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포엣] 인어공주 AU
최남단, 깎아내린 절벽 위에 우뚝 선 성은 등대의 역할을 수행하기엔 너무도 어두웠고, 그렇다 하여 왕궁에 속하기엔…. 이질적일만치 떨어져 있었다.
올리비아 나힐 하워드는 왕국 애틀란타의 절벽 위 성의 공주公主가 되었다. 세월이 달려나간 성벽 자리엔 담쟁이 넝쿨이 웃자라 있었고 이따금 멋들어진 균열을 선보였다. 그 모든 흔적은 바람 불면 날아갈 그의 위태로운 직위를 상기하게 했다.
* * *
올리비아는 본디 평민이었다. 그의 어미가 왕족의 씨를 품었고 ‘사랑’의 증표를 강탈하고서 죽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없었다, …아니, 한 가지만큼은 ‘볼 일’ 있는 사람이기야 했다.
바로 그 눈.
적요하게 타오르는 화마를 새겨박은 그 눈 하나만큼은 왕국의 어떤 보물이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고 샨은 확신했다. 고요하고 냉담한 시선에 홀리면 이미 심장을 빼앗긴 뒤. 그렇게 마을에서 지독한 열병을 앓다 세상을 등진 청년들이 몇이던가. 두어 명만 더 차디찬 바다에 몸을 던졌더라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녀’라며 꽁꽁 묶여 화형당할 미래를, 올리비아는 모르지 않았다.
병든 어미는 죽기 전 그런 말을 남겼더랜다.
‘사랑을 믿지 말고 사람을 믿지 말렴.’
‘자기 자신조차 믿지 말아야 이 잔인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단다.’
말라붙어 뼈마디가 다 보이는 손으로 넘겨준 것은 한 금 목걸이였다. 아마도 불장난과 같았을 과거의 한 밤에 사랑의 증표로서 증명의 수단으로서 앗아온 것이겠지. 하나 올리비아는 이것을 들고 마을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대상을 찾겠다는-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할 생각이 없었다.
마을을 떠나 굳이 외진 곳에 거처를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였건만,
운명이란 것이 뭔지 참 질기기도 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다.
성난 구름은 비와 번개를 쏟아내고, 세찬 바람을 따라 몸집을 부풀린 파도는 바위에 계속해 몸을 내던졌다. 부서지는 잔해는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바다에 잠겨든다. 그런 죽음의 순환이 계속되는 와중 저 멀리, 침몰해가는 한 배가 있었다.
금 목걸이의 주인이 시시각각으로 익사해가는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그것을 보고자 마녀는 숲을 나와 바닷가를 디디고 섰다.
새삼스러운 감정이 들진 않았다. 도리어 본인이 왜, 이런 험상궂은 날에 손수 고초를 겪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어쩌면 혈연이라는 단어엔 마법같은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미가 남긴 유언과 본인의 신념을 따라 사람과 사랑을 믿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문득. 성난 파도가 저마다 몸을 부딪혀 스러지는 바위 무더기 위로 어떤 것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바다의 헤묵은 어둠을 그대로 그러쥐고 있는 것. 올리비아는 단번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쉬이 직감했다.
심해深海.
바다의 것.
“…배가 난파되어가니, 목숨을 구가하는 자들이 수두룩할 터인데….”
올리비아의 고개가 살며시 치켜올랐다. 붉고도 얼깃 푸른 시선이 그를 향했다.
“이곳에 올라온 이유는 무엇인가? 심해여.”
창백한-푸른 피부. 살갗을 대신 뒤덮은 푸른 비늘. 칼집처럼 파여 있는 목의 아가미. 지느러미. 결코 인간일 수 없는 것이 입을 열었다.
“인간은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도 남쪽 해역의 물고기들은 시체를 양분 삼아 살아가요. 터전이 남의 손에 더럽혀지는 걸 좋아할 자가 누가 있겠냐만은….”
애틀란타는 바다 건너편의 적국과 3년간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니 전장터는 바다 그 자체. 무수한 피가 떨어졌겠고, 무수한 시체더미가 가라앉았겠다.
“그냥….”
그렇다 하여 그것이 바다의 주인은 아니었으나,
“저희와 비슷한 인간이 있는 것 같아 와보았는데.”
바다의 의지를 전하기엔 충분한 존재라.
“…….”
물고기의 하반신마냥 지느머리 달린 꼬리였을, 뿐인, 것은 소리 없이 갈라져 다리의 형상을 가진다. 끝끝내 하얀 발가락이 바위를 디디고 젖은 모래알 사이를 파고들 때. 그를 바라보던 올리비아의 시선은 심해에서 뭍으로 빠져나온 그것의 눈을 마주했다.
“당신의 그 눈이….”
하나 본질적으로 자신과 다른 존재에게 이끌리고 만 것은 이 쪽이었나보다. 살며시 벌어진 입술이나 수축된 동공 등을 바라보다보면.
“당신의 그 눈이….”
‘마을 청년들과 하나 다를 것 없군.’
─그리 생각하게 되는 것을.
올리비아의 입꼬리가 무상하게 올라갔다. 냉담하고도 고요하게 입을 열어 말한다.
“올리비아.”
어느덧 그의 하얀 발엔 모래 알갱이가 뒤엉켜 달라붙어 있었다. 반 걸음을 앞에 두고 선 그것은 천천히 올리비아의 손을 붙잡았고, 제 입가로 끌어당겨 입술을 내리눌렀다.
“올리비아….”
과연 차갑다. 죽은 것에 가깝도록 낮은 체온에 올리비아는 순간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지만 답은 곧장 나왔다.
바다의 주인은 아니나 ‘의지’의 대변자. 그 자체로서 가지는 권능.
“샨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제 올리비아 나힐 세르니타는 올리비아 나힐-하워드로 설 것이다. 바다와 뭍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것을 통해 국왕을 구할 테고, 그 대가로 절벽 위 성을 얻어낼 것이다.
하나 그것은 시작이지 결코 결과가 아니리라.
바다라는 수단이, 이제 제게 쥐어졌으니.
* * *
더는 억압받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