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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ORPG 플레이 로그

[밀리비] 마녀의 고해 플레이 로그

by 여우비야 2021. 10. 4.

 

리비안 르로이:
rolling 3d6*5
 
(
1
 
+
1
 
+
6
 
)
*5
 
 
=
40
 
마녀의 고해
 
w. 숑곰
 
20210915
 
KPC 밀라니 에키드너, PC 리비안 르로이
 
1. 도입
 
과거에는 화려한 축제가 벌어졌을 이곳은 퀴퀴한 냄새만을 풍기는 시커먼 마을로 돌변한 지가 오래입니다.
 
성당에는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절박한 인간은 신에게 매달립니다.
 
이 무너져가는 세상은 당장 내일 멸망할까요, 오늘 멸망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리비안. 당신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근래에는 묘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살려달라 곡소리를 내는 꿈입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무저갱에 떨어질 것만 같은 모습.
 
사람들은 점차 시체처럼 썩어들어가는, 요컨대 악몽이 지속적으로 당신의 밤을 두드린지 벌써 몇 달 째입니다.
 
정확히 꿈이 시작된 시점을 짚어보라면 분명, 그래요,
 
그 날부터일 것입니다.
 
밀라니 에키드너가 이 마을에 나타난 날부터요.
 
그는 성당의 신부님이 전염병으로 죽고 그 빈 자리를 대신하러 온 이였습니다만,
 
그것보다 중요한 기억이 있었죠.
 
당신이 아버지의 상을 치르기 위해 마을로 내려오기 전,
 
수도에서 한참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퀴퀴한 냄새가 옅게 서린 바 안에서 만났던, 어떤 여성을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그 날 술기운이며 작은 음악 소리에 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같은 밤을 보내기까지 했죠.
 
그러니 수도에서 마을로 내려온 당신이, 똑같이 수도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던 밀라니와 다시 마주하던 날은…….
 
몹시도 기묘했죠. 어딘가 꺼림칙했으나, 그것을 모두 뒤덮은 희열감이 자리했겠습니다.
 
꺼림칙함이며 기묘함은 당신과 밀라니의 관계와는 별개의 감정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자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질감. 이를 테면 생리적인 거부감.
 
그러나 생각해봐요.
 
'저런' 사람이 신실한 수녀라뇨.
 
당신과 함께 밤을 보내고 입을 맞추고 온갖 말을 뒤섞었는데도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교회 안의 수녀를 치켜세우기 바쁩니다.
 
그렇게 당신은 오늘도 성당으로 향합니다.
 
다른 자들은 세계를 구해달라는 기도를 하러 향하지만,
 
당신은 오로지 그 수녀를 보기 위해 걸어나갑니다.
 
말세에 필멸자는 대체로 절대적인 존재를 찾기 마련이라지만… 그것은 당신과 관련이 없지 않나요, 리비안?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여겼을지도 몰랐으니까요.
 
성당 안쪽은 고요합니다.
 
오르간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를 하는 자의 인영이 보입니다.
 
밀라니입니다.
 
…그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립니다.
 
눈이 마주치고, 무감한 얼굴로써 그가 묻습니다.
 
밀라니 에키드너:……기도를 하러 오셨나요?
 
리비안 르로이:(글쎄, 잊을 수 없는 얼굴인가? 제 머리칼과 같은 빛깔의 검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하며 그와 대비된 부드러운 입술까지. 그저 스쳐지나가라면 지나갈 수 있는 하룻밤의 인연이었지만...) ... 글쎄요. 기도가 목적이 아니라면, 상대해주시지 않으실건가요?
 
밀라니 에키드너:(그래, 거기서 끝나야 했을 테지만. 그렇게 그는 어딘가의 한탄 감도는 눈빛을 숨기고자 길게 눈을 감았다 뜬다. 차라리 제가 처음 부임한 날에 처음, 만났어야 했건만.) ……자매님께서 대화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그리 해야죠. 각박한 시대가 아니덥니까. (각박하다는 말이 영 비어있지는 않았던 것이, 확실히 유일한 수녀의 눈 밑은 갈 수록 어둠이 짙어져갔다. 단순히 눈을 감았다 뜨는 동작에서도 피곤함이며 수척함이 묻어났다. 그는 기도하듯 모아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해서, …어떤 대화를 바라고 오셨습니까. 자매님.
 
리비안 르로이:(이렇게 제 앞에 나타난 이상, 구미가 당겼다.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속내를 담고 있는지. 또, 제가 아는 사람이 맞다면 왜 이런 곳까지 와서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도.) ... ... ... (천천히 시선을 굴려 피곤함이 여실히 묻어나는 눈가와 단단히 마주잡은 손마디를 바라보다가) ... 만난 적이 있지 않던가요? 우리.
 
밀라니 에키드너:(언뜻 내리깔려있던 것만 같았던 눈동자가 천천히 서늘함을 품고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한낮이었고 밤에는 확실히 쌀쌀한 공기가 지난다지만, 그의 눈동자는 마치 새벽 한기를 품은 양 어두웠다. 다물린 입술이 느릿하니 비틀려 열린다.) 애초에 왜, 그런 물음을 건네시는 것인지. 이해하기는 버거우나…… 이 마을에 오게 된 건 처음입니다. 이전에는 수도에서 신학 공부를 했었거든요. (잡힐듯 말듯, 꼬리가 보일락 말락 움직인다.)
 
리비안 르로이:(들려오는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비틀린 입꼬리를 하곤, 제 눈과 대비되는 서늘한 색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춘다. 처음에 말을 걸었던 이유도 아마 이 오묘하고 맑은 빛의 시선 탓이었지, 아마.) 아-. 저도 수도에서 지내다가 마을로 다시 돌아온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요. (저는 어렸을 적 마을을 떠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라. 하며 싱긋, 눈꼬리를 접어올리곤 입꼬리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내며 웃음 짓는다.)
 
밀라니 에키드너:(처음? 글쎄. 제가 마을에 온 날, 당신과 자신은 그때에 처음 만나지 않았었나. 왜 자꾸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들추나, 당신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언젠가 수도에서 한 번… 지나가다 뵌 적은 있겠지요.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가던 그는 잠시 피곤함이며 두통이 몰려왔는지 모아 잡던 손을 풀어 손끝으로 미간을 문댔다.)
 
나름대로의 대화를 이어나가곤 있지만, 밀라니의 상태는 썩 좋지 못해보였습니다.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그러고보면 성당에는 휴게실이 있었죠.
 
휴게실에서 차라도 타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아니면, 함께 휴게실로 향해도 좋겠지요.
 
리비안 르로이:지나가다? (하. 불쾌한 낯을 담은 웃음을 짧게 터뜨리곤,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호선을 그린 입술을 달싹인다.) ... (이내 입을 꾹 다물곤 무슨 생각인지 모를 미소를 지어) ... 낯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으신데... 혹, 오래 잠을 자지 못 하셨나요? (가엽게도... 하며 작게 중얼거리곤, 휴게실이 있는 쪽으로 짧게 눈짓한다.) ... 어떠신가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함께 차라도 마시는 것은.
 
밀라니 에키드너:…예. (불쾌함 가득한 얼굴, 터트리는 웃음. 그런 것들을 모두 앞두고서도 밀라니 에키드너는 잔잔한 물결만이 이는 호수마냥 침잠된 눈을 띄었다. 그래. 아까의 서늘함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듯.) 지나가다. (눈짓하는 쪽을 따라 잠시 그의 눈동자가 굴러간다.) ……바쁜 때이니까요. 사람들은 기댈 곳을 찾기 마련이기에, 저는 당연한 일을 수행하는 것 뿐입니다. 때문에 자매님과도 긴 시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차를 마실 시간 정도는 괜찮겠지요. 말하며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걸음을 옮겼다.)
 
2. 성당
 
[휴게실]
 
휴게실 안쪽은 피로를 풀 수 있는 찻잎과 간식이 놓여 있습니다.
 
리비안, 휴게실 내부 전체에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짧게 내부를 둘러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리비안, 강행 판정이 가능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리비안 르로이:(조금 더... 길게 둘러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휴게실의 의자 아래에 떨어진 어떤, 종이 조각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곁에는 밀라니가 있으니까요. 어딘가 밀라니 몰래 종이를 주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밀라니는 차를 타러 테이블 앞으로 움직여 등을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리비안, 종이 조각을 줍고자 한다면 은밀행동 판정이 필요합니다.
 
리비안 르로이:그래서... (느릿하게 허리를 숙여 의자 아래에 보이는 종이조각을 향해 팔을 뻗는다.) ... 저를 보신 기억은 없으시다는 거죠?
은밀행동
기준치: 45/22/9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은 소리 없이 종이 조각을 줍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말 밑으로 선 가시 때문일지, 밀라니는 돌아볼 생각조차 않고 느릿느릿 찻잎을 끓이고 있네요.
 
종이 조각에 적힌 내용은 이러합니다.
 
[ 그 저주는 마치 전염과 같아서, 누군가의 주도 하에 퍼지면 겉잡을 수 없게 된다. ]
 
저주? 전염?
 
성당에 있기에 적합한 내용은 아닙니다.
 
밀라니 에키드너:(끓는 주전자 위로 하얀 김이 새어나오는 모양새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자매님께서 혹, 착각하신 것은 아니실지요? (태연하고 뻔뻔하게.)
 
리비안 르로이:(소리없이 손에 쥔 종이 조각을 구겨 제 바지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는다.) 아-... 그래요. (또각또각, 휴게실 바닥과 굽이 맞닿는 소릴 내며 네 등 쪽으로 다가선다. 네 어깨 너머 찻잔을 바라보다, 고개를 느슨하게 기울여 네 옆모습을 바라보곤) ... 그럴 리가. 내 입술에 있는 자국은... 분명 당신이,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는 그 입으로 내주었는데도.
 
