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다른 장르에 한동안 뽕이 차고 뽕이 떨어져도 그..뭐냐...주기적으로 앓게 되는 그런 갓컾이 있습니다. 그 중 한 컾이 바로 제랄엘자인데... 원작 생각할때마다 진짜 개억울함 맨날 여캐 성적대상화시키고 내가 만화를보는지 동인지를 보는지 모르겠는 이 만화를 보면서 겨우 버틸 수 있던 이유가 결말 때 제랄엘자 결혼하거나 진짜 키스하는 모습 보고싶어서 그거 견디려고 꾹 참고 꾸역꾸역 완결까지 달렸는데 나는정말너무슬프고
아무튼 제랄은 엘자 앞까지 당도했는데, 엘자가 있는 곳의 문을 열자마자 길게 늘어선 검들의 행렬이 보임. 가지각색의 디자인, 또 특성을 띄고 있을 게 분명한 검들이 바닥에 정렬되게 꽂혀있었음. 그 끝으로는 높은 옥좌에 엘자가 앉아있었는데, 엘자는 오른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차고도 위로 앞머리를 늘어뜨려 얼굴을 반쯤 다 가렸고, 마도복을 두껍게 두르고 가장 바깥으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후드 망토를 썼음. 대체적으로 원작 제랄이 평소에 입고 다니는 디자인 느낌..
제랄은 막상 엘자의 앞에 이렇게 당도하게 되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음. 엘자는 자신의 생각보다 악의가 없었고 또 지쳐 보였음. 제랄은 주먹을 한 번 꽉 쥐다가 천천히 웃었음. 오랜만이야, 엘자.
- 널 구하러 왔어.
엘자는 자기 앞까지 당도한 제랄을 보더니 지친 낯으로, 픽 빠지듯한 웃음을 한 번 흘릴 뿐이었음. 무어라 중얼거리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제랄에겐 들리지 않았음. 엘자는 앉아있던 곳에서 일어나며 의자 옆에 꽂아두었던 검을 느리게 뽑았음. 대리석 바닥에서 검을 뽑으니 듣기 싫은 소리가 방 안을 울렸음. 엘자는 한 쪽 눈을 길게 감았다가, 눈을 뜨며 제랄을 바라보았음.
- 아니.
- 끝을 내자꾸나, 제랄.
제랄은 답답할 뿐이었음. 자신의 말이 엘자에게 들린 것 같긴 한데 엘자는 당장 전투를 준비하고. 내가 널 구하러 왔어, 엘자. 네게 걸린 모든 저주와 세뇌를 풀어줄거야, 그러기 위해서, 내가-! 제랄이 외치는 순간이었음.
카드득, 사전예고 따윈 필요치 않다는 듯 엘자의 검이 날카롭게 제랄에게 쇄도했음. 황급히 검의 궤적을 피하며 엘자의 검에 바닥이 갈리며 돌 부스러기 따위가 튀어올랐음. 엘자, 내 이야기를 들어! 제랄은 어떻게도 엘자를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음. 엘자 자체가 규격 외로 강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심리적인 이유로. 도무지 직접적으로 엘자에게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음.
수많은 공방이 오가고 결국 엘자가 우세를 점하게 됨. 온 몸 곳곳에 자상이 남은 제랄과 조금 흐트러졌을 뿐 멀쩡한 모양새의 엘자. 쓰러진 제랄 위에 올라타 제랄의 목에 칼을 들이민 채로 엘자가 입을 열었음.
- 쇼가 말했다. 탑의 바깥에서는 네가, 곧 성십마도사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분명 최연소 성십마도사가 될 것이라고.
- ... 엘자.
- 천체 마법에 대해서는 새로운 경지를 진즉에 뚫었겠고, 그 외로도 온갖 해주 마법에 능통하다더지.
- 엘자.
툭. 제랄의 얼굴 위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 그런데 왜,
엘자는 지친 낯으로 울고 있었다.
-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는 것이냐.
*
엘자 스칼렛이 자신이 세뇌에 걸려들었던 것을 깨달은 때는 이미 낙원의 탑 계획이 3년째로 접어들었던 때였다. 무고한 자들이 무더기로 다시 노역 생활에 투입되고 있었고, 사상자도 많았다. 엘자 스칼렛은 이것을 어떻게 되돌려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세뇌가 깨진 것을 절대 티 내지 않았다. 자신을 세뇌시킨 대상이 울티어라는 것은 세뇌를 깨고 곰곰히 사태를 짚어보던 때에 깨달았다. 자신이 울티어에게 반기를 든다 한들, 자신은 제랄처럼 다시 내쫓기고 쇼나 밀리아나같은 아이들이 이 자리에 앉게 될 뿐이었다. 엘자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졌다.
