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FEAR&MARPASHI/ORPG 플레이 로그

[아이피어] 영원의 일요일 플레이 로그

by 여우비야 2020. 3. 30.


아이작 딜라이트:
rolling 3d6*5
(
6
+
1
+
3
)
*5
=
50
오늘은 뭔가가 다를 수 있을까요?
아이작 딜라이트:...
(느리게 눈을 감는다.)
영원의 일요일
w. 요한
20200329
KPC 이스피어 틸다, PC 아이작 딜라이트
1. 87번째 루프
방금 전까지 당신의 눈앞에 있던 이스피어가 거대한 트럭에 치여 날아갑니다.
점멸하는 헤드라이트,
추락하는 몸.
인간의 몸이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둔탁한 소리가 나고,
이스피어는 바닥에 처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콘크리트 바닥을 타고 피가 번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익숙한 광경에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당신은 생각합니다.
아,
벌써 87번째구나.
이스피어가 맞이한 것은 전형적인 죽음입니다.
2. 88번째 루프
헉.
온 폐부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거친 숨을 뱉으며 아이작은 몸을 일으킵니다.
이제는 악몽 같이 느껴지는 오전 6시의 알람소리입니다.
이스피어는 아이작의 눈 앞에서 다시 한 번 죽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광경으로는 조금도 놀랍지도, 손이 떨리지도 않습니다.
... 그래야만 했습니다.
아이작은 질려버린 눈으로 알람을 끄고 마른 세수를 합니다.
이스피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당신의 옆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기괴하게 비틀린 관절, 웅덩이처럼 고이기 시작하는 피는 모두 꿈결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 아이작, ...
얕은 잠에서 깬 건지 잠긴 목소리로 아이작에게 말을 겁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기억은 아이작에게는 아주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어제' 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가요,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이스피어를 사랑하나요?
아이작 딜라이트:... ...
미안. (손을 뻗으며 말했다.)
... 깨웠어? 더 자. (익숙하게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그러고나면 이스피어가 꼭 해버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가벼운 두통이 엄습합니다.
이스피어 틸다:... 오늘따라 아침이 싸늘해.(미미하게 표정을 찌푸리며 몽롱한 와중에서도 당신에게 손을 뻗어, 당신의 손등 위를 그러쥐듯 덮었다.) 안아줘. 춥지 않게.
당신의 오늘에서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그 말.
SANC 0/1
아이작 딜라이트: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아이작 딜라이트:겨울이니까. (당연하단 대답치고 손길은 부드러웠다. 습관처럼 당신을 끌어안는다. 온기가 지독하게 따뜻해 아이작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불 잘 덮고 자. 감기 걸리니까. (차라리 네가 지독한 열병에 걸렸으면 싶었다. 언젠가 그랬듯이, 하루를 전부 소비해 곁에 있을텐데. 하지만 넌 감기에 걸릴리 없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절대로. 아이작이 부스럭대며 품을 파고든다.)
이스피어 틸다:눈이 안 내렸으면 좋겠어. 눈이 내리면 길을 걷다가 미끄러지곤 하니까.(느리게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당신의 까만 머리카락이 보였다. 살풋 웃음을 짓다가 빈틈없이 자신을 끌어안는 당신 행동에 가슴 깊이 차오르는 만족을 느낀다.) 감기가 걸리지 않게 네가 잘 안아줘. 좋아하잖아, 아이.(당신 등 뒤로 팔을 둘러 당신의 뒷머리를 살살 쓸어주었다. 간지럽히듯 장난스럽게, 혹은 위로하듯 다정하게. 자주 내뱉지 않는 당신의 애칭까지 입에 담는 것은 분명 오늘이 좋은 날이 되리라 믿는 이스피어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 딜라이트:그럴 땐 내가 잡아주니까. ... (그러니까. 눈이 조금 내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겨울이란 계절 앞에서 목도한 당신의 모습은 꽤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으응. 아이작은 대답하듯 웅얼거리며 팔에 힘을 단단히 준 채 당신을 안았다. 잘 말린 이불냄새같은 것에 뒤섞인 체향이 달콤하다 여겼다. 깊은 안정감. 어떤 것도 이 행복을 깨트릴 수 없을거란 확신이 순간 스쳤다. 지난 모든 아침에 하던 확신이. 차라리 아침에 당신이 없었다면 조금은 포기할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를텐데. 이 짧은 순간이 아이작을 벗어날 수 없게 함은 분명했다. 버티게 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대신. ... 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어줄게.
이스피어 틸다:그러다 너도 같이 넘어지면 어떡해.(다정하기 그지 없는 말을 속삭여준 이스피어는 오늘따라 당신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눈을 감으며 그저 당신이 제게 싣는 무게에 충족감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내뱉곤, 수마에 몸을 맡긴다.)
(손이 시려울 테니 장갑을 끼고 나가자, 네 키만한 눈사람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해줘, 나는 옆에 너를 닮은 눈사람을 만들어볼래. 그 모든 사소롭고도 평화로운 일상의 언어들을 내뱉지 않고, 그저.)
좀만 더 자자, 아이작.
주말이잖아.
내 품 안에서 좋은 꿈을 꿔야지.
아이작 딜라이트:피어만 다치지 않으면 돼. (이 말이 당신에게 어떻게 들릴지.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당신은 분명 웃고 말 것이다. 평소에 하는 거소가 다름 없는 그저 그런 한마디라고 여기겠지. 이런 말의 무게를 따지고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만큼 간절하게 문장을 뱉은 적 없었다.)
(가볍고, 일상적이기만 한 언어들에 아이작은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그 말에 넘어갔다. 오늘은 다를거라고 또 다른 희망을 품는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아직은 주말이지. 아직은.)
... ... 잘 자, 피어. 일어나서 봐.
(네가 잠들길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덧 이스피어는 까무룩 잠에 빠져듭니다.
평화롭기 그지 없는 일상의 한 조각일 풍경인데.
오늘은 다를거라고 오늘만큼은 다를거라고,
그렇게 되뇌인지 88번째의 오늘입니다.
이런 일그러진 사랑이라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스피어는 그걸 받아들여 줄까요?
... 아이작, 이제 무얼 할까요.
같이 잠에 빠져들건가요?
아이작 딜라이트:... (완전히 잠에 빠진 것처럼 들리면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게으르게 굴었다가 돌아오는 결과는 지옥과 가장 흡사한 모습일 뿐이다. 이불을 단단히 덮어주고, 미련이라도 남은듯 이스피어의 머리카락 끝을 매만진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피어를 바라보는 건 시간의 낭비가 아니니까. 응.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가 너무 출렁이지 않게 조용히 빠져나온다.)
게으름 끝에 돌아오는 결과는 지옥과 비슷할 뿐이라고요.
그러나 당신은 익히 겪어온 87번의 오늘을 통해, 아무리 부지런했어도 일상이 지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경험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스피어를 위한 것을 멈출 수 없었죠.
이스피어는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마지막 기회였으니까요.
문득 아침을 준비하던 아이작은 회중시계를 꺼내 내려다봅니다.
이스피어가 당신의 마지막 행복인 시점에서, 이건 당신에게 주어진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아이작, 관찰 판정.
아이작 딜라이트: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회중시계입니다.
단 한 번도 떨어트리거나 긁혔다고 해서 흠집조차 난 적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시계 구석에 작게 녹이 슨 것 같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아이작 딜라이트:... ... (언제부터 이랬지?)
......
어느덧 시계는 8시 쯤을 가르켰고,
잠에서 깬 이스피어는 눈을 부비적거리며 당신이 있는 곳으로 내려옵니다.
이스피어 틸다:아이작, ... ... 잠도 안 자고.(자그마한 하품.) ... 아침부터 부지런하지.(그러나 자연스럽게 식탁의 의자를 빼내, 사뿐히 위로 앉았다.)
아이작 딜라이트:잤어. (거짓말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져서. (하품하는 얼굴을 보며 어쩌면 조금 웃었을지 모른다. 표정변화가 익숙치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당신의 앞에 부드러운 수플레 팬케이크와 과일 몇 개, 생크림이 플레이팅 되어있는 접시를 놔주곤, 제 몫은 대충 챙겨 맞은편에 앉는다.) 피곤하진 않아?
이스피어 틸다:음,(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바라보았지만, 당신이 자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무어라 말할 위치가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이스피어는 당신을 존중했으니까.) 잠을 꽤 많이 잔 편 아닐려나? ... 평일에는 보통 다섯 시간이나 여섯 시간쯤 자는데, ... 오히려 많이 자서 머리가 멍한 것 같기도 하고.(제 앞에 놓여지는 그릇을 보고는 양쪽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팬케이크를 보던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보고서는,)
고마워.(나긋하니 이야기한다.) 네가 항상 날 위해주는 행동에 기쁨을 느껴.(담담한 진실을 내뱉는다. 고개를 숙이고 식기를 들어, 팬케이크를 조금 잘라내며 계속 이야기했다.) 네가 날 위해 팬케이크를 만들어 줬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내가, 널 위해서.(이스피어가 자주 내뱉곤 하는 말이었다.)
