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연성/페어리테일

[제랄엘자] 포지션 반전 썰 외전

여우비야 2023. 3. 11. 11:24



[ 페어리 테일에게. 서쪽 숲 깊은 다리로 와라. ]

발신 불명의 쪽지를 발견한 그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제랄 혼자만이 누군가 쪽지에 의도적으로 불어넣은 듯한 마력의 파편을 매만지고 있었다.

설핏 어린 마력 한 자락. 떠오르는 건, 그가 7년 전 천랑섬에서 극한으로 몰렸을 때의 기억이다. 그리모어 하트의 습격. 쓰러지는 천랑수로 인해 끊기는 마력 가운데서 그는, 우습게도 그가 쉽게 자각하지 못했던 유대를 되새겼다. 그를 제외하곤 모두 쓰러져 움직일 수조차 없었던 상황. 일전, 다함께 시간의 아크를 쫓았을 때 만났던 적 울티아가 다시 천랑섬에서 등장한 것이 문제였다. 그때 아예 붙잡거나, 처리했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그레이가 울티아를 이미 알고 있던 상황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계획된 기습. 철저한 실행.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는 제랄을 향해 아즈마가 말했다. “그대는 강하지. 이 천랑섬의 마력을 내가 다 지배했다곤 쳐도… 이렇게 쓰러질 남자가 아니다.”
“…그렇게 보였나? 하긴. 아직도 성십마도사 자리를 거절하고 다니느라 바쁘긴 해.”
“울티아 때문인가?”
“…….”

그 날 놓치고 말았던 울티아. 혼란스럽기 짝이 없어 보였던 그레이. 그리고.

“울티아의 아크가 그 여자에게 남아있기 때문인가.” …엘자에게 남아 있었던 그 자의 마법. 제랄은 숨을 턱 뱉어내듯 웃었다.

그리곤 흐려지는 의식 가운데로 닥쳐왔던 점멸, 포기해선 안 된다는 생각과 너무도 지친 나머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 반반.
모든 것이 연기처럼 흐려지는 가운데 제랄은, 그러나 쓰러질 수 없었다.

“나아가.”

누군가가 그의 등 뒤를 밀어주는 착각, 아니, 현실? 얼핏 다정했던 음성엔 옅은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나아가라, 제랄.

너는 혼자가 아니야.

천랑섬의 마력을 죄 끌어 완성된 마법, 테라 크리마레를 마주했을 때. 하여 제랄은 절망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저 마력은 그 자신을 해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아즈마의 지배 하에 있었던 천랑섬의 마력은, 되려 제랄 페르난데스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것은 휘둘릴 순 있으나 결코 끊어지지 않는 페어리테일의 유대를 상징하였으므로. 눈을 멀게 만드는 별빛 앞에서 아즈마는 미소지었다.

“멋지군.”

…천랑수가 되살아나며 돌아오는 힘에 제랄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거렸다. 금방 느꼈던 건 뭐지? 누군가가 등을 밀어주었던 감각. 나아가라던 음성.
현실인가, 망상인가.

아직도 손바닥 안엔 붉은 마력이 남아있는 것 같았는데….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끊어진 다리가 눈에 익은 마력으로 하나 둘 복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편지에 묻었던 것의 주인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우릴 부르고 있네.”
“함정일지도 몰라.”
“조금 무서워요….”
“너희들, 쫄아있는 거냐? 누군진 몰라도 가자!” 심각하게 읖조리는 레비와 제랄의 뒤로 슬쩍 숨은 웬디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준 제랄은 나츠의 말에 따라 절벽을 건넜다. 울창한 숲 속, 이곳 저곳에서 울리는 새소리.

앞으로 보이는 세 명의 인영.

상대를 경계하는 다른 자들과 달리 제랄과 그레이는, 어째서인지 익숙한 기분에 주먹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와줘서 고맙군.” 얼굴을 가리던 후드가 뒤로 넘어갔다. 넘겨져있던 붉은 머리카락이 툭 떨어져 살랑댔다. “페어리테일….”

제랄의 입술이 달싹였다. “엘자.”
* * *


아주 오래 전, 탑에 갇혔을 때 꾼 꿈에서 이런 광경이 있었던 것 같다. 해풍이 불어올 때면 바스라지는 모래 소리가 들려오고. 시간은 해 질 녘. 붉은 물 든 파도를 맨발로 직접 걷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꿈에서도 어린 엘자는 바다를 걷지 못했고, 지금. 현실의 엘자도 바다를 걷지 않았다.