엘자가 옥좌에 앉아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와 같이 무자비한 발언을 하며 시몬을 통해, 몰래몰래 사람들을 뒤로 탈출시키는 것 뿐이었다. 시몬에게는 아무런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 아무튼 그렇게 노동 시간을 줄이고 휴식 기간을 늘렸다. 어떻게든 그들이 이 탑이 아닌 바깥의 세상을 한 번이라도 밟아볼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했다. 어떻게든지, 어떻게든지-.
- ... 세뇌가 풀렸군.
낙원의 탑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이 목적을 깨닫는 것은, 다시 걸린 세뇌에서 깨어난 2년 뒤였다.
지독한 무력감이 엘자 스칼렛을 뒤덮었다. 매일 밤이 비명과 절규로 물들었고 엘자는 차라리 미치고 싶은 심정을 안고 손바닥이 다 터지도록 검을 잡았다. 누구보다 강해질거야, 나를 세뇌시키는 저 여자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서, 저 여자를 무너뜨리고, 탑을 해방해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나를 죽일거야.
*
그러나 탑은 맹렬히 자라났다. 울티어는 엘자가 한 번 세뇌가 깨어난 것을 경계해, 탑과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어놓았다. 탑이 무너지게 된다면 사람들 또한 죽게 된다. 혹여나 엘자 스칼렛이 또다시 세뇌가 깨어난다고 해도 허튼 짓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저주였다. 엘자 스칼렛은 마법을 익혔고, 결국 탑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연동하는 것에 성공했다. 어떻게든 대가를 설정해야 했다. 다만 목숨 이외의 것으론 대가를 채우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그곳에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집어넣을 수 밖에'가 아니었다. 엘자 스칼렛은 기꺼이 그곳에 자신의 목숨을 대신 집어넣었다.
그러니 제랄, 너를 불러들여 네가 나를 죽이게끔 만든다면.
제랄 페르난데스가 낙원의 탑에 다시 당도하기 1주 전의 이야기였다.
*
- 나를 죽여라.
-엘자.
- 나를 죽여, 제랄.
-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폭음과 함께 방이 무너졌다. 제라아아알!!!!!! 소년의 목소리가 제랄을 파고들었다. 나츠. 당황 섞여 내뱉은 말은 시끄러운 음성들에 묻혀 사라졌으나 옆에 있던 엘자 스칼렛은 그를 들을 수 있었다. 나츠? 눈물을 거칠게 닦고 자그맣게 속삭였던 엘자는 불꽃 두른 주먹이 매섭게 얼굴에 날아오자 몸을 저 뒤로 피했다. 제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나츠, 네가 왜 여기에.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렸다.
- 같은 길드원 수준으로 충분하다고!!
무어라 말하려던 제랄의 입술이 닫힌다. 그래, 같은 길드원 수준으로 족하다고 생각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
-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우릴 대해왔었냐, 제랄!!!!
입술이 떨어지질 않을까. 멍한 제랄이 그저 나츠를 지켜보는 동안 엘자는 망설임 없이 나츠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나츠는 제랄을 통해 감정을 토해내다가 갑자기 공격을 해온 엘자에게 한 대 맞고 저 멀리 날아가, 멈추지 않고 날아오는 엘자의 공격에 방어하느라 급급한 상태였다. 이를 악 물고 엘자를 공격해보려 해도 힘이 딸린다.
어느새 나츠가 저 멀리 쓰러져 숨을 몰아쉬고 있다. 다시 일어나려는 다리가 잘게 후들거리고 있다. 제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츠를 향해 매섭게 쇄도하는 칼날을 오른손으로 아예 잡아채며 입술을 악문다.
- 엘자. 그만하자.
- 너는 어떻게든 나를 죽일 수 없다.
- 네게 걸린 저주를 풀려 내가 얼마나 마도서를 읽었는지 넌 모를거야.
- 그러니 네 소중한 자를 죽일 것이다. 그렇다면 너도 나를 죽일 수 있겠지.
- 너를 구할거야. 그리고 너와 함께 길드로 돌아갈거야.
여태껏 아무런 반응 없던 엘자는 제랄의 마지막 말에 싸늘한 비소를 지었다. 굳은 듯 하면서도 기어이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에 제랄이 입술을 악물었다.
- 너를 구할거야. 그리고 너와 함께 길드로 돌아갈거야, 엘자.
