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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칸의 기도문
저를 증오한다면 사랑하세요..., 저를 사랑하세요...
20200612
KPC 라미아, PC 멜로타
1. 도입
눈이 내립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폭설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당신이 이 겨울을 헤매는 중이라는 거고,
동행인은 없으며,
세상이 옛적에 멸망했다는 것이지요.
꿈을 꾸면 나오는 지긋지긋한 세계 멸망에 관한 신파극.
놀랍게도 멸망의 주체는 당신이었으나, 지금의 당신은 그 시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라 봄이 무방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에서인지 기억은 계승되었고…
확실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당신은 지금 살아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서.
다시 태어남으로
기억이 계승된다는 건 기억에서 비롯된 감정 또한 계승됨을 의미할까요.
기억합니다.
칼을 들어 당신을 죽여 구원해주겠다던, 거짓된 그 여인.
그를 죽인 후에서야 보았던 그의 일기,
그의 가짜 고해와,
끔찍한 고백들.
이제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과거의 일입니다.
한 세기쯤 지났을까요.
갑자기 사색이 드는 이유는 푹푹 밟히는 눈을 건너 마주한 건물이 버려진 성당이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아, 아마 오늘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 모양입니다.
성당으로 들어갈까요, 멜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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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무수히 많은 색의 빛들.
어쩐지 아주 아득한 과거, 이전의 삶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면서도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아름다움의 현신이라 부름이 옳을 듯한 풍경 아래,
아,
인기척이.
...
제단 뒤 어둠이 깔린 곳에서부터 누군가의 발이 빛 가운데로 드러납니다.
한 발자국,
그리고 또 한 발자국.
천천히,
천천히 뒤섞인,
흐트러진 색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검은색 수녀복.
떨리는 눈동자와 수척한 낯.
지독하리만치 익숙한 얼굴.
그래요.
과거 당신의 심판자로, 기만자로 등장했던 바로 그 사람.
잊을래야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이,
당신을 보고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내뱉는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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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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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사랑해주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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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짧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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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증오하지 않아요. (당신이 말을 마치자마자 부정이 따라붙는다. 멜로타는 이전의 자신을 지금의 스스로와 분리시키지 못했다. 동일시하여 한참이나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저 그렇게 되뇌며. ... 그러니 지금, 제 손으로 칼을 박아 넣고 숨이 멎기를 기다렸던 밀로바. 나의 친구, 나의 수녀님과 꼭 같은 얼굴로 과거를 말하는 당신을 마주하여 느끼느니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이라. 목이 졸린 듯한 소리를 낸다.)
증오하지, 않아요. ... 오히려 나는, 당신이 날 그렇게 여길까 봐... ... (호흡이 흐트러져 눈앞이 핑 돌았다. 잠시 비틀거렸나.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며 이어 말한다.) ... 알아듣게 말해줘요. 어째서 내게 사랑을 구하시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어요. (시선이 당신을 면밀히 살폈다.)
기준치: | 40/20/8 |
굴림: | 1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라미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말에도 하나 변함이 없는 것은,
어쩌면 그의 마음 속에서 이미 당신과의 관계는.
... 그렇게 중요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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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죽었더라. 당신은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아왔나. 그것을 가늠하기엔 현재를 살아가는 라미아의 정신은 온전치 못했다. 생각이란 걸 어떻게 하더라. 과거를 되짚는 것은? 추측을 하는 것은, 그것도 다른 누가 아닌 당신을. ... ... 당신과 나는, 어떤 관계였더라. 아니, 그것이 중요한가? 제가 들어야 할 이야기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당신을 증오할 거라 걱정한다면. ... (당신이 호흡을 흐트러뜨리는 것도 비틀거리는 것도 라미아에겐 하나 가치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 마디, 한 마디만 듣는다면 아무렴 상관 없어!) ─ 저를 사랑하세요. 당신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나의 관계에 어떤 상념도 없습니다. 그러하니. ... ... 나를 사랑하면 모든 것이 끝날 일입니다. 정말 그 뿐이에요. ... (잠시 입술을 다문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아, 그래.)
... ... 멜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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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 (입안의 살을 강하게 짓씹었다. 귓가로 지독하게 그립던 목소리가 와닿아도 마냥 기쁠 수 없었으므로. 와중에 들리는 이름, 멜로타. 마지막으로 들은 이름도, 처음으로 듣는 이름도, 멜로타. 체르바가 아닌, 멜로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천천히 주저앉는다. 짙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당신을 깊게 심으며 묻기를,)
내가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진정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 그래도 괜찮다면, (입술을 달싹인다. 푸르름은 진즉에 잃어버리고, 죄책과 자책에 찌들어 한겨울의 나무보다도 삭막하여 버석거리는 향만 남은 사람. 꺼질 듯 작은 목소리를 간신히 토해낸다.)
... ... 사랑해요. ... 사랑해요, 라미아. (밀로바라 부를 수 없었다. 체르바라 불리지 못했으므로.) 당신을 사랑했어요. 하여 당신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하리라고... 죄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감히 그렇게 여겨요. (원하는 대로 사랑을 입에 담았다. 이 순간 여전히 뛰는 심장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지극히 혐오스러웠다.)
그 말은 들은 라미아가 웃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마냥 웃습니다.
당신이 목격한 적 없던 표정이었습니다.
바싹 마른 입술을 열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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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먼 과거를 답습하여 현재의 당신마저 속인다, 기만했다. 당신을 마음 깊이 아꼈던 그것은 이제와 모두 가치를 상실한 것이 되었다. 나도 당신을 사랑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쳤습니다. 나는. ... ...)
기도를, ... ... 하고 싶네요. 멜,로타, ... ...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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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답하는 말을 꺼내지 않고서 그저 기다렸다. 자리를 피해주지는 않는다. 환영처럼 사라질 듯 느껴졌던 탓으로, 당신을 보며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놓아주고 싶지 않은 심정. 이기적인 심상을 잘 빚은 형태.)
창밖은 밤입니다.
어둑한 하늘 아래 눈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라미아는 엎드린 그 상태로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아마 그
기도
랄 것이 한참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였죠.무심코 버려진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던가요.
