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ORPG 플레이 로그

[로도라] 캘버리를 향해 걷는 100시간 플레이 로그

여우비야 2020. 8. 27. 00:17

 

 

아도라:
rolling 3d6*5
 
(
3
 
+
6
 
+
3
 
)
*5
 
 
=
60
 
캘버리를 향해 걷는 100시간
 
w. 시나
 
KPC 로시오, PC 아도라
 
20200811
 
.
 
칙 ㅡ
 
치직, 칙.
 
아아, 아.
 
연합정부 소속 안전지대에서, 이 방송을 듣고 있을 생존자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여러분은, 파이로젠 바이러스, 통칭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생존한, 인류의 희망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직까지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생존자 여러분은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감염자’를 보실 경우 속히 처단해 주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듣고 있을 곳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 지대는 캘버리 교도소에 위치해 있습니다.
 
좀비의 특성을 감안해 생존자 여러분은 최대한 해가 지고 움직여 주십시오.
 
낮에 움직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곳의 좌표는 xxx.xxx.xxx.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생존자 여러분은 캘버리의 안전지대로 와주십시오.
 
그곳의 좌표는...…
 
뚝.
 
당신은 몇 번도 더 들은 라디오의 방송을 끄고,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쉬어가기로 한 폐공장의 창고 한 구석은 어둑합니다.
 
유일한 광원인 벽 꼭대기에 위치한 환풍구에서 정오의 햇빛이 비치고,
 
당신의 옆에선 로시오가 고단한 얼굴로 잠들어 있습니다.
 
... ...
 
2020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동일한 질병 증세를 보였습니다.
 
곧 학자들에 의해 이 질병이 전례없는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임을 알아냈고,
 
이는 파이로젠 바이러스라 명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미디어는 이 바이러스를 좀비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시점부터 이를 좀비 사태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곧 좀비들에게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바이러스는 체액으로 전파되며 대표적인 감염경로는 좀비에게 물리는 것이다.
 
둘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24시간안에 좀비로 변한다.
 
그 증거로 완전히 좀비가 된다면 눈동자의 동공이 희뿌옇게 탁해진다.
 
셋째.
 
좀비는 시력이 퇴화하지만 청력이 발달해, 빛이 없는 밤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바이러스는 곧 전 지구를 장악했고,
 
인류의 70%이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정부는 힘을 잃고, 집단 자살이 성행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생존할 길을 찾기 마련입니다.
 
좀비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연합정부가 설립되었고, 이 기관은 생존자들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좀비 사태가 발발한지 일년 7개월 12일째.
 
당신과 로시오는 그 지방자치대에 소속되어있던 군인입니다.
 
모종의 사고로 부대에서 낙오되었지만,
 
이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서로를 의지해가며 안전지대로 돌아가는 여정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당신은 잠든 로시오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
 
로시오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듣기 판정.
 
아도라:
듣기
기준치: 55/27/11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로시오가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들어보았습니다.
 
로시오:... 약속해야 해, 반드시, ...
 
뭘 약속한다는 말일까요.
 
로시오는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사람만 같습니다.
 
로시오를 깨워볼까요?
 
아도라:(여정이 길어지며 많이 지쳤을 것을 알기에 좀 더 쉬게 두고 싶었으나 당신이 악몽에 괴로워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곧 손을 뻗어 네당신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선배! 괜찮아요?
 
로시오:... !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이 날카롭다. 잠을 잤음에도 썩 개운치 못한 표정이다. 악몽을 꿨으니 당연한 걸까.) ... ... (입술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아무 말 없이 식은땀이 흐른 이마를 옷 소매로 닦아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 지금이 몇 시지?
 
아도라:악몽이라도 꾼 거예요? (안색이 좋지 못한 당신을 마주보며 자연히 얼굴이 어두워졌다. 걱정스레 묻고는 고개를 들어 벽 꼭대기의 환풍구를 바라보았다.) 해의 방향을 보니 정오인 것 같아요.
 
당신의 말대로 현재 시각은 아침 11시 48분,
 
곧 정오가 될 시간입니다.
 
로시오:(당신의 말을 듣고도 따로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악몽이라도 꾼 거예요? 물음에는 답이 없다.) ... 이제 내가 보초를 서겠다, (숨을 내쉬었다.) 이젠 네가 눈 좀 붙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당신을 돌아보았다.)
 
아도라:(당신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선배야말로 제대로 못 쉰 것 같은데, 더 자 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1시간, 아니 30분이라도 좋으니까 얼른 다시 눈 감아요. (짐짓 단호한 표정이다.)
 
로시오:... 그런 표정도 짓고, (상체를 들어올리며 목을 좌우로 스트레칭하면 뚜둑, 뚝. 뼛소리가 났다. 당신을 돌아보며 살풋 웃음지었던가. 큼지막한 손으로 당신의 이마를 덮고, 뒤로 죽 밀어낸다.) 내가 좀 편해지긴 한 모양이지? ... 잘 수 있을 때 자라. (말만 들으면 그가 퍽 냉담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겠으나 말투나 표정에는 여즉 웃음기가 남아있었다. 그 나름대로의 다정이 스며들어있는 음성, 시선 말이다.)
 
아도라:아, 아닙니다. 편하지 않습니다! (편해지긴 한 모양이지? 그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든 듯 화들짝 놀라며 잠시 격식을 차렸다가, 금세 또 당신 눈치를 살피며 풀어진다.) ...휴, 선배가 그렇게 말하면 저도 모르게 또 이런다니까요. (미소가 어린 당신의 얼굴을 살피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졌다는 듯 벽에 머리를 기댔다.) ...딱 30분만 잘 테니, 그 이후엔 꼭 깨워 주셔야 해요? 자고 일어나면 꼭 선배를 재울 테니까 각오하시고요.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로시오:... 하하, (그런 당신의 모습을 보면 로시오는 종종 이렇게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눈매를 휘고 입술은 호선을 그리는, 타인에 비해 소리가 크지도, 경박스럽지도 않다지만 그 나름대로는 무척이나 크게 웃음을 자아내고 있는.) 저녁까지 자. 어차피 낮 동안에는 움직이지 못하니. (천천히 눈을 감는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뻗다 만다. 당신에겐 보이지 않았을 테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움직이자.
 
여정의 피로 때문일까요.
 
당신은 로시오의 그 잔잔한 음성을 들으며 찬찬히 몰려오는 수마를 느꼈습니다.
 
거부할 새도 없이 금세 잠에 빠져듭니다.
 
6월 8일 7PM
 
로시오:... 아도라, 이만 일어나.
 
당신은 로시오의 손길에 눈을 뜹니다.
 
눈을 뜨자 보이는 환풍구 너머의 하늘은 뉘엿하게 해가 지고 있습니다.
 
곧 좀비들은 활동을 멈출 테지요.
 
로시오:(단백질 바를 하나 건넸다.) 먹고 출발하자.
 
아도라:(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노을에 현재 시각을 대강 파악해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화들짝 놀라 일어나기도 잠시, 말한 시각에 깨워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저절로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30분만 잔다고 했잖아요. 선배가 안 깨워줘서 이렇게까지 오래 잘 줄 알았으면 안 자고 버티는 건데.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당신이 건넨 에너지바를 받아들고 심통을 부리듯 다소 거칠게 포장을 뜯었다.) 심심했죠. 뭐 했어요?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한데. (멋쩍은 마음에 에너지바를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로시오: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움직이자 했잖나. (로시오는 태연히도 답했다. 저도 식량을 뜯어 베어물기 시작한다. 혹여 목이 마를까 차고 있던 수통을 당신 옆에 두었고.) 어차피 쉬어야 할 시간인데, 쉬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음식을 우물거리는 통에 발음이 조금은 부정확해진다. 이내 에너지 바를 다 먹어치우고선.) 할 만한 게 있었다. ... 다 먹었나? (당신을 돌아본다.)
 
아도라:당신이 내민 수통을 힐끔 보고선 픽 웃었다. 다시 당신 쪽으로 밀어낸다.) 하늘 같은 선배님 먼저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난스레 말한 후 씩 웃었다. 그 후 당신을 따라 에너지바를 모두 입에 털어넣고 삼켰다.) 네. 이제 슬슬 준비하고 출발할까요?
 
로시오:... 삐쳤나, 아도라? (수통을 붙잡으며, 헛웃음을 내걸었다.) 그리 성내지 말아. 너도 그 정도의 시간만큼 나를 기다려 주었잖나. (물을 몇 모금 삼킨 후에 다시 수통을 돌려준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도라:(삐쳤냐는 물음에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진심으로 화 내는 건 아닌 거, 선배도 아시죠? (수통을 챙겨든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갈까요? (그리 물어놓고도 당신이 피곤하지는 않을지, 연신 걱정하는 얼굴이다.)
 
로시오:당연히. (입꼬리를 조금 끌어올리다 만다. 배낭의 지퍼는 제대로 잠겨져있는지, 신발끈은 단단히 묶여있는지. ... 이곳저곳을 빠르게 살펴본다. 신발 코로 바닥을 툭툭 두드린다.) 그래, 나가자. (당신의 걱정과는 달리 로시오의 낯은 쌩쌩하기만 했다.)
 
어둠이 깔리고 달빛이 내려앉고, 넓은 공장 부지는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따금 이 공장 유니폼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은 좀비들이 앞을 보지 못한 채 목적없이 배회하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과 로시오는 숨을 죽인 채 살금살금, 폐공장지대를 빠져나옵니다.
 
아도라, 행운 판정.
 
아도라:
행운
기준치: 60/30/12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이 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턱, 하고.
 
로시오가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로시오의 손짓을 따라 땅바닥을 내려다보면 발 곧장 앞으로, 빈 과자봉지가 굴러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로시오:(손짓한다. 다시 이동하자.)
 
당신과 로시오는 지도를 보고 언제나와 같은,
 
긴 여정길을 걷습니다.
 
뻥 뜷린 흙길과 초원은 이따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합니다.
 
오늘은 달이 밝아 다른 조명 없이도 길이 잘 보입니다.
 
...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잡다한 소음을 내버려두고 길을 걷다보면 걷는 도로는 흙길에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되고. ...
 
얼마 후,
 
[이스트 베일에 어서 오세요],
 
핏자국이 말라 붙어있는 간판이 새벽 어스름 너머로 보입니다.
 
로시오가 묵묵히 말합니다.
 
로시오:곧 동이 틀거다. ... 이 마을에서 쉬어갈 곳을 찾아봐야겠어.
 
아도라:(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던가. 눈을 들어 새벽 여명이 밝아 오는 하늘을 물끄러미 보았다.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어요. ...가 볼까요? (이스트 베일 쪽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로시오:(당신의 말에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한때 주민들이 살았을 마을의 거리는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있습니다.
 
이젠 사람이 살지 않을 빈 주택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고,
 
거리에는 드문드문 보이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 덩어리들과 쓰레기들이 널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보이는 좀비들을 피해 거리를 걷다, 주변에 좀비들이 없는 집 한 채를 발견합니다.
 
저 집이라면 좀비들과 싸우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시오 또한 그것을 알았는지 그 집을 향해 고갯짓을 합니다.
 
입술을 달싹이며 말합니다. 들어가자.
 
어떻게 행동할까요, 아도라?
 
