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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ORPG 플레이 로그

[로넨데비] 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을 플레이 로그

by 여우비야 2021. 8. 16.

 

 

옛날, 옛날에, 어떤 용사가 있었습니다.
 
용사의 사명은 사악한 마왕을 무찌르는 것이었죠.
 
그 용사의 이야기는…….
 
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을
 
20210814
 
w. 널
 
KPC 로넨 리하트, PC 데비 매그닛
 
성년의 날
 
맑은 날입니다.
 
제국의 아침은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새가 노래하듯 지저귀고 하늘은 푸른 물감이 번진 듯이 말갛게 파랗습니다.
 
당신은 호화로운 용사의 방 안에서 기분 좋게 몸을 일으킵니다.
 
비록 무시무시한 모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지만요. 뭐든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좋은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성년이 되는 오늘, 당신은 마왕성으로 떠나야 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겠지요.
 
축복과 기대를 함께 받으며, 의무와 권리를 함께 지면서.
 
당신을 보살피고 가르쳐주는 황성의 사람들과 신전의 사제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세상은 마왕, 로넨 리하트의 마력에 지배당해 당장 제국의 변방만 나서도 그가 부리는 괴수들로 우글거리고,
 
세계는 그 마력에 맞설 수 있는 성력을 가진 단 한 사람,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당신은 성년이 되는 날, '겨울'이 존재하는 세계의 끝으로 향해 사악한 마왕을 마주해야 한다고,그 마왕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고 돌아온다면, 세계는 당신으로 하여금 비로소 완전한 평화를 되찾을 거라고요.

 
어릴 적에는 당신에게만 주어지는 그 막중한 의무가 두려웠던 적도 있었지만,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 길러졌습니다. 그것을 배반할 수는 없겠지요.
 
이 날을 위해 수련도 열심히 해왔습니다. 새삼 다짐합니다. 세계를 위해.
 
몸을 씻고 정복을 갖춰 입고 나옵니다.
 
슬슬 누군가가 노크할 때가 되었는데요. 얌전히 방 안에서 기다리다보면 째깍, 째깍, 시간만이 흘러갑니다.
 
……무슨 차질이라도 생긴 걸까요?
 
시간이 십 분 가량을 넘어 지나가고 있는데도 시종은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다.
 
이거, 직접 움직여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할까요, 데비?
 
데비 매그닛:(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검을 매만지며 제대로 허리에 찬다. ... 역시 나한테는 좀 큰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 마리?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항상 문 바깥에 서있을 마리는 당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곁을 비우는 아이가 아닌데, 이래서야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지 않나요.
 
오늘따라 허리에 찬 검이 묵직하게만 느껴집니다.
 
출정식까지는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시종의 안내 없이 직접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가야할 것 같습니다.
 
데비 매그닛:... ... (문득 창밖을 보았다. 마왕의 심장에 칼을 꽂아야 한다는. 마왕의 손에 늘 이 세계가 위협당한다는 말과는 달리, 그림으로 그린듯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한 이 세계를. ... 이런 감정을 느낄 때면 데비 매그닛은 스스로의 존재가 과연 이 세상에 필요했는가를 생각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황제를 만나기 전 할 불순한 생각은 이걸로 됐어. 후. 숨을 몰아쉬고선 걸음을 딛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처소에서 황성 내에 있는 작은 신전을 거쳐야 하지요.
 
이제 마왕을 무찌르고 돌아오기 전까지는 다시 보지 못할 평화로운, 평화롭기만 한 풍경들을 새삼스레 눈에 담습니다.
 
새하얀 햇볕이 신전의 기둥 사이사이로 비칩니다.
 
이 나라는 영영 태양 드높고 나뭇잎 푸른, 봄과 여름의 나라입니다.
 
마왕성으로 향할 수록 날은 추워지고 꽃과 풀은 시드며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는 겨울이 도래한다고들 했죠.
 
일평생 온화한 기후 아래에서만 살아온 당신이 과연 매서운 칼바람을 견뎌낼 수 있을지, 사람들은 많이 걱정했더랬죠.
 
결국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방한용 망토를 챙겨주고, 장갑이며 보온구를 챙겨주는 것밖엔 없었지만요.
 
화려한 출정식이 거행되는 날, 곁눈으로 발견한 사제들은 분주합니다.
 
십중팔구 식에서 당신을 축복하기 위함일 겁니다. 벅적한 목소리들 가운데,
 
듣기 판정.
 
데비 매그닛: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흐트러진 사제복을 가지런히 하며 그들이 중얼이듯, 혹은 속삭이듯. 대화하는 소리가 나직하고도 은밀합니다.
 
“성력▒은 ▒▒▒고 있네.”
 
“▒▒▒▒ ▒▒▒▒에 불과하시잖아. 전부 ▒▒▒ 건데.”
 
“가엾기도 하지. 이제 겨우 성년이신데.”
 
“평화를 위해서니 어쩌겠나.”
 
"그나저나 오늘 찾아온 사람 보았나? 아르달 가문에서의……."
 
낮게 소리 죽여 말하던 그들은 겨우 당신을 발견하고서 얼른 고개 숙입니다.
 
이걸 뭐라 한 소리 할 수도 없고, 한숨만 나오는 기분입니다.
 
잠시 느려졌던 걸음을 다시 빠르게 옮깁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볕이 눈부신 대전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던 당신의 눈에 스치는,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
 
외딴 곳으로 이어지는 하얀 복도입니다.
 
당신은 용사임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가지고 태어난 이래 줄곧 왕성에서 자랐습니다만, 지금까지 저런 곳은 본 적도 없습니다!
 
기이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며 당신은 황제께 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틈 같은 복도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끝에 도달한 검은 문을 엽니다.
 
아.
 
이곳.
 
역대 용사들의 초상화가 걸린 방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나요, 데비?
 
데비 매그닛:(주변을 둘러본다.)
 
당신이 벽마다 걸린 초상화를 보고 역대 용사들이라 판단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 모두가 휘황찬란한 금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텝니다.
 
바로 당신의 전대 용사는 눈동자가 노랬고, 그 전전대 용사는 머리카락이 금빛이었죠.
 
홀린듯 초상화를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어라?
 
한 초상화 위에 검은색 암막 커튼이 처져 있습니다.
 
오로지 한 초상화에만요.
 
……왜죠?
 
데비 매그닛:... (홀린듯 암막 위에 손을 댔다. 암막 커튼을 거둬볼까?)
 
서서히 당신의 손 아래에서 치워지는 커튼의 아래로,
 
관찰 판정.
 
데비 매그닛: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 ▒▒dal
 
그 이름만 보고 난 뒤로, 당신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커튼을 손에서 놓칩니다.
 
"용사님, 용사님!"
 
마리: 세상에, 죄송해요! 급하게 누군가가 찾아오신 바람에…… 왜 이런 곳에 계셨던 거예요? (급하게 땀을 훔쳤다.)
 
데비 매그닛:... 그냥. 당신이 오길 기다리느라요. (마리를 향해 짧게 웃었다. 그린듯한 미소였다. 스스로가 용사임을 잊지 않는 자의, 그 명예로운 이름이 걸맞는 얼굴.) ... 저기. 마리.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마리: (호흡을 가라앉혔다.) 에그머니나, ……당연히 가능하죠! 제가 아는 선에서라면 대답해드릴게요. (허리를 숙였다.)
 
데비 매그닛:그. ... ... 이 초상화는 왜 가려져 있어요? 기왕이면 모두가 볼 수 있게 하면 좋을텐데. 이름도 써있잖아요. 여기. ... (하며 암막커튼을 다시 한 번 들추려 했다.)
 
마리: (삽시간에 얼굴이 굳더니, 무엄하게도 당신의 손 앞을 가로막듯 제 손을 넣었다. ……기이한 정적이 흘렀다. 그것을 깨트리듯 급박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요, 용사님. 이 커튼은 들추시면 안 돼요! 이 분은 용사로 태어났지만…… 황가에 반역하고자 했던, 아주 무시무시한 분이시랍니다!
 
데비 매그닛:... ... 반역이요? (그런 얘기를 ... 내가 들은 적이 있던가? 용사로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미워하는 것. ... 데비 매그닛에게 있어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많은 용사들도 그래왔을테고. 그렇기 때문에. ... 궁금했다. 이 암막커튼 안에 홀로 볕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 용사라는 이름의 사람이. ... . 초상화의 얼굴이 있을 곳을 보다가 다시 마리를 바라본다.) ... 그럼, 왜 굳이 초상화를 치우지 않았나요?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곳에 걸어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 ... .
 
마리: (안색이 더더욱 나빠졌지만 초상화 앞을 가리듯 뻗은 손은 느릿느릿 치워졌다.) 일단 반역의 이야기가 용사님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혹시라도… 용사님들의 마음이 흔들릴까봐 그런 것이에요. 노란색을 품고 태어나신 분들께선 원래, 그런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작은 한숨.) ……이 용사님은, 데비님과는 다르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셨거든요. 아르달 가문의… 첫째 공자셨죠. 그래서 이 곳에서 이 분의 초상화를 치울 순 없답니다. 아르달 가문에서는 지금까지 아르달 님의 반역을 부정하고 계시거든요…….
 
데비 매그닛:(아르달. 아르달. 그 가문에서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나? ... ... 기억나는 사람.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라, 눈을 꾹 감았다 뜬다. 수업시간에 들은 거겠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요? (대답이 끝나자마자 툭 튀어나오듯 물었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데비 매그닛의 눈이 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마리: (그렇지만 당신의 물음을 듣기 바로 직전에, 갑자기 숨을 헉 들이키더니.) …이러실 때가 아니에요, 용사님! 빨리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가셔야 한답니다! (조심스레 당신의 어깨를 감싸쥐고 방을 빠져나오려 했다.)
 
당신은 마리의 인도를 따라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갑니다.
 
그러는 와중,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을 떠올려보았나요.
 
겨울에도 피는 꽃이나 마물들의 종류, 그리고 전대 용사들의 이름이나 업적… 마왕과 이 제국의 길고 긴 악연.
 
아르달 가문은 딱히 용사와는 연관이 없어 보였습니다.
 
제국에서 변두리 부근을 관할하는 그 가문은 대대로 보랏빛 섞인 푸른 눈이 유전되어 왔으며…….
 
…….
 
기사단이 열을 지어 각 잡힌 채 서 있고, 옥좌 위에 위엄 있게 앉아있는 존경스런 황제께서 당신을 보고 몸을 일으킵니다.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옥좌 위에서 친히 내려옵니다.
 
황제: 데비 매그닛.
이 제국의 자랑스러운 용사여.
(인자한 미소를 그렸다.) 그대는 이제 겨울이 있는 마왕성으로 떠나야 하네. ……두렵지는 않은가?
 
심리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데비 매그닛:
심리학
기준치: 70/35/14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렇게 말하는 황제 폐하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편안해보입니다.
 
지나치게요.
 
그만큼 당신을 굳게 믿고 있는 걸까요.
 
데비 매그닛:(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 영원히 내게 진실할 것만 같던 나의 고향이 단순히 반역자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은연한 거짓처럼 느껴졌기에. 데비 매그닛은 그의 앞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충성. 변치 않는 마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 ... 가진 의문점을 무릎에 짓눌린 심장 마냥 저 밑으로 매몰시키기 위해.) 두렵지 않습니다. (목소리에는 흔들림조차 없다.)
 
황제는 더욱 짙은 미소를 그릴 뿐입니다.
 
황제: 부디 바라노니,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세상을 꼭 구해주시오.”
 