성당에는 자신과 라미아밖에 없는 듯 했습니다.
썰렁한 성당 안은 아주 오래 전 라미아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성당과 비슷한 구조 같으나 조금 더 넓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신도석, 고해방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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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 글라스는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의 장미창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화려한 형식입니다.
비록 일부 바람에 의해 깨진 흔적이 있지만 테이프로 막힌 걸 보면 누군가의 관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라미아일까요?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기준치: | 85/42/17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들어오는 빛이 너무나 눈이 부셔 형상을 분간하지 못하게 됩니다.
행운
판정.
기준치: | 45/22/9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깨진 유리조각 사이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가늘게 눈을 좁혀 그를 바라보면,
그건 핏자국이 미약하게 남아있는 단도입니다.
무언가를 찌른 듯한 흔적이 남아있고......
SANC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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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 65/32/13 |
굴림: | 6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성치 감소 없음.
누구를 찔렀던 걸까요?
라미아는 설마 사람을 죽였던 걸까요?
생각이 혼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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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하던 머릿속은 곧 가라앉습니다.
설령 라미아가 생명을 해쳤더라도, 멜로타는 그것을 단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곧 신도석을 눈으로 훑습니다.
장의자들은 이미 망가지거나 쿠션이 파지거나 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때는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앉아 미사를 올렸겠지요.
그들은 세계의 존속을 기도했을까요.
기도했다면 세상은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요.
물론 원인은 당신에게 있었죠.
당신이 바로 세계를 멸망시키는 주체 그 자체였으니까요.
... 물론, 자살했지만 말이죠.
어떤 감정을 느끼시든,
느끼지 말아요.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사방은 폐허이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진실.
신도석 전체에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기준치: | 85/42/17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의자 위에 널부러진 종이 조각들을 발견합니다.
어떤 글자가 적혀있는 것 같은데. ...
오늘따라 이렇게 멀리서도, 그 글자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던가요.
종이들은 모두 알 수 없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해가 불가하나 똑똑하게,
당신이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단어가 또박또박 적혀 있습니다.
[사랑]
지능
판정.
기준치: | 75/37/15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당신은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라미아의 그 일기장을요.
그 진솔한 고해를 적어놓았던 글자와, 똑같았습니다.
명실상부 라미아의 글씨체입니다.
과거 배운 지식을 토대로 당신은 그 글씨체가 꽤나 사무적이면서도 끝부분이 살짝 떨려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뭘 위해 라미아는 사랑을 논하게 된 것인가요?
아, 그가 애정을 고한 적이 있긴 합니다.
당신은 성당의 이 익숙한 전경이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압니다.
당신을 죽이고자 했던 것.
그 자체야말로. ...
당신을 향한
애정
이 아니었던가요.그때,
그제서야 기도를 올리고 있던 라미아가 몸을 일으킵니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메말라 얼굴에 자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보고 내뱉은 말은 다소 뜬금없는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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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힘 없는, 그러나 휘청거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아마도 휴게실이 있을 곳으로 향합니다.
당신은 그 뒤를 따라갑니다.
3. 성당에서의 밤
이 밤은 더더욱 폭설이 심하게 내립니다.
폭풍우를 동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에 나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겠죠.
모쪼록 라미아의 발걸음을 느리게 뒤따라 휴게실로 향합니다.
휴게실 안은 조악하지만 나름 사람이 살 만한 모양새가 구축된 상태입니다.
오랫동안 쓴 듯한 매트리스 위에는 허름한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습니다.
라미아가 캐캐묵은 말을 꺼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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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물자 창고로 향합니다.
라미아는 저를 따라나온 당신을 흘끔 바라보다, 묵묵히 걸어나갈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물자 창고에 도착하면, ... 충분한 물자들이 많이 남아있는 창고의 풍경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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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떠나거든 당신을 잊을 거라 생각하세요? ... 당신은 저를 잊을 건가요? (입술을 질근거렸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평탄치 않아, 그곳을 살아가느라 부르튼 입술이 기어이 찢어진다. 혀끝에 비릿하게 감도는 피가 역겹다고... 지나가듯 생각한다.)
... 도움,이라뇨. ... ... ...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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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을 잊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부디, 나를 잊었으면 하고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을 돌아보면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또 무언가의 역겨움을 담고 있는 표정의 당신이 있었다. 라미아는 그 혐오가 저를 향한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저, 라미아는 생각했을 뿐이다.) ... 왜 나를 기억하고자 하죠? 아픈 기억일 뿐이잖아요. 끔찍한 기억이겠고요.
... 분명히 주었어요, 도움. (진실을 안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신을 죽이려 들었던 악한 마녀에서, 이제는. ... ... 모든 진실이 탄로나는 순간은 과거의 라미아가 그리도 두려워했던 순간임에 틀림 없었겠으나, 이제는 아무렴 좋았다. 당신이 저를 도와줬으니. 그렇게, 라미아는 모든 것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 도피였다.)
라미아가 빤한 눈길을 보내옵니다.
그리고 문득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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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당신에게 세상을 구할 기회가 왔다면, 어떻게 했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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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절 잊으신대도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그 머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듯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프고 끔찍하게 느껴진들 잊을 수 없어요. ... 잊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래선 안 돼요. 제 죄악의 결과인걸요. (당신 다시 만난 것을 오롯하게 기뻐할 수 없는 이 어그러진 관계가요. 그저 태어난 것이 죄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묻기에는, 라미아. 죄 없는 당신을 내 손으로 죽였잖아요.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밤하늘의 별처럼 많지 않겠나요. 마지막이 처참하게 얼룩졌다 한들 함께한 시간이 여전히 소중한 탓이에요. 그것이 너무 즐겁고 찬란하게 여겨지는 탓이에요. 당신께서 날 아끼시어, 심적으로 괴롭지 않기를 바라사 스스로를 마녀라 칭했던 탓이에요.)
(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제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당신을 사랑했고, 사랑하여, 앞으로도 사랑하겠다고. 감히 그리하겠다고. 잊는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나는 당신을 잊고자 하지 않아요. 당신께서 내 사랑을 혐오스레 보시는 날이 오더라도.)
