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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EAR&MARPASHI/썰&연성

[아이피어] 연구원 실험체 AU

by 여우비야 2021. 2. 27.

 

“ 선생님, 사랑해요! ”

 

 

 아이의 환한 목소리와 웃음, 갑작스러운 포옹에 스며드는 온기가 있었다. 여자는 그럴 때마다 일평생 살아오며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죽지 않는 일족의 변종같이 태어난 여자는 마땅히 평범한 사람이 가질 법한 것들을 가지지 못하고 자라났다. 가령 통증 같은 것들 말이다.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복부를 뚫고 지나갈 때도 목이 매달린 채 발밑서부터 타오르는 화마를 마주했을 때도 죽음의 공포를 모르니. 마땅히 태반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등허리를 벌벌 떨 순간에도 여자는 무감각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 멍하니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던가 했고, 자신을 밀고한 남자를 온몸이 불타오를 때까지 바라보았다.

 여자는 무료했다…. 인체실험에 참여하게 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없으니까. 삶의 의지도, 목적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자극이 없는 삶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지 않는 여자는 죽은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자기가 살고싶은대로 살아온 여자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겠다만, 어쨌든 그런 여자에게도 기적이란 것이 일어났다.

 그래, 지금 여자의 허리를 부서져라 껴안고 있는 아이의 존재 말이다. 아이가 여자를 향해 '사랑한다'라고 이야기할 때면, 여자는 매번 같은 답을 돌려주곤 했다.

 

 "…그래. 선생님에게도 네가 유일해."

 

 아이는 여자의 뼈에서부터 태어난 인공 생명체였다. 아이에 대한 온갖 것을 알고 있는 여자는 아이가 처음 세포분열을 하게 된 날과 아이의 심장이 처음으로 박동한 때와 아이의 형상이 온전해진 순간과 시험관 바깥으로 나온 아이가 처음으로 숨을 쉰 시간을 알았다.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생명체는, 단지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여자에게 살아있음을 경험하게 했다. 죽지 않는 여자가 죽지 않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최초로 아이가 면역력이 떨어져 호흡기관에 문제가 생겼던 날, 여자는 심장이 떨어질 듯 하다는 말을 난생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아픔을 모르는 여자에게는 숨쉬기가 버겁던 고통. 죽음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두렵고 경험하기 싫은 것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지만, 여자에게는 그저 그것이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느껴졌었다. 받기 싫은, 거절하고 싶은 선물.

 

 항상 똑같은 자신이 답에, 아이는 종종 행복이 흘러넘치듯 짓던 웃음을 싹 지워내곤 했다. 아. 또다시 여자의 심장이 뛰었다. 뛰었나? 잘은 모르겠다. 흉부 뼈를 으스러뜨릴듯 껴안아오는 아이를 보면, 불현듯 그날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내 거니까."

 

 악마처럼 웃으며 제 팔다리를 몇 번이고 부러뜨리던 아이. 이번에도 그러는 것인가, 싶어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사. 그 '어리광'에 대한 마땅한 벌이 내려진 바 있었으니, 그 벌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영특한 아이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념에 젖어들어있던 여자는 뒤늦게서야 아이의 말을 붙잡아내었다. 그러니까, 금방 뭐라 했더라.

 

 "선생님은 항상 그 말씀만 하세요. …제게도 '사랑한다'라고 말씀해주시면 안 돼요?"

 "…안돼."

 "왜요?"

 "선생님은 아가의 '선생'님이니까. 거짓말을 할 순 없잖니."

 

 칫. 혀를 찬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원래라면 아이의 손을 풀고 진작 일어났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아이의 어리광을 받아주고 있었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 말이다. 종종 일어나는 불가해의 영역. 아이가 특별한 존재였던 탓일까?

 어쨌든, 시간을 확인해보면 10분 전에 이미 일어났어야 함이 옳았다. 아이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혀주는 손길에, 아이는 표가 나도록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여자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탁, 손을 붙잡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아랑곳 않고 아이의 가슴까지 꼼꼼히 이불을 덮어준 여자는 그때에서야 아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같이 자면 안 돼요?"

 "곧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해."

 "…그렇담 자장가 불러주세요."

 "그것도. 시간이 모자라."

 

 여자의 손을 붙잡은 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의 은안은 어떤 먹먹한 빛에 젖어들어갔다, 홀린 듯, 여자는 그것을 다소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당장의 '사랑'을 꾹꾹 억눌러담으며 손에서 힘을 풀어낸 아이가 마지막으로 간청했다.

 

 "…잘 자라고 인사해주세요."

 

 그것은 여자가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요구였다. 더해서 고개를 숙인 여자는 아이의 이마에 마른 입술을 스치듯 맞춰주었다. 아이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휘어 접혔다. 여자가 여자의 기적, 두려움, 처음, 예외인 아이에게 인사했다.

 

 "잘 자렴, 42."

 

 여자에게 유일한 N. 42, 아이가 웃는 채 눈을 감았다. 여자는 지체 없이 몸을 일으킨다.

 탁, 불이 꺼지면 아이는 오롯이 혼자…, 아니.

 

 여자가 적어준 아이의 번호와 함께. 아이는 여자의 꿈을 꾸기 위해 곧 수마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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