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c 7th 시나리오 「눈 위에 남겨진 신념」을 플레이 한 후 IF로 적은 글입니다.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존재치 않으나 주의 바랍니다.
말로末路
- 1.
사람의 일생 가운데에서 마지막 무렵.
- 2.
망하여 가는 마지막 무렵의 모습.
"오늘도 그 꿈을 꾸셨나 봐요."
어머니가 기르셨다던 당신의 양아들, 티오 아르달은 로넨이 차려준 아침 식사를 참 야무지게도 먹었다. 볼 한가득 빵빵하게 샌드위치를 씹어먹으며 태연히 묻는 그 말은 오늘도 로넨의 눈 아래에 거뭇한 기가 가득하단 이야기였다. 맨손으로 눈 아래를 매만진 로넨은 그저 커피를 몇 모금 더 삼켜낼 따름이었다. "꿈일 뿐이다." 피곤함이 그득한 얼굴로는 신빙성 없는 말이었겠다만. 그것은 맞은편에 앉아있던 티오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꾸셨다면서요. 그것도 이어져서." 로넨은 답하지 않았으나 티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닙니까, 형님."
"마법이 있다 해서 전생이 존재한다는 건, ... ... 아무래도 받아들기 힘들군."
"평행 우주일지도 모르고요? ... 뭐, 모쪼록 그분께 연락이 빨리 닿았으면 좋겠네요. 얼마 동안 연락이 안 닿으셨다 했죠?"
"1년 정도 됐다."
"오."
"... ... 다 먹으면 싱크대에 넣어놔라. 나중에 한 번에 치우게."
"넵. ... 들어가시게요?"
"일단 다시 편지를 보내보려고 한다."
"네엡."
의자를 끌며 일어난 로넨은 방으로 돌아오며 문을 탁 닫았다. 어느덧 잠에서 깨어난 페럿이 조르르 발치에 달려와 바지를 타고 기어오르려 했다. 허리를 숙여 손끝을 내밀자 익숙하게 팔을 타고 오른다. 로넨은 아침부터 지끈거리는 미간 사이를 몇 번이고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다, 반송된 편지를 가만 집어보았다. 내용은 단순했다.
어언 당신과 연락이 안 닿은지 1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제제, 당신이 어디에 있으나 알아서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만, 요즈음 뒤숭숭한 꿈을 꿔 걱정이 들고 있습니다. 편지를 받으시면 답장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 답장을 하실 여건이 되지 않으신다면 편지라도 읽었다는 의미로 불에 태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당신의 안위를 바랍니다. ... ...
편지는 이전처럼 온전한 형상을 유지한 채 반송되었다.
꿈은 계속되었다.
*
"선생님.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꿈을 꾸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로넨의 인내심은 날이 갈수록 바닥나는 중이었다, 물론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은 자신을 향해서만 문제가 되었다. 주변인을 대하는 로넨의 태도는 이전과 다를 것 없다시피, 거의 강박적인 수준으로 동일했다. 초록색 머리를 두 갈래 내려 묶고 동그란 안경을 쓴 이 녀석은 첼로를 켜는 아이였다. 한창 여름 방학인 시즌인데 이런 곳에서나 묶여서 연습하려니 좀이 쑤신다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건네는 말일 것이었다. 로넨이 단호하게 답했다.
"아직 3시간 남았다."
"잉."
발 빠르게 물러나고 뒤이어 그에게 다가온 것은 마찬가지로 첼로를 켜는 학생. 차분한 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녹색 눈의 아이였다. 아이는 입술을 열어 로넨을 불렀다. "선생님." 대체로 연습에 의욕이 충만하던 아이였으나 그를 부르는 음성은 영 좋지만은 못했다. 의아함을 감추고 로넨이 눈짓했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 어쩐지 주변의 아이들이 이곳으로 신경을 쏟는 것만 같았다. 로넨이 생각했다. 이 녀석들, 연습하기 싫은가보다. 그때 아이가 담담히 말한다.
"한동안 저희 연습을 쉬시는 건 어떠세요?"
"쉬고?"
"그 고민이나 해결하러 가세요."
"티오가 불었군."
"... 그래요! 저희 한동안 연습 안 해도 완전 재능맨이라 괜찮거든요."