밀라니 에키드너:…….
(어느새 다 끓인 차를 잔 위로 따르던 손길이 잠시 멈춘다. 반절을 살짝 넘어 일렁이는 찻물을 내려다보다, 손을 움직여 마저 다른 잔에 찻물을 따른다. 등 뒤로 진 그림자가 옅게 제 앞까지 서려 있었음을 그가 몰랐을 리가. 그러니 이, 눈에 보이는 외면은 지금까지 당신이 캐묻던 말의 모든 진실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모른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그는 다만 온전히 따른 잔을 당신에게 건넸고, 그때에서야 서로의 눈이 마주쳤겠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신의 사자는 감히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자매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들을 지껄이는지, 감히.)
 
리비안 르로이:그렇다면… 당신은 신의 사자가 아니겠네요. (그렇지 않나요? 하며 입가에 의도를 숨기지 않는 조소를 띄운다. 손을 뻗어 잔을 건네 받고 찻잔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다, 이내 테이블 위에 도로 올려놓고는) … 아니면 그 날 밤이 모른 척 할 정도로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던건가? 그럴 리는 없었을텐데 말이야… (예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시선을 번뜩이며 너와 시선을 맞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네 입술부터 시작해 제 손길이 닿은 곳을 곱씹듯 시선을 옮기다가) … 약점이라도 잡힌 것 같은건가? 내가 그럴 작자처럼 보이지는 않을텐데.
 
밀라니 에키드너:(탁, 잔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당신이 지은 미소를 꼼꼼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이어 마주쳐오는 눈빛을 피하지는 않았다. 당신에게서 한낮의 어둠이 졌다. 그러니 번뜩이는 것은 필시 창가로부터 스며들어오는 햇빛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답이 흘러나오기까진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도 발뺌할 셈인가? 그도 아니라면…….) 기억나지 않는 밤을 구태여 되새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 마을의 마지막 희망이고…… 자매님께선 단지, 평범한 주민에 불과하실진대. (기묘한 대치는 그가 몸을 먼저 돌림으로써 끝이 난다. 휴게실 안은 차 향이 감돌았지만 그의 찻잔은 잡히지도 못한 채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으니. 결국 차를 끓인 것은 서로에게 핑계였을 뿐임을 증명하고 있지 않았나.) ……피곤하군요.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명백한 축객령을 내린다.)
 
리비안 르로이:마지막 희망이라… (귀찮다는 듯, 고개를 느릿하게 휘휘 젓는다. 도돌이표 같이 되돌아오는 대답이 퍽 신경에 거슬리는지 미간에 옅은 주름을 잡고는) …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뭐라 더 말씀 드릴 것이 있겠습니까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느릿하게 손을 뻗어 네 손목을 그러쥐었다. 부드럽지만, 뿌리칠 수 없도록 단단하게.) … 한 번 잘 기억해보세요. 아니면 제가 기억나실 수 있게 기꺼이 도와드릴테니. (잡은 손에 힘을 풀어 네 손바닥 쪽으로 느릿하게 손을 옮기곤, 검지를 세워 가볍게 살갗을 긁어내린다.)
 
밀라니 에키드너:(떠나가려던 때에 손목이 붙잡히면 그는 구태여 손을 뿌리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무감한 눈동자가 어딘가 텅 빈 것도 같고, 자잘한 물결만 이는 호수처럼 당신을 담아내다 손을 움직여 그 안쪽을 간질이는 움직임이 있고서야 파문이 일더니, 느릿하게 손을 떼어냈을 뿐.) ……도와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매님께서도 해야할 일이 많으실 테니까요. 어쨌거나 담소는 즐거웠습니다. 남은 하루도, 좋은 시간 되시길. (그럼에도 손바닥 안쪽으로 흉터같은 감각이 남아 그의 신경을 어지럽히고 있어서. 그는 평소보다 묘한 조급함을 안고 완전히 자리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피곤함을 이유로 자리를 떠나고, 당신은 휴게실에 덩그라니. 혼자 남게 됩니다.
 
'신실하고 상냥하다던' 수녀가 신도에게 이런 대접을 하다니요?
 
오로지 당신 뿐입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저 수녀가 짓던 다른, 어둠 아래 표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휴게실에서 발견한 종이를 잠시 내려다봅니다.
 
지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 (톡톡, 휴게실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종이의 재질에 집중하게 됩니다.
 
뭔가 알 것도 같은데, 하, 영 생각이 이어지질 않네요.
 
리비안 르로이:(고급 종인가보네…)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리비안?
 
지능 판정!
 
리비안 르로이: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멍..)
 
……확실히, 고급 종이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우둘투둘한 단면을 보면 누군가 책에서 찢어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성당 내부에 이와 관련된 책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당 안의 서재에는 당신도 몇 번 자주 왔다갔다 했으니까요.
 
리비안, 아무래도 이대로는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지 않나요?
 
밀라니는 휴게실을 떠났으니, 밀라니 몰래 뒷문을 통해서….
 
지하에 있는 서재로 향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에요.
 
리비안 르로이:… (치밀어오는 화를 느릿하게 눌러내곤, 손에 쥔 종이를 문질러본다. 확실히 일반 서민이 쓸 법한 종이 재질은 아닌데…) … (습관적으로 방 안을 휘 둘러보다 발견한 뒷문을 보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문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올라오는 화를 서서히 억누르며,
 
당신은 휴게실을 나섭니다.
 
[서재]
 
서재 안은 허전합니다.
 
몇 개의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꽤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입니다.
 
당신이 올 때면 언제나 이곳은 책들로 가득했으니까요.
 
찢긴 종이의 원래 책들을 찾아볼까요?
 
리비안, 서재에 대고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손으로 책장을 쓸어보며 어릴 땐 한 없이 커보였는데… 따위의 감상에 짧게 젖어있다, 이내 한 걸음 뒤로 가 전체적인 서재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서재를 둘러보던 당신은 이전과 달리 서재에서 몇 가지 책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한 열이 통째로 비어 있었습니다.
 
머잖아 나무 책장 틈 사이에 끼워진 또 다른 페이지를 발견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아주 오래된 고대부터 예언가와 마법을 다루는 이들은 진실을 이리 외치곤 했다.
 
마녀를 찾아라! 마녀를 잡아라!
 
마녀와 악마는 어떻게 잡을 수 있는가? 그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그들은 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발길이 닿자마자 환경이 반응한다.
 
악마와 마녀를 죽이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 면전에 대고 ‘지금 내가 너를 죽이겠노라’ 선언하는 것이다.
 
악마의 이름을 부르며 말이다. ]
 
…….
 
필기체로 적힌 글자를 보아하니 이건 책에 인쇄된 것이 아닌 타인이 직접 쓴 문장 같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종이는 고급된 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주 오래된 느낌이 나기도 했습니다.
 
꽤나 시간이 흐른 고서에나 있을 법한 누렇게 변색되고 버석한 질감.
 
……그렇게 당신은 서재에서 더 이상 살펴볼 것이 없겠다 생각한 뒤 몸을 돌립니다.
 
이후에는, 바로 탁자 위에 놓인 편지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요.
 
리비안, 읽어보나요?
 
리비안 르로이:(탁자 위로 손을 뻗어 편지를 읽어봅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밀라니. 나일세. 몇 달 동안 자네에게 소식이 없어 편지를 보내네.
 
일은 되어가고 있는 겐가? 소문은 들었네만 왜 빨리 끝을 내지 않는 거지?
 
이해할 수 없군. 이건 우리의 …일세. 자네도 알지 않나, …의 …는 ]
 
그리고 그때,
 
지하실의 계단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숨거나,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 올 사람은 밀라니 말곤 없으니까요.
 
리비안 르로이:… 제길. (탁자 위에 편지를 만지지 않은 상태인 듯, 그대로 올려두곤 책장 앞으로 향한다. 마치 추억에 젖어 책을 구경하고 있듯이.)
 
당신은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하지만,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소리가 함께 섞입니다.
 
: 일의 진척이 너무 느려! 언제까지 질질 끌 생각인 거지?
 
밀라니 에키드너:……방해물이 있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러니까 도대체 그…….
 
끼익,
 
낡은 문이 열립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명백하게, 선연하게 일그러집니다.
 
누군가의 앞을 가로막아 서듯 움직이고선, 미간을 찌푸린 채 당신에게 다가오는데요.
 
밀라니 에키드너:……무얼 하시고 계십니까? (건조하게 갈라지는 음성.)
 
리비안 르로이:(일그러지는 저 표정, 그래 저 표정을 원했지.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선 너를 마주한다.
) 제가 서재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어요. 간만에 찾아온 고향인지라… 어렸을 적 보았던 책이 아직도 있나 살펴보고 있었는데… 혹, 문제라도.
 
밀라니 에키드너:(굳은 얼굴이 풀리지 않았다. 입매가 비틀리다 애써 평행을 그리는데.) ……문제는 없으나, 나가주셨으면 하는군요. 마땅히 손님과 대화할 곳이 없어 이리 오게 되었습니다. 자매님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말 자체는 퍽이나 상냥했겠다, 그 표정이며 어투가 당신의 존재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겠지.)
 
리비안 르로이:얼마든지. (딱딱하게 굳은 눈매 하며, 비틀리는 입마까지. 깨어진 평정이 이리 보기 좋을 줄은.)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지요. (보기좋게 휘어진 눈매를 하고선, 걸음을 옮겨 서재의 문 쪽으로 향한다.)
 
밀라니를 지나쳐 문 쪽으로 향하면, 당신의 뒤로 붙어오는 그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아, 왜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저 표정을, 얼마나 보길 바랐었나요.
 
짜릿함과 기이한 꺼려짐이 뒤엉켜 속을 어지럽힙니다.
 
문가에 서있던, 안경을 쓴 백발의 늙은 남자가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있었지만 당신은 이내,
 
서재를 나섭니다.
 
마을에서 존경받던 수녀라고.
 
헛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은 성당을 벗어난 뒤의 일입니다.
 
어떻게 보아도 신을 모시는 자가 드러낼 법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죠.
 
밀라니는 왜,
 
신의 사자라는 것을 자칭하게 되었을까요.
 
하루가 저뭅니다.
 
3. 마을
 
성당에서 빠져나와 마주한 마을은 휑하기만 합니다.
 