... (멜로타는 라미아의 말을 이해할 날이 과연 살아생전 오기는 할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마을, 낡아빠진 성당을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찾았던 날부터 제대로 된 답을 들은 기억이 없었으므로. 눈을 몇 번 깜빡이는 시간 동안 받은 질문에 대해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당신이 말하는 세상이란 과거의 것인가요, 현재의 것인가요? 지난 삶이었다면 기꺼이 그 기회를 붙들었겠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들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미 한 번 틀린 판단을 했던 경험이 있지 않던가. 더하여 과거에는 분명 사랑했던 세상, 현재는 탈력을 느낄 뿐이었다. 새로 숨쉬기 시작할 적부터 죽 지쳐있다.) ... ... 지금은 모르겠어요. 여기서 더 무너질 곳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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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당신의 존재는 다시금 독이다, 멜로타 카프릴리스. 한때 나의 체르바였던 여인이여. 나를 뒤흔들지 마소서. 당신의 말을 듣고 신께 올렸던 기도를 떠올렸던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여. 드디어 이, 생명을 끊어낼 방도를 찾았구나! 하고. ... ... 라미아는 당신에 대한 정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제게 독으로 작용하는 당신의 존재를 비로소 인지했다. 그러니 라미아가 해야할 것은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 선을 긋는 것과, 자신을 위해 당신을 이 이상 인식하지 말아야 할 것. 어느 쪽이든 당신에게 상처가 될 일이었지만 더 큰 상처가 되지 않으려면 이 편이 나았다. 좋았다. 가슴께를 붙잡던 손을 떼어내고 당신을 보았다. 무언가가 감돌았던 눈은 다시 피폐해져 되돌아갔다.)
... 지금은 모르겠다 한들, 더 무너질 곳이 없다고 말한들. (이번에 목소리가 쌀쌀맞게 나가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라미아의 자안이 당신을 빈틈없이 향했다.) 걱정 마요. 이미 선택은 끝났고, ... ... 더 무너질 곳은 충분히 존재하니까. 그러니, 당신은 눈이 그치는대로 이 성당을 떠나는 것이 좋겠지요. 앞서 말한대로 남은 물자들을 다 챙겨가셔도 되고요. 저도 곧, 이곳을 떠날 테니. ... (이쯤하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당신의 궁금증을 해소시켰을까. 아니, 라미아는 금방 자신의 말이 당신의 궁금증을, 혹은 답답함을 더 불렸을 뿐인 대답임을 알았다.)
(그저 천천히 뒤돌아 휴게실을 벗어날 따름이었다.)
좋은 밤 되세요. (온기 없는 말 한마디와 함께.)
싸늘한 온기조차 없습니다.
탁, 문이 닫힙니다.
그렇게 선을 긋는 라미아의 생각을,
멜로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알아차린 적이 없었습니다.
까마득한 절망감이 눈 앞을 가렸었나요?
멜로타,
정신력
판정.
기준치: | 65/32/13 |
굴림: | 4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퍼뜩 과거 당신의 목을 조르던 라미아가 떠올랐습니다.
차라리 라미아가 이번에도 당신을 죽이고자 했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이상한 생각만 들었던가요.
알지 못합니다, 모든 환경은 복잡하게 굴러갈 뿐입니다.
당신. 정녕 살아가야 하나요?
삶이 목전이었나요?
어차피 세상은 망했고.
당신은 스스로의 인생을. ... ...
과연 살아야 했나.
허탈한 시선을 돌리면 라미아가 사용했을 매트리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관찰
판정.
기준치: | 85/42/17 |
굴림: | 3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은 매트리스 바닥에 깔려 삐져나온 종이를 발견합니다.
노트에서 찢겨진 듯한 일부의 종이입니다.
살펴보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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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노려보듯 보다가 집어 들었다. 살펴봅니다.)
누군가의 죄가 깊어지는 밤입니다.
그리고 멜로타는, 종이를 살펴봅니다.
온갖 죽음의 방법이 적혀있는 이 종이를요.
익사,
과출혈,
교살,
추락사.......
모두 해봤다는 듯이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실패.
실패.
실패.
당신은 기이한 살해 내지 죽음의 방법을 발견하였습니다.
SANC 1/1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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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 65/32/13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rolling 1d3
()
3
3
이성치 3 감소.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쪽의 칼이 떠올랐던가요.
핏자국이 눌러붙어있던 칼.
...라미아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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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아... 밀로바. ... ... (아. 당신이 내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둔대도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 사람. 차마 넘지 못하고 그 밖에서 서성일지언정. 이 밤, 딱 잘라 나를 내친 당신을 찾아 경멸 받더라도 불안으로 지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휴게실을 벗어나, 라미아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라미아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예배당의 제단 앞,
가장 처음 라미아가 어둠 속에서 당신에게 기어나왔던 것처럼.
자욱한 어둠 가운데 라미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행동할건가요, 멜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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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판정.
기준치: | 45/22/9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라미아는 당신이 그의 옆에 앉자마자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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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증오하지 않는다 했잖아요. (문득 튀어나온 말이었다. 헤어짐을 말하는 당신에게.) 내게 사랑을 말해달라 했잖아요. (눈 돌리는 당신을 붙들었다.) ... ... 역시 내가, 미워요? 싫은가요? 뻔뻔하게 당신을 찾는 내가... (경멸스러워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차마 거기까진 묻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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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그 때의 정경을 목도하는 라미아의 시선이, 이어 당신을 꿰뚫듯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 ...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할지 알았어요. 이미 나의 거짓말을 깨달아버리셨는데,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사이에. ... 더 이상의 대화는 힘들겠네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은 당신 앞으로 시선을 맞춰온다. 날카로운 시선은 흡사 뱀의 것을 닮았다.) 내일 동이 트면 성당을 떠나세요. 멜로타, 나는 당신에게 그 어떠한 진실도 알려주지 않기로 지금, 다짐하고야 말았으니까요. (나의 혓바닥은 뱀의 것이 되었습니다. 라미아가 무감각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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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렸던 시선을 다시금 올렸나. 멜로타는 라미아를 마주했다. 외롭고 두려워 무릎 안은 손을 풀어내지는 못하면서도 시선은 곧게 마주했다. 당신이 아는 멜로타였고, 체르바였다. 당신이 끝내 맞닥뜨리지 않고 눈 감았던 마녀였다. 진실을 알고 도망하지 않은 채, 스스로에게 같은 죽음을 내렸던 마녀는, ... 당신을 볼 낯이 없더라도 끝내 고개를 들고야 마는 것이다.)
