 그저 사랑으로 통일된다. 더없이 아득하고도 따스한 감정. 그 속에서 배신이나 증오로 베이게 되더라도, 그것은 분명 사랑과 결이 같다고. 한 번 더 배시시 웃는다. 날카로운 안경테 너머의 눈이 휘어졌다.) 헤르디는 사람들과 어울려본 적 있어요? 그것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지만~ (네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이 이어졌다.) 어울리다보면 즐거워요. 사람들은 연약하고 때때로 강해서, 두려워하면서도 굳건하게 일상을 살아가거든요. 애교 떠는 강아지를 보는 심정이라면 어떤가요? 저는 그런 운명이 있었기에, 이 길을 걸을 수 있었고 헤르디를 만날 수 있었는걸요. (물론 그 길은 순탄치 않았다. 동정받고, 소위 말해 황제의 '개' 취급을 받곤 했지만 그래도 용사인 것이다. 이 역시 제가 정의하는 사랑과 같았다. 다양한 단어가 있다. 빛, 황제의 개, 꼭두각시, ...용사. 모든 단어는 제 안에서 하나의 '니나 하인드위거'가 된다.)
헤르디 비체덴타:그래, 결국 당신은
스스로 용사가 되길 선택했구나. 그런 거라면 참……. (그리고 뒷말은 불어온 바람 소리 탓에 들리지 않았고, 동시에 헤르디는. 웃었다. 환하지도 옅지도 않게,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게. 단순히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이 내 손에 죽게 될 운명을 알았어도, 그 허울뿐인 동정이나 사랑이라 이름 붙일 만한 취급들이 좋다고. ……그렇징?
니나 하인드위거:선택했다기보다, 타고난 운명이예요. 제게는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거죠. 그냥 주어진 걸 즐길 뿐이예요. (웃는 얼굴에 시선이 머물렀다. 붉은 안경테에 걸린 푸른 눈동자는 떠오르기 직전의 해처럼 어둡고도 환했다. 그 눈동자 안에 네가 고스란히 담긴다. 마치 갇힌 것처럼.) 저는 헤르디의 손에 죽게 될 걸 알아도, 찰나의 만남을 고대했어요. 헤르디와 만나면 분명 우리는 많은 것들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요. (손을 뻗어 네 손을 잡는다. 눈을 깜박인다.) 바로 이런 시간요.
헤르디 비체덴타:그래,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잖아. 그러니까 하나 가볍게 물어볼깡? 당신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과연 무엇을 선택했을지. 그리고……. (당신의 맨손은 제가 찬 검은 장갑에 가로막혀 완연한 온기를 전달해주지 못했지만, 헤르디는, 놀랍게도, 당신에게로 한 걸음 거리를 좁혔다. 당신이 붙잡았던 손을 느리게 떼어내며 그 손으로 당신의 붉은 테 안경을 벗겨냈다.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밤하늘보다 어두운 그의 눈동자가 당신을, 안경알 거치지 않고 곧장, 당신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바람소리만한 크기로 이르기를.)
당신은 안경을 벗는 게 훨씬 좋아.
니나 하인드위거:선택할 수 있었다면, (상상한다. 용사가 아닌 니나. 용사인 니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상상은 무궁히 뻗쳐나가다 금세 멈춘다.) 용사 아닌 저는 당신을 만날 수 있었나요? (마왕을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게 운명이라고. 죽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선택지 앞에서 저는 종종 떠올렸다. 마왕의 얼굴을, 목소리를, 체온을. 어떤 검술을 쓸지 생각하며 발을 움직였고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볼지 상상하며 지샌 밤이 몇 되었다. 그렇기에, 네 존재는 중요했다. 당연했다.
용사니까.) 어머, 정말요? (안경이 벗겨지면 시야는 금세 흐릿해졌다. 망설이지 않고 네게 한 걸음 더 다가가 발뒤꿈치를 들었다. 네 콧등이, 입술이, 그리고 눈동자가 지척에 있었다. 눈을 깜박이면 속눈썹끼리 부딪힐 것처럼,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 네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벗으면, 저는 헤르디에게 더 가까이 가야 해요. 보이지 않거든요. 이 정도 거리가 좋아요?