막중한 기대와 염원 속에, 당신은 오랫동안 하지 못할 인사를 그에게 올립니다.
 
기사단이 일제히 당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 출정식이 거행됩니다.
 
당신이 걸음하는 곳마다 평화의 기원을 담은 융단이 깔리고, 아이들이 색색깔의 꽃을 헌화하고.
 
이윽고 먼 여정을 떠나는 당신.
 
햇살이 축복처럼 눈부십니다.
 
변방으로
 
몇날 며칠을 말을 타고 달려 변방으로 향합니다.
 
여기까지는 평화롭게 제국의 사람들에게 환대받으며 왔지만, 이제부터는 다릅니다.
 
국경에는 마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했으니까요. 과연 저 멀리 불길한 어두운 숲이 보이고, 인적은 점점 드물어집니다.
 
당신은 말에서 내립니다. 슬슬 말과도 헤어질 때가 되었죠.
 
겨울은 그렇게 혹독하고, 잔인하다고들 이야기 되었으니까요.
 
말에서 내려, 당신은 검을 빼듭니다. 괜찮습니다. 몇 번이고 수련했으니까요.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시작부터 겁먹어선 안 되는 일이지요.
 
당신은 용사잖아요. 이 세계의 구세주!
 
국경에 걸친 마지막 가난한 마을을 뒤로 하고,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나무 그늘은 빽빽하고 바람 소리는 고요합니다. 어둠입니다…….
 
순간,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가 빛납니다.
 
7마리의 마물들이 당신에게 급작스럽게 달려옵니다!
 
SAC 0/1D4
 
데비 매그닛: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제일 앞서 달려드는 박쥐 형태의 마물을 향해 검을 치켜듭니다.
 
자유 판정으로 공격이 가능합니다, 데비!
 
데비 매그닛:
마법
기준치: 75/37/15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피해: 2
 
아, 하지만 너무 긴장해버린 탓일까요.
 
노란 빛을 휘감은 전격이 그만 마물이 아닌 다른 엉뚱한 곳으로 튀어나갑니다!
 
마물들의 그르렁 소리가 더욱 커져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코앞까지 달려온 마물이, 당신을 공격하려 들었습니다.
 
마물 1:
날카로운 발톱
기준치: 60/30/12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3
 
데비, 피하기 위해선 민첩 판정이 필요합니다.
 
데비 매그닛: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날카롭게 휘둘러지는 발톱을 겨우 피해냅니다.
 
덕분에 바닥을 좀 굴렀지만,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데비, 다시 공격해주세요!
 
데비 매그닛:
검술
기준치: 75/37/15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
 
정신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제대로 검을 휘두릅니다.
 
키에엑-!
 
제일 먼저 달려들었던 마물이 검에 베여 쓰러지고, 당신은 그러고도 2 마리의 마물을 차례대로 베어냈습니다.
 
이번에는 구석에 주춤거리듯 서 있던 거대한 마물이 당신을 향해 달려드는데요,
 
그가 독 같은 액체를 뿜어냅니다!
 
마물 4:
공격
기준치: 60/30/12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3
 
데비, 민첩 혹은 회피 판정으로 공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데비 매그닛: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급하게 몸을 뒤로 놀려 땅을 박차고 액체를 피해내면,
 
흑색 연기가 퍼지며 땅이 부식하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남은 마물들이 한 차례로 당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여요.
 
데비, 아예 마법으로 해치워버리는 건 어떨까요?
 
데비 매그닛:
마법
기준치: 75/37/15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
 
노란 빛을 휘감은 전격이 한꺼번에 당신에게 달려들던 마물을 새까맣게 태웁니다!
 
섬광이 눈을 아리게 만들고, 곧 시간이 지나면…….
 
새까만 잿더미만이 남아있습니다.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그때,
 
"이런. ……늦어버리고 말았나요."
 
숨을 고르던 당신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한두 사람의 발소리가 아닙니다.
 
뒤를 돌아보자, 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이 정복을 갖춰입고, 말에서 내려 당신에게로 걸어옵니다.
 
가장 앞서 나오는 것은 백발의, 80살은 되었을 법한 아르달의 옛 공작.
 
티오 아르달: 원래는 용사께서 변방을 지나실 때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려 했습니다만… 저희가 늦어버린 모양입니다. 황실 놈들이 그렇죠. (작게 웃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는 끌고 온 사람들에게 손짓을 합니다.
 
곧 치유사제 한 명이 나와 당신의 자잘한 상처들을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티오 아르달: 말은 도중에 잃어버리셨습니까?
 
데비 매그닛:... ... 황성의 말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니까요. (답하며 치유사들이 없는 쪽으로 피를 흩뿌리듯휘둘렀다. 말끔해진 검을 보다 검집에 집어넣고선. ... .) 헌데, ... 여기까진 무슨 일이신가요?
 
티오 아르달: (검집 안으로 들어가는 검날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늦었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자. 그리고. ……가지고 가 주셨으면 하는 물건이 있는지라.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데비 매그닛:... 가지고 가요? (느리게 눈을 껌뻑거린다. 눈앞으로 새하얗게 흩어지는 숨이 그의 모습을 마치 세상의 것과는 동떨어진 무언가로 보이게 했다.) 무엇을요?
 
티오 아르달: (그러므로 자신들이 기온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변두리에 사는 것은 얼마나 응당한 일이었는지. 그는 주름진 손으로 목에 걸어두었던 푸른색 펜던트를 빼었다. 가지고 가 주겠냐는 듯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요. …나름대로 보호 아티펙트가 걸려있으니, 용사께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꽤 장난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겨울을 더 견딜 수 있는 말과, 간단한 식량이나 치료 도구, 방한용 망토…를 가져왔습니다만. 가지고 가실 텐가요? 적어도 황성의 것보단 나을 텐데. (왜 이렇게 당신에게 마음을 쓰지? 도움을 주지? 그런 본질적인 질문이 생겨났을 법 했다.)
 
데비 매그닛:(그의 목에 걸려있다가 손으로 내려오는 푸른 아티팩트를 보았다.) ... 하지만 이것은. ... 아르달께서 쓰시던 것이 아닌가요? 이걸 제게 주시면. ... (시선을 내리고 아티팩트를 바라보았다. ... 그 안에 담긴 푸름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었나. ... 바다? 하늘? 아니면. ... .) 제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용사를 위한 물건이라면 그냥 황성으로 보내주셨어도 괜찮았을텐데. 직접 이런 위험한 곳까지 찾아오신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티오 아르달: (혹은, 겨울. …영원한.) 전대 용사도, 전전대 용사도 다 그리 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용사께서는 반역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그 이후로 아르달은 변두리로 몰려나고, 덕분에. (숨소리같은 웃음.) 황성으로 보내는 물건 하나하나마저 검수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직접, 이렇게 드리는 쪽을 택하고 있습니다.
 
데비 매그닛:자세한 것은 아니지만. … 아주 짧게 들은 적이 있어요. (당장 오늘인 게 흠이라면 흠이다. 감시받고 있기에 이 길을 택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합당한 사유였고. 하지만. …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에게 굳이 이런 걸 전달토록 하는 것이. … . 왜일까. 무엇을 바라는 걸까. 혹시 그는 반역자라는 이름이 붙은. … 태양의 빛을 받았지만 빛을 거부했다던 그와 관련이 있는걸까.) … 단순히 용사를 위한 행동이라는 건가요? …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황성을 증오하지 않는 건가요?
 
티오 아르달: 때로 시간이란, 많은 감정을 희석시키곤 하는 법이죠. 제가 한때는 태양 빛 머금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나길 바랐던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바람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니 증오도 마찬가지다. 혹은, 애정이나 존경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는 많은 것을 내려놓은 얼굴로 웃었다.) 길게 붙잡아두어 죄송합니다. 상처는 다 치료되신 듯 하군요.
 
옛 공작은 한 걸음 물러나며 준비해온 백색 말을 끌고 그 고삐를 당신에게 쥐어줍니다.
 
말의 안장에는 잘 꾸려진 식수나 식량, 약들이 들어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티오 아르달: 혹, 또 궁금하신 게 있으십니까?
 
데비 매그닛:... ... 실례가 안 된다면. (하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 그냥. 그런 느낌.) 반역자라 불린 그 분의 경위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어째서. ... 그런 이름이 붙어야만 했는지요. (그가 아르달인 만큼 왜곡된 이야기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하는 것보다야 낫겠다.)
 
티오 아르달: (옅은 웃음이 서린 눈으로 당신을 보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일말의 동정이나 안타까움 따위가 섞여있던 것을, 연륜 뒤에 감추어져 있었음을, 당신은 알았을까?) 그것은, (입술을 벌렸다가, 천천히 닫았다. 희끄무레한 미소를 짓곤 다시 말을 잇는데.) 직접 물어봐도 좋을 것 같군요. (……누구에게?) 제가 아는 것이 변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영문 모를 소리만 했다.) 다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어째서 많은 용사들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왕은 계속하여 건재한가, 이 문장에 대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는 말 뿐이겠군요.
 
데비 매그닛:직접요? ... (하지만 그는 적어도 직전의 용사는 아닐텐데. 대체 누구에게 물어보라는 걸까? 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런 얘기를 하는지 데비 매그닛은 전혀. ... ... . 영문을 모르겠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제 삶에 대한 의문점을 툭 던지듯한 언사에 몸이 굳었다. 뺨이 추위에 얼고, 손끝이 차가워져버린 것과는 다른. 결국 제대로 물은 것도, 대답을 들은 것도 없었다.)
 
티오 아르달: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한 걸음 물러난 채 거리는 유지되고 있었다. 그는 케인 끝으로 땅을 다시금 짚었다.) 그동안 성공한 용사가 없는지에 관한, 물음이죠.
 
그리곤 그는 너무 긴 시간이 흐른 것 같다며, 몸을 돌립니다.
 
"대륙의 끝으로 가시면 알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박자박 멀어져가는 인파들.
 
아무 일 없던 듯 사라집니다.
 
당신의 손아귀에는, 푸른 색의 펜던트만이 남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눈을 돌리면 숲속의 어둠은 한 겹 더 짙어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왕성으로 향하는 길
 
마왕에게 가는 길을 필사의 각오로 막기라도 하듯 괴수들은 발길을 뗄 때마다 달려들었지만,
 
당신은 어렵사리, 그러나 용맹하게 그들을 처치하고 빛나는 핏물로 그득한 비린 명예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습니다.
 
아르달 가문에서 건네준 말을 타고 오지 않았더라면 더 얼마나 많은 마물과 마주쳐야 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륙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땅은 척박해지고, 바람은 거세지고, 추위는 거세어져 갔습니다.
 
이란 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온 세상을 지워버릴 수 있는지요.
 
추위와 아픔에 지쳐가는 나날들 속에서, 그러나 결국에 끝은 다가오고야 맙니다.
 
눈을 들면, 저 멀리 희끗하니 보이는 검은 성채. 하얀 눈밭에서도 공고히 서있는.
 
잠깐 걸음을 멈춥니다.
 
저것이, 마왕이 산다는 세계의 끝. 죽음의 성.
 
숨을 삼킵니다.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지독한 중력에 짓눌리는 듯한 힘.
 
세상의 끝에 선다는 것은 이토록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던 걸까요.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찾아들었습니다.
 
손끝이 마구 떨렸습니다.
 
경험해본 적 없는 죽음,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경한 공포가 차올랐습니다.
 
SANC 0/1
 
지금, 어떤 심경인가요?
 