아이작 딜라이트:(익숙할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당신 또한. 대개 사람은 익숙해지면 허술해지고 만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시간이 갈수록 늘 이렇게 빛나는지. 눈여겨 보았던 웃음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이면 아이작은 종종, 자신의 가치를 느꼈다.)
(고맙다는 한 소리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아이작 뿐일 것이다. 괜히 민망해지는 마음에 마주치는 시선에 슬그머니 눈을 피해 접시를 응시했다. 혀끝은 단데, 입 안은 썼다. 기분이 가볍게 들뜨다가도, 결국엔 손끝이 저린다. 지독하게 행복한 주말. 영원한 우리의 주말. 포크를 짓씹는다.)
... ... 그래도, 피곤하면 그냥 둬. 알았지? (됐다고 말해도 결국엔 거절할 것을 알아서, 아이작은 이런 말이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 뭘 하려고? 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 했다.) ... 주말이잖아.
이스피어 틸다:(어느덧 팬케이크를 깔끔하게 먹어버렸다. 입 안이 달기 그지 없었다. 혀로 제 입술을 한 번 훑어내고는, 마지막 남은 과일을 포크로 찍어 입 안에 넣었다. 과육 터지는 소리마저 먹어치웠다.) 어제도 집에 계속 있었잖아? 내일부턴 다시 학교에 나가야하니까, 나가고는 싶은데.
87번.
그 모든 숫자 동안 이스피어는 꾸준히 집 바깥으로 나갔던가요.
한 번도, 예외 없이요.
이스피어 틸다:다 먹었으면 그릇 싱크대에 넣고, 가서 좀 씻고 와. 너 나오면 나도 씻게. ... 아,(식기를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걸어갔다. 그러다 잠시 자리에서 멈춰서서, 당신을 돌아본다. 장난스럽기 그지 없는 미소가 걸린다.) 아니면 같이 씻어줄까?(예의 그 짓궂은 표정.)
아이작 딜라이트:(가지말자고 말하고 싶었다.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피어. 너는 있잖아. 지금껏 몇 번이나 내 앞에서. 머릿속이 진창이 되도록 외치다 아이작은 뱉어내듯 입을 연다.) ... 그래? (멍청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곧이어 짓궂은 얼굴을 할 때면, 아이작은 당신을 멀뚱히 보았다. 말 없이 또 내딛기를 한걸음, 또 한걸음. 바짝 붙을듯한 시선이길 또 몇 번. 덜컹. 하고 아이작이 식기를 싱크대에 넣는다.)
네가 ... 원한다면.
(재미없는 답이었다. 어차피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네 머리카락 끝을 손 끝으로 쥐었다가, 살며시 뒤로 떨어지며 놓는다.)
빨리 나올게.
(입을 맞출까 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 씻기 전이니까.)
이스피어 틸다:(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당신이 내뱉었던 답과 똑같은 한 단어. 고갤 돌리며 싱크대의 물을 틀었다.) 빨리 나와.
엉망진창인 생각을 안고 아이작은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샤워를 하면서도 뒤죽박죽인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나가겠군요.
이미 다닐만한 곳은 모두 다녀봤습니다.
이제는 같은 일정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나마 가지 않았던 장소는 ... ...
물기 어린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거실로 나온 당신.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던 이스피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입을 엽니다.
이스피어 틸다:아이작.
공원에, 어떤 행사를 한다던데.
가볼래?
아이작 딜라이트:... ... (물기가 떨어지지 않게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눈을 꿈뻑인다.)
... 행사?
이스피어 틸다:응.(가만 눈꼬리를 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당신에게로 걸어갔다. 장난스럽게 당신의 콧대를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나 씻고 올게. 준비하고 있어?
아이작 딜라이트:... (콕 찔린 콧대를 매만지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 응.
공원에 행사가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어봐도 공원에는 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스피어는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은 걸까요.
대체 오늘의 무엇이 달랐길래, 공원의 소식을 들어왔을까요.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이스피어가 기다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거실로 나옵니다.
그리고 할 말이야 또 뻔했습니다.
당신은 이스피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말했을 겁니다.
머리 말려줘?
매일같이 부탁했을 소리니까요.
느긋하게 준비를 하다보면 어느덧 오전 10시 언저리.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아직은 눈이 쌓여있지 않습니다.
오후 3시가 될 즈음이면 눈이 내리겠죠.
그 전에 이스피어가 죽지 않는다면,
쌓여가는 눈을 볼 수 있을텐데.
아이작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3. 반복되는 일상
[공원]
공원으로 향하며, 아이작은 가만 생각합니다.
꽤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이런 곳에서 이스피어가 죽어버린다면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 같다고.
하지만 더는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그나마 오늘 공원은 적당히 한산한 편입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공원에서의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공원에는 분수대와 꽃밭, 행사 중인 부스들이 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속삭이듯 물었다.)
아이작 딜라이트:... 피어는? (눈을 꿈뻑이며 네 의견을 묻는다. 아이작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스피어 틸다:(언제나 당신은 그랬다. 자신의 의견보단 그의 사랑에게 묻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지고야 만 삶. 그것을 일러주기보단, 이스피어는 당신의 선택에 이유를 붙여주곤 했다.) 꽃밭에 가보고 싶어.(당신의 손을 잡은 것에 더 힘을 주었다.) 그곳에서 너랑 사진을 찍으면, 분명 예쁜 사진이 나올 것 같아서.
아이작 딜라이트:(겨울에 보는 꽃이라. 아이작은 굉장히 생소한 기분을 느꼈다.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마치 당신과 자신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꽃밭으로 가자. (기묘한 두려움에 마음이 떨려온다.)
겨울에도 꽃이 핀다 했던가요.
당신의 오늘은 2월 말에 위치한 일요일.
꽃밭이라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꽃나무들이 우거진 자그마한 숲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코스이기도 했습니다.
피어있는 꽃은 막 봉우리 진 동백꽃과,
연한 붉음을 품은 매화꽃.
남은 꽃들은 아직 피어나지 않았음에도,
동백꽃과 매화꽃 만으로도 풍족한 기분이 듭니다.
이스피어 틸다:... 그러고보면, 동백꽃에 그런 전설이 있대, 아이.
아이작 딜라이트:... 전설? (되묻다가 농담을 말하듯 가벼운 투로 대꾸한다.) 그런 거에 관심있었어?
이스피어 틸다:왜, 꽃말같은 거 찾아보면 재밌잖아.(짧게 웃음을 흘렸다. 애교피우듯 당신의 팔 사이로 제 팔을 끼어넣으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뭐일 것 같아?
아이작 딜라이트:(원래 이런걸 좋아했었나? 생각하다가, 네가 좋아하면 됐지 뭐. 가볍게 떠오른다. 돌아가면 네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잔뜩 찾아야겠다 속으로 다짐한다. 꽃을 가만 보고있다가, 눈을 꿈뻑인다.) 보통 꽃에는 사랑과 관련된 것들을 많이 붙이니까. ... 정열적 사랑. ...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말하다 너를 본다. 그 말이 향할 사람을 가리키듯이.) 그런거 아니야?
이스피어 틸다:비슷할지도?(저를 바라보는 당신의 표정이 문득 한결같았던지라. 이스피어는 평상시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반대편 손으로 손짓했다. 고개 숙여봐, 아이.)
아이작 딜라이트:...?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널 바라본 채 눈을 꿈뻑이다가, 살며시 네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였다.)
이스피어 틸다:(그대로 발꿈치를 살짝 들어올리고, 몸을 기울여서.)
(당신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가볍게 짓누른다. 마주친 눈에 그저 눈매를 씩 휠 뿐. 고개를 아주 살짝 뒤로 무르며, 그 거리에서 말한다.) '애타는 사랑'이래.
아이작 딜라이트:... ... (부드럽게 휘는 눈매가 옅었다. 사랑스럽고, 여리다. 아이작이 모든 순간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네게 사랑한다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아이작은 그것이 웃음이라 말하리라. 그 여린 눈꼬리를 짚으리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입을 맞추려다가, 고개를 살짝 무르는 동작에 멈춰섰다. 거절의 의사인가? 애매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순간 나오는 말에, 조금은 불만스럽게 말한다.) ... 그래서 지금 애타게 하는거야?
이스피어 틸다:애가 타?(그 말에 당신이 고개를 기울인 그 반대편으로 저도 고개를 틀었다. 장난스러운 이 표정도 당신에겐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이었을 테다. 이런 당신을 보면, 불안함에 떠는 당신을 보면 이스피어는 매번 이런 생각을 하는 수 밖에 없어지고 말았다. 불가항력처럼. 손쓸 도리 없이.)
내게 키스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지,(당신을 품 안에서 놓기 싫다고. 평생 제 품 안에 당신이 끌어안겨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이愛.)
(당신과 얽었던 팔을 풀어내었다. 한 걸음 뒤로 무르고, 그러나 보란듯 두 팔을 벌렸다. 내게 안겨들라고. 그리하여 내 빈 품을 언제나처럼 채워버리라고.)