아도라:(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한다. 로시오에게만 들릴 정도의,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들어가요.
 
좀비들이 없는 집 안으로 향합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평범한 단독 주택의 가정집 안은 이미 생존자들이 다녀갔는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습니다.
 
거실이었을 공간에 널부러진 [도끼]와 [세 개의 방], 그리고 [주방]이 보입니다.
 
아도라:(당신을 먼저 들여보낸 후 조심히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을씨년스러운 내부를 휘 둘러보다가 곧 도끼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간다.)
 
꽤나 큼직한 손도끼입니다.
 
평소라면 나무를 다듬는 데나 쓰였겠지만 세상이 망해버린 지금은 그 쓰임새가 좀 달랐겠지요.
 
도끼날과 손잡이엔 핏자국이 검붉게 말라붙어 있습니다.
 
로시오:... 쓸만해 보이긴 하네. (당신을 따라 도끼를 살펴보는 중이다.)
(도끼를 지나서 주방을 살펴본다.)
 
주방의 냉장고는 텅 비어있습니다.
 
아도라:(도끼를 주워들고 로시오를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아도라는 도끼를 주워들고 로시오를 따라 주방을 살펴봅니다.
 
검게 변한 핏자국으로 더러워진 식탁과 조리대 위에는 식칼과 쇠톱이 놓여 있습니다.
 
쇠톱의 날 사이사이에는 정체를 알수 없는 살점들이 굳은 피와 엉겨 붙어있어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방 구석에 놓인 큼직한 검은 쓰레기통에선 악취가 풍겨오네요.
 
딱히 열어보고 싶진 않은 기분입니다.
 
로시오:... 시체가 들어있는 모양이야. 가까이 오진 마. (당신을 뒤로 물리는 양 손짓했다.)
 
아도라:... (역시 이런 건 몇 번을, 아니, 몇 십 번, 몇 백 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을 했다가, 마른침을 삼키며 겨우 참아냈다.) 다른 곳으로, 가 봐요. (코와 입을 틀어막고 더듬더듬 말한 후 도망치듯 세 개의 방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로시오:(한숨을 삼켰다. 미리 물렸어야 했는데.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 머물렀다 갈 곳이니 뒷처리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쓰레기통을 열어보았다.)
... ... (그래, 역시나다. 고깃덩이들, 뼛조각들, ... 구더기까지. 뚜껑을 덮는다.)
(몸을 돌려 아도라가 있는 곳을 향해본다.)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볼까요?
 
아도라:(들어갑니다.)
 
첫번째 방은 서재로 쓰던 방인 모양입니다.
 
한쪽 벽면을 [책장]이 차지하고 있고, 그 반대편인 [책상]이 놓여있는 아담한 구조입니다.
 
아도라:(여긴 냄새가 덜 할까. 답답하게 코를 틀어막았던 손을 그제서야 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당신이 따라 들어오는 것을 힐끔 보고는 책장 쪽으로 향했다.)
 
로시오:... 주방에는 어차피 볼 것도 없고. 다시 가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무뚝뚝한 말을 툭 던졌다. 책장으로 시선을 견주었다.)
 
책을 보고 도로 꽂아넣지 않아 드문드문 책장이 비어있습니다.
 
책들은 주로 생물학에 관한 책인걸 보아, 집에 살던 사람의 전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꽂이를 돌아보면 그 중, 반쯤 덜 꽂힌 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감염에 관하여'
 
'정신이상 행동론'
 
... 이런 책은 왜 읽은 걸까요?
 
아도라:...냄새가 심하더라고요. 아마... (이 집에 살던 이들이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지냈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뒷말은 그저 삼켰다. 낯빛이 어두워졌다.) ... (손을 들어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감염에 관하여'.)
 
로시오 또한 별다른 답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감염에 관하여, 책을 꺼내듭니다.
 
말 그대로 감염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책입니다.
 
감염은 어떤 경로로 이루어지는지, 어떠한 종류의 감염이 있는지, 감염병의 예시를 하나하나 들어주기까지 합니다만은,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은 없군요.
 
당연한 얘기겠습니다.
 
아도라:(신생 바이러스라 관련 내용이 없는 건 당연한 걸까. 하기야,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후 모든 사회 활동은 급속도로 멈추었으니.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고 '정신이상 행동론'이라고 적힌 책을 꺼내들었다.)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이상자들에 대한 여러 정보가 적혀있지만,
 
좀비가 된 사람들의 사례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책 중간중간에 형광펜 따위로 줄이 쳐져있는 것은 그나마. ...
 
좀비의 행동과 아주 조금이라도 유사성을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아도라:선배, 이 책에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내용이 없네요. 그간 연구되지 않았던...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니까 당연한 걸까요. (책을 탁 덮고는 책장에 다시 꽂아넣었다.) 여기 살던 사람이 생명공학을 전공헀었나 봐요. 과학자라도 됐던 걸까요.
 
로시오:... 당연한 이야기긴 했겠지. 책이 나오기엔. ... (입술을 다물었다. 책상에 놓여져있던 액자를 들어올려 바라보곤, 당신에게 액자를 보여준다. 젊은 부부와 두 아이의 사진이다.) 부부 중 한 명이 그러했을까. 아니면,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거나. ... 다 부질 없을 추측이겠지만. (조금 웃다 말았다.)
 
책상 위에는 작은 보라색 향초와 [메모패드], 금방 로시오가 보여주었던 액자가 놓여잇었습니다.
 
메모패드는 작성된지 꽤 오래 되었는지 먼지가 쌓여 있네요.
 
아도라:...향초, 네요? (눈을 깜빡이며 향초를 집어들었다가 다시금 내려놓았다. 이어 메모패드를 살핀다.)
 
낡은 메모패드에는 구겨진 종이뭉치들이 껴 있습니다.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이 작성하였던 것 같습니다.
 
종이뭉치 곳곳에는 피로 보이는 얼룩이 묻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혹은 관찰 판정.
 
아도라: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건, 이 집에 살던 생존자의 마지막 기록인 것 같습니다.
 
곳곳에 묻은 얼룩으로 읽기 힘들었지만 드문드문 멀쩡한 페이지들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 가족이 향하려던 안전지대가 좀비들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집에서 새로운 안전지대에 관한 소식이 들릴 때까지 버티는 수 밖에 없다.
 
.
 
20XX년 X월XX일.
 
제시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남편과 나는 차마 우리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었기에 우리는 그 아이를 격리하고 간호하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이 좀비에 감염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
 
1단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전신 근육통과 발열 증상을 보인다.
 
이때 해열제나 진통제가 증상을 완화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순 없었다.
 
2단계.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대략 12시간이 지나면 감염자는 굉장히 불안해하며 온 몸을 떤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고 하는 폭력성도 보였다.
 
내가 아는 발작 증상과 비슷하다.
 
3단계.
 
좀비로 변하기 대략 두어 시간 전의 일이다.
 
코와 입, 귀에서 피를 토한다.
 
+ 벨은 한 시간 전에 같은 증상을 보인 것으로 보아 개인 차가 있는 것 같다.
 
.
 
제시를 방에 격리했지만 벨이 우리 몰래 제시를 보러 갔다.
 
벨이 제시에게 물리고 말았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
 
제시와 벨을 관찰한 바 좀비는 감염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유용한 정보이지만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신이시여, 그 영혼을 구원하소서.
 
.
 
내가 먹을 식량이 떨어졌다.
 
내 가족들에게 줄 ‘식량’을 구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진다. 끝없이 절망하게 된다.
 
.
 
더이상 버틸 수 없다.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나는 내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누군가 나의 기록을 본다면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제시, 벨, 쟝, 카샤 리센.
 
로시오:(그 이름을 바라보던 로시오의 표정은 어떠했던가.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던 로시오는 천천히 시선을 돌린다. 정리된 책장을 쭉 손가락으로 훑다가, 빈 공책을 하나 빼들었다.) 계속 여기에 있을 거면, 나는 다른 방을 둘러보고 오고. ... (굴러다니던 펜도 하나 챙겨든다.)
 
아도라:(네 명의 이름을 바라보는 당신. 표정이 어떤지 보고 싶었으나 하필이면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당신의 뒷모습만 한참이나 보았다. 당신이 공책을 빼들고 펜을 챙겨들었을 즈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같이 가요. ...따로 행동하는 건 위험할 것 같으니까요.
 
로시오:... ... 가족이 어디 있다고 했었지, 아도라. (방을 나선다. 두번째 방으로 걸음했다.)
 
아도라:... (입술만 달싹이다가 당신을 따라 두 번째 방으로 이동했다.)
 
두번째 방의 문은 뻑뻑하게 닫혀있는 것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로시오:(철컥, 철컥. ... 눈살을 찌푸렸다. 문고리를 손에서 놓고 당신을 뒤돌아본다. 어쩔까, 하는 시선을 건넨다.)
 
아도라:막혀 있는 건가... 몸을 부딪혀 볼까요? (어깨를 풀며 당신을 힐끔 보았다.)
 
로시오:아니, 몇 번 더 하면 열릴 것도 같은데. ... 혹시 모르니 물러나 있어. (손짓했다.)
 
아도라:(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걸음 뒤로 빠졌다.)
 
로시오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
 
... 방안의 좀비들이 일제히, 로시오를 쳐다봅니다.
 
아.
 
아까 가족 사진에서 본 그 일가족이요.
 
로시오, 민첩 판정.
 
로시오: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좀비들이 문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전 로시오는 황급히 문을 닫았습니다.
 
문 틈 사이로 기괴한 울음소리가 새어나옵니다.
 
로시오:... (놀란 기색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표정을 애써 가다듬었다.) 이 방문은 잠궈놔야겠다.
 
아도라:... (헉, 하고 숨을 삼켰다. 하마터면 당신은 물릴 뻔했다. 당신을 잃을 뻔 했다는 소리였다. 몸이 사정없이 떨려왔으나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어 간신히 참아냈다. 나약해지지 말자, 아도라 에버렛. 마음 단단히 먹어, 단단히….) 가구라도 가져와서 막아 두죠. (거실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막을 만한 가구가 있을까? 소파나, 테이블 같은 것.)
 
아도라는 아까 서재에서 보았던 의자를 떠올립니다.
 
문고리 사이에 비스듬히 세워놓으면, 보다 단단히 문을 막아둘 수 있겠죠.
 
아도라:(아, 서재에 의자가 있었지. 곧장 서재로 향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의자를 들고 왔다. 문고리 사이에 비스듬히 세워 놓는다.)
 
문 틈새에서 좀비들의 기괴한 소리가 새어나가다 곧 끊깁니다.
 
이것으로 당분간은 안심이겠습니다.
 
로시오:(당신이 하는 양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군. (한숨을 흘리며 세번째 방으로 향했다.)
일가족이 이곳에 있으니까, 여기도 좀비는 없겠지. (주의를 기울이며 문을 연다.)
 
로시오의 말대로 세번째 방에는 좀비가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방보다 비교적 깔끔한 이 방은 침실입니다.
 
옷가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옷장과, 킹사이즈의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침대에서 잘 수 있겠어요.
 
로시오:... 들어가라, 아도라. 어제는 네가 먼저 보초를 섰으니까, 오늘은 내가 먼저 보초를 선다. (고갯짓했다.)
 