데비 매그닛: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데비 매그닛:(허무?탈력감? 모르겠다. 그냥. ... 어쩐지. 이 눈밭에 누운것은 처음인데 집에 온듯 안락했다. 그리고 영영 눈을 뜨고싶지 않은 감각. ... ... .)
 
…….
 
그러나 당신은 용사지요.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더 두려운 것일까요.
 
축복해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이 압도적인 적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데비, 일어나야죠.
 
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은,
 
악을 처단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용사 데비는 숨을 들이킵니다.
 
문득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면, 7마리의 마물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점점 좁혀옵니다, 포위해옵니다.
 
그리고 당신은 늑대같이 생긴 마물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입니다.
 
발톱에 어깨가 긁혀 방한용 망토가 찢어지면 그 사이로 차디찬 바람이 스며들었습니다.
 
이빨에 허벅지가 물리면 바닥을 구르며 서느란 고통에 몸을 떨어야 했고요.
 
마력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마법을 계산할 정신도 추위에 점점 잠식되어가는 것이었을까요.
 
어떻게든 마물들을 해치우고 나면 몸 곳곳이 마물들의 피로 절여져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이, 겨울 속 바람이랄 것에 꽝꽝 얼어붙고 말겠죠.
 
……그리고 전부 물리친 줄 알았는데.
 
이제 끝이 보일 것 같았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박쥐처럼 생긴 마물들이 다시 몰아칩니다.
 
머릿수를 세어보니 20마리입니다.
 
아까보다 더 버겁게 느껴지는 건 지친 탓의 착각일까요.
 
끝이 없이 들이닥칩니다.
 
비린 피냄새와 몰려오는 숨찬 두려움, 지긋지긋한 살육을 자행하며 검을 휘두릅니다.
 
키에엑―! 마물이 비명을 지르고, 그럼에도 다시금 달려들어 당신을 물어뜯기 시작하고, 팔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찔한 고통이 두 눈을 감깁니다.
 
아, 더이상은,
 
더이상은……
 
당신의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마물이 시야에 가득 들어차는 것을 마지막으로,
 
데비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마왕성
 
……
 
 
눈을 뜹니다.
 
당신은 침대에 눕혀져 있습니다.
 
천장이 희고 눈부신 빛으로 일렁입니다. 붉은 햇빛이 어딘가에서 비쳐 들어오고….
 
…안락했지만, 당연히 낯선 곳 안에서 당신은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목줄기를 물어뜯던 짐승의 이빨, 고통이며 감촉이 남은 듯 아직도 선연한데. 꿈이었던 걸까요?
 
둘러보면 그러나, 용사의 방도 황성 안도 아닌 처음 보는 장소입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움직이자 몸이 삐걱입니다. 정신이 돌아오자 곳곳이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무래도 꿈은 아니었나봅니다.
 
그래도 몸을 일으킬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테이블, 침대, 거울, 창문, 문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데비 매그닛:... ...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꿈? 아니면. ...죽은 자들이 오는 세계이기라도 한 걸까? 손을 쥐었다 편다. 감각은 여전했다. 통증도. ... 그래. 이건 확인 안 해봐도 되겠다.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가, 우선 누워있던 침대를 살폈다.)
 
희고 푹신한 침대입니다. 다만 조금 오래된 것인지 삐걱이는 나무 소리가 나네요.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데비 매그닛: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침대를 살펴보던 도중, 그 아래 삐져나온 낡은 종이뭉치를 발견합니다.
 
각기 다른 글씨체로 적혀진 종이에는, 추정하기로, 전대 용사들의 글이 쓰여 있씁니다.
 
각기 다른 글씨체로 적혀진 종이에는, 추정하기로, 전대 용사들의 글이 쓰여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어. 이건 악몽이야.'
 
'이런 선택, 무슨 의미가 있지?'
 
'돌아가고 싶어…….'
 
'세상의 끝? 천장 위로….'
 
'모두가 우리를 속였어.'
 
……다른 글씨들은, 너무 오래되어 종이가 변색된지라. 읽을 수가 없습니다.
 
데비 매그닛:... ... . (모든 용사들이 자신과 같이 이 지점에 도달했던걸까? ... 종이를 접어둔다. 이따 다시 보자.)
(창문을 살펴본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종이를 접어두고, 고이 침대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곧 창문으로 걸어가 바깥을 살펴봅니다.
 
척 봐도 지상과의 거리가 꽤 되는 높이입니다.
 
창문 바깥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군요. 당신이 막 마왕성에 도달했을 때완 달리 눈이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바깥은 황무지지만, 그 위로 눈이 깊게 쌓여 있었습니다.
 
하얀 눈밭 위로 붉은 햇살이 반사되듯 눈을 물들여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무심코 가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데비 매그닛:... ... (아름답다. 그만큼 치명적이고. 시선을 거두었다. 테이블을 살펴보자.)
 
정갈한 원형의 나무 테이블입니다. 어쩐지 사용감이 좀 있습니다.
 
테이블 위엔 당신이 내내 휘두르며 베었던 검도 갈무리되어 있네요.
 
하지만,
 
……펜던트는 없었습니다.
 
아르달의 옛 공작이 당신에게 주었던, 푸른 빛의 펜던트요.
 
방 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데비 매그닛:... ... 펜던트. (제 편린이라도 되는 마냥 숨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펜던트를 찾으러 방 안을 살펴보던 당신은, 문득 거울 앞으로 시선을 줍니다.
 
목에도 역시, 펜던트는 걸려있지 않은데.
 
…그러고보면 거울을 보니, 상처가 치료되어있는 모습이 더 확실하게 보입니다.
 
특히나 상처가 심했던 어깨와 팔은 붕대까지 꼼꼼하게 매여 있네요.
 
치유 사제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가 당신을 이렇게 치료해주었을까요?
 
데비 매그닛:... ... ...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지? 혹시, 아르달 공이 또 도와주셨던걸까? 하지만 그런 수많은 마물 사이에서 날 구할 수 있을만큼 그의 검술이 뛰어났던가? ... ... . 상황을 제대로 살펴봐야겠다. 문으로 향한다.)
 
고풍스런 나무 문은, 슬쩍 밀거나 당겨보면, 잠겨있지 않아 손쉽게 열립니다.
 
문 바깥으로 나서면, 여전히 하얗게 일렁이는 천장.
 
높게 솟은 성채의 뾰족한 지붕은 마법처럼 투명하여 눈 안에서 붉은 햇살로 반짝거리고, 성 안은 마치 거대한 온실 같습니다.
 
여름 햇볕 안에 들어와 있는 마냥 따스하고 안온했습니다. 분명 바깥은 눈보라가 쳤던 것 같은데 말이죠.
 
가운데가 뻥 뚫려 난간에서 홀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중앙 홀은 그 가운데 꽃마저 드문드문 화려하게 피어 있습니다.
 
당신은 불현듯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흉흉한 마왕성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마왕에게 잡혀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멍한 채로 당신은 발걸음을 옮깁니다.
 
잘못 찾아온 것일까요? 혹은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꿈 속일까요?
 
선한 누군가가 당신을 이곳까지 옮겨다준 걸까요?
 
아니면 이조차 마왕의 술수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입니다.
 
"……용사."
 
호명하는 목소리.
 
고개를 들면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한, 청명한 푸른 빛 눈동자를 가진.
 
로넨 리하트:…….
 
그리고 당신이 가져온 푸른색 펜던트를 목에 걸친, 마왕이 눈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마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황성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두려워하듯 이마에 난 뿔도, 뒤집어쓴 새카만 망토도, 박쥐의 것 같은 날개도 없습니다.
 
마주치고서 영원처럼 굳었던 당신. 순간 말이 없습니다.
 
당연하죠.
 
무엇보다 그 머리카락에서,
 
희미하지만 금빛이 보이는데.
 
용사의 빛이 보이는데.
 
침묵을 깬 것은 당신의 앞에 선 그입니다.
 
로넨 리하트:……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군. (겨울처럼 매마른 낯이다.) 그렇게 한심하게 성 앞에 엎어져있는 꼴이라니.
 
데비 매그닛:... ... (솔직히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 끙 하는 소리를 잠시 내다가, 곧이어 당신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백색에 가까웠지만 역시나, 금빛을 띈다. 당신은 왜 반역자가 됐을까. 단순히. ... 색채 때문에? 금빛이 영웅의 색이라 하나 그것이 너무 약하기에?) ... ... 당신이 날 여기로 데려온건가요?
 
로넨 리하트:(그는 마왕이라기엔 너무, 평범한 인간같았다. 간소한 차림을 한 채 잠시 와이셔츠 깃을 다듬는 양 매만지는 그의 손등 위로 무수한 흉이 나 있었다. 한숨을 흘렸다.) 그래.
내가 마왕이니까.
 
데비 매그닛:... (당신이 마왕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나를 구했는지도.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는지도. ... 그리고. 침실에서 보았던. 수 많은 용사들 또한. ... 그들의 필체에는 혼란이 가득했으나 삶을 이어가고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 ... 그건 충분한 대답이 아니예요. 날 치료 한 것도 당신이 마왕이기 때문이라고 할 셈인가요?
 
로넨 리하트:그렇지. 나는 너를 시험해야 하니까. (시험? ……무슨 시험인데. 그는 계속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세계에서 붕 뜬 것마냥, 마치 홀로 눈밭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흐릿하고 아득하게, 당신을 앞에 두고서도 제대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 사람처럼. 유리된 존재처럼.)
 
데비 매그닛:시험이요? (용사들이 시험을 본다고? 그것도. ... 마왕에게? 당신에겐 쉽게 다가가기 힘든 어떤 아우라가 존재했다. 그것은 당신을 고귀한 존재처럼 보이게 했으며, 동시에 가장 외로운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래. 외딴 눈밭에 남겨진 이 거대한 저택처럼. ... 아름답지만, 지독하게 치명적인.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딛어 그쪽으로 향했다.) ... 세상을 구할 이의 자격을 논하는 시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난. ... 그런 얘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요.
 
로넨 리하트:그렇다면, 고작 황성 안에서 용사로 길러져 제물처럼 팔려온 네 자격이 얼마나 굳건하지? 네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 사정을 고려해주어야 하나. (온통 제멋대로 굴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일종의 규칙을, 혹은 진실을 가지고 당신의 앞에서 망설임 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내가 널 구하지 않았다면 넌, 마왕성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죽었을 텐데…….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돌리며 숨을 내뱉는다. 하얀 입김은 나오지 않았다.) 세상을 구하는 일에, 관심은 있나. (그리고 그는, 정말 당신을 시험하듯 질문을 던졌다.)
 
데비 매그닛:(제물? 날이 선 단어선택. 그가 용사나 황성에 가지고 있는 심정을 어느정도 대변하던 언사. 하지만 그렇기에 이 행동이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토록 증오하면서 어째서, 용사들을 직접 제 손으로 구해 시험한단말인가. 대체 뭘 위해서. ... ...) 네. (불분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나, 그의 시선은 올곧다. 흔들림이 없었다. 제가 모르는 사정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래. 사람은 제 태어난 몫을, 사명이란 이름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그리고 지겹도록 들어온 자신의 사명은. ... ... .) 제 손으로 이 세계를 반드시 구할겁니다. 용사니까요. (한 줌의 의심도, 거짓도 없다. 태양의 기운을 그대로 모아 빚은듯 금빛으로 반짝이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로넨 리하트:(그렇게 따진다면 금빛으로 빛나는 당신의 눈동자며, 머리카락 하며. 그 어떤 용사와 비견할 수 없을만치 그 안에 세계를 구할 수 있는 힘이 강대한 것은 자명했는데.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의심도 거짓도 없이 답하는 당신을 멀거니 바라보더니, 한 마디 툭 되물을 뿐이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 해도?
 
