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지..
지금 끝내지 않으면
이 썰은 영영 마무리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쓰다보니까 스토리 개 길어질 것 같아서 남은 건 썰체로 이음.
일단 지금까지의 스토리 요약.
메이는 과거 자신의 거처(북극과 같은 곳) 근처에 버려진 아이(정령친화 MAX)를 사랑하고 말아서 그를 곁에서 지켜주며 아이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놓았음. 아이와 계약하지는 않았지만 곁에서 이것저것 참견하거나 챙겨줄 수는 있어서 계속 그렇겢 ㅣ냈는데 나쁜 마법사가 찾아와서,,, 아이가 정령친화 MAX 찍은 거 알고 부려먹으려고 아이를 데려오려 했는데, 착한 마을 주민들이 그거 말리려다가 마법사가 불 마법으로 깽판침,,, 그래서 메이가 아이랑 계약해서 세상에 처음으로 현현함.
메이는 정령왕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고대 정령이었음. 말 그대로 자연에서 태어나 숨쉬듯 자연의 힘을 끌어다 쓰고, 막 그러는. 하지만 북극에서 태어난 메이는 따지자면 얼음의, 한기의 정령이었고 겨울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도착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니(계약한 이후엔 계속 인간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느낌일듯) 그 나라에 겨울을 탄생시키게 되고,,, 하지만 문제는 겨울이 처음 나타난 것보다는 메이가 인간계에 현현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겨울이 다른 계절마저 잡아먹어 나라 자체를 꽁꽁 얼릴거란 게 문제엿음,, 그래서 메이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날이 길어지기 전에,,, 사건이 있은지 한 3년정도 뒤에 아이와 헤어지게 되었을듯자기는 다시 깨어나면 안 되니까 자기를 봉인할 마법을 거는데, 무엇이든 마법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 정령이 사용할 수 있는 날 것 그 자체의 마력과 더불어,,, '이름'을 그때 함께 대가로 바쳤을듯,,,
그리고 이것을 깬 게 몇 백년 뒤 제국의 한 마법사 에반 가르시아. 에반은 적당한 호기심과 적당한 마법 수준을 가진 정령사임. 하지만 이 '적당한'이라는 수준은 일반인들의 기준이 아니라 마법사 사이에서의 기준이라서, 에반은 어느 날 사슴이 물고 온 메이의 목걸이를 발견하고 거기에 얽힌 날 것의 마력을 추적하기로 결심함. 그렇게 메이를 발견하고, 봉인을 해제함!!
처음에는 단순한 ㅎ호기심에서 비롯되어 고대 정령이 사실은 소멸되었다고 알려졌던 이 정령이었구나!! 한 걸 깨닫는 선에서 그쳤지만, 뭐, 그동안 마법사 학회를 미궁에 빠뜨렸던 난제의 문제같은 것도 메이에게서 알아내고, 그러다가 어느 날 메이의 진명(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진명을 아는 거일듯)을 물어봤는데 메이가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고,,, 진짜 묘해졌을듯에반이 메이를 향해 묘한 감정을 품는 것은 1. 메이가 사람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 2. 사람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람과 세상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3. 얼마만큼 사랑하냐면 스스로를 봉인할 정도로 사랑한다는 점에,,, 있음. 아니. 너무 헌신적이잖아? 이러니까 사람이 아니구나 싶지만, 또 이런 정령이 하필이면 옛 문헌에서 겨울을 탄생시킨 죄로 소멸당했다 알려진 그 고대 정령이라는 점은 좀, 그렇다 싶기도 했음.언젠가 메이는 스스로를 다시 봉인하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실제로도 맞는 소리였음.
* * *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메이는 대부분 에반과 함께 있기보단 자연에 몸을 뉘이며 사슴들과 놀거나, 꽃을 바라보거나, 작은 들짐승들과 놀거나 하는데,어느 날 메이가 숲속을 벗어나 넓다란 바다가 보이는 메밀꽃 언덕에 도달한 날,그해 첫 눈이 내렸을듯.
* * *
..... 에반은 집 안에서 봉인 마법을 개량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열어둔 창문 너머로 눈이 내리니까,,, 순간 섬짓해지고 마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와서 산 곳곳을 해매다가 닿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 같은 메이의 마력이 남은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쫓다보니 메밀꽃 언덕으로 따라나옴,,,그리고 에반은 두 손으로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을 만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메이를 발견하고 순간 할 말을 잃었겠지,,, 메밀꽃 위로 소복히 하얀 눈이 내리는데 메이는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에반은 메이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붙잡음 이봐요, 정신 차려요. …괜찮아요? 무슨 일이라도, 거기까지 말하다 메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눈동자 속 박힌 눈꽃이 어느 때보다도 활짝 핀 걸 발견하고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을듯,, 한기가 머리까지 내리꽂혀서그리고 이 순간만큼은 에반이 마주하는 메이는 에반이 알던, 어리숙하게 산을 쏘아다니던, 순진무구하게 웃음짓던 여자가 아니라 고대 정령, 자연, 그 자체였을듯.