... 아니잖아요. 아니었잖아요. (공허한 목소리. 참으로 허한 목소리.) 마녀는... 저였잖아요. 당신이 아니라. (입술을 짓씹는다. 언젠가의 멜로타가 그랬듯이. 소리치는 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눈을 떨지 않으려 애썼다. 그 과거, 죄 없는 당신을 죽였음을 내 알고 있노라고 이야기하는 중이 아닌가.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여 웃는다. 반쯤 일그러져 아픈 웃음이었다. 당시 느꼈던 절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잠식했다. 휘어진 눈가가 금방이라도 울듯한 감정으로 붉어졌다.)
네에, 태웠어요. 당신 말하신 대로 불태웠어요. 손길 닿은 그 무엇 하나 남기지 않으려고, ... 그러려고 성당째로 불을 질렀어요, 제가. (그렇게 저 또한 그곳에서 죽어졌다. 들어봐요, 수녀님. 라미아. 나의 밀로바. 당신 말하신 것 하나 어기지 않았어요. 절절히 남기신 유언대로 정말 남김없이 태워드렸다니까. 그전에 읽지 말란 말은 없었잖아요. 이건 너무 말장난 같은가...)
그런데 궁금하지 않겠어요? 방금도 그러셨잖아요. 저에게, 궁금한 게 많다고. 어느 때나 알고자 했더라고. 마녀라고 달랐겠나요. 마녀라는 사람이, 내 옆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 지냈는지... 참 궁금했더랬지. (깊고 깊은 숲속, 나무가 높게 자라 태양마저 가리거든 그 안은 딱 이만큼 어둡고 음침할 테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 ... 내가 마녀였던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작게 웃음이 터진다.) 흐, 하하... 그래요. 멍청하게... 멍청했어요, 내가. 그래... 당신은 그저 선하셔서, 나에게 그야말로 안식을 주고자 하셨던 건데. 그것도 몰랐지 뭐야.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 곱씹었다. 차라리 곧이곧대로 말해주셨다면 나았을 거라고. 당신 속이야 어떻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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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넘어갈 수는 없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차라리... 차라리 처음 만났을 때 날 증오한다고, 꼴도 보기 싫다고, 내 얼굴을 보느니 역겨워 진절머리가 난다고! ... ... 그렇게 말해주셨으면, 내가 매달리지도 않았을 거 아녜요. (감정을 삼켜내고 옷자락을 붙들어 말을 잇기를,) 알려줘요... 나에게도 알려줘요. 내게 사랑을 구한 이유가 뭐예요? 이런 곳을 혼자 지키는 이유가 뭐예요? 온갖 죽는 방법과 무수한 실패가 적혔던 종이는 뭐예요? 왜 자꾸 날 보내려고 해요? 뭘 알려주지 않겠다는 거예요? 또 뭘 숨기고 있어요? 당신이 말하는 진실이! 뭐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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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아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불살랐다는 당신의 말에 아득함이 끼쳐왔다. 손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두려움이었다. 그래, 당신이 기어코 마녀가 되었었구나. 내가 죽음 앞에 눈 감은 사이에 당신은 새로이 뱀의 저주를 입어 태어난 존재가 되었었구나, 그리고 죽었구나. 함께 불살라졌구나. 아주 깊고 깊은 동굴 속에 몸을 뉘인다면 이다지도 축축하고 외롭고 음습할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후로 라미아는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당신이 어쩌면 그렇게 바라 마지 않았을 결론이다. 처음부터 숨기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하는.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갈등 어리던 순간에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벅차는 여러 감정들로 적어도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모두 늦어버렸지만 말이다. 이미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라미아는, 제가 죽게 되면 따라 죽을 당신의 모습을 그려낼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기에,)
... ... (손을 뻗어 제 뺨을 쓸어내리는 서늘한 손가락을 피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주 보았다. 바짝 마른 눈동자들이었건만 지금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물론 무언가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 감정을 공유하기에 우리 둘은 너무나 지쳐있던 모양이다. 밀로바. 결국 잊어버렸던 이름이, 온갖 것들로 점칠해 퇴색시킨 이름이 당신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기까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순간의 정적 속에서 라미아는 모든 것과 유리되었다. 짙은 암흑과 고독과 기타 등등의 요소들을 느끼고 나면 눈을 떴다. 제 옷자락을 붙잡는 당신을 보았다. 인정한다.) 결코, 이렇게까지 서로를 들여선 안될 존재들이었던 것이겠죠. 저희는. ... ... (선을 넘지 않으려 서로를 지켜준 우리였건만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이미 서로의 선에 들어와있던 것이었다. 이 또한 돌이킬 수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말한다. 내게 사랑을 구한 이유가 뭐예요? 이런 곳을 혼자 지키는 이유가 뭐예요? 온갖 죽는 방법과 무수한 실패가 적혔던 종이는 뭐예요? 왜 자꾸 날 보내려고 해요? 뭘 알려주지 않겠다는 거예요? 또 뭘 숨기고 있어요? 당신이 말하는 진실이! 뭐냔 말이에요. ... 눈을 감았다. 고개를 숙였다. 자그맣게 입술을 벌리고 그 틈으로 가느다란 숨을 내뱉고, 한 번 들이쉬고, 다시 내뱉으면 입술을 닫았다. 몇 초동안 그리 더 있다가 계속 감고있고만 싶은 눈꺼풀을 파르르 들어올렸다. 제 옷자락을 잡은 당신의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요, 내가 더는 도피할 수 없음을 인정해요. (당신의 승리라 마땅히 일컬을 수 있었겠지만 누구도 기뻐하지 못할 류의 것이었고.) 그러니 당신, 일어서세요. 우리는 서로에게 체르바와 밀로바가 되기에는 늦었지만, 라미아와 멜로타라는 이름마저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요. (적어도 당신은, 스스로 라미아와 불구덩이로 추락하기를 자처한 모양이었으므로. 라미아의 눈이 스올보다도 깊숙한 저곳으로 가라앉았다.)