하고픈대로 해.(말한다.)
아이작 딜라이트:(많은 사람을 속이고 홀려, 지옥으로 내몰았단 악마가 있다면 이런 얼굴을 했을까? 만약 누군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아이작은 이렇게 말했을것이다. 이런 얼굴을 하고있다면야. 그럴만하다고. 목소리, 손길, 시선 끝에 매달린 것 까지. 그것 전부가 자신을 향하는데. 그를 따르지 않고 거스를 수 있는 게 있기는 할까.)
(떨어지는 온기가 아쉽다. 잠깐 입 안에 넣었다가 뺏긴 사탕처럼 탐이 난다. 맛보고 싶다고 외친다. 허락이 떨어지면 아이작은 망설임도 없이 발을 딛는다. 당연하듯 허리에 팔을 두르고, 당신을 당기고, 안고, 추위에 달아오른 볼에 입을 맞추고.)
... 피어.
(입 안에 넣은 사탕이 입안을 전부 베게 한다고 해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싶게 만들지마. (간결하고 담백한 입맞춤이 얼굴 곳곳에 맺힌 뒤에야 말한다.)
이스피어 틸다:네가 먼저 키스를 바라는 표정을 했는걸.(가볍기 그지 없는 말을 내뱉으며, 그 정도의 책임만을 당신에게 전가했다. 이런 바깥에선 나도 흥이 떨어지곤 하는걸. 이스피어는 본디 상냥한 성품을 지닌 인간이 아니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는 것과, 멀쩡한 사람을 무너뜨려 쓰러지게 하는 것. 둘 중 어느 행위가 이스피어에게 맞느냐 묻는다면 고민하면서도 후자가 낫겠노라고 답할 사람이 이스피어였겠다. 그런데 이스피어는 왜 당신에게 유독 다정히 굴 수 있었을까. 애정을 뱉을 수 있었던가. 나를 당기고, 안고, 입을 맞추는 당신을 묵인할 수 있었을까.)
(입맞춤이 멎은 후에는, 마무리하듯 당신의 목덜미에 무게 없이 입술을 스치듯 내리누르고, 정말 완전히 당신의 품을 벗어나고 만다.)
(봄의 나비가 날개를 나풀거리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당신의 손을 붙잡고 앞서 걸어간다.)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았대.(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저 붉은 꽃의 전설. 옛 이야기.) 하루는 남편이 육지에 볼 일이 있어서 배를 타고 떠났는데, 돌아오질 않는거야.(학교 선생님이 얘기를 해줬던가. 수업시간이 하도 지루하다 불만을 터트리던 아이들에게 잠을 깨우기 위해 읊어주었던가.) 아내가 병들어 눕다 못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어. '내가 죽거든, 남편이 돌아오는 배가 보이는 곳에 묻어주세요.'하고.(그래서 나는 그 아내가 어디에도 묻히지 못했겠구나,하고 생각했어. 말을 덧붙였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분수대였다.)
아이작 딜라이트:(내가 언제 그랬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작은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단 것을 알고 있었다. 감정표현에 적극적이지 않은 만큼 얼굴 위로 드러나는 갈망이 훤히 보이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 정말로, 자신은 네 말대로. '키스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제게 넘어오는 책임에 아이작은 입을 꾹 다문다.)
(목덜미에 덯는 입맞춤에 잠시 숨을 멈추고 당신의 등 뒤로 제 손을 꽉 쥐었다가 핀다. 잠시지만 바짝 긴장하듯한 몸을 눈치채지 못할리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다. 때때로 당신은 자신이 애타는 제스처를 좋아하곤 했으니까.)
(품에서 벗어난 온기가 하염없이 그립다. 하지만. ... 이스피어는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 길을 막아서며 다짜고짜 입술을 들이미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언제나 허락하는 것은 당신. 하지만 참는 것은 아이작의 몫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허락이라면 몇 번이고 참을 수 있었다.)
... ... 너무 책임감 없는데. (그렇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작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 ... 대부분이 행복한 결말이었으니까. 실제로 아이작은 어떤 이야기든, 새드엔딩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차라리 새로운 사랑을 찾았으면 나았을 걸.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 설마. 전설이 그게 끝이야? (아니지? 그렇게 묻는 투로 바라본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분수대에 다다릅니다.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미관을 꽤 아름답게 만듭니다.
물이 뿜어진 위에는 작은 무지개도 떠 있습니다.
80번 가량의 일요일은 눈이 내리기 전까진 날씨가 꽤 좋은 편이죠.
이스피어 틸다:(그런 당신을 알아챈건지, 이스피어는 앞서 걸어가기만 하다 문득 고개를 돌려 당신을 향해 웃는다. 속살거렸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잘은 들리지 않았겠지만 아마도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물이 흐르는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육지로 떠나 돌아오지 못한 남편과, 그를 기다리다 병들어 죽은 아내. 당신은 항상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는 결말을 좋아했으니까. 이스피어는 아직까지 당신에게 동화는 동화일 뿐이라는 말을 해준 적 없었다. 역린과도 같은 그 말을 내뱉을 생각은 전혀 없기도 했다. 당신에게 행하는, 그러니까 일종의 교정 행위는 몇 년이고 공들여 작업해야 할 것이었으니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이스피어는 실패라곤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러니까 말야. 바다에서 죽었더래도, 시체로라도 돌아와야 하는 게 네가 생각하는 '사랑'일텐데 말야.(그 남편에게 당신을 대입해본다. 당신이라면 정말 죽었더래도 시체가 되어서라도 돌아왔을 것만 같아서, 이유 없는 웃음이 흘렀다.) 아이작, 그렇다면 네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줄래?(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분수대를 바라보는 채로.) 남편은 실종되었고, 부인은 죽어버린 상태에서. ... 부인이 묻힌 그 자리에서 동백꽃이 피어났다던. 그 이야기가. ...(답은 이스피어도 잘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 ...
... ... 저 곳에서 행사중인 부스가 있대. 거기 가 볼래?
아이작 딜라이트:(집에 가서? 그런 말이 어딨을까. 일상적인 말인데도 그 말이 마치 시계초침같이 느껴졌다. 다급하고, 초조하고. 입이 자꾸만 마른다. 자꾸만 시계를 확인했다.)
... ... 기왕이면 다시 살아서 보는 게 낫잖아. 간혹 전설들은 너무 이상해. 사람 목숨을 너무 헛으로 써버려. (습관처럼 아이작은 이야기속에 자신을 대변시킨다. 애초에 자신이라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두고 떠나는 일 같은 거. 이별같은 건 없어야만 한다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내가?
(문득 들려오는 제안에 아이작은 멀뚱하게 눈을 깜빡인다. 분수대를 응시하고 있는 당신의 눈에 얼핏 무지개 빛이 물든듯 했다. 당황스러운 제의였다. 어쩜 당신이 늘어놓는 것들은 아이작이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것들 뿐인지. 문득 이제와서, 당신과 함께하게 되었던 그 시초의 순간을 떠올린다.)
... ...
(말없이 머리를 굴려가다가, 이은 말에 고개를 돌린다. 그래. 이 이야기는. ... 나중에 생각하자. 나중.)
아이작 딜라이트:별걸 다 하네. ... 갖고싶은 거라도 있어? (부드러운 솜사탕을 든 당신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다가, 금새 부드러워진 투로 말했다.)
이스피어 틸다:전설들이 그럼 그렇지. 항상 비극적이고 뒷맛을 찝찝하게 만들고. ...(몸을 돌려 행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당신의 손을 맞잡고서, 당신이 곰곰히 생각하는 것을 존중하듯 내내 말을 않고 있다가.)
그냥, 뭐, ... 구경이나 하는 거지. 무대에선 공연도 한다던데? 조금 살펴보고, 재미 있으면 지켜보고,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자.(천천히 어깨를 으쓱였다.)

공원의 중앙은 한적하더니, 점차 행사를 하는 곳으로 걸어가자 저 멀리,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있었다는 듯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보입니다.

이스피어 틸다:캐리커쳐도 하나봐. 먹을 것도 팔고. ... 딱히 생각은 없지만서도,(손그늘을 만들며 행사중인 부스를 바라보았다.)
아이작, 행운 판정.
아이작 딜라이트:
행운
기준치: 50/25/10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 ...
그래도 분명, 행복한 시간을 즐기던 중이었지요?
뭔가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들려옵니다.
점점 가까워지더니,
네.
예상대로.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처럼 달리며, 손을 마주잡고 있던 이스피어를 들이받습니다.
당신은 무의식 중에서라도 이스피어의 손을 놓지 않고자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랬듯,
손은 풀리고야 맙니다.
이스피어와 오토바이는 행사 중인 공연장에 처박힙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온통 아수라장이 된 그 사이.
허전해진 손만을 내려보았던가요.
고개를 들어 이스피어를 바라보면, 오토바이에 들이받힌 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엔진이 소리를 내며 돌아갑니다.
그 참혹한 꼴을 당신은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때요, 끔찍한가요?