아도라:선배, 괜찮겠어요? 나보다 선배가 더 놀랐잖아요. (또 한 번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 (자꾸만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말 조금만 쉴 거예요. 1시간 뒤에 깨워줘야 해요? (신신당부하듯 당신을 빤히 보다가 군화를 벗고 먼저 침대 위에 올라갔다.)
 
로시오:아니, 충분히 잘 만큼 재운 다음에 깨울거야. (눈썹을 까딱였다.) 나중에 깨고 나서 한 소리 할까봐. ... 미리 말해두는 거지만. (자그맣게 웃었다.)
 
아도라:(당신 말에 무어라 대꾸하려다 곧 무겁게 감기는 눈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시야가 암전되었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당신의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잘 자, 그리 말하는 로시오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냥 담담하고 건조한, 그러나 당신을 향한 다정과 애정이 섞여들어간 목소리입니다.
 
쓰레기통에서 나던 악취나, 문 틈새로 보이던 일가족들의 기억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을 덮치지 않았습니다.
 
악몽을 꾸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6월 9일 6PM
 
창틈새로 비치는 햇빛.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서 그런지 더할 나위 없이 개운한 기분입니다.
 
창밖을 보니 노을지는 하늘이 붉습니다.
 
분명 눈을 감을 땐 동이 터오던 시간이었는데.
 
... 그렇다는 건, 해가 떠있을 내내,
 
로시오가 당신을 깨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주변을 황급하게 둘러보았습니다.
 
방 문 근처 벽에 기대어있던 로시오는 잠들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나요?
 
관찰 판정.
 
아도라: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로시오는 당신이 일어난 것도 모른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대고 있습니다.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내려가고 있는데, ...
 
...
 
당신이 깨어난 것을 발견한 로시오는 작성하고 있는 노트를 황급히 감춥니다.
 
로시오:.. 아도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났나?
 
아도라:(눈을 비비며 일어나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신발을 신고 침대에서 내려와 네게 가까이 다가갔다. 목소리가 다시금 불만으로 가득 차 올랐다.) 깨워 달라니까, 또…….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잠시 침묵했다가 곧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냈다.) ...일기라도 적고 있었어요?
 
로시오:... 해가 질 때까진 어차피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나도 선잠을 자긴 했다. 문을 굳게 잠가뒀으니까, 그리고, (평상시보단 조금 말이 빨라진 것을 보면 저도 잘못한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뚝, 말이 멈추고.) ... 별 거 아니다. (느리게 눈을 굴렸다. 덮은 공책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잘 잤을 테니까. ... 오늘은 더 멀리 걸어나갈 수 있겠군.
 
아도라:같이 쉬었다니까 할 말은 없지만... (당신이 하는 일련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의 당신은 조금 이상했다. 내가 아는 로시오 아이테르는 이렇게 쉽게 당황하는 사람이 아닌데. 늘 쉽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게 당신이었는데.) 선배, 혹시 지금 저한테 뭐 숨기고 있어요? 대체 뭐길래 그래요? 일기에 제 욕이라도 쓰고 있던 거예요? (씩 웃으며 장난스레 툭 던진다.)
 
로시오:... 그런 걸 무엇하러 적겠어,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이야기했겠지. (다만 로시오는 당장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아온 모양이라, 태연히 답할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당장 움직이는 것에 불만은 없나? ... 무리하는 것이라고 여겨질 법 한데. (화제를 돌린다.)
 
아도라:(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빤히 보았다. 수상한데.)
심리학
기준치: 35/17/7
굴림: 47
판정결과: 실패
 
로시오는 나름 군인이라 불리긴 했어도 연기가 꽤 뛰어난 사람이었던 걸 기억해냅니다.
 
능청스레 화제를 돌리는 그에게선 무엇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아도라:... (뭐,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비밀을 만들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다. 정말 혹시라도 감염 사실을 숨길 만한 사람도 아니고. 가볍게 콧바람을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쉴 만큼 쉬었는 걸요! 아주 개운해요. (한 팔로 다른 쪽 팔뚝을 잡고는 힘을 준다. 표정이 밝았다.)
 
로시오:... 그렇다면 당장, ... 출발하도록 할까. (해가 뉘엿뉘엿 지는 창 바깥을 바라보다, 다시금 당신의 눈치를 살피는 시선이 있었다.) ... 확실히 침대에서 자는 게 다르긴 하지.
 
아도라:그쵸,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다니까요. ...하기야, 예전의 평범한 삶의 비하면 호사라고 할 것도 못 되지만요. (쓰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자는 의미였다.)
 
로시오:... 안전지대로 진입하면 한결, 나아질 거다.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로시오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닐까,라는 말을 건넸지만.
 
여기서 더 쉬었다 갈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루빨리 안전지대로 가야하니까요.
 
우리는 집을 나섰습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길을 걷는 블럭들 마다 집들 사이로, 좀비들이 느릿하고 목적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좀비들을 피해 조심조심 걸으며 마을을 거의 다 빠져나오자, 마을 외곽 즈음에 위치한 꽤나 큼직한 [마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로시오:... 식량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 말했다.) ... 가볼까?
 
아도라:(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마트]
 
마을을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해있는 꽤나 큼직한 마트는, 이미 많은 생존자들이 다녀갔는지 빼곡히 늘어진 진열대가 휑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나마 물건들이 올려진 [선반1] [선반2], 그리고 한쪽 벽으로 [창고]라 써진 팻말이 보입니다.
 
아도라:이미 누가 다녀간 모양이네요. (주위를 둘러보다가 첫 번째 선반을 살펴보았다.)
 
로시오:... 멀쩡할 거란 생각은 당연히 안 했지만 말야. (어깨를 으쓱였다.)
 
장난감 코너입니다.
 
곰인형, 유니콘 인형, 비비탄 총...
 
당신은 인형을 둘러보다 [노래하는 곰돌이]라는 태그가 붙은 인형을 발견합니다.
 
누르면 아마도. ... 소리가 나겠죠?
 
로시오:(당신을 흘끔거렸다.) 왜, 가져가고 싶나?
 
아도라:(고개를 젓는다.) 됐어요. 가져가도 쓸모없을 거예요. (다음 선반을 살핀다.)
 
로시오:... 그런가. (눈을 깜빡였다.)
 
생존에 필수적인 식료품들이 수두룩했을 선반입니다.
 
생존자들이 다녀갔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빼곡했을 선반이 휑합니다.
 
드문드문 있는 것들도 쓰레기들이에요.
 
그러나...
 
아도라, 행운 판정이 가능합니다.
 
아도라:
행운
기준치: 60/30/12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쓰레기더미들 사이에서 멀쩡한 참치캔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운까지 따라줍니다.
 
못하는 게 뭔가요?
 
아도라:선배, 이것 봐요. 통조림이에요! (참치캔을 주워들고 활짝 웃으며 외쳤다가 좀비들이 있을 바깥쪽을 힐끔 살폈다.) ...참, 조용히 할게요. (멋쩍은 듯 볼을 긁적이다가 창고 쪽으로 향했다.) 창고도 볼게요.
 
로시오:... 쓸만한 걸 찾았군. (마찬가지로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당신의 부름에 고개를 치켜들고 당신을 바라보면. ... 막을 수 없는 웃음이 퍼진다. 이를 드러내며 씩 웃음짓던 로시오는 몸을 일으켜 당신과 함께 걸음을 맞췄다.) 함께 가보지.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창고]라고 팻말이 써 있는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잠겨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지난 번 들린 집에서의 기억이 있었죠.
 
이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요?
 
듣기 판정이 가능합니다.
 
아도라:
듣기
기준치: 55/27/11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무슨 소리가... 들렸나요?
 
잘 모르겠네요.
 
로시오:... 안에 감염자가 있는 걸 염두에 두고 문을 열도록 하지. (눈빛을 보냈다.)
 
아도라:으음... (문을 열지 않고 조심히 노크부터 해 본다.)
 
... 당신은 돌연 문 안으로부터 가느다란 소리를 듣습니다.
 
불쾌하고, 익숙한 그 음성.
 
아직 우리의 존재를 완전히 알아차린 건 아닌 모양이죠.
 
마트 안의 창고에는 확실히, 그들이 있습니다.
 
아도라:...아무래도 안에 감염자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요. 그리 묻는 듯 조금 긴장한 얼굴로 널 올려다 보았다.)
 
로시오:... ... 그러나 그 점 때문에, 안에는 확실히 물건이 있을거다. 생존자들의 발길이 닿지 못했을 테니까. (도끼를 고쳐 잡았다.) 내가 혼자 해도 괜찮을 것 같다만. ... 어떻게 할 거지? (어쨌거나 로시오는 문을 열 생각으로 만만인 모양이다. 당신의 의사를 묻는다.)
 
아도라:선배, 왜 이렇게 무모해요? 열었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요.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목소리를 낮추고 쏘아붙이다가 문득 며칠 간 에너지바 외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물자를 획득하느냐, 목숨을 우선시하되 언제 또 나올지 모르는 물자를 기다리느냐. 그 기로에서 잠시 고민하던 중 결국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요, 대신 문은 제가 열 거예요. 그렇게 해도 되죠? 이건 양보 못해요.
 
로시오:(묵묵히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던가. 아마, 몇 마디 더 당신의 말이 이어졌다면 매정한 목소리를 뱉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도라 에버렛, 네 상관은 나다. 따위의. ... 그러나 당신은 마냥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타협점을 찾아 꺼내는 제안에 로시오가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좋다. ... 그런데, 아도라. (다시금 도끼를 두 손으로 고쳐쥐고 들어올렸다. 당신이 문을 열면 뛰쳐나올 감염자의 목을 당장에라도 베어버릴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네가 몇 살이었더라.
 
아도라:(네가 도끼를 들어올리자 저 또한 들고 있던 나이프를 고쳐 쥐었다. 이럴 때 권총이라도 들고 있다면 좋았으련만.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곤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다소 생뚱맞은 질문이 들려오자 그대로 우뚝 멈췄다.) 21살이요. ...갑자기 나이는 왜 묻는 거예요?
 
로시오:... 갑자기 궁금해서. (정말 별 이유는 아니었다. 턱짓했다.) 열지.
 
아도라:설마, 까먹으셨던 거예요? (장난스럽게 말하곤 눈썹을 까딱였다. 다시금 손을 뻗어 문고리를 쥐고, 마른침을 삼킴과 동시에 천천히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곧바로 손을 놓고 싸울 준비를 시작했다.)
 
짧게나마 시선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창고 문이 열리면,
 
좀비의 희뿌연 눈이 빛이 쏟아져들어오는 창고 문의 입구를 향합니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로 달려옵니다.
 
자유 기능 판정으로 좀비를 해치울 수 있습니다.
 
로시오:(가장 먼저 달려오는 좀비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도라:조심해요! (다급하게 외치고는 널 따라 나이프를 휘두른다.)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고깃덩이가 흡사 뭉게지듯, 질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전투는 길지 않았습니다.
 
긴장감이 없었단 소리는 또 아니었지만요.
 
다시 한 번 죽음을 짓밟고 일어납니다.
 
썩은 살점과 피가 사방에 튀어 흘러내립니다.
 
SANC 0/1
 
아도라: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이런 것에 물러나기엔 너무 먼 길을 떠나왔죠.
 