데비 매그닛:(그 물음이 어떻게 들렸을까. 걸음을 딛어 당신에게로 향하는 사이, 어느새 우리가 가까이 섰다. 데비 매그닛은 그제야 당신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세상에 무심해보이나, 지나치게. ... 혹은 아주 깊게 세상을 사랑하는.) ... ... 그게 당신인가요? (마왕을 죽이는 것. 그것이 제 임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아마. 눈을 바라본다. 어째선지 그 푸른 눈동자가 아르달 공의 것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주름진 얼굴 틈으로 보이던 그 굳건한. 스러지지도, 굴복하지도 않던. 당신의 가슴팍에 있는 펜던트 때문인가?)
 
로넨 리하트:(가까워진 거리에도 그는 하나 긴장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검이 없었다. 그는 몹시도 단촐한 차림이었고, 반해 당신은 묵직한 검을 차고 있었다. 그에게 있는 건 그의 눈동자 색과 몹시도 유사한, 푸른 빛의 펜던트 하나 뿐.) ……글쎄. (가까워진 거리가 무색하게도 그는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스치던 눈빛이 마치 따라오라는 것 같았다.) 전대 용사는 나약했다… 마물들에게 당한 상처가 곪아 터져 오기도 전에 팔을 자른 상태였고, 그 전의 용사는, 심약했지. 그들은 날 죽이기에 마땅치 않았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데비 매그닛:(죽여야하는 대상. 어쩌면 이 자에게 죽을수도 있고. 하지만. ... 데비 매그닛은 방어를 위해서도 검에 손을 올리지 않고 있었다. 그저 당신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기만 할 뿐. 어째선지 그 위에 쉽게 손이 가진 않았다. 당신이 먼저 걸어가기 시작하면, 뒤를 천천히 따랐다.) 강한 사람을 원하시는군요. 몸도, 마음도요. ... (팔을 자르지 않았지만 나약하게 성 앞에 나자빠져있던 건 그도 마찬가지긴 했지. 문득 당신에게 다시 입을 연다.) 내가 세상을 구하기엔 부적절하다고 벌써 판단했나요?
 
로넨 리하트:그래. 강한 사람을 원해. (중얼거리는 음성이 언뜻 지친 사람처럼 들렸다. 문득 걸음에 따라 자그맣게 흔들리는 그의 머리카락 색이 바랜 것처럼 보였을까.) 몸도, 마음도 흔들리지 않을, 그래서 굳건하게 자리에 설…… 자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누군가를 죽이고도 죄악감을 이겨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그러니까, 용사가.) 너에게 실망한 것은 맞다. 어쩌면 그대로 죽으라고 버려뒀을지도 모르겠어. 푸른 빛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리 했겠지. 아마. (그의 걸음이 잠시 멈춰섰으나, 뒤돌아보진 않았다. ……다시 걷는다. 어딘가로, 계속 향하고 있었다.)
 
데비 매그닛:(굳건하게 자리에 설 자? ... 그래. 조건은 알았다. 당신이 원하는 이도 어느정도 그려졌고. 데비 매그닛은 그와는 안 어울리는 인재긴 하다. 척 봐도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지금까지의 용사들과는 달리 검술이 아닌 마법에 재능을 보였던 별종. 선명하고 투명하게 빛나던 금빛이 아니었더라면 데비 매그닛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겠지. 몸에도 맞지 않고, 손에도 절대 익지 않은 검을 들며 버거웠던 순간아 한 둘이 아니었다. 커다란 덩치에 특별한 재능이나 특기는 꼭 있었다는 용사들과 비교하자면. 그래. 뒤떨어지는 용사. 그런 그들조차 혼란에 빠지는 이 시험을과연 데비 매그닛이 해낼 수 있을까? ... ... 지켜볼 일이지. 적어도 누구보다 올곧은 눈을 지니긴 했었으니까. 당신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있다가,) 아르달 공께서 주신 펜던트입니다. ... (하지만 돌려달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저보다는 당신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기에.) 혹, 당신의 물건인가요? 아니면. ... 아르달 공과 아시는 사이입니까? (데비 매그닛은 당신이 궁금했다. 어쩌면, 시험보다도 더.)
 
로넨 리하트:(물론 현재의 로넨 리하트에게 있어 당신의 체격이며 유약한 인상이나, 성 앞에 쓰러져있던 점 등. 당신은 마이너스 점수에서 시작했으면 시작했지 절대 호감을 산 채 시작한 입장은 아니었다. 지금도 당신이 제 뒤로 몇 발자국 떨어져서 걷는 꼴이 그러했겠지. 어떻게 보나 출발선은 명백히 달랐다. 그는 등 뒤에서 들려온 물음에도 안다, 그러냐, 같은 상투적인 말조차 답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고개를 끄덕여주지도 않았다. 심장이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기라도 한 것인지. 대답은 복도가 끝날 즈음에서야 흘러나왔다.) 날 당장 죽이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왕이나 용사, 반역에 관한 이야기를 묻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묻는다는 게 그런 건가. (무미건조할 뿐인 음성 끄트머리가 살짝 올라온다.) ……아는 사이다. (그리곤, 침묵.)
 
데비 매그닛: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칼을 겨눌순 없지요. (당장은.) ... 아니면 눈이 마주치자마자 칼을 휘둘러야만 시험에서 합격했던 건가요? (묻는 말과 달리 역시나, 손에 칼집에 손 조차 대지 않았다. 짧지만 강렬하던 추위에 대한 기억을 당신의 곁에 있으며 상기시킨다. 하지만. ... 두렵진 않았다. 이유야 알 수 없었다.) 그렇군요. (무미건조한 음성에 대한 짧은 대답. 침묵. 아르달과 이 마왕성에 존재하는 당신의 존재를 이을만한 것은 단 하나였다. 아르달 가문의 첫째 공자, 반역자의 이름을 달게 된 용사. ...) 혹시 그건 아르달 가문에 있었다는 용사와. ... (관련이 있는 걸까? 말끝을 은근히 흐린다.)
 
로넨 리하트:……은인? (퍼석하게 끌어당겨진 입꼬리는 순식간에 원래의 자리를 되찾았으니 자욱처럼 남겨진 웃음도 소복히 쌓이는 눈에 덮여 자취를 감추었겠다. 하얀 성채 안으론 붉은 햇살이 저며들어와 마치 눈밭 위처럼 성내를 적셨고, 그는 곧 그런 햇살마저 닿지 않는 홀에 도착한다.)
 
우리는 어느덧 성의 중앙, 홀에 도착합니다.
 
바깥은 추위 가득한 겨울이라지만, 이곳에만큼은 자그마한 실내 정원이 만들어져 있는데요.
 
어쨌건 무성히 핀 연푸른 수국은 붉은 햇빛이 닿지 않아 그 온연한 푸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피어난 꽃들을 향해 그의 시선이 잠시 가닿다가도, 그는 계속해서 걷습니다.
 
로넨 리하트:(불현듯 물었다.)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해보도록 해. 무엇이든. 추측하는 것까지도. 다.
 
데비 매그닛:... ... 제 사명은 세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서두를 꺼낸다.) 시기마다 금빛을 안은 용사들이 태어나 세상을 구할 사명을 지니며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갑니다. 용사는 대개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마물을 물리치는 인물로 그려지고요. (자신은 좀 다르지만.) 대부분이 사명에 걸맞는 삶을 살지만. ... . 아닌 이도 있었습니다. 최근 알게 된 사실로는요. (당신의 뒷모습을 문득 바라보았다.) 아르달 가문의 첫째 공자는 용사의 운명을 타고났으나 그와 다른 선택을 하였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 . (잠시의 침묵.) 아르달 공이 제게 '직접 물어보라'고 이르신걸로 보아. ... ... 당신과 그가 아주 밀접한 관계라 생각합니다. (가령. ... 본인이라던가 하는 것. 언뜻 보이는 펜던트의 줄을 흘끗 바라보았다.) ... ... 여기까지입니다.
 
로넨 리하트:(한순간 그의 전신이 창으로 비춰들어온 햇빛을 받아, 찰나 선명한 금빛을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곧장 이어지는 복도의 어둠 안으로 몸을 숨겼지만. 하얀 숨을 토했다. 겨울의 추위는 성 안까지 침입하지 못했는데도.) 금빛을 가지고 태어난 용사의 사명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마왕을 죽임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마왕은 흉포하고, 때로는 박쥐같은 날개나 뿔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며, 마물들을 부려 특히나 변방의 마을을 침략한다고들 하지. 그 때문에 그 애는 나를 말렸다. (목에 건 펜던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그맣게 움직여 가슴에 부딪혔다.) 누군가는 사명을 두려워하지. 누군가는 운명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실상, 내가 최초의 반역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랬기에 모든 제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야. (…진실?)
 
데비 매그닛:(그 애?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지칭하는 것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은 탓이었다. 설마하니 기껏해야 제 또래나 될 법한 당신이 여든은 족히 넘겼을 노인을 '그 애'라고 칭하는 건. ... ... 불가능하지 않나. 당신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 내가 모르는, 놓쳐버린 것들은 과연 무엇일지. ... ... . 해소되는 것은 없고 쌓여만 가는 것들이 존재했다.) ... 진실요? ... ... 제게 알려주실 건가요?
 
홀을 지나, 우리는 다이닝 룸 안으로 들어섭니다.
 
차려진 음식들은, 황성에서의 식사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게 차려진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는 제일 안쪽으로 걸어가 의자를 빼 앉고, 문가에 위치한 의자에 앉으라는 양 당신에게 눈짓합니다.
 
로넨 리하트:(식기를 들지는 않았다.) 그대가 이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면, 그렇게 하겠지. (건조한 푸른 눈동자가 당신을 올곧게 응시했다.) 그 전에, 괜찮다면 함께 식사를 하지. 앉아.
 
데비 매그닛:... (황성에서 평생을 몸담아온 그에게 있어서는 당황스러운 처사기야 했다. 식탁을 바라본 채 몇 번 눈만 꿈뻑거리다, 뒤늦게서야 자리에 앉았다. 불만을 가질 입장은 아니지 싶어, 빵을 들어 살짝 떼어먹는다. ... ... 이런 상황에도 행여나 독이 있는건 아닌지 의심조차 않는 태도.) 시험은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로넨 리하트:처음부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제멋대로인 말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따라주는 당신이, 로넨에게조차 좀 신기하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이 일듯 그의 눈동자가 한순간 일렁였으니까. 금세 잠잠해질 것이었더래도.) ……요리는 해본 적 있나. (용사에게 묻기에는, 너무나 소박하고 일상적인 질문이었을 것을 태연히도 내뱉었다.)
 
데비 매그닛:... ... (설마 여기에 독 들어있나? 싶어 빵 안쪽의 부드러운 부분들을 파먹다 말고 요리조리 심각하게 살폈다. ... 햇볕에 비춰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 요리요? (그리고 그 질문이 생소한 건 그조차 마찬가지였던지라, 잠시 침묵했나.) ... ... 제대로 해본적은 없지만 도운 적은 있어요.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같은 걸요. (요리라. 글쎄. 대접받으며 사는 용사들에게 어울리는 덕목은 아니었다. 그런 걸 할 시간에 검술이나 연습해야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으므로.)
 