버석버석한 땅과 동물의 시체, 다른 곳에서 온 의사들은 죽은 전염병 환자들을 병원으로 옮깁니다.
 
고딕 건물들의 벽에는 생기를 잃은 담쟁이 덩굴들이 툭, 툭,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제 햇볕을 받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무장된 성당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남았습니다.
 
리비안, 죽은 자들이 있는 병원이나 생존자들이 모인 마을 회관으로 가볼 수 있습니다.
 
리비안 르로이:(유리에 반사된 볕이 퍽 뜨거웠는지, 슬쩍 손을 올려 햇빛을 가리곤 미간에 주름을 잡는다.) … 간만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러 가는 것도 좋겠지… (작게 중얼거리며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마을 회관]
 
마을 회관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날 것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중입니다.
 
한구석에는 꼬마 아이들이 두어 명 웅크린 상태입니다.
 
논의를 벌이는 어른들에게 가보거나, 아이들에게 가볼 수 있습니다.
 
리비안 르로이:… (잠시 고민하다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아이들은 할 말 못 할 말을 가리지 못하는 편이지.) 안녕, 뭐 하고 있었니?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아이들은 조용히 구슬을 치며 저들끼리 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다가온 당신을 발견하면, 아이들이 저마다 "구슬 치기요!" "누나도 치실래요?" 같은 말을 꺼내다가,
 
그 중 한 아이가 울먹이며 묻습니다.
 
아이: 언니, 저희 죽어요? …저희 모두 죽어요? (이게 무슨 소린지.)
 
그 말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무어라 무어라 이야기를 떠들지만, 전염된 울음 소리에 뭉개져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대인 기능 롤을 사용해 진정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 (골을 울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퍽 신경에 거슬렸는지, 미간을 짧게 좁혔다가 이내 느슨한 미소를 지어보이곤) 그게 무슨 말이니?
매혹
기준치: 90/45/18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얼굴.. 들이밈)
 
…….
 
아이들은 순간 당신의 미소에 넋이 나가버리고 맙니다!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만드는 리비안의 외모는 실로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군요.
 
겨우겨우 울음을 그친 한 아이가 중얼거립니다.
 
“저희 말이에요, 매일 기도하러 갔어요. 성당에 밤마다 갔어요. 우리를 구해달라고 신한테 기도하러 갔어요.”
 
“수녀님이 우리한테 전부 괜찮아질 거래요. 그리고 자꾸 미안하대요. 왜 미안하다 그랬을까요? ……모르겠어요.”
 
……미안하다고,요.
 
무슨 뜻일까요?
 
리비안 르로이:수녀님? 그…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그 수녀님 말하는거니? (잠시 고민하다 머리칼을 쓸어주며)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에 잠시 아이가 흐릿하게 웃습니다.
 
아이: 네, 뺨에 점이 하나 있는 수녀님이요. (고개를 끄덕인다.)
 
리비안 르로이:음… 그랬구나.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곤,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수녀님이 그리 말씀하셨나면 전부 괜찮아지겠지. 신부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수녀님이 신의 사자신걸. 그렇지 않니?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단다. 그러니 일어나지 않은 일로 그렇게 겁 먹지 말렴.
 
아이: (이번에는 고개를 마구마구 끄덕거렸다. 어린 아이 특유의 순진하고 맑은 눈망울에 신뢰가 가득 들어차는 모습이 투명히 보인다.) 네, 네. 수녀님은 참 상냥하세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나아질 거라구 말씀하셨어요.
 
이제 아이들은 울음을 다 그친 채 다시 구슬 치기에 열중합니다.
 
얻을만한 정보는 다 얻은 것 같군요.
 
리비안, 이제 어떤 행동을 하나요?
 
리비안 르로이:… (짧게 한숨을 쉬곤 자리에서 일어나 제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요전보다 더 피곤한 얼굴로 시끄럽게의견을 나누는 어른들을 바라보다,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어른들에게 다가가면, 당신은 손쉽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이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곳을 당장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어디로?
 
다른 곳으로 도망쳐봤자 전염병은 이 나라 전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귓가에 들어오는 소리.
 
“그거 들었어요? 뱀의 저주라고. 그 저주가 한 번 퍼지면 사람들을 다 죽이고, 마을을 멸망시킬 수가 있대요.”
 
악마야. 분명 악마가 이곳에 들어온 게야. 악마가 저주를 퍼트린 거야.”
 
악마.
 
리비안, 정신력 판정입니다.
 
리비안 르로이:
정신
기준치: 85/42/17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검은 수녀복의 끝자락만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갑니다.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리비안, 어른들과 대화를 하나요? 딱히 쓸만한 이야기를 들을 것 같진 않으니, 이대로 회관을 벗어나도 좋겠습니다.
 
리비안 르로이:… 쯧.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 사람들을 보며 작게 혀를 차곤, 병원으로 발을 옮긴다.)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회관을 나섭니다.
 
회관 구석에 앉아 중얼중얼 알 수 없는 내용의 기도를 흘리는, 비쩍 마른 사내를 발견하게 된 건 딱히 당신의 의지는 아니었고요.
 
의도치 않게 눈이 마주치면 그는, 대뜸 외칩니다.
 
악마가 왔어, 여기에 악마가 왔어!
 
악마가 저주를 퍼부은 게야, 그래서 우리가 다 이 모양이 된 거라고!
 
공포에 경직된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시야에 담깁니다.
 
리비안, 어떻게 행동하나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까요?
 
리비안 르로이:… (천천히 다가가 사내의 앞에 웅크려 앉아, 시선을 맞추고는) … 그래서 누가 악마라는거야? 시끄럽게 나불거리지 말고… 네가 짐작가는 걸 이야기 해봐.
 
늙은 남자는 다급하게 당신의 어깨를 아프게 부여잡은 채 소리칩니다.
 
광인: 악마를 죽여야 해! 악마를 죽여야 해!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다.) 성서를 읊고 칼을 들어. 그를 코앞에 두고 죽이겠다 알려야 해. 그것이 인간의 사명이다. 이름을 부르고 사형을 선고해야만 한단 말이야……. (떨림이 당신에게까지 옮겨붙었을까.)
 
당신이 무슨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회관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옵니다.
 
저 인간 또 저러는군,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장정이 나타나 사내를 억지로 당신에게서 떨어트리려는 순간,
 
너무나도 또렷한, 너무나도 선명한, 너무나도 굳건한 목소리의 속삭임이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내의 것이었습니다.
 
“저주가 사라질 방법은 주체를 죽이는 것뿐이라고, 친구…”
 
왜 자꾸,
 
왜,
 
자꾸,
 
밀라니가 생각나는 걸까요?
 
…….
 
병원으로 마저 향할까요?
 
리비안 르로이:(손을 강하게 뿌리치곤, 사내의 멱살을 잡아 담벼락에 짓누른다. 그리곤, 살기가 형형한 눈빛으로 사내를 꿰뚫듯 바라봐.) … 그럼 찾아서 네가 죽여. 악마가 누군지도, 실제하는지도 확실치 않으면서… 그리 두렵고 공포스러우면 말이야. 네가 찾아서 찢어 죽이든, 찔러 죽이든… 마음대로 해. 알겠어? (손에 닿는 사내의 뼈마디가 마치 불결한 것을 만진 것 마냥 거북하게 느껴져, 급히 손을 뗀 뒤 제 옷가지를 툭툭 털어낸다.)
… 구경 났나요? (제 주변을 둘러 싼 인파를 빙 둘러보곤, 병원으로 향한다.)
 
순간 사람들의 사이로 정적이 흐릅니다. 특히나 짧은 시간이나마 당신에게 짓눌렸던 사내의 얼굴은…….
 
뭐, 굳이 그런 것을 살펴볼 이유는 없었죠.
 
단지 그와 접촉한 손을 몇 번 더 털어낼 뿐입니다.
 
당신은 병원으로 향합니다.
 
[병원]
 
…….
 
병원은 환자들의 곡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생명의 숨소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곳곳을 소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구를 기웃거리는 당신을 향해 간호사가 다가와 이 이상 들어오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군요.
 
아직 무슨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짜증이 몰려옵니다.
 
리비안. 나가기 전, 시체에 대고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 (특유의 퀘퀘한 분위기에 질렸는지, 발걸음을 돌려 병원을 나서려다 발견한 시체에 눈길을 준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쩐지 시체들이 기괴한 표정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꼭, 저주 받은 것처럼요.
 
광기에 미쳐버린 얼굴들입니다.
 
전염병 특유의 반점이나 괴사는 없으나, 모두 충격적인 걸 본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SANC 0/1
 
리비안 르로이:
SAN Roll
기준치: 85/42/17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시선을 거둔 채 병원 입구로 돌아나오면, 당신은 벽에 붙은 전단지들과 익숙한 수녀복의 옷자락을 발견합니다.
 
밀라니입니다. 의사와 대화를 하는 모습은 유려하기만 합니다.
 
낮에 피곤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진심으로 병세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어쩐지…
 
리비안, 정신력 판정.
 
리비안 르로이:
정신
기준치: 85/42/17
굴림: 77
판정결과: 보통 성공
 
…….
 
공포가 느껴집니다.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온 공포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밀라니의 주머니에 리볼버나 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묘한 감정이 등줄기를 훑습니다.
 
왜일까요. 저 검은 수단이 유독 시커멓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마치 악마처럼 보입니다.
 
…리비안, 전단지를 보거나, 밀라니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리비안 르로이:(발걸음을 그녀에게 옮기기 전에, 벽에 붙은 전단지 한 장을 떼어 살펴본다.)
 
전단지를 자세히 보면, 광고물이 아닌 성서의 구절을 따온 종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악마를 대적하라
 
신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
 
종이가 많이 훼손되어 있네요. 나머지 긁자는 읽기가 힘듭니다.
 
자유 행동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신은 무슨… (작게 중얼거리다 대충 구긴 전단지를 바닥에 툭 던져놓곤, 익숙한 실루엣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곳에서 뵙네요. 병자들에게 기도라도 해주러 오셨나요? (입꼬리는 호선을 그었지만, 그 눈매는 여전히 경직된 채였다.) … 친절하기도 하셔라.
 