성당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진실을 목격하세요.
그리하면 깨달았겠지요, 나로 하여금 당신이 저지르고야 만 일을. 나의 거짓을, 그리고 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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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마지막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당신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우리 사이에 내린 시련 너무나도 가혹하니, 지독하신 신이시여, 악마 닮아 내게 이렇게 모질게 구시느냐고. 내가 마녀라 이러신다면 저 죄 없는 수녀님은 제발 바라느니 행복케 해달라고. 그렇게 바라며 원망하며 죽어졌는데. 그마저도 악마의 자식이 속살거린다 여기시어 들어주지 않으신 겁니까. 어째서 우리는 다시 태어난 후에도 여전한 고통에 시달려야 하나요...)
... ... (이럴 거면 다시 태어나지나 말지. 기억이나 깨끗하게 지워졌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이 망각이라던데, 그 축복 우리에게도 내렸다면 이 차디찬 성당, 그저 살아있는 사람 만난 것으로 기뻐하며 새로이 관계를 쌓아갈 수 있지 않았을지.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 빌어먹을 삶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 다시 한번 죽는다면 그때는 정말 안식에 들 수 있을까.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 정말, 정말이지... 이 이상 고통은 견딜 수 없음이 분명하다고. 가슴을 갈라 심장을 내보이거든 이미 까맣게 썩어있을 거라고. 내 영혼에 형체가 있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필히 너덜거리는 모양새일 거라고.)
(하나 이 괴로움 속에 미약하게나마 빛을 내리는 이 있으니 당신이었다. 사람이란 힘듦 속에 버티려거든 과거에 매이기도 하는 법이라, 멜로타에게 라미아는 행복했던 짧은 시간을 그대로 빚어놓은 것과도 같았던 탓에. 이 쓰라린 생애 한가운데에 자리한 것 또한 라미아였음에도. 보랏빛 두 눈, 이제 아무리 들여다본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알 수 없도록 거리가 생겨 멀어졌음에도 결코 당신을 놓지 못했다. 놓지 못할 것이었다. 영영 그럴 것이었다.)
(그저 피하지 않음에 감사하여 뺨을 소중히 쓸어보다가, ... 그러다가 손을 내렸다. 떨궜다.) 평생 그랬듯 누구도 들이지 말고... 그렇게 살던 대로 살아야 했던 거예요. (단어를 엮어 서럽디 서러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각자 따로이 존재했더라면 차라리 행복했을 것이라고. 외로움이란 본디 사람의 온기를 느낀 후에야 크게 느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음부터 그랬듯 온기일랑 모르고서 살아갔다면 우리는 훨씬 평온한 삶을 살았으리라...)
(멜로타는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었다. 죄 많은 자 되어서도 계속하여 체르바와 밀로바, 긴밀한 관계 되기를 바랐으나 현실은 역시 녹록지 않았던 탓에. 짙은 아쉬움을 느껴 허공을 쥐듯 손가락을 바르작거리다 말았다. 당신이 직접 떼어낸 손을 다시 뻗을 용기란 없었으므로. ... 이어지는 말이란 라미아의 인정이었으나 서로가 익히 짐작하여 알듯이 승리의 쾌감이란 느낄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을 줘 돌바닥을 디뎠다. 천천히, 그러나 반듯하게 서서 라미아를 보는 멜로타는... 불안이 섞였을지언정 여전히 곧았다. 내가 저지른, 저지를 죄악이 아직도 남았을지. 과거에서처럼 무너져 숨이 다 막히도록 섧게 울 일이 생길는지... 걱정 없지 않았으나 먼저 나서서 요구하였으므로.)
... ...
다녀올게요. ... 다녀오겠습니다.
(몸을 돌렸다. 느린 걸음을 옮긴다. 말하신 대로, 내가 저지르고야 만 일을. 당신의 거짓과 기만을 찾아 마주하러 간다. 예배당을 벗어납니다.)
멜로타, 물자 창고와 계단, 휴게실로 향할 수 있습니다.

물자 창고로 향한 당신은 물자 창고 내부에서 이질감이 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정 벽면이 이상하리만치 상자로 쌓여 가려져 있습니다.
근력
판정으로 상자를 옮길 수 있습니다.
기준치: | 75/37/15 |
굴림: | 2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렇게 드러난 벽면에는 기이한 광경이 담긴 상태입니다.
1, 2, 3, 4, 5,
6, 7, 8, 9, 10,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실패.
SANC 1/1D2

기준치: | 62/31/12 |
굴림: | 6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지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기준치: | 75/37/15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멜로타는 이 숫자들이 어쩐지 날짜를 의미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빼곡한 숫자들은 일 년, 이 년, 아니 십 년 그 이상을 의미하는 듯도 싶습니다.
그렇다면 실패는? 실패는 도대체 뭘 뜻하는 걸까요?
문득 가장 진하고도 깊게 적힌 문장이 보입니다.
[ 오로지 사랑만이 재앙을 끝내리라 ]
... 계단과 휴게실로 향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배당 2층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통로 쪽에 작은 문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문이 아주 살짝 열린 상태, 빛이 미미하게 흘러나옵니다.

내부로 들어가면 빼곡하게 쌓인 책들이 존재합니다.
몇 년, 몇 십 년동안 쌓였다고 말하지 않고서는 납득이 안 될 개수.
아무 책이나 살펴보면, 대체로 라틴어로 적혀있음을 깨닫습니다.
외국어(라틴어)
판정이 가능합니다.
기준치: | 71/35/14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으려던 순간이었습니다.
... 책을 덮기 직전, 유일하게 알아볼 만한 마지막 모국어로 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원인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끝나지 않음을 ]
문득 멜로타가 책상을 보면,
닫힌 서랍장에서 양피지 귀퉁이가 삐죽 튀어나와 있습니다.
