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커뮤니티

[헤니언] 울타리

여우비야 2023. 12. 12. 22:54

 

 

 "형. 코피 나."

 "…어,"

 당황 섞인 숨을 내뱉은 헤니언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다, 뒤늦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여기. 휴지를 뽑아 건넨 동생, 베일이 얼굴을 애매하게 찌푸렸다. 떨어지는 눈썹, 변화 없는 입매. 처음 본 사람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곧잘 몰랐지만, 적어도 베일을 몇 년 넘게 보아온 헤니언은 그것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표정'이라는 걸 쉽게 알았다.

 다행히 귀한 책 위로 피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으나, 축축한 감촉이 손목을 타고 흐르는 느낌은 여전히 소름이 끼쳤다. 으, 헤니언은 절로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를 바라보던 베일은 눈을 꿈뻑이다, 끝내 헤니언의 앞에서 책을 치웠다. 도와줘서 고마워. 또박또박 말하는 음성이 단호하기까지 했다.

 "나머진 내가 할 테니까 형은 들어가서 쉬어."

 헤니언보다 두 살 어린 베일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로지니아 보육원에 마법사는 헤니언, 단 한 명뿐이었지.

 로지니아는 사정이 각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타 보육원보다 좋은 곳도 아니었다. 배는 좀 곯아도 막 굶진 않았다. 감기의 정도가 심하면 약을 준다. 지내는 아이들은 헤니언을 포함해 열다섯 명 정도. 헤니언보다 나이가 많았던 아이들은 입양되거나 지독한 감기에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그런 사정들로, 아이들 중에선 헤니언이 제일 나이가 많았다.

 언젠가 시온이 그리 말했었나.

 '춥고, 돌보지도 않고 방관 교육이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헤니언도 자신이 그 숱한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던 이유를 '마법'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마법이 없었다면, 그가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어린 날 독한 감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영영 잠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이나 흔한 죽음이었다.

…흔한 죽음.

 고개를 들어 올리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눈에 담긴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는 구절이 적혀 있었고, 헤니언은 그 후로 별을 올려다볼 때마다 겨울을 넘기지 못했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노력했으나. 세상에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던 모양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얼굴도 이름도 잊혀, 이제는 친구가 어느 별로 박혔는지조차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헤니언은 문득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관둘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천성이었다. 밤마다, 무수히, 그 동작을 반복하도록 헤니언 하워드는 태어난 것이다. 얼굴이며 이름, 별의 위치까지 기억하지 못하면서 몇 번이고 안경을 고쳐 써가며 별을 헤아리다 목이 잠기고, 열이 오르고.

 "…그 문제 아직 네가 풀긴 어려울 텐데."

 피가 섞이지도 않은 동생들을 모른 척할 수 없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연에서, 약한 것은 도태한다. 여린 줄기는 강풍에 꺾이며 마른 꽃잎은 햇볕에도 바스러진다. 개중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수없이 닥쳐올 겨울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겨우 멎은 코피에 헤니언이 고개를 바로 했다. 비린내가 숨을 쉴 때마다 입천장을 간지럽혔다. 그렇다고 웃지 못하는 건 또 아니라서. 헤니언이 베일을 바라봤다. 여전히 언뜻 굳은 얼굴.

 "그럼 그것까지만 봐주고 형은 갈게. 다른 애들은 네가 봐줄 수 있지?"

 그러나 되짚어보자. 헤니언 하워드는 어떻게 마법사로 태어났을까? 헤니언 하워드의 피 섞이지 않은 동생들은 왜 마법사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결국 고개를 끄덕인 베일이 다시 연필을 잡고 책에 코를 박을 듯 고개를 숙였다. 헤니언은 멈췄던 부분부터 차근차근, 다시금 문제를 읊어준다. 연필 심이 종이 위로 미끄러져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집중한 베일의 콧잔등이 이따금 집중을 표하듯 찌풀거렸다. 그것을 보다 보면 헤니언은 하염없이 웃고 말았다.

 이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헤니언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친애하는 동급생인 낸시 로뎀은 태어났을 때부터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 그 무게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 말했다. 그의 면전에서 말할 순 없었어도 헤니언 하워드는 기실 비슷한 책무감을 느끼며 살아갈 때가 있었다.

 마법사로 태어난 자신이, 마법사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가지는 책임.

 그것은 그들이 최소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헤니언이 울타리로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푸는 거야. 알겠어?"

 "응…."

 아무리 흔한 일일지라도 죽음은 아프고, 상실은 별이 되어 눈 안에 담기니까.

 지난해 겨울, 유행하던 감기에 걸려 3일을 앓아눕다 간신히 기력을 되찾은 베일의 새까만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고개를 끄덕이는 베일의 머리를 꾹 누르고 이리저리 쓰담은 헤니언이 환하게 웃었다.

 여전히 별이 된 아이들은 많았다. 일상이나 다름없게 된 죽음은 심지어 헤니언에게도, 이제 큰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겨울이 혹독해질수록 헤니언은 호그와트를 그리워했고, 동시에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살아남은 생이, 분명히 이곳에 있었으므로.

 '제가……. 당신에 관하여 묻는 것은. 실례인가요?'

 '여름에도 꽃이 피니까, 거기서 꽃 보면 내 생각 해줘.'

 '난…. 절대로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테니까. 믿어도 좋아.'

 생존-사명-을 향해 달려 나가는 일은 버겁지 않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남들을 돕는 일도. 깨져가는 것처럼 보이고 미련한 일처럼 보여도 헤니언은 울타리로 된 제 몸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정말 깨질 때까지 부딪히지는 마.'

 울타리는 헤니언, 하나가 아니니까.

 

 아무리 해를 거듭해도 겨울이 될 때마다 헤니언은 밤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 생명을 헤아리며 별의 수를 셀 것이며, 동시에 날 선 바람에도 자신을 등 뒤에서 받쳐주는 인연을 떠올릴 것이다.

 커다란 숲에 둘러싸인 학교와 그 안에서 벌어졌던 화려한 축제. 
 학교 밖에서 보는 이들은, 우리들을 일컬어 ‘화원의 아이들’ 이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화원에의 생활은 따스하고 즐겁다. 가끔 좋은 꿈을 꿀 때면 헤니언은 언제나 화원 속, 햇볕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곳은 온실 바깥 세찬 현동의 들밭이었으므로. 헤니언은 고향에 돌아가길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삶을 허락한 고향 세상에, 자신에게 기회를 허락한 화원 너머 세상에 감사를 표하며.

 

 헤니언 하워드는 오늘도 사명生存에 치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