구긴 전단지가 바닥에 툭 떨어지면, 당신은 머잖아 밀라니와 눈을 마주합니다.
 
그의 표정이 오묘해지더니, 가까워지는 거리를 관측하다 그 또한,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밀라니 에키드너:……안녕하십니까, 자매님.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 않았는데……. (경직된 얼굴을 앞에 두고서도 그의 그 뻔뻔한 낯짝은 여전했다.) 혹, 무어라 하셨는지요.
 
리비안 르로이:아무것도. (천천히, 그리고 느릿하게 음미하듯 시선을 움직여 위아래로 훑어보인다. 저도 모르게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축여냈고) 별 중요치 않으니 말이에요. 무얼 하고 계셨나요?
 
리비안,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아니면 심리학 판정도 좋고요.
 
무엇을 보고자 하나요?
 
리비안 르로이:(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다. 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기억 못 할 리가 없을텐데.)
심리학
기준치: 85/42/17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눈 앞의 수녀는, 혹은 악마는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아까 서재에서 마주쳤던 일이나, 그 전. 휴게실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 못할 리가 없을 텐데요.
 
그의 눈동자 안쪽을 깊게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가, 겨우 '긴장'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힘이 들어간 입꼬리나 의식적인 눈 깜빡임이 관찰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행동 말고는, 평소와 같군요.
 
연기에 능숙합니다. 거짓말에도요.
 
밀라니 에키드너:(당신이 무어라 더 말한 것을 들었을 텐데, 되묻는 말은 없었다. 느릿하게 눈을 꿈뻑이며 그렇습니까. 하고 말 뿐.) ……병원의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습니다. 항상 일손이 부족하니까요. (고개가 미세하게 기운다.) 그러는, 자매님께서는?
 
리비안 르로이:저야 뭐… 이제 이 곳의 사람이 아니니까요. (오랜만에 돌아 온 고향의 분위기나 파악할 겸… 산책을 나왔다고 할까요? 하며 선선히 웃음짓는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역병이 과연 수녀님이라고 빗겨가라는 법이 있을까요? (손을 뻗어 주름 잡힌 베일의 매무새를 고쳐준다.) … 조심하셔야지요. 신의 사자라 칭하지 않으셨나요?
 
밀라니 에키드너:(손이 뻗어짐에 따라 떨어진 발 사이로 그림자가 졌을 테다. 서로의 그림자를 잇는 것처럼. 그는 손길을 피하지도 않았고 당신의 말을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변명하거나 화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무엇에 뒤흔들리나.) 예. …신의 사자이니, 신께서 저를 더 쓰고자 하신다면. 역병을 빗겨나가게 해주시겠죠.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역병을 조심하란 말을 별달리 건네지 않고선 당신이 고쳐준 베일의 끄트머리를 다시금, 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피곤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 뒤. 그가 아주 희미하게 웃음지었다.) 그러고보면 교회로 책이 몇 권 더 들어왔습니다. 관심 있으십니까?
 
리비안 르로이:(주위를 휘 둘러보며 황폐해진 마을 전경과, 신음소리와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진 병원을 응시한다.) … 그럼 신께선 저리 고통받는 사람들을 버리신건가요? 신이라는 분은… 참으로 너무하신 것 같네요. (농담이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가볍게 내뱉고선, 다시 시선을 돌려 푸른 빛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희미하게 드리운 미소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 아. (뒤이은 물음에 정신이 들었는지, 옅게 인상을 찌푸리곤 눈썹을 작게 치켜올려) 무어라고 하셨나요? 제가 잘 못 들어서요.
 
밀라니 에키드너:(그런 말에 굳이 답할 필요는 없었겠으나, 그의 시선은 당신과 함께 움직였고.) ……자매님께서는, 신을 믿지 않는 모양이십니다. (그런 말만을 내었다. 문장이 마무리된 직후 그의 눈동자에 감돌던 어떤 확신이랄 것이 참으로 기묘했을까. 당신이 잠시 중점을 놓쳐 휘청일 때 즈음엔 웃음기가 다 바래버리곤 했다.) ……교회로 책이 몇 권 더 들어왔는데, 자매님께서 관심이 있으실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손이 당신에게로 뻗어져, 그림자 사이를 이었다. 손가락 끝이 당신의 이마를 스치다. 손바닥이 잠시 그 위를 덮었다.) ……아프십니까?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이다.)
 
리비안 르로이:글쎄요. 저는 제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성정인지라. (느슨하게 입꼬리를 당겨 웃어보인다. 정말 신이 계신다면 그 분은 편애가 심하실 것 같습니다. 하며 알 수 없는 농만 덧붙였다.) … … … (점점 바래져만 가는 웃음기를 가만히 바라보자, 묘한 짜증이 제 복부를 간질였다. 그러던 와중, 어느 새 다가온 손길이 제 이마를 덮자, 뜨끈한 열감이 곧 제 가슴께를 짓눌러 얼굴이 당황스레 일그러져.)
… 농이신가요? 꼭 아프길 바라는 분처럼 말씀하시네요. (한 발자국 물러나 괜스레 날을 세우며 대꾸한다.)
 
밀라니 에키드너:……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자매님. (일그러지는 얼굴을 앞두고서 그의 손은 천천히 떨어져나갔다. 이미 당신은 한 발자국 물러나 그림자마저 떨어뜨렸는데도, 그의 손이 공중에 정체되는 시간은 길었다.) 그렇게 들렸습니까? ……그렇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만,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악마는 모두 이렇게 유창하게 거짓을 읊나. 내리깔렸던 시선이 천천히 들려 당신을 본다. 그리곤 알 수 없는 질문을 꺼낸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싫어하고, 저주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리비안 르로이:(당황해서였을까, 손 끝까지 저려오는 것만 같은 기분에 느릿하게 제 손을 움직여 주먹을 쥐었다가 펴보인다. 뜬금없이 뒤를 잇는 네 질문에, 이내 본래의 목소리와 얼굴을 하곤 눈을 가늘게 떠보여.) … 갑자기?
 
밀라니 에키드너:(그래. 갑자기.) ……혹자는 증오를 병과 같다 이야기하니까요. 그래서 묻고자 하는 것은…….
 
그때,
 
"수녀님! 잠깐 도와주셔야겠어요!"
 
하며, 뒤에서 다급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밀라니는 눈을 살짝 크게 뜨다 당신에게 양해를 구하고 뒤돌아보더니, 아.
 
몇 안 되는 장정에게 업혀 들어오는 남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짤막한 인삿말을 남기며 그는 당신의 답을 듣지도 않고 자리를 뜹니다.
 
주위 간호사와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립니다.
 
리비안, 듣기 판정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 (남겨둔 말의 의중을 파악하려든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던건지… 일단 상황파악을 먼저 하는 게 좋을텐데.)
듣기
기준치: 30/15/6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정말 착……, 매일 와서………."
 
"요즘 항상………같으시던데, ………바쁜……."
 
리비안,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말을 걸어볼 수 있겠습니다.
 
리비안 르로이:(이야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답답했는지, 걸음을 옮겨 의료진 쪽으로 향한다. 이내 예의 그 느슨한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곤, 미간을 엷게 찌푸려) 안녕하세요.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방금 함께 계시던 수녀님이 안 쪽으로 급하게 자리를 옮기셔서요.
 
의사와 간호사들이 당신을 돌아봅니다. 간호사 한 명이 입을 여는군요.
 
간호사: 특별한 일은 없지만, 요즘 병원의 일이 무척이나 바빠서요. 갈 수록 일손이 부족해서… 밀라니 수녀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거기다 저런 상태의 환자는 밀라니 수녀님이 큰 도움을 주시거든요, 어떤 치료도 통하지 않으니…… 때로는 신앙에게 기댈 수밖에 없으니까요.
 
리비안 르로이:저런 환자라니… 혹시 요즘 도는 역병의 형태가 어떻게 되나요? (미약하게 미간을 찌푸리고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물약이나 약초들은 아예 효과가 없는건가요?
 
간호사: (낯빛이 더욱 나빠진다.) 전염병이라고는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본인이 아프다는 사실도 알지 못해요. 육체적인 고통보단 정신적인… 변화가 먼저 이루어지거든요. 특이하죠? 그래서 스스로는 자기 자신이 변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거든요.
 
의사: (이야기를 듣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어느 순간 서서히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가지더군요. 미움과 증오로 미쳐가고, 그러다 독이 온 몸에 퍼진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다가…… 불시에 사망하고 맙니다. (한숨을 삼킨다.) 그러니 저희로선 이 병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병의 공통점이 그거 하나거든요. 누군가를 지독하게 싫어하고 저주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리비안 르로이:그러니까… 정신적인 붕괴가 먼저 찾아온다는 거네요. (특이하긴 하네… 작게 중얼거리곤 그녀가 남기고 간 말을 함께 곱씹어본다.) 보통 뇌 감염은 오염된 물에서부터 시작되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당분간은 마을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접하라 권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은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의료인들을 천천히 번갈아가며 바라보곤) … 그래서 보통 밀라니 수녀님은 언제쯤 집에 돌아가곤 하시나요? 설마 병동에서 생활하시진 않으실거고.
 
간호사: 그런 것을 저희도 당부하고는 있지만, 사실 마을 주민 분들께서 얼마나 그런 것을 지키고 계시는 진 모르겠어요. 저희는 병동 바깥까지는 신경을 쓰진 못하니까요.
 
의사: 밀라니 수녀님께선 저녁 전에 돌아가시고는 합니다. 오늘은 꽤 늦게까지 계시는 편이시군요. 아침과 늦은 밤엔 성당에서 기도를 하시고, 무엇보다 새벽부턴… 고해실에 계시니까요. 그것을 제외하신다면 병원에 많이 찾아와주시는 편입니다. (그러다 다시 실려오는 환자들을 보며 안경을 고쳐 쓴다.) 저희는 이만 가보아야겠습니다. 자매님께서도 역병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환자를 향해 잠시 쉬고 있던 간호사와 의사들은 자리를 뜹니다.
 
홀로 남겨졌군요, 밀라니.
 
