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49회 헝거 게임
CHAPTER 1
불행으로 칭송받는 내가
불행에게 사랑받는 네게
제49회 헝거 게임
옛날 옛적에, 잿더미가 된 북미대륙 탓에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났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예전부터 지금까지-또한 앞으로도 영원무궁할 판엠이었다. 판엠은 원래 수도인 캐피톨을 중심으로 제1구역부터 제13구역까지, 총 13개의 구역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중 13구역은 캐피톨에 대항하는 반란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핵이 투하되어서, 뭐. 그렇게 지금의 판엠은 총 12개의 구역만을 가지게 되었다.
전쟁 직후로 혼란스럽기도 혼란스러웠겠다, 거기에 반란까지 진압하게 된 캐피톨은 철저한 벽을 세웠다. 평화 유지군을 각 구역에 배치해 사람들을 감시하거나 주기적으로 사라진 13구역의 존재를 들먹이며 긴장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일 년에 한 번씩. '헝거 게임'을 개최해 무력감과 공포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도록 계획했다.
헝거 게임은 12개의 구역에서 10대 소년과 10대 소녀 한 명씩을 추첨으로 뽑아 뽑히게 된 24명의 청소년을 참여자로 한다. 그리고 그 24명의 청소년 중, 오로지 한 명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도록 만든다. 살아남은 한 명은 헝거 게임의 우승자가 되어 명예와 부를,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낼 수 있다.
대체로 각 구역의 청소년들은 헝거 게임의 참여자-'조공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는 전혀 가볍지 않다. 다치게 만드는 것부터 주저하는 사람이 많은데, 만약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상대방의 목에 칼을 찔러넣은 뒤에는? 상대의 생명이 꺼진 이후로 피어오를 악몽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이스피어 틸다는, 자신이 헝거 게임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 말하는 것이 과언이 아니라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숱하게 들은 소리가 이러했다.
“이스피어, 너는 이 아비를 위해 살아주렴.”
……어머니는 저를 낳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를 떠나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더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었겠지만, 이스피어는 그것이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자신이 또래 아이들과는 결이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두려워했고, 존경했으며, 동시에 절대로 증오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아버지의 따스한 눈길을, 다정한 쓰다듬을 받길 원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왔으니 당신이 하늘과 제일 가까운 데 걸어둔 상을 받고 싶었다.
그것만이 이스피어를 이곳까지 끌어냈다. 그는 제 아래 깔려 엉엉 울고 있는 여자애를 무감하게 내려다보다 일어섰다. 햇살 같은 웃음을 머금고서 손을 내밀며 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밀, 왜 울고 그래. 꼭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그리고 그는 말을 마친 뒤에서야 자신이 밀이라 불린 소녀의 팔을 두 쪽 다 거꾸로 꺾어버린 상태였음을 깨달았다. 아차. 손을 거두고 밀의 허리를 부축해 일으켜 세워주었다. 주변은 광기를 근간 삼은 열기와 환호로 가득했기 때문에 이스피어는 밀을 제 옆에 부축하듯 세운 상태로도 개의치 않고, 손을 마구마구 흔들어주었다.
“역시 오스틴의 딸이야!”
“이번에도 2구역이 영광을 거머쥐겠지.”
“교육을 잘 했네요. 우리 딸도 저렇게 자랐으면!”
이곳은 2구역. 판엠의 군사력이 밀집된 중심지이자 캐리어 구역(Career districts)이다. 로키산맥에 있는 광산을 중심으로 여러 마을이 각기 모여있는 이곳은, 태어난 아이들에게 로마식 이름을 주로 붙였다.
“핏줄은 어디 안 간다고 했나요. 우리 자랑스러운─ 오스틴의 딸, 이스피어가 이번 49회 헝거 게임의, 제2구역 여자 조공인으로 발탁되었군요!”
그런 의미에서 이스피어는 퍽 특별한 이름을 받았다. 어린 그가 제 이름의 뜻을 물어보았을 때 오스틴은 금색 눈동자에 기꺼이 파문을 그리며 웃었더란다.
“좋습니다, 이스피어! 소감은 어떠신가요?”
사랑하는 나의 딸, 네 이름은 절망으로부터 파생되었어. 이 아비가 헝거 게임에 출전했을 때 다른 조공인들의 얼굴은 두려움이나 불행으로 가득했었거든. 자고로 그런 감정에 물들지 않는 자만이 승리하는 법이기에……. 이 아비는 살아남았지! 그래서 아빠는 너 또한 그렇게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단다.
그렇게 교육받은 청년이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두려움을 등지고 선 어떤 감정을 손가락 끝에 매단 채 고상하고 고풍스럽게 인사하면 역시나 판엠에 빠져들은 태반의 사람들은 어쩔 도리 없이 환호하고 마는 법이었다. 그는 애정 가득한 얼굴을 잘 그려내는 특기가 있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저는 여러분의 두려움을 앗아갈 거예요.”