소금기 담은 바닷내음만 온몸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기억. 전부 돌아왔어?”
“그래. 낙원의 탑 시절부터,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부터. 그리고 기억을 잃은 뒤도 모두.”

기억이 없었던 느낌도 기억난다. 이상한 느낌이었어. 나직히 말하는 엘자의 모습에, 제랄은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 위로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천랑섬에서 돌아온 뒤 갑작스레 들려왔던 탈옥 소식. 그가 아는 엘자 스칼렛이라면 자의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설마하니 울티아와 멜디가 엘자를 탈옥시켰을 줄은 몰랐지.
너는 무슨 심정으로 그곳을 빠져나왔을까.

“여전히 내 생각은 같다. 자의가 아니었을지라도, 울티아의 손에 놀아났던 것이라도. …내 책임을 피할 수는 없어. 설령 울티아 또한 그런 사정이… 있었더라도.”
“그렇구나.”
“다만… 기억이 났어.”

그 말에 제랄은 앞을 향하던 고개를 엘자에게 돌렸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라질 듯 희미하게 맺힌 미소가 보였다.

“내가 시몬을 죽였다….”

차라리 그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제랄은 손을 뻗어 나지도 않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으나, 손에 힘을 꽉 주고 말았다.

“탈옥한 이후, 쇼와 월리를 만났다. 그들은 결국엔 날 용서해줬어. 믿기지가 않았지, 그런 상황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들이 날 안아주었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믿을 수가 없었어. 그냥. 모든 게.”

커다란 바위를 기대 사장에 앉았던 엘자는 천천히 두 다리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제랄이 기억하는 엘자는 언제나 강인했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여자였다. 끝도 없을 절망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 쉼없이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왜이리 연약해보이는지. 무너질 것처럼 보이던지.

“밀리아나와 시몬의 가족을 만나고 싶어. 처음엔 그 생각이었다. 여전히 난, 그들이 날 죽음으로 응징하겠다 이야기하면 기꺼이 목을 내어줄 거야. 하지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무얼?” 쏴아아, 쏴아아….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던 엘자는 저물어가는 태양 빛에 아려, 잠시 눈을 감았다.

“용서받고 싶다는 생각.”
“….”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

제랄은 조용히 숨을 억눌렀다.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물린 입술에 힘이 들어갔나, 그저 다가오는 밤의 궤적, 저물어가는 황혼의 시간이 몹시도 마법 같았다.
엘자 스칼렛이, 제랄 페르난데스에게 입을 맞추었던 그 새벽마냥.

주저앉아있던 엘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옷에 붙은 모래알을 몇 차례 털어냈나. 그것을 곁눈질로 설핏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을이 그의 얼굴까지 번져간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제랄. 너는 왜 날 미워하지 않았지?”

노을이,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더는 피할 수 없음을 증명하듯.
제랄은 체념하듯 웃었다.

“…알잖아.”

알잖아, 엘자.
너는, 우린 미래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을 토로했다. 미련으로 붙잡았다. 놓아주질 않으려 했다.
그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엘자가 손을 뻗어 제랄의 손을 붙잡았다. 차게 식은 남자의 손을 여자의 따스한 손이 감쌌다.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던 엘자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네가, 내게 말하던 것들을 떠올리다보면.”
“…응.”
“…….”

엘자가 체념하듯 웃었다.

미래를 생각하게 돼.

제랄이 숨을 멈췄다. 쿵, 쿵, 온몸을 울리기 시작하는 거대한 박동은 파도 소리마저 파묻고, 오로지 눈앞의 여자에게로만 모든 것을 집중하게 만든다. 노을이 엘자에게까지 번져 있었다. 그것에 숨이 막혔다.
제랄의 손을 감싸쥐던 손이 천천히 얽혔다. 기어코 맞물려 마주 잡길, 또 어느새 여자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아 품에 얼굴을 묻고 이르길.

“너의 과거와 슬픔은 내가 전부 데려갔어.”

참을 수 없어, 그는 남은 손을 뻗어 엘자의 등을 끌어안았다. 미치도록 크게 울리는 이 심장 소리가 네게도 닿을까. 고려할 새도 없었다. 파도 소리는 이명처럼 멀어졌고, 품에 안은 여자의 음성만이 귓전에 울린다. 이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그는, 온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니 내게 말해다오. 날,”
사랑해.”