이만 집으로 돌아갈까요?
 
그도 아니라면, 다시 밀라니를 찾아갈까요?
 
자유 행동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어느 새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다, 잠시 미간을 엷게 좁히곤 밀라니를 찾아 나선다.)
 
어쩐지 많이 피로한 기분을 가지고, 당신은 밀라니를 찾아 나섭니다.
 
당신은 머잖아 시체들을 한데 모아 처리하는 공간 앞에 서 있는 밀라니의 뒷모습을 발견합니다.
 
이제는 해가 거의 저물어 하늘은 붉다가, 보랏빛으로 물들고…….
 
수많은 시체를 땅 아래 파묻을 수 없어 사람들은 한 곳에 시체를 모아 불태워버리는 식으로 그를 처리하곤 했습니다.
 
그 중에는 당신의 아버지도 있었죠.
 
밀라니, 당신은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리비안 르로이:(서늘한 저녁 공기에 섞여 불어오는 그을음 냄새가 코를 찌르자, 아직 생생한 기억이 뇌리를 스쳐 눈 앞에 떠오르는 듯 했다.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전국에 돈다던 역병의 흉흉한 분위기 때문인지 현저히 적은 수의 참관객이 함께한 기묘한 분위기의 장례식. 살아생전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가득했던, 언제나 꼿꼿하시던 그 모습과는 달리, 초라한 모습으로 불 태워지던 혈족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 만다.)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를 묻는다면. 원래도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니까요.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던 때가 생생합니다.
 
허공으로 화하는 검은 잿더미를 봤을 때의 당신은 어떤 허무함을 느꼈었나요.
 
저무는 빛, 드리운 어둠 가운데 밀라니는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발견하고도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고개 돌려 앞을 바라봅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밀라니 에키드너:……이 사태를 막을 자가 있다면, 그것은 신밖에는 더 존재하지 않겠죠. (역시나 뜬금 없는 말 뿐이다.)
 
리비안 르로이:(네 물음에 가만히 입을 다문다. 이내 허공을 응시하며 느슨하게 웃어보여.) … 그렇지 않으려나. 정말 신이 있다면 말이죠.
 
밀라니 에키드너:이 자리에 현현할 수 없을 뿐이지요. (잠깐의 침묵.) 자매님께선 고해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리비안 르로이:제가 말입니까. (왜인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제가 그런 것을 할 명분이 아직까지는 생기지 않아서요.
 
밀라니 에키드너:사람은 누구나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니,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그 근원을 들고 찾아가는 것도 좋겠지요. (앞을 바라보던 시선이 한 차례 깜빡이더니 고개 돌려 당신을 보았다. 알 수 없는 눈빛이다, 여전히.)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리비안 르로이:(제가 고해할 것… 굳이 꼽아보자면 제 눈 앞에 있는 신의 사자와 함께 입을 맞추고 탐하며, 정을 통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 뿐이었다. 또한 자꾸만 당신을 찾아오는 이유도. 정말 그 뿐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이런 욕된 망상들을 장본인에게 여실히 내뱉을 수는 없었기에.) … 글쎄요. 아무래도… 제가 수녀님께 관심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저 농담인듯 진담인듯, 의중을 알 수 없이 느릿하게 미소지어보인다.)
 
밀라니 에키드너:(당신의 그 생각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 이전에. 밀라니 에키드너는 애초에, 예전의 그 일을 기억하고나 있는 걸까. 느린 미소를 앞에 둔 채 그가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때로는 흘려보내야 하는 기억이 있기 마련입니다, 자매님. (그래. 잊어버린 건 아닌 모양이었는데.)
 
리비안 르로이:저는 기억을 너무 잘 흘려보내서 문제지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양, 가늘게 뜬 시선과 함께 늘어뜨린 입꼬리를 지어보인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밀라니 에키드너:(이제는 모두 그림자 진 세상이라, 당신과 자신을 쉽게 분간지을 수 없었다. 우린 닮은 점이 꽤 되었으니까, 더더욱.) ……수녀는 사람들의 고해를 들어주지만, 제 고해를 들어줄 사람은 없군요.  이외로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뒤돌았다.) 성당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자매님께서는, 그러니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리비안 르로이:제가 들어드릴까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튀어나온 말이었다. 어느 새 컴컴해져 눅눅하게 그림자 진 인영을 바라보다, 네 뒤를 좇는다. 이윽고 손을 뻗어 느릿하게 네 손목을 그러쥐고는) 들어드리죠, 제가. 어떠신가요?
 
밀라니 에키드너:(붙잡힌 손목으로부터 기묘한, 무언가가, 흐른다. ……그것은 밀라니 에키드너가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 감정이나 감각은 아니었다. 데일 듯 뜨거웠고 얼어붙을 듯 차가웠으며 날카롭기도 했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모래 알갱이 같기도 했으며, 또. ……그가 당신과 눈을 마주쳤다. 밤공기에 물들어 가라앉은 푸름과 형형한 붉음이 뒤섞였다. 그런데도 색이 섞일 일은 없었을 테다.) ……신의 사자가, 인간에게 말입니까. (헛웃음이나 한숨을 닮은, 작은 숨 소리가 얼핏 흘렀다.)
 
리비안 르로이:당신도 인간이면서. (작은 짐승을 닮은 한숨소리가 제 귓가를 간지른다. 그래, 그 밤. 그 밤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리였다. 제게 매달리고선 달뜬 숨을 내쉬던 그 밤. 서로 다른 숨이 한데 모여 하나가 되었던 그 밤. 리비안 르로이는 다시끔 제 눈동자를 밝힌다. 형형하게 빛나는 그 눈동자. 그 누군가는 악마와도 같은 눈빛이라 칭했던 그 눈을.) … 안 될게 뭐가 있나? (아주 조금씩, 상대가 알아채지 못 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뱀이 사냥감을 조여들듯, 리비안 르로이는 신의 사자라 칭하는 수녀의 손을 맞잡는다.)
… 뭐… (고개를 뻗어, 그 고귀한 귓가에 속삭이듯 느릿하게 덧붙인다.) … 사실 나는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도 상관 없긴 해.
 
밀라니 에키드너:(손가락이 얽히는 것은 확실히 그 날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으므로, 그때에 밀라니 에키드너가 수없이 숨을 들이켰던 순간처럼. 다만 그보다는 더욱 침잠한 채 그가 숨을 들이켰다. 속닥이는 말에 간지러움 일지 않고자 눈을 감았다. 한 차례의 파도가 지나간다, 물결이 술렁였다. 그리고, 기어코, 그가.)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마주하듯 형형한 눈을 떴다. 그 날 밤처럼.)
 
리비안 르로이:글쎄… (인상을 엷게 찡그리곤,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맞잡은 손을 제 쪽으로 끌어당겨 형형하게 시선을 더 가까이 두고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난 당신이 좋다는거야. 이름도 출신도 직업도 모르는 이를… 이렇게나. (엷은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틈은, 자칫하면 선을 넘어버릴 정도의 아주 근소한 거리였다. 리비안 르로이는 당장이라도 그 선을 넘어 제 목구멍으로 제 앞에 있는 여인을, 그 날의 밤과 같이 마시고 씹어 삼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물론 그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조금의 실패도 원하지 않았기 에) … 대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응?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밀라니 에키드너:(이름도, 출신도, 직업도 모르는, ……어쩌면 악마일지도 모르는 자를. 다만 그는 당신의 그런 마음을 언뜻 눈치챘던 사람처럼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엮은 손을 풀었다. 온기 옅게 남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두통이 엄습한 까닭이다, 어둠이나, 기억이나, 혹은 감정과 깨달음처럼. 위태로운 선이 사이로 그어졌으나 본디 새까만 것은 빛이나 선의 구분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습성이 있기에……그는 한 걸음 물러선다.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선 앞에서.) 저는, 신의 부름을 받아 이 마을로 온 수녀입니다. 아시다시피, (가다듬는다.) 그런 마음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요.
……밤이 늦었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마침표를 찍어본다. 보이지 않는 발 밑 아래에다.)
 
리비안 르로이:… (순식간이었다. 그가 선을 넘은 것은. 자신을 거부하고, 자신과의 기억들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반항심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한낯 치밀어오르는 작은 불꽃을 제어하지 못한 탓일까. 리비안 르로이는 결국 고개를 뻗어 신의 사자에게, 아니 제 눈 앞의 그에게 입 맞춘다. 상대가 어찌 대응하지 못할 정도의 가볍고 빠른 입맞춤이었지만, 그녀는 만족했다는 듯 겹쳐잡은 손을 떼고는, 두어 걸음 그에게서 멀어진다.)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입가에는 예의 그 미소를 가볍게 띄울 뿐이었다.) 책은 내일 함께 보도록 할까요?
 
밀라니 에키드너:(입술이 맞는다. 그것은 순간 세차게 불던 바람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던, 파도가 밀려오는 것만큼이나 막아낼 수 없던 것이었기에. 그는 이어 코끝을 스쳐오는 풀잎 향이나 발 밑이 젖어오는 감각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곧 떨어진다. 당신이 마주한 그의 얼굴은 어떠했지? 적어도, 이전과 같지는 않았다. 손을 든다. 손등이 그의 입술을 살며시 짓누르며 움직인다, 남아있는 감각을 지우려는 듯 행동하나 그것으로 기억마저 잊힐 리가. 바람이 잦아드나 나뭇잎 부딪혀 흔들리는 소리는 한참 멎지 않았다. 여전히 속 파헤칠 수 없는 눈이 당신을 올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손등 아래에서 입술이 움직여 그 사이로는, 건조한 음성만 흘러나올 뿐이다.) ……만약, 제가 내일 할 일이 없다면요. (이전과 같은, 그렇기에 이전과 결코 같지 않을 목소리다. 이윽고 그가 완전히 뒤돌아 장소를 벗어난다. 그림자가 녹아들다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리비안 르로이:(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내는 모양새가 퍽 거슬렸지만, 당장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가 원했던 행동을 하였고, 그로 인해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어둠과 함께 사라지는 인영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내일 당신이 할 일은 없길, 신께 빌어볼게요. (바람이 분다. 제 머리칼을 흩날리는 것은 꽤나 성가셨지만, 살갗에 시원함을 남기고 떠나는 밤공기가 꽤나 즐거웠다. 그녀에게 제 존재가 마치 밤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며 한 층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뗀다. 이토록 즐거운 기분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밤 공기가 시원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들뜨듯 가벼웠던 적이 얼마만의 일이었는지요.
 