근력
판정.
기준치: | 75/37/15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찢어진 양피지 일부를 획득합니다. 그곳에는 이리 적혀 있습니다.
[ 끝을 내야 모든 것이 되돌아올 것임을 안다. 때로는 죽음이 칼이 아닌 다른 것에서부터 비롯되길 마련이다. ]
무엇으로부터?
더는 서재에 얻을 것이 없어 멜로타는 서재를 걸어나왔습니다.
방에서 나오면 드는 생각은, 이 세상의 재앙의 실질적 원인은 결국 당신이었다는 것과.
첫날 라미아가 이야기했던 ‘사랑’.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 떨어져 있던 칼.
죽음이 칼이 아닌 다른 것에서부터 비롯되길 마련이다…….
멜로타는 자연스럽게 휴게실로 향합니다.
그나마 온기랄 것이 도는 것 같은 휴게실 안으로 들어서면,
관찰
판정.
기준치: | 85/42/17 |
굴림: | 3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저 멀리서 오르간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조금 망가진 오르간이 있었던가요?
누가 연주 중인지는 너무나 분명하군요.
당신은 테이블 위에 반으로 접힌 종이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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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펼치면 그곳엔 빼곡하게 적힌 ‘멸망을 끝내는 법’이 나와 있습니다.
이그의 저주.
저주의 걸린 사람들의 목록이 하나, 하나.
죽은 이들의 이름에는 줄이 쳐져 있습니다.
글씨체는 너무나 분명하게도 라미아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적혀있는 것은 하나.
멜로타.
그리고 그 아래에,
하나 더.
라미아.
찰나에 떠오르는 것은 무수히 많은 죽음의 방법이 적혀 있던 종이.
일 년 내지 십 년 그 이상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던 벽.
무수히 많은 죽음의 방법은 본인에게 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 라미아에게 부여된 것은 어쩌면 영생입니다.
SANC 1D2/1D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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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 61/30/12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rolling 1d2
()
2
2
이성치 2 감소.
이어 눈에 들어온 것은 가장 마지막 부분에 적힌 한 문장입니다.
[ 가장 큰 죄를 짓고 만 대상자에게 받는 사랑이 영생을 끝내리라 ]
그것이 곧 종말이 되리라.
멸망의 종결이 되리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무어라 말했었죠.
보고 싶었어요.
단 한 순간만,
저를 사랑해주세요.
정신력
판정.
기준치: | 65/32/13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라미아가 했던 소리가 있었죠.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늦었다.
그 말은,
그 말은,
... ...
멜로타가 이미,
라미아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사랑
을요.이미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첫 만남부터 그에게 사랑을 읊었고,
고로, 라미아는,
...
필히 죽어버릴 겁니다.
재앙과 함께요.
저 멀리서는 아직까지 망가진 오르간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멜로타, 그에게로 향할 건가요?
라미아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죠.
그러나, 이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로부터,
... 도망쳐도 될 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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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바 있었기 때문에,
그러했기에 돌아갑니다.
그러면 역시나 오르간을 연주하는 라미아가 있었습니다.
서툴고 떨리는 손으로 하나 하나 건반을 누릅니다.
당신이 그에게 다가가면 라미아는 연주를 멈추고 그제야 당신을 돌아봅니다.
진실을 깨닫고 온 당신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손에 무언가를 쥡니다.
아,
예리하게 빛나는 저것.
그래요,
칼
입니다.당신이 라미아를 죽일 때 사용하였던 그 칼 말입니다.
라미아가 당신의 코앞까지 걸어옵니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며 그제서야 바싹 마른 입술을 열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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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한 때 당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
한 때 당신을, 죽이지 못했던 사람.
한 때 당신을,
기만해버린 위선자!
말해봐요, 멜로타.
사랑할 수 있나요?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겠나요?
라미아가 당신의 답을 듣지도 않고 말합니다.
칼을 겨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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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 ...
당신이 원하신다면,
"제가 당신을 죽여드릴게요."
뱀처럼 나긋하게 속삭입니다.
어쩌면 웃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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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죽인 후에는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멜로타?
... 당신의 뜻대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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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푹 젖어 잠긴 목소리가 새었다. 지독하게 무거운 무게를 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목에 칼을 들이민대도 당신에게 사랑을 말하지 않았을 텐데요. ... 이런 까닭으로 내게서 사랑을 구하셨군요. (음절마다 낡고 지쳐 바래진 내음이 났다. 힘들 것을 대비하여 받아들일 준비를 했음에도 소용이 없었던 듯싶다. 작게 벌어진 입술 새로 긴긴 한숨이 흘렀다.)
그렇게 후회하며 죽었는데. (멜로타의 양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작은 뺨을 그 손안에 두고서 한숨 끝에 말하기를,) 다시 태어나서도 내가... 당신을 죽이게 되었어요. (반복하여 죄를 짓는다. 이번 저주의 주체는 라미아. 그런 당신의 죽음을 도왔으니 누군가는 죄가 아니라고 말해줄지 모르겠으나... 멜로타에게 있어 이것이 어찌 죄악 아닐 수 있겠느냐는 말이지.)
(당장의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너무나도 복잡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한데 모아 뭉쳐놓은 것처럼, 그것이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처럼...) 당신과 나는 어쩜 매번 이래요? (무심코 물었다. 묻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많은 것 바라지 않았다. 다만, 감히 평범을 바랐다. 이번 생에서는 어쩌면, 정말로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전생의 우리가 그따위로 틀어졌던 까닭, 내가 재앙이었던 탓이잖나. 그렇다면 인간으로 만난 지금 진실로 친구되지 못할 이유 없지 않나 하고. 내가 죄인이라 그럴 수 없다면, 그렇다면 미련스레 당신을 따르는 것 정도는,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더랬다. 이렇게 틀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더랬지.)
