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EAR&MARPASHI/썰&연성

[아이피어] 저녁 식사

여우비야 2022. 9. 3. 23:38





"오늘은 어째... 식욕이 없나요?"

통유리로 된 창 너머에는 2구역의 야경이 비춰지고 있었다. 응당 '벽' 위의 높이로 건물이 세워지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니 벽 너머를 볼 수는 없었더래도, 자리에 있는 둘 중 누구도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으니.

2구역에서 제일 값비싼 레스토랑은 관리자, 데이모스의 청으로 인해 싹 비워진 상태였다. 은은한 클래식 배경음 가운데 여자는 느리게 칼질하던 손을 멈추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2구역 히어로 기관의 팀장을 맡고 있는 남자.

딜라이트. 그가 순진하게 눈을 뜨다 살풋 웃음 지었다. 눈이 마주친 것 때문에 그런가? 하여간 순박한 면이 있다니까. 데이모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뇨, 관리자 님과 함께 식사를 하니... 좋아서요."

"조금이라도 나랑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 ...그래도 너무 느리게 먹으면 음식이 식잖아요."

그와 함께 남자의 입 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포크의 날 부분. ...그에 찍힌 스테이크의 한 조각. 핏물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지지 않은 채 달려 있었다. 너머로 여자가 눈꼬리를 휘더니.

"입 벌려야지."

그에 남자는 지체할 것 없이 얌전히 고기를 받아 먹는다.

관리자는 그가 미성년이던 시절 그에게 편한 말투를 쓰며 곧잘 머리를 쓰담아주고, 무릎 위에 그를 앉혀주곤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그런 것들을 받을 기회는 싸그리 날아가 버렸다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튀어나오는 습관같은 언어가 있었다.

딜라이트는 일견 황홀한 눈빛을 띄며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입맛을 다시듯 고기를 꿀꺽, 목 뒤로 넘기고서도 그는 입 안이 말라 입술을 달싹여야 했다.

햇빛을 받을 때에도 검푸른 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은 주홍빛 조명 아래 평상시와 다른 색으로 빛나고, 우아하게 고기를 썰어 먹는 몸짓은 과연 어떤지, 음식을 오물거리는 저 입술을 바라보면,

그는.

"딜라이트."

호명에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태연히 웃으며 멈춰있던 손을 움직여 식사를 재개했다. 고기를 자르고 입 안에 넣고, 일련의 과정 가운데 그의 눈동자는 지독한 열망을 눌러담은 채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뒤 데이모스는 높은 확률로 그를 떠날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만날 때까지 못해도 며칠은 걸릴 테고, 그 시간동안 그는 계속해서 이 시간을 곱씹으며 살아가겠지.

"해서, 요즘 일은 할 만 한가요?"

"...무리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과할 정도로 쉬운 일 투성이라 문제인 수준이다. 전례 없던 S 랭크를 받은 그의 이능력은, 현재 이 나라의 어떤 이능력자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므로.

그러기에 관리자가 직접 나서 그를 통제하는 중이지 않는가, 지금처럼.

"제가 했던 말은 잘 기억하고, 지키고 있지요?"

아직까진 일주일에 한 번 관리자를 만나는 정도로 그의 목줄이 부숴지지 않고 있었다지만, 과연 이 통제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데이모스가 상정하지 않은 수준까지 그의 마음이나 욕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기를 부풀리고만 있었다.

"예. ...'판도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것들을 조용히 처리시킬 것, 시민의 안녕과 판도라의 평화를 유지하고...."

무엇보다 관리자, 데이모스를, 당신을,

이스피어를 지킬 것.

뒷말을 차마 내뱉진 못하였으나 딜라이트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휘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식사가 끝난다. 데이모스는 시간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고 냅킨으로 입술을 닦으며 그에게 눈짓했다. 딜라이트는 익숙하게 그의 곁으로 가 데이모스가 벗어둔 외투를 들어, 일어난 그의 등 뒤로 둘러준 뒤 뒤를 따랐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둘만 남은 공간은 지독히도 적막할 듯 했다.

"...그러고보면, 관리자 님."

스물스물 움직인 그가 관리자를 구석으로 몰듯 움직이지만 않았더라면.

새하얀 조명 아래 그로 인한 그림자가 관리자로 진다. 동요 없이 웃는 관리자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다, 손을 뻗어 딜라이트의 뺨을 매만졌다.

"바라는 것이 있어보이네요."

그 말을 곧장 증명하기라도 하듯 방긋 웃은 그는 허리를 숙여 고개를 가까이 한다. 중력으로 인해 살며시 쏟아지는 머리카락들이 부딪히기 시작하는 거리.

"저번보다 더 큰 상은 없는 건가요?"

데이모스는 딴청이라도 부리듯 천천히 눈을 굴렸다. 상이라. 그도 나름대로 S 랭크를 지닌 고위험군 이능력자를 통제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자고로 목줄이라 하면 너무 풀어주어도 방만한 것을 허락해주고, 너무 죄어도 일정한 분노를 터트리게 만드는 법이었으니.

뺨을 매만지던 손가락 중 하나가 느릿하게 턱을 타고 흘러내려 목울대를 짚고, 더 아래로 내려간다.

그의 눈에 남자의 풀린 옷깃이 보였다. 저번에는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워 놓았었는데.

"갈수록... 욕심도 많아지고.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지?"

데이모스의 중얼거림에 남자는 애교라도 부리듯 여자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살짝 부비적거린다. 느린 숨소리가 터져나왔을까.

"더 곁에 있어주세요, 데이모스 님. ...더 곁에 있어주시고, 예뻐해주시고, 예전처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시고...."

어쩌면 데이모스는 남자의 은유적인 경고를 듣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더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면,

"그러신다면 계속 착하게 있을 수 있어요, 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웃는 여자의 등 뒤로 문득 섬뜩한, 차가운 뭔가가 스쳐 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감정을 허용받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기에 말끔히 무시했을 뿐이었지만.

결국엔 쇄골을 매만지던 손가락이 그의 옷깃을 붙잡는다. 잡아당긴다.

희열이며 황홀감으로 뒤섞인 은색 눈동자가 눈꺼풀에 감기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입술이 맞붙고, 온도 다른 숨결이 뒤엉키며 단숨에 엘리베이터 안은 노골적인 한쪽의 욕망으로 가득 찬다.



거친 숨결, 어느덧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 사이로 여자가 나직히 속삭인다.

"그러면, 오늘은 당신 거처로 갈까요?"

데이모스가 없는 한 딜라이트에겐 판도라의 어느 공간도 집이라 부를 수 없었던 까닭에. 욕망이 드글거리는 숨을 참지 않았던 그는 행복하게 웃으며 여자에게 다시금 입을 맞춘다.

데이모스가 중얼거렸다.

"하여간, 응석만 너무 심해져선...."

탈이라니깐.

그러나 데이모스는 느슨해지는 통제의 줄을 여즉,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