로넨 리하트:(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빵을 요리조리 심각하게 살피는 당신의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식기가 한동안 멈춰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뭐. 어쨌거나.) ……이곳은 성 안을 제외하고선 온통 척박하여 제대로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그나마 성 근처에서 뛰어다니는 소동물들을 사냥해 먹는 것이 허기를 달래기엔 좋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계속. 자꾸만.) 동물을 해체해본 적은 없겠지.
 
데비 매그닛:... ... 아. 그렇군요. (겨울에서의 생존법을 알려주는걸까? 하지만 ... 생소하다. 왜지? 마치 ... 이 곳에 아주 오래 지내게 될 사람을 대하듯한 반응.) ... ... 없습니다. (검이 베야 하는 것은 생명이 아닌 악한 마물. 그렇기 때문에 그 외를 해하거나 베는 방법을 배운적도, 배우고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데비 매그닛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용사에 대한 이미지는 그러했다.) 사냥실력을 확인하는 것도 시험인가요?
 
로넨 리하트:(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그의 앞에 놓여진 그릇들은 말끔히 비워져있었다. 식기를 내려놓는다.) 네가 용사로서 배워왔던 것은, 전부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 충고하지. 하다못해 제국의 자들은 을 오래 만지고 있다면 피부가 얼어버려,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모르고 있으니 말야.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댔다. 당신을 보았다. 관찰하듯, 혹은 가늠하듯.)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네가 무얼, 할 것은 없다. 그 판단은 오롯이 나의 몫이니까. (분명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데도, 그는 당신이 자신의 아득한 아래에 위치한 것처럼 무례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데비 매그닛:(모든 순간은 용사임을 증명하고, 그의 가치를 시험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와 달리 몯느 것을 버리라고 말했다. 그래. ... 이 성 안에서 자신은 용사가 아닌 다른 존재라듯이. 그제야 눈이 마주친다. 푸른 눈. 바다도, 하다못해 하늘도 닮지 않은, 생전 본 적 없는 푸른 빛으로 빛나는 당신을 그 어떤 것으로도 묘사할 수 없었다.) ... ... (다만.) 절 도와주고 싶으신 건가요? (오만한 당신과, 그 앞에 앉은 건방진 애송이. 무례한 태도를 접하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용사란 자리는 원래 그러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자신을 낮잡아보고 있단것도 모르는걸수도. 세상은 지나칠정도로 그에게 늘 다정했기 때문에.)
 
로넨 리하트:도와줘? (그리고 마주한 눈은, 그 선명한 노란빛 머리카락보다도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순간이나마 작게 웃음짓고 말아버렸다. 그랬을 지도 몰랐다.) 그대는, 그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어디까지 세계에 헌신할 수 있나.
 
데비 매그닛:(웃었다.) ... (눈이 조금 커다랗게 떠지지만, 이어지는 질문에 방심은 금새 모습을 감췄다.) 어디까지요? (어려운 질문이다. 뭐.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당연 목숨을 바칠 수 있지요!라고 답할수도 있겠다. 그게 아마 가장 정답에 가깝기도 하겠지. 하지만 데비 매그닛이 사랑받았다고는 한들 제 목숨이 귀한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결국 달콤한만큼 사랑하게 되는 것. 죽음은 먼 이야기같게 느껴지나 제 운명에서 빼놓지 않을 수 없었지. 오늘 느꼈던 죽음이 다가오는데에 관한 감상은 그러므로. ...)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엔 들지 않겠다.) 제 사명이라 한들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릅니다. 정말 마물이나 마왕과 싸우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 제 사명보다는 제 목숨을 위해 싸우게 될 것입니다. 받은 것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 순순히, 제 목숨을 기꺼이 걸겠다는 말은.
 
로넨 리하트:모르겠나. (그러나 그는 그 대답에 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하지 않았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을 표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그저 올곧게 정리된 식기를 한 번, 당신 앞에 놓인 식기들을 한 번 바라보다,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에게로 가까이 걸어오는 몸짓은 당신이 몇 보았던 귀족의 움직임을 닮은 것처럼 보였을지도 몰랐다. 두어 걸음 쯤, 앉아있는 당신의 앞에서 멈춰선 그가 당신을 건조하게 내려다보았다.) 용사들 중에서도 가장 금빛을 품은 자가 그런 말을 읊나. (잠깐의 침묵.) 용사의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지?
 
데비 매그닛:(당신이 돌연 제게로 걸어오자 움찔 어깨를 떨고 쥐고 있던 빵을 엉거주춤 떨어트린다. 그런 교양, 예의범절같은 것과 데비 매그닛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괜히 당신과 황제가 겹쳐보였다. 검을 저 뒤에 세워두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지척에 서 자신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에는 어떤 감정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다던 겨울마냥. 당신의 눈은 겨울을 닮은 것이로구나.) ... ...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지요. 받아들이고, 습득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받은 것들을 잊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 용사의 덕목이라 생각해요.
 
로넨 리하트:(그는 한참 동안이나 입술을 닫고 서 있다가.) 식사가 끝나면 탑 위로 올라오도록 해라. 복도의 제일 끝 방은 살펴보지 말고. (그는 과연 당신의 노란 빛 앞에서 무슨 감정을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나.)
(어쨌거나 그는 말을 마치고, 당신을 남겨둔 채 다이닝 룸을 나섰다.)
 
데비 매그닛:... ... 네? (여기서 갑자기요? ... 덩그러니 남겨진 데비 매그닛은 그가 사라진 곳만을 바라보다가) 저기. ... (하는 목소리가 반사되어 울리는 것으로 결국 자기가 혼자 남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 ... . 식사를 마친다.)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도 없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불친절한 것을 넘어 웃길 정도로요.
 
결국 당신은 홀로 남겨진 공간에 남아 식사를 마칩니다.
 
데비, 아까 보았던 실내 정원이나, 당신이 깬 방, 그리고 복도의 방 곳곳들, ……그리고 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데비 매그닛:... ... (좀 둘러볼까. 탑 위로 올라오라고 했지만 다른데 가지 말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특유의 사고뭉치식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실내 정원으로 향한다.)
 
특유의 사고뭉치 기질이 발동한 모양이었죠. 당신은 아까 보았던 실내 정원으로 향합니다.
 
이제는 노을마저 진 시간이라, 더 이상 햇살이 비춰들어오지는 않았음에도 실내 정원은 퍽 밝았습니다.
 
푸르게 곳곳에 피어난 수국 꽃들과 더불어, 어라? 당신은 실내정원 한 켠에 어디론가 이어져있는 문을 발견합니다.
 
들어가나요, 데비?
 
데비 매그닛:예쁘다. ... (짧은 감상과 하께 꽃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 음. 들어가는 건 그런가? 일단 문을 슥 당겨본다. 문만 열어 안을 살펴볼까?)
 
문만 열어 빼꼼, 살펴봅니다.
 
안은, ……온실입니다. 겨울 하늘로부터 달빛이 조각나 유리 온실 안을 가득 비추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라난 식물들은, 아까 다이닝 룸에서 나왔던 샐러드의 재료이기라도 한 걸까요?
 
꽃들도 군데군데 피어있기는 합니다만, 키우기 위해 키운 것보단 잡초처럼 자라난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곳이 마왕성인지,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일상적인 공간을 보게 될 줄은 말이에요. ……잠시 기이한 광경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데비 매그닛:여긴. ... ... (기이하다. ... 그래. 그 얼음장같이 차가운 사내가 저와 같은 인간이란 걸 느끼게 하는 이 순간들이. 문을 잘 닫고, 이어서 깨어났던 방으로 가는 동안 복도의 방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층계를 올라오면, 그곳은 당신이 처음 문을 열고 나왔던 방의 복도입니다.
 
크고 넓은, 길게 늘어진 복도들의 방.
 
방 문들은 닫혀서 잘 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몇 방들은 잠겼다기보단 문고리가 녹슬어 잘 열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겨우 한 문을 열었지만, 안은 온통 어두웠고, 가구도 물건도 놓여있지 않은, 말 그대로 빈 방이었던지라.
 
결국 남은 곳은 그가 살펴보지 말라 하던 복도 끝 방 뿐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데비 매그닛:(일단 복도 끝 방 앞에 서본다. ... 왜 여길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까? 본인 방일까? 한 번 문을 주욱 살펴보다 문을 열어보았다. 수상한 것이 있는지.)
 
문을 열면, ……평범한 방 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당신이 깨어난 방의 구조와 비슷해보입니다.
 
침대며 책상, 옷장, 그리고…….
 
구석에 놓여있는 흑색 도신을 가진 검.
 
수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은, 그의 방인 걸까요?
 
그때, 당신의 어깨 위로 누군가의 손이 텁, 하고 올라옵니다.
 
로넨 리하트:…….
 
데비 매그닛:... ... 아. (난처한 표정이 스쳐지나간다.) 죄송해요. (직접 문을 잘 닫고서.) 열어보려고 한 건 아닌데. ... ... . (핑계도 좀 대보고.) ... 그, (그러고보니 이름도 모르는구나.) 그쪽 방이에요?
 
로넨 리하트:(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면, 손을 떼어냈다. 무어라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한 차례 눈을 깜빡이면 그런 기색은 사라진다. 가까워졌던 거리를 벌리듯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선.) ……그렇지. (그리고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데비 매그닛:... ... (이번 침묵은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런지.) ... 저기. 그런데요. 저희 아직 통성명도 안 했는데. ... ... . 이름이 어떻게 돼요? 저는 데비거든요. 데비 매그닛. (제 또래를 대하듯 스스럼 없었다.)
 
로넨 리하트:(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이렇다 명확하게 표기할 만한 감정이 그에게 드는 것도, 그 자체가 생경한 일이었겠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탑으로 올라가기 위한 층계가 앞에 존재했다.)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런 고리타분한 말밖엔 내뱉지 못했다.)
 
데비 매그닛:... ... (층계가 있지만, 올라가지 않은 채 당신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일종의 반항처럼.) 모르는데요.
 
로넨 리하트:(뒤따라오는 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반쯤 뒤도는 모습이 느렸다.) …아니. 그대는 알고 있어. (그는 당신의 행동을, 일종의 고집이라 표현했다.)
 
데비 매그닛:그래도요. (여전히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기왕이면, 본인한테 듣는 것이 가장 좋잖아요. 나도 '용사'같은 칭호 말고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 더 좋고요. (무해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기라도 하듯 살짝 웃음을 그린다.) 시험이 뭔진 모르지만 꽤 걸릴 것 같으니까, 그동안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을거고요. 네?
 
로넨 리하트:(그 또한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시험은, 내일. 해가 뜨는 시간이면 끝난다. (당신의 웃음을 앞두고서도 무미건조한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러니 정을 쌓는 행위는 무의미해. 더 괴로울 뿐이다. ……내 말을 들어.
 
데비 매그닛:... ... 딱딱하시네. (선명한 불평불만. 숨기려는 의도도 없는 것 같았다. 슬쩍 옆을 보며 중얼거리다 다시 슬그머니 당신을 향해 시선이 향하는데.) 이름을 알려주는 건 정을 쌓는 행동까지는. ... 아니지 않아요? 그냥 가장 기초적인 인사같은건데. ... .
 
로넨 리하트:(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행동인 줄 알고. …헛숨이 터졌다. 길게 눈을 감았다 뜬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사람을 앞에 두고, 사람과 대화하자니. 이 짧은 시간조차 어색한 것들 투성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여야하는 제 입술도, 감정에 요동치는 가슴도, 아주 오랜 시간 이전에 잊어버린 것 같았던… 분노 따위도.) ……이름은, (때문에 이상하게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 미세하게 얼굴이 찌푸려지다 말았다. 손을 들어 목을 매만졌다.) 이름은, …내일, 시험이 끝나는 때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목소리가 텁텁했다.)
 