산들바람은 칼처럼 날을 세워 뺨을 스치고 추위에 손발이 둔해지고 숨을 내뱉으면 하얀 입김이 번지고, 이게 겨울이구나. 급박한 상황에도 에반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을듯 에반은 일순 두려웠을지라도 더 겁먹지 않았음. 오히려 지금의 정령은, 메이는 아주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는 겨울 바람에도 멈추지 않고 귀가 새빨개지다 못해 떨어져나갈 정도가 되어도 메이에게로 걸어갔을듯. 그리고 결국 메이의 언 뺨에 에반의 언 손이 맞닿은 때,거짓말처럼 돌풍이 멎었을듯. 세차게 내리던 눈이 살랑살랑 멎기 시작하고, 눈꽃 내려앉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꿈뻑인 뒤, 눈꽃이 수그러든 눈동자가 에반을 바라보면,
- ……에반 님? 이곳까진, 어쩐 일로…….
에반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 섞어 웃어버리고 말았을듯..
* * *
한켠 왕궁에는 비상 사태가 걸렸음 당연함,, 몇 백 년만에 다시 겨울이 찾아옴,,, 농작물 피해도 만연하고 아무튼 막 난리 남 이곳 사람들은 추위라곤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당연히 왕궁에 소속된 마법사를 하나하나 ㅊ찾아가서 막 심문해보고 하는데 에반은 유들유들하게 거짓말 하면서 넘어갔을듯 예? 아뇨, 저도 '눈'이라는 게 온 건 봤는데 지금 마법사 학회도 난리 났거든요. 일단 저는 아니지만 고대 정령을 소환한 마법사가 밝혀지게 되면 바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이러는데
응 그사람 에반이죠? 지금 메이 안에 꽁꽁 숨어서 엿듣고 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그리고 둘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을듯. 에반이 한숨을 내쉼.
- 무슨 생각을 하는진 알겠는데 일단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 생각을 해봤는데, 저는 이만…… 앗.
- 네. 그 생각 말고요. 일단 들어보시라고요.
이때는 메이가 깨어난지 한 2주정도 된 시점이었을듯 에반이 주섬주섬 무슨 노트를 꺼내들어 메이한테 보여줌. 뭔가 하고 보니 봉인 마법을 개량해둔,,, 그런 것이었을듯
- 대가 말인데요. 그걸 조금 더 줄이는 형태로 해서, 아니면 아예 당신이 잠들지 않고서도 정령의 속성을 억누르는 형태로 더 연구해보든가 해서…….
에반이 이것저것 이야기하는데 메이의 표정은 되게 묘했을듯 당황한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조금은 껄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서 메이는 에반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손을 앞에서 흔들어보이며 말을 멈추게 하고,,, 말했을듯
- 이걸, 에반 님께서 저와 계약한 것을 전제로 두고요? ……다?
잠시 정적이 흘렀음. 에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말을 이으려 함.
- 네, 어차피 당신은 진명을 잃어버렸으니, '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약을 한다면 불확실한 점이 조금은 있겠지만요.
- ……정령사는 한 정령과 계약했을 때, 더는 다른 속성의 정령을 부리지 못한다는 거. 알고 계시죠, 에반 님.
문제는 이것이엇음, , , 메이랑 계약하면 에반은 더는 다른 정령을 못 거느리게 됨 ㄷㄷ 불의 정령을 주로 일회성으로 다루던 에반의 습관을 떠올렸을때 되게 아이러니한 부분이었을듯 하지만? 에반은 괜히,,, 메이의 말에 오기가 생기는 것 같았을듯 오기? 어쩌면 알 수 없는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안타까움, 억울함 같은 감정이었을지도.
-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 채로 말하는 거예요.그렇다면 메이는 물을 수밖에 없었음.
- 에반 님께서, 왜요?에반은 언제까지고 이, 알 수 없는 감정이며 심리를 정의내리고 싶지 않아 피해왔지만, 지금은 그 정의를 기어코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 당신이,
…….
- ……당신이 너무 바보같이 웃고 다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데 한 부분으론 허탈하면서도 한 부분으론 후련한 미소가 희미하게 에반의 얼굴 위로 떠올라있었을듯.. 때마침 구름을 벗어난 햇빛이 창살을 타고 넘어와 테이블 위를 주홍빛으로 물들였을 것 같고.