헤르디 비체덴타:용사가 아닌 당신은 날 만날 수 없어. (그리고 그는 단언했다. 용사가 아닌 당신이 태어날 수 없었듯이. 그리고 유성우가 떨어졌나, 알 수는 없었지만 반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지 않고 마주한 당신의 푸른 눈동자는 떨어지는 유성우를 담듯 밤에 맞지 않는 환한 빛으로 번뜩였던 성 싶었고, 헤르디는 가까워지는 얼굴보다는 바람결에 옅게 흔들리는 속눈썹이나 입술, 그 아래로 살며시 벌어진 가운 사이 하얀 살결을 보았다. 적어도 가운에 가려지지 않은 그 위로는 흉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상관 없지, 난 단지 눈 앞을 가리는 모든 것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질 뿐이야. (그는 땅에 떨어진 붉은 것을 한순간 떠올렸으나, 결국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슬슬 방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지이. 승부는 내일 보더라도. (선이 그어진다.)
니나 하인드위거:(네 손을 놓지 않는다. 네게 온기 한 점 전해지지는 않을 테지만, 장갑 위에서 손을 떼지 않고 너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그러면 용사를 선택할래요. 제 선택의 의미가 누구에게 있는지, 알겠나요? 헤르디. (너와 함께 한 시간은 턱없이 짧으나 제가 너를 생각한 시간은 그보다 기니 제게는 당연한 언사였다.) 있죠, 저게 없으면 저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해요. 오로지 당신의 등만 찾게 될 수도 있어요. 혹은... 헤르디가 겪은 용사 중 가장 손쉽게 해치운 용사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음~ 어느 쪽이든 저는 상관 없어요. 당신에게 처음이 될 수만 있다면요. 왜 벌써 돌아가나요? 조금 더 있어요. 저랑 밤을 보내요. 네?
헤르디 비체덴타:(그리고 정말, 붉은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밤은 푸르렀고 별빛은 새하얬으며, 제 손은 검었고, 당신의 눈은, 눈은…….)
(당신의 눈은,)
(이런 색깔이었구나.)
(그는 아주 오래된 무언가를 더듬어보듯 당신을 바로 앞에 두고서도 한참 별빛 닮은 것을 헤아려보았으나, 다물린 입술 사이로는 침음성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걸 어떤 충동이냐 묻는다면, 입 맞추고 싶었다. 그걸 실행할 생각은 없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참 집요해,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하니까. (새삼스러운 모든 것들이 그를 휘감아 내쳤다. 바닥의 서늘함이 올라오고 눈 앞이 순간 아렸으며, 저 멀리서는 바람소리나 풀벌레 소리 따위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갑 너머로 와닿는 온기랄 것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는 간만에 인식할 수 있는 밀 색깔이 밤하늘 아래에선 회색처럼 보이기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래도 처음은 될 수 없엉. (히죽 웃음지으며 그는 당신의 등 뒤로 손을 뻗었는데, 장갑 낀 손이 당신의 가운 뒷덜미를 콱 잡아챘다! 마치 새끼고양이를 먼 곳으로 옮기는 어미고양이처럼 말이다!) 돌아가아자아. 난 이제 슬슬 잘 거걸랑.
니나 하인드위거:헤르디가 제 이름을 불러주면 참 좋을텐데요. (뒷덜미를 잡아채였을 때는 끼잉 소리를 냈다. 그리고 웃었다. 안경 없는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다가 자연스레 너를 답싹 끌어안았다. 헤헤 웃으며 네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꼭, 정말 새끼고양이라도 된 마냥.) 가요. (안경은 이미 신경쓰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 느껴지는 네 감각, 그리고 와닿는 숨결이 그저 달가웠을 뿐.)
헤르디 비체덴타:(이번만큼의 헤르디는, 그것을 내치지 않았다. 함께 층계를 내려간다.)
발바닥은 이미 감각을 잃을만큼 얼어붙었지만, 뭐, 어떤가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과 시야였습니다만, 당신의 뒤를 붙잡아 함께 걸어주는 발소리는 확실하게 들려왔습니다.
비록 헤르디는 복도에 도착한 뒤로 당신의 등을 매정하게 밀쳐내곤 '이만 당신은 당신 방으로 가! 내일 보장.' 이라며 복도 끝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지만요.
몇 번 더 실랑이를 벌이다, 당신도 당신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불현듯 모든 것이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이 순간에 당신이 피로할 수 있다는 것도, 돌아갈 방이 있다는 것도,
꿈 속에서나 그리던 '마왕'과 이런 일을 함께 공유했다는 것조차.
마왕의 소굴에서 편안하게 잠이 든 용사, 니나는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고 맙니다.
용사님, 당신은 운명을, 운명을 지고 태어났잖아요.
당신의 생은 오로지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 이어져왔으므로, 그를 처단했을 때에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당신은 용사는 제국은 당신은 마왕은 세계는 운명은 당신은…….
눈을 뜨면 아직 푸르게 어두운 하늘이 창밖에 펼쳐진 밤입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흐릅니다.