(전생에서처럼 죄 없는 내가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신을 죽이고 나는 살겠다고... 그 어떤 죄책도 없이 말하고, 행할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당신이 재앙이었으나 내가 끔찍한 죄인이 되어 그럴 수 없었다. 당신의 온기 남은 손을 거두어 그 손바닥에 제 얼굴을 묻는다. 멜로타는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어쩌면 좋은가?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죽지 않던가. ... 그런 말로 넘어가기에 멜로타는 차마 그럴 수 없게 당신을, ... 사랑했으므로. 라미아가 재앙이라 불릴지언정 계속 살아가기를 바랐다! 적어도, 또다시 스스로가 죽음을 건네는 상황 따위, 바라지 않았다...)
(섣부르게 사랑을 입에 담지 말걸. 나는 또 어리석은 치가 되고야 만 것이다. 후회한다. 가혹하여 익숙해지지도 않는 참담함에 잠겨들고 있노라면... 귓가로 당신의 목소리가 와닿았다. 실타래처럼 꼬인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해 주는...) 나를, 죽여주시겠다고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어린아이 쿠키 나누듯 주고받는 셈이다. 예의 텅 빈 눈을 휘어 웃는다. 키득이는 소리가 새었다. 아, 참으로 명쾌하지 않은가. 차라리 먼저 죽는다면 세상에 혼자 남은듯한 고통을 견디기 위해 애쓰는 시간을 또 겪지 않아도 좋으리라.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기도 올리던 당신을 흉내 내어 가지런한 자세로 고개 들어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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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 어렸다. 입을 열고 닫기를 반복한 끝에 작게 말하기를,) 당신이 죽고 나서, 나는 그랬어요. 우리 만약 다시 태어나더라도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거 봐, 만나니까 또... (그제야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락받지 못한 행복이, 즐거움이, 안온한 나날들이 너무나 고팠다.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고, 흐른다.) 아프기만 하잖아요. (반가움보다 죄책이 앞서고, 어떻게 관계를 쌓아보기도 전에 참혹함에 젖게 되었으니.)
그러니 우리, 지긋지긋하게 또다시 태어나게 되거든... 그때는 정말로 만나지 말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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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손이 천천히 올라와 나의 뺨을 감쌌고 당신은 한숨을 뱉었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 어린 공허한 목소리가 울렸을 적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게요, 우린 어쩜 매번 이럴까요. 속으로 중얼이는 말에는 이제 선 안에 있었던 당신이랄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담겨 있었다.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차피 죽음 앞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리라. 찬양하고 감사하리라.)
(평범을 바란 적이 있었을까. 그래, 아주 먼 그 옛날에는 당신과 계속 친구가 되어 살아갈 미래를 바란 적이 있었을 테다. 그러나 당신이 재앙이었던 까닭에 우리는 서로를 죽였고,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난 당신은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생각했겠지. 이번 생에서는 어쩌면, 정말로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재앙이었고 말이다. 희극이다. 누군가가 우리의 삶을 바라본다면 필히 희극이라 평했으리라.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제 손을 감쌌던 당신의 손이 천천히 떨어져나갔고 이제 당신은 그 손에 스스로의 얼굴을 파묻었다. 이번의 당신이 어떤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지, 라미아는 추측할 수 없었다. 사랑을 후회하고 있을까. 너무나도 손쉽게 사랑을 뱉은 말에 좌절하고 있을까. 그렇게 당신은 끝나지 않는 절망 속에서 결정을 내렸다. 라미아는 그 모든 순간을, 당신의 고민과 갈등과 참혹함을 못 본 척 하지 않았다. 앞서 예배당에서 기다리겠다 말한 것처럼 당신이 말을 뱉기까지를 기다려 주었다. 왜냐하면 당신이, 라미아는 당신이 무슨 선택을 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웃고, 또 키득이는 소리가 정말 재앙의 것과 똑닮았다. 당신은 이제 재앙이 아닌데도 재앙이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일지, 그래. 우리 주변으로 그 어떠한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딱 그랬다. 이곳이 버려진 성당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고른 장소였지만 참 알맞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끝과 끝이 비슷한 장소에서 매듭 지어진단 사실은 묘한 희열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이런 생각을 알아차린다면 날 두려워할까, 꺼름칙하게 생각할까. 다만 라미아는 꿈에서만 애타게 바랐던 마지막이 눈 앞에 존재한단 사실로 들떠버린 상황이었다. 손도 대지 않았던 오르간을 쳤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내가 쳤던 엉성한 노래는 어쩌면 장송곡이다.)
네. ... 당신이 그렇게 답할 줄 알았어요. (재앙이었던 여자와 재앙이 된 여자를 위한 쓸쓸한, 또 엉망진창인 장송곡. 그렇게 우리는 함께 죽음에 순응하리라. 그 입 벌린 곳으로 친히 발길을 옮기리라. 당신은 나를 닮아 미쳐버렸나, 라미아는 칼을 쥔 제 손을 잡아 끌어 위치를 가늠하는 당신의 모습에 입꼬리를 조금 끌어올렸다. 제정신인 사람이 하나 없었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당신이 중얼거리는 말을 하나하나 귀새겨들었다. 열렬한 사랑 고백이었다. ... 솔직히, 라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결단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에게 가졌던 그, 어쩌면 막대했을 애정은 눈에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눈에 파묻힌 것은 보이지는 않을 지언정 필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라미아는 당신에 대한 사랑을 잊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눈 아래 파묻힌 그것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지독한 자기방어였다. 그야, 당신을 생각하면.) ... 이렇게나 아파하니까. (그렇게나 아팠으니까.)