사랑하지 않는다고.
잘려낸 말은 혀를 감돌다 떨어진다. 모래알과 뒤엉켜 곧 바람에 쓸리고, 바스라진다.
안락한 품 안에서 엘자는 눈을 감았다. 평생 흘렸던 것 같은 눈물은 왜이리 눈치도 없이 떨어지는지. 흔들리는 호흡을 애써 바로잡으려 해도 목은 왜 메이고 마는지.
기어이 엘자 스칼렛도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마주 잡았던 손은 풀리지 않는다.

“건강하게 지냈어.”
“…그랬나.”
“예전 일도, 예전의 슬픔도 날 붙잡지 못해.”
“그래….”

다신 오지 않을 기회였다. 두 번 다신 없을 시간이었다.
엘자, 넌 내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했어. 자신을 죽여 달라고, 자신은 죽을 거라고, 종래에 자신이 죽어야 한다면 죽을 것이라 말하던 네가.
그에게 붙잡힐 거리를 이렇게 제공해주는 것은,

기어이 엘자 스칼렛이 제랄 페르난데스에게 마음을 내주고 말았다는 뜻.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랄은 엘자가 어떤 생각 속에 갇혀 지내왔는지 알 수 없었다. 홀로 기억을 되찾았던 감옥 안에서 얼마나 절망하고 좌절했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넌 내게 이렇게 안겼지. 함께 미래를 생각하고 싶다 말했지, 종래엔, 이렇게….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써 제랄이 엘자를 들여다보았다.

“난 자유로워.”

그것은 제랄 페르난데스가 지난한 과거로부터 졸업했음을 뜻했고, 그렇게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엘자 스칼렛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엘자가 눈매를 휘어뜨리며 웃었다.

“그렇구나.”

이번의 입맞춤은 이전처럼 짧지 않았다. 잊을 수 없을만치 무겁고, 서로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가쁜 숨이 터졌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서로 주체하지 못해 기어코 두 인영이 한쪽으로 기울 때면,

아! 돌부리에 뒷꿈치가 걸린 엘자 쪽으로 신형이 기우뚱 쓰러지고 말았다. 엘자! 다급히 제랄이 엘자의 뒷머리를 감싸안았지만 두 사람은 꼼짝없이 가파른 경사를 데굴데굴 굴러야만 했다.
그 자극으로 인해 터지는 알 수 없는 식물로부터 금색 포자들이 터졌다. 거진 밤이 가까워진 세상. 노을빛은 멀어지고 시린 온기가 두 사람을 타고 올랐다.

그러나 그의 노을은 이곳에 있었다. 뺨을 간질이는 엘자의 머리카락에, 제랄이 무너지듯 웃었다.

“다시는… 널 보지 못하는 줄 알았어.”

언제나 넌 떠나가기만 하니까. 다시 찾아간 낙원의 탑에서도, 기억을 잃고 깨어난 뒤에도, 또 일련의 사건이 있어 헤어지기 직전에서도.

‘나를 죽여라. 나를 죽여, 제랄.’
‘그들이 나를 죽은 자들처럼 똑같이 죽여야 하겠다면?’
‘우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야 해.’
‘건강해라.’
‘나아가.’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지나보내, 이곳에 서 있었다. 둘의 고개가 다시금 가까워졌다. 엘자의 따스한 손이 그의 두 뺨을 감쌌고, 닥쳐오는 안온함 가운데 제랄이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속삭였다.

“사랑해.”







포지션 반전은 여기서 끝!!! 진짜 끝 뭔가 끝내기 아쉬워서 짧은 외전을 가져왔어요
사실 공지사항 쓰려고 써왓음

공지사항! 다음부턴… 요청이 있어… 제랄엘자/모브엘자 소개팅 썰을 완결내도록 하겠습니다 ^_^

현업이 있는지라 토요일마다? 오게 될 것 같음

하… 제랄엘자 유니존레이드 쓰는것도 쓰려고 햇는데 그거 하려면 알바레스까지 가야해서 포기함 ㅋㅋ
아니 근데 진심 둘이 유니존레이드 왜안씀??? 써달라고 너네 충분히 쓴다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참나

….사실 뒤에… 둘이… 함. 갈겼을 것 같은데(여기에선 해피 없음. 아무튼 안 훔쳐봣음.) 그거까지 쓰기엔 마무리가 어색할 것 같아서 포기
상상에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