- ……그러니까 제게 기회를 줘요.
- 에반 님.
- 당신은 메밀꽃 사이에서 근심 없이 웃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보이니까요.
잘 생각해보세요. 이렇게 시간의 유예를 두고 에반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을듯,, 그리고 집을 나오는데 에반이 그때서야 깨달을듯. 아. 여기가 내 집인데....
그래서 에반은 얼떨결에 본인이 금방 말한 언덕으로 잠깐 산책이나 갈까, 하고 떠나고, 메이는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서 한참 상념에 잠겼을듯...
* * *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때에 일어난다. 다음 날 되니까 누가 문을 세게 두드리길래 에반이 아 씨 새벽부터 뭐야... 하면서 네, 네, 나가요. 하면서 나갔는데...마법사 학회의 마법사들이 굳은 얼굴로 에반의 집에 찾아온 거. ..
.에반은 직감함. 아, 이자식들도 마력의 흐름을 쫓아 왔구나, 흔적을 발견했구나,
─메이가 위험하다!
하지만 티내지 않고 태연하게 연기하면서 아침부터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아, 눈이 내린 사건 때문에 온 건가. ……범인은 잡혔어요? 하지만 앞장선 7서클 노인 마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겠지,,
- 에반 가르시아. 고대 정령은 어디 있소?
에반은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음. 메이가 위험하다.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음.
-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라고 해도, 듣지 않으시겠죠?
- 고대 정령의 위험성은 그를 가장 곁에 두었던 자네도 이해할텐데. 최소한 소멸시켜야겠지. 그도 아니면, 영영 존재를 시간의 틈새에 가둬버리든가.
그래선 안 돼. 에반이 표정을 감출 새도 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렸음. 메이가 있을 곳을 헤아려보며 도망칠 각을 재고 있었을듯.
- …소멸은 안 됩니다. 제가 봉인 마법을 개량하는 중에 있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함께 연구를,
- 그럴 순 없지.
말하며 7서클 마법사가 에반의 몸을 단번에 구속했을듯.. 노인의 눈이 집 안을 날카롭게 훑으며 다른 마법사들에게 소리침. 마력의 흐름을 쫓아 고대 정령을 추적하시오! 에반의 심장이 저 밑으로 처박히는 듯 했음.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을듯.
메이, 메이!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빨리, 제발 도망쳐요.
* * *
그리고 에반은 무저항으로 순순히 잡혀온 메이를 보며 하염없이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출 수 없었을듯.
이럴 줄 알았으면 전 날에 그의 봉인을 도울걸, 아예 잠에 빠져들게 할 걸, 그랬다면 몇 년 후에라도 그를 다시 깨울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리 했다면.언제나 후회는 늦고 절망적인 상황은 뒤엎을 가능성조차 없어서, 에반은 땅에 고개를 몇 번이고 처박고 싶은 심정이었음. 그런 에반을 향해 메이가 다정하게 말했을듯.
- 제 선택이에요, 에반 님. 저를 지켜주시려 해서 감사해요.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느껴지지 않을 뿐이지, 어딘가엔 필히 겨울이 존재하잖아요.
에반이 그런 말을 삼키며 입 안을 피가 날 정도로 짓씹었음.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였음.
결국엔 저 존재를 마음에 품고 말았노라고.
7서클 마법사가 메이에게 다가가며 소멸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도 메이는 반항의 의지라곤 한 톨만큼도 보이지 않았음. 그렇군요, 네. 괜찮아요.
그런-빌어먹도록 다정한 말들만 반복하며, 그가 애정하는 존재들이 세상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소멸하겠다 말하는데 빌어먹게도, 그것에 순응하고 앉아 있어서.에반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뼈져리게 호기심에 이끌렸던 첫 시작을 원망했음.
사슴이 아닌 다른 동물을 택할 걸, 목걸이를 보고도 미로를 쫓지 말 걸, 고대 정령인 걸 알면서도 깨우지 말걸, 그럴걸….…
…그리고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순간임을 알기에,에반은 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외쳤을듯.
- 나, 에반 가르시아는…….
결심한 눈빛이 메이를 향함. 메이는 그 눈빛에 일순 숨을 멈추었을듯.
- 마법사의 심장을 바쳐, 정령 메이와의 계약을 원한다.
메이를 소멸시키기 위한 마법진을 영창하던 마법사들의 시선이 에반에게 내리꽂혔을듯. 정령 마법사에게 있어 '마법사의 심장'을 바친 계약이란 그 정도의 의미였음.