밀라니 에키드너.
 
밀라니.
 
……밀리.
 
이제는 그가 진짜 수녀이든, 악마이든. 당신에겐 상관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는 당신의 손 안에 쥐어지고 말 테니까요.
 
4. 집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여도 마을에서의 일이 떠나가질 않습니다.
 
밀라니의 모습 또한. 악마, 저주, 주체.
 
밀라니의 수상쩍은 행동들.
 
주체를 죽여라. 악마를 죽여라.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련지요. 그러면 이 모든 끔찍한 저주가 사라지기라도 하나?
 
밀라니가 어쩌면 이 일의 원흉일지도 모른다 이야기 하는 당신을 믿어줄 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지만요.
 
병원에서 보았듯이 밀라니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신뢰는 두텁기 그지 없었으니까…
 
이 일의 결정권은 오롯이 당신에게만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에 생각을 잇다보면 잠이 몰려옵니다.
 
아, 모르겠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밀라니를 찾아가봅시다. 얼굴을 봐야 무엇이든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
 
꿈을 꾸었습니다.
 
무언가 당신의 목덜미를 부드러이 감싸쥐더니, 당신의 손에 칼을 쥐여줍니다.
 
눈앞에는 밀라니가 있습니다. 당황한 얼굴의 밀라니입니다.
 
그의 심장에 칼을 찔러넣습니다.
 
아, 이것으로 당신은 오롯이 자유가 됩니다.
 
자유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탄내가 당신의 코를 찌릅니다.
 
어렴풋이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방안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고 공기 중에 열기가 떠다닙니다.
 
불이야!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봤자 이곳에 화재를 진압할 인원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마을의 몇 안 되는 생존자가 양동이로 물을 퍼 창밖에서 당신의 집에 난 불을 끄려는 얄팍한 시도를 하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턱 없이 적은 수입니다.
 
탈출할 수 있을까요. 시도라도 해볼까요.
 
그러나 도망치려 하면 점점 시야가 감깁니다. 숨이 찹니다.
 
뛰쳐나간 방 바깥은 화마가 지배했습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습니다. 고통에 바닥을 깁니다.
 
그 때 누군가 당신을 끌어안고 창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신선한 산소가 폐부에 차고 나서야 죽을 듯이 기침을 내뱉었습니다.
 
여전히 불에 타오르는 집이 보이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앞에는 밀라니가 있었습니다.
 
재에 그을린 모습으로 어쩐지 복잡한 표정입니다.
 
밀라니 에키드너:(한참 뒤에서야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그을린 곳곳을 눈에 담고 있었다.)
 
리비안 르로이:… (콜록, 콜록. 매캐한 연기가 폐부를 가득 메우고 숨이 멎을 때즈음, 어딘가 익숙한 체향이 코 끝을 찌른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이야.) … (느릿하게 눈을 떠보인다. 밝은 빛의 눈동자는 온전히 나를 담고 있구나. 리비안 르로이는 입꼬리를 옅게 늘어뜨리며 웃어보인다.) … 덕분에? (신, 천사, 악마… 무엇 하나 믿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밀라니 에키드너:……덕분에? (당신이 직감한 것이 있었듯, 그 또한 당신이 그 무언가를 직감했음을 알았다. 그러니. 당신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끊었다. 그는 당신을 구출하고 나왔을 뿐, 웅크려 기침을 토해내는 당신의 등을 두드려주지도, 그렇다고 눈높이를 맞추려 주저앉지도 않았다. 오롯이 서서, 당신을 내려다볼 뿐.) 다친 곳은?
 
리비안 르로이:(느릿하게 제 주먹을 쥐었다 펴보다, 퍽 괜찮다고 느껴졌는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 없는 것 같은데. 이것도 덕분에? (갑자기 잠에서 깬 탓인지, 제 시야에 묻은 그을음 탓인지. 흐린 시야를 정리하려 느릿하게 마른세수를 해보인다.)
 
밀라니 에키드너:(자리에서 일어나 마른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당신을 보던 그는 잿가루 묻은 뺨을 유심히 바라보며 한순간 손가락을 움찔거렸으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몸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가 닿는 일은 없었다. 그는 무례하다 싶을만치 단호하게 등을 돌리고선, 바로 자리를 떠났다. 당신이 붙잡을 새 없이.)
 
정신을 일깨우려 하는 도중 드리웠던 그림자가 떠납니다.
 
아직까지도 흐릿한 시야 사이, 흔들리는 검은 베일을 봅니다.
 
등 돌린 저 앞에 있을 푸른색 눈동자를 상상했나요?
 
고개를 다시 내려봅니다.
 
밀라니가 머물렀던 자리에 무언가, 떨어져있었습니다.
 
관찰 판정.
 
리비안 르로이:(미간을 좁히곤 그가 머물렀던 자리를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
 
리비안은 그 자리에 다 탄 성냥과 기름이 떨어져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불을 지른 자가 밀라니인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고요.
 
SANC 1/1D2
 
리비안 르로이:
SAN Roll
기준치: 85/42/17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치 1 감소
 
그렇다면 왜?
 
기껏 죽이려 해놓고, 도대체 왜?
 
아, 하지만 이것으로 당신은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저 자는 악마야. 밀라니는 확실히, 악마야.
 
당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당신이 종이를 보아서? 당신이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 같아서? 그도 아니면,
 
당신과 다시 입 맞추고 말아서?
 
문득 당신은 불에 의해 쓰러진 집의 나뭇더미 아래에 어떤 물건이 떨어진 걸 발견합니다.
 
입니다. 식칼. 품에 숨길 수 있을 만한 크기와 누군가의 명치에 찔러 넣으면 단박에 숨통을 끊을 만한 날카로움.
 
……당신은 불타버린 집을 뒤로 하고 마을 회관으로 이동합니다.
 
여분의 이불과 베개를 받았지만 잠이 올 턱이 없습니다.
 
정말로 그가? 정말로 당신을 해치려는 목적으로?
 
회관에서 잠시 심경을 갈무리하고 있자면 몇 개 전부 불타지 않은 당신의 물품을 마을 사람이 가져다줍니다.
 
위로와 응원을 약하게나마 전달도 하네요.
 
그렇게 짐을 바라보면 처음 보는 것이 있습니다.
 
굉장히 오래된 책입니다. 공책일까요? 수기?
 
마을 사람: 힘 내, 르로이. ……챙길 수 있는 것은 다 챙겨온 것 같아.
(그러다 당신의 시선이 책으로 향하면.) 아. 그거. 화재로 무너진 곳에서, 박살난 책장 밑에 깔려 있었어. (하며, 이후로도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건네며 자리를 뜬다.)
 
……리비안, 무슨 행동을 할까요?
 
리비안 르로이:(위로의 말들에 대강 고개를 주억거리며 귀 기울이고 있음을 알린다. 방금 집이 타 버린 사람이니, 대충 반응해도 딱히 뒷 말은 안 나오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그을음이 묻은 공책을 집어든다. 후, 대강 불어낸 공책 표지를 살피곤 책을 펼쳐들어.)
 
그을음을 털어내고 책을 펼쳐보면,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 누군가는 선택 받았다고 한다. 저주와 악마와 질병을 내쫓을 선택을 말이다.
 
저주와 악마. 악마라 일컫는 이들이 발을 딛는 곳의 풀은 사그라지고 죽어간다.
 
다른 이름으로는 ‘마녀’라고 불린다. 저주와 마녀는 생각보다 밀접한 연관을 지녔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자신이 몸 담근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저주의 침식을 막기 위해서는 악마와 마녀를 향한 퇴치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름을 부르고, 사형을 선고하는 것. ]
 
……지능 판정.
 
리비안 르로이:(느릿하게 시선을 껌뻑이며 골똘히 생각해본다.)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8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고보면,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때가 밀라니가 성당에 도착한 날과 동일함을 떠올립니다.
 
소름 끼칠 정도로 기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새벽이 무르익지만 잠은 여전히 오지 않습니다. 뒤척이기를 수도 없이 몇 번.
 
그런 당신의 곁에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누구지?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익숙합니다. 수도복이 사락거리는 소리.
 
그렇군요.
 
다시 밀라니입니다.
 
뭘 하려는 셈일까요.
 
가만히 지켜볼까,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당신이 나를 방해해.
 
어딘가 회한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이어서, 당신의 목을 조르는 손길.
 
숨이 사라집니다.
 
리비안, 여기서 근력 롤을 굴려 저 손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리비안 르로이:… … … (핏대 선 손에 힘을 주어, 제 목을 조이고 있는 아귀를 떨쳐내려한다.)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강한 힘으로 상대를 밀쳐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모자란 산소를 들이키려 급하게 숨을 들이키노라면,
 
허탈한 숨소리가 귀에 들어오나 싶을 무렵. 곧장 인기척이 사라졌습니다.
 
꿈이었을까요?
 
하지만 목에 남아있는 감각만큼은 너무도 선명합니다.
 
정말로, 나를, 죽이려 했어.
 
끔찍하고도 어쩌면,
 
어쩌면, 리비안.
 
황홀한 기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리비안 르로이:… (어느 새 자유로워진 제 목덜미를 더듬거리며 당신의 흔적을 좇는다. 정말, 정말로 날 죽이려 했어. 어째서? 내가 당신의 방해물이라?) … … … 하-. (리비안 르로이는 어쩌면 희열감이, 또 어쩌면 황홀감이 섞인 짧은 숨을 내쉬곤, 느릿하게 이를 드러내 웃어보인다. 제 사냥감이라 생각했던 이가, 되려 제 목숨을 노린다. 이 얼마나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일인가.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 입술에 새겨진 그 날의 흔적을 더듬으며 달뜬 숨을 고른다.)
 