데비 매그닛:... ... 그때까지 그럼 '그쪽'이라고 불러야 하는데도요? (화낼 것 같은 기색에 약간 접고 들어오듯 슬쩍 층계 몇 개를 올랐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 ... 그건. ... 좀. 그렇지 않나?
 
로넨 리하트:(층계를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지만, 높이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했다.) 나를 지칭할 단어를, 그 사이에 잊어버렸나.
 
데비 매그닛:... ... (마왕이라고 말하고 싶은걸까?) ... 그것보단 이름으로 부르고싶어요. (고집스럽다.)
 
로넨 리하트:어째서?
 
데비 매그닛:... 엄. (뜸들이고서.)
그냥요?
 
로넨 리하트:…….
…. (입술을 열었다가,)
(…입술을 닫았다.)
(뒤돌아 층계를 올랐다.) 로넨… 리하트. (집중하지 않았다면, 찰나에 부서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몹시도 어색하게.)
 
조금 더 올라가면 탑 위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뾰족하게 솟은 탑은 이제 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는 하늘에 맞닿을 듯, 쏟아지는 별을 맞을 듯, 아득하게 높습니다.
 
성채는 검고 단단하게 막혀있습니다.
 
지능 판정.
 
데비 매그닛: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아까 성 안에서 볼 때에는 유리처럼 성의 천장이 투명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것에 집중할 새 없이, 바람이 한 차례 불었습니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희끗하니 당신이 건너온 겨울 숲과 얼어붙은 강이 보입니다.
 
눈이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뺨을 스치는 차디찬 겨울 바람은 여전했건만, 그것이 머리칼을 헝클이고 지나갔건만.
 
왜 눈 덮인 일대를 보며, 왜 그것이 아름다워 보였나요.
 
치명적일 만큼.
 
로넨 리하트:(그는 난간에 가까이 걸어가며,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이곳의 밤은, 짧은 편이다.
 
데비 매그닛:... ... 그렇군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흘끔 바라보았다. 왜 당신은 이 겨울과 잘 어울릴까. 때론 고독이 사람을 아름다워보이게 한다는 걸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다. 아름다운 존재는 그만큼 고독하다고. 그러니 이 아름다운 겨울와 새하얀 눈밭이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당신은. 얼마나 고독한 걸까.) 취침시간이 그만큼 빠른 편인가요?
 
로넨 리하트:(겨울 눈밭에선 아무리 소리쳐도 눈이 소리를 흡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겨울은 봄이나 여름보다도 밤이 훨씬 길지만, 지금은 다르다. 용사와 마왕이 만났으니까….
 
데비 매그닛:... ... 관련이 있는 거예요?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난다고 그런 변화가 ... 있을 수 있나?)
 
로넨 리하트:(그는 답하지 않았으나, 그 침묵이 긍정임은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제국에서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몹시 유동적이지.
 
데비 매그닛:(하지만 아무리 그런 설명을 들어도. …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마왕이란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 이것도 ‘시험’과 관련있는 정보인가요?
 
로넨 리하트:비슷한 셈이지. (아무래도 오늘 밤은 계속해서 눈이 내리지 않을 심산인 모양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과, 그 위로 떠오른 달을 보았다. 어쩌면 그 너머까지도 바라보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대에게 펜던트를 전해준 자가. (그래서 그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도,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몇 살 처럼 보였나.
 
데비 매그닛:(또 다시 순식간에 바뀌는 주제. 따라가기 위해 바삐 머리를 굴렸다. 펜던트를 전해준 자라면 역시. …) … 글, 쎄요. 여든세? … …
 
로넨 리하트:…………용사는 원래 가정에서 격리되어, 거의 태어나자마자 궁으로 향하지.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에겐 겨울 바람이 익숙했기 떄문에.) 는, 조금 달랐다. …그대는 어떠했나.
 
데비 매그닛:저는. … 황성과 멀리 떨어진 외지 시골마을 출신이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용사인 게 싫으셨는지 저를 황성에 보내지 않기 위해 집에 숨겨두셨지만. … (잠시 바닥을 응시했다.) 걷기 시작한 제가 마음대로 집밖을 나돌아다니다 마을사람에게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사실 거기까지 기억나지 않지만요. 그래도 가족들이 절 예뻐하셨단 것 정도는 기억해요. … … 로넨은 어땠어요? (쉬이 이름을 논한다.)
 
로넨 리하트:(그러나 때로는 그런 것이 있다. 아무리 밤 동안 눈이 짙게 쌓여 그 아래 파묻힌 것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정오의 태양 아래 눈이 녹아 보이지 않았던 것의 형체를 발견할 수 있고 마는, 기적같은, 겨울의 한낮. 그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흉터로 얼룩진 손으로 눈밭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당신과, 그가 만났던 용사들의 차이점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나는 궁으로 향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곳은 하필이면 공작 가였고, 황가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까.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냈다. 먼지는 잔뜩 쌓이고, 색도 바래 원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 그리고, ……티오는 그런 나를 아주 잘 따랐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제국의 사정은 알고 있다, 아르달이 변방으로 몰려난 것도… 나의 이름이 뒤바뀌어 불리고 있는 것도, 그 이후로 배출되는 용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세상에 만연했던 진실을 감추어버리게 된 것도. ……알고 있다.
 
데비 매그닛:그럼, … (두꺼운 암막커튼이 떠오른다. 겨울을 느끼지 못하도록 따뜻하게 감싸주는 척 하지만 사실 볕 아래 가장 어둔 그림자 밑으로 꽁꽁 숨겨버렸던 그 이름을. … … . 로넨 아르달. 그게 당신의 이름이로구나.) … 그건 반역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렇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더 있었다. 그런식으로 용사로 길러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차라리 도망갈 것이라면. 어차피 반역자의 이름이 붙은 삶이라면 차라리. … … . 아주 영영 떠나버리는 것도 좋았을텐데.) … 당신은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세상을 모두 통달한 것처럼 구는 행동 뒤에는 늘. … … . 외로움이 따른다.)
 
로넨 리하트:(그리고 또한, 달은 가장 어두운 때에 떠오르기 마련이었기에. 당신은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런 물음이 들린다. 반역의 이름을 업은 전 용사가, 이제는 마왕이. 당신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모든 용사가 가지고 자라는 사명, 의무, 책임. 제일 간단한 언어로 서술되어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따르기 어려운 문장, 혹은 운명. 그가 말했다. 고저 없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데비 매그닛:(용사란 뭘까. 마왕이란 뭘까. 자신이 구전처럼 들었던 이야기 속의 마왕은 박쥐같은 날개에 뿔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 안달난 살인광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전해져 들려오던 설명들 중 그 무엇도 그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일까. 그럼에도 그는 마왕인걸까? … … 나는 무얼 위해 여기까지 왔던걸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마물은 존재한다. 하지만 마물을 호령한다는 마왕의 존재가 없는데 우린 대체, 누구와 싸우고 있는걸까. 누구를 미워하고 있는걸까.) 당신은 마왕이 아니라 용사예요. (살짝. 손을 뻗어 당신의 옷춤을 붙잡았다.) 당신이 이 곳에 존재하는 게 정말. … 세상을 지키는 일이 맞나요? … 대체 마왕이란 게 뭔데요? (당신은 내게 용사의 사명과 덕목에 대해 말했다. 그렇다면 마왕을 구분짓는 정의란 무엇인가.) … 이젠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그냥. … … 사람이잖아요.
 
로넨 리하트:(붙잡힌다. 온기가 전해졌나. 사이를 파고드는 바람이 하도 익숙했던 탓에, 잘 모르겠다. 이제는. 그는 무감하게 당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당신의 손을 떼어내듯 팔을 움직였다.) 그것을 판단하는 건 네가 아니다. 나 또한 아니다. (세상을 지키는 일, 그리고 마왕의 역할. 그것은 시험이 끝난 다음에야, 해가 뜬 다음에야 알려주겠지. 그럼에도 왜 그냥 사람이라는 말이, 그토록 박혀 들어오나. 용사와 마왕을 구분짓는 일에는, 무척이나 간단한 증명 방법이 있었는데도.) 제국에는, 이제 그대를 기억해줄 이가 남아 있나. 그리고 그렇다면, ……데비 매그닛. 그대는 여전히 세상을 수호할 의지를 가질 수 있겠나.
 
데비 매그닛:(떨어질 의사가 없다는 것처럼 붙잡은 손에 살며시 힘을 준다.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 걱정스러움이 걸려 있었다. 정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당신의 충고에도. 그래. 데비 매그닛은 말을 잘 듣는 학생은 아니었다. 늘.) … 네. (대답은 또, 간결하다.) 세상을 구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 … . 그걸 위해 당신에게 해가 가는 일을 하라면 못하겠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남아있어요, 로넨. …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남아있어요. (영원히 기억에 남는 인물이 되는 것?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죽으면 끝인 삶. 기왕이면. …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좋을테니까.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 시종을 들었던 마리도, 마굿간의 앤서니도. 결국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라가는 한낱 사람일 뿐이니까. 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양 구는거야. …)
 
로넨 리하트:(그는 당신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고, 때문에 당신의 경직된 얼굴 근육이나 새빨개진 콧대, 귓가를 볼 수 있었다. 그래. 시린 겨울에 익숙한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이상하게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손에서부터 아주 오래 전에 잊어버린 여름날 햇볕을 떠올리고야 말았으나, 그 뿐인, 일이 아니었겠나.) 그러나,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있는 곳이.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이 세계 뿐이기도 하지. (한낱 사람을 논하기엔 우리가 짊어지는 사명은 너무나 막중했다. 감히 세계를 등에 업으려는 한낱 인간이, 저 밑바닥까지 망가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금 팔을 떨쳐내려 움직임을 보이다가, ……멈추었다. 그저 말했다. 물었다.) ……슬슬 추운가?
 
데비 매그닛:… … 로넨! (제대로 된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다는 듯 그가 당신을 불러세웠다. 뭐. 늘 그런 것처럼 당신이 돌아볼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쓸데없이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희망적이었고, 고집스럽다. 그것은 때로 사람을 기쁘게 하지만 따로 슬프게 해서. … … .) 그러니까 다음엔 꼭 같이 가요. (당장 오늘 본 사람을 향해 무엇을 토해내려고. 무엇이 그리 서럽다고. … … . 하지만 들꽃은 원래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법이기에.) 여기서 같이 나가요. … … . (과연 세상의 진실을 보고도 같은 말을 할까? … … 글쎄. 두고봐야 알겠지.)
 
로넨 리하트:(그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 확신했을 것이다. 이 혹독한 겨울에 들꽃은 피어날 수 없다고. 고로, 봄 같은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다고. 시험을 끝내야 한다고. 해가 뜨기 전에 검을 빼들어야만 한다고, 다시 또 업을 뒤집어써 색다른 계절이 이 겨울성에 방문하기까지…….) ……. (그럼에도 그는 당신을 떨쳐낼 수 없었다. 처음으로, 그가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결코 봄은 겨울을 이길 수 없는데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곳에도 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태양을 머금은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밤은 아직 길다. 그럼에도 그대는 시험을 끝내겠나.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있나. 홀린듯 물었다.)
 