처참히 짓뭉개진 좀비의 시체를 뒤로 하고 당신은 창고 안을 돌아보았습니다.
 
널찍한 창고에서 그나마 멀쩡한 [상자1] [상자2] [상자3] 을 발견합니다.
 
아도라:...괜찮아요, 선배?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네게 물은 후 식은땀을 닦아냈다. 달려드는 감염자는 없는지 더 둘러보다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첫번째 상자를 살폈다.)
 
로시오:... 걱정을 할 것이면, 너를 걱정해야지. (안에 더 이상 감염자가 없는 것을 살펴보았음에도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느리게 당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첫번째 상자는 유행이 지난 옷들을 세일할 때 쓰였던 상자인가 봅니다.
 
상의, 겉옷, 바지, 속옷, 양말 등… 당신과 로시오의 몸에 맞는 옷들도 있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군인인 우리는 그럴 수야 없겠죠.
 
로시오가 다음 상자를 살펴봅니다.
 
두번쨰 상자를 열어보면, 안에는 단백질 바 한무더기가 들어있습니다.
 
로시오:... 몇 주는 족히 먹겠군. (중얼거렸다.)
 
아도라:...그래요, 이거라도 어디에요. 감사히 먹어야죠. (조용히 웃고는 단백질바를 모두 가방에 쑤셔 넣었다. 다음 상자를 살핀다.)
 
단백질 바를 모두 챙기고, 다음 상자를 살펴봅니다.
 
누군가에겐 정말 절실할... 술병들이 들어있군요.
 
와인입니다.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와인이지만 이 망해버린 세상에선 감지덕지일 것입니다.
 
로시오의 성격이라면 이건 분명 거들떠보지도 않겠죠.
 
그 증거로. ... 상자를 살피던 로시오는 쌩하니 일어나서 어딘가로 사라져 있습니다.
 
멀리 간 건 아닙니다.
 
좀비의 시체를 뒤지고 있군요.
 
그는 시체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양 어느 물건을 들어올려 당신에게 보여줍니다.
 
로시오:총이 있다.
... 귀관이 사용할텐가?
 
아도라: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십쇼, 상사님. (고개를 끄덕이며 총을 받아들더니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네 말투를 따라한다.) ...이제 나가볼까요?
 
로시오:그래, 그렇다면. ... 나가보도록 하지.
 
먼저 걸음을 옮겨 창고 문으로 걸어나가는 로시오의 옆얼굴이 보입니다.
 
아도라,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아도라: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글쎄요, 로시오는. ... 평상시의 로시오와 같았겠죠.
 
당신은 평상시와 하나 다를 것 없는 로시오의 뒤를 따라갑니다.
 
단백질 바가 무더기로 들게 된 가방이 더 무거워졌던가요.
 
그러나 마냥 힘든 발걸음은 아니었습니다.
 
동이 터오는 거리의 풍경은 멸망이 곳곳에 스며들어있었지만,
 
이 또한 절망만을 가져다주진 않았을 테죠.
 
드문드문 보이는 좀비들을 피해 숨을 죽여 이동합니다.
 
마을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합니다.
 
...해가 이렇게 떠있을 때 이동한 건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잠깐, 아도라는 이상한 점을 느낍니다.
 
해가 떠 있습니다.
 
아도라, 지능 판정.
 
아도라: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뭔가 놓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는 뭔지. ...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아도라:(무언가 이상하다. 그런데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마냥, 무엇이 이상한지 떠오르지 않는다. 미간을 좁히고 다시 생각해본다.)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우리는 보통 낮에 휴식을 취하고 밤에 움직였었죠.
 
로시오는 현재 힘든 것을 감수하고 이동하기를 고집하는 상태고요.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마음에 걸립니다.
 
다시금 로시오의 옆모습을 향해 시선을 던집니다.
 
...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파묻힌 감정이 언뜻 보입니다.
 
로시오는 현재 무언가를 굉장히 불안해하며,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동할 때 툭툭 말을 던지고도 했었지만 그는 마트를 나선 이후로 쭉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고요.
 
아도라, 그에게 말을 걸까요? 아니면 이대로 침묵 속에서 걸음을 이어나갈까요?
 
아도라:(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굳은 표정으로 널 불러 세웠다.) ...선배, 잠깐 나랑 저기서 얘기 좀 하고 가요.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감염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곳을 엄지로 가리켰다.)
 
로시오:(흘끔, 당신을 뒤돌아보았다. 걸음은 짧게 멈춘다. 그러나, 이어 나간다. 이상하리만치 담담한 태도다.) 아니, 조금 더 이동한다. 곧 주유소가 나올 거다. 그곳에서 휴식하도록 한다. (묵직한 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아도라:지금 해 떴어요. 위험하다고요. ...뭔데요, 왜 그렇게 무리하는데요? 선배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답답함에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뭐, 이렇게 무리해서 이동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요? (네 팔을 붙잡아보려고 했지만 네가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통에 손끝이 허공만 스쳤다.)
 
로시오:(말이 흘러나온 건 한참 뒤였다. 당신에게 뒷모습을 보인 채 아주 짧게 걸음이 머뭇거렸나.) ... 미리 사항을 고지하지 못해 미안하다. 당연히 물어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 내 정신이 이렇게 빠져있을 줄은 몰랐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선은 이동한다. ...
 
아도라, 뒤따르나요?
 
아도라:(입술을 깨물었다가 급한 걸음으로 뒤따랐다. 화를 참는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위험한 일 생기면 가만 안 둘 거예요.
 
그에 이어지는 말은 없었습니다.
 
로시오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돕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듯 길게 늘어졌던 그림자가 점점 짧아집니다.
 
...
 
저 멀리 도로 위로 [주유소]가 보였습니다.
 
6월 10일 11AM
 
주유소는 관리인 한두 명을 둔 작은 무인주유소인 모양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근근히 널부러진 시체들을 넘어 주유소로 가까이 걸어갔습니다.
 
좀비들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무인으로 사용할수 있는 [주유기] 몇대, 그 옆에는 [자판기]와 주유소에 딸린 작은 [사무실]이 보입니다.
 
로시오는 먼저 자판기로 걸음을 옮겨갑니다.
 
로시오:... 자판기가 멀쩡할거라고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지만 말이지. (중얼거렸다.)
 
이미 생존자들이 자판기를 뜯어서 내용물을 다 가져갔는지, 깨지고 망가진 자판기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아도라,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아도라: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혹시 남은 것이 없나 하고 자판기를 뒤져보았지만 나오는 건 부품 잔해들과 쓰레기 뿐이었습니다.
 
로시오:아도라, 사무실로 향해봐라. 아마 문이 잠겨있겠지만. ... (말 끝을 흐렸다.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아도라:(한숨을 내쉬고는 사무실을 살폈다. ...안에 누가 있나? 노크를 해 본다.)
 
... 조용합니다.
 
좀비는 없는 듯 싶군요.
 
그러나 문고리를 잡고 돌려보면, 문은 굳게 잠겨 있습니다.
 
하나 뿐인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있어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열쇠를 찾아봐야 할까요?
 
아도라:으음...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잠겨 있어서 열쇠가 필요할 것 같지만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유기를 살핀다.)
 
그대로 걸음을 옮겨 주유기를 살펴보던 때였습니다.
 
당신이 기름을 챙겨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턱,
 
하고,
 
피투성이인 손 하나가 당신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도와주세요….제발 도와주세요…”
 
우리가 시체인줄만 알았던 그는 이미 감염된지 몇 시간이 지난 듯,
 
코와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반신이 뜯어먹혀 두 다리가 보이지 않고, 찢어진 배 아래로 근육과 장기가 드러나 보입니다.
 
처참한 몰골의 그 생존자, 아니, 감염자죠.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손가락들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한쪽 눈은 파먹혔는지 보이지 않고 간신히 뜬 나머지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보며 애원하기를,
 
"목이 너무 말라요, 물, 물 한 모금만, 제발..."
 
그가 당신의 다리를 향해 나머지 한쪽 손도 뻗으려던 찰나,
 
콰직,
 
하고... 로시오의 군화 밑창이 당신에게 뻗어신 손을 무참히 짓밟습니다.
 
로시오:물러나.
 
당신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로시오는 그를 향해 도끼를 내리칩니다.
 
퍽, 퍼억, 퍽,
 
피가 튑니다.
 
외마디 비명도 곧 그치고,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시체를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도 곧 멈춥니다.
 
...
 
정적이 순간 감돕니다.
 
또다시, 로시오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피가 튀긴 창백한 피부.
 
핏발이 조금 서 있는 하얀 눈자위.
 
느리게 손을 들어 피와 살점이 튄 볼을 닦아냅니다.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눌러내립니다.
 
로시오:... 괜찮나, 아도라.
 
당신을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당신이 기억하던 로시오의 모습과는 어딘가 섬뜩하고 이질적입니다.
 
SANC 0/1
 
아도라: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이성치 1 감소.
 
당신이 로시오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찰나,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쥬드:... 와, 장난 아닌데?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반쯤 열린 사무실의 안쪽에서 한 30대 남성이 서 있습니다.
 
쥬드:저기, 우선 들어와서 이야기할래요?
밖은 또 언제 좀비들이 올지 모르니까.
 
태연하게 엄지손가락으로 제가 나온 사무실 안을 가르켜보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도라?
 
로시오는 그를 꽤나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도라:(낯선 로시오의 모습에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으나 확인하기가 두려워 그저 피곤하고, 날이 서 있어 그럴 뿐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곧 날이 서 있는 로시오를 한 번 보았다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감염자는 아닌 모양이네요. (다시금 로시오를 보며,) ...갈까요, 선배?
 
로시오:... ... 그래, 들어가도록 하지. (몇 번 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 여느 때와 똑같은 그의 모습이 된다. 무덤덤하고, 조금은 예민해보이는 낯과 함께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 정체불명의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에게로 걸어간다. 도끼를 잡고 걸어가는 그 모습은 어쩌면 사내를 해치기 위해 걸어가는 것이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다. 사내의 앞에 당도한 그가 정말 도끼를 휘두르진 않았지만 말이다.) ... 지방자치대 소속, 아이테르 상사입니다. 이쪽은 같은 소속인 에버렛 하사.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사내는 떨떠름하게 웃고, 로시오는 당신에게 턱짓하며 안으로 들어섭니다.
 
당신 또한 뒤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사내는 재빨리 문을 잠갔습니다.
 
작은 사무실이라, 세 사람이 들어가니 방이 꽉 찹니다.
 
당신과 로시오가 조금 짐을 풀고 자리에 앉자, 그제서야 남자는 자신을 소개합니다.
 
쥬드:이게 얼마만에 만나는 생존자인지 모르겠네. ... 아무튼, 쥬드라고 합니다. (선량한 미소를 그렸다.)
 
로시오는 특별히 말을 얹지 않습니다.
 
피곤해보이니, 아무래도 대화는 당신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도라:하사 에버렛입니다. (고개를 까딱인다.) 생존자는 당신 혼자인가요? 여기에 머물고 계셨던 겁니까. (좁은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쥬드:안전지대로 향하던 중이었죠. 같이 가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전부 감염자가 되거나 죽어서요.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생존자를 만나는 건 삼개월 만이네요.
아무튼, 전 여기를 발견해서 해가 질 때까지 쉬어가려던 참이었거든요. ... 왜 해가 떴을 때 움직이고 있었나요?
 