한참 흥분감을 가라앉히다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신의 눈 앞을 채우던 감정은, 그리고 장면은 그 날의 연속된 기억.
 
회관의 창문 너머로 아침이 밝아옵니다.
 
그림자가 물러나고 햇빛이 발끝을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곧 마지막을 직감하며,
 
일어납니다.
 
5. 고해소
 
…….
 
사람들은 정말로 말세라며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성당에 기도를 하러 사라졌습니다.
 
시간은 미사가 시작되기 30분 전입니다.
 
딱 이 시간부터 고해소에 밀라니가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밀라니와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해, 고해성사라.
 
그렇다면 무엇에 관한?
 
저주를 몰고 다니는 주체를 죽이라는 사내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악마를 죽이라는… 그를 위해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던…….
 
아,
 
밀라니를 죽일 거라는 고해?
 
혹은,
 
…….
 
성당에 도착해 고해소로 향하면 작은 공간이 나옵니다.
 
신자가 들어가는 장소에 몸을 욱여넣으니 닫힌 고해창 너머 밀라니의 잠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밀라니 에키드너:고해 성사를 하러 오셨나요?
 
자, 말해보세요. 당신은 무엇을 고백하기로 했었나요?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나는 오늘 당신을 죽일 겁니다.
 
선고입니다. 악마와 마녀를 향한 선고입니다.
 
단두대는 당신의 손에 쥐여져 있습니다.
 
리비안 르로이:그러게 말이에요. 난 무얼 하러 왔을까… (반쯤 감긴 게슴츠레한 눈으로 고해창 너머의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입을 뗀다. 어제의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예의 그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무표정으로 날 상대하고 있을까. 가슴께가 뭉친듯 뻐근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 입술을 축였고)
무슨 할 말, 없나?
 
밀라니 에키드너:(고해창 너머로 건조한 침묵이 흘렀다. 비가 오지 않은 지도 한참 된 마을의 공기는 외부인이었던 밀라니 에키드너를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들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이제는 풀꽃 향이나 음식 냄새가 아니라 잿더미 향이나 썩어가는 사체 냄새가 뒤섞이는 시대라서…… 밀라니는, 다만 과거를 추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처음부터 알았겠죠, 내가 당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그러니 내가 할 말을 묻기보다 내가, 당신에게 물어야겠지…. (자신은 기필코,)
리비안 르로이,
당신은 날 왜 찾아왔지?
 
리비안 르로이:당신을 알고 싶어서. (처음부터 이야기 할 것은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곧바로 대꾸하고선, 마치 제게 그 푸른 눈동자가 보이기라도 하는 냥, 고해창 너머를 그저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왜 죽이고 싶었고, 왜 나를 모른 척 했으며,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당신, 사실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하며 분위기와 맞지 않는 농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밀라니 에키드너:(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 물음은 그동안 밀라니 에키드너가 당신에게 답하지 못한 수많은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을 테다. 때문에 이어진 농에도 평소처럼 무시하듯, 답하지 않은 것일 테고.) ……당신은 그 날에도 그랬지, 질문이 많아. (아니면 사소한 문장들이. 보이지 않을 얼굴을, 사이로 창을 앞에 두고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곧 알려줄 테니……. …예배당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나.
 
리비안 르로이:반대로 당신은 질문이 없어도 너무 없었지. 당신에 관한 정보도 없었고… 오죽하면 내가 여기에 와서 당신 이름을 알았겠어? (당신이 말한대로 정말 신이 있다면… 우린 운명일지도 몰라, 알아? 하며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 빨리 오는 게 좋을걸. 난 참을성이 그리 좋지 않아서 말이야.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예배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잠시 문 앞에 멈춰서고는) … 아, 맞다. 당신은 존댓말이 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 (제 모습이 보이지도 않을텐데 불구하고, 그는 고해창 너머 당신을 향해 느슨하게 웃어보이곤 방 밖으로 나선다.)
 
고해창 너머에서 침묵이 흐릅니다. 그 어떤 대답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막 고해실을 벗어날 즈음,
 
리비안. 듣기 판정이 가능합니다.
 
리비안 르로이:
듣기
기준치: 30/15/6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기도문을 중얼거리는 밀라니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Agnus 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nobis pacem.
 
……예배당으로 향합니다.
 
6. 예배당
 
고해소를 빠져나와 성당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신자석은 텅 빈 상태입니다.
 
성당 내부를 살피면 단상 위 제대에 놓인 일기장이 보입니다.
 
실수로 떨어트린 듯 구석에 아슬하고 어설프게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리비안, 일기장을 읽어보나요?
 
리비안 르로이:(단상 쪽으로 다가가 일기장을 펼쳐든다.)
 
일기장을 읽으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xx. xx.
 
마녀를 죽여라.
 
이것이 내게 부여된 사명이다.
 
xx. xx
 
뱀의 아버지의 미움을 받은 이들은 이 멸망의 주체로 작용된다.
 
그들이 바란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세간은 그들을 ‘마녀’와 ‘악마’라 칭한다.
 
xx. xx.
 
찾았다. 마녀다. 그러나,
 
왜 저 자가 이곳에 있는지.
 
리비안.
 
그는 바로 나를 알아보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 날 밤, 우리는,
 
xx. xx.
 
‘마녀’란 무엇인가?
 
뱀의 저주를 대대로 받은 집안은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한 마을을 궤멸시킬 수가 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단 하나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이유도 모르고 죽임당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xx. xx.
 
대의를 위한 살인.
 
그럼에도 신부님, 제가 망설임이 든다고 말씀드린다면.
 
xx. xx.
 
이건 세상을 구하는 일이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나만이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앞으로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그러니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xx. xx.
 
그럼에도 나는 왜 망설이는가.
 
고작 하룻밤 사이의 인연이랄 것이,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xx. xx.
 
죽여야만 해.
 
xx. xx.
 
신음하는 환자를 본다, 전염병으로 곳곳에 널린 시체를 본다.
 
방해물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까.
 
그건 제 나약함입니다.
 
이제는 막다른 길입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뜻을 이어 제가 해내겠습니다.
 
그가 마지막 저주를 받은 자니, 그만 없다면,
 
그가 없다면.
 
그가 없어진다면.
 
…….
 
SANC 1D2/1D4+1
 
리비안 르로이:
정신
기준치: 85/42/17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치 2 감소.
 
확실한 단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그래, 내가 악마야.
 
리비안, 당신이 역시나, 악마입니다.
 
이 모든 전염병을 일으킨 장본인.
 
뱀의 저주를 받은 사람.
 
마을을 멸망시키는 자.
 
당신이 마녀입니다.
 
그리고 느껴져오는 인기척에 제단 앞에 서 있는 당신이 등을 돌리면,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과 성당 문 입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모든 빛을 온몸으로 받고 서 있는 신의 사자.
 
밀라니가 당신을 봅니다.
 
칼에 손을 쥔 채로요.
 
그는 새삼스럽게 충격받은 표정을 그리지 않으나, 잠시 흔들리는 눈을 감추고자 눈을 감았죠.
 
그 모든 상념과 감정조차 전부 내려놓은 얼굴로 말합니다.
 
당신에게 고해합니다.
 
사형 선고입니다.
 
나는,
 
밀라니 에키드너:……오늘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이제 단두대는 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리비안 르로이:하-. (그는 감출 수 없는 조소를 내지었다. 아니, 사실 감출 의도도 없는 모양새였다. 그는 그렇게 단말마와 같은 웃음소리를 내지르더니,) … … … (일기장을 손에 들곤 눈 앞에 보이는 제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또각또각, 미끄러질듯 깨끗한 대리석의 바닥과 제 구두굽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예배당을 울리고) … 그래서, 내가 악마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느슨하게 미소지으며 작게 덧붙인다. 이제 감출 것이 무엇 있겠나. 리비안 르로이는 땅에 일기장을 떨구곤,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제 목숨을 노리는 자의 뺨을 감싼다.) … 있잖아, 밀라니. 나를 죽이고 싶어? (바람이 새는 듯한 그 야살스러운 목소리와 번뜩이는 홍안은, 오롯이 당신만을 향한다.)
 
밀라니 에키드너:(악마의 속삭임에 흔들리지 마라, 넘어가지 말아라. 항상 제 어머니가 속삭이던 말씀이셨지. 그러니 이제는 그 손길을 치워낼 수밖에 없었다. 뺨을 감싸는 손을 거둬내며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목 위로 칼날을 겨누었다. 몸짓엔 흔들림 없었으나 당신이 마주하는 시선은, 어쩌면, 아마도. …흔들리고 있었을까.) 그것은 저주, 뱀을 도살해 그들의 아버지인 이그의 저주를 받은 자가 있었지. 대를 거듭해가며 점점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가끔, 광기에 휩싸여 태어나는 자들이 있어. 딱 당신같이 붉은 눈을 가진 자들 중에. (딸아, 신화 속 마녀를 주의하거라. 붉은 눈을 가진 자들을 멀리 해. 네가 손을 쓸 필요 없이 어머니가 다 해결할 것이야. 그런 말씀을 하시며 제 머리를 쓰다듬던 당신은 어떻게 고꾸라지고 마신 건지. 오롯한 시선을 마주한다. 왜 나는 그 주홍빛 조명 아래에서 붉은 눈을 곧장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조명 때문이라고, 취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붉은 피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을까. 왜, 나는, 그날. ……당신을 죽이지 못했을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눈에 서렸던 흔들림이 옅어져갔다.) 그래. 당신의 생은 그 자체로 이니까.
 