데비 매그닛:… …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당신은 주어진 값을 도출해내는 기계마냥 자신을 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금빛을 지녔다. 봄과 여름의 계절을 누릴 자격을 지녔다. 이 거대한 겨울의 그림자에 잠겨죽지 않을 권리를 지녔다.) … 아침이 온다고 해서 내 마음이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로넨 리하트:봐야 알 일이지. (당신의 손을 떨쳐내지 않은 채, 그가 몸을 돌렸다.) ……그럼에도 아직, 그대에게 겨울은 차다. 우선은 따라와. (층계를 내려간다.)
 
데비 매그닛:… … (이번에는 대답없이, 당신을 따라 나섰다.)
 
 
당신은 이미 마왕의 소굴이라는 이곳이 평범한 사람이 사는, 사실은 고독한 성채일 뿐이라는 생각을 져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어요!
 
그에게는 뿔이 달려있지도, 날개가 달려있지도않았으며 외로움 한 가운데 있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층계를 내려갈 수록 별빛도 옅어져갔습니다.
 
분명 당신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오롯이 혼자 서 있는 위태로운 기분을 받습니다.
 
어딘가에 가까워질 수록 그런 기분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습니다.
 
소리, 무언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네요.
 
알고 있는 목소리입니다.
 
용사님.
 
말합니다.
 
용사님.
 
소리칩니다.
 
마왕을 물리치셔야 해요.
 
이 제국의 자랑스러운 용사여.
 
마왕을!
 
용사님!
 
……숨을 들이킵니다.
 
환청에서 벗어나 선 곳은, 분명히 닫혀있었던 문 앞입니다.
 
불안이 순식간에 몰려옵니다.
 
빛이 가득히 일렁였던 천장은 별빛조차 투과해내지 못하고 검습니다.
 
이렇게도 다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만치 암흑으로 뒤덮인 성 안.
 
홀에 피어있던 꽃향내는 기이한 마법 같고, 그는 닫혀있던 문을 엽니다.
 
아스라한 촛불 빛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방 안의 광경이 눈 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제발',
 
'죽어',
 
'죽여줘',
 
'살고 싶어',
 
'죽고 싶어',
 
……시커멓게 굳은 피입니다.
 
벽에 피로 온통 낙서가 되어 있습니다.
 
미치광이가 칠갑을 해 놓은 듯한 이 방에서, 아니요, 이 방은 애초에 왜 존재하는 건가요.
 
인간의 피.
 
어두운 방.
 
잠시 그의 그림자를 봅니다.
 
촛불에 일렁이는 그의 그림자가.
 
……마왕?
 
SANC 0/1
 
데비 매그닛: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는 비로소 당신의 손을 떨쳐내고 거리낌없이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구석에 놓인 책상에서 낡은 공책을 하나, 손에 듭니다.
 
돌아보지 않은 채 공책의 해진 표지를 내려다봅니다.
 
로넨 리하트:이건…… 전대 용사들의 수기가 적힌 공책이다. (이것도 그 '진실'과 연관되어 있을까?)
 
데비 매그닛:(눈을 부벼 제대로 그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 환상에 속지 말자. 그는 ... 인간이야. 적어도 내가 본 그는 그래.) ... ... 벽에 있는 글씨는. ... ... 누가, 적은 거예요?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하고싶지 않았다.)
 
로넨 리하트:……. (뒤돌아 당신에게로 가만 공책을 건네는 그의 손등이, 난자된 흉터들로 가득했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부터는, 그대가 판단해야 할 일이지. (다만 그가 자행한 반역을 그만이 수행하지 않았음은, 기억해야 할 것이었다.)
 
데비 매그닛:... ... (공책을 받지 않았다. 일단은. 그의 손등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기에 시간을 흐른다. ... ... .) ... ... (그 뒤, 공책을 받았다.)
(공책을 살펴본다.)
 
검은 색 표지는 낡고 바래 기존의 색깔을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공책은 꽤나 두꺼운 편입니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을 잇습니다.
 
로넨 리하트:…그것을 다 본 다음에는, 홀을 지나 다이닝 룸의 반대편에 있던 곳으로 와라. (당신을 지나쳐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지. ……용사.
 
그는 자리를 떠나고, 당신의 손에는 아마도 진실이 담겨있을 공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새벽까진 아직도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데비, 공책을 넘기나요?
 
데비 매그닛:(후. ... 숨을 고르고. 천천히 공책을 넘긴다.)
 
당신은 공책을 넘겼습니다.
 
제일 첫 장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모든 진실을 깨우친 용사들에게.
 
……공책을 읽습니다.
 
* * *
 
왜 내가 선택되었냐 묻는다면, 그저 운이 없어서였을까.
 
…….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
 
축복받는 용사.
 
…….
 
용사는 마왕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용사의 사명이다.
 
그리고 그 사명을 완수한 용사는,
 
다음 대의 마왕이 된다.
 
…….
 
이것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연극, 삿된 것들의 배를 불리는 유희거리.
 
…….
 
하지만 난 내가 불쌍해요. 저는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아요!
 
…….
 
그러나 누군가는 죽여야지만, 세상을 존속시킬 수 있다.
 
…….
 
용사의 사명을 다해라!
 
…….
 
나 내가 불쌍해.
 
…….
 
다음 대의 용사가 불쌍해.
 
…….
 
노란 색을 타고 태어날 새 생명을 저주해.
 
…….
 
만약,
 
우리가 용사가 아니었다면.
 
내가 마왕이 되길 포기한다면.
 
그 업은 누구에게 돌아가나.
 
…….
 
이건 영원한 저주다.
 
…….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
 
* * *
 
그리고 그 제일 마지막 장에,
 
선명한 잉크로 쓰인 글이 적혀있습니다.
 
직감합니다.
 
로넨의 글입니다.
 
[ 용사이길 포기하는 자들은 과연 누가 구원해주나. ]
 
[ 용사의 사명을 포기하는 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
 
[ 그럼에도 이 세상은, ]
 
[ 지켜 마땅하지 않나. ]
 
…….
 
SANC 1/1D3
 
데비 매그닛: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치 1 감소.
 
……그러니까 우리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도구입니다.
 
용사와 마왕이라 이름 붙여진 연극의 배우이며, 이것은 결코 무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인형극입니다.
 
옛날 옛날에, 어떤 용사가 있었습니다.
 
용사의 사명은 마왕을 무찌르는 것이었고,.
 
그 용사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면 기이하리만치 빨리 지나간 밤과 함께, 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이번의 연극을 끝내야 한다 재촉하기라도 하듯 햇빛이 눈부십니다.
 
데비, 어떻게 행동하나요?
 
데비 매그닛:(이것이 그가 말하려던 진실이었나. 그가 논하고 싶었던, 숨기고 있었던. 그의 발목을 잡았던. ... ... . 데비 매그닛은 손끝으로 글귀를 더듬었다. 나 내가 불쌍해. 그 문자들이 마음에 걸렸던 탓에. ... . 공책을 덮는다. 동이 트고 있으므로 그와의 약속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약속장소로 향한다. ... ... 저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던, 을 들고서.)
 
새벽을 걸어 복도를 지납니다.
 
푸른 수국이 무성히 피어있던 홀의 실내 정원을 지나쳐, 우리가 조촐한 식사를 했던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세상에서 가장 올곧은 마왕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습니다.
 
…손에는 흑색 도신의 검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수한 들의 묘비입니다.
 
누군가들을 기리듯이 무수히 바닥에 꽂혀 있는 가지각색의 검들.
 
세계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어쩌면 희생당한 용사들의 검.
 
그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찬연하게 비쳐오는 빛줄기들이 검날을 스쳐 우리의 발 밑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용사인 한, 어떠한 형태든지.
 
결말을 향해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로넨 리하트:(검의 끝이 바닥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당신을 돌아보았다. 내리깔려있던 눈이 시간을 두고 노란 눈동자를 올곧게 마주보았다.)
 
데비 매그닛:... ... (첫 말을 어떻게 떼야할까. 알아버렸다고? 왜 그랬느냐고. 후회는 않느냐고. 하다못해 아직도, 당신이 불쌍하느냐고. ... ... .) 책, 읽었어요. (그는 여지껏 검을 쥐지 않았다. 낡아빠진 공책만이 손에 걸렸다.)
 
로넨 리하트:그랬겠지. 그대는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 같으니까. ……성에서도 이리저리 들쑤셨을 듯 한데. 틀린가.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니, 오히려 그는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바닥을 끌던 검이 고쳐 쥐여졌다. 그가 당신을 본다. 그가, 반역의 용사가, 그리고 마왕이.)
……마지막 시험을 치룰까, 용사.
 
데비 매그닛:당신은 운명을 괴로워했어요. 하지만 그를 부정하며 도망치지 않았죠. ... ...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베어가면서까지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뭔가요? (당신은 검을 고쳐쥐었으나, 그는 여전히 검을 쥐지 않았다. 오만인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맡지 않는 이유는 뭐에요? ... (걸음을 딛어 당신에게 향한다. 궁금했다. 탐구한다. 무수한 검의 묘비 앞에 굴복하며 포기하는 선택지도 분명 존재할텐데. 용사들의 혼란. 고통. 세상을 비출 태양이었으나 단순히 부속품으로 전락한 그들의 절망.하지만 그것은 전부 당신이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 당신이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데비 매그닛에게도 그러하듯이. 이 '시험'이라는 우스운 이름을 빌려서.)
 
로넨 리하트:(그렇게 묻는다면,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이유도 충분했다. 당신이 세상을 짊어지고자 검을 들지 않는다면 제게로 다가오는 당신의 목을 당장 베어버리면 그만이었는데, 왜 그는 지금도 대답하기 위해 입술을 열고 있었나.) …반역은 용사를 죽인 마왕에게 주어지는 칭호이지. 용사가 마왕을 죽여야 한다는 명제가 부정당하면, 그때부터 그는 반역자다. 반기를 든 사람이다. 그리고 그 반역자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 (이것을 응당 숭고한 희생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신보다도 더욱 긴 시간을, 이 겨울 안에서 보냈을 터였다. 누군가는 자신보다도 더 많은 용사를 죽이며 밤마다 악몽 가운데 뒤척였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걷잡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생각하기를 관둔 이유였다. 부속품으로 사용하려면, 사용해라. 기꺼이 도구가 되어주겠다. 마왕이 되어주겠다!) 그렇게 누군가가 사랑하는 세계가 유지된다.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것을 볼 수는 없더라도. 그가 검날을 들었다. 칼 끝이 당신의 목을 향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용사, 데비 매그닛. 나, 마왕 로넨 리하트가 마지막 시험을 내린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태양이 필요했다면, 그는 계속해서 태양을 떠올리기 위한 어둠 가운데 달로 존재하리라. 그의 생각이 멈춰있는 한은.) 용사의 사명을 완수하라. 그대. 마왕을 죽여 진정한 용사가 되어라. (그가 견딜 수 있는 한은.)
 
데비 매그닛:(마지막 시험. 당신은 내게 검을 들라 말한다. 자신을 죽이라 말한다. 기꺼이 새하얀 대지 위에 붉은 선혈을 그어 이 땅을 차지하라고. 자신의 고독을 가져가라 말한다. 사랑이란 것은 어찌 이렇게 고통스럽기만 한지. 어쩜 이렇게... ... . 하릴없이 나를 희생하게 만드는지. 그리하여 그 사랑의 의미조차 퇴색되게 하는지.)
... ...
내가 검을 들지 않으면.
당신은 날 벨까요?
 
로넨 리하트:(입술을 달싹인대도, 눈밭 위에서처럼 하얀 숨은 터져나오지 않았다.)
……그렇겠지. (답은 간결했다.)
(그러기에, 이름을 묻지 말라 말했었건만.)
 