아도라:여기는 임시 쉘터였다는 거군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왜 해가 떠 있을 때 움직였냐는 질문에 다소 착잡한 표정이 되었다. 로시오 쪽으로 눈을 흘긴다.) ...어떤 미련한 상사가 강행군을 했고, 아시다시피 전 하사라 상사 말에 불복하면 안 되거든요. 믿는 구석이라도 있었나 보죠. 그렇죠, 아이테르 상사님? (핀잔을 주는 듯한 말투로 툭 묻고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데에 대한 일종의 투정이었다.)
 
쥬드:오. ... ... ... (단지 멋쩍은 시선을 로시오에게로 흘겼다.)
 
로시오:... 시간이 날 때 이유를 이야기해주지, 하여튼. (아도라의 어깨를 툭 치고 쥬드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무척이나 태연해보인다.) 일반인이시니, 마땅히 저희가. ... 보호해드릴 책무가 있지 않겠습니까. 쉘터까지 동행하시겠습니까?
 
쥬드:(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우연이네요, 저도 이걸 제안할까 했는데. ... 어차피 동행하지 않아도 목적지가 같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아도라에게 한 쪽 눈을 찡긋거렸다.)
 
아도라:(툭 친 어깨를 슥슥 문지르며 또 한 번 입을 비죽였다.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희가 보호해 드리죠. 그럼, 해가 질 때까지 여기서 머물렀다가 나갈까요? (로시오를 바라보며 묻는다.)
 
로시오:... 쉬었다 이동하지.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을 잠시 바라보다 말았다. 이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로시오가 아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게 얼마나 오랜만인지요.
 
로시오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지만 쥬드는 살갑게 당신에게 말을 붙여왔습니다.
 
밤을 지나 낮 시간에도 힘을 써 걸어왔으니, 오늘의 식사는 꽤나 풍족했습니다.
 
칼로리바와 참치캔, 쥬드가 꺼낸 무화과 등.
 
문득 마트에 놓고 온 술이 떠오르네요.
 
가져왔다면 꽤 좋았을텐데 말이죠.
 
식사가 끝나고 대화는 점차 줄어들어갑니다.
 
짐을 치우고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그제서야 피곤함이 물 밀듯 물려왔던가요.
 
흐릿해져가는 시야에는 불현듯 로시오의 뒷모습이 잡힙니다.
 
등을 돌리고 어제처럼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내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로시오에게 뭐라고 더 말을 하려 했지만 피곤이 무거운 탓에, 금세 잠에 듭니다.
 
...
 
깜빡,
 
잠에서 깨어나니 창 밖이 어둑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숙취가 느껴지는게 평소보다 더 오래 잔거 같아요.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당신이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로시오입니다.
 
밤새 그 이라는 걸 쓴 모양입니다.
 
당신이 깨어난 것을 확인한 로시오는 중얼거리듯 말합니다.
 
로시오:─ 캘버리로 가야한다. 하루라도 빨리. ...
 
말,이랄 것도 아니었죠.
 
한탄과도 같은 중얼거림을 입에 담은 로시오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로시오:출발하자.
 
아도라:(여전히 뻐근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자기 전과 똑같은 네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았다. 놀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선배, 설마 한숨도 안 잔 거예요?
 
로시오:... 쉘터에 도착하기 전에는 이야기할게. (한 손으로 머리를 잠시 감싸쥐었다.)
... 약속해. 약속한다. (뒤늦게 이야기를 덧대었다. 어쩌면 간절하게.)
 
아도라:...자꾸 뭘 숨기는 거예요. 선배 지금 진짜 이상한 거 알죠.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됐어요, 가요. (쥬드를 힐끔 살핀 후 짐을 챙겼다.)
 
어쩌면 당신이 예상했듯, 로시오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
 
밤은 찾아왔습니다.
 
당신과 로시오, 쥬드는 길을 떠났습니다.
 
아스팔트 도로에 세 사람의 밤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묵묵히 길을 걷던 당신은 옆에서 걷는 로시오를 돌아보았습니다.
 
로시오는 가끔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로시오를 바라보는 당신의 옆으로 어느새 쥬드가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쥬드:저 친구, 정신이 좀 이상해 보이는데요.
 
행여 로시오가 들을라, 목소리를 낮춘 쥬드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쥬드:내가 이래봬도 다른 나라 여행을 많이 다녀서 조금씩 배운 말이 많은데 저 친구 말하는 걸 들어보니 라틴어, 독일어, 스페인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 외의 언어들도 많은거 같은걸 보니...
완전히 미쳤거나, 아니면 한 20개 국어 정도를 하는 천재이거나, 둘 중 하나인거 같거든.
 
아도라:... (다소 놀란 눈을 하곤 로시오의 옆모습을 빤히 응시한다. 외국어? 로시오가 외국어를 그리 유창하게 할 줄 알던가? 그저 멍하니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어렵게 입을 뗐다.) ...그럴 리가요. 이전에는 한 번도 한 적 없는 걸요.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까딱이고는 손을 뻗어 로시오의 팔을 툭툭 쳤다.) 선배. 정신 차려요, 선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도저히 그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죠.
 
로시오가 저런 언어들을 할 줄 알던 사람이었던가요?
 
갑자기 책을 쓴다는 것도 그렇고, 어제 주유소에서의 일도 그렇고...
 
요 며칠 새의 로시오는, 마치 당신이 알던 로시오가 아닌 것도 같았습니다.
 
이런 미쳐가는 세상에서 로시오 마저도 미쳐가는 걸까요.
 
어느새 당신들보다 몇 발짝 뒤쳐졌던 로시오의 팔을 툭툭 치자,
 
로시오는 그제서야 중얼거림을 멈추고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로시오:... 아도라?
아, ... (뒤늦게 당신이 물었던 말을 떠올렸다. 입술을 달싹이다 조금 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곧장 사그라든다.) 정신은 제대로 차리고 있다. 걱정할 건 없어. ... 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을 할 네 성격을 알지만. (한숨을 삼키는 양.)
 
아도라:약속한다고 했으니 믿겠지만요... (불안한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지금의 당신은 이때껏 알고 있던 로시오 아이테르라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무언가 이상하다.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묘함의 결과가 곧 당신의 부재로 이어질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예감이 든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이런 세상에서 당신마저 잃는다고 생각하면 피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말라버리는 기분이었다.) …혹시라도 짐이 무거우면 언제든 말해요. 같이 짊어질 수 있어요. 저 어린애 아니거든요. 너무 혼자서만 끙끙 앓으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 그러려고 같이 있는 거잖아요. 서로 의지하려고. (쓰게 웃는다.)
 
로시오:... 알아, 안다, 아도라. (눈썹을 까딱였다.) 너를 어엿한 한 군인으로서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네가 짐을 먼저 드는 것도, 창고 문을 먼저 여는 것도 묵인했지. ... 이렇게 했지만, 네가 나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또 나의 책임이 되겠지만. (입술을 길게 다물었다.)
... 생각해야할 게 많다. 저 자와 이야기하고 있어. (손짓했다.)
 
아도라:…심심하면 먼저 말 거세요. (일부러 가볍게 대꾸하고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다시 쥬드의 곁에 나란히 섰다.)
 
쥬드:(다시 조금씩 뒤쳐지는 로시오를 묵묵히 바라보다, 눈을 굴렸다.)
 
이내 우리는 말 없이 걸음을 옮겨갔습니다.
 
밤이 기울고, 새벽이 가까워져오고.
 
풀벌레 우는 소리나 바람 소리 따위만이 귓가에 은은히 들려오던 와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털썩,하는 소리가 들려왔던가요.
 
뒤를 돌아보니, 로시오가 땅에 쓰러져있었습니다.
 
황급히 쥬드가 그에게로 가 상태를 살펴봅니다.
 
쥬드:... 온 몸이 불덩이 같아요. (아도라를 바라본다.) 이 친구를 좀, 어디에 눕혀야 할 것 같은데. ...
 
힘겨운 신음 소리가 납니다.
 
요 며칠 그 '책'이라는 걸 쓰느라 고생하더니, 결국 건강을 망치게 된 걸까요.
 
쥬드:부축하는 걸 좀 도와주시겠어요?
 
아도라:이럴 줄 알았어. (탓하듯 격양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재빨리 달려가 로시오의 몸을 함께 부축했다.) 선배, 선배. 제 말 들려요? 괜찮아요?
 
로시오는 반쯤 정신을 잃은 듯 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쥬드:끙, (로시오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고 몸을 일으켰다. 당신을 한 번 바라보고는. ...) ... 차라리 업는 편이 낫겠네.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아도라:미안해요, 부탁 드릴게요. 짐 먼저 이쪽으로 주시겠어요? (쥬드 쪽으로 손을 뻗어 짐을 받고는 로시오를 업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도라는 쥬드를 도와 쥬드가 로시오를 업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절한 로시오는 종종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정확히 어떤 소리를 이야기하는진 알 수 없었죠.
 
얼마나 걸었을까요, 마침 동이 트려 할 때 즈음이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어느 [학교].
 
좋든 싫든 저 곳에서 쉬어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6월 11일 5AM
 
불에 타 거꾸로 뒤집힌 스쿨버스와 낡고 망가진 놀이터를 지납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학교 건물로 가까이 다가가면 어둑한 교실 안을 느릿하게 배회하는 검은 그림자들이 보입니다.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아도라: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모든 교실에 좀비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건물을 찾아봐야 할까요?
 
그때, 쥬드가 입을 엽니다.
 
쥬드:저 곳 말인데요, 좀비가 없는 것 같네요.
 
쥬드의 턱짓을 따라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면. ... 아.
 
한 교실은 좀비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깐 왜 안 보였지. ...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들어갈까요, 아도라?
 
아도라:들어가죠.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을 연 후 짐부터 던져 넣었다. 곧 빠르게 도약해 창틀을 붙잡고 넘더니 잠긴 교실 앞문을 조심히 열어 젖혔다. 들어오라는 듯 고개짓을 했다.)
 
다른 좀비들이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잽싸게 움직입니다.
 
쥬드가 힘겹게 뒤따라 창틀을 넘어옵니다.
 
우리는 교실의 책상들을 한데 밀어 공간을 만들고, 로시오를 눕혔습니다.
 
아도라:큼, 큼... (민망하게 문을 닫는다...)
 
쥬드:해가 뜰 테니까요. ... 저희도 좀 쉬죠. (뒤따라 민망하게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네.
 
온 몸이 불덩이같은 로시오는 바닥에 누워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표정을 찡그린 채 간간히 내뱉는 호흡은 불안정합니다.
 
그런 로시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올랐나요.
 
갑자기 로시오는 왜 아픈 걸까요.
 
이런저런 걱정이 듭니다.
 
... 잠시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도라, 당신도 잠에 들까요?
 
아도라:(잠들지 말아야지. 그동안에는 당신 홀로 낮을 견디며 잠든 나를 지켜 주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잠든 당신을 지켜 주어야지. 그리 생각한 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참아 보려고 하였으나 결국 무겁던 눈꺼풀이 차츰 감기고 고개가 완전히 꺾여 떨어졌다. 벽에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불편한 자세로나마 얕은 잠에 빠졌다.)
 
