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EAR&MARPASHI/썰&연성

[아이피어] 나쁜 버릇 上

여우비야 2020. 12. 18. 04:18

 

 

 "너. 그거 진짜 나쁜 버릇이야. 알아?"

 

 잡다한 소리들이 교실을 한가득 메운 가운데 청명한 웃음 소리가 내리꽂힐 즈음이면 샛노란 눈동자는 어김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곤 했다. 부정할 수 없을만치 노골적인 시선, 입맛을 다시듯 입술을 훑어내는 새빨간 혀. 탐색하듯 가늠하듯 집어삼킬듯 흉흉하게 일렁이는 시선은 그러나 단번에 가벼운 흥미로 뒤바뀌곤 했다. 하니 그 앞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그조차 어느 것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 나도 알아."

 "고칠 생각은 없어? 질리지도 않아?"

 "재밌는걸."

 "진짜 악질이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여자가 친구들과 함께 웃음을 터트렸으나 그는 표정 없이 시선을 노트 위로 돌렸다. 아이작 딜라이트에게 있어 타인이란 건 죄다 그랬다. 제 풀에 지쳐 떨어져나가는, 바라는 것만 많고 되도 않는 질투에 미쳐서 저를 속박하려 들기에 바쁘던. 그러니까.

 놀란 듯 들이키는 숨소리가 여럿. 자그마한 발걸음 끝에 드르륵, 하며 앞의 의자를 끄는 소리. 누군가가 앞으로 풀썩 주저앉는 소리.

 여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칠 것이다. 예외란 없다. 계속 바라보기만 하더니, 처음으로 제게 접근해온 여자는 그의 책상에 팔꿈치를 대곤 손에 턱을 받쳤다. 아이작이 구태여 시선을 주지 않았으나 뭇 사람들이 그러하듯, 초반에는 다 의욕이 넘치기 마련이었다. 여자는 꿋꿋하게 말을 붙였다. 아이작은 그것들을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렸다. 무심하게 공책에 공식들을 풀어나갔다. 

 

 "나. 네게 흥미가 돋거든."

 "……."

 "네가 …는 모습을 보고싶어."

 

 순간 음성을 놓쳤다. 공식을 써내려가던 손길이 멎었다. 이때에서야 아이작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보았다. 그러니, 그 행동 자체가 사실 아이작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여자, 이스피어 틸다는 일자로 다물려있던 입꼬리 끝을 끌어올렸다.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분명한 당신에게 친절하게-친절한 척 하며-, 번복해 말한다.

 

 "네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

 

 우선, 결과적으로 아이작은 패배했다. 이스피어 틸다는 뭇 사람과 같지 않았다. 대놓고 네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둥의 혐오스러운 말을 면전에서 뱉은 것과 달리 그는 아이작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들지 않았다. 함부로 팔짱을 끼지 않았다. 그를 자신의 틀에 끼워맞추려 하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가 한 행동이라곤 단순히 아이작의 '곁'에 있는 것이었다. 아이작의 곁을 되도록 비우지 않고 함께 하는 것.

 그럼에도 함께 하는 시간은 특별했던 것 같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스피어는 처음부터 그것을 노린 것 같았다. 몇 주간 그를 관찰하기만 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한 것 같았고, 확신이 들고 나서야 그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지금부터 난 널 따라다닐 거야. 괜찮지? 이스피어는 눈이 좋았다. 물론 아이작은 대부분의 것들을 무심하게 받아넘기는 쪽이었다지만, 이스피어는 귀신같이 그가 거슬리지 않는 선 밖에서 그를 따라다녔다. 아이작의 기호를 관찰하며 선과 벽을 그어가며 다가갈 수 있는 거리를 재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더욱 가까이 섰다. 그러며 서서히 그를 길들였다. 어떻게 길들였냐고 하면,

 그가 살아있는 순간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아이작의 경계를 침범해오면서. 그렇게 그를 길들였다. 어느 순간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이스피어가 있었다. 아이작은 대체 언제부터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빛에 익숙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르르 아래로 흘러내려 떨어지는 검은 머리카락. 창문을 넘실거리던 빛이 그것에 가려지듯 어둠이 작게 내려앉는 순간을, 아이작은 못내 아끼게 되고 말았다. 가느다랗게 휘어지는 눈매도, 반짝이는 금안도. 모든 것이 어우러지듯 자신을 숨 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이작, 나랑 있는 시간이 좋았지? 더는 예전을 상상하지 않았을 만큼 말야."

 

 그를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것처럼 바라보는 눈빛도, 제 몸를 짓누르는 무게도, 온기도.

 

 "더한 걸 경험해보고 싶진 않아?"

 

 그것 모두를, '아낀다'?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애정한다'는 단어가 맞았겠지만 말이다. 아이작은 벅차오르는 순간들을 부러 그 정도의 단어로만 포장해야 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아이작은 필시 이스피어가 바랐던 그 순간을 맞이할 것이어서, 그 순간은 눈 아래 감춰진 오물을 실수로 짓밟은 때만큼 끔찍할 것이고, 돌에 세게 머리를 얻어맞은 양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 분명해서.

 아이작은 마른 얼굴로 제 어깨를 짚은 이스피어의 손을 조심히 붙잡았다. 침묵은 짧았다.

 

 "…또 무슨 이상한 걸 해보려고."

 

 깊은 안쪽에서부터 불안이 실재를 알렸다. 쿵, 쿵. 몸을 울릴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그곳에 분명 있었다. 이스피어는 그것을 알았을까? 아이작은 이스피어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곁에 그가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마다 이스피어가 바라던, 예언은 저를 엄습해왔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상황…이긴 했다. 이스피어는 흥미를 쫓아 아이작의 곁에 섰다. 아이작은 이스피어를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스피어가 아이작에게서 얻는 것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없었다. 그나마 그가 곁에 있는 이유를 흥미 때문이라고 가장한다면. 그가 흥미 때문에 아직, 제 곁에 있는 것이라면 그 흥미란 것은. 대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건데?