아니면 이 광경마저 언젠가의 루프에서 본 나머지 어떠한 감흥도 없습니까?
SANC 0/1
아이작 딜라이트: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이성치 1 감소.
지독하도록,
추운,
겨울입니다.
......
3-1. 88번째 죽음
죽어가는 이스피어를 바라보며 큰 좌절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그 좌절과는 별개로 더 이상 극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습니다.
87번인 걸요.
88번 시간을 돌리는 동안 이스피어는 87번을 죽었습니다.
88번의 좌절입니다.
오늘도 88번째, 행복해질 수 없었습니다.
언제가 돼서야 아이작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스피어와 함께요.
습관적으로 주머니의 회중시계로 손을 가져갑니다.
이스피어를 바라보노라면, 피투성이가 된 이스피어는 손가락 끝을 고통으로 까딱거릴 뿐, 비명조차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당신, 이스피어가 죽기까지 기다리나요?
아이작 딜라이트:... ...
(그래. 나는 아까 네가 말한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어야할지를 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알아, 피어. 그 이야기는 말이야. ... 처음부터 잘못 된 거야. 헤어져선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어. 헤어져선. 헤어져서는 ... ... .)
돌아가자, 피어.
집으로 돌아가자.
집으로 가자.
동백꽃에 얽힌 전설을 떠올립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압니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맞지 않는 이야기니까요.
돌아가요, 당신.
돌아가자고요.
당신의 죽음을 인내하며,
기어코 숨이 멎은 당신 앞에서 회중시계를 누릅니다.
집으로 가요.
우리만의 동화를 적어내리러.
우리만의 영원한 결말을 향해.
4. 88번째와 그 이후
회중시계의 버튼을 누르고, 중력이 역행하는 기분을 느낄 무렵 당신이 들은 건―
시계의 초침 소리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죠?
수십 번의 루프 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요.
2. 89번째 루프
헉.
온 폐부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거친 숨을 뱉으며 아이작은 몸을 일으킵니다.
이제는 악몽 같이 느껴지는 오전 6시의 알람소리입니다.
이스피어는 아이작의 눈 앞에서 다시 한 번 죽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광경으로는 조금도 놀랍지도, 손이 떨리지도 않습니다.
... 그래야만 했습니다.
아이작은 질려버린 눈으로 알람을 끄고 마른 세수를 합니다.
이스피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당신의 옆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엔진이 돌아가던 소리, 오토바이 바퀴에 깔려 까딱거렸던 피투성이 손 끝이 모두 꿈결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 아이작, ...
얕은 잠에서 깬 건지 잠긴 목소리로 아이작에게 말을 겁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기억은 아이작에게는 아주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어제' 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가요,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이스피어를 사랑하나요?
그러고나면 이스피어가 꼭 해버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가벼운 두통이 엄습합니다.
이스피어 틸다:... 오늘따라 아침이 싸늘해.(잠결에 몸을 움츠렸다. 손을 뻗어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 안아주지 않을래? 세게. ... ...
아이작 딜라이트:.... ... (뒤늦게나마 해야할 말을 덧붙인다.) ... 미안. (피어. 난 이번에도.) ... 깨웠어? (온기를 품에 안는다. 체온을 느낀다. 돌아왔다. 또. 다시. '오늘'로.) 더 자. (팔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이작도 모를 일이 아니었다. 그치만. 그래도.)
이스피어 틸다:... 악몽을 꿨어?(평소보다도 더 강하게 저를 끌어안는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뒤로 둘러 당신의 뒷머리를 살살 쓸어주었다.)
오늘따라 어리광이 심해, 아이작.(이스피어는 매번 기민하게 당신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단지 눈썰미가 좋아서 그랬을지, 아니면 그 대상이 당신이라 그랬을지.) ... 오늘 아침은 내가 할까?(당신의 등을 일정한 박자로 토닥여준다. 달래듯이.)
아이작 딜라이트:(악몽? 편하기 짝이 없는 별명이었다. 차라리 단순한 악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게 하던 말, 웃음, 언어 하나하나 단꿈이어도 좋으니 그 뒤의 일이 전부 거짓이라면 얼마나 편했을까. 말 없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제 몸에 당신의 체향이 스며들 정도로 깊게 안았다.)
... ... 꿈에서 피어가 너무 보고싶었나봐. (뒤늦은 핑계를 대며 품에 얼굴을 문대다가, 살며시 떨어진다.)
아니, ... 괜찮아. 그냥. ...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이스피어 틸다:그 안에서 나는 네게 다정하질 못했나봐. 그러니 네가 꿈에서 깨어났겠지.(그러면서도 이스피어는 지독히도 살가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꿈 속에서의 내가 나와 같았다면, 너는 분명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오전 6시. 막 떠오른 이른 햇빛이 창문을 넘실거리며 발끝을 비춰왔다.)
쉬어, 아이작.(그것이 못내 발을 간지럽게 만들어서, 이스피어는 단잠에서 깨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신의 어깨를 붙잡아 침대로 내리누르며.) 널 위해, 아침을 만들어주고 싶네.
아이작 딜라이트:(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입을 다물수밖에 없다. 다정했다. 너는 지독하게 다정했다. 하지만, ... ... 우리의 운명이 다정하질 못한 것이지. 아니. 생각하지 말자. 잊어버리자. 아이작은 속으로 외쳤다. 이제 삶은 다음으로 넘어온 셈이다. 여기서 다시 행복해지면 돼. 이곳의 너를 사랑하게 되면 돼.)
... 응? (몸을 일으키는 네 모습에 조금 당황해 아이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번 보지 못할 흔치않을 얼굴임은 확실했다. 몸을 일으키려다가도 네 손에 눌리니, 아이작은 한껏 가련해보이는 얼굴을 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제 어깨를 붙잡은 손에 살며시 제 손을 겹쳐 잡는다.)
... ...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안 돼? 아니면 도와주는 거라도 ... ... .
이스피어 틸다:(지은 미소가 더 짙어질 뿐이었다. 정말 악독한 꿈이었나보지. 네게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 꿈이었다면. 이스피어가 당신의 드문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또 생각했다.) ... 그럼 일어나, 아이.(눈매를 살풋 휘며 당신을 간지럽히듯 어깨를 짚은 손가락 끝으로 살갗 위를 매만졌다.) 먹고싶은 거라도 있고?
아이작 딜라이트:(아. 저 웃음이다. 미소띤 얼굴을 보자 아이작은 그제야 자신이 완전히 돌아왔음을 알았다. 정말로, 집에 왔다. 지난 시간은 잊혀지고, 다시 기분이 부드럽게 풀려간다. 살결 위로 스치는 손에 몸을 움찔 떨다가 급하게 제 손으로 붙잡는다. 원래라면 금방 놓아줬겠지만. ... 어쩐지 계속 잡고싶은 마음이 들어 놓지 않았다.) 피어가 먹고싶은 거면 되는데. ... 어떤 게 좋아?
이스피어 틸다:(오늘의 당신이 유독 다르긴 했다. 그에 이스피어는 당신에게서 손을 거두지 않고 되려 손을 움직여 당신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가다듬었다. 검지 손가락을 들어 목울대를 흐르듯 타고 넘어, 손바닥으로 당신의 쇄골 위를 덮었다가, 그 위를 재차 간지럽히다가. ...) 간단하게 토스트나 먹을까? 냉장고에 베이컨이 남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아이작 딜라이트:... ... 토스트? (목 위를 타고 흐르는 손길이 마치 유혹이라도 하는 듯 했다. 아이작은 눈을 꾹 감았다가 뜬다. 손끝이 목울대를 스치는 순간 침을 꿀꺽 삼킨다.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했다. 하염없이 장난스럽고, 짓궂고. 한참이나 숨을 가다듬고나서야 제대로 당신을 본다.) ... ... 계란도 남아있을테니까. ... 계란후라이는 내가 할게. 아니면 프렌치 토스트도 괜찮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어간다.)
이스피어 틸다:(웃음이 짙어진다. 일으켰던 상체를 반쯤 당신에게로 숙이자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한 손으로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당신 위로 엎어지듯, 반대편 손으로 당신의 앞머리를 쓸어넘겨 드러난 새하얀 피부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이로써 네 악몽은 완전히 잊혀지겠지. 그러니 이는 단순한 위로이자 당신에겐 절대적인 마법이었을 행위.)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다시 일으키고, 침대 바깥으로 발을 빼 완전히 일어난다.) 프렌치 토스트도 좋고. 버터도 아직 남아있던 것 같은데?(종알거리며 당신을 침대에 두고, 주방으로 내려가려 문으로 걸어갔다.)