데비 매그닛:... ... 당신은 마왕이 아니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요.
당신은 그냥. 사람이에요. 로넨이란 이름의. ... ... 운명에 취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으면 안 돼요.
(자신의 목에 칼이 겨눠져 있음에도 그는 당신에게 걸음을 딛었고, 언 뺨 위에 손을 얹었다.)
... ...
당신의 말이 맞아요. 희생이 있어야만 우리는 세상을 유지시킬 수 있어요. 그래야만 모두가 자신의 일상을 누리겠죠. 하지만 로넨. ... ...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데비 매그닛:세상이 존재한다 한들 당신은 영원히 고독할텐데. 그게 ... ... 무슨 소용이에요? (울 듯한 얼굴로 당신을 본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이 대체. ... ... . (이해할 수 없다. 왜 한 사람만이 고통받아야하는지. 왜 모두가 이 진실을 숨기는지. ... 왜 아무도 그의 고통을 나누려하지 않는지. ... . 그래. 세상은 좀 같이 구하자고. 그러면 안 되겠느냐고. 그렇게 말하고싶었다.)
 
로넨 리하트:(운명에 취한 적 없다, 다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그랬기에 로넨 아르달은…… 로넨 리하트는, 세상에 반기를 들었다. 용사이길 포기하는 자들을 위해 마왕이 되었다. 마왕이 되었고, 또 마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자처함은 분명 운명의 농간에 휘둘리는 가엾은, 저주받은, 금빛을 품고 태어난 자들을 위한 일종의 구원과도 같았을진대.)
(당신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자신이 이어서 적어가고 있는 이 반역의 이야기가,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야기한다.)
(얼어붙은 뺨에 닿는 온기가 그렇게 이르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다잡았다. 검을 고쳐 쥐는 순간 목날에 닿은 검날로부터, 또 당신의 살갗으로부터 새빨간 피가 흘렀다. 그래. 살아있는 인간의 피가.)
스스로 괜찮다 이르는데, 주제넘게 그것을 판단하려 드나. 그대, 용사가. (왜 한 사람만 고통받냐고? 왜 모두가 이 진실을 숨기느냐고, 왜 아무도 마왕의 고통을 나누지 않느냐고.)
(그것은 바로 그가 그것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희생한 앞선 용사-마왕-들이 있었기 떄문이다! 그는 그 의지를 저버릴 수 없었을 뿐더러, 당장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로넨 리하트:내가 영원히 고독하다 한들, 세상은 존재하니까. (그런 말밖엔 할 수 없었다.) 같이 이곳을 나가자고? 이미 이렇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생명을 잉태하며, 그들을 낳고 기르며, 그들은 일상을 영위한다. (오히려 그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단 것처럼 바라보았다. 감정의 편린들이 드물게 들끓어 눈밭을 벗어나 형체를 드러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내가 묻지. 그대는 우리의 어깨 위에 놓인 수많은 생명을 감당할 자신이 있나. 세계의 멸망을 책임질 수 있나.
 
데비 매그닛:(목에서 통증이 느껴져 어깨를 움츠린다. 한쪽 눈을 질끈 감는다. 새카만 검날에서도 섬광이 돌았고 그것은 분명 자신을 영원한 적막 안으로 밀어넣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난 용사가 아니라 데비예요. 데비. 데비 매그닛.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생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숨쉬듯 자연스럽다.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하지만 세상을 사랑한 죗값이 죽음이라면. 영원한 겨울 안에 갇혀있어야 할 형벌을 받는다면 누가 반긴단 말인가.) .. ...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세계의 법칙을 어기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그 원망을,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받을 질타의 시선을 참을 수 있겠냐 묻는다면. ... .) 아뇨. ... 책임질 수 없을 거예요. ... 나는 한낱 인간인걸요. (그래.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이 불공평한 것이다. 고작. 한 명의 인간에게 모든 생명과 세계의 멸망을 짊어지게 하는 건.)
... ... 그러니까. 같이, 생각해봐요.
(공책을 손에 놓는다. 당신의 다른 뺨 위에 또 손을 올렸다.)
당장 나나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세상은 멸망하지 않을거예요. 확신해요. 누구도 용사와 마왕이 죽지 않은 세계가 어떤지 경험해보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어쩌면. ...
(허황된 희망. 거짓된 약속. 그럼에도 희망은 존재해야만 했고, 우리는 이 운명을 지고 살아가야하니까. ... ... .)
생각해봐요. 고민해봐요. 같이요. ... ... .
 
데비 매그닛:혼자 지내기에 이 성은 너무 넓잖아요.
 
로넨 리하트:(솔직히 말해, 그의 시험에서 당신은 탈락했어야 함이 옳았다. 당신은 정의로웠으나 유약했고, 세계를 사랑했으나 마왕에게마저 제 이름을 알려주었다, 마왕의 이름을 알아내었다. 용사의 사명을 완전히 저버리진 않으나 누군가의 희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가 봐온 용사 중 제일 금빛을 형상화한 데비 매그닛은 마왕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수히 검을 잡아 용사들을 자진해 희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끔 만들었던 그의 손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을 죽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원하던 겨울에 색다른 계절, 색다른 용사, 그래, 봄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겨울 바람에도 시리지 않던 그의 뺨을 녹이고 있었기 떄문이다.)
(그러니까, 자고로 사람의 온기란, 피부 뿐 아니라 살갗이며 뼈며 근육이며 온갖 것으로 둘러싸인 마음마저도 녹여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사람을 만난 지 오래 되었던 그의 겨울성에 침입한 용사를 떨쳐낼 여력이 생겨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 온기로 하여금 자신에게도 있던 온기를 발견하고 말았다. 눈밭 밑에, 아주, 아주 밑에 파묻혀 있었던.)
(자신 또한 사람이었다는,)
(그런 사실을.)
같이……. (그 단어를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말아서,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결국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긴긴 시간 굳건하게 서있던 마왕의 등이 굽었다. 우뚝 서있던 설산의 눈들이 하나 둘 쓸려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가령 그가 기억하던 여름 날의 풍경,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얼지 않고 물결치던 분수대의 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로넨 리하트:(……목에 걸려있던 푸른색의 펜던트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
(희망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문제였다, 그렇게 인간은 실패한다. 로넨은 그렇게 생각했다. 의무를 져버려선 안됐다. 지금도 살아 숨쉬는 수많은 생명을 기억해야 했다. 팔을 휘둘러. 휘두르기만 하면, 당신의 목을 베어내기만 하면. …눈이 마주친다. 그렇다면, 이곳의 겨울과 제국의 여름은 계속해서 이어질텐데.)
(그는 불현듯 다른 것을 묻는다.)
내가 불쌍한가?
 
데비 매그닛:(사람은 숙명으로 살 수 없다. 의무로, 사명으로도. 우리를 살게하는 것은 결국 사랑, 희망같이 자질구레하고 어쩌면 쓸모없는 것들이다. 당신을 버티게 한 것도 결국, 흐려질지언정 무너지는 것 조차 버겁게하던 온기에 대한 기억 때문이겠지.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주 짧은 가족들의 사랑, 포옹, 온기. 그것들로 데비 매그닛은 살아갔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가족이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데비 매그닛은 용사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 또한. 그런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소중하기 때문에. ... ... . 당신은. 사람은 하루를 버텨간다. 차갑게 식어있기만 하던 두 뺨에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이 보였다. 빙산과 같았던 당신의 시선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것이 보였다.)
... ... 어쩌면요.
... 하지만 그래서 당신을 돕겠다고 말하는 건 아니예요.
그냥. ... ... .
그러고 싶어서요.
(어쩌면 영원한 겨울안에 함께 갇히게 된 것이라 할지라도. ... 그래. 적어도 우린 혼자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괜찮을거라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그리하여 우리, 함께 겨울이 아닌 봄으로 살아가리라고. ... 망설임조차 없이 확신했다.)
 
로넨 리하트:(그러니 당신은 누가 마왕이었든지간에 그런 발언을 했을 것이다. 그 혀로 마왕의 심장을 녹이고 칼을 놓치게 만들고, 그 눈빛이며 선명한 금빛으로 눈을 아리게 만들 것이다, 감게 만들 것이다, 밤이 저물고 기어이 태양이 떠오르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봄이 도래하고 만다면, 정녕.)
……난,
…….
언제든지 그대를 죽일 수 있어.
알고 있나.
 
데비 매그닛:... ... .
하지만,
그러지 않을거잖아요.
(확신.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 태양빛을 받아 머리카락이 금실처럼 흩어졌다. 마치. 이 겨울 땅 위에도 드디어 봄이 오듯이.)
 
로넨 리하트:……그걸 확신해선 안 돼. (그럼에도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달이 저물듯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나는 언제든지 검을 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검을 바닥에 꽂아넣었다.)
(옛 용사들의 검처럼.)
(그들을 기리는 검처럼.)
 
로넨 리하트:……이 모든 반역을 책임질 수 있겠나. 데비 매그닛. (마지막 물음을 건넸다. 시험이 끝나간다.)
 
데비 매그닛:(그래. 섣부른 확신은 화를 부른다. 하다못해 이런 중대한 사항에서는. ... ... . 그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영웅이며 용사로 살아갈 것이며, ... 그래. 어쩌면. ... ... 반역자는 당신이 아니라 데비 매그닛. 그다.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거스르며 겨울에 머물기로 했으므로. ... .)
책임질 수 있어요.
(대답한다.)
... ...
당신이 다시 살게 할 거예요.
당신은.
 
데비 매그닛:그럴 가치를 지닌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 ... 책임지겠다 말한다. 이 세계를 구할 다른 방법을 반드시 찾겠노라고.)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냥. ... 사람이기에.)
 
그의 흑색 검은 용사들을 기리는 검과 나란히 꽂히고,
 
그것은 곧 마왕 로넨 리하트로서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을 숱하게 무너지지 않게 세우고 가다듬었던 해진 맹세는 바닥에 추락했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온기로요.
 
겨울성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마왕의 언 뺨을 녹이고, 줄곧 자리했던 겨울을 넘어 하늘은 봄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드리웠던 긴 밤의 장막은 거둬졌습니다.
 
우리는 함께 태양을 보러 갈 것입니다.
 
그 어떤 용사도, 마왕도 맞이하지 못했던 내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때에서야 그는 비로소 웃었습니다.
 
세계의 평화도 사람들의 행복도 누군가의 영겁의 고통 앞에서는, 잠시 내려놓아도 되잖아요.
 
왜 우리는 이기적이면 안되나요, 때로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되나요.
 
그가 중얼거립니다.
 
시험은 탈락이라고요.
 
당신은 용사에 적합하지 않다고요.
 
하지만…….
 
로넨 아르달:그래.
……다시 소개할까.
 
하지만 웃고 싶은 기분입니다.
 
왈칵 바보처럼 웃어버리고픈 기분입니다.
 
그가 그의 세월만큼이나 흉터로 얼룩진 손을 내밉니다.
 
로넨 아르달:전 용사,
…….
로넨 아르달이다.
 
데비 매그닛:(그제야 맑게 웃음지었다.)
데비예요.
그냥, 데비 매그닛.
 
용사도 마왕도 아닌 로넨 아르달과 데비 매그닛이 손을 마주잡습니다.
 
온기가 전달됩니다. 그것은 겨울을 녹입니다, 봄을 부릅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처음, 서툴게 도망칩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목숨이여, 나아가 세계여,
 
부디 용서하소서.
 
반역의 이름으로 당신도, 나도
 
END 4. 지금만은 살아 숨쉬노니
 
로넨, 데비 ?
 
세상은 언제까지 평화로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