잠에 빠져들면, 과거의 한 기억이 스쳐지나갑니다.
 
당신이 막 부대에 들어왔을 때였나요.
 
고된 훈련에 지쳐 숨을 몰아쉬던 당신에게 로시오가 찾아왔었죠.
 
수통을 건네주며, 하던 말이. ...
 
로시오:귀관은 왜 부대에 들어왔나?
 
아도라:(수통을 받아든 후 고개를 까딱이더니 목부터 축였다. 급하게 물을 들이키더니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수통을 흙바닥에 내려놓고는 애꿎은 흙만 쳐다보았다.) ...주변인을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가족은 이미 감염자의 손에 잃었다지만, 제가 사람으로 남아 있는 한 소중한 사람은 언제든 생기지 않겠습니까. 소중한 이가 또 생긴다면, 이전처럼 후회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도록 제 손으로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내내 바닥을 향하던 시선이 네게로 향한다.)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로시오:... 각자의 이유로 이 자치대에 들어온 자들이 많으나,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져내리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신 옆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벽에 등을 기대 앞을 바라보았다.) 불에 타들어가는 장작이 잿더미가 되어버리듯 말야. 바람에 모조리 날아가버린다. (흙바닥에 놓인 수통을 계속 바라보다가, 그를 주워들었다.) 귀관은, 귀관의 목적이 어디까지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아도라:말 편히 하십쇼, 상사님. (네가 벽에 기대어 천천히 앉을 때까지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네가 수통을 주워들 때쯤이 되어서야 눈을 허공으로 돌렸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변함없이 환한 뙤약볕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사람이지 않습니까. 제가 이 자리에서 호언장담한다 한들, 막상 힘든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고 말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될 때까지 태울 겁니다. 어둠 속에서 갈 길을 밝히는 건 결국 잿더미가 아니라 불꽃이지 않습니까. 빛 한 번 못 내 보고 허무하게 잿더미로 흩어진다면 그건 제 자존심이 용납 못 할 것 같습니다. ...쉽게 도망치지는 않을 겁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웃었다.)
 
로시오:편히 하고 있으니 신경쓸 것은 없다. (의미 없이 수통을 위로 던졌다 받고, 또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는 행위를 했다. 수통이 허공에 붕 뜰 때마다 바닥에 그림자가 졌다. ... 당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하던 그는 행위를 멈추고 수통을 탁 잡았다. 로시오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내려다본다. 제 그림자가 당신에게 길게 늘어서있다. 그것을 꽤 길게 바라보았던 것 같았다.) 그런가. (당신의 말에 뭐라 길게 답하지는 않았다.)
 
이내 로시오는 담담하고, 또 건조한 음성으로 물었던가요.
 
로시오:그렇다면 귀관은,
그 목적이. ... ...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목소리는. ...
 
쥬드와, 로시오의 목소리입니다.
 
희미하게 눈을 떠보니 교실엔 두 사람이 없는 것이, 복도로 나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듣기 판정이 가능합니다.
 
아도라:
듣기
기준치: 55/27/11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쥬드:... 그렇지 않으면 말해버릴 거야, 네가...
 
... 무얼요?
 
로시오:... 더 이야기해보시지 그래, 지금, ...
 
뭘 말하는 거죠?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게,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잠에서 퍼뜩 깨어난 당신이 둘을 말리러 나가봐야 할까,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탕!!!
 
타앙!!!
 
...
 
귓가를 찢는 총성이 울려퍼집니다.
 
당신이 황급히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 보이는 것은 새벽어스름이 깔린 복도에 총을 든 로시오와,
 
...
 
얼굴에 총을 맞아 눈도 채 감지 못하고 즉사한 쥬드입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로시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립니다.
 
로시오:... ... 난, (무어라 말을 꺼내려 입술을 열었으나.)
 
그런데, 설명을 할 시간이 있을까요.
 
어둑한 복도 너머로 총성을 들은 좀비들의 무리가 복도 양쪽에서 당신과 로시오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
 
눈으로 어림잡아도 스무 마리는 넘어보입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고개를 돌렸지만 운동장 쪽에서도 좀비들이 학교 건물로 달려오는 게 보입니다.
 
도망가긴 이미 늦었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돌연 로시오가 당신의 손을 잡아 끕니다.
 
캐비닛으로 달려갑니다.
 
당신을 캐비닛 안에 밀어넣고 문을 잠굽니다!
 
당신은 저항할 새도 없이 로시오에 의해 캐비닛에 갇혔습니다.
 
로시오:(바깥에서, 입술을 잘근 씹어 물며 문 손잡이에 빗자루를 끼워넣었다.)
 
아도라:선배, 선배! 열어요! 뭐하는 거예요?! (문을 쾅쾅 두드린다.)
 
캐비닛에 가로로 작게 난 틈을 통해 로시오의 마냥 초조한 얼굴이 눈에 보입니다.
 
열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는지 식은땀이 맺혀 흐르는 것이 보입니다.
 
로시오:─ 귀관, 아도라. 눈을 감고 있어.
지금은 괜찮을 거다.
 
아도라:선배, 상사님,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얼굴이 자꾸만 일그러졌다. 식은땀이 온 얼굴을 적셨다. 긴장감에 자꾸만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붙들고는 힘을 주어 문을 밀었다. 덜컥, 덜컥. 큰 소리만 날 뿐, 당연하게도 열리지 않았다.)
 
로시오:...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노래를 기억하나? 아니, 기억할 리 없지. 나도 기억은 제대로 나지 않는다. ... 어쩌면 그 때의 기억은, 공상으로 가득 찼을지 모를 일이지. (평상시와는 달리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잠시 침묵한다.)
... 곧 보지.
 
그렇게 말한 로시오는 매정히 캐비닛의 앞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
 
그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탁하고, 갈라진 음은 그럼에도 정확히 음을 짚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캐비닛의 난 틈으로 그의 옷자락이라도 쫓으려 간절히 매달렸나요.
 
어느새 복도를 가득 메운 좀비들 사이로 로시오의 모습은 사라집니다.
 
좀비들의 외마디 비명소리 사이에 노랫소리가, 복도에 이질적으로 울려퍼집니다.
 
그것은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좀비들이 소리를 따라서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제 복도에서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 새벽의 캐비닛 안은 춥고 어둡습니다.
 
춥고, 어둡습니다.
 
빌어먹을 일이죠, 안 그런가요?
 
시간이 흐릅니다.
 
시계 초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캐비닛의 어둠 안에서 당신은 홀로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보면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닛의 문이 열리며.
 
옷 군데군데가 찢겨 엉망이 된 로시오가 서있었습니다.
 
로시오:...
 
그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눈을 마주하면,
 
당신의 머리에 이스트베일의 그 서재에서 보았던 문장이 스쳐지나갑니다.
 
[좀비는 감염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 이제 갑자기 이상하게 굴던 로시오의 그 모든 행동이 이해되었습니다.
 
당신의 눈 앞에 있는 로시오는,
 
감염자 입니다.
 
SANC 0/1D3
 
아도라: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1D3 롤.
 
아도라:
rolling 1d3
 
(
2
 
)
 
 
=
2
 
이성치 2 감소.
 
도대체 언제부터일까요?
 
로시오는, 이제 곧 좀비로 변해버리는 것일까요?
 
혼란스러운 당신에게 로시오는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 입술을 엽니다.
 
그 빌어먹을 음성이 나옵니다.
 
로시오:최대한 마지막까지는 비밀로 하고 싶었다. 약속한대로, 알려줄 예정이긴 했지만. ... 이런 상황에서 그러길 바라진 않았다.
귀관, 아직 나를 사살하지는 말도록.
지체할 시간이 없다.
 

아도라:(아직 나를 사살하지는 말도록. 사살……. 그 매정한 단어가 당신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손을 뻗어 멱살을 틀어쥐고는 그대로 벽에 밀어붙였다.)

 
로시오:... ... (그런 당신의 모습은, 정말 처음 보는 것이라. ... 로시오는 아무 말도 감히 내뱉지 않았다. 당신의 심정을 자신이 온전히 헤아릴 수 없는 까닭이었으며, 자신의 행위가 그렇게도 이기적이었던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까닭이었다. 고개를 치켜든다. 천장이 보인다. 그때와 같은 하늘이 아닌. ... 다시금 잔인한 말을 내뱉기 위해 입술을 열었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다듬어지고, 가장 몸을 웅크려 그나마 당신에게 상처입히지 않을 말을 꺼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았다.)
... 이동한다. (당신의 손을 붙잡아 옷깃에서 떼어냈다, 그러나,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군인 대 군인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손을 부여잡았다. 그 붙잡은 손을 이끌어 복도를 헤쳐나가듯 걸음을 옮겼다.)
 
6월 12일 6AM
 
학교를 빠져나오면 동이 터 주위가 환해집니다.
 
햇빛이 곳곳에 스며들어 폐허가 된 도시를 밝힙니다.
 
잠시 그 끝자락이 이마를 스칠 즈음이면, 이상하게도 따뜻하단 느낌을 받았던가요.
 
쭉 이어지던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가다보면 초원에 난 흙길이 보입니다.
 
원래 도로였을 길 위에 자동차로 지나간 듯 풀들이 눌린 흔적이 있습니다.
 
... 캘버리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당신은 로시오의 옆모습을 묵묵히 바라봅니다.
 
여전히 안색이 창백한 것이, 그 열이 다 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참을 말이 없던 로시오는 줄곧 당신의 손을 붙잡은 채 입술을 엽니다.
 
로시오: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내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 내가 감염자라는 걸 알고, 우리의 식량을 훔쳐 도망가려고 했다. 그를 저지하려 하자, 내가 감염자라는 걸 네게 말한다 협박했기에, ...
 
말을 삼킵니다.
 
그래서 죽일 수 밖에 없었다는 소리겠죠.
 
천천히 당신의 손을 놓은 로시오는 품 안에서 요 며칠간 붙들고 있던 노트를 꺼내 보여줍니다.
 
로시오:이걸 완성하기 전까진 네게 제대로 된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곧 완성될 것이다.
─ 귀관, 내가 귀관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음을 안다. 죗값은 다 받아낼테니, 아주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나.
 
로시오는 당신에게 그저 기다려달라고만 말합니다.
 
기다려달라고, 기다려달라고. ...
 
이 말만 도대체 몇 번 째인가요?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과연 당신에게 자신이 감염자였단 사실을 밝혔을까요?
 
아도라, 당신은 그를 여전히 믿을 수 있나요.
 
아도라:(잠시 노트를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당신에게로 옮겨 갔다. 당신은 이기적이었다. 아니, 미련했다. 그리 무거운 짐을 혼자서만 짊어지려고 했던, 너무나 미련한 작자였다.) 죗값이요. (문득 네 입에서 흘러나왔던 '사살', 그 한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감염자든, 사살이든, 죗값이든 알게 뭔가. 내 앞에 서 있는 이가 지금껏 지켜봐오던, 이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이인 로시오 아이테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테지. 믿지 못할 수가 없지 않은가.) ...알겠어요. 약속했으니까, 믿을게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사람의 과실을 탓하거나 잔인한 운명에 고꾸라져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떠나보낼 준비를 지금부터 조금씩 해야겠다고, 그리 생각했다.)
 