아이작 딜라이트:(누군가는 미친게 아니냐고 말할 말이겠지만, 아이작은 당신이 제 위를 차지했을 때만큼 좋을 때가 없었다. 엇갈리는 시선이나. ... 긴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온전히 자신을 덮어 시야가 차단되었을 때. 비로소 그 하얀 얼굴만 시야에 담기는 순간을. 저가 가장 좋아하는 웃음이 제일로 돋보이는 순간이지 않나. 다만 아이작이 네가 입을 맞췄을 때도, 혼자 방을 떠나버렸을 때도. 그저 멍하니 침대에 가만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다. 뭔가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래. 애초에, 당신을 상대할 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만큼 의미없는 행동도 없다. 그런데. ... 하. 티나지 않게 짧은 한숨같은 걸 내쉬며 느리게 그 걸음을 따른다. 괜히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다가, 손으로 문지른다.) 베이컨은 몇 장이 좋아?
그렇게 오늘이 지나갑니다. 여느 때와 같이요.
소소하게 베이컨 토스트를 구워먹었다느니, 그런 차이점을 제외하면 모두가 똑같습니다.
아침을 먹고,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누군가가 씻고 나오고.
이스피어의 머리를 말려주고. ...
그러면 이스피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 하루 뭘 하고 보낼지에 대해 묻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어제도 집에 있었는데, 오늘도 집에 있긴 아쉽지 않아?
라면서요.
그나마 가지 않았던 장소는 도서관과 유원지 정도였나요.
아이작 딜라이트:... ... ... .
(나가지 말자고 말하고싶다.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 그랬다간 당신이 저를 쳐다볼 시선이 두려웠다. 그 안에 담긴 감정따위도. ... 다신 보지 못할지 모르는 웃음같은 것도.)
(결국에 머릿속으로 계산을 이어갔다. 유원지와 도서관 중에 ... 안전한 곳이 있다면 어딜지. 그런 것들을 한참이나 계산해나가다 입을 연다.) ... 도서관 갈까?
이스피어 틸다:(손에 턱을 괸 채 당신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말이 없는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꽤 익숙한 일이었다.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일 일. 다만 그러고서 내뱉은 말은, '네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야?'따위의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스피어를 놀라게 했을 테다. 눈을 크게 뜨고는, 어느 순간 환하게 웃음 지었다. 웃음을 자그맣게 흘리고는 장난 어린 손길로 당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다.)
얼마만의 의사 표현이야, 아이작? 아침부터 괜히 기분 좋아지네.(때는 오전 8시 즈음의 일이었다.) 좋아, 가자. 가서 어려운 책은 말고-, ... 적당히 소설책들이나 빌려 와야겠다.
아이작 딜라이트:... ... (이걸 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작은 그저. ... 당신의 기분이 나아졌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했다. 그래. 오늘은 평소와 다른 날이잖아. 그렇지. 오늘은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 다를 거야.)
(웃음을 따라하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다시금 거둔다.)
오늘은,
다를까요.
3.반복되는 일상
[도서관]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시립 도서관입니다.
사람도 없고, 꽤 깨끗한 곳이라 이런 곳이라면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과거도 있었죠.
그러나 아이작은 습관처럼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오늘은 다를거라 말하는 것도 자기 세뇌에 가까운 행위.
이스피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작과 함께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오늘도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후 3시쯤이 되면 눈이 내리겠지만, 쌓여가는 눈을 볼 수 있겠지만, ......
아차,
오늘의 당신과는 눈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요.
무심코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며, 이스피어의 옆모습을 바라봅니다.
80번 가량의 일요일은 항상 날씨도 좋고, 햇볕도 화창합니다.
이스피어 틸다:아이, 나는 소설 코너로 가볼게. 너도 책을 빌려서 자리로 와.
그리 말하며 이스피어는 소설 코너로 향하려 몸을 돌립니다.
아이작, 당신은 어쩔까요?
아이작 딜라이트:... (잠깐, 이스피어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스피어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소설코너가 잘 보이는 즈음인 어느 도서코너 서서, 대충 책을 고르는 척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죽음이 이스피어의 곁을 도사리지 않는 듯 했죠.
그러다 보면, ...
아이작, 자료조사 판정.
아이작 딜라이트: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핸드아웃 공개.
누군가가 중간 부분의 페이지를 아예 뜯어가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 같은데요.
괜스레 짜증과 허탈함이 밀려왔던가요?
당신도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있었죠.
그들은 잊혀진 채로 그곳에 있을까요?
어쩐지 노스탤지어가 드는 내용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 저 멀리서 소설책을 하나 고른 이스피어가 당신에게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스피어 틸다:아이,(목소리를 줄여 저 멀리서 당신을 불렀다.) 책은 골랐어?
아이작 딜라이트:응? 책? 그게, (말하며 급하게 아무 책이나 집어든다.) 골랐어. (라고 말하며 꺼내든 건 요리책이었다.)
이스피어가 당신이 든 책을 살피려 눈을 가늘게 뜨자,
아이작, 행운 판정.
아이작 딜라이트:
행운
기준치: 50/25/10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무언가가 우리의 위로 그림자가 지고 있었습니다.
재앙 앞에서 한낱 인간이 무력했듯,
우리는 손 쓸 새 없었습니다.
기우뚱 무너지는 책장.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올려 책장에 얻어맞고 말아, 아이작은 옆으로 튕겨져나오다시피 하며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 ...
다시금 까딱거리는 이스피어의 손 끝을 바라봅니다.
상당한 무게 탓에 어떻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도서관에 있던 몇 명이 달려오지만 역부족입니다.
애초에 사람이 없던 도서관인 게 문제였을까요, 아니,
애초에 문제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아이작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작, 이스피어가 죽는 걸 기다립니까?
아이작 딜라이트:... .... ...
(이게 아니다. 이건. 아니다. 이게 아니잖아. 우린 이러면 안 되는거잖아. 머리가 깨질듯 아프다. 방금까지 손을 뻗으면 닿았는데.)
(닿았는데.)
...
아니야, 피어. 우리는. ...
우리는 이렇게 끝나면 안 돼.
아이작 딜라이트:우리는 ... ... ... .
(눈을 감는다.)
그리하여 회중시계를 누릅니다.
집으로 가요.
우리만의 동화를 적어내리러.
우리만의 영원한 결말을 향해.
3-2. 89번째 죽음
아, 89번째 죽음입니다.
이번에도 새삼스러울 정도의 좌절이 당신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너의 이름을 닮았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무력감과 실소도요.
이런 식으로 이스피어는 아이작을 또 떠나갑니다.
왜 그는 당신을 떠나갈까요?
이래서야 시간을 돌리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이제 당신은 이스피어가 죽기 전에 습관처럼 회중시계의 버튼을 눌렀을지 모르겠습니다.
딸깍.
딸깍.
시간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니 이스피어는 아직 죽지 않았나봅니다.
그가 죽어야만 시간이 돌아갑니다.
그가 죽어야만.
.......
어쩐지 시간이 돌아가기 전, 이스피어의 시선이 당신을 향했던 것 같습니다......
SANC 0/1
아이작 딜라이트:
SAN Roll
기준치: 39/19/7
굴림: 48
판정결과: 실패
이성치 1 감소
4. 89번째와 그 이후
2. 90번째 루프
헉.
온 폐부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거친 숨을 뱉으며 아이작은 몸을 일으킵니다.
이제는 악몽 같이 느껴지는 오전 6시의 알람소리입니다.
이스피어는 아이작의 눈 앞에서 다시 한 번 죽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광경으로는 조금도 놀랍지도, 손이 떨리지도 않습니다.
... 그래야만 했습니다.
아이작은 질려버린 눈으로 알람을 끄고 마른 세수를 합니다.
이스피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당신의 옆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책장 아래 깔려 바르작대던 신체, 까딱이던 손가락과 이스피어의 거칠었던 호흡은 모두 꿈결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 아이작, ...
얕은 잠에서 깬 건지 잠긴 목소리로 아이작에게 말을 겁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기억은 아이작에게는 아주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어제' 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가요.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이스피어를 사랑하나요?
그러고나면 이스피어가 꼭 해버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 오늘따라,
이스피어 틸다:아침이 싸늘해.
... ... 눈이 내렸나?
아이작 딜라이트:... ... 눈? (피곤이 머리를 짓누른다. 당신을 보호하듯, 감싸듯, 아니면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옥죄듯, 아이작은 침대 시트를 발로 밀어 기어가며, 당신의 몸 위로 제 몸을 낼 누르듯 끌어안았다.)
피어, ... 눈이 보고싶어? (목 부근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직. 아직 있어. 아직 너는 살아있다. 아직 옆에 있다. 그 작은 확신을 갖고 싶은 사람처럼.)
이스피어 틸다:(잠결에 휩싸였던 머리가 순간 꿈에서 현실로 몸뚱아리가 내던져지기라도 한 것 마냥, 깨어난다. 시리도록. 싸늘하도록.)
(이스피어는 눈꺼풀을 들어올려 자신을 옥죄듯 끌어안은 당신을 내려다본다. 당신의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문득 이스피어에게, ... 위화를 심는다.)