싸늘하게나마 지었던 미소를 엘자가 한순간에 지워냈다. 제랄의 오른손에 붙들린 칼을 흘끔 바라보다 보란 듯 느리게 칼자루를 손에 놓는다.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걸어간다. 옥좌 앞에로까지 다다랐다. 입을 열었다. 그것은,
- 나를 구한 '너'를 위한 구원이로군.
옥좌에서 고하는 사실 직시의 판결이었다. 그와 동시에 눈을 멀 정도로 눈부신 하얀 빛이 온 천지를 뒤덮는다.
에테리온이었다.
*
발가벗은 낙원의 탑의 몰골이 어찌 그리 추하던지. 옥빛 라크리마 결정체들을 두 발로 짓밟고 선 엘자 스칼렛은 부숴진 옥좌 조각을 발로 찼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제 정말 서두르지 않으면 이 탑이 세계를 뒤흔들게 될 것이었다. 그녀 때문에 고통받는 자들이 더없이 늘어나게 될 것이었다. 그녀는 짧은 순간이나마 그녀를 기만하고, 또 그녀의 원대한 계획을 망가뜨린 배신한 제랄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 아니. 배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애초에 그녀의 욕심이었을 뿐이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어두었던 마지막 방안을 실행키로 다짐한다.
'대가'를 바치는 제단의 문을 손짓하며 소환했다. 탑의 진동과 함께 투박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자가 다시 손짓하자 땅에 박혀있었던 무수한 검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그녀의 곁에서 춤을 추었다. 일사분란한 검무는 그리 허공을 노닐다 날을 보이며 제랄 곁으로 박혀들어갔다. 서슬퍼런 날이 온 몸을 가두고 있어, 사실상 구속이나 다름 없었다. 엘자가 통보했다.
- 너를 위한 구원은 네 스스로 해라.
- 나를 위한 구원은, 내 스스로 한다.
애초에 기대한 것이 없었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어야 할텐데, 공연히 가슴 한 켠이 아파왔다. 나도 참 이상하지. 그저 어린 시절 첫사랑일 뿐인데. 자조섞인 웃음을 흘리며 하늘을 한 번 바라본 엘자는 문으로까지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제랄에게는 한 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제랄은 정신이야 잃은 적도 없이 멀쩡했지만 끝없이 휘몰아치는 감정의 격류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낙원의 탑을 떠나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이 나태하게 살아온 적 없다 확신했던 제랄이었다.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자해 수준으로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고 몰고 또 몰았다. 어떤 세뇌에 걸렸는지 알 수가 없으니 모든 저주•세뇌 마법을 찾아내 익혔다. 심지어는 '그' 페어리테일에 기거하면서도 일정 이상의 정을 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너를 구해야 하니까. 너를 구해서 이 페어리테일로 데려오고, 네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니까. 나에게는 너 밖에 없으니까. 너는 나 이외에는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으니까.
너에게는 나 밖에 없어야 하니까!
- 내가 풀게! 낙원의 탑과 너의 링크도 해제할 수 있어.
- 그리고 같이 낙원의 탑을 부수자.
이미 엘자에게 저주 링크가 걸린 건 만났을 때 부터 알 수 있었다. 제랄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잘 할 수 없었는데, 지금까지 광신했던 삶의 목표가-엘자를 구해야 한다는-와장창 무너지게 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도 아닌 엘자 스칼렛, 본인의 의지에 의해. 제랄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제랄은 엘자를 알아내려 온 신경을 쏟았을 뿐이지 정작 낙원의 탑은 생각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현재 떨어진 것이 에테리온이라는 건 인지했어도 그 에테리온을 맞은 낙원의 탑이 왜 멀쩡한지는 의문 자체를 가질 수 없었다.
- 내가 널 기만한 것은 사실이야! 부끄럽게도 지금 깨닫게 되었어. 너를 너무 나약한 존재로만, 지켜야만 하는 존재로만 생각했어.
그러나 지금 엘자를 잡지 못한다면, 사건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질 것이라는 것만은 명확했다. 제랄은 주먹을 꽉 쥐고 일어났다. 제랄을 구속하듯 주변을 메우던 검날들이 신체 곳곳을 파고들었다. 제랄은 멈추지 않고 일어났다. 검붉은 피가 낙원의 탑을 물들였다.
- 그러나 엘자, 나는 깨달았어.
저 멀리서 쓰러져있던 나츠가 정신을 차리는 것이 보였다. 나츠가 자신을 보고 눈이 서서히 커지는, 그 바보같은 표정도 아주 잘 보였다.
