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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EAR&MARPASHI/썰&연성

[아이피어] 예언의 아이 썰

by 여우비야 2020. 4. 17.

해리포터 AU

예언의 아이 아이작 딜라이트와 또 다른 예언의 아이 이스피어 틸다

https://www.youtube.com/watch?v=F8duD1MBrBY


 

 

 이스피어 틸다는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났다. 그 애는 두려움을 몰랐다. 그 애는 한밤중에 태어났는데도 태양 빛 색의 눈을 가졌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 유독 집착했다. 책을 읽고 몸으로 뛰어들길 곧잘 했다. 심지어는 세스트랄을 보고자 부모님을 졸라 시체까지도 목격했다. 이스피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곤 기껏해야 살인, 심한 마약, 그리고… 인간이었다.

 그것이 내내 이스피어가 방관하곤 했던 자신의 예언 가운데로 몸을 던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너는 운명의 멍에를 쓴 가여운 영웅의 손을 잡게 될 것이다. 너는 그 애의 운명을 대신 짊어지게 되겠으나, 그리하여 너의 결핍을 온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제가 태중에 있을 적에 어머니를 찾아왔던 어머니의 은사가 해준 예언이라 했다. 그 덕에 부모님은 날 향해 걱정부터 품게 되어버려서, 이스피어는 호그와트의 입학장을 받고 나서야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11년간 교육받은 것이라곤 그랬다. 예언의 아이와는 결코 말을 섞지 말아라. 너의 인생을 살아라. 이스피어, 너만의 인생을 살거라. 우스운 일이었다. 이스피어는 그 예언의 아이에게 관심이라곤 하나 없었는데 말이다. 이스피어는 다만 최초로 경험하는 바깥세상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감에 각인이라도 시킬 듯 굴었다. 모순되게도 그때부터 이스피어의 결핍이 생겨났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토록 넓다.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소녀는 정말 잘 살았다. 학교 성적도 우수했고(때때로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대인 관계도 깊고 넓었다. 모든 학생과 모든 교수는 이스피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피어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스피어에겐 그런 능력이 있었다. 그랬던 이스피어는 5학년이 시작되는 그 킹스크로스역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시야 끝자락에는 네가 보였다, 아이작 딜라이트. 나와 같은 예언의 아이. 내가 손을 잡아주게 될 가여운 영웅.

 참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같은 예언의 아이였는데 너는 찬란하게 빛나는 동화 속 영웅이 아닌 외톨이의 모습을 띠었고 나는 모든 사람의 호의를 누리며 살고 있다. 너는 적적한 발걸음만을 옮기는데 나는 도란도란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음을 걸었다. 너는 어서 빨리 이 세계의 암흑을 걷어낼 영웅이 되라며 눈초리를 받았는데 나는 11년을 나의 삶만을 살라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무엇이 달랐기에 너는 당장 죽음이 닥쳐도 미련 없이 눈을 감을 수만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삶에 집착하며 결핍을 채워나가려고 애쓰나.

 이스피어가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아이작의 앞을 가로막았다. 첫째, 인간상에 대한 결핍. 둘째, 같은 예언의 아이인 당신에 대한 탐구욕.

 

 "안녕, 아이작."

 "날 알아?"

 

 때는 무도회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그럼, 물론이지."

 "할 말이,"

 "─트리위저드.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그때는 한창 아이작 딜라이트가 트리위저드의 챔피언으로 선발되어 호그와트가 크게 들썩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스피어가 다정을 흉내내며 말했다. 고민이 많아 보이던데.

 

 

*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뭐야?"

 "영웅이라며. 세상을 구할."

 "하지만…."

 "영웅이랍시고 널 도와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

 "그건 그들이 널 '영웅'으로만 봐서 그래. 그러나 아이, 네 이름이 뭐지?"

 "아이작, 딜라이트."

 "그들이 널 '아이작 딜라이트'로 보지 않아서 그래. 널 열다섯의 학생으로 보지 않고 당장 세계의 암흑을 거둬낼 용사로 바라봐서 그래. 네 어깨의 짐을 치워줄망정 더한 짐을 얹어주며 시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함이며, 너에 대한 착취와 겁박이 고난과 충고라는 단어로 탈바꿈되기 위함이야."

 "틸다."

 "피어라고 불러."

 "피어."

 "그래. 아이작. 나만이 너의 두려움이 되어줄게."

 

 이스피어가 아이작의 두 볼을 감싸오며 눈을 마주쳤다. 휘영청 뜬 달 그림자가 둘. 속삭였다. 그러니 이제 나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두려워하지 마. 아이작.