... ... 아이.(당신의 등 뒤로 손을 올려 등골을 타내려가듯 근육을 더듬듯 살결을 쓸어내려주며 무언가 '다른' 당신을 달래는 것은 습관에 가까운 행위였다. 함께 자는 것을 유독 좋아했던 당신을 마주 끌어안아주었던 것에서 파생된 행동.) 아이, 아이작.(숨이 조금 막혀왔지만 그것보단 당신의 낯선 어리광이 더 중요했다. 이스피어는 이 위화의 원인을 기어코 밝혀내야 했을 성격이었으므로.) 내 얼굴 봐봐, 응?(달콤한 말로 당신을 꼬여내듯 말할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아이작 딜라이트:(코끝이 아릴 정도로 얼굴을 파묻었다. 풍기는 분위기, 익숙한 살내음. 부드러운 목소리나, 쓰다듬는 손길이나. 이런 행동들을 싫어할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자신을 옥죈다. 두려움이 몸 깊은 곳까지 잠식한다. 눈을 떠 바라보기 두렵다. 당장 널 보면, ... 저가 끌어안고 있는 게 이게 아니라. ... '다른 것'일까봐. 코끝을 찌르는 게 비린내일까봐.)
... ... 응, 피어. (마주 대답을 하는 목소린 되려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 억눌린 감정들이 행동으로 드러날 수 밖에. 저를 쓰다듬고 어르고 달래는 손길이 길어질 수록 아이작은 더 깊게 파고든다. 온몸으로 가지말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 (다만 끝까지 널 거부하기란 어려운 것이라,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드는 수 밖에 없었다. 불안한 초점, 불온정한 숨, 옅게 붉어진 눈밑까지.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이 너무나도 잘 보이는 얼굴이었다.) 피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아이작이 붙어왔다. 뺨을 맞대어 부비는 꼴이 짐승이라도 되는듯 싶었다.)
몇 번도 아니고, 무려 90번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90번이나 이스피어의 시체를 봐왔다는 소리입니다.
피어, 어쩌면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죠.
지금 끌어안고 있는 것이 살아있는 온기가 없는, 심장이 뛰지 않는, 움직일 수 없는 시체일까봐.
아이작은 도무지 불안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고,
그것은 당신에게 어쩌면 최초의 균열을 선사합니다.
이스피어 틸다:(이스피어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당신답지 않게 저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껴안아야 하는 강박 어린 행동과, 감출 수 없던 당신의 모든 감정. 그 하나하나를 낱낱히 파헤치고만 이스피어는 분현듯 판도라의 심정이 이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뭐지? 그런 생각이 처음 부유했다. 뺨을 부비는 것을 받아내며 이스피어는 지금도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닐지, 잠시 상상해본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낱 악몽 따위로 당신이 제게 이리 굴 리가 없지 않은가. 당신을 길들이는 것이 이스피어, 자신이었기 때문에 당신이 제 예상 밖으로 벗어나는 행위에는 몹시도 치밀해지고 심각해지는 이스피어였다. 그러니까, 이건. ... ...)
무슨 일이야?(그리하여 이스피어는 드물게 딱딱한 어조로 당신에게 물었다.)
아이, 무슨 일이야.
아이작 딜라이트:(아이작 딜라이트가 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감히 네게 말할 수 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제 앞에서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갔다고. ... 그리고 그런 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와 아이작은 망설임 없이 붙잡았고. 너를 다시 품에 안았고. 그렇게, 그렇게. ... 네가 몇 번이나 죽게 내버려뒀다고.)
(그러니 아이작 딜라이트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떠한 것에도 솔직해질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딱딱해지는 어조에 문득 고개를 든 것은 공포심에 가까운 복종심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아니. ... 그게. (그리고 그 텅 빈 공백을 채우려고 연 입은 어떠한 것에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 ... ... 아. 악몽을. (더듬거리듯 말한다.) ... 악몽을 꿔서. ... (그리고 도망치고, 숨듯이 다시금 얼굴을 묻으려 품을 파고든다.)
이스피어 틸다:(마주했던 표정에 자신은 아마도 내뱉었던 목소리마냥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도망쳐버리는 당신을 마주 안아주는 행동은 평상시마냥 다정을 닮아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스피어는 본디 일처리에 완벽을 기했다. 집착적으로 계획을 성공까지 일궈나가는 이스피어는 여태껏 한 번도 실패한 적도 없었고, 또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적도 없었는데. ... 당신이 이렇게 된 것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안는 손길에 힘이 들어간다.)
(감히?)
(... ...누가?)
... ... 아이작.(이젠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이스피어는 묵직하게 차오르는 분노를 만끽하는 자세를 취하며, 나지막히 당신을 불렀다.) 내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네 여린 마음이 괜찮을 것 같아?(협박처럼 들렸을지 모르겠으나 내뱉는 말은 진실되었다. 이스피어는 당신을 애정을 품고 대해야 했으니까. 다만 당신이 정확히 무슨 일을 겪었을진 몰랐기 때문에, 이스피어는 당신이 몇 번이고 몇 십 번이고 이미 무너진 상태라는 걸 짐작할 수 없었다.)
말 해야지.
네가 날 잘 안다면,
이스피어 틸다:너를 잘 아는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아이작 딜라이트:(무거운 부름이 귓가에 곧장 내리 꽂힌다. 저를 끌어안는 손길이 마냥 다정한 것 같았지만, 그 음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이작이 모를리 없었다. 이 품을 벗어나는 게 두렵다. 차가워져있을 눈을 마주보는 게 두렵다. 하지만 이 품에서 떨어지라고 직접 내쳐지는 순간 또한 두렵다. 그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듯, 목구멍 끝에서 밭은 숨소리같은 게 터졌다. 말해야하나? 하지만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이럴 때의 해답을 주는 건 늘 당신이었으므로, 아이작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없음은 당연했다. 말하는 것. 혹은 말하지 않는 것.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든 간에 아이작이 맞이할 것은 최악에 최악 뿐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아이작은 결국 천천히 입을 연다.)
... ... 정말이야. ... (당신이 속아넘어가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럴듯하게 보이려면, 적당히 거짓과 진실을 섞는 수 밖에 없었다. 마냥 진실도, 마냥 거짓도 아닌 말. 어쩌면, 당신도 이런 아이작을 보는 것은 처음일테니 곱게 속아넘어가줄 줄 또 누가 알까?)
... 며칠동안 계속, ... 악몽을 꿔서 그래. 거기서 피어가 계속. ...
(죽어서.)
...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아 몇 번이고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했다.) ... 계속, 심하게 다쳐서. ...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자꾸 떠나니까. 근데 해줄 수 없는 게 없으니까.
(속죄라도 하고 싶은거야? 네가 그렇게 물으면 어쩌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이 몇 십 번의 굴레를 넘어, 오늘에서야 무너지며 아이작은 네게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날 용서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 ... ... 미안. (품을 빠져나올 듯 아이작이 침대를 밀고 일어나려 했다.)
이스피어 틸다:(당신이 온 것은 어젯날이었고, 그 전에는 드문드문 함께 지냈었던가. 유감스럽게도 며칠동안 계속 당신이 악몽을 꿨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알 수 없었다.) ... 그렇지만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일어나려는 당신의 팔을 턱, 붙잡았다. 뿌리치려면 당장에라도 뿌리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 것을 알았다. 아니, 믿었다. 제 사소한 몸짓도 거부할 수 없을 당신을, 그렇게 되게끔 당신을 길들인 자신을!)
나는 너에게 그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아, 아이작.(푹신한 침대에 새까만 머리카락이 흩어진다. 이제 막 산등성이를 넘어 이른 햇살이 창문을 넘실거려 발 끝을 간지럽히는 오전 6시. 이스피어는 담담히 당신을 바라보았다.) 네게 거짓말 하지 않아, 나는.(그 때 내가 네게 말했지. 네가 내게 온다면 나는 널 기어코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라고. 너라는 인간이 내게 종속된다면 네가 포기한 네 인생의 대가로 네가 바라 마지 않을 동화 속의 결말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잖아.(이스피어는 말했다. 너를 아껴주겠다고. 애정해주겠다고. 네가 여태껏 경험치 못한 일상을 영위시켜 주겠다고. 그래서 난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난 네게 언제나 다정할 것이고, 그래서 난 너를 버리거나 널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럴 거라고.) 그런 내가 네게는 별다른 약속을 걸지 않았어. 네게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어.
그야 네가 어떤 거짓말을 하든, 난 지금처럼 알아차렸을 거니까.(당신을 붙잡았던 것을 보란듯 놓아주었다.) 이 방을 나가려거든 나가. 도망치려면 도망쳐봐.(담담한 시선이 당신을 흔들림 없이 응시했다.)
하지만 넌 그러지 못할걸.
아이작 딜라이트:(도피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보단, 도망치려는 것에 가까웠다. 저 혼자 결론을 낸 채 말 그대로 내빼려고 했다. 하지만 당신에게 자신을 너무 노출시킨 탓일까? 단 한 번의 몸짓, 시선, 목소리만으로 모든 것이 들키고 말 것을 알면서도 아이작은 그런 실수를 한다. 그리고 기어코는 당신의 분노를 목격한다. 당신의 손길이 닿는 순간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음을 느낀다. 언제라도 뿌리치고, 언제라도 도망치고, 벗어날 수 있음을 알고있는데도. 완전히 이 곳에. 당신의 옆에 묶여있단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절대자와도 같은 권위를 느낀다.)