빛이 가득히 일렁였던 천장은 별빛조차 투과해내지 못하고
검습니다
.
이렇게도 다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만치 암흑으로 뒤덮인 성 안.
홀에 피어있던 꽃향내는 기이한 마법 같고, 어슴푸레한 등불에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며 당신은 조심조심 복도를 걷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리고 있는
복도 끝 방
을 발견합니다.
어떤 소리가 들려오진 않지만, 당신은 그리로 향합니다.
살짝 열린 문 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붉었기
때문입니다.
니나 하인드위거:(꼭 제 안경같아요. 그래서 제게서 멀리 한건가요?)
미치광이가 칠갑을 해 놓은 듯한 방 안입니다.
마왕성엔 헤르디, 단 혼자만이 존재할 뿐이었으니까요.
나아가려 했던, 혹은 물러서려 했던 당신의 발에 무언가 툭 걸립니다.
발밑을 보면 작은 수첩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목소리 들린 쪽으로 돌아보며 수첩을 펴 읽는다.)
당신이 등불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자는 당신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헤르디는 날카로운 손으로 당신이 쥔 수첩을 빼앗아, 표정 없이 응시합니다.
그와 마주한 지 처음으로, 생경하게도, 새삼스럽게도,
헤르디 비체덴타:(여전히 그는 표정 하나 없었다. 사위가 온통 어두웠기 때문이다.) 해가 뜨려면 멀었는데에.
니나 하인드위거:눈이 떠졌어요. 여긴 뭐에요? 온통 낙서가... (두리번거리는 눈에는 전혀 공포감이 비치지 않는다.)
헤르디 비체덴타:몰라? (그러니까, 대체 무얼.)
……돌아가.
니나 하인드위거:헤르디가 그린 거예요? 누구 피인가요? 여태 죽인 용사들의 피로 그린 거에요? 있죠, 저도 죽게 되면 여기에 새겨지게 되나요?
니나 하인드위거:헤르디가 절 잊지 않기를 바라요.
헤르디 비체덴타: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돌아가, 피곤하니까. (달이 구름에라도 가려졌나, 짙은 어둠이 진다. 등불 빛만이 그의 발치부터 가슴께를, 턱 밑을 간간이 비췄다.)
니나 하인드위거:이대로 그냥요? 더 궁금해하면 화낼 거예요?
헤르디 비체덴타:응. (*팍!) (그의 한쪽 손이 당신의 어깨를 붙잡아 바깥으로 내쳤다. 등불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나.)
니나 하인드위거:거칠어요, 헤르디~ (밀려나서 아무렇지 않게 등불을 들고 탁탁 턴 후 걸어간다. 왜 빨갰을까?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려진 낙서를 손끝으로 따라 그려본다. 이런 모양이었던가?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헤르디는 그런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요?
왜요? (빼꼼)
니나 하인드위거:내가 이걸 읽었으면 좋겠어요?
헤르디 비체덴타:(그는 답지 않게 한참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물어봐야 할 것이 있어.
그걸 읽으면, 대강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등불을 들고 펴서 읽어볼래요)
그러나 노트를 펼쳐보자마자, 새까만 밤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태엽을 돌리는 것처럼 새벽이 아스라이 밝아지려 합니다.
노트의 첫머리에는 이런 단어가 적혀있었습니다.
니나 하인드위거:
지능
기준치: |
60/30/12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저 이름 아래에 헤르디의 이름을 적어놓고 싶다,고요.
운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운이 있어서였을까요.
한 사람은 죽여 마왕이 되고, 한 사람은 죽어 용사로 태어난다니.
저번에는 헤르디가 여기까지 도착하지도 못했잖아요.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태어난다면, 마왕은?
니나 하인드위거:
SAN Roll
기준치: |
69/34/13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우리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도구입니다.
용사와 마왕이라 이름 붙여진 연극의 배우이고요.
이곳은 결코 무대 밖으로 내려갈 수 없는 극장입니다.
그리고 연극에 맞춰 빛이 밝아집니다, 막이 올라갑니다,
햇빛이 눈부시고, 찬연하게 비쳐오는 빛줄기를 따라서 시선 또한 따라갑니다.
검은색 도신의 검을 들고 서 있는 헤르디가 있었죠.
그런데 이번을 처음으로, 내게 그 자리를 넘겼지.
그래서 묻고 싶었어.
…….
왜 그랬어?