“오. 이스피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먹은 저는 그 자체로…….”
헝거 게임의, 산 두려움이 되겠죠.
함성과 박수갈채 소리와 ‘풍요로움’을 통해 이스피어는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이로써 당부하신 말씀을 하나 더 수행했다. 스폰서 계약이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의 눈 안에 들라 하셨지. 그는 더 말하지 않고 달빛의 드레스를 붙들어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빛을 등지고 단상을 내려가는 와중 입가에는 흥얼거림이 서렸다. 판엠의 시민이라면 누구나가 다 알 법한 가사와 곡조였다.
풍요의 뿔이여, 모두를 위한 풍요의 뿔이여.
그대가 울부짖을 때 그 소리가 울리면,
그대는 절대 흔들리지 않으리.
모두를 위한 풍요의 뿔이여.
오, 캐피톨.
그대의 영광은 금강석처럼 빛난다.
지나간 암울한 날들에 찬사를.
모두를 위한 풍요의 뿔이여…….
마지막 계단을 내려온 때 그림자 뒤섞이지 않은 그의 눈이 마주한 것은 드레스를 디자인하는 데 쓰였던, 달의 한 조각이었다. 그 언젠가 이스피어가 문틈 사이로 겨우 마주했었던 자그맣고 자그마한 은색 빛과 똑 닮은 그 자태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주한 남자는 은색 눈 아래에 노란빛을 바다처럼 깔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주변을 얼룩지게 할 감정이 많아 사위가 어두웠다. 본래 어두움은 한기와 외로움 따위를 동반하는 법이라, 그는 여름날 자기 어깨를 꽈악 붙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빛은 빛이더라.
이스피어가 제일 끝에 서 있던 12구역의 청년의 어깨를 그러잡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의도치 않게 미소가 맺혀있었던 것을, 그는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 12구역이지?”
다짜고짜 벌어진 일에도 청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스피어는 그 눈 속을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떨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보네!”
“맞잖아.”
이스피어는 천천히 손을 떨어뜨렸지만, 청년의 표정은 여태 무감했다. 붙잡았던 부분을 툭툭 두드려준 이스피어는 가까워져 있던 몸을 한 걸음 떼어내며 다시금 웃었다.
“다음부턴 옷 좀 입고 다녀.”
“……이건,”
“행운의 신이 네 편이기를.”
이어지는 표정은 눈에 담지 않았다.
밤이 깊어져 감에 따라, 어차피 세상은 부조리함이며 불행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둘 눈을 감았다.
* * *
“이번 헝거 게임에서 또 다른 유명 인사죠! 이런, 코디가 시원하게 디자인해주었는데요, 그래서 하나 여쭤보도록 할까요. 캐피톨의 모든-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요!”
“아. 예, 뭐.”
“헝거 게임이 개최된 지 어언 49년째로군요. 그 모든,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헝거 게임에서 자원자가 나온 것도 처음이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네.”
“도대체 왜, 조공인으로 자원한 거죠. 아이작?”
좌중이 침묵에 잠겨 들었다. 그러나 정작 질문을 받은 당사자, 아이작 딜라이트는 무심한 얼굴로 목덜미를 한 차례 쓸어내릴 뿐이었다.
“특별한 심정이 있던 건 아닌데요.”
“그렇다면요?”
“뽑힌 애가 눈물 콧물 줄줄 쏟길래, 그냥 자원했습니다.”
“……예?”
My, my! 반 박자 뒤늦게 MC, 시저 플리커맨이 이마를 탁 치며 뒤로 넘어갈 듯 웃음을 터트렸다. 빼곡히 앉아있는 캐피톨의 시민들 또한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웃고 있지 않던 것은 아마도 12구역의 청년, 헝거 게임의 첫 자원자인 아이작이 유일했다.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사실 정말로 맺혀있지도 않았던-을 과장되게 훔쳐낸 시늉을 한 시저는 겨우 진정하곤 질문을 이어갔다.
“오, 죄송합니다. 이런 유머 감각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유머가 아니라 진심인데. 아이작이 잠자코 생각했다.
“보아하니 아이작, 당신은 무척이나 담대한 것 같아요. 이번 헝거 게임엔 스타가 많군요. 본 게임에서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네.”
“아이작. 헝거 게임이 두렵지 않나요?”
굶주린 자들의, 확률의 신이 함께하는, 행복한, 캐피톨의, 불행의. 거대한 감옥. 그런 단어들을 나열했지만, 그는 이전처럼 바로 답을 내놓았다.
“글쎄요. 뭐. ……죽기 전엔 좀 무서울 수도 있겠네요.”
그는 왼쪽 어깨를 매만지며 무대를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