로시오:(동이 막 트는 하늘이 보였다. 연한 노란색이 물들다가 파랗게 지는 하늘. 순간 그것이 당신의 머리색과 똑같이만 보여서, 답지 않게 시선을 팔았던 것 같았다. 놓은 손을 다시 붙잡지는 않았다. 노트를 다시 품 안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걸어가면 고지가 앞이다.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몸을 움직였다. 아직은 잿더미가 될 수 없었다. 아직은 타올라야 했다. 불타야 했다, 로시오 아이테르. ...) ... 고맙다. (턱 막힌 음성이 흘러나왔다.)
 
각자 다른 생각과 불안감을 품고, 당신과 로시오는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정오가 될 때 즘, 저 멀리 언덕 위로 보이는 첨탑.
 
작고 오래돼 보이는 성당이 나옵니다.
 
좀비들을 막기 위해 창문에 나무 판자를 덧댄 흔적이 보이는군요.
 
그마저도 꽤나 오래 전의 것인지 먼지가 끼어 있습니다.
 
로시오는 지도를 들여다보다 말합니다.
 
로시오:이제 곧 캘버리다. 잠시 쉬었다가, 해가 지면 이동한다.
 
성당의 정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예배당 끝에 걸린 십자가입니다.
 
인기척이 하나 없는 예배당 안은 고요합니다.
 
예배당 맨 앞에 짐을 푼 로시오는 당신을 돌아보지 않고 명령을 내립니다.
 
로시오:안 쪽에 다른 좀비가 없는지 살펴보고 오도록.
 
아도라:쉬고 있어요. (당신을 따라 짐을 푼 후,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쪽으로 향했다.)
 
당신은 예배당 안을 돌아봅니다.
 
정면에는 [단상]이 있고, 위에달린 [십자가]를 중심으로 양 옆에는 [피아노]와 [계단]이 보입니다.
 
아도라:(이곳은 이런 사태 속에서조차 평화롭구나.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단상을 살폈다.)
 
나무로 된 단상은 가슴께까지 오는 높이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단상 위에는 성경이 놓여있습니다만. ...
 
성경을 펼쳐보면 안은 뭔가의 얼룩이 잔뜩 져 있어, 글귀를 읽어볼 수가 없군요.
 
누군가가 끼워놓은 쪽지가 보입니다.
 
구원은 누구에게서부터 오는가?
 
글씨는 굉장히 거칩니다.
 
아마도 이 성당의 사람이 적어 넣은 쪽지는 아니겠죠.
 
어느 생존자의 절망을 엿봅니다.
 
... 다른 곳을 살펴봅시다.
 
아도라:(한숨을 쉬며 쪽지를 구겨버리고는 십자가를 살폈다.)
 
예배당 중앙에 걸린 십자가는 높고 까마득합니다.
 
십자가에 손을 대어보면, 어라.
 
뭔가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아도라:(자세히 살핀다.)
 
십자가의 뒷면에 손을 넣어보면 차갑고 울퉁불퉁한 감촉들이 느껴지는 게...
 
열쇠묶음입니다.
 
성당의 열쇠들을 여기에 두었나 보네요.
 
열쇠를 챙기고 다른 곳을 살펴봅시다.
 
아도라:...음. 이젠 주인이 없으니까 괜찮나. (열쇠를 주워든 후 피아노 쪽으로 향했다.)
 
뚜껑이 닫힌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했을 찬미가와 달력이 놓여있군요.
 
날짜마다 엑스표가 쳐진 달력은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의 것입니다.
 
달력을 넘기면 달마다 교회의 중요 행사들이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좀비사태가 터진 이후부턴 각 날짜 칸마다 엑스표시가 쳐져 있는 게, 마치 이 교회 안에서 생존한 일수를 센 것 같습니다.
 
엑스 표시가 끊긴 날짜는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 대략 한 달 후.
 
이 칸은... 엑스 표시 대신 동그라미가 쳐져 있습니다.
 
아도라:(눈을 깜빡였다. 동그라미? 무슨 중요한 의미라도 되나. 달력을 덮어두고 마지막으로 계단을 살폈다.)
 
좁은 나선계단입니다.
 
위층의 다락방으로 향하나 봅니다.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는 [기도실]이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아도라:(아마 생존자가 있었다면 여기에 머물렀을 테지. 생존자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가 기도실 문 앞에 섰다.)
 
아도라, 관찰 판정.
 
아도라: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계단의 끝, 문 바로 앞의 바닥에 떨어져있는 건 또 다른 메모인가요.
 
들어가지 말 것
 
이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아까 성경책 사이에 있던 쪽지의 글씨체와 같습니다.
 
... 들어갈까요?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언제나 그랬듯 말입니다.
 
아도라:(문에 귀를 갖다 대 본다. 무슨 소리가 들릴까?)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
 
정적이 흐릅니다.
 
아도라:... (조심히 노크를 해 본다.)
 
노크 소리에 흔들릴 뿐, 정적은 깨지지 않습니다.
 
아도라:으음...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곧 문을 조심히 열었다.)
 
문이 잠겨있어, 당신은 아까 얻었던 열쇠를 사용해 문을 열었습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문이 열리면...
 
엄청난 악취가 느껴집니다.
 
당신은 이 악취가 슬프게도 익숙합니다.
 
지독하게도 맡아온, 시체가 썩는 냄새입니다.
 
SANC 0/1
 
아도라:
SAN Roll
기준치: 67/33/13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안으로 들어서나요?
 
아도라:(이 냄새가 역하지는 않았다. 그저 안타까울 뿐. 코를 막고 굳은 얼굴을 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얼른 보고 돌아가자, 로시오가 혼자 있을 테니까…….)
 
어둑한 기도실 안으로 걸음을 내딛습니다.
 
좁은 기도실 안을 열명 정도 되는 사람들, 아니, 이제는 썩어 백골이 되어가는.
 
시체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시체들의 정 중앙에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피워낸 향로가 보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삶을 이어가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이곳에서 단체로 생을 마감했나 봅니다.
 
...
 
구원을 바랐겠죠?
 
그들의 마지막 기도는 분명 그것이었을 텝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구원받았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대로 당신은 로시오에게 돌아옵니다.
 
계단을 내려와 시선을 옮기면 단상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로시오가 보입니다.
 
인기척을 느낀 그는 천천히 눈을 떠 당신을 바라봅니다.
 
옆에는 노트가 놓여져있습니다.
 
그가 노트를 완성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울였던 몸을 바로 하고, 두 손을 깍지 껴 무릎 위에 올립니다.
 
입꼬리를 끌어올립니다.
 
간만에 보는, 지친 기색 없는 그의 미소입니다.
 
그대로 그가 묻기를,
 
로시오:... 귀관은 왜 부대에 들어왔나?
 
아도라:이 질문, 옛날에도 들은 것 같은데요. (조용히 미소짓고는 당신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곧 미소가 지워졌다. 시선이 차마 네게 향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목표를 이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로시오:(고개를 돌려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라보았다. 오색찬란한 빛이 쏟아져내리면 이 멸망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이 남아있구나, 싶다. 눈을 길게 감았다 뜨고선.) 나는 부대에 거의 구제되듯 들어왔다. ... 말이 이상한가? 그러나, 사실이다. (어쩌면 내뱉는 그 숨은 헛웃음을 닮았다.) 내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은 적이 있나. (한 손으로 다른 손목을 매만졌다.)
 
아도라:(이런 분위기가 참 어색했다. 한 쪽 목숨이 끝나갈 때쯤이 되어서야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라니. 끙, 짧게 앓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들은 적 없습니다. ...해 주시려고 그럽니까? (어제는 상관 취급 따윈 못 해 먹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건만, 그래도 지금은 꼬박 예우를 갖췄다. 마지막이니까.)
 
로시오:... 어제는 상관 취급 따윈 못 해먹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만. (눈썹을 까딱였다. 중얼거리듯 말하곤, 뻐근한 뒷목을 주물렀다.) 자살하려고 했다. 도저히 살 의지가 나지 않아서 말이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악을 쓰며 이런 세계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지. ... 힘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손목을 긋고 기다렸다. 피가 빠져나와 죽든, 굶어 죽든. ...
... 그러다 선배를 만났다, 이젠 계시지 않지만 말이다. (그 말은 지극히 평이했다.)
 
아도라:(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생각을 읽는 능력도 있으셨습니까?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푸핫, 웃었다. 그러다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 다시금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많지 않습니까, 선배와 같은 선택을 하는 이들이. (눈을 내리깔았다. 얼마 간 침묵이 이어졌다. 현실을 부정하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일이 너무나 만연해진 이 상황이, 그저 참담했을 뿐이었다.) ...은인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자세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로시오:그런 능력은 없다. (퍽 진지하게 답하지만 한 쪽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린 것이, 답지 않게 농담이라도 치는 모양이었다.) ... 아무튼, 선배가 나를 부대에 데려왔다. 목적을 잃은 내게 목적을 부여해줬지. ... (눈썹을 까딱였다.) 내가 귀관에게 목적을 물었던 까닭은, 인간이라면, 인간은. ... 목적 없이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이 있더라도 불타 사라지는 자들이 많다. 그의 눈이 허공을 되짚듯 흐려졌다.)
나는 대의를 위해 살아간다. 귀관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나.
 
아도라:대의, 말입니까.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큰 뜻, …큰 뜻이라. 당연하게 이루어야 하는 것.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당연하게도 이루기 어려운 것. 모두가 살기 급급한 나머지, 쉽사리 남을 배신하고 제 몫을 먼저 챙기는 세계에서 당신은 대의를 말한다.) ...선배는 아직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직도 선배의 목적은 밝게 타오르고 있는 겁니까? (그제야 내리깔았던 눈을 들고 너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야 내가 아는 당신 같다.)
 
로시오:(당신은 언제나 빛이 났다. 보라, 지금도 오색찬란한 빛이 당신을 감싸고 있지 않나. ... 노란 눈을 마주본다. 이제서야.) ... 우리가 지나왔던 여정 중, 폐혀가 된 연구실을 지나왔던 때가 있었다. 거기서 한 문서를 읽었었는데, 그 후 꿈에서. ... 아름다운 남자가 나와, 거래를 제안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이 바이러스를 치료할 치료제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말이지.
네가 걸렸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스물 네 시간이 지난 후 좀비로 변하지만 치료제의 공식을 완성하기 위해 그가 시간을 백 시간으로 늘려주었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은 한 치의 흔들림 없었다.) 너를 염두에 두었음에도 거래를 받아들인 나를 원망하나.
 
아도라:(당신이 쏟아내는 모든 말을 잠잠히 들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눈물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금, 이 모든 짐을 홀로 진 당신이 안쓰러워졌을 뿐이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는 당신 또한 연약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 모든 일을 홀로 감당하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이번에는 목 부근이 아닌 머리로 향했다. 장갑을 낀 손이 헝클어진 까만 머리카락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예전에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말입니다. 학교에서 상을 타 오거나 무언가 올바른 일을 하면 이렇게 칭찬해 주시고는 하셨습니다. 고생 많았다고, 잘했다고. 선배도 고생 많았습니다. 모두를 위한 일이라면야, 저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한숨을 내쉬곤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도 그렇지, 저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 주셨으면 어디가 덧납니까? 제가 화나는 건, 선배가 절 두고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아니라 지금껏 제게 상의 한 번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건 정말 너무하셨습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말은 이리 해도, 정말 괜찮을리가 없었다. 그간 긴 여정을 함께해 온 사람인데. 웃음기를 머금은 눈매에 열이 올랐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차 올라 떨어질 것만 같아, 그래서 괜히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힐 것만 같아 손을 떼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눈을 자꾸만 깜빡였다.) ...그래서, (숨을 삼켰다.) 얼마나 남으신 건데요? (차리던 격식은 도로 사라졌다.)
 
