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썰&연성

로넨 리하트 이능력 군부물 썰

여우비야 2019. 10. 2. 14:49

 

 

 로넨 리하트는 1군에서 가장 큰 골칫덩이로 유명했다.

 

 *

 

 입을 열어 숨을 내뱉을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손 끝에서부터 어깨 언저리까지 타고 올라온 서릿발에 신경과 근육이 둔해진 지는 한참이다. 힘 주어 팔을 움직이자 얼음이 쩌적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하나 둘 잃어버렸던 감각이 길을 되찾아 돌아온다. 로넨은 그 감각의 회귀를 못내 애정했는데, 그 때가 되면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얼음 덩어리들과 곱게 정지된 괴생명체들, 그리고 자신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과 유리되어 자신 혼자 남아있는 기분은 너무 이상적인 것이라 끔찍하게도 끝장나는 기분이었다.

 그 한 가운데서 로넨 리하트는 다른 괴생명체와 같이 얼어붙는 상상을 수 없이 해 보았다.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았던 이야기니, 당신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일은 다 끝났어?"

 

 처음부터 감출 의지 없던 인기척이었기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저 혼자였기 때문에 즐길 수 있던 감각을 제 손으로 박탈하고 무리 사이로 돌아가야 한단 사실이 한순간 머리 위에 찬 물을 끼얹은 듯 했다. 로넨은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얼어붙었던 발을 움직여 저를 부른 그에게로 다가갔다. 뼈와 근육과 신경과 혈관과 피부 사이사이에 성에가 낀 것 같았다. 아마 감정이란 추상적인 것들도 형태화 할 수 있었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 모든 감각이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로넨은 정신을 차렸다.

 

 "이것 말고 배정된 임무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친 곳은 없고? 특이 사항은 있니?"

 "없습니다."

 "그래? ... 그건 그렇고, 오늘도 화려하게 저질러놨구나."

 

 '놨구나'? 로넨은 속으로 코웃음쳤다. 그가 건설한 얼음 왕국을 관찰하는 그의 눈빛 끝에서는 연한 탄내가 났다. 저 금색의 눈. 그가 내리치는 내리치는 번개는 금색 눈을 똑닮은 색이었다. 그가 말하는 화려함을 기준 삼는다면 그 또한 어지간히 화려하게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었다.

 

 "... 이만 저는 복귀하겠습니다."

 "어, 그래. ... 나는 여기 좀 정리하고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서 수속 절차 좀 대신 밟아줘."

 "군대장의 역할을 일개 군대원이 대신 질 순 없습니다."

 "고지식하긴,"

 "복귀하겠습니다."

 

 로넨은 망설임 없이 발을 옮겼다. 그가 속한 1군은 대對 괴생명체를 목적으로 하는 이능력 군 중에서도 특별한 군에 속했다. 군을 상징하는 메인 컬러는 노랑. 오로지 괴생명체의 살상殺傷만을 목적으로 하는 1군은 다른 군에 비해 적은 수를 가졌지만, 모든 군을 통틀어 최강의 화력을 자랑했다. 임무를 수행할 때 최소 3인 조로 배정되는 다른 군과 달리 개인 개인에게 각 포인트가 배정되는 것도 같은 이치였다.

 무언가를 보호하고 지키기보단 죽이고 다치게 하는 것에 익숙한 이異능력. 적용되는 범위가 너무나 넓어 아군조차도 해칠 우려가 있는, 혹은 능력이 제어를 벗어나 자신마저도 상해할 수 있는 우려가 있는 병사들. 언뜻 타 군에서는 부적응자 모임이라고도 조롱했던가. 정작 군 합동 임무 때에는 그림자마저도 밟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려있는 주제에. 로넨은 복귀하며 무덤덤히 생각했다.

 그렇게 만인이 기피를 받았던 1군의 인식이 바뀌어지게 된 것은 그가 군에 입대하기 1-2년 전 부터였다. 새롭게 1군의 군대장으로 임명받게 된 카이저 케이 갤럭시, 그를 통해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로넨의 아주 주관적인 관점에 한해 아주 별난 인물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같은 포인트에서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단순히 1군이라는 이름에 묶여 생활했을 뿐인 1군은 개인적인 성향이 몹시도 두드러지는 군이었다. 하지만 새로 군대장의 타이틀을 가지게 된 카이저는 1군의 개개인들을 '1군'이라는 단체로 묶기 시작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한해 협동이란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철옹성같던 개개인의 1군이 변해갔다. 이미 1군에 입대가 예정되었던 로넨 리하트는 1군이 변화되기 시작하던 시점에 1군에 들어왔다.

 그리고 현재, 로넨은 1군의 유일한 부적응자라 지칭할 수 있었다. ... 부적응자 모임의 유일한 부적응자라. 웃기는 명칭이다. 잡념이 어지러워 로넨은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서리 졌던 임무복은 어느덧 물기만 남아있었다.

 

 막 본거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뚝. 멈춰선 로넨은 눈 앞의 상대를 무기질적으로 바라보았다. 주름 하나 없는 제복, 굳건하니 서 있는 몸체와 감정 없는 기계만 같은 표정. 로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3군에서의 컴플레인이 들어왔더구나."

 "보호 대상 구출을 우선했던 것이 무어 잘못입니까?"

 "그것은 3군의 역할이었다."

 "당장 건물이 무너지던 상황이었습니다."

 "휘말려든 대원은 팔에 동창이 났다던데."

 "치료 능력에 당장 안전 수준까지 치료되었던 것도 확인했습니다."

 "군의 존재 이유를 잊지 마라."

 "언제부터 군이 괴생명체를 죽이기만 하는 집단으로 변절되었습니까?"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집단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지."

 

 2주간 근신이다. 그 말을 마친 남성은 미련 없이 뒤돌아 갔다. 로넨은 얼얼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다 힘을 풀었다. 3군에 그만한 피해를 내고 겨우 2주간 근신이라. 권력 남용이 이미 판치는 단체에서 규칙을 지키고 말고, ... 다 무슨 소용인가.

 

 1군의 로넨 리하트가 대 괴생명체 군의 작전 참모의 아들인 것은 전 부대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그런 로넨 리하트가 보란듯 임무에서 임무보다 민간인의 생명을 우선시하거나 같은 대원을 상처입혔다거나 하는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 또한 유명했다.

 물론, 로넨은 자신의 생각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1군의 군대장 덕에 겨우 상향되었던 1군의 이미지가, 그 때문에 이전보다 더 깎여지고 있다 했더라도, 그 때문에 군대장이 개인 면담을 신청했다 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