... ...
(약속. 하필이면 왜 꺼낸 말이 그거냔 말인가. 그 많고 많은 언어들 중에 하필 당신이 고른 게 왜. 아이작은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제 눈 앞의, 절대자에게서 떨어지는 애정을, 안식을 거부할 수 없다고. 먼저 약속을 깨버린 건 너잖아, 피어. 네가 먼저 내게서. 내가 절대로 닿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렸잖아. 약속을 깨버린 건 너야. 너라고. 그렇게 아무리 속으로 외쳐봤자, 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이작은 제 입술을 꾹 문채 마치 울먹이기라도 하듯 시선이 흔들린 채 당신을 본다. 그래. 그 말이 맞아. 나는 절대로 도망갈 수 없다. 절대로. 하얀 침대시트 위에 흩어진 새카만 머리카락을 본다. 거미줄 위에 누운 포식자같은 태도였다. 그리고 아이작은. 자신은. 이 거미줄을 끊고 도망가지 않는다. 거미줄이 없더라도 도망가지 않을테다. 그거야. 우린 약속을 했으니까. 당신이 있을 곳에 행복이 있음이 분명하니까.)
(그렇게 아이작 딜라이트는 무너진다.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당신을 향해 어설프게 세워두었던 벽조차 완전히 무너진다. 전의를 상실한다. 영원같은 애정, 평화와 비슷한 형태의 복종을 택한다.)
... ... 피어.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아이작이 손을 뻗어 자신을 붙잡았던 손을 붙잡아 입을 맞췄다. 원한다면 발에 입을 맞췄을 것이다. 언젠가 들은, 너의 악행을 맨몸으로 받아낼 의지가 있었다. 잔뜩 더러워진 신발을 핥으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다시 네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절대로 널 떠나지 않아. 절대로. ... ... 포기하지 않아.
아이작 딜라이트:하지만 ... ... .
네가 믿지 않을까봐, ... 이걸로 날 증오하게 될 것 같아서 두려워.
(모든 승리자는 당신이다. 공포감에서조차 당신이 깃발을 쟁취했다.)
이스피어 틸다:너의 두려움을 잠재울 방법을 알아. 아이작.(손에 입을 맞추는 당신을 바라보기만 한다. 바라보기만 하다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동일선상은 아닐지언정 아까보다야 비슷해진 눈높이. 손등에 혹은 손바닥에 와닿는 네 입술. 어쩌면 하룻밤 사이에 까칠해진 것만 같은 그 촉감. 이스피어는 그렇게 되돌아 깨닫는 것이었다.)
(너는 내게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우리가 헤어질 때는 분명 누군가의 죽음 뿐이겠구나. 진실인지도 모르는 진실을 그렇게 생각하며, 이스피어는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당신의 뺨을 쓸었다. 감히 어떤 악몽일지 몰랐던 그 현실에게 경고하듯, 당신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번에는 이스피어가 몸을 기울여 당신의 뺨에 제 뺨을 부볐다. 당신이 제게 그러했듯 짐승같은 분위기를 모방하며 그러면서도 본연의 고아한 자태는 잃지 못하고,)
약속할게.(자신도 모르게 이미 어겨버리고 만 약속을 입에 담는다.)
내가, 네게.
약속해, 아이.
이스피어 틸다:우리를 주제넘게 갈라놓는 그것이, 더는 우릴 갈라놓지 못하게 할게.(뺨에 와닿는 온기는 분명 생자의 것이었겠지, 아이작.)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란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당신에게 보이지 않을 얼굴에는 서늘함만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도 더 달콤함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겠다. 고개를 슬쩍 들어 어딘지 모를 허공을 쳐다보며 읖조렸다.) 그러니 말해. 나는 너의 추악함마저도 애정하기로 약속했잖아?
아이작 딜라이트:(그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제게 다가올 때면 검은 머리카락이 앞으로 쏠려 흩어지는 소리가 났고, 특유의 체향이 났고, 혀끝에는 단향이 꽂혔다. 그제야 아이작은 알았다. 당신이 돌아왔음을. 그리고 자신의 몸이 다시 생生으로 차오르고 있음을. 부드럽게 마주 부비는 뺨에 손끝이 저릴 정도로 심장이 저렸다.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순수한 기쁨에서 시초된 고동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약속한다.)
(아이작 딜라이트는 홀리듯이 손을 뻗었다. 왜 그랬어? 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잘 짜인 각본 속의 행동처럼. 그냥 그렇게 손이 뻗었다고. 그렇게 네 허리에 팔을 두른 채, 금방 제 볼에 닿았던 볼에 입술을 부빈다. 피어. 속삭이듯 이 모든 행동의 원인을 쫓아 뱉는다. 안식을 찾는다. 왜 키스하지 않았냐고 또 묻는다면. ... 이성이 엇나갈만큼 고취된 상황 속에서도 아이작 딜라이트가 아주 약간의 이성과 눈치는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 네가 화낼까봐.)
... ... 알았어. 그럼 말할게.
(살짝 떨어진 채 숨을 고른 아이작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디부터 말해야할지 고민하기보단, 모든 것을 말하는 편이 나앗으므로 아이작은 제 감을 따라 움직였다. 어느 순간 시작된 당신의 죽음. 그리고, 되풀이. 알람소리, 당신이 춥다고 말하는 음성, 아침을 먹고, 씻고, 외출하고. ... 그러고 나면 늘 있던 죽음까지도. 처음에는 악몽인 줄 알았으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꿈인줄 알았으나. 그것이 아니었다고. 모든 것이 반복되어가고 있고, '오늘'이 끝나지 않고 있다고. 제게 주어진 죄는 바로 영원한 주말이라고.)
널 잃고싶지 않았어. 너는 내게 약속했으니까. 그래서 시작했는데. ... 피어, 나는. (변명같이 말을 덧붙인다.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면.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가 살그머니 시선을 올려 당신을 본다.)
이스피어 틸다:(그렇게 당신에게서 들을 수 있던 내용은 하나같이 상상을 뛰어넘던 일들이라, 어느덧 시계는 오전 7시를 달려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당신의 이야기 내내 이스피어는 어떤 반응도 곧잘 하지 않았다. 그가 했던 것이라곤 눈을 몇 번 깜빡인다던가, 눈을 굴리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다던가 하는 행동들 뿐. 무덤덤했던 표정에 평상시와 같은 미소가 걸친 때는 당신이 변명같은 말을 덧붙이고 난 이후였다. 언제나의 이스피어와 다를 것 하나 없는 그 표정, 그 눈빛.)
아흔 번이나 되어서야 무너진 너도 참 너답긴 한데, ... ... 우선 네게 제일 필요한 말을 해줘야 할 것 같네.(지극한 죄인罪人이 되어 눈을 맞추는 것조차 벅차하는 당신을 보았다. 그래, 나의 죽음이었다면 감히 당신을 이토록 몸 사리게 만든 이유가 납득이 가지. 죄를 감형하는 판결을 내리듯 심심한 감상을 속으로 읊은 이스피어는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이다 말았다.) 난 너 안 미워해. 내가 죽었던 것도 기억 안 나고, 하물며 기억 했더라도 죽음의 원인이 아니었던 네게 화살 끝을 겨누었겠니?(다만 당신이 우습기 그지 없는 생각을 품었다고 비웃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당신이 제가 말하는대로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이스피어의 전문이었다.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아이. 이것은 네가 행복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발판이 될 테니까.)
그러나 아이, 고생했어.(당신이 겪어왔을 아흔 번의 무참을 잊지도 않았다. 이스피어는 상벌이 확실한 사람이다. 당신이 홀로 겪어야 했을, 저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흔 번의 '오늘'을 무시할 위인이 되지 않았다.) 네가 내 죽음을 견디기 어려워서, 혼자 그 많은 오늘을 겪어야 했을 것에 가슴이 아파.(모두가 다 진실이다. 매번 그래왔다.) 그리고 기뻐. 네가 날 위해 그렇게 해줬다는 게. ...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내게 듣고 싶은 말이 있어? 아니면, 내게 받고 싶은 행동이 있어? 이루고 싶은 일과가 있어?(그렇게 눈매를 휘었다. 당신을 이 현실에 결국 안주하게 만드는 예의 그 웃음이다.) 네 노고에 대한 보답이야. 오늘 나의 하루를 네게 줄게.
아이작 딜라이트:... ...
(더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약간의 균열이 났을 뿐, 당신이 오늘 모른척 넘어갔다면 버틸 수 있었겠지. 어떻게든 시간은 갔을 거고, 죽음은 찾아왔을 것이며, 다시 시간이 돌아가는 식으로. 이게 버틴다. 라는 말이 어울린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오늘의 이 행동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 말하며 당신이 용서한다는 듯이 웃었고,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기쁘다, 고까지 하지 않나! 아이작은 실로 그것이 가장 놀라웠다. 아이작은 오늘 하루 잘한 것을 듣는 어린아이처럼 입을 꾹 다문 채 당신의 말이 끝날 때까지 앉아 기다렸다.)