제랄은 어쩐지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널 구하고자 했던 건,피에 눈물이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뚝. 뚝.- 널 사랑해.뚝.- 가지마, 엘자.*엘자는, 느리게 웃었다.*깨어난 나츠는 제랄에게 합세했다. 라크리마를 먹기까지 한 나츠 드래그닐은 가공할 만한 힘을 내보이며 제랄과 함께 엘자를 저지하는 것에 성공했지만.에테리온을 먹은 낙원의 탑은 멈출 수 없었다.
쓰러진 엘자의 저주를 막 풀어내고
방심하던 찰나였다. 한 순간에 제랄과 나츠의 신형이 기울어진다. 엘자는 낙원의 탑 전투원들을 쓰러뜨리고 올라온 쥬비아와 루시, 그레이에게 그 둘의 몸을 건냈다. 너희가 제랄의 동료들인가. 너는 누구지? 그레이가 경계와 불신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엘자는 지친 낯으로 아주 옅은 웃음을 그린다. 제랄의 옛 동료다. 더는 이야기 할 시간 없군. 곧 탑이 폭발할테니 말이야. ...... 자, 가라!
페어리테일이 탑 밖으로 피신한 것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엘자는 최상층으로 올라가 제단의 문 앞에 섰다. 두려운 것은 없었다. 무서운 것도 없다. 미련 남는 것도 없다. 아무 감흥도 없다. 아니, 없어야만 한다. 그녀는 예전부터 이 날을 고대해왔으므로. 탑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죽음을 그리게 되는 이 날을 소망해왔으므로.
... 문이 그녀의 손 끝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이윽고 손등까지 팔꿈치까지 어깨까지 야금야금, 또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녀가 매일 밤 꿈꿔왔던 해피 엔딩이었다.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 엘자!
않았다. 그녀는 갓 뭍에 내버려진 물고기마냥 퍼드득 떨며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헉. 벅찬 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시야에 비치는 것은.
... 그녀가 간수들에게서 한 번 도망쳐나왔을 때, 또 간수들에게 들켜 다시 그 감옥으로 질질 끌려 잡혀갔을 때 유일하게 간수 앞을 막아섰던 로브 할아버지와 똑닮은 그 등이 보였다.
- 시몬.
엘자의 얼굴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뚝 뚝 떨어졌다. 엘자를 대신해 탑에 몸을 바치는 시몬의 넓다란 등이 보였다. 엘자를 대신해 탑에 몸을 바치는 시몬이 굳게 앞을 바라보던 고개를, 아주 느리게 돌렸다. 바닥에 엎어진 엘자는 그런 표정의 시몬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공연히 아득해졌다. 나직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시몬의 눈가가 조금 반짝였던가. 죽음 앞에서 시몬은 무덤덤히 이야기를 꺼냈다. 제랄에게 들었다. 네가 세뇌를 당했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그게 풀렸던 것 같다고.
- 생각해보면 그래. 그렇게 사람들을 빼돌리는데, 네가 모를 리가 없었지, 엘자.
그리고 시몬은 느리게 웃는다. 당장 들어닥친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든든한 미소다.
- ... 엘자. 너는 언제나,
*
상냥해서,
*
밤바다를 밝게 메꾸는 빛은 어찌 그리 환하길래 눈이 시려 절로 눈물이 떨어지게끔 만들던가. 밀려밀려 뭍에 도착한 제랄은 눈을 뜨자마자 나츠나 그레이, 쥬비아와 루시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좌절감에 통곡해야 했다. 눈물도 오열도 나오지 않았다. 제랄은 까마득한 침묵에 갇혀 눈과 귀와 입을 막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눈 붉은 실타래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그러다 제랄은 미친 사람마냥 퍼뜩 고개를 처들고 황급히 물로 뛰어들어갔다. 어안이 벙벙해 나츠를 뺀 나머지와 함께 사건의 경위를 정리하던 그레이가 이, 미친! 욕설을 짓씹으며 뭍으로 막 달려가는 제랄을 쫓아 기어코 잡아낸다. 넋 나간 꼴에 무어라 윽박이라도 지르려던 참이었다.
- ...
그것은 아주 기묘한 직감이었다. 그러니까. 고개를 돌려라,같은 아주 원시적이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직감이었고. 결국 그 끝자락에 걸린 것이 붉은 머리카락인 것도 또 묘했고. 그것을 안고 있는 사람이 나츠 드래그닐이라는 것도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고 말고,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어코 제랄 페르난데스가, 엘자 스칼렛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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