"시끄럽다."
"이번에 콩쿠르도 나가서 대상 타왔는데~."
"그건 당연한 거고."
아이들이 종알종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공간은 대화의 장이 된 지 오래였다. 소음 가운데서 로넨은 꽤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했다. 주변으로 보일 정도로 관리를 하지 못했던가.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티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에 빠진 로넨을 보던 녹안의 아이가 말했다. "한 달 드릴게요." 그 당당하고 태연하고 뻔뻔한 표정에 로넨이 허,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이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한 달이나? 그럼 그냥 레슨 듣는다고 말하고 학교 째야겠다. 야, 너 거기 다닌다며, 마법 학교 모그와트. 모그와트가 아니라 호그와트야 이 바보야. 아무튼 한 달? 그동안에 연습은 어디서 해. 여기 개방은 되겠지. 헐, 저 여기서 자고 막 그래도 돼요 쌤? 너 또 가출할려고? 아서라. 어쩌라구. 내 맘이야. 로넨이 천천히 미간을 짚었다. 다른 의미로 머리가 어질해졌다. 그러나 결국 힘없게나마 웃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 한 달 동안 레슨은 휴강이다."
"저 질문이요."
잽싸게 아이 하나가 손을 들었다.
"여기서 자고 가도 돼요?"
"개방은 물론이고, 평소처럼 의식주를 해결해도 된다. 대신 친구는 데려오지 마라."
"원래도 안 데려왔는데욥."
"또 질문."
"씹혔네."
다른 아이 하나가 손을 붕방 흔들었다. 로넨이 턱짓했다.
"부모님께 연락 좀 해주세용."
"... ..."
"딱 세 번만 찬스 쓸게요."
"세 번 넘어가면 죽는다."
"넹."
말로는 세 번만 쓰겠다 했지만, 분명 세 번을 넘어가게 레슨을 들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를 째게 될 것이었다. 그래도 레슨을 쉬게 되는 건 로넨의 책임(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에 의한 선택이었으니, 이 정도는 눈감아줘도 될 것이었다. 그래도 여섯 번이나 넘게 핑계를 대진 않겠지. 부디 그러길 바랄 뿐이었다.
이후로도 로넨은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남은 레슨을 진행했다. 3시간을 꽉꽉 채운 알찬 시간이었다.
*
참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로넨이 꿈속의 자신이었다면 죽어도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라고 말하기엔, 꿈속의 자신이 홀로 겪어야 했을 일은 굳건한 이성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로넨은 그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광기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로넨은 꿈속의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가 겪었던 일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냉철한 이성에 금이 가지 않았고, 제정신으로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그래, 꿈속의 자신이 죽기 전에서야 되찾을 수 있었던 그 '제정신' 말이다.
... 카이저를 찾고자 하는 이유는 사실 복잡했다. 꿈속의 상황에 감정에 미약하게나마 동화되어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1년이 가까워지도록 한 번도 가지지 않았던 걱정을 가지게 했던 이유가 하나. 그리고 카이저를 보고 관계를 조금이나마 정리하기 위한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지금으로써는, 그러니까 꿈속의 자신은 카이저를 아마 의형제쯤으로 생각했던 듯 했다. 말로는 주군과 기사인 관계였지만 몽중의 자신에게는 의형제나 다름없던 관계였다. 그것에 생각해보니 현재의 자신도 마찬가지로, 카이저를 의형제 쯤으로 여기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로넨은 꿈속의 자신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을 대신해주기 위해 카이저를 찾는 중이었다. 죽어서까지 알지 못했던 그 관계성을 대신 확립시켜주기 위해. ... 이것이 세 번째 이유였고, 당신을 만나면 이 꿈이 멎기라도 하겠지. 그것만으로도 소득은 있었으니, 이것이 마지막 이유였다.
네 가지 목적을 가지고 로넨 아르달은 3주 만에 세계 곳곳을 뒤지다가 당신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당신을 마주하고 내뱉은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제제, 혹시.
"기억하십니까?"
*
앞으로는 이어지지 못할 나날에,
이 한마디만은 마음에 새겨주시길.
*
"... 편지를 하도 안 받아주시길래."
"직접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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