니나 하인드위거:(빛 앞에 검을 든 마왕은 지독히 어둡고도, 찬란하다. 그래서 저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태양을 마주한 것처럼.) 헤르디는 생각해본 적 있어요? 제가 왜 그랬는지. ...별 거 아니에요. (손틈 새로 너를 빼꼼 내다본다. 드러난 입술이 호선을 그린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다 뭔가요? (목소리는 검술처럼 가볍기 짝이 없다. 여전히 손틈 새로 너를 응시하며 눈을 깜박인다. 언뜻 보이는 눈동자가 휘어진다.)
헤르디 비체덴타:(당장에라도 당신의 검을 잘라낼 수 있을 것처럼 검날은 예리했다. 햇빛을 받고서도 도신은 색이 그리 밝아지지 않았는데, 그것이 마치 한낮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늘만 같았다.) 자주 생각했지,
언니는 왜 날 처음으로 죽이는 데 실패했을까, 왜 이번에는 스스로 용사가 되길 선택했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왜 날 계속 죽였나. ……하지만
당신에게 맞는 답을 구하는 건 아니야. (한 차례, 그가 검을 고쳐 쥐며 웃었다.) 당신은 언니가 아니니까. 그래서 고민했어.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할지, 아니면 당신이 나를 죽여야 할지. (당신이 저를 죽인다면, 다음 생에 마왕이 된 당신이 친히 그 답을 알려줄 테니까. 비록 자신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니나 하인드위거:저는, (활자는 말한다. 끊임없이 속삭인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저는 한때 마왕이었으며, 몇 번이나 마왕의 어둠 속에서 기생하다가 용사가 되어 너를 마주한 듯했다. 손은 꼭 가면처럼 얼굴에 달라붙어 틈새로 너를 응시한다. 호선 그리던 입술을 달싹인다. 기묘한 기분이다. 얼마든지 웃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울 것 같은.) 운명을 믿어요, 헤르디? 저는 믿어요. 맹신해요. 어딘가에 제 운명이 있다고 외치면 사람들은 망상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용사로 태어난 저는, 운명을 외치면 당연히 마왕성으로 갈 결말을 알려주곤 했어요. (그랬다. 이건, 네가 말하는
언니의 기억이 아닐 테지만. 네가 원하는 대답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천천히, 네가 원하는 대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였다.) 지겨웠을까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어둠 속에서 사는 건 빛 속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그러면... 외로웠을까요? 가능성 있는 말이예요. 저도 마왕성까지 오는 동안, 혹은 마왕을 만나기 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종종 외로웠거든요. (손을 조금 내려 눈을 반만 드러낸 채 너를 응시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인내를 선사하고, 직접 당신에게 달려가는 길을 택한 완벽한 이유는 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러면... 이런 건 어떤가요?
사랑이요.
사랑은 때때로 황홀하고, 벼락처럼 짜릿해요. 이곳에 앉아 저는 당신을 기다렸겠죠. 그러는 동안 사랑은 조금씩 쌓여서 무른 돌을 파훼하고, 안에 고였을 거예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말하며 제 팔을 끌어안고 조금 떤다.) 그걸, 헤르디에게도 알려주고 싶었겠죠. 같은 시간을 지내보면... 영락없이 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말하며 웃는다. 하얗게. 그리고, 티없이.)
헤르디 비체덴타:(용사로 치열했던 순간이 그에게도 있었다, 밤보다 어두운 눈동자를 가지고 빛으로 추앙받으며 출정식을 거행했던 때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동시에 죽임당한 때도 많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궁금했다. 매번 당신은 나를 죽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그토록 고이고 고여 흐르지 않을 것처럼 우뚝 서 있던 등과 탑을 당신은 무너뜨렸나. 당신의
헌신이나 일종의
집착은 모든 시간을 깨닫게 된 헤르디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서, 헤르디는 마왕성에서 눈을 뜬 그 처음 날 비로소 인정했다. 니나 하인드위거, 니나 하인드위거, 니나, 하인드위거, 니나, 하인드, 위거. 니나 하인드위거. 함께 운명 아래 속박된 사람.) 운명을 믿진 않지만 존재해, 그러니까 아는 거지, 믿는 것과는 다른 의미야. (그리고 그 운명이나 세상이라고 부를 법한 것들이 당신과 저를 양 손에 올려두고 저울질하듯 그는 당신과, 모든 것을 기억하던 이전 생들의 집합체인 니나 하인드위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죽여야 할까? 죽어야 할까?) 마왕성은 확실히 쌀쌀하지, 소통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고 기껏해야 꽃이나 피우는 게 다야…. (그렇게 언니는 미쳐버렸을까? 어둠 그리던 손이 내려가 반쯤 나온 눈으로 우리는 마주했다. 그러나, 동시에 마주하고 있지 않았다. 헤르디는 저울질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니나 하인드위거와, 안경을 벗은 용사, ……니나, 하인드위거.)