리비안 르로이:… (네 눈빛이 조금은 흔들렸을까?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을 응시하다, 시선을 내려 제 목에 겨눠진 칼날을 바라본다. 또 다시 심장께가 뻐근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손목의 맥은 살갗을 뚫을 것 마냥 요동치고 있었고. 아, 역시 나는 너를…) … … … (잘 벼려져 있는 모양새가 퍽 우스워 또다시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어버린다.) 있지, 잘 생각해봐. 그게 과연 내 탓일까?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내 잘못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거… 나는 너와 같은 신의 자식이야. 마땅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천천히 제 손을 올려 제 목에 겨누어진 칼날을 양 손으로 감싸쥔다. 살가죽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제 눈을 닮아 검붉은 액체가 창백한 피부를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다. 그래 그 영감쟁이 하며… 아무튼 제 혈족에겐 도무지 정이 안 가는 탓이 있었네, 하며 또다시 느슨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밀라니 에키드너:(감싸쥔다, 스스로. 그늘 아래에서도 자리하는 형형한 붉은 것이 뚝, 뚝, 선뜩이는 것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칼자루를 쥔 그의 손까지 와닿지는 않았으나 비린 향으로부터, 당신의 눈빛에서부터 이미 제 온몸에 번지고 말았으니.) 그러므로 당신은 이미 신의 자식이 아닌 뱀의 자식이나니, 잘못한 것이 없다 한들. 당신을 죽여야… 세계는 구원받는다. (그러니 차라리 신께서는 인간의 형태로써 이용하지 마시옵고 누군가를 부숴뜨려 거대한 칼날을 이루시지, 지성도 인격도 없는 도구로 사용하시지. 차라리. 피 흘리면서도 웃는 당신의 모습은 확실히 인간과는 멀어보여 그는 손에 다시금 힘을 주었다. 흔들리지 마, 흔들리지 마, 밀라니 에키드너.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이 제 등 뒤에 달려있었다. 마른 입술을 뗀다. 돌연 말의 꼬리를 튼다.) 그래, 당신은 잘못이 없지. 태어난 것이 죄인 것은 모두가 같지만, 그 중 당신만이 용서받기가 힘들다는데. 그러니 내가. ……그래서 내가. 당신만을 위한 살인자가 되어주겠다는데. 리비안 르로이. (눈이 마주친다. 그러면 그 순간 그는, 선명하게 웃음짓는다.) 내 가슴에… 당신을 박겠다잖나. 못처럼. (그 기저에 과연 어떤 감정이 깔려있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리비안 르로이: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주면 안 될까? 당신 말마따나 나는 곧 당신 손에 죽고... 그게 당신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 될텐데.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줄 순 있잖아. 하며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곤, 칼을 쥔 당신의 손을 강하게 내려친다. 금속성의 날붙이가 떨어져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고, 그 순간 당신의 양 손목을 단단하게 붙잡아.) … 있지. 그 누구도 나를 용서한다느니 죄를 지었다느니, 그런 소린 듣고 싶지 않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잘못은 하나도 없어. 허나, (리비안 르로이는 숨을 고른다. 여태까지 살아 온 짧다면 짧은 삶 속에 이리도 살아있음을 느끼던 순간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토록 자신을 원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설사 그것이 제 목숨이라도 말이다. 그 순간 시야에 환히 비춰지는 미소가 제 폐부에 박혀들고, 리비안 르로이는 그저 굴복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에겐 밀라니 에키드너, 그가 악마요, 천사라. 또 신이었다. 사람이 제 목숨을 스스로 바치게 만드는 존재가 그들 말고 달리 또 있으랴.) … 당신은 악마야. 그런 말을 듣고서 내가 목숨을 구걸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단단하게 당신의 손목을 붙든 손에 힘을 주어 제 가슴팍에 얹는다. 처음부터 당신에게 못박힌 시선은 옮겨질 생각이 없다. 리비안 르로이는 그저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감정을 고한다. 그것이 혹 애증이요, 사랑일지는 아무도 모를테지만)
목을 찔리고 싶지는 않아. … 추하게 가고 싶진 않다는 뜻이야. (그저 입꼬리를 늘어뜨려 느슨하게 웃어보인다. 항상 그랬듯이.)
 
밀라니 에키드너:(마지막 기억이 무슨 소용이지?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밀라니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칼이 나뒹구는 손길 이후에서야 손목을 아프게 붙잡아오는 감각이 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당신에겐 잘못이 없지. 하지만 당신은 억울해하지 않는다, 분개하지 않고, 다만 끝까지 제게 달큰한 음성을 속삭여, 제 이성이며 감성을 흐리게 만들어서. 하지만. 다시 다잡아, 밀라니 에키드너. 죽은 어머니가 내게 무슨 말을 하셨는지, 나는 그때 무슨 다짐을 했으며 내가 구해야 할 목숨이 몇인지, 고작해야 이까짓 감성에 휘둘려서 세계를 정녕 멸망의 아가리로 밀어넣겠느냐고. 그의 손이 당신과 닿았을 때, 기어코 그 아래에서 박동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의 웃음은 온 데 간 데 없이 선명한 일그러짐만 남겨져있었을 테다. 짓씹듯 말한다.) 내가 악마가 되어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당신의 악마가 되어주지. 부드러운 말? 아니면 다정한 손길? (당신의 가슴 위로 올라간 제 손이 한순간 움찔거리다 그 위를 쓸었다. 미세하게 내려갔던 고개가 들려 다시금 눈을 마주한다.) 그도 아니라면, 그때처럼의 입맞춤?
……목을 찌르진 않을 것이다. 난 당신의 심장을 꿰뚫을 테니까.
 
리비안 르로이:(제 가슴팍 위를 쓰는 손길에 엷게 미간을 찌푸린다. 제가 이런 걸 원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래 너는 꿈에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손을 뻗어 구겨질대로 구겨져 주름잡힌 네 미간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 됐어, 이제 다 질려. (무슨 변덕인지 저도 알 수 없었다. 네 말 대로 내가 악마인건지… 사실 그리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의미없이 대치하는 이 상황이 지키고 질릴 뿐이었다. 목표가 없는 이는, 절대 목표가 뚜렷한 이를 이기지 못한다. 리비안 르로이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엔 달려들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기에) … … … (느릿하게 손을 뻗어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공연히 저를 향할 것임을 알면서도 네게 건넨다. 그래 너는 나를 죽여 신의 사명을 다 할 것이라, 그리고 나는 네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겠지. 네가 원하든, 감히 원치 않더라도. 네 숨이 다하는 날까지 넌 나를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네 마음대로 하렴. 너는 내가 죽어서도 이해하지 못할 네 사명을 따라 숨을 앗아가고, 네 심장에 나를 묻어. (리비안 르로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부던 노력 하지 않아도 평생 네 뇌리에 박혀 일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인데, 육신을 대가로 하는 한 번 뿐인 거래는 그에게 그닥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밀라니 에키드너:(그래, 기필코 당신의 가슴을 관통할 칼날을, 그가 쥐었다. 피투성이인 손으로써 잡는다. 단죄할 자는 누구인가, 단죄받는 자는 누구인가, 진실로 이 자리에서 패배한 자는 누구일까. 그는 당신이 묻힌 당신의 핏자국이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도 지워지지 않을 것을 감히 예측했다.) ……그래, 너를 죽임으로써 나는 너를 묻고, 내 가슴에 못박는다. 그렇게 세상이 구원받는다면 난, 평생,
…….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망설임이 멎어들었다, 지금은 창 밖으로 바람조차 불지 않아 선명한 햇살 아래 황폐해진 땅이 곳곳에 드러나는 죽음의 계절.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이 땅에도 머잖아 생명이 되살아나리라. 눈을 길게 감았다 뜬 그의 눈에는 희미한 광기가 당신을 닮아 붙어 있었다.) 평생. 너와 함께 하겠지. (그리고 그가 움직인다, 그의 칼날이. 당신을 향해.)
 
리비안 르로이:(서늘하리만치 단단한 날붙이가 제 가슴팍위에 닿는다. 그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제 먹잇감의 팔을 붙잡곤 제 품에 힘껏 끌어 안는다. 육신의 고통은 아주 잠깐, 아주 잠깐 뿐일 것이다. 네게 반응하여 미친듯이 박동하는 이 심장이, 곧 너를 위해 멎게 되리라.) … 이제 평생, 함께 할거야. … 너와 난… (그는 그저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인다. 마치 처음 만났던 그 날의 밤처럼)
 
마침내 당신은 그의 손에 기꺼이 칼을 쥐어주었고, 그는 당신을 제 가슴에 박기 위해 칼을 쥐었고,
 
그런 밀라니를. 당신은 끌어안았습니다.
 
한순간 그의 얼굴이 어찌나, 그렇게, 처참해보이던지요.
 
악마를 바침으로 세계는 구원받을까요. 당최 구원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요한 성당. 아마도 밀라니는 이 마을을, 나아가 세계를 구했으나. 사람을 죽인 죄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역병과 재난이 사라진다는데…
 
밀라니의 한껏 일그러진 낯이 마지막으로 망막에 담기고, 그가 들어올린 칼날이 빛이 났던가요.
 
한 순간이 반짝임과 함께 심장이 찔리고, 당신이, 삶이, 숨이, 생명이, 혹은 애정이며 증오가.
 
제단의 돌바닥에 낙하합니다.
 
…….
 
그리고선 아주 천천히 당신을 끌어안는 몸짓이 느껴집니다.
 
희미해져가는 정신과 함께 어디선가 자그마한 온기가 스며드는 듯 합니다.
 
그로 인해 당신은 깨닫습니다. 알아차립니다.
 
아,
 
리비안 르로이가 밀라니 에키드너에게 박혔다!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가 숨처럼 피처럼 흘러나왔나요, 이렇게나 즐거웠던 적이 생 중에 있었나요.
 
죽고 싶었던 적은 없겠죠.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한 가지 속삭임이 연거푸 들려옵니다.
 
차라리 이 세상이 멸망하면 어떠했을까.
 
밀라니의 속삭임입니다.
 
그런식으로 당신과 함께 멸망해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싶었어.
 
그가 중얼거립니다.
 
밀라니 에키드너:……난, 이 세상의 마지막을,
당신과…….
 
…….
 
무슨 생각을 했을지요. 당신의 고해를 듣고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마녀의 고해를 듣고 그는…
 
단 한 사람만의, 악마의, 마녀의 종말이 들이닥칩니다.
 
어둠을 기리는 빛이 너무나도 찬란한 시간입니다….
 
END 3. 마녀의 고해
 
리비안 로스트, 밀라니 생존, 세상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