멜로타, 나와 만났던 시간이 비로소 고통만으로 뒤덮여버린 심정이 어때요? 나는, 몇 십 년 전부터 이렇게 살아왔는데. ... 당신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미쳐버릴 것 같고, 나의 운명과 당신의 운명을 저주하게 되어서 당신과의 모든 기억이, 고통스러운 것들로만 남아버려서 모조리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가치를 상실시켰는데, 온갖 것들로 덮어버렸는데. ... ... 그러니까 차라리 나아서, 이렇게 살아왔는데. (가늘게 눈을 접어 웃었다. 당신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서 내뱉는 말들은 아니었다. 다만 말하고 싶었다. 고해하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한 이 모든 시간은, 끝까지 고통스러울 뿐이 되었다고. 그러니 우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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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다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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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장난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잘 짜인 하나의 극과 같을 수 있나. 관객들은 우리를 보며 즐겁겠구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박수할지도 모르겠다. 기립하여 환호하고... 그 후엔 저들만의 일상을 찾아 평범을 영위하겠지. 막이 내린 뒤, 극의 주인들이 이야기를 이어가며 몸서리칠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지금이라도 희극으로 바뀌길 바라는 것은 가망이 없으리라. 저 멀리서 감상하는 자들에겐 이미 희극으로 보일 것이었으므로. 시답잖은 생각은 사람을 참 쓸쓸하게 만들었던 탓에, 멜로타는 짧게 몸을 떨었다. 뚝! 환청처럼 들려오던 갈채가 멎는다. 실낱같이 붙들고 있던 희망이 잘리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슷한 장소,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의 위치만 바뀐 지금이 우습다. 저번엔 내가 불태웠으니 이번엔 눈에 파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체르바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빛과 웃음을 이야기하며 삶을 노래했으나, 지금의 멜로타는 지치고 힘들어 이 지난한 삶을 끝내고 싶다는 감상을 갖고 마는 것이다. 시답잖은 생각의 끝은 이 성당과 같다. 낡아빠져 무너져버린, 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러나 어쩌겠는가.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못할 테다. 멜로타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포기하지 않고는 못 견뎠으리라고. 정신을 조각내는 듯한 시련 견딜 자 없을 것이 분명하다고.)
(죽고 나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도, 애도해 줄 사람도 없다. 서툰 오르간 연주를 살아 듣는 레퀴엠인 셈 쳤다. 썩 나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아닌 당신이 연주하였으니. 그리하여 발목 붙든 고통을 걷어차며, 생에 남은 미련을 버리고. 검은 팔 활짝 벌려 환영하는 저승으로 한 걸음 내딛도록 하자. 죽음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아직 일렀으나 아는 것이다. 체르바와 밀로바의 망령에 씌인 우리는, 라미아와 멜로타는,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 글쎄요... (나무랄 데 없이 곱게 미친 여자는 울며 웃었다. 이상하다. 나는 지금 너무 재밌는데 왜 눈물은 멈추질 않을까.) 아, 이것을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래요. 미칠 것 같아요. 아니, 이미 미쳐버렸는지도 몰라요. 이것을 죽지도 못하고 견디느니 미치는 수밖에요. 그래요, 라미아. 흔적처럼 희미하게 남은 즐거움을 찾아낼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내가 사랑했던 모든 시간이 고통에 가려져 보이질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지... (분명 존재했으나 보이질 않는 것이 꼭... 얼어버린 호수와 같아서. 깊게 고인 추억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한데... 차츰차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얼어붙어 두드리며 들여다본들 보이질 않는 것이라. 흔적을 찾겠다고 그 위로 오르거든 깨어지는 순간 잠겨 죽을 것이 뻔했다.)
그런, 연유로... 나를 묻었다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탓하겠어요. (이 잠깐으로도 과하게 아팠으니 당신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만약 멜로타가 라미아와 같이 수십 년을 견뎌야 했더라면 똑같이 정신 놓아 덮어버렸을 수 있겠으나,) 그러나 라미아,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요. 영원을 살지 않으니 이 고통 찰나의 것이고, 곧 죽어질 테니 이미 잊은 당신 몫까지 끝내 더듬어 안고 가겠어요. (다만 멜로타는 생각한다. 그 시간을 덮느니 차라리 잠겨 죽겠다고. 그것 읽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당신의 앞에서... 내게 소중한 것들이 이제 오롯하게 고통이 되었다는 말에 억장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놓지 못하겠다고. 지금껏 그랬듯, 마지막까지도 미련 철철 넘치는 모습으로 죽겠다고.)

만나서 반가웠어요. 감사했어요.
... ...
사랑해요, 라미아.
(다음을 기약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 이곳이 마지막일 것이므로. 끝을 고했다.)
말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해.
말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해.
기어이 허락되지 못한 언어를 내뱉었던 것입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진정
사랑
이었으나,그러나 당신은 말했습니다.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말았다고 인정했던 것이었습니다.
라미아를 본 그 첫 순간에.
그렇게 목에 겨눈 칼이 있었습니다.
칼을 붙잡은 라미아의 손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으나 우리는 정녕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가요.
이전에는 체르바와 밀로바를 바라보던 눈이,
다만 라미아와 멜로타를 바라보았던가요.
그러다 전조 없이 불과 같은 고통이 목덜미를 꿰뚫고,
입가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한숨과 애정 뿐 아닌 시뻘건 핏물이었고,
그 앞에 너무나 행복해보이는 라미아가 있었습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치켜듭니다.
암흑에도 색은 있었습니다, 깨진 스테인드 글라스로 비쳐들어오는 환멸의 빛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천천히 돌바닥에 쓰러지지만 라미아는 당신의 피를 온몸으로 받으며 기어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이 끝이 나요.
겨울이 끝이 나요. ...
그 말처럼 당신의 눈도 서서히 감겨옵니다.
익숙한 어둠이 전신을 휘감습니다.
흐릿해져가는 시야 속에서 라미아는,
눈을 감았고,
고요하게 눈을 감았고. ...
우리는 적막 속에 숨을 멈춥니다.
그러면 직전에, 드는 직감이 있던 것이었습니다.
죽었구나...
끝났구나......
한 때 당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
한 때 당신을 죽이지 못했던 사람.
지금에 이르러,
당신이 죽여버린 사람.
태양계에 가설로만 남은 행성이 있다 합니다.
존재하지 않으나 사람들이 믿었던 행성.
벌칸.
존재하지 않는 행성에 존재하는 없는 기도문.
기도를 합시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두 번 다시,
저희가,
다시 눈을 뜰 일이 있거든 부디!
...
만나지 말게 해달라고. ... ...
END 2. 벌칸의 기도문
라미아 로스트, 멜로타 로스트
세상은 이전과 같이,
구원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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