 

 

*

 

 

 이스피어는 딱히 예언에 거슬러야 한다는 사고를 품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것도 아니고, 어둠을 거둘 것이라는 예언을 대신 뒤집어쓰는 것이면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지 어둠을 거두고야 말 것이라는 소리 아니던가. 예정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그리 성취감도 없을 테지만 어려움도 없을 것이었다. 두려움은 당연히 없을 테다. 이스피어의 두려움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결핍을 채우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것을 제외하면 어떤 것도 이스피어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이스피어는 트리위저드의 첫 종목에 출전하는 아이작에 단단히 일러주었다. 헝가리 혼테일에게는 결막염 저주가 먹힐 거야. 저번에 같이 빗자루 탔던 것도 기억하지? 빗자루를 불러서 너의 행동반경을 넓혀도 좋을 테고. 아이작은 성공적으로 용의 알을 가지고 돌아왔다. 용의 알을 가지고 온 아이작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스피어에게로 당장 걸어왔던 것 같았다. 알을 건네며 피어. 너를 위해 가져왔노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아이작을, 이스피어는 그를 껴안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도회가 코앞이었다. 이스피어가 먼저 아이작에게 말했다. 우리 파트너가 되자. 새빨갛게 붉힌 얼굴로 아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피어는 부모님께 값비싼 사파이어 목걸이를 부탁드렸다.

 

 트리위저드의 두 번째 종목은 아이작에게 유독 잔인했던 종목이었을 것이었다. 이스피어는 아이작에게 힌트조차 줄 새 없이 차디찬 호수 밑바닥으로 향해야만 했고…. 눈을 뜨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제게 인공호흡을 시도하는 아이작을 볼 수 있었다. 이스피어는 손을 뻗어 아이작의 뺨을 감싸주었다. 함께 한 시간은 고작 몇 주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의 두려움은 이미 이스피어가 되었다. 이스피어가 예언했던 것처럼. 이스피어가 속닥였다, 두려워하지 마. 모순적이었다.

 세 번째 종목은 파트너가 필요한 종목이었다. 이 고독한 영웅의 파트너는 시합 전날이 다 되어가도록 지원자가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스피어는 아이작을 먼저 찾아가지 않았으므로, 아이작은 당연히 파트너 없이 혼자 미로로 향할 속셈이었다. 이스피어는 그런 아이작의 고뇌를 옆에서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었고, 시합 전날이 되던 날 밤. 그를 필요의 방에 불러들여 이야기를 꺼냈다. "트리위저드 시합을 겪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 아이작은 입술을 달싹이다 말했다. "피어. 네가 있어서. 나는,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래? 나는, 네가 쓰고 있는 그 틀의 무게를 깨달았는데." 아이작이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냈다. "틀?" 이스피어는 다만 물었다. "내일의 파트너는 구했어?" "아니." "그렇다면?" "혼자 가려고." 짧은 단어들이 교차했다. 이스피어는 툭 말을 뱉었다. "내일. 같이 가." "피어. 위험해." "아니. 나는 너와 함께 파트너를 할 권리가 있어." 이후로도 몇 마디 말은 오고 갔지만 결국 아이작은 이스피어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스피어는 성공적으로 아이작을 마지막으로 판단할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다. 아이작이 지고 있는 운명의 크기와 형태에 관한 것이었다. 내일 아이작이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보이는 모습에 따라 이스피어는 아이작의 운명을 감당하고 말고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내일이 밝았고,

 

 "─리디큘러스!"

 

 이스피어는 벅찬 숨을 골랐다. 결핍을 채우지 못한 자신은 이미 귀여운 뱀으로 모습이 뒤바뀌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떨림은 쉽사리 가시는 것이 아녔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스피어는 바람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려 주저앉은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도 긴 시간, 말을 꺼낼 수가 없어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차츰 안정되어가는 숨만 내뱉어졌었다.

 

 "아이작 딜라이트."

 

 서리가 내린 듯 낮고 싸늘한 음색에 숙여있던 아이작의 고개가 서서히 들렸다. 그렇게 마주할 수 있던 은안은 이스피어의 생각보다도 낮고 어두워서. 이스피어는 지팡이를 더 힘주어 잡았다. 겨우 3주였다. 겨우 3주. 그 21일조차 채우지 못한 3주였단 말이다.

 

 "왜 네 보가트가 나야?"

 "피어,"

 "왜 나야. 아이작."

 "…."

 "…."

 

 아이작은 그저 힘없이 이스피어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애가 탔다. 숨이 막혔을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이스피어는 이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최초로 당신에게 접근했던 두 목적인, 결핍에 대한 욕망과 당신에 대한 탐구욕은 이제 다 필요가 없었다. 그까짓 영웅이 무엇이길래 한 사람을 생명을 이렇게 망쳐놓았나. 이스피어는 이제 알 수 있었다. 네가 왜, 혼자 적적한 발걸음만을 옮기고, 영웅이 되라는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고, 또 죽음 앞에서 초탈한 태도를 가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뼈져리게 이해했다.

 그러므로 예언은 곧 저주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무기로 세운 학대였다. 그것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 순간 이스피어는 저를 살게끔 하였던 욕망들이 저 시야 너머로까지 밀려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매였다. 당신에게 안쓰러움이 생겨나고 말았다. 당신을 동정하게 되었다.