 이상한 거라니, 속닥이며 함께 웃는 소리가 내려앉았다. 아이작은 이스피어를 애정한다, 애정하게 되었다. 이 문장을 인정하지 않고서도 이미 이스피어의 바람은 반쯤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도 이스피어는 지금처럼 자신의 몸을 타고 올라왔고, 또 잔인한 말들을 내뱉었다. 

 

 "내가 널 외롭지 않게 해줄게."

 

 이 음성과 무게, 온기와 박동에 어찌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나. 아이작은 자신이든 타인이든 아무튼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니 계획적으로 저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막을 수 있었을리가. 애정을 닮은, 하나 결단코 애정이 아닌 행동들에 깜빡 속아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리가. 아이작. 자신과는 결코 비교도 할 수 없는 화려한 생生이, 숨이, 제 위에 있었다.

 피부를 타고 기어온 그의 양 손바닥이 그의 볼을 감쌌다. 마냥 따뜻했나, 마냥 따뜻하진 않았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자국이 남는다. 다만 느낄 수도 없이 쿵, 쿵. 불안을 닮은 동시에 불안은 아닌 것이 뛰었다. 그래서 그가 참 잔인했다.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성취하려고 마는 성정이 있었다.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기 전까진 멈추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호흡을 고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나선, 그의 모든 처음이 물었었다. 내가 그러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는데. 어쩔래?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참 다정한 것 같았다. 아이작은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하나? 이것을 거절하면 너는 떠나나. 반만큼 실현된 예언이 온전히 실행되는 순간을 꿋꿋하게 목격하고 등을 돌리나. 사랑은 안 돼. 인간은 믿을 수 없고, 더럽고. 또. 이기적이니까. 그들이 하는 사랑은 그만큼이나 더러운 것일진대.

 품 안의 온기를 더 세게 끌어안으면 투정부리듯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마주 껴안아오는 손은 아이작의 등 뒤를 느리게 토닥였다. 다리가 느리게 얽혀들어왔다. 꿈 속을 헤메는 양 뭉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나쁜 꿈을 꿨어? 아이작은 그에 한층 몸을 굽혔다. 무심코 힘이 가해졌나보다. 답답함을 표현하듯 두드리는 손길에 엇박이 났다. 아이작은 황급히 팔에서 힘을 풀었다. 미안. 깨웠어? 다시 잠들라는 것처럼 아이작이 이스피어의 등을 쓸어주었다. 아주 느리게. 

 당연히, 이스피어는 아이작의 그런 반응을 허투루 넘겨줄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꿈을 꿨어?"

 "…별 거 아니야. 다시 자, 피어."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다면, 끝내 대답하게 될 걸 알잖아."

 

 아이작은 결국 머뭇거리다가도 실토한다.

 

 "아직도 보고싶어?"

 "무얼?"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아이작의 긍정에 이스피어는 비음을 흘리며 아이작의 품 안에서 몸을 고쳐 누웠다. 아이작은 참 많은 것을 상상했다. 자신이 여자를 애정하는 상상이나, 여자의 행동이 진짜 애정에 덮이는 순간 따위를 말이다. 비몽사몽하니 이스피어가 뻗은 손은 아이작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듯 넘기듯 했다. 다정한 것은 진짜였다. 그래도 다정에 섞인 것이 사랑이지는 않았지.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글쎄…."

 "글쎄,라니."

 "이런 게 궁금할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왜?"

 "그야,"

 

어째서냐면.

 

 "네가 날 사랑하게 될 일은 없을 거니까."

 

*

 

 뭐, 맞는 말이었다. 아이작은 사랑을 혐오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도, 팔짱을 끼는 것도 포옹을 하는 것도, 키스를 하는 것도 싫어한다. 감정적인 교류? 아이작을 사랑한답시고 찾아왔던 여자들은 일방적으로 자신을 끌고 다니기에 바빴다. 그들의 눈에 어렸던 소유욕이나 질투는 역겨울 지경이었다. 이스피어의 말은 타당했다. 그렇지만….

 ……아이작은 약속을 붙잡았다. 이것이 있으니 이스피어는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잠시 떠나간다손 쳐도 돌아올 곳은 자신이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뱉은 말은 죽어서라도 지키려 하는 사람이니까. 이 신뢰도 타당했다. 아이작이 이스피어를 애정한다,고 인정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품 안의 온기로 만족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단어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속을 한 이후로 아이작이 그것을 처음 목격하게 된 것은 4개월 가량이 지난 때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지 2주쯤 지난, 수업이 끝나고 잠시 사라진 이스피어를 찾으러 교정 뒷편으로 향했던 그 날. 코너를 돌기 전 모여있는 이스피어의 친구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제대로 무슨 내용인지 듣지도 못했는데도 이상하게. 무언가.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는 착각이 들었다.

 또 나쁜 버릇 도졌네. 이번엔 좀 오래 가긴 했어, 그렇지? 또 불쌍해진다. 피어도 유별나다니까. 질리지도 않나봐, 뭐. 보는 우리도 재밌다지만…. 잠깐! 너는 피어의.

 불안이 저를 이끌었다. 망설이지 않고 당장 무리를 해치며 모퉁이를 돈 곳에는. 그곳에는.

 

"…아이작?"

 

 한 학년 위의 선배와 입을 맞추기 직전의, 이스피어가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동시에 머릿속을 파고드는 단어가 있었다.

 

 너. 그거 진짜 나쁜 버릇이야. 알아?

 

그때 네가 무슨 대답을 했었더라.

 

 그래. 나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