내게 같은 사랑을 습득시키려고? ……그럴지도 모르겠어, 언니가 인간이었듯, 나 또한 인간이니까. (목을 조르고 싶던 충동과 동시에 탑 위에서, 안경 쓰지 않은 당신과 입을 맞추고 싶던 충동을 떠올렸다. 공간이 우리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꽤나. ……끔찍해. (그리고 그도 웃었다. 검게. 그리고, 비틀리게.)
니나 하인드위거:있죠, 사랑은 배신이기도 하고 증오일 때도 있으며 욕망일 수도 있어요. (말하며 마물을 해치울 때처럼 가벼운 발걸음, 발끝을 먼저 땅에 부딪히며 네게 경쾌하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 앞에 바로 섰다. 등불을 내려두고, 반은 어둠에게 그리고 반은 빛에게 내어준 채로 너를 올려다본다. 작은 빛이 눈동자에 스며, 기묘한 안광이 된다. 눈을 깜박여도 사라지지 않는 그 빛은...) 헤르디의 죽음은 제 거예요. 제 죽음도 헤르디의 것이죠. 그게 바로 운명이에요. 어찌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말하며 네 뺨을 손으로 감싸쥔다. 네가 검을 들었다는 사실도, 언제든 그 검이 저를 꿰뚫을거라는 것도 모두 알면서.) 헤르디. (뱀같은 혀로 속삭인다.) 운명을 거부하고 싶나요? 죽는 것도, 홀로 이 어둠 속에 남는 것도 모두 싫은 거예요?
헤르디 비체덴타:(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죽음 너머에 또다른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죽는 것은 별 생각 없어, 그렇다 해도 혼자 남는 것두 싫고, 바란다면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말하며, 그는 당신이 제 뺨을 손으로 감싸쥐든 말든 고개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용사로 추앙받던 일생, 그것이 동정이든, 허울 뿐인 사랑이든.) 하지만 그게 당신과 엮여있는 것이라면, 거추장스러워. 걸리적거리고 귀찮아. 강제로 남에게 우리의 인생이 바늘과 실로 꿰인 양 얽혀버린 게 불쾌해. (배신이기도 하고 증오일 때도 있으며 욕망일 수도 있다고.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물론 난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때때로 사랑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 법이야. (저울이 기울어진다. 어느 쪽으로?)
니나 하인드위거:있죠, 헤르디. 혼자 남는게 싫다면 우리 같이 도망이라도 갈까요. (세계는 하나의 연극이라고 했다. 나는 용사, 너는 마왕. 활자는 수십 수백개의 자음 모음을 모아 우리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 길을 벗삼아 나아가는 상상을 한다. 네 턱에 가볍게 입술을 문지르고 올려다본다. 휘어진 눈동자로 고개를 기울인다.)
저도 사랑해요, 헤르디. (사랑은 이토록 쉽게 흐른다. 쉽게 흐른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적어도 제 세상에서는, 이보다 더 사랑에 가까운 것은 없었는데.)
헤르디 비체덴타:(그리고 그가 그 움직임에 고개를 내린 뒤에서야 시선은 되맞는다.)
당신과 함께?
니나 하인드위거:당연히 함께죠. 우리는 운명이잖아요! (극적인 등장인물처럼 두 팔을 벌려 허공을 향해 외치고 너를 담뿍 끌어안는다.)
헤르디 비체덴타:그래? (그리고 끌어안긴다. 그는 눈을 감았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눈꺼풀을 들어올린 뒤로는.)
그럼, 있징.
그리고 당신이 떨어져나가면, 무릎 꿇어 주저앉은 당신을 내려다보다 히죽 웃음짓습니다.
헤르디 비체덴타:그래도 난 역시 언니에게 물어봐볼래.
그러니까…….
그건 내가 남기는 흉터야.
언니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
역시나 피가 묻는대도 그의 망토나 제복은 큰 티가 나질 않는군요.
헤르디는 곧 눈을 감으며 실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집니다.
당신의 배에서 튀긴 피와, 그의 목에서 튀긴 피가 서로 섞여 바닥을 적십니다.
그 빛나는 하늘의 빛은, 쓰러진 헤르디의 등 뒤를 옅게 적실 뿐입니다.
다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언니'가 된 당신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헤르디와 만나서.
헤르디가 처음으로 마왕이 되기로 결정된 때의 니나 하인드위거도 이런 상처가 남았을까요.
눈을 감고 피에 젖은 시체를 다만 품에 끌어당기며,
헤르디 ?, 니나 생존,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