 겨우 3주라는 시간만 가지고, 나의 시체를 가장 두려워하게 된 네가 불쌍해 미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스피어가 가장 용서할 수 없었던 부분이 그것이었다. 자신이 한 것이라곤 핍박으로부터 그를 껴안아 주고 위로해주고 다정한 말을 건네주고, 고민하는 것에 조언해주고 공포를 억누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준 것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아이작은 제 시체 앞에서 지팡이조차 휘두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아이작을 껴안아 달래는 이스피어의 눈이 찰나에 번뜩였다.

 

 당장 부모님께 편치를 부쳤다.

 

 

 "긴말 안 할게요. 발 빼세요."

 "...이스피어 틸다! 네가 정녕...,"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그 아이를 만난 것이냐? 우리가 그토록 이야기했지 않니!"

 "저 안 죽어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니......."

 "운명이라면서요?"

 

 짓씹듯 말했다. 선명한 분노로!

 

 "저는 죽지 않습니다."

 

 

*

 

 

 돌아온 이스피어는 그날따라 아이작을 제 곁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노래가사처럼 흥얼거리듯 하는 말을 아이작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스피어는 종종 그래왔으므로.

그저 나는. 세계의 영웅인 너만의 영웅이 되어줄게. 이스피어의 손가락 사이로 아이작의 검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때문에 이스피어가 트리위저드가 끝난 직후, 아이작을 소망의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 "무엇이 보여?" 다정히 웃은 이스피어가 묻자, "성인이 된 내가 보여." 아이작이 답했다. "그 옆엔 내가 있고?" "네가 보고 있듯이." 이스피어는 아이작에게 팔짱을 끼며 웃었다.

 "이건 소망의 거울이라고 해. 거울을 바라보는 사람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다. 이스피어는 아이작의 팔짱을 끼고 있는 성인이 된 자신과 눈을 마주했다.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기를.

 

 "네가 영웅이 된 건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야."

 "."

 "세계에 드리운 암흑을 거둬낼 존재라고 예언이 있었대."

 "…."

 "알고 있었어?"

 

 아이작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버겁다고 느껴. 피어. 우리는 분명 각자의 소망을 보고 있었을 것이었지만 그 형상은 무척 닮아있을 것이었다고 이스피어는 주제넘게 추측했다. 그저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심심한 위로를 보낼 따름이었다.

 

 "내게도 예언이 있었어."

 "무슨 예언이?"

 "운명의 멍에를 쓴 가여운 영웅의 손을 잡게 될 거라고. 그래서 그 애의 운명을 대신 짊어지겠지만, 대신 나의 결핍을 다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사이로는 순간, 끔찍한 침묵이 흘렀던 것 같았다. 이스피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짓고 거울에서 시선을 떼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었다. 그렇게도 굳건했다. 입술을 열어 고해했다.

 

 "그래서 네게 접근한 거야. 너를 판단하려고. 네 운명을 대신 내가 짊어져도 괜찮을지. 또 너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

 "하지만 깨달았어. 나와 달리 네게는. 네게 예언은, 단지 저주였을 뿐이라는 걸."

 "…."

 

 아이작은 말없이 이스피어를 바라보았다. 아이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추측할 수는 없었다. 네게 순수하지 않은 욕심으로 접근한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내가 이을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스피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너의 저주를 거둬갈게. 그리하여 너를 영웅이 아닌, 예언의 아이가 아닌 단지 '아이작 딜라이트'로서 내 앞에 존재하게 해줄게."

 "내게, 이러는 이유가. 피어,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언젠 이해할 수 있었고?"

 "…네게 너무 가혹할 일이야. 나는 그래서 두려워."

 "대신 너는 나의 결핍을 채워줘야 해.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으니까. 거래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 서로에게 필요한 걸,"

 "피어,"

 

 제발. 기어이 아이작이 흐느끼듯 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떨구었다. 애처롭게 그 단어를 내뱉는 아이작을 마주하면서도 이스피어는 꿋꿋하게 손을 뻗어 마른 눈가를 닦아 내주었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지. 다만 제가 당신의 운명을 비틀어낼 수 있는 존재라면 마땅히 그리하겠다. 운명대로, 당신은 나의 결핍을 또한 채워줄 사람인 것이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니까.

 이스피어는 아이작을 끌어안았다. 타인의 품이 생경한 그가 매달리듯 이스피어를 껴안아 온다. 못내 숨이 막히면서도 기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이스피어는 생각했다. 자신은 이 감각을 끝없이 사랑하고 말 것이라고. 

 

 

*

 

 

 "내가 너의 유일한 두려움이고, 예언이고, 박동하는 생명이 될 거야."

 "그렇다면, 나에게 예언해줘, 피어. 네가 나를 사랑할 거라고 예언해."

 

 곧. 이스피어가 태양처럼 웃었다.

 

 "예언할게. 나는 너의 불행마저도 사랑하게 될 거라고."

 

 예언의 아이가 예언의 아이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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