듣고 싶은 말이나, 행동 ... ?
(지금껏 아이작은 대부분 원하지 않는 일정을 소화했다. 정확히는, 당신의 의지에 따른 일정들. 물론 그것이 싫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번과 같은 '사건'만 아니었다면 아이작은 불구덩이라도 당신이 가고싶다면 안고 구경시켜줄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고, 제게 상을 주었다. 아. 이 얼마나 달콤한가. 충성의 보답으로 따라오는 이것들이. 아이작은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입을 연다. 계산없이 원하는 것을 뱉는다.) 그럼 ... ... .
... ... 키스하고 싶어.
(이번엔 눈치없는 타이밍은 아니었지? 속으로 되내이지만 그런 계산은 머릿속을 떠난지 오래였다. 이정도는 당신도 조금 봐주지 않을까. 그런 속편한 소리만 늘어놓을 뿐이다. 당신의 팔목을, 손목을, 손을 차례대로 쥐었다.) 그리고, ... ... 오늘은 밖으로 가지마. 같이. ... 집에 있자.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건 많으니까.
이스피어 틸다:(이스피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는다. 환하게 웃는다. 어쩌면 당신이 그토록 바랐던 동화 속 해피엔딩을 앞둔 공주의 표정을 닮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 ...)
이리 와.
키스하자, 내 아이.
아이작 딜라이트:(뱀을 닮았다고 말하던 눈꼬리가 선하게 휘었다. 어쩌면 웃는 얼굴로 보였을정도로 선한 인상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종래엔 깨닫는다. 다시 한 번 확신한다. 행복이라는 말은 분명 이 사람의 곁에 있다고. 이 사람을 떠나지 않으면 결국엔 행복이 온다고. 피어, 피어. 가장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공포. 당신의 독재 아래에야 나는 숨쉰다. 팔로 허리를 감싸고, 시선을 나누고. 숨을 삼킨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오전 7시 반의 일이었습니다.
아이작, 행운 판정.
아이작 딜라이트:
행운
기준치: 50/25/10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이스피어, 행운 판정.
이스피어 틸다:
행운
기준치: 80/40/16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그렇기에,
오후 3시.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오후 6시.
창 밖으로도 잔뜩 쌓인 눈이 곧잘 보였던가요.
어둠이 집니다.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오늘을 견뎌내던 우리.
재앙이라는 것은 본디 그런 법이죠.
대처할 수도 없고,
막아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아이작, 듣기 판정.
아이작 딜라이트: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둘 밖에 없는 공간이었는데도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습니다.
마치 웃음소리 같아요.
그렇게 순간,
'당신'은 온 몸에서의 탈력감을 느끼며 힘을 잃습니다.
삐 ──────,
이명이 들립니다.
아, 이게 무슨 일이죠.
쓰러지는 것이,
당신이 아닌,
자신이라고요.
당혹감을 숨길 새도 없이 고통이 발끝부터 차오릅니다.
죽음을 예감한 것처럼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합니다.
주마등 같은 기억들이 스쳐지나가고,
한 번,
눈을 깜빡였을 때에 당신의 눈 앞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의 이스피어가,
두 번,

눈을 깜빡였을 때에 그 뒤론,

검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남자가......
그가 손가락을 딱 튕깁니다.
그렇게 모든 시간이 정지합니다.
시간이 정지되는 걸 알 수 있다니,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그것도 아이작, 당신과 이스피어, 저 남자 셋만 빼놓고서 말이에요.
검은 머리칼의 남자를 바라보면, 그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회중시계와 같은 회중시계를 들고 있습니다.
마치 시계의 추처럼 흔들리고 있는 회중시계와 함께 그가 속삭이는 것처럼 머릿속에 소리가 울립니다.
"너는 죽을 것이다."
"시계를 이스피어에게 건네, 그러면 시간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 테니."
직감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스피어 틸다:... 유희의 대상이 바뀐 건가요?(느리게 눈을 휘어 웃었다. 다정하게, 쓰러진 아이작의 머리를 제 무릎 위로 눕히며 아이작의 뺨을 쓸어 주었다.)
남자가 화려하게 웃습니다.
이스피어에게서 시선을 거둬 아이작을 바라봅니다.
"아니면 네 죽음으로 내가 이 잊혀진 세계를 처분하는 걸 도울 수도 있지."
"선택해, 아이작."
"이스피어가 했던 일을 네가, 네가 했던 일을 이스피어가 하게 될 뿐이야."
자, 아이작.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한 번 맛본 전형적인 죽음의 고통과 공포에 굴하지 않고,
당신이 겪었던 그 모든 고독과 기약 없는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이스피어에게 회중시계를 건넬 건가요?
아니면 이 모든 반복을 당신의 죽음으로 끝낼 건가요?
이스피어 틸다:아이작,
상냥하고, 또 상냥한 손길이 당신을 어루만집니다.
이스피어 틸다:다만 나와의 약속을 기억해.
우리를 주제넘게 갈라놓는 그것이, 더는 우릴 갈라놓지 못하게 하겠다 말했던 걸 기억해.
너의 추악함마저도 애정하기로 약속했던 날 기억해.
설사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의 약속은 영원해.
(그대로 고개를 숙여 당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작 딜라이트:(손끝으로 당신의 생김새를 더듬는다. 정확히는, 시선으로 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상하고, 신기하지. 방금 전까지 당신의 옆에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당장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줘야하는데. 잠이 쏟아지고, 힘이 빠지고. 눈꺼풀이 무겁다.)
(죽음. 그것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음에도, 시계를 넘겨주게 되었을 때 있을 죽음의 연속들이 그리 두렵진 않았다. 어차피, 피어. 알잖아. 내게 있어 공포는 너 하나면 충분하다. 이건 어쩌면, 네가 아닌 다른 것을 주인으로 둘 뻔한 것에 대한 벌이 아닐까. 아이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시계를 넘겨주면,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함께할지 모른다. 당신은 똑똑하고, 완벽하고, 적어도 자신보다는 잘 할테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음과 재앙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 안에 있을 자신의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포기하지 않을 게 뻔하니까. 실패를 죽는 것보다 싫어할 당신이 좌절하는 게 싫으니까. 눈 앞의 당신이 망가지지 않길 바란다. 당신의 위에 그 어떠한 것도 서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피어. 나는. ... ... .)
피어, 나는, ...
(안간힘을 쓰듯 힘을 모두 끌어모아 당신의 손을 쥔다. 아. 이제야 비로소 당신이 차갑지 않다.)
나는, ... ... 행복해.
아이작 딜라이트:(너의 애정을 받아서, 시선을 받아서, 그 벅찬 삶에 잠시라도 발을 딛을 수 있어서.)
(애초에 모든 약속은 아이작의 행복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그러니, 피어.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지금 우리의 계약은 모두 끝나는 거야. 우리의 약속은 모두 이룬 셈이 되는거야.)
(나는 당신을 위한 동백이 될테니. 그러니 너는 떠나. 배를 타고 영영 가.)
(모두 말하고 싶었지만, 짧은 단말마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당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테니까. 그 이상으로 자신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걸로 됐을거라고. 아이작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피어. ... ... (목구멍 끝에 말이 걸려 나오지 않는다. 가. 하고싶은 말은 단 한마디 임에도.)
이스피어 틸다:가라고.
너를 떠나라고.
내 사랑, 너를 두고 가라고. ... ...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그토록 당신이 애정하던 이스피어의 웃음이 유독 선명했나요.
당신으로 인해 분리되었던 세계의 평행선이 다시 하나로 교접하는 게 느껴집니다.
당신의 죽음을 통해 세계는 다시 원래 자리를 되찾을 겁니다.
당신은 동백인 채 이곳에 남겨지고,
이스피어는 배를 타고 멀리 떠나가겠죠.
이스피어 틸다:인간이란 이토록 이기적이지.
나는 내가 이기적인 걸 알고 있음에도, 문득 이렇게까지 이기적인 걸 알아차리면 놀랄 수 밖에 없어.
이 장난 같은 시간의 반복 속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
이스피어 틸다:너는 분명 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 회중 시계를 눌렀겠지만,
아이,
아이작.
나도 결국 인간인가봐.
서서히 의식이 어둠에 잠기고,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오던 찰나......
이스피어 틸다:따뜻함이,(손으로 당신의 이마를 살살 쓸었다. 식어가는 온기, 그 뿐일 것에 집착하듯.)
내게 네가 머물러야 한다 말해.
째깍.
"그렇지."
째깍.
"세상은 항상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단다."
불길한 시계 초침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던 것 같습니다.
이스피어 틸다:오늘 또 만나,
아이.
END C. 떠오른 세계
이스피어 생환, 아이작 로스트?
이후로 세계는 어떻게?


... 
집으로 가요.
우리만의 동화를 적어내리러.
우리만의 영원한 결말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