로시오:(당신이 그런 사람인 것을 알았다. 당신은 대다수의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죽음을 가정했을 때 당신은 끝내 살아갈 수 있는, 타오를 수 있는 사람임을 알았기에 제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또한, 당신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당신이,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희생, 대의, ... 애정. 상관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눈을 감는 것으로 묵인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로시오는 당신을 애정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자 했다. 당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길 바랐다. ... 로시오는 자신의 목적이 대의라 이야기했지만, 이제 대의만은 아니게 되었다. 눈을 감은 채 푸슬 웃음지었다.) 공식이 완성되기 전까지, 발설하지 않는 것도 조건 중의 하나였다. (손이 떼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을 뜬다. 붉음이 스며든 당신의 눈가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제 손목시계로 내렸다.) - 16시간이 남았군. 캘버리까진 하룻밤만 걸어 가면 될 거다. 최대한 빨리 가고 싶지만, 내가 휴식이 필요할 것 같다. ... (해가 지면 출발해야겠지. 중얼거렸다.)
 
아도라:(결국 눈물이 새어 나왔다. 당신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한들, 그게 예견된 죽음에 애도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못 되었다. 태생적으로 정이 많았다. 쉽게 사람을 믿고, 쉽게 사람을 사랑했다. 삶에 큰 의미로 박힌 당신이 한순간에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면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16시간. 못이 뽑혀 나간 구멍을 메우기에는 지극히도 짧은 시간이었다.) ... (입을 틀어막고 한참 동안 숨을 죽여 울다가 결국엔 눈가를 훔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물기 어린 목소리였다.) ...오래 걸었잖아요, 우리. 조금만 쉬었다 가요. (안전지대에 도착하면 감염자인 당신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결과였다.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조금만 더,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쉬어 가자는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하고는 저 또한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로시오:(단상에 몸을 다시 기댔다. 눈을 감았다. ... 짤막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 ... 귀관, 귀관은. ...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노래를 기억하나? (더듬더듬 띄어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공간이 정적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아도라:(당신의 목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고개를 틀어 눈을 감은 당신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먼 옛날의 기억을 더듬는 대신, 당신이 불러주었던 그 멜로디만을 떠올려낸다. 캐비닛 속 좁은 어둠에 갇혀 있을 때 들은 그 노래를 이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좋은 꿈 꾸길. (이내 입술을 달싹여 나지막이 한 음 한 음을 흘렸다.)
 
고요한 예배당 안은 당신의 목소리로 가득 찹니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오후의 나른한 햇빛으로 진 십자가의 그림자가 예배당에 길게 깔립니다.
 
좋은 꿈 꾸라는 당신의 인사 때문일까요, 아니면 마침내 노트를 완성해서 일까요.
 
단상에 기대 잠든 로시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보입니다. ...
 
당신과 로시오가 함께 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은 앞으로 16시간.
 
내일 당신이 잠에 들 땐 로시오가 없이 혼자 잠들어야 하겠죠.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라지만. ...
 
그러지 않을 것을 또한 알았습니다.
 
... ...
 
언제 잠이 든걸까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당신을 내려다보는 로시오입니다.
 
해가 지는 시간인지 아직 잠이 덜 깨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주변은 온통 붉은 빛으로 일렁입니다.
 
로시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군. (눈썹을 까딱이다 작게 웃었다.) 곧 출발하지.
 
그렇게 말하며 당신을 바라보는 로시오의 눈시울마저도 붉게 보이는 것은 노을 탓이겠죠.
 
당신과 로시오는 끼니를 해결하고 함께 걷는 마지막 여정을 떠났습니다.
 
밤이 되고, 별이 하나 둘 씩 떠오릅니다.
 
자동차나 건물의 불빛도, 공장의 매연도 없는 밤하늘은 맑고 선명합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 보면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은 매우 아름다워요.
 
안전지대가 정말로 가까워졌는지, 이따금 지나치는 표지판들은 캘버리 교도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둘은 언제나처럼 한참을 걸었습니다.
 
어떤 얘기를 나누었나요?
 
우리는 무척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계가 이렇게 되기 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지냈으며, 어떤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손목 시계를 들여다 본 로시오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로시오:... 저길 봐보겠나. (손가락을 가르켰다.)
 
아도라:(네 손짓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로시오:... 도착했다.
 
6월 13일 6AM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지평선에선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있었습니다.
 
그 반대편으로는 캘버리 교도소, 당신들의 목적지인 안전지대가 보입니다.
 
이 긴긴 여정의 끝이 보입니다.
 
작게만 보이던 캘버리는 이제 꽤나 시야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이윽고 캘버리에 완전히 도달하기 전.
 
로시오는 걸음을 멈춥니다.
 
저 먼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밤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해가 뜨고, 주변이 차츰 따듯한 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문득 바라봅니다.
 
동이 트고 있습니다. ...
 
당신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헤어져야 할 때구나.
 
아직 100시간이 채 채워지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로시오가 당신을 돌아봅니다.
 
로시오:한 시간 정도 남았군. ... 들어가겠나?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말했다.)
 
아도라:(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그리던 안전지대인데도…….) …선배는, 어디로 가실 건데요?
 
로시오:... 궁금한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짐작하고 있지 않겠나.
 
아도라:...30분만 더, 같이 있는 것도 안 되는 건가요. (가능할리가. 말을 마친 후 조소가 절로 새어나왔다.)
 
로시오:(그에 로시오는 마냥 선하게 웃었다. 어쩌면 폭력과 절망에 익숙해진 군인의 얼굴이 아닌, 멸망 전의 세계를 살았던 평범한 청년의 모습만 같이 웃었다. 입술을 떼었으나 음성이 흘러나온 것은 몇 초 뒤의 일이었다.) ─아침 해가 뜨는 것을 함께 보겠나.
 
아도라:(찬연하게 웃는 당신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곧 함께 미소지었다. 웃으면서 배웅하자.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들어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름답네요, 그렇죠.
 
로시오:(그러나 기어이 동은 튼다. 영영 흐르지 않았으면 좋았을 시간은, 역시나 끝이 있는 법이기에. 로시오는 어떤 낙심도 없이 품 안의 노트를 꺼내 당신에게 쥐어줄 뿐이었다.) 하사, 아도라 에버렛.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겠나.
 
아도라:(노트를 건네받고는 결연한 얼굴로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사, 에버렛. 마지막 명, 받들겠습니다.
 
로시오:(뒷짐을 지고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걷다 뒤를 돌아 다시 한 걸음, 두 걸음. ... 배회하던 발걸음이 멎는다. 시선은 여전히 동이 트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노트를 읽고 싶다면 읽어도 좋다. 대신, 쉘터 안의 사람들에게 꼭 치료제의 공식을 전달하도록 한다.
 
아도라:... (숨을 들이켰다. 입을 다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노트를 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울지 마. 웃으면서 배웅하자, 웃으면서…….)
 
로시오:쉘터에 남은 민간인을 지켜라. 귀군이 여전히 민간자치대 소속임을 기억해라. ... 기억할 수 있겠나.
 
아도라:기억, 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웃고 있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입가가 떨려오는 와중에도 입꼬리만은 간신히 올렸다. 그사이 해는 완전히 떠올라, 당신의 얼굴에 하이얀 빛을 내리쬔다. 대의. 그 말을 읊조렸던 과거의 당신이 겹쳐 보였다. 마지막 모습마저도 더없이 찬란한 당신을 보며 한결 마음이 놓였던가.) 상관에게 등을 보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먼저 떠나십시오.
 
로시오:... 마지막으로 하나, 이야기해도 되겠는가.
 
아도라:...네, 말씀하십시오.
 
로시오:언제나 그대가 밝게 타오르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라.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직속 후배라고 당신을 소개받았던 그 순간, 서툰 경례,) 그대가 말했던 목적을 잊지 마라. (흔들리던 눈동자,) 새롭게 만들 주변인들을 기어코 지켜낼 수 있는 사람임을 명심해라, 그러니, (당신의 웃음. ...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끝까지 살아남아라.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
 
아도라:(이제는 한결 가벼워 보이는 등을 응시하며 처음, 첫 만남, 그 때처럼 경례했다. 이제는 서툰 기색 하나 없이 완전히 각이 잡힌 모양새다. 아아, 간신히 참아낸 줄 알았건만. 당신이 뒤를 돌자마자 쏟아져 나온 눈물이 온 얼굴을 범람했다.) ...치료제를 완성하면 선배님부터 구하러 가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당신의 뒷모습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펴 가십시오.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던 것도 같으나, 정말 그 말을 내뱉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당신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미동도 않고 한참이나 그리 서 있었다. 정말, 한참이나.)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면, 보이지 않으면.
 
그제서야 당신은 등을 돌려 안전지대를 향해 달음박질했죠.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숨을 몰아쉬며 눈 앞의 까마득히 높은 콘크리트 벽을 올려다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높은 철문은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한 발 한 발, 쉘터의 안으로 걸음합니다.
 
노트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
 
쉘터에 남은 민간인을 지킬 것, 본인이 여전히 민간자치대 소속의 군인임을 기억할 것.
 
언제나 자신이, 밝게 타오르는 사람임을 잊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을 것.
 
문 안으로 완전히 몸을 들이고, 철문이 닫히면,
 
등 뒤에서 타앙, 하고 가슴을 찢는 날카로운 총성이 들려옵니다.
 
...
 
비로소 당신은 안전지대에 도달했습니다.
 
수많은 생존자들이 당신을 반겼지만 당신 곁에 있는 로시오는 없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것은 부대에서 낙오된 이후로 처음이건만,
 
당신은 그 어느 때에도 느낀 적 없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당신이 안전지대에 합류하고 수 주가 지났습니다.
 
연합정부는 노트의 내용이 치료제를 만드는 공식이라는 것을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몇몇 학자들이 이 공식을 본 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었죠.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노트의 공식을 사용한 실험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철문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당신은 다른 자치대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치료제의 이름은 노트의 작성자인 로시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소리를요.
 
그 과정 동안 수십개의 사본이 만들어지고 오늘에야 비로소 당신의 손에 노트의 원본이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겨를이 없어서 펼쳐보지도 못했던 노트는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 처음보다 더욱 낡고 너덜거립니다.
 
이제야 로시오가 남긴 노트를 펼쳐보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노트를 넘기면 당신이 알아볼 수 있는 모국어로 적힌 것 외에도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등. ...
 
다양한 언어로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드는 공식이 빼곡하게 적혀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노트의 마지막 장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맨 마지막 장에 적힌 글귀는...
 
END 1. 이것은 모두 귀관을 위한 선택이다.
 
아도라 생환, 로시오 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