앞으로 계약한 정령이 소멸되었을 경우, 해당 마법사는 모든 마력 회로를 상실하여... 더는 마법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
고작해야 2주 남짓한 시간, 고작해야 마법에 관한 이야기나 나누고, 스며들 시간도 없이 흘러갔던 시간이었건만.그러지 못했던 모양이었음.
메이가 울듯 웃으며 물었음.
- 왜,
- …….
- 그렇게까지 하세요?
그러면 에반도 희미한 울음기 서린 웃음을 만면에 띄웠을듯.
- ……당신이 자꾸 그렇게 웃으니까.
온전히 자신만의 마력이었던 것이 막대한 존재와 뒤섞이고 얽히는 기분은, 빈말로라도 좋게 표현할 수 없었지만.
에반은 눈을 질끈 감으며 때에 어울리지 않는 감격에 젖었을듯....
* * *
처음 메이를 깨웠던 동굴 안에서, 에반은 메이에게 괜히 털 망토를 단단히 둘러주며 말했음.
- 그러니까, 알겠죠. 당신에겐 금방 지나가는 시간일 거예요. 몇 번이고 수식을 검토했으니까….
- 에반 님도 참! 제가 이미 옛적에 고민해봤던 마법이라 괜찮을 거라니까요. 걱정은 그만 하세요.
바스스 웃는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에반은 괜히 시선을 돌리며 한 걸음 떨어져나왔음. 큼, 헛기침을 한 다음에, 이제는 머리 끝까지 회갈빛으로 물든 메이의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다가... 희미하게 웃어보였을듯.
- ……조금만 기다리세요.
메이는 눈을 살며시 크게 뜨지만, 곧 환하게 웃었을듯. 언제나처럼.
- 천천히 오세요. …기다릴게요.
그리고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일어나고, 사슬 형태의 마법진이 메이를 감싸고, 그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에반을 바라보던 눈이 살며시 감기며 안에서부터 서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에반은 어느덧 동굴 안을 채운 거대한 얼음 수정 앞에서 나직히 숨만 내쉬다가, 걸어가서 견고하게 세워진 얼음 결정 위를 손바닥으로 덮어보았을듯. 눈을 감고 그 위로 이마를 기댐.
- 금방 올게요.
그 말을 마치고 뒤를 몇 번 돌아보나 동굴을 완연히 벗어나면, 에반의 눈 위를 비추는 한결같은 태양빛이며 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향 너머로…희미한 여름의 향을 맡았을듯.……곧 에반이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함. 웃음 소리는 곧 희미한 숨소리가 되고, 머잖아 작은 헐떡거림이 되다가… 사라지고…….
에반 가르시아는 문득 사슴 떼가 어딘가로 급하게 뛰어가는 형상을 보았다. 물기 서려 희미해진 세상이 물방울을 툭 떨굼과 함께 잠시간 선명해지면, 에반은 어째서인지 목적지를 알 것 같아 그들을 황급히 뒤쫓았다. 사슴은 눈이 맑고 성질이 청명하여 저도 모르게 마력의 흐름에 곧잘 이끌리는 습성을 지닌 동물이었다. 다른 동물들 중에서도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개체는 많았으나 에반과 성향이 맞는 동물은, 사슴이 제일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곳은 하얀 꽃으로 물든 언덕, 새파란 바다가 일직선으로 펼쳐진 광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에반은 불현듯 저 바다 너머로 지금은 잠든 메이가 태어난 북극이라는 곳이 보일까 싶어 눈을 가늘게 떠보았지만, 서려있던 눈물이 더 뺨을 타고 흐를 뿐 새하얀 빙산이 보이지는 않았다. 에반은 절벽 끄트머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언젠가 메이가 그러했듯 등을 뒤로 털썩 쓰러뜨려 눈을 감았는데, 뺨을 간질이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눈을 뜬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서리 붙었음에도 지지 않은 메밀꽃의 봉우리가 산들바람에 맞춰 그의 뺨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그가 결국엔 한숨 쉬듯 웃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가 다시금 울었다. 또다시 웃었다.
사슴 숲의 꽃은 5월에도 지지 않았다.
희미하게 서린 여름 햇빛이 간절했다.
터질 듯한 열기가 세상에 내려앉는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겨울이랄 것을 갈망하게 될 테니까.
분명히……
그럴 테니까…….
'1차 > 썰&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칸엘] 자고로 災라는 것이…. (0) | 2022.05.09 |
---|---|
[밀리비] 삭월 오르는 밤 (0) | 2022.03.19 |
[에반메이] 사슴 숲의 꽃은 5월에도 지지 않는다 中 (0) | 2022.03.17 |
[에반메이] 사슴 숲의 꽃은 5월에도 지지 않는다 上 (0) | 2022.03.17 |
[체르밀로] 그러